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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조 숙 녀 조 폭 되 기 ◈
Graceful lady become gangster
Written by.땡깡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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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제발 부탁합니다. 제발! 잘할게요.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뼈가 으스러져도 좋습니다. 정말, 받아만 주신다면 뼈를 묻겠습니다!"
목청이 나가도 좋다는 양, 꽥꽥 소리를 치는 가녀린 목소리를 내는 기집애같이 생긴 남자를 우석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2층에서 내려다봤다. 치익- 은빛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회색빛 연기가 흩날리고 우석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가 다시 본래대로 뜨며 흥미로운 눈길로 기집애같은 남자를 응시했다. 한 대만 쳐도 날라갈 정도로 약해 보이는 남자. 배짱 한 번은 좋은 모양이었다. 떡대들이 우글거리고, 험악한 인상으로 욕설을 읊조려대는 녀석들이 모여있는 조폭들의 아지트에 제 발로 걸어와서는 꺼지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졸라대는 꼴을 보아하니.
"아, 이 새끼가 진짜! 죽고싶어서 그래, 엉?!"
결국 보다못한 떡대들이 위협스럽게 말하며 어슬렁어슬렁, 바닥에 거의 붙다시피 몸을 구부리고 애원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고만 있던 우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재밌다는 양 웃으며 우석은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창가에서 몸을 떼어내고 1층으로 향했다.
"꼬, 꼭 들어가고 싶습니다. 꼭, 혀, 형님들같은 조폭이 되고 싶습니다."
위협스럽게 그들이 다가오고서야 드디어 위험한 상황에 자신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지, 생명의 위협감을 느낀 희가 덜덜 떠는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조폭들은 하, 하고 비웃음을 흘리며 비아냥거렸다. '너따위 기집애같은 게 뭘 하겠다는 건데?', '우리랑 똑같은 게 달려 있는 놈은 맞나?'하고 킬킬거려댔다.
"꺅!"
"얼레? 이것 봐라. 킥킥. '꺄악~'이라는데?"
"아, 생긴 것도 기집애같은 게……. 징그럽게."
"야, 벗겨봐, 벗겨봐. 머슴아 맞나."
별안간 멱살을 잡혀 일으켜진 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겁에 질린 눈으로 그들을 애걸하는 눈빛으로 훑어봤다. 하지만, 그들은 마냥 재밌다는 표정으로 희에게 수치심을 줄 요량으로 희의 가녀린 몸을 둘러싸고 있는 옷가지를 거칠게 뜯어내려 들었다.
"놔."
"아……. 혀, 형님!"
눈물이 주르륵, 쉴새없이 흘러내려오고 양 볼을 축축하게 적셔가기 시작할 때즈음, 묵직하고 강한 목소리가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길지 않았다. 단 한마디였고, 단 한 글자였다. 하지만 그의 그 한마디의 힘은 굉장했고 희를 둘러싸고 있던 떡대들은 희를 재빠르게 놓고 허리를 굽혀 90도로 인사를 했다.
'형님……. 이 사람이…….'
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눈에 맺혀있던 눈물을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빠르게 닦아내고 무릎을 꿇고 처음처럼 다시 몸을 바닥에 붙이다시피하고 커다랗게 소리쳤다. 발악하듯.
"정말 조폭이 되고 싶습니다!"
"애송이는 쓸모없어."
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톡 쏘아붙였다. 역시나 간결하고도 분명한 어조이며 강한 힘이 깃들어 있는 목소리. 그가 조폭만 아니라면, 희는 그에게 반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반듯하게 뻗은 짙은 눈썹과 강한 눈매. 또렷한 눈동자와 다물고 있을 때 일자로 변하는 입술 모양은 그가 얼마나 과묵하고 강한 남자인지를 보여주는 상이었다. 날카로운 턱선과 부드럽게 뻗은 긴 속눈썹과 콧날은 그가 단순히 남자답기만 한 것만이 아닌, 꽃미남상이라는 것을 뜻했다. 이토록 매력적으로 생긴 얼굴하며, 심장이 덜컹할만큼 매력 있는 어조와 음성. 하지만 그의 결점은 조폭의 오른팔이라는 점이었고, 그 점은 그의 모든 장점을 가려보이고 단지 그가 굉장히 무섭게 생긴 인상과 차가운 목소리를 지닌 남자라는 느낌을 가져왔다.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조직에 가보지 그래?"
우석은 이미 뭔가 눈치를 챘다는 양 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우석의 말에 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우석의 시선에 침을 꿀꺽 삼켰다. 우석의 냉혹해보이는 눈동자는 희를 추궁하고 있었다.
'굳이 우리 조직에 들어오려고 하는 이유가 뭐지?'라고 묻고 있었다.
"이 조직에…꼭 들어오고 싶습니다."
"어째서?"
"그건…"
희는 잠시 숨을 들이키고 말을 멈췄다. 그게 우석의 눈에는 변명할 말을 찾는 걸로 보였는지 우석이 우습다는 양,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한 웃음을 입가에 끌어올렸다. 희는 우석의 표정을 조심히 힐끗 살피다가 눈을 감았다 부릅 다시 뜨고는 분명하게 우석의 눈동자를 맞추고 똑바른 어조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꼭 이루고 싶은 포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조직만큼……뛰어난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희의 말에 우석은 짓고 있던 웃음을 지어내고 무섭도록 무표정한 얼굴로, 냉랭하기 그지 없는 눈길로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맞추고 있는 희의 눈을 지그시 노려봤다. 그러다 우석은 천천히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서서 뚜벅뚜벅. 자신의 사무실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향하는 우석의 뒷모습을 희가 커다래진 눈으로 쳐다보며 울상이 되었다.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희는 그를 불러세워볼 요령으로 입을 떼려했다. 하지만, 희보다 옆에 있던 떡대들이 더 빨랐다.
"컥."
순식간에 숨이 막혀오는 통증. 옆에 있던 떡대에게 배를 걷어차여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급소를 제대로 맞은 탓에 컥, 컥하고 희는 콜록거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흐릿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는데 떡대의 목소리가 잠결처럼 흐릿하게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 놈은 우리가 깨끗히 처리하겠습니다!"
희는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을 제지하지도 못한 채 배만 세게 움켜쥐고 가냘픈 몸을 구부렸다. 그러는데 떡대들이 자신을 들어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번쩍 일어나켜진 희는 아픈 배를 추스르기도 전에, 쉬어지지 않는 숨을 애써 쉬어내기도 전에 다시 또 주먹이 날라오는 것을 보고는 질끈 눈을 감았다.
"신고식은 나중에 해."
"네?"
그러고 있는데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그의 목소리는 무섭기 짝이 없는 떡대들을 한 번에 제압했다. 떡대들은 행동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석만 쳐다봤다. 우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해가 느린 떡대들을 위해 친절히 설명했다.
"그 새끼는 이제 식구다."
"아, 아앗. 따, 따가. 으아, 따가워."
"가만히 좀 있어봐."
희가 입술을 삐죽대며 화난 목소리로 말하고는 들고 있던 솜을 일부러 세게 짓눌러 비의 입가에 소독약을 묻혔다. 따갑게 들러붙는 그 느낌에 비가 '으악!'하고 소리를 치며 자지러지듯 뒤로 나자빠졌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프잖아!"
