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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조 숙 녀 조 폭 되 기 ◈
Graceful lady become gangster
Written by.땡깡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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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쨍그랑- 쾅쾅- 우당탕- 깨어지고, 부서지고, 넘어지고……. 희는 멍청한 표정을 하고 눈앞에 생방송으로 펼쳐지고 있는, 브라운관으로만 보던, 스크린으로만 보던 장면을 연관이 없는 제 3자처럼 가만히 구경했다.
"꺅.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그, 금방…윽."
"어이쿠! 이 사람이 무슨 죄가 있다고 때리세요!"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양 손을 싹싹 비비며 조폭 중 하나의 팔에 매달려 무엇을 잘못을 얼마나 크게 했다고 정신없이 잘못했단 말을 하며 비는 여자를, 조폭은 냉정하게 확 밀치더니 힘없이 쓰러진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고… 다른 조폭과 실갱이를 벌이던 그녀의 남편이 달려와 넘어진 그녀를 일으키며 조폭에게 대들듯 말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폭은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리며 남자의 멱살을 잡아일으켰다.
"너같은 놈 아내인 게 죄야, 알아?"
퍼억-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라고 치기엔 너무도 둔탁하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그의 주먹과 그 남자의 볼이 부딪혔다. 남자는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고, 콜록대며 그는 피를 토해냈다. 피에 섞이어 이빨이 하나 툭 튀어나왔다. 끔찍한 그 장면에, 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하필이면 집안에 있는 것들을 부숴대고 있는 쓰벌과 눈이 마주쳤다. 희의 끔찍해하는 티가 팍팍 나는 표정을 본 쓰벌은 인상을 찡그리고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에, 희가 움찔하며 허둥대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러져서 홀로 나뒹굴고 있는 식탁 다리를 하나 집어들곤 휙휙 주위를 둘러보다가 선반위를 쓸어버리듯 식탁 다리를 휘둘렀다. 쨍그랑. 캉. 쨍그랑. 캉캉. 날카로운 소리들을 내며, 또는 약간 반 둔탁한 소리를 내며 선반 위에 유리종류를 되어있는 것들이 죄다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신발을 신고 있었으므로… 위험할 일은 없었다. 힐끗, 쓰벌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가오고 있던 쓰벌이 걸음을 멈추고 이내 관심없다는 듯 시선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와 여자에게로 향했다.
"아저씨. 이러면 안 돼. 쓰벌……."
쓰벌이 남자의 앞에 쭈그리고 앉으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싱긋싱긋 웃으며 말했다. 희는 그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손에 쥐고 있는 식탁 다리를 더 꽉 쥐었다. 때리고 싶다. 이걸로… 눈앞에 그들을 후려치고 싶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잖아, 이건.
"이제와서 못 하겠다니? 아직 아저씨 우리랑 계약한 기간이 일년이나 남았어. 쓰벌. 돈 꿔줬잖아. 꿔준 돈값을 해야지, 아저씨. 쓰벌."
쓰벌, 쓰벌. 듣다보니 나름 정감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역겨웠다. 쓰벌. 그 말 한마디가 들려올 때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리며 몸안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 독기들이 눈에 몰려서, 희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다. 식탁다리를 쥐지 않은 손에선… 피가 흘렀다. 너무 꽉 쥐고 있는 바람에, 그리 길지도 않은 손톱이 살갗을 찢어버렸기에.
"한 번만 더 도망치기만 해. 쓰벌. 그땐… 경고로 안 끝나. 병원에서 회복하고 있는 아저씨 아들놈… 숨끊어질 줄 알아. 쓰벌."
아들. 희는 힐끗 자신이 방금 깨부쉈던 것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중엔… 해맑게 웃고있는, 하지만 딱 보기에도 창백한 얼굴을 한, 환자복을 입고 있는 해봐야 이제 중학생이 갓 되었을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희는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그 사진을 들고 쳐다보다가 사진을 살포시 다시 내려놓으며 다시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쓰러져 아픔에 콜록대고 있는 남자의 양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공포로라기보단… 이길 수 없는 적에 대한 강한 분노와 좌절감처럼 보였다. 여자는 끅끅거리며 울고 있었다. 그들에겐 죄가 없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사랑하는 아들의 병을 고치고 싶었을 뿐이다. 그걸 고치고싶어… 조폭들의 비밀스러운 물건-무슨 물건인 지는 알 수 없었다.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 당연했다. 자신같은 밑바닥 조무래기따위한테 그런 중요한 거에 대해 이야기 할 리 없었다. 대충 어림짐작은 하지만.-을 전달하는 일을 하는 걸 계약으로 돈을 받은 것뿐인데……. 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따끔.
"아."
