토요 내근 때 있었던 ‘탄핵찬성전화 쇄도’ 에피소드를 다룬 글을 읽고 한 30대 초반의 독자가 기자실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무척 흥분해 있었죠. 한 인터넷 회사에 근무하고, 탄핵 표결이 통과될 때 눈물이 나올 정도로 격분했다는 평범한 국민이었습니다.
그 분은 다짜고짜 “전화가 몇 통이나 왔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마 믿지 못하셨나 봅니다. 제가 객관성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지요. 하지만 전화의 내용과 횟수는 사실입니다. 그 분이 놀라신 것처럼 저도 그 때 놀랐습니다.
전화 하기가 쉽나요? 여러분은 언론사에 전화를 해보셨나요? 혹은 부모님이 언론사에 전화하는 광경을 보셨나요? 그 분도 “너무 열이 받아 처음으로 언론사에 전화해봤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화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만한 노력이면 귀담아 들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허… 참 요즘 욕먹는 양비론이 되는군요. 상관없습니다. 양비론이 필요한 사안도 있으니까요. 모두들 “내 주변의 생각은 이렇더라”라고 이야기합니다.
토요일 날 전화를 주셨던 몇 분도 인터넷의 여론은 이렇게 돌아간다고 전해드렸더니 도저히 믿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전화와 인터넷 세대간에 전혀 소통이 안 된다는 것.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차이에서 오는 엄청난 사고의 괴리감.
사는 세상이 다르니까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제가 객관성을 상실했다면 글에서 그 사람들이 다수였다는 표현이 있어야 했겠지요. 하지만 제 글 말미에 보면 알겠지만 저는 전화하신 분들이 사회의 다수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 다른 방법이 없고, 오로지 전화에 의지해서 의견을 표출하시는 분들 중에 다른 목소리가 무시 못할 만큼 많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분도 그런 제 뜻을 이해했습니다.
그런 설전이 오간 후 서로의 마음이 진정되자 그는 “저를 노사모 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쨌든 그와 저는 서로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본적으로 둘은 같은 세대에 해당합니다.
그는 “많은 찬성전화가 50~70대 분들이었다. 세대간의 매체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이런 이야긴데 오해의 소지를 만드셨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술 자리에 가면 나이 드신 분들은 탄핵 찬성이고, 우리들이 모이면 그 반대의 의견을 이야기 하더라”라는 요지의 말도 전했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물론 탄핵에 대한 제 생각도 이야기해줬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그 분과 저만 알았으면 합니다. “저랑은 전화로 오해를 풀었을지 모르지만 인터넷을 보는 사람들은 불리하니 의견을 다르게 낸다고 오해할 수 있다”는 충고처럼 손해 보는 장사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제 블로그가 한국일보 기사인 줄 알았다는 그 분이 “블로그가 개인적인 감상을 적는 곳이라도 한국일보에 링크가 되어있고, 기자의 신분인 만큼 사회적인 파급력도 크다”고 말한 요지에 공감합니다. 기자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말 못할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이전 글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부모님 세대 답답하시죠? 토요일 날 전화하신 분들의 제 부모님 세대였습니다. 그래도 서로 이야기해보면 재미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 날 무지하게 재미있었습니다. 아! 세상에는 이런 의견도 있구나 하구요. 기자라서 다행이라는 말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그 분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익명의 인터넷 댓글 대신 기자와 직접 대화를 한 독자. 그것도 수십 통의 탄핵 관련 전화 중에 매우 드문(두 번째) 30대의 전화를 받았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토요일날 내근을 했습니다. 보통 신문은 일요일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토요내근은 조촐합니다. 평소라면 사회부 경찰기자인 저와 사진부 기자 둘만 있는 고요한 날이었겠지요.
금요일날 '대통령 탄핵'이라는 큰 일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신문사가 일요일자를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어제도 인원구성은 조촐했습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침부터 전화통에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전화는 '탄핵'에 관련한 독자 및 일반 시민의 반응이었습니다. 핫 이슈라는 말이 딱 맞을 만큼 뜨거웠습니다. 뜨거운 열기보다 놀란 것은 바로 전화의 내용이었습니다.
수십통의 '탄핵' 관련 전화에서 탄핵 반대를 외치는 시민은 딱 세 분 뿐이었습니다. 에이~ 농담이라구요? 저도 처음에 4~5통의 전화 까지는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이어서 나올 녹취록을 기대하십시오.~
대전에 산다는 50대의 아저씨. '혹시 여론조사 회사에서 왜곡하는 거 아니에요? 제 주변 사람 모두 탄핵 결정에 찬성했어요. 근데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내 시장에서 일하느라 주변에 사람들하고 많이 이야기 해봤어. 다 찬성이야. 당신들 민심을 어찌 읽는거야? 노사모 애들 의견이 국민 의견이야? 진짜 국민 의견을 들으란 말이야!'
일산에 산다는 또 다른 분. '저 혹시 여론조사에 무응답은 어떻게 처리되는 겁니까? 저랑 제 주변에서는 여론조사오면 다 끊거든요. 근데 무응답이 1.5% 뿐이라니. 이건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같은 나이 많은 사람들은 여론조사 나와도 다 속마음과는 다르게 말해요. 그거 믿으면 안되요.'
분당에 산다는 60대 할머니. '내 열 받아서 전화하는 거에요. 왜 TV에서는 전부 젊은 애들만 시민 의견으로 인터뷰 한데요? 나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아요. 언론에서 그런 거 간과하면 안되요. 나 누구편도 아니야. 그런데 지금 나라꼴은 아니에요. 내 의견도 언론에 반영해야해. 방법도 없고 해서 전화로 걸었소. 지금 심정은 거리로 나가서 젊은이들에게 니들이 틀렸다고 외치고 싶다니까.'