비가 울상이 되어서는 소리치고, 희는 흥, 하고 콧방귀를 한 번 뀌어주고는 데일밴드를 지익 뜯어서 비의 입가에 꾹꾹 눌러서 붙여주고는 다시 뒤로 나자빠지는 비를 한 번 양껏 쏘아봐준 후 어질럽혀진 데일밴드 껍데기며, 약상자를 정리했다. 달그락거리며 약상자를 정리하는 희를 비는 삐졌는지 입술을 한 자나 내밀고 쳐다보고 있었다. 쿵쿵, 바닥 울리는 소리까지 내가며 방으로 들어가 약상자를 정리하고 다시 나오는 희를 비는 눈으로 조심히 따라다니다가 곧 벌떡 일어나서 몸으로까지 따라다녔다. 졸졸졸. 희는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상을 차리기 시작했고, 비는 그 뒤를 강아지마냥 졸졸졸. 아니, 닭 쫓는 병아리마냥 뽈뽈뽈. 비의 기척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희는 모른다는 양 입을 꾹 다물고 무시했다.
캉-
"이크! 냄비 부서지겠다."
비가 힐끗 희의 눈치를 보며 조심히 속삭였다.
"윤 비이!!!!"
"으아."
냄비를 펴놓은 야트막한 밥상에 부서트릴 기세로 얹어놓으며 천천히 일어나던 희가 버럭, 비의 귀청을 찢어트릴 요령인지 갑작스레 커다랗게 소리쳤다. 비가 놀라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미안함 가득 베인 눈으로 희를 바라보며 헤헤,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눈을 반달로 예쁘게 접어 애교 있는 표정을 짓는 비를, 희는 가만히 노려보다가 '하아.'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사판에서 일하니?"
희가 속상하다는 투로 물었다. 희의 물음에 비가 '잉?'하고 뭔소리지, 하는 표정으로 한동안 끔뻑끔뻑 눈만 끔뻑거리다가 아, 하고 깨달은 듯 멎쩍게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어…….'하고 할 말을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좀 어려운 일이라."
"그래, 그 어려운 일이 대체 뭔데 매일같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서 들어오는데?"
"그게 좀……."
희가 이번에야말로 사건의 진상을 알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허리에 양 손을 떡 얹고는 비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똑바로 대답하라는 눈빛을 지이이잉- 하고 쏘아대는 희에 의해 비가 우물쭈물거리다가 말할 듯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한숨을 푸욱 내쉬며 어쩔 수 없지, 라고 중얼거리더니 대꾸했다.
"조폭…"
"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비가 말을 꺼내자, 희가 미간을 찡그리고 똑바로 크게 말 안해, 라는 투로 되물음을 던졌고 그에 비가 훕, 하고 숨을 한 번 들이킨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조폭 조무래기로 일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좀 잘했잖아. 싸움도 잘했고.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건 아니고. 그러니까, 머리는 나쁘지, 공부도 하다 말았지, 잘하는 거라고는 싸움뿐이라, 그걸 어떻게 이용 못할까 하다가… 못 받은 돈 대신 받아주는 일이랄까……."
"…뭐?"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희가 되물음을 던졌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희가 던지는 되물음에 비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미안한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거리며 힐끗힐끗 희의 눈치를 보았다. 튀어나올 듯 커다랗게 눈을 뜬 희. 크게 뜨여진 희의 눈동자가 휘청거리는 것을 본 비는 희를 와락 끌어안고 토닥거렸다.
"언니야. 미안해 하지마, 알았지? 언니는 언니가 하고 싶은 일해. 공부 열심히 해서…… 변호사가 되는 거야. 알았지? 일하는 건 내가 다 할께. 돈 내가 다 벌어다 줄께. 그러니까, 언니는 걱정말고 일만…"
"미안…해. 흐윽."
토닥토닥. 이럴 줄 알았다. 비는 한숨을 포옥 내쉬며 더 꽉 희를 끌어안고 등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토닥거려주었다. 희가 흑흑, 거리다 이내 못 참겠는지 훌쩍거리는 소리를 냈다. 희의 따뜻한 눈물이 어깨를 적셨다. 어깨가 축축하면서도 뜨끈해져갔다.
"기쁠 희(喜). 슬플 비(悲). 나는 있지. 운명이라고 생각해. 둘이 항상 함께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라는 의미로 지어주신 이름. 언니랑 나는 겨우 한 시간차이로 태어난 쌍둥이잖아. 내가 먼저 태어날 수도 있었던 건데 언니가 먼저 태어났어. 그리고 언니의 이름이 희가 되었고, 내 이름은 비가 되었잖아. 그건 운명이었다고 생각해. 약하고 맘 착한, 천상 여자인 언니는 슬픔을 견디기에는 너무 여려서 내가 슬픔을 다 짊어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강하고 강하고 강하고. 강한 것밖에 없는 내가 그래서 이름이 비라고 생각해."
"그런 게 어딨니."
희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비는 꽉 안고 있던 희를 품에서 떼어내어 희의 숙여져 있는 고개를 양 손으로 볼을 집고 들어올려 자신의 얼굴을 보도록 했다. 그리고 비는 세상 그 누구보다 예쁘게, 그리고 기쁜 미소를 지었다.
"언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언니가 내 기쁨이야."
비가 그렇게 하는 말에 희는 눈물로 흐릿해진 시선 속에서도 밝게 빛나보이는 비의 웃음을 가슴에 꼭꼭 새기며 속삭였다.
"언니가… 꼭 성공해서 그땐… 언니가 널 위할께."
다짐하듯 속삭이는 희의 말에 비는 여전히 웃음 짓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맑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비는 '응!'하고 대답하고는 자리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는 숟가락을 급하게 집어들고 찌개를 한 술 떠먹었다. 그리고는 크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얼른 앉으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언니가 해주는 요리가 최고 맛있다니까."
귀엽게 칭찬하는 비를, 희는 빙그시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눈에 가득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약속할께. 내가 꼭 성공해서 그때는 내가 너를 위해 일할께. 엄마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14살때부터 줄곧 슬픔, 괴로움 다 짊어지고 나를 위했던 너를 위해, 그땐 내가 위할께. 미안해. 나때문에 중도에 공부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든 너에게 미안해. 그 미안함 다 담아서 너를 위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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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해."
희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비의 영정사진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자신의 모든 손으로 어루만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더렵혀진 것이다. 비의 얼굴을 더럽히는 짓이었다. 자신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니까, 너무도 밝고 멋있던 비를 더럽히는 짓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비를 어루만진다는 것은. 그렇게 잘 알면서도 비의 온기가 너무 느끼고 싶어서 희는 손끝으로나마 비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졌다. 넋을 놓아버린 희의 눈에서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일가 친척이 없는 희와 비. 고아로서 자라서 사회에 나와 생활하다 결혼까지 한 엄마, 아빠. 그렇기에 희와 비. 부모님이 떠난 뒤로 세상에 가족이라곤 둘뿐이었다. 그런데… 희는 유일한 그 가족을 잃은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착하고 예쁜 여동생을 잃은 것이었다. 19살. 죽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나이.
"잔인해."
생활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공부를 포기한 비였다. 말로는 자신은 머리가 나빠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된다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그러니까 희의 꿈이 자신의 꿈이라며 자신의 꿈을 꼭 이뤄달라고 말은 했지만… 그 나이때답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을 게 뻔했다. 일하는 데 불편하다며 짧게 머리를 자르고 편한 옷을 입어야 한다며 여자답고 예쁜 옷은 사본 적도 없는 비였다. 그 나이때 여자아이들답게 예쁘게 입고, 몰려다니며 쇼핑도 하고, 군것질하는 것도 꿈꿔봤을 텐데. 차근차근 비가 하지 못했던 일들,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에만 급급해서… 그리고 꼭 성공해 다 갚겠다는 마음만으로 비의 아픔을 애써 모른 체했던 자신을 되돌려보자 차츰 희의 눈물샘이 반응했다.