희는 그제야 자신의 손에서 피가 나는 것을 알았다. 책을 읽다가 손을 너무 꽉 쥐어, 손톱이 살갗을 찢어냈다는 구절이 나오면 항상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피식거리곤 했는데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거. 희는 피가 나는 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그들에게로. 쓰벌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게 보였다. 다른 조폭들이 하나, 둘 집밖을 나가는 게 보였다. 희도 주춤. 주춤. 발을 움직여 그들의 뒤를 따랐다. 여전히 시선은… 두 남녀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움찔. 그들을 바라보던 희는 몸을 움츠리며 획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밖으로 나가고 있는 자신을, 천천히 고개를 든 그가 노려보는 눈을 보아서. 시뻘겋게 충혈된 그 눈으로, 입에선 피를 흘리는 채로 살의가 가득한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봐서.
-
밤이 되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운 희는 하얀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며 닫힌 창문 틈새로 어렴풋이 새어들어오는 바깥소리를 들었다. 자신은 아직 맨 밑바닥쪽의 조폭이었으므로 이러한 '자잘한 일'을 하기로 결정난 듯했다. 자잘한 일이란 건, 희가 정한 단어가 아니었다. 조폭들이 부르는 말이 그랬다. 사람의 보금자리를 가차없이 뒤엎고, 사람을 걷어차고 그들의 뼈나 이를 부러트리는 그런 일을… 조폭들은 자잘한 일이라고 칭했다. 희는 치가 떨렸다. 자꾸만 양 주먹이 꽉 쥐어졌다. 욱씬거렸다. 찢겨진 손이 욱씬거렸다. 아팠다. 눈물이 차올랐다. 희는 파르르 속눈썹을 떨며 눈을 감았다. 비는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려고 이런 일을 매일같이 한 건가. 매일같이 다치고 아팠을까.
"으악!"
눈을 감았던 희는 괴기스런 비명을 지르며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며 눈을 번쩍 떴다. 가장 처음 찾아갔던 집의 그 남자의 눈. 시뻘겋게 충혈된 눈. 자신을 살기를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던 눈이 떠올라서였다. 불현듯 떠오른 그 눈은 눈을 번쩍 떴음에도 불구하고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희는 부르르 떨며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숙였다. 바들바들, 겨울철에 버려진 강아지마냥 희는 작은 몸뚱아리를 떨었다.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희는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하게 용서를 빌었다. 달칵. 움찔. 그러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희는 번쩍 고개를 들어올려 문쪽을 쳐다봤다. 시야에 사람의 모습이 들어오자, 허공에 맴돌던 빨간 눈이 사라졌다. 그러나, 곧 희는 치료도 하지 않은, 찢어진 그대로 상태인 손이 더 찢어질 행동을 했다. 주먹을 꽉 쥐는.
"둘러라. 쓰벌."
그렇게 말하며 쓰벌은 손에 들고있던 무언가를 휙 희에게로 던졌다. 희는 흠칫하며 침대에 떨어진 그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가야, 덧나면 주먹 쓰기 안 좋아서 골치 아프다. 쓰벌. 그리고 다친 손으론 주먹 휘두르기 안 좋으니까 그거 둘러라. 쓰벌."
말은 단순히 일을 위한 것뿐인 듯이 했지만, 걱정하는 빛이 서린 눈동자를 봐선 그는 희를 걱정해주는 것이었다. 동료로서. 희는 그걸 느꼈음에도 쓰벌이 증오스러워서, 휙 재빨리 쓰벌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더 바라보고 있다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쓰벌을 살기등등한 눈으로 노려볼 것 같아서였다.
"감사합니다."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으나, 희는 했다. 그게 윗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배웠으니까. 그리고 그는 현재 자신의 윗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은 지금… 그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둔갑한 상태니까. 희의 감사 인사를 들은 쓰벌은 빙긋 여태 지어본 적 없는 악의없는 미소를 지은 뒤, 희의 방을 나갔다. 그를 쳐다보고 있지 않은 희는 볼 수 없었지만. 희는 멀뚱멀뚱 침대 위에 얹어진 붕대와 연고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것으로 손을 뻗었다. 그가 준 것 따위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빨리 끝났음 좋겠다, 비야. 너무 힘들다. 이거… 정말 힘들어."
희가 입술을 꽉 깨물며 차오르는 울음을 참아내곤 연고를 손에 골고루 바른 뒤 붕대를 풀어, 손에 둘둘 말기 시작했다. 비가 다쳐올 때마다 자주 둘러줘봤기에 능숙하게 멜 수 있었다. 양은 많이 필요없었다. 단지, 주먹을 쓸 때 상처를 건드려서 불편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르는 거였으니까. 붕대를 모두 두른 희는 붕대를 대충 침대옆 스탠드에 얹어놓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오늘 잠자기는… 그른 것 같다. 눈을 감으면 그 눈이 자꾸 떠오를 것 같았으니까.
-
"아, 너는 오늘 안 와도 돼. 현권형님이 부르신다, 가봐. 쓰벌."
"네, 알겠습니다. 형님!"
