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행복 통장
석야 신웅순
애들 학교 다닐 때는 애들 중심으로 살았다. 어머니도 가신지 오래되었고 애들도 결혼한지 7년이 넘었다. 퇴임 후에는 글나부랭이나 쓴다고 내 중심으로 살았다. 살면서 집사람 중심으로 산 적은 거의 없었다.
불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큰 후회가 될 것 같았다.
“여보, 우리 둘만의 여행을 위해 통장하나 만듭시다.”
대답이 없다. 내 말에 믿음이 없었나 보다.
언제나 말만 앞섰지 실행해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산행, 답사는 자주 있었지만 아내가 생각하는 그런 둘 만의 여행은 아니었다. 처음엔 몇 번 따라다녔다. 무덤이나 비석 같은 곳이나 찾아다닌다고 안 간다더라. 답사 덕분에 여러 권의 책은 썼지만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었으니 미안한 마음인들 왜 모르겠는가.
얼마 전부터 한국화를 시작했다. 집사람이 화가이니 이제는 공통점 하나 생겼다. 명산을 찾아 같이 사진도 찍고 맛집도 더러 다녔다. 3월엔 구례 산수유꽃을 보러가자고 했다. 그림 소재로 몇 커트 찍어올 생각이다.
며칠 전 여행비를 위한 우리들의 통장을 만들었다. 돈이 있어서 만든 것은 아니다. 이 통장에서 저 통장으로 옮기는 것 뿐이나 나에겐 그런 명목의 통장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름을 행복 통장이라 명명했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냐.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 여행이라도 우리들은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후회막급일 것 같다. 단 한 번 아내를 만나, 단 한 번 사랑을 하고, 단 한 번 사는 인생이다. 길어야 15년이다. 인생은 찰나, 수유가 아니냐. 그동안 나를 위해 살았으니 이제라도 아내를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언제나 통장은 마이너스이지만 마음만은 플러스이다. 돈 있어도 삼시세끼요 돈 없어도 삼시세끼이다. 더 먹는다 한들 덜 먹는다 한들 풀칠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내가 시골에서 초등학교 선생을 계속 했었더라면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사정이 많이 좋았을 것이다. 선생도 버리고 주경야독하며 야간 대학, 대학원에 보따리 장사까지 하며 나그네로 주유했으니 얻은 것은 무거운 학위 한 장이요 잃은 것은 가벼운 돈뭉치(?)였다.
인생이란 참으로 공평한 것이다. 죽도록 고생했으나 잃은 것과 얻은 것의 합은 결국 제로이다. 인간사가 질량 보존의 법칙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공수래공수거, 인생이 다 그런 것 같다.
입출금 통장에다 굵게 행복 통장이라고 썼다. 이제 출발을 했다.
“여보, 이 그림 구도가 어때?”
“나무를 좀 왼쪽으로. 여백은 이쪽으로.”
요새 서로의 그림을 보며 이런 감성 대화를 나눈다.
명화여야 할 필요는 없다. 아름다운 행복의 구도를 함께 그려가면 된다.
추수가 끝난 허허로운 가을 들판이다. 앞으로 허허로이 질러 가야할 우리들의 인생길이 아니냐.
-2025.1.24.석야 신웅순의 서재,여여재.
첫댓글 한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가까운 배우자를 당연한 존재로 여기고 소홀하게 대하기 쉽지요.
특히나 우리같은 가부장적인 세대에 익숙한 경우임에야 말해 무엇하리오?
그저 교수님처럼 남은 세월을 집사람 생각하며 지내시면 행복한 노후라 하겠습니다.
그래요. 공감합니다.
그게 행복한 노후가 아니겠어요?
그래도 함께 와 준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지.
찾아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