"윤 희, 너 진짜 잔인해."
결국… 아무것도 자신은 비에게 해준 게 없었다. 그 흔한 옷 한 벌조차도.
"죽여버리겠어."
희는 손에 들고 있던 비의 영정사진을 제자리에 놓으며 양 주먹을 꽉 쥐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새하얀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얹어놓고 희는 분노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다짐했다. 죽여버리겠노라고. 비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죽여버리겠노라고. 일단, 자신부터 죽여버리겠노라고. 다짐했다. 요조숙녀니 뭐니 하는 이딴 모습 다 갖다버리고, 자신의 꿈도 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겠노라고 희는 다짐했다. 앞으로 희가 할 일은 하나였다. 한때문에 어쩌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있을 비를 위해 마지막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희는 계획했다.
비는 여자임에도 꽤나 좋은 싸움실력과 돈을 잘 받아오는 탓인지 어쩐지는 잘 몰라도 조금씩 점차, 조폭쪽에서 비의 직위를 높여주고 있는 추세였다. 그게 희는 불안해서 그냥 아래서 간단한 일만 하는 게 어떠냐고, 아예 나오는 건 어떠냐고 건의했지만 비는 그럴 때마다 빙긋 웃으며 얼마나 잘해주는 지 아느냐고, 자신이 거느리는 부하들이 자신에게 90도로 인사를 해대며 얼마나 따르는지 아느냐고 자랑해대며 희를 안심시키곤 했다. 하지만, 잘나지면 잘나질수록 시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 법. 비를 시기하던 조폭 조무래기 중 하나가 비를 음모에 몰아넣어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한 것은… 조폭의 보스였다. 희는 다짐했다. 그를 죽이겠노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약해빠진 자신부터 희는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희는 하나하나 계획을 했다. 일단은 여자라는 성별을 하고 있으면 안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비야, 싸움을 잘한다지만 자신은 싸움이라고는 전혀. 그러니, 성별이라도 남자로 바꿔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희는 비의 장례가 모두 치뤄진 뒤에 곧장 마음가짐을 위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아끼던 긴 머리를. 그리고 정보를 수집했다. 비가 들어가 있던 조직과 그 조직과 사이가 돈독한 파까지. 수능을 포기했다. 꿈을 놓았다. 간단하게나마 유도, 태권도 등을 배웠다. 3년. 22살. 그리고 차근차근, 비를 죽게 만든 조직에 대항할 방법을 계획해나갔다. 그것에 들인 시간이 2년. 24살. 그리고 드디어 희는 다시 길어진 머리를 짧게 커트치고 가슴에 압박붕대를 둘러 여자임을 가리고……
현재.
정보를 모아서 알게 된 비가 들어가 있던 조직과 사이가 돈독한 파. 은파 조직 아지트를 찾아와 애걸복걸한 결과. 조폭이 되었다. 비록, 어쩌면 당장에 쫓겨날 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자리에 위치해 있는, 어디가서 조폭이라고 말하기에도 창피스러운 위치에 있긴 하지만.
"비야. 일이 다 끝나고나면… 너에게 갈께."
희는 빙긋 웃음 지으며 자신과 꼭 닮았지만 깊은 속만큼은 자신보다 훨씬 컸던. 그리고 훨씬 어른스러웠던 비를 떠올리며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응시했다.
쾅쾅쾅-
"나, 나가요!"
희가 놀라 몸을 움찔하며 크게 대답하고는 옷매무새를 잘 가다듬었다. 혹여, 여자임이 들통나면 안 되니까. 그 뒤, 희는 후- 하고 깊게 숨을 내쉰 뒤에 마음을 굳게 다잡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겁나지만 용기내어 방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얼굴에 칼자국이 길게 주욱 그어져 보기에도 험악한 떡대가 서서 자신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러다 휙 몸을 돌려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희는 그 뒤를 고개를 살짝 숙이고 숨을 죽인 채 천천히 따랐다. 전등불이 희미해 아침 7시임에도 어두운 복도를 꽤나 오래 거닐었다. 그리고 어디 사무실 앞에 멈춘 칼자국 떡대는 방문을 가볍게 두드린 후, '들어와.'라는 목소리가 들린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떡대에 의해 희가 움찔하고 놀라며 덩달아 허리를 90도로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그에 우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위에서 아래까지 희를 찬찬히 훑어보다 시선을 떼어내고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밖에까지는 어두웠었는데. 그리고 낡은 내부가 조금… 으스스했는데. 그의 사무실만은 다른 세계의 것 같았다. 밝은 불빛과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테이블이며 간단한 가구들.
"나가."
"넵, 알겠습니다!"
우석의 말에 그가 허리를 푹 숙여서 다시 한 번 90도 인사를 한 뒤 방에서 나갔다. 남겨진 희는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 우석 앞에 서있었다. 우석은 뚫어져라 희를 쳐다봤다. 어찌나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희는 온 몸이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첫번째 질문."
갑작스레 질문을 던지는 우석에 의해 희가 놀라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홱 들어올렸다. 그리곤 차가운 그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곤 다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름."
긴장하고 그의 질문을 기다리는데 너무도 쉬운 질문이 나와 희는 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남몰래 내쉬었다.
"윤 희라고 합니다."
"조직에 들어오려고 하는 이유는?"
우석의 질문에 희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이번 것은 좀 어려웠다. 미리 준비를 해둔 말들이 있었지만, 희는 그래도 조심스레 속이 떨려왔다. 우글우글, 아무것도 먹지 않은 뱃속에서 위액이 요동을 쳤다.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희는 두려움에 속이 메슥거려지는 것을 애써 감추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미리 생각해뒀던 대답을 읊조렸다.
"태어날 때부터… 고아로 자라서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죽어라 노력을 해봤지만, 도무지 살아갈만한 세상이 못 된다는 걸 느꼈고 차츰 올바르게 사는 법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럴바엔 차라리… 조폭으로 사는 게 어떨까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윤 희의 답변을 들은 우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몰라도 굉장히 깊은 눈동자로 지그시 윤 희를 숙여진 고개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금빛의 담배 케이스를 꺼내, 한 개비를 뽑아 입에 물곤 다시 입술을 떼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우석이 잔뜩 찡그려진 얼굴로 말을 꺼냈고, 고개를 숙인 자세인 희로서는 우석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마냥 희망에 차서, 이번 질문에만 제대로 답하면 된다는 행복한 웃음을 지은 채 된 희가 그의 마지막 질문을 단단히 마음먹고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 마지막 질문. 이것만 통과하면…….
"성별."
쿵.
"……네?"
당황한 희가 되물으며 천천히 엎드린 자세에서 몸을 일으키고 우석을 쳐다봤다. 그제야 찡그려진 우석의 얼굴을 본 희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술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희는 입술을 꾹 다물음으로서 그것을 감추었다. 그것을 지그시 관찰하듯 노려보던 우석이 여전히 매섭게 일그러진 얼굴로 분명하게 자신의 질문을 들려주었다.
"윤 희. 성별이 뭔지 말해."
02.