벌써 조폭 일을 한 지 삼일이 흘렀다. 제법 우렁차게 대답하기가 익숙해진 희가 쓰벌이 만족할 만큼 우렁차게 대답한 후, 현권의 방쪽으로 향했다. 현권은 짧게 '네.'라고 대답만 하면 된다고 했으나, 쓰벌에겐 그렇게 하면 쓰벌이 화를 냈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문앞에 도착한 희는 옷매무새를 한 번 가다듬고 똑똑 문을 두드렸다. 이건 떡대가 가르쳐 준 거였다. 형님을 뵐 떄는 항상 바른 몸가짐으로. 빌어먹을 쓰레기들주제에 별난 예의도 다 차려. 희는 속으로 그들을 비아냥댔다.
"들어와."
방안에서 그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붉은색의 와이셔츠의 하얀 정장을 차려입은 현권은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색감들이 너무 강렬해서… 그가 아니면 소화 못했을 옷이라고 생각하며 희는 그를 슬쩍 훑어봤다. 그는 아직… 호감이었다. 그가 직접적으로 조폭다운 행동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역시 이 사람도 똑같은 조폭이지만. 희는 자조적인 미소가 지어지려는 입가를 애써 정돈했다.
"작은형님이 너, 싸움 좀 가르치라고 하더라."
희는 대답없이 현권의 말을 들었다. 대답이 필요한 말이 아니었기에 현권도 태클을 걸진 않았다. 현권은 자리에서 일어나, 희쪽으로 다가왔다.
"가자."
-
현권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테스트를 하기 위해 왔던 허름한 창고였다. 뿌연 먼지가 옅은 조명아래 흩날리는 게 뻔히 보이는 창고. 희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반 내려진 셔터를, 허리를 굽히고 통과했다. 들어서자 안에는 떡대가 있었다. 그 때 일로 자신을 미워할 줄 알았던 떡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쿨하게 그 일에 대해선 단 한번도 거론하지 않은 채 살갑게 그녀를 대해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좋은 건 아니었다. 그 역시도 같이… 그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거긴- 안 돼."
현권의 목소리에, 떡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던 희는 굽혔던 허리를 피며 현권쪽을 쳐다보았다. 거기라며, 현권이 힐끗 시선을 아래로 내려 자신의 하반신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이 어딘지 짐작을 한 희는 머쓱하게 큼, 하고는 의미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이제 어찌해야 하나 힐끗, 현권쪽을 쳐다봤으나, 현권은 어느새 자신에게서 멀어져 창고 구석탱이쯤에 가 앉아있었다.
"그때 너무 순식간에 끝났어- 어떤 지 확실히 봐야 하니까 싸워봐."
"네, 형님."
현권의 말에 떡대가 대답했고, 희는 입을 다문 채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눈치를 보다가 해야할 것이 무언지를 깨닫곤 떡대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자연스레 떡대의 시선이, 현권에게서 떨어져 희에게로 향했다.
"이번엔 제대로 붙어보자, 야. 마, 니 또 거기 차면… 이제부터 니는 쫌생이 되는 기다, 알간? 형님이 정한 별명으로 안 불러줄기다."
눈을 무섭게 뜨고 협박하듯 말하는 그를, 희는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픽 나오려는 웃음때문에 얼른 고개를 숙이고나서 픽 웃었다. 협박이 참 애같다. 일만 시작하면… 영락없는 빌어먹을 조폭인데. 그러고보면 쓰벌도 일하지 않을 때는… 그리 나쁘지 않긴 하다. 희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스톡홀롬 증후군이던가. 인질이 인질범한테 정신적으로 동질화 되어버리는. 그들이 빌어먹을 조폭들이란 걸 알면서도 희는 문득, 문득 보여지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어쩌면 그들은 그리 나쁜 사람들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됐다, 자꾸만. 단지, 그들이 가진 '조폭'이라는 직업이 나쁜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 뭐. 나쁜 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조폭이란 사실에 치 떨지 않을테고, 그럼 더욱 조폭스러워질 수 있으니까. 잔인해질 수 있으니까. 희에겐 좋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자신이 어떤 이유건 그들과 같은 부류라는 게 괴롭다.
"뭐하나, 요조? 주먹 안 쥐나, 마."
떡대의 말에 희는 퍼득 정신을 차리고 주먹을 쥐었다. 하체에 힘을 실어 중심을 꽉 잡고, 꽉 쥔 양 주먹 중 오른손을 앞으로, 왼 손을 약간 뒤로 한 채로 두고 몸을 조금 낮춰 공격태세. 사람들을 협박하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그런 일밖에 하지 않았으므로 아직까지도 희는 싸움 경험이 없었다. 쿵쾅쿵쾅. 희는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이게 태어나 처음 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저번은 솔직히… 아니지.
"자, 시작해."
구경꾼으로 있는 현권이 소리쳐 명령했고, 현권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떡대는 커다란 등치에 맞게, 하지만, 등치에 비해선 빠른 속도로 희에게 주먹을 날렸다.
05.
희는 순간적으로 그 주먹을 피했다. 그리 느린 편은 아니었다. 아무리 등치가 있어서 속도가 떨어져도 하루가 멀다하고 주먹을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슈욱- 하고, 그의 주먹을 피한 희의 귀에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꺽. 희는 침을 삼켰다. 맞으면 아프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겁이 나는 것 같았다. 하체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겁을 먹은 탓이었다. 희는 뒤로 몇걸음 물러나 다시 자세를 취했다.