위에 두 분은 끝내 본심은 이야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심정적으로는 한나라당 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 중 상당수가 본심을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신하들은 왕에게 직언보다는 비유나 은유를 통해 본심을 전달했습니다. 군사정권 시대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아직도 이런 풍토가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은 군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도 있고, 속마음을 쉽게 드러냈다가는 권력자에게 처벌을 받기 일쑤라는 인식도 있지요.
토요일이라 여유도 있어 비교적 상세하게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 삶의 자세 중에 하나가 '전화는 최대한 친절하게' 입니다.) 어떤 분은 '그럼 이제 여론조사도 적극적으로 응해야겠네요'라면서 한숨을 내쉽니다. 이 분도 역시 내 주변에는 모두 탄핵 찬성이라는 뉘앙스를 풍기시더군요.
속마음을 돌려말하는 전화의 백미는 전주에 사시는 70대 할아버지였습니다. 정리가 안되고 참 '거시기'를 많이 연발했지만 제 맘대로 한 번 이해해봅니다.
'내 사사오입도 봤지만 이렇게 국회에서 울고 불고 하는 건 처음 봐. 김일성 국가도 아니고 그게 뭐여. 총선도 그렇게 할 것 아니여? 나도 대선 디 노무현 찍었혀. 근데 모 당을 뛰쳐나가고 어째 이런 일이 생기는교? 통합해야지. 나도 전라도 사람인데 거시기 알았다고 꼽사리 끼고, 또 찍을 수도 안 찍을 수도 거시기 하고 말이여.(뭔 뜻인지 이해 되시나요?) 그건 그렇고 저 사람은 네티즌 해서 입체적으로 운동 하나벼. 버튼 누르면 다 나오게? 거시기 사람은 그런 거 못히여. 동력이 늦어.'
이 할아버님께 친절히 여쭤봤더니 드디어 본심이 살짝 나오더군요. '탄핵은 잘했다고 생각혀'
이외에 '투표권은 50대 이후나 주어야지. 젊은 놈들이 세상을 뭘 안다고? 안 그래요? 기자양반?' 이러시는 분. 'TV보면 순 젊은 애들하고, 반대 의견만 나와. 이건 민의가 아니야. 정확한 민의는 따로 있어'라고 고성을 지르는 아줌마. 좀 점잖게 '탄핵 된다고 나라 망하지 않아요. 대통령 감이 아니었지. 대한민국 사회 큰 일 안나요. 공영방송이 사회불안을 조장한다니까'라며 정중히 항의하는 아저씨 등등 의견이 다양합니다. 공통적으로 내 주변에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언론이 사실을 왜곡한다는 점을 강조하더군요.
이왕 편파방송 이야기가 나왔으니 녹취록 몇 개만 추가해 봅니다.
여기 진주인데요. KBS에 항의 전화하려고 했더니 전화 다 꺼놨더라구요. 저도 대선에서 노무현 찍었어요. 지금 국난극복 해야 할 상황인데 이게 뭡니까. 대담프로에서 탄핵 찬성과 반대 둘 다 좋은 사람들 있으니까 공평하게 해야 하는데 하도 편파적이라 열 받아서 한국일보에 전화했어요. 방송이 저러면 신문이 취재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좋은 도둑이나 나쁜 도둑이나 똑같이 도둑이지. 지들이 뭘 잘했다고 국회가서 촛불 들고 난리야? 인터넷 조사로 바람몰이나 하고 민의를 반대로 이야기하고 말이야. KBS 보도도 전 안 믿어요. 노사모 1~2만명 의견이 국민의 의견입니까? 그렇게 생각 안해요?
서초동에 사는 60세 주부는 “MBC는 이미 포기했는데 KBS보다 열 받아 TV껐다”며 “공영 KBS는 찬성과 반대 모두 상당수 있는 만큼 제대로 보도를 해야 한다”고… 시청료 분리운동 이야기 등등…
특히 KBS 토론과 보도가 집중될 때 마다 전화통에는 불이 났습니다. 저는 물끄러미 인터넷 게시판을 쳐다봤습니다. 그 시각 각 인터넷 게시판에는 '도대체 누가 탄핵에 찬성하는 거야? 내 주변에는 다 반대야'라는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지요. 제 친구는 '내 주변 애들은 다 잘됐다는 분위기야. 시원스레 말을 못해서 그렇지 그런 의견이 굉장히 많아'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빨리 광화문 가자. 대한민국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시각 광화문에서는 5만명 정도의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탄핵찬성 전화는 계속 옵니다. 자꾸 이러면 우리도 광화문 나가서 탄핵 찬성 집회를 열겠다는 전화도 옵니다. 어쨌거나 '탄핵'으로 인해 양측의 결집도가 굉장히 올라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더군요.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시민들의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갑자기 다른 날과 달라보이더군요. 토요일 저녁, 저는 격랑의 대한민국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나 이 글을 읽는 상당수의 여러분이나 요즘은 전화보다 메신저나 문자메시지를 많이 쓸 겁니다. 통신수단의 급격한 발달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전화를 쓰는 사람과 메신저를 쓰는 사람 간에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뼈저리게 느낍니다. 소통이 안되는거지요.
하지만 우리들이 잘 쓰지 않는 통신수단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거. 그만큼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의견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거. 그 의견도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
첫댓글 열우당과 노무현은 이제 넘지 말아야할 선까지 넘었습니다...돌이킬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자는 상응한 보복을 받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