들킨건가. 기껏 남장을 했는데도 들킨거야? 빌어먹게 기집애같이 생긴 얼굴도 문젠건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몸뚱이다. 희는 입술을 꽉 깨물며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애써 숨을 가다듬고 희는 긴장하지 않은 척하려 노력하며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평소와 같은 빠르기로 말했다간, 목소리의 떨림을 들켜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남자입니다."
당당하게 말했다. 이쯤이면 꽤나 떨지 않고 분명한 어조로 얘기했다. 조금, 템포가 느린 어조이긴 했지만. 희의 대답을 들은 우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이내 무관심한 표정으로 희에게서 시선을 떼어내며 뚜벅뚜벅 데스크쪽으로 걸어가더니, 위에 얹어져 있는 전화기에 버튼을 하나 꾹 눌렀다. 희는 불안해하는 시선으로 우석에게서 단 한번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는데, 잠시 후 벌컥하고 문이 열리더니 아까 봤던 그 조폭이 달려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인터폰이었던 모양이다. 긴장. 희는 잔뜩 굳은 상태로 우석의 입술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데리고 가."
덜컹. 짧은 그 한마디에, 희는 심장이 쾅쾅거렸다. 어딜 데려가라는 걸까. 혹여, 어디 으슥한 데에 데려가서 콱… 아니, 이런 나쁜 생각말자, 윤 희. 희는 머리에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멀리 떨쳐버리려 노력하며 눈을 부릅 뜨고 우석이 없는 빈 허공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를 잠자코 바라보기엔… 뭐랄까, 강한 위압감같은 게 온 몸을 지배하는 것 같아 고통스러운 느낌때문이었다.
"어디로 말씀이십…"
달려들어온 조폭이 멀뚱멀뚱 서있다가 이내 머쓱해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조심히 물음을 했다. 저도 그게 궁금했는데요. 희는 속으로 말했다. 겉으로 말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석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게 눈에 들어와서 희는 움찔. 조폭 역시도 몸을 크게 움찔하며 몸을 곧게 펴곤 침을 꿀꺽 삼키곤 90도를 허리를 꺾으며 우렁차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알아서… 알아들어라."
우석이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특유의 그 목소리로 조용히 얘기했고, 희는 괜스레 가라앉아있는 그 목소리에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조폭도 마찬가지로 옅게 떠는 게 희의 시야에 박히듯 들어왔다. 그리곤 곧 벌떡 허리를 세우는 조폭.
"네, 알겠습니다. 형님!"
조폭이 버럭 소리쳐 대답하곤 희를 도살장 끌고가는 개마냥 뒷덜미를 움켜쥐곤 우악스럽게 밀쳐가며 방밖으로 끌어냈다. 희는 잔뜩 겁을 먹은 채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고 그냥 질질 조폭에게 끌려 방밖으로 나왔다. 대체 어디를 가란 소리인 거야! 희는 속으론 열심히 버럭버럭 물어댔으나, 차마 역시… 입으론 꺼내지 못했다. 달칵- 문을 부술 기세로 열고 들어올 때완 다르게 아주 조신하게 닫은 조폭은 곧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 희를 쏘아보며 중얼댔다.
"형님이 너 어디로 가라든?"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그의 물음에 희가 퍼득 놀라며 입을 뻐끔대다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을 않고 고개로 의사표현을 하자, 그의 얼굴이 괴기스러울 만큼 무섭게 일그러졌다.
"어디서 애새끼가 싸가지없게 고개로…"
그가 목소리를 괄괄하게, 욕설을 적절하게 섞어가며 말을 꺼내자, 희는 퍼득 정신을 차리곤 얼른 입술을 떼어 목소리를 냈다.
"죄, 죄송해요! 저도 뭐라 들은 게 없, 없어요!"
당황해버린 희는 '남자같이' 말하기를 잊어버렸고, 예전에 쓰던 버릇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조폭이 잡고있던 희의 뒷덜미를 놓아버리며 지그시 희를, 아까보다 더더욱 매서워진 눈길로 노려보았다.
"뭔 놈의 사내새끼 말투가……. 쓰벌. 잘 들어라, 아가야. 여기선 말이다. 말부터가 서열을 보여주는 중요한 거란 말인데, 니 새끼가 방금 쓴 말투는 영 아니거든? 쓰벌. 아가야, 대답을 할 땐 남자답게 더듬거리지 말고 분명하고 큰 목소리로. 그리고 끝은 '다'로 해라. 또, 윗사람이 말하는데 말끊는 버릇은 어디서 배워먹은 쓰레기 버릇이야?! 쓰벌!"
깡패스러운 느낌 물씬. 네, 당신 조폭이시군요. 분명히 느끼게 해주시는 걸쭉한 말투. 습관인 듯 끝엔 말끝마다 '쓰벌'이 붙었다. 희는 귀청이 찢을 기세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말을 확실히 잘 이해했다. 그래, 이렇게 우렁차게 말하면 된다는 거죠. 알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희는 역시나 약간의 비꼬듯한 대답은 속으로 하며 밖으로는 간단명료하고 순종적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답은 네, 알겠습니다. 다!"
"네,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일병처럼 희가 몸을 곧게 펴고 차렷자세를 한 채로 냉큼 대답했고, 그에 이제야 마음에 든 듯 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리곤 그가 뚜벅뚜벅 앞서 걸어갔고, 희는 멀뚱멀뚱 그 자리에 서서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짧게 고민하다가 후다닥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아무 말없이 앞으로 걸어갔고, 희 역시도 말없이 그를 따랐다. 키가 작은 편인 희는 적당한 키를 가진 그의 긴다리를 따라가는 게 조금 버거웠고, 발걸음 당연하게 약간 빠른 걸음걸이여야 했다. 걷는 것만으로도 힘겨워서 희는 자신이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울고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약한 마음이 가슴에서 뭉클뭉클 새어나오려 했다. 그러다, 고개를 휙휙 저으며 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비야, 걱정 마. 언니는… 할 수 있어. 다짐했다. 사람을 죽이겠다는 게 삶의 목표다. 비를 죽게 만든 그를 죽이겠다는 게 삶의 목표. 그런데, 마음이 이따위로 약해선 안 된다. 희는 손톱이 살가죽을 파고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비야, 걱정 마. 언니가… 곧 완벽히 일을 끝마치고 너한테 간다. 다짐했다.
"가운데 가서 서."
"네?"
"아가야, 알아서 알아듣지 못하겠냐! 쓰벌!"
"네, 네!"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놀라 되물음을 던진 것에 또 한 번 혼이 난 희는 놀라 버럭 소리치며 후다닥 시키는 대로, 도착한 허름한 창고의 가운데 가서 섰다. 그런데… 문득, 방금 조폭의 말을 곱씹던 희가 깨달은 듯 푸, 하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몰래 약간의 웃음을 흘렸다. 분명해. 분명, 아까 그의 말을 따라한 것이다. 청 우석. 보스의 오른팔. 같은 대사인데 어쩜 이렇게도 다른 느낌인지. 희는 웃음이 자꾸 나오려 들어서 허벅지를 꼬집으며 웃음을 참아냈다. 그러다, 아래로 숙이고 있는 고개덕에 눈에 금세 들어온 검은 색의 조금 낡은 남자 구두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래서 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따, 더럽게 가스나같이 생겼네."