"얼레, 피했네. 자세만 잡지말고 니도 날리라. 형님이 니 실력이 어느정돈 지 보려는 거니깐은."
떡대가 구수한 말투로 말해왔고, 그 구수한 말투에 희는 약간 마음이 안정되었다. 주먹을 좀 더 꽉 쥐고 희는 다시 물러난 발자국 수만큼 떡대에게로 다가섰다. 하지만, 슈윽- 다시 떡대가 주먹을 날린 것을 피할 뿐, 주먹을 날리진 못했다.
"아따, 거 새끼. 속도는 허벌나게 빠르네."
다혈질인 떡대가 불퉁스럽게 말하며 이젠 좀 짜증이 났는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슬쩍 험해진 그의 말투를 느낀 희가 다짐했다. 이번엔… 피하고 때린다. 떄린다. 때린다. 주문을 걸듯 속으로 다짐했다. 원래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쉽사리 주먹을 날리지 못하는 법이다. 특히나, 희같이 싸움과는 담을 쌓고 살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해봐야 운동을 조금 배운 게 다라면 훨씬 더. 그래서 태권도나 유도를 다녔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못하는 사람이 꽤 있는 이유가 그거였다. 그건 '배움'이었고, 실제 싸움이 아니었으므로. 어찌됐든 희는 숨을 가다듬고 머릿속으로 그렸다. 주먹을 날리는 걸.
"그만 피하고 덤벼라, 마!"
떡대가 버럭 소리치며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려왔다. 역시나 이번에도 희는 쉽게 그의 주먹을 피하고… 뻗었다. 퍽- 꽤나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떡대에 복부에 그녀의 주먹이 꽂혔다.
"으읏! 으아악!"
그러나, 떡대가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희가 비명을 질렀다. 맷집 좋은 떡대에게 그녀의 주먹은 솜망이나 마찬가지였고, 자신의 배에 꽂힌 손을 떡대가 세게 꽉 쥐어서였다. 희가 괴롭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으나, 손을 빼낼 수가 없었다. 떡대가 더욱 힘을 줬다.
"으아악!!"
놔달라는 말따위도 할 수 없었다. 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은 고통에 말따윈 꺼낼 수가 없었다. 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제야 떡대가 쥐고있던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동안, 냉정하게 빛나던 떡대의 눈이 다시 본래의 평범한 눈으로 돌아왔다.
"형님이 항상 그랬다. 모든 지 실전처럼 하라고."
떡대가 그렇게 말하며 힐끗, 고개를 숙인 채 놓아진 손을, 반대쪽 손으로 꽉 쥐고 바닥에 주저앉은 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희에게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인 희는 몰랐지만. 떡대는 머리를 긁적이며 현권쪽을 쳐다봤다. 편이라도 들어달란 눈빛이었다. 자신은 죄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은근히 소심한 떡대였다. 바닥에 주저앉은 희는 부들부들 떨었다. 고통이 큰 듯했다. 가끔 들썩대는 어깨가 그녀가 울고있음을 일러주었다.
"마, 우나? 사내새끼가…"
떡대가 인상을 찌푸리며 애써 미안하지 않은 척 말을 꺼내기 시작했으나, 그의 말꼬리를 잘라먹고 현권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가리 닥치고 있어."
잔뜩 화가 난 어조의 현권에 의해 떡대가 몸을 움찔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뭐를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잘못을 시인했다.
"잘못했습니다, 형님!"
그런 떡대에겐 현권은 관심없었다. 현권은 주저앉아있는 희를 벌떡 일으켰다. 희가 갑작스러운 큰 힘에 벌떡 일어나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일으킨 현권을 쳐다봤다.
"혀, 형님……."
희가 눈물 젖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울먹대는 음성으로 말했다. 현권은 차게 식은 눈을 하고 무표정하게 희를 응시하다가, 희를 잡아일으키느라 쥐고 있던 희의 양 팔에서 손을 떼고 곧… 퍼억-
"혀, 형님!"
놀란 떡대가 눈을 크게 뜨고 현권을 불렀다.
"아가리 닥치고 있으랬다."
크게 내지르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나지막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냉기를 풀풀 풍기는. 우석과 닮은. 현권에게 얼굴을 맞은 희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띵하게 울려대는 머리를 휘휘 저으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뇌가, 종이 되어 뎅뎅 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쎈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가 빠지지 않았으니까. 일을 하면서 느낀건데, 정말 세게 맞았을 경우는, 이를 악물지 않은 한, 십중팔구로 이가 빠졌다.
"잘못했습니다, 형님!"
떡대가 또 허리를 숙이며 잘못을 시인하며 부르르 떨었다. 현권의 모습에 질린 듯했다. 희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나 생각을 하려 했으나, 생각을 필요도 없었다. 그가 입으로 잘못한 게 무엇인지 친절히, 매서운 목소리로 일러주었으니까.
