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저편_제9장_287절
다포 '문양'과 문득 고귀함과 믿음이란... '의사결정 능력'
한번 만들어 놓으면 의외로 사람은 그다음에 무엇을 다시 만들기가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다포를 만들어 쓴지 오래되었다.
다른 다포를 쓰고 싶은 데, 그동안 다포(또는 다른 그 무엇이라도)를 전혀 만들지 않아서, 전에 만들어 두었던 것만 계속 사용하게 된다. 있던 것을 오래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이것이 내 '문양'이로구나 싶다.
시간이 어디론가 압축되어 버린 느낌이 불현듯이 솟아난다. 다포 만들던 그 순간과 바로 지금의 시간만 남은 듯하여서다. 그때와 지금이 바로 연결되어 현재를 이루고, 그 사이 시간이 어디론가 없어진 듯한.
하루하루 지나가던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시간들은 나에게 피가 되도 살이 되고...또 배설물이 되었을진대, 나에게로 들어와 내가 된 '시간'을 나는 갑자기 어디론가 증발한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구나.
시간이 시간을 물질(형태)로 변화시키는 시간을 감내하고 기다리며 사는 사람에게는, 시간은 참 모진 시간 그 자체이기도 하지.
시간의 변화가 물질 이고, 물질이 곧 시간임을.
시간이 변화하여 물질이 되는 것은, 사람에게는 '뇌'라는 가상공장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존재란 '있다'라는 것인데,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변환장치가 가동되고 있는 중'이라는 그런 현재 진행형이 '존재한다'라는 의미이겠지.
니체가 말한 '믿음'은 바로 이러한 의미일 것이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몸은 여전히 안에서 내부 장치를 돌리고 있고, 존재하는 중이지만 아직 물체화 되지 않은 바로 그 어떤 것(존재)을 '믿으라'는 의미이겠지.
아모르 파티는 바로 그것에 대한 긍정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러니 또 <선악의 저편>과 연결된다. 해서 그 부분을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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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선악의저편/제9장 287절/ p305>______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고귀함'이라는 단어가 오늘날에도.여전히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것을 불투명하게 하고 납빛이 되게 하는, 천민 지배가 시작되는 무겁게 드리운 하늘 아래, 사람들은 고귀한 인간을 무엇으로 드러내고, 무엇으로 식별하는가?
그를 입증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다. 행위는 언제나 다의적이며, 언제나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를 입증하는 것은 작품도 아니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이나 학자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자신이 고귀함을 향한 깊은 갈망에 추동되고 있는지를 자신의 작품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고귀함을 향한 이러한 갈망은, 낡은 종교형식을 새롭고 좀더 깊이 있는 의미로 다시 받아들이기 위해, 여기에서 '결정'을 하고, 여기에서 '순위'를 확정하는 것, 그것은 작품이 아니고 믿음이다.
그것은 고귀한 영혼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근본적인 확신'이며, 구할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으며 아마 잃어버릴 수도 없을 그 무엇이다. 고귀한 영혼은 자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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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아직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요즘 말로 하자면, '의사결정 능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든다.
니체는 이 책을 집필할 때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그때에는 아직 이런 자기 생각을 표현할 언어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쓴 책이 어려울 수 있어서 <선악의 저편>을 썼다고 했다. 자신이 쓴 책에 대한 설명서이자 해석서이기도 한 책이지만, 차라리 이 책이 제일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자는 말을 만들고 생각을 만들고 개념을 만들고..., 철학자의 '뇌' 가상 시스템도 참으로 고단하기는 할듯하다.
'결정' , '순위' 이러한 것은 '가치평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에 대해 '가치 평가'하고 적용하는 것은 관점적이어야 하고, 그것에 대한 변화 양상을 꿰뚫어 보아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믿음'인 것인지도. 과거의 것(또는 어떤 전후좌우를 살피는)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안목'에 가깝지만, 이어져 온 것에 대해 미래적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 현재에서 결정하는 것은 '예지'에 가깝다. 니체는 그것을 '해석적 관점'이라고 본 것일지도.
'그것은 작품이 아니고 믿음이다' 이 말은 '사람의 정신'을 보라는 것인지도. 또는 '사람(몸 자체)를 보라는 것인지도. 왜냐하면 니체는 저편의 세계가 아닌 이편의 세계, 대지의 세계를 말했기 때문이다. 선불교 식으로 말하자면, "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
'어떤 근본적인 확신' , '경외' 는 요즘 식으로는 '자존감'이자 리스펙트일 것이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므로, 자존감은 그 자신이 '의사결정'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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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장 공략하는 중에, 생각나는 데로 적어 둠.
* 다포 <아란도 문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