으아, 더럽게 조폭같이 생겼네. 희는 앞에 떡대 좋은 남자를 보곤 겁먹은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아, 그러고보니 허름한 창고. 설마, 정말 설마했던 대로… 자신을 처리할 생각인건가. 희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휙휙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엔 몇 몇의 검은 정장, 검은 구두를 신은 조폭들이 있었다. 정말인가보다. 희는 이대로 죽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주먹을 꽉 쥐었다. 도망쳐야 해. 희는 주위를 더욱 열심히 둘러봤다. 도망갈 루트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중이었다. 그러는데, 앞에 서있는 떡대가 턱하니 어깨에 손을 얹었다.
"뭐야, 떠냐?"
떡대가 비아냥거리듯 하는 말에 희가 버려진 강아지같은 애처로운 눈동자를 하곤 그를 쳐다봤다. 무서웠다. 희는 오금이 저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굳는다. 그런데, 그 떡대외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희는 더욱 겁이 났다. 자신은 이 떡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거겠지. 희는 더 열심히 운동을 한 뒤에 온 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래도 배운 게 있으니까 써먹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자꾸만 드는 두려운 마음에 희는 몸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실전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싸움이란 게, 배우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정말 형님이 이 놈을 테스트하라 그랬단 말이여? 쫓아뿌리는 게 아니라?"
"그렇다니까! 쓰벌. 빨리 하기나 해. 구경하는 사람 대가리 빠지겠다. 쓰벌."
아까 그 조폭이… 그러니까 줄여서 쓰벌 조폭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테스트? 희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짧게 생각을 했다. 테스트다. 죽이라는 게 아니라. 그 사실에 희는 불쑥 약간의 용기가 생겨났다. 이건 테스트다. 그러니까, 일종의 시험이다. 라고 희는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겁먹지 않도록. 용기가 나도록. 윤 희, 너 비랑 피 섞인 자매야. 니 몸 속 어딘가에도 비처럼 깡이 그득찬 구석이 있을 거야. 그 부분을 건드리는 거야. 희가 눈을 잠시 감고 생각한 뒤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부릅 떠서 떡대를 쳐다보았다.
"얼레, 이제 안 떠네? 게다가 노려보기까지? 이야, 니도 사내새끼는 사내새낀기라 그거냐?"
떡대가 비웃음을 가득 얼굴에 띠우며 말하곤 재밌다는 투로 말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겁을 먹은 표정은 아닌 걸로 봐서 싸움을 하기 위한 거리 확보인 것처럼 보였다. 뒤로 물러선 떡대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은 형님이 인정한 놈이니까 어느 정도 하겄지, 앙? 먼저 덤비란 소리따윈 안 한다, 야. 괜히 나대다 지면 쪽시려서 어쩌냐, 앙?"
떡대가 하는 말에 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싸움을 하게 되는 순간이구나, 윤 희. 희는 몸을 살짝 낮추고 오른 주먹을 앞으로, 왼 주먹을 조금 뒤로 놓고 다리에 힘을 줘서 중심을 받친 후 눈을 똑바로 뜨고 떡대의 행동 하나 하나를 읽어가며 싸움태세를 맞췄다. 그에 떡대로 주먹을 털털 두어번 털곤 꽉 주먹을 쥔 뒤…
"으아아악!"
커다란 기합을 내뱉으며 빠르게 다가서며 주먹을 날려왔다. 희는 싸움태세를 취한 게 무색하게 그만 자세를 흐트러트리며 꽉 쥐었던 주먹을 풀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며…
빠악-
"으메!"
"와우!"
주변에 있던 몇 몇 조폭들이 벌떡 기립을 해선 동시에 박수를 짝 치며 안타까움의 감탄을 내뱉게 만들었다.
"…크, 크흣, 흐, 흐, 흣."
어딘가에선 숨이 넘어갈 듯 말듯한 작은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희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아니, 널부러진 떡대를 보곤 입을 살짝 벌렸다. 아.
"죄, 죄송해요, 아니, 죄송합니다!"
희가 쓰벌이 가르쳐준 대로 우렁찬 목소리로 사과하며 빠르게 후다닥 달려가, 몸을 잔뜩 구부리고 남자의 중요한 부분, 그러니까… 사타구니를 움켜쥔 채로 입에 거품이라도 물 기세로, 눈을 시뻘개져서 '으, 으, 으…'하는 죽는 소리만 내고 있는 떡대의 앞에 쭈그려 앉아선 이건 뭐, 아프지 말라고 쓰다듬어 줄 수도 없어 희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안절부절 못해했다. 떡대가 고개를 파르르 떨며 천천히 그런 희쪽을 쳐다보며 이를 으득 갈았다. 그에 희는 눈을 질끈 감고 손을 싹싹 빌어가며 미친듯이 빌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니, 니… 니는… 사내새끼가…아니다, 마. 같은…사내새끼가… 이리… 치, 치…사할 리…없다."
죽어가면서도 꼭 말해야 겠는지 떡대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충격으로 더듬거리기까지 하며 말했다. 그 말덕분에 희는 남장을 위해 필요할, 남자에 대한 정보를 하나 더 얻을 수 있었다. 남자라면 남자의 거기는 예의상 건드리면 안 된다. 순진하디 순진한 희는 절대 이 정보가 그리 확증된 정보가 아니란 생각따윈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희는 저 새롭게 배운 정보를 익혔으므로 앞으로 싸울 떈 남자의 사타구니를 걷어차지 않을 것이다.
"킥킥킥……. 아, 존나 웃겨. 아, 진짜. 크크크. 됐으니까 일어나."
그런 둘을 마냥 구경하고만 있던 주변의 조폭들중 연신 웃느라 바쁘던 놈이 웃음보라도 터진 건지 아직도 웃어대며 어느샌가 다가왔다. 그리곤 쭈그려 앉아있는 희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키곤 질질 끌고가기 시작했다. 질질질. 미안해서 어찌할 바 몰라하는 표정으로 희는 순종적이게 그에게 끌려가며 아직도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떡대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웃음보 터진 조폭놈은 셔터가 반쯤 열린 출구에, 희를 끈 채 당도했고, 셔터앞에 서있던 쓰벌 조폭에게 말했다.
"쓰벌아. 뭐하고 있냐? 가서 퍼득 형님한테 보고 안 하냐?"
"네? 네, 알겠습니다. 형님!"
그의 말에 쓰벌이라고 불린 쓰벌 조폭이… 별명이 쓰벌인가보다. 어찌됐든, 쓰벌이 자신이 희에게 가르쳐준 그 우렁찬 대답으로 대답을 하곤 후다닥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뒤를 느긋하게 웃음 터진 조폭놈도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떡대에게 미안한 마음에, 떡대만 신경 쓰느라고 질질 끌려가면서도 한 번을 뒤를 안 돌아본 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카앙- 꽤나 큰 소리를 내며 셔터와 머리를 부딪혔다.
"앗!"
희가 아파하며 머리를 움켜쥐고 그제야 떡대한테서 시선을 떼어내고 자신을 질질 끌던 조폭을 쳐다보았다. 이제 겨우 웃음을 멈췄나 싶었던 조폭놈은 다시 푸,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 사람… 희는 눈을 끔뻑끔뻑대며 그를 쳐다보았다. 조폭같지 않았다. 무섭지 않았다. 무섭게 생기지 않았다. 마냥 예쁜 웃음이었다. 아이같은 해맑은 웃음이었다. 조폭이라기엔… 오히려, 호스트바에서 일하면 어울릴 듯한… 아, 아니 그러니까 굉장히 거리낌없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그런 사람좋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게다가, 나이는 많이 먹어봐야 20대 후반정도 밖으론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방금 딱 봐도 더 나이 먹어보이는 쓰벌 조폭한테 반말을 썼으며, 쓰벌은 그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즉, 이 사람은… 쓰벌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게 된다. 희는 놀란 토끼눈을 하곤 마지막 그에 대한 판단에 그제야 조금 몸을 움츠리며 그를 무서워했다.