"아프다고 함부로 비명 지르지마라. 쪽팔리게. 함부로 눈깔에서 눈물 뽑지마라. 쪽.팔.리.게."
마지막 말에 강세를 주며 말한 현권은 떡대와 희를 버려둔 채로 휙하니 반 셔터가 내려진 출구로 걸음을 움직였다.
"일주일 준다. 떡대랑 겨뤄서 지지 않을만큼으로 만들어라. 안 그러면… 넌 여기서 나가라."
-
아파. 아파. 아파. 희는 퉤- 하고 입에 고인 피를 뱉었다. 이젠 입안에 피맛이 나는 것도… 그런 피를 뱉어내는 것도 제법 익숙해졌다. 전엔 입안에서 피맛만 나도 헛구역질을 하고, 왈칵 올라오는 피를 못 이겨 뱉어내면 역겨워서 부들부들 떨렸는데 무뎌져가고 있었다. 희, 스스로도 아주 잘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조폭이란 거에 대한 감각이 없다. 때리고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피냄새가, 피맛이, 피의 검붉은 색이, 피의 끈적거리는 느낌마저도 모두 익숙했다. 피가 나는 게, 남 몸에서 피를 나게 만드는 게 무감각해졌다. 다만, 사람인지라 느껴지는 통증은 어찌할 도리가 없을 뿐이었다. 방금 얻어맞은 볼이 너무 아파서 희는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꽉 쥐고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슈욱-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자마자 곧장 주먹을 내질러왔다. 희는 민첩하게 주먹을 피하고… 퍽-
"으앗!"
내지른 주먹이 떡대의 얼굴에 제대로 박혔다고 생각했으나, 떡대는 입술이 조금 터졌을 뿐 조금의 데미지도 입지 않은 모양인지 멀쩡히 그녀의 내질러진 주먹을 꽉 쥐었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빌어먹을 정도로 아프다! 희는 이를 악물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았고, 비명이 터질 것 같았다. 퍼억- 이번엔 방금보다 좀 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잡히지 않은 희의 반대쪽 손이 떡대의 복부에 처박혔다.
"읏."
제대로 먹혔다. 꽉 쥐고 있던 손을, 떡대가 놓쳤다. 그 틈을 타, 희는 물러섰다가 큰 폭으로 디딤발을 한 뒤 적절하게 위로 몸을 띄운 뒤 팔꿈치로 떡대의 코를 겨냥하고 내리찍었다. 콰직. 싸움도 못하는 주제에 여기에 붙어있을 수 있는 이유. 민첩성. 그게 확실히 보여지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빠른 속도와… 일주일간의 노력으로 제법 익힌 싸움법과 합쳐진 그것으로 부러트렸다. 콰직, 그건 분명히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였다.
"크윽!"
떡대가 주저앉으며 코를 훔켜쥐었고, 그와 함께 바닥으로 나뒹군 희가 비척비척, 힘겹게 몸을 일으켜 계속 걷어차여 멍이 들고 힘이 들어가지 않아 덜덜 떨려대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줘서 자리에서 선 채로 오른 손을 앞으로, 왼 손을 조금 뒤로 몸을 낮추고. 아픔에 굴하지 않고 싸움태세를 취했다. 떡대의 코와 부딪힌 팔꿈치가 못 견디게 아팠다. 뼈가 나가진 않았겠지만 멍은 들었을 테다. 입술을 터지고, 꽤 많은 양의 피로 떡진 머리와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한 채로 희는 무표정하게 그렇게 서있었다.
"이야!"
떡대가 소리를 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희는 이제 다리에 힘이 풀려서 빠르게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하려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때를 놓치지 않고 떡대가 달려들어 그녀를 번쩍 들어올렸다. 채, 어떻게 하기도 전에 떡대가 힘있게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쿠웅. 바닥과 커다란 소리를 내며 희의 몸이 마찰을 일으켰다.
"컥-"
속이 다쳐 피가 터져나왔다. 희는 올라오는 피가 누워있느라고 속으로 콸콸 들어가는 느낌에 숨이 막혀 휙 몸을 뒤집었다.
"콜록콜록!"
거칠게 기침을 하며 기도를 막으려 들었던 피를 마구 토해냈다. 어찌됐든 희는 쓰러지지 않았고, 떡대 역시도 쓰러지지 않았기에 싸움은 끝이 아니었다. 현권은 멀찍히 서서 둘의 싸움을 냉랭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몇 몇 조폭도 그들 주위를 둘러서 구경을 해댔다. 떡대의 코뼈가 나갈 때 소리를 질러주고, 희가 내동댕이 쳐질 때 킥킥거려주고 맘껏 그들의 싸움을 구경꾼으로서 즐기고 있었다. 희는 하지도 못하는 욕설이 속에서 맴돌았다. 쓰벌. 할 수 있는 욕이 아직 이것밖에 없다. 입에 익지 않은 욕은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속으로만 맴돌뿐. 게다가, 해봐야 할 수 있는 욕은 쓰벌뿐이었다. 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깨끗한 세상속에서, 안전한 보호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비는 욕을 잘했다. 그게 그저 상스럽다고 혼내기만 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사람은 학습이 없이는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녀는, 비는, 욕을 학습한 것이다. 그녀는, 싸움을, 학습해왔던 것이다. 엎드려있던 희는 비를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고 비척비척 다시 일어섰다. 퍼억-
"으윽!"