"아, 이거… 골때리는 놈 하나 들어왔네."
한참을 말없이 웃어대면서 희를 보고만 있던 그가 재밌다는 투로 중얼거리며 다시 희를 끌었다. 희가 퍼득 정신을 차리고 이번엔 셔터에 부딪히지 않게 몸을 굽혀서 안전히 그에게 끌려갔다.
"어, 어디로 데려가는 거, 거예요?"
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역시나 겁을 먹으면 자꾸만 까먹는다. '남자같이' 말하기.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고, 이제 와서 갑자기 '가는 겁니까?'라고 말하기엔 늦었다 싶어서 희가 고개만 살짝 숙인 채 두근두근댄 채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 방."
그의 대답에 희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휙 고개를 들어올려 그를 쳐다보았다.
03.
"내 방."
그의 대답에 희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휙 고개를 들어올려 그를 쳐다보았다.
"바, 방은 왜 데려가시는 겁니까?"
희가 조심히 물었고, 희의 물음에 그는 빙긋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조폭같지 않은 미소다.
"맘에 들었으니까. 너는 이제부터 내 소속이다."
"소, 소속이요?"
"아아. 처음이라 모르겠군. 가면서 얘기하자. 니 발로 제대로 걸어라. 질질 끄는 것도 힘드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배운대로 우렁차게. 옳지, 착하다. 착한 희는 배운대로 참 잘합니다. 희의 여직 작은 목소리와는 상반되게 우렁찬 대답에 그가 킥, 하고 또 웃음을 흘리다가 쯧, 혀를 한 번 차면서 희를 놓고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쓰벌이 가르쳤지? 그렇게까지 오버해서 대답 안 해도 돼. 그냥 분명하게 들릴 정도로만 네. 하고 대답하면 된다."
"아…네!"
"그래."
역시나 배운대로 잘하죠. 곧장 가르쳐준 대로 대답을 바꾼 희를 만족스러운 듯 그가 힐끗 쳐다보곤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천천히 희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대충 영화나 그런 걸 봐서 알겠지만은, 같은 파여도 소속이 달라. 큰형님 아래에 작은형님 두 분이 계시고, 그 아래로 수많은 조무래기들이 있으니까. 참고로, 우리는 오른팔 소속이다. 우석형님 아래니까. 그리고 우석형님도 팔이 두 개니까 왼 팔, 오른팔 있지 않겠냐? 내가 형님 오른 팔이다."
조용히 희는 고개를 옅게 끄덕이며 그가 주입시켜주는 정보를 쑥쑥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 뭐, 그런 거에 자주 등장해서 대충 그릴 수 있는 내용이니까.
"그리고 형님이 너를 쓰벌이한테 맡겼으니까 내 소속쪽으로 보내시려던 뜻이니까, 너는 내 마음에 들었으므로 테스트 통과. 그러니까, 확실하게 너는 이제부터 조폭이 된 거고, 더 정확히는 내 소속이 된거다. 알아들었냐?"
"네."
희가 얼른 대답을 했다. 그가 서글서글한 인상이어도 어쨌든 조폭이고, 게다가 생긴 거에 비해, 그리고 나이에 비해 꽤나 높은 위치니까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무섭게 화를 낼까봐 겁나서. 그러고보니 이들의 작은 형님, 조폭의 오른 팔인 청 우석도 생긴 거, 나이에 비해 높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또 입을 떼어 말을 계속했다.
"얘기하는 건데, 쓰잘데기 없는 질투나 하는 쫌생이 왼 팔새끼하곤 사이가 나빠서, 괜히 말도 안 되는 이유 갖다붙여서 위험에 빠트리기도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하기도 하니까, 바깥 파들 신경쓰는 거랑 동시에 왼 팔새끼들도 경계해라, 알겠냐?"
"네."
희의 대답을 들은 그는 빙긋 또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정말 정말 조폭같지 않은 미소다. 달칵- 어느샌가 도착한 방. 방문을 열고 그가 먼저 들어섰고, 아까 우석의 방에 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의 방이 희의 시야에 들어왔다. 희는 그의 뒤를 따라서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그가 소파로 가선 편안한 자세로 앉았고, 멀뚱멀뚱 몸을 곧게 세우고 서있는 희에게…
"뭐해, 앉아."
스스럼없이 반대편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조폭답지 않은 친절함까지. 확실히 그는 조폭과는 거리감이 있어보이는 인물이었다. 희가 주춤주춤 걸어와 그의 반대편 의자에 앉자, 그가 입술을 열었다.
"앞으로 니 직속 형님이 될 분 이름은 마 현권이다, 알겠냐?"
이 사람은 알겠냐가 습관인 모양이다. 희는 또 다시 그리 쓸데없는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짧게 '네.'하고 대답했다. 그러다… 마 현권. 성이 흔하지 않은 성이네. 희는 또 또 쓸데없는 정보를 머릿속에 넣었다.
"너는 이름이 뭐냐?"
그가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고, 희는 잠시 멍하니 있었기에 퍼득 몸을 움츠리며 정신을 차린 뒤 대답했다.
"윤 희입니다."
"외자?"
"네, 외자입니다."
"그럼 성이 윤씨군."
"네."
"그럼 별명은?"
"네, 네? 별명은 왜 물어봐요?"
아, 또 깜빡했다. 희는 아차, 하며 깨달았으나 이미 또 끝까지 말을 내뱉은 뒤라 고칠 수도 없었다. 남자라고 치기엔 부드러운 말투의 희를, 이번엔 현권도 느꼈는지 입을 다물고 지그시 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미간을 찡그렸다. 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들켰나. 아니면, 또 혼나나. 희는 안절부절하며 그의 닫힌 입술만 바라봤다. 잠시 뒤, 그가 표정을 풀며 입술을 열었다.
"요조."
"네, 네?"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희가 불안한 마음에, 그의 생각을 분명히 알아야겠단 생각에 되물음을 던졌고, 희의 되물음에 현권은 빙긋 웃어보이며 설명했다.
"이제부터 니 별명이다. 이 곳에선 이름 잘 안 불러. 좋은 일 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람 별명 지어 부르는 걸 좋아해서."
"네?"
"이제부터 니 별명은 요조라고."
귀엽다. 순간, 희는 귀엽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순간, 잊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이래뵈도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조폭이라는 걸. 퍼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휘휘 저었을 때야, 다시 상황이 분명해졌다. 이 사람이 너무 서글서글해서, 조폭같지 않아서 잠시 잊었다. 이 곳은 조폭들의 아지트이고, 자신은 오늘부로 정말 조폭이 되었으며, 눈앞에 있는 사람은 이래뵈도 조폭이라는 걸.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는 걸. 자신은 이 곳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마음을 단 한순간도 놓아선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걸. 그런 생각에 희의 얼굴은 눈에 띄게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왜, 맘에 안 들어?"
그걸 본 현권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마 희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의 물음에 희는 퍼득 자신만의 생각에서 깨어나며 얼른 고개까지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맘에 듭니다."
그러다, 문득 왜 '요조'인지가 궁금해졌다. 요조라……. 말끝마다 '요'를 붙이는 기집애같은 말투여서 그런가. 희는 어리둥절해하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요조입니까?"
혹여, 토를 단다고 그가 화라도 낼까봐-일단 조폭이니까 아무리 서글서글해보여도 성격이 더러울테니까-조심히 물었다. 허나, 희의 걱정과는 달리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방싯방싯 아이처럼 웃으며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기집애같으니까."
움찔.
"그런데 기집애라고 부르긴 싫어서. 왠지 상스럽잖아. 말투도 그렇고 해서 생각한 게 요조숙년데, 요조숙녀는 너무 길어. 그래서 요조."
친절하게 좌르륵 별명을 지어낸 이유를 설명해주는 현권을, 희는 조금 멍청한 얼굴을 하곤 응시했다. 확실히 이 사람은… 조폭같지 않아. 그나저나…
"아까… 형님은…"
희가 조심조심 불쑥 생겨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런 희가 질문하려는 게 뭔지 눈치 챈 현권은 방싯방싯 웃는 얼굴로 언제 끝날까 싶을 정도로 느릿하게 이어지는 희의 말꼬리를 잘라먹고 대답했다.
"아, 그 놈들? 너 데리고 놈은 쓰벌이니까, 쓰벌형님이라고 하면 돼. 그리고 너랑 붙었던 놈은 떡대다. 그리고 내 옆에 있던 홀쭉해가지고 키 커서 흐느적거릴 것처럼 생긴 놈 있지? 그 놈은 홀쭉이야."
아니, 별명들이 궁금했던 게 아니라요. 기집애, 라는 단어는 상스러워서 붙여주기 그랬다는 분이 왜 '쓰벌'이라는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별명으로 붙여줬는가를 묻고 싶었습니다. 역시나 이 말은 속으로. 그걸 알 리 없는 현권은 다시 한 번 곱씹어보자, 역시 자신이 지어준 별명들은 완벽하고 휘양찬란하다고 느꼈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그나저나… 요조."
"네."
그의 부름엔 움찔하지 않았다. 그는… 조폭이라고 아무리 자각하려 들어도 자꾸만 잊어먹는다. 그래서 희는 그한테만큼은 겁내지 않고 잘도 대답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매섭게 굳은 그의 얼굴은 방싯방싯 웃던 얼굴이 기억 안 날만큼 싸늘해서, 희는 그제야 다시 그가 조폭이라는 걸 자각했다. 잔뜩 긴장하고 희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세웠다.
"대답은 더듬지 말고 분명하게 한 번만 할 것. 질문을 할 땐 우물쭈물대면서 끌지말고 확실하고 빠르게 할 것. 오늘은 처음이니까 넘어가나, 지금부턴 봐주는 것 따윈 없어. 두 사항을 지키지 않을 시엔… 맞아가면서 익힐 각오해야 될 거다."
부르르. 귀가 어는 것 같다. 냉랭하다. 목소리가 굉장히 차갑다. 그래, 이 사람은 조폭이다.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때리고 어쩌면 남몰래 사람을 살해했을 지도 모를 그런 사람이다. 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더듬지 않도록 심호흡을 조용히 한 뒤에 대답했다.
"네."
"좋아."
희의 대답을 들은 현권이 그제야 딱딱하게 굳혔던 얼굴을 풀며, 아까까지 짓고 있던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로 돌아왔다. 역시…
"형님도 별명이 있으십니까?"
이 사람은 조폭같지 않다. 방금전까지 무서웠음에도 불구하고 원래대로 돌아온 현권을 보고 다시 마음이 사르륵 녹아 편안해진 희는 또 다시 그러한 생각을 했다.
"있어."
희의 물음에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흔쾌히 대답해줄 요령인지 말을 계속했다.
"재수 없는 새끼."
"네?"
"아, 하나 더 추가하는데 되물음도 하면 안 돼."
"네. 그나저나 별명이 왜 그런… 겁니까?"
여태까지 들었던 별명들과는 너무도 정감 가지 않는, 그냥 욕같기만 한 별명에 희가 물었다. 그리고 희의 물음에 현권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목소리톤조차 흐트러지지 않고선 대답했다.
"나를 싫어하는 새끼들이 지어준 별명이라. 그리고 딱 맞는 별명이라고 생각해. 나를 싫어하는 새끼들 기준에선… 실실 쪼개면서 할 말 다하고, 할 짓 다 하는 거 참 재수없을 테니까. 물론, 나를 싫어하는 새끼들 외엔 안 써."
그의 말에 희는 수긍하면서도 수긍할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불리기엔 너무 예쁜 웃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희는 티내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그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그때, 벌컥-하고 문이 열리며 누군가 후다닥 뛰어들어왔다. 쓰벌이었다.
"형님! 큰형님이… 저 놈, 데려와보랍니다."
움찔. 또 그를 보러 가야하는 건가. 희는 벌써부터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뿜어져나오는 냉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아, 이 쓰벌새끼가……. 내가 들어올 땐 문 두드리고 들어오라고 몇 번 가르쳤냐? 대가리 갈리고 싶냐?"
"죄송합니다, 형님!"
움찔. 냉기. 희는 힐끗 시선을 현권에게로 돌렸다. 싸늘하게 식은 얼굴. 그도 만만치 않은 냉기를 가졌다. 그러나, 금세 허리를 90도를 꺾어가며 잘못을 시인하는 쓰벌을 보자, 현권은 금세 표정을 풀었다. 목소리도 다시 그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한 번만 더 잊어봐라. 뇌가 필요없는 걸로 간주하고 대가리에 칼 꽂는다, 정말."
"네, 알겠습니다. 형님!"
알긴 뭘 알아! 저런 말에도 그렇게 우렁차게 알았다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희는 인상을 괴기스레 일그러트리며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나긋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은 무시무시한 대사에 희는 질려버렸다. 익숙치 않은 말들. 요조숙녀처럼 살던 희에겐 생소한 험한 말들.
"그리고 이 놈은 이제부터 요조다. 그렇게 불러라."
"네, 알겠습니다. 형님!"
쓰벌이 넙죽 대답하며 숙였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내 쪽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뭐하냐, 요조. 안 나오냐?"
퉁명스럽긴 했지만, 처음처럼 남을 대하는 것 같은 그런 음성은 아니었다. 왠지… 친구를 대하는 듯한 투랄까. 희는 쓰벌의 목소리가 그렇게 들려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조폭으로서 인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좋아, 이제 제대로 시작이야. 희는 뜻대로 일이 되가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좋았다, 씁쓸하게.
"아닙니다. 나갑니다."
희가 얼른 대답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걸어갔다. 그러자, 그가 희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현권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90도 인사. 덩달아, 희도 따라서 90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는 그를 얼른 따라갔다.
-
"싸움. 못하냐?"
쓰벌이 나가고 홀로 남은 희는 우석의 물음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목소리는 역시 무섭다. 냉기가 풀풀 날리는 나지막한 그 목소리란. 희는 숨을 대충 가다듬고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다 한숨처럼 대답했다.
"네, 못합니다."
희는 대답을 하며 힐끗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이렇다할 표정이 없었다. 아니, 원래부터 이렇다할 표정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어찌됐든 무표정하다 못해 무미건조하기까지 한 얼굴을 하고 가만히 훑어보듯 희의 얼굴을 보던 우석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맞추어오며 말했다.
"근데 마 현권놈이… 너를 인정했다라……."