채, 다 읽어나기도 전에 복부를 걷어차이고 희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안 돼. 여기서 져버리면… 비를 볼 면목이 없어. 희는 흐려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부들부들 떨어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떡대의 다리가 휘익- 하고 다가오는 게 보였고, 희는 몸을 낮게 하고 빙글 돌아 그의 다리를 적당한 거리로 피한 뒤 꽉 쥐었다. 다리를 잡힌 떡대가 '얼레?'하는 내고 몸을 비틀기도 전에 희는 힘을 줘서 그의 붙잡은 다리를 당겼다가 반동을 줘서 내동댕이쳤다. 그리곤 빠르게. 정확하게. 명치쪽으로 다리를 내뻗었다. 떡대가 발을 붙잡았고, 몸이 기우뚱하며 기울 때 피식.
"내가 이길 거예요."
투정 부리는 것 같은 새침한 말투로 말하며 희는 몸이 기우뚱함과 동시에 잡히지 않은 반대쪽 다리를 잽싸게 들어, 떡대의 명치를 콱 짓눌렀다. 체중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완벽하게 먹혀들진 않았을 테지만 명치. 명치는 크게 예민한 부분이었고, 떡대가 컥. 하고 숨이 막힌 소리를 내며 잡고 있던 다리를 놓쳤다. 그리고 때를 놓치지 않고 희는 몸을 비틀어 명치를 누른 쪽으로 힘을 세게 줬다. 콰악. 세게 명치가 짓눌리는 소리를 냈고, 중심을 잡지 못한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쿵. 낙법을 쓸 정도의 힘도 남아있지 않아서 그냥 되는대로 떨어졌다. 바닥과 부딪힌 등판이 욱씬거렸지만, 희는 멍한 눈으로 흐린 조명불을 쳐다보았다.
"쓰벌."
"네, 알겠습니다. 형님!"
현권이 무언가를 시키려는 듯 쓰벌을 불렀고, 쓰벌의 대답에 현권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피며 멀뚱멀뚱 고민에 빠진 아이같은 표정으로 쓰벌을 쳐다보며 말했다.
"뭘 알겠다는 거야? 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아, 죽을 죄를 졌습니다. 쓰벌!"
"형님 어디갔어? 기분 나쁘게 형님 빼먹고 쓰벌을 그렇게 크게 하는 이유가 뭐야? 너 지금 반항하는 거야? 사춘기야? 응, 그래? 아니, 아니지. 나이가 있으니까 오춘기냐, 응?"
"아, 아닙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쓰…형님! 쓰벌!"
둘의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희는 눈을 감았다.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쓰형님?! 쓰형님이 누구야! 나는 현권이다!! 형님 이름도 몰라, 쓰벌새끼야!"
"아, 아니, 그게!"
"죽을 죄를 졌다고 또 한 번 얘기해보시지!"
쓰벌은 순진하게도 자신의 형님이 시킨다고 시키는대로 넙죽.
"죽을 죄를 졌습니다, 형님!"
우렁차게 소리쳤고, 그걸 들은 현권이 입가에 지익 찢으며 사악하게 미소지으며 정장 안주머니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걸 꺼내는 가 싶더니 대꾸했다.
"그래, 죽을 죄를 졌으니 죽어야지."
"히, 히익! 형님, 잘못했습니다! 쓰뻘!"
쓰벌이 쓰뻘이 됐다. 항상 정장 안주머니에 접히는 나이프를 들고다니는 현권이, 나이프를 꺼내들고 현란하게 그걸 한 번 휘둘러 보였기 때문이겠지. 희는 웃음이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익숙해졌다. 희는 이제 조폭이라는 세계가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 불쑥불쑥 자신도 모르는 새에 여자일 적의 습관이 나오기도 하고, 일반인일 적의 감성이 들기도 했지만… 여길 벗어난 밖이 오히려 두려워져 버렸다. 바깥이 이젠… 전혀 모르는 딴 세상만 같아서 희는 이 곳에 있을 때, 조폭 울타리 안에 있을 때가 더 편해져 있었다.
"장난이야. 너만큼 내 뒤치다꺼리 맘 편히 놓고 마구 시킬 놈도 없어. 넌 아주 편해. 넌 아주 막 다루기 좋아."
"감사합니다, 형님!"
뭐가 감사한건데. 희는 입가에 웃음이 돌기 시작했다. 아무리 들어도 저건 욕과 다를 게 없는데 그저 마냥 자신의 형님이 해주는 말이면 껌뻑 죽지. 하지만, 더 웃긴 건… 이렇게 속으로 단순하고 멍청한 그들을 욕하면서도…
"요조. 니 힘으로 벌떡 일어나면 내가 먹고싶은 거 사주마."
자신 역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동화되어버려서…
"오, 대단해. 먹을 게 그렇게 좋은 건가?"
"아닙니다."
"그럼? 이 형님이 좋은 건가?"
어쩔 수 없이 희, 자신도 마찬가지로 형님인 현권의 말이면 죽어가다가도 이렇게 벌떡 일어나는 인간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네, 형님이 좋아요."
흐릿한 시선으로 보이는, 그의 조폭답지 않은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흐트러지고 웃음이 활짝 지어지며 정신 차리지 못하는 새에 낮게 내리깔려고 노력하던 목소리가 본래 목소리보단 낮기 하지만 어찌됐든 조금 높아지고, 말투가 사랑스러워져버린다는 어이없는 사실이었다. 칭찬 들으면 좋아하는 일곱살 난 여자아이처럼.
"요조! 기집애냐? 쓰벌!"
"아, 아닙니다! 형님이, 좋습니다!"
정신을 잃은 떡대를 애들을 시켜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던 쓰벌이 태클을 걸어왔고, 희는 퍼득 정신을 차리며 얼른 말을 정정했다. 그걸 현권은 여전히 꽃같은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물론, 절대 사랑은 아니었다. 그건, 사랑이라기보단 존경이었다. 옛날 왕께 충성을 다하던, 정말 지극하다 싶을 정도로 사랑을 표현하던 신하의 심정이랄까. 어느샌가 마음에서 우러난 충성심에 의한 사랑. 그로인한 행동일 뿐이었다.
"요조. 이 형님은 너같은 기집애같은 놈 안 좋아해. 형님은 게이기질이 있어서 말이다. 우석형님같은…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슬프지?"
장난기 잔뜩 어린 투로 묻는 현권의 말에, 희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네, 형님."
단조로운 희의 답변에 현권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두어번 두드리곤 말했다.
"대답이 간결에서 마음에 들었다. 지금 기절하면 이 형님이 직접 방으로 바래다주마."
아빠같은 듬직한 말투로 말하는 그의 모습을, 희는 마지막으로 클로즈업하듯 천천히 눈을 감고 그대로 쓰러졌다. 마치, 그가 그런 말을 해주길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여태까지 꽉 정신력으로 버티고있던 몸이 그의 듬직한 말 한마디에 무너져내렸다. 한마리 가녀린 새처럼 바닥에 기절해버린 희를, 현권은 가만히 내려다봤다. 긴 팔, 긴 바지를 입고 있어서 대충 가려지긴 했어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얇기 짝이 없는 몸뚱이하며, 검붉은 피가 굳어 얼굴에 덕지덕지 붙었어도 선명히 시야에 들어오는 새하얀 피부, 검붉은 피만큼이나 붉은 입술, 길게 쭉 누가 잡아당겨서 늘린 것처럼 내빼진 속눈썹. 길고 새하얀 손가락들. 현권은 쭈그려앉아,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보는 것만큼이나 가벼운 체중.
"기집애."
현권은 느낀 그대로를 입으로 읊으며 터벅터벅 걸어서 아무도 남지 않은 창고를 빠져나왔다. 그러다 퍼득 생각난 듯 중얼댔다.
"보통은 싸울 때 아프거나 하면 욕을 하는데 말이지… 한 번도 욕하는 걸 본 적이 없단 말이지. 좋아, 각오해라, 요조. 다음은 혹독하게, 귀가 썩을만큼의 엄청난 욕들을 가르쳐주지."
06.
온통 상처투성이인 희가 누워있는 침대가 걸터앉으며 현권은 익숙한 듯 자신의 방에서 가져온 구급상자에서 대충 멍을 빼줄 때 쓰는 연고와 상처 치료에 쓰는 연고, 그 외에도 흔히 보글보글 거품이 인다고 알고 있는 빨간약. 밴드, 붕대까지. 완벽하게 모두 꺼내어 흐트려놓고는 뭐가 그리도 좋은 지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일단은 눈에 가장 띄는 팔부터 치료하기 시작했다.
“야리야리한 것 봐.”
현권은 새삼 다시 한 번 희의 여리한 몸을 느끼곤 중얼댔다. 치료를 위에 손목을 잡아들자마자 느껴지는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슬림한 느낌에 당황해 버린 탓이었다. 분명, 남잔데. 아무리 계집애 같다지만……. 물론, 요즘은 여자보다 예쁜 남자가 대세라느니 하는 소리가 있는 터라, 예쁘장한 남자들이 널리고 널린데다가 딱 보기에도 삐쩍 마른 희는 당연 손목을 잡는 순간 이런 느낌이 날거라곤 생각했지만……. 그래도 정말…
“계집애 같아.”
현권이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정말 느낌이긴 하지만……. 현권은 치료하려던 팔을 내려놓고 불쑥 희의 옷가지로 손을 가져갔다. 처음엔 분명 하얀색이었을 목티를 벗기기 위해 현권은 옷자락을 붙들고 위로 천천히 들어올렸다.
“뭐, 뭐하는…”
움찔. 때마침 정신이 든 희가 그의 손목을 덥썩 붙들며 더듬거렸다. 그에 의해 덩달아, 당황해버린 현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곤 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희가 당혹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만두라는 눈짓을 보내왔다. 현권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그녀의 옷자락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제야 희도 그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치료중이었어.”
능청스레 현권은 ‘하도 계집애 같아서 정말 계집애 아닌가 싶어서 확인중이었어.’라는 말을 속으로 집어넣곤 그럴싸한 변명을 대었다. 아니, 사실 솔직히 말하면 딱히 변명도 아니지 않은가. 정말 자신은 그녀를 치료할 목적으로 이쪽저쪽을 더듬던 중이었던 거니까. 그리고 일단 외관으로 보이는 부분들을 모두 치료하고 나면, 옷을 벗겨내고 치료할 생각이었으니까.
“괘, 괜찮아요. 아, 제, 제가 할게…하겠습니다.”
희가 더듬거리며 얼버무렸다. 그리곤 슬쩍 올라간 옷이 신경 쓰였는지 얼른 스윽 하고 옷을 내렸다. 현권의 미간이 더욱 찌푸렸다. 의심으로 가득 찬 눈초리로 현권은 그녀의 상체를 지그시 노려봤다. 그의 시선을 느낀 희가 몸을 움츠리며 눈치를 보다가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이리 주십시오.”
희가 현권의 손에 있는 것을 달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아냐.”
현권이 고개를 내저으며 이내 미간을 풀곤 연고 뚜껑을 열어, 조금 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희가 몸을 뒤로 슬쩍 빼자, 현권이 무섭게 얼굴을 굳혔다.
“가만히 있어.”
현권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지레 겁을 먹은 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뻑대며 다시 뒤로 뺐던 몸을 앞으로 당겨앉으며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다. 양반다리를 딱 하고 얌전히 앉아,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살살…
“꺄…으악!! 아, 아파요!”
희가 무의식적으로 여자의 목소릴 내며 아프다고 소리치려다가 꾹 참아내곤 목소리를 걸걸하게 내며 말했다. 살살하면 얼마나 좋아. 이건 연고를 발라주는 게 아니라, 빨래를 하는 거지! 희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아프다고 연신 투정을 부려댔지만, 현권은 눈 하나 깜짝 않고 계속해서 험한 손길로 슥슥 희의 얼굴에 연고를 덕지덕지, 치덕치덕 발라댔다.
“혀, 형님. 저, 정말… 아, 아픕니다.”
희가 이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같았으면 눈물부터 그렁그렁 댔을 게 뻔했으나, 한 번, 저번에 현권이 그토록 싸늘하게 자신에게 가차없이 주먹을 날린 뒤로는 눈물 많은 희가, 그 많은 눈물을 참아내는 게 이골이 난 상태였다. 이제 고작해봐야 조폭이 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그 사이에 수업이도 울고 싶은 날은 많았다. 아니, 매일을 울고 싶었다. 물론, 아무도 없을 땐 숨죽여 울었지만.
“닥치고 있어.”
험악한 말이었지만, 희는 무섭거나 그러진 않았다. 싸늘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입에 벤 말투를 사용할 뿐인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희는 그의 명령에 입을 꾹 다물고 미간만 찡긋찡긋대며, 양 주먹을 꼭 쥐고 아픔을 참아냈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분주히 움직여 희의 얼굴이 안 보일 지경으로 온통 밴드로 도배해놓더니 이젠 희의 팔다리를 밴드로 도배했다. 그리곤 희가 건드릴 때마다 옅은 신음소리를 흘리는 부분을, 즉, 붕대를 감아줄 필요가 있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내곤 둘둘둘 붕대로 도배질해댔다.
“혀, 형님. 거기다가 두루면 눈이 안…”
“입.”
현권의 짤막한 그 말에 희는 얼른 입을 닫았다. 방금 전, 닥치라는 명령을 여겼다는 경고임을 알기에. 아니, 근데 형님. 정말 그 쪽에다가 붕대를 두르면 눈이 안 보인다니까요. 그냥 눈두덩이가 찢어진 거니까 밴드만 간단히 붙이면 돼요. 희는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꿀꺽 말을 삼키며 입술이라도 삐죽댈 얼굴을 했다.
“옷 벗어.”
“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현권이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속삭였다. 심기를 건드렸단 의미였다. 희가 찔끔했으나, 눈만 또르르 굴리며 현권의 명령을 못 들은 체했다. 어떻게 옷을 벗으란 건지. 아니, 물론 같은 남자끼리 서로 벌거벗고 있어도 무방하겠지. 하지만, 일단 자신은 ‘남장’을 한 거지, ‘남자’가 아니지 않은가. 희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눈알만 미친듯이 굴려댔다.
“벗어.”
현권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짜증이 났단 의미였다. 그는 친절했다. 눈부신 꽃미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그는 조폭이었기