우석이 생각을 입으로 작게 읊조리다가, 생각을 하는 듯 턱주가리를 손으로 한 번 쓰윽 훑곤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손가락을 희에게 까닥여 보였다. 가까이 오란 의미였다. 희가 주춤대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소파에 앉은 채로 그녀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위치까지 올 때까지 손가락을 까닥까닥댔다. 그리고 손을 뻗으면 다를 거리쯤이 되었을 때서야 드디어 거리가 마음에 들은 우석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던 것을 멈췄다. 희 역시도 다가서던 걸음을 멈췄다.
슉-
"빠른 편이군."
우석은 허공에 박힌 자신의 주먹을 가만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맞는다, 피해야 한다 등의 생각을 하기도 전에 희는 절로 몸이 먼저 반응하고 그의 주먹을 옆으로 비켜서서 피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날아옴을 짐작케 하는 소리였다. 맞았으면 굉장히 아팠겠지. 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운동을 한 덕에 피하긴 했으나, 갑자기 주먹을 날리는 바람에 적잖이 놀란 희였다. 반면에, 우석은 자신의 주먹을 피한 희를 의외라는 시선으로 힐끗 눈만 움직여 쳐다봤다.
"나가."
우석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음을 하려던 희는,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 아까… 쓰벌이 되물음을 했을 때 우석은 굉장히 무시무시한 표정을 했던 것을 떠올려낸 것이었다. 힐끔, 그러는 짧은 사이에 희는 우석의 손을 훑어봤다. 커다란 손이었다. 딱 보기에도 적당히 근육이 잡혀보이는 우석의 손은 크고 두꺼운 편의 투박한 손이었다. 남자답지만 은근히 곱상하게 생긴 편인 얼굴과는 조금… 이질적인 느낌의. 딱 보기에도 강한 힘이 발휘 되기 좋게 생긴 손이었다. 멍하니 그의 손을 쳐다보던 희는 퍼득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인사한 후 밖으로 나왔다. 넌 받아 줄 수 없으니 나가란 말인 지, 아님 그냥 방밖으로 나가란 소린 지 알 수가 없어 그 두가지를 계속해서 고민하며 희는 밖으로 나왔다.
"요조. 일하러 가자."
하지만, 그 고민은 밖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던 쓰벌을 보고나서 딱 접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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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앞으로 요조숙녀 조폭되기 지켜봐주세요!
첫댓글 재밌어요~ 희가 의외로 조폭 일에 잘 맞았음 좋겠네요. 변호사가 되지 못한 건 아쉬워요.ㅋㅋㅋ
첫 꼬리말을 장식해주셨네요!ㅎㅎㅎㅎㅎ 첫 편에 첫 꼬리말이 사실 뭔가 좀 쑥쓰럽고 떨리고ㅋㅋㅋㅋㅋ왠지 모르게....뭐랄까. 그런 기분이잖아요. 저만 그런가요? 괜히 아무 꼬리말도 없는 데에는 무어라 달기가 머뭇거려지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HA EUN님ㅠㅠㅠ고마우신 분♥ 희가 앞으로 조폭 일에 잘 적응할 수 있나 지켜봐주시고요! 변호사....ㅠㅠㅋ네, 사실 변호사인 희의 모습도 작가는 내내 소설 쓰면서 상상했습니다. 변호사가 되서 복수를 하는 것도 좋았을 텐데...하면서.//HA EUN님 愛♥
오, 다음편 기대할게요!
안녕하세요, 발롱님!ㅋㅋㅋㅋㅋㅋ네, 기대하신다는 그 말씀. 약간의 부담감과 함께 책임감을 부여주십니다.ㅠㅠㅠㅠㅎㅎㅎ!! 이렇게 꼬리말 남겨주셔서 힘도 주시고! 책임감 주는 말씀도 해주시고!ㅋㅋㅋㅋㅋㅋ앞으로도 계-속 관심병인 작가를 겨..격...거ㅕㄱ...격하게 사...사라..ㅇ....격하게 격려해주십시오!//발롱님 愛♡
ㅎㅎㅎ 재미있어요>< 현권이 귀여워요 ㅎㅎㅎ
ㅠㅠㅠ우와와우오앙!ㅋㅋㅋㅋㅋㅋㅋㅋ따뜻한쪼꼬렛님은 홍보 때부터 유일하게 꼬리말을 남겨주셔서 힘을 주시더니. 이렇게 깜찍한 말투로 첫 편부터 저를 반겨주시는군요! 홍보 하는 곳에 꼬리말엔 정말 딱 업쪽을 원하는 요조.만 써주셔서 시크하신 분이신가보다 했는데 귀여우신 분이셨네요!ㅋㅋㅋㅋㅋ현권이의 귀여움은 새발의 피.//따뜻한쪼꼬렛님 愛♥
재밌네요ㅋ 다음편 기대할께요>ㅁ<ㅎㅎ
넵!!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닉네임이 왠지 모르게 사극에 등장하는 이름같네요.ㅋㅋㅋ예뻐요. 비령이라. 남자이름 같으면서도 류씨라서 그런지 부드러운 느낌이 드네요. 나중에 류 비령님 닉네임으로 주인공 이름 붙여야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허..허락해주시려나.ㅎㅎㅎㅎㅎ!! 허락해주신다면 여자가 좋으신가요, 남자가 좋으신가요!//류 비령님 愛♡
재밌어요... 벌써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히히... 요조..희의 변화가 기대되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안녕핫에요, qweeny님!ㅎㅎㅎㅎ~앞으로도 요조 많이 사랑해주시구용ㅎㅎㅎㅎ처음엔 어느정도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을 거예요ㅠㅠㅠ뭔가 비중 분배를 잘못한 탓엨ㅋㅋㅋ참으시면 복이 있으실 겁니다♥ 희의 변화를 기대해주시고용! 저는 오늘 7-9를 쏘고 가겠습니다!//qweeny님 愛♥
ㅎㅎ 잘봤습니다
ㅎㅎㅎㅎ웃음표시 보고 괜히 흐뭇해졌어욬ㅋㅋㅋㅋ!! 꼬리말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어주신 것 같아서 더 감사하구요! 꼬리말 남겨주셔서 업뎃쪽지 보내드렸습니다.^^ㅎㅎㅎㅎ//hanyun님 愛♡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우ㅘ아아아아와!!ㅎㅎㅎㅎㅎㅎ첫 만남부터 이렇게 귀여우신 말투로 시작해주신 분은 처음인 듯해요!!ㅎㅎㅎ휴ㅠㅠㅠㅠ게다가 제 걱정까지 이렇게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네, 쓸 때 좀 앓는 편이에욬ㅋㅋㅋㅋ쉽게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서ㅠㅠㅠ이렇게 쓰면 너무 조폭 옹호 소설처럼 될 것 같고, 또 이렇게 쓰면 너무 과한 느낌이 나고....ㅋㅋㅋㅋㅋㅋ엄청 고민한답니다. 그럴 때마다.........그래 픽션이니까!! 하고 이겨내는 편이에욯ㅎㅎㅎ~ 제 걱정해주셔서 신나가지고 말이 길어졌네요!! ㅎㅎㅎㅎ네, 화이팅하겠습니다!! 열심히 쓸게요!! 연재가 늦는 경우는 있어도 연중은 안하니까 걱정하지 않으
셔도 돼요!!^^ 그러니 완결까지 함께 해주세요, 꼭이요 꼭!ㅎㅎㅎㅎㅎ//불량식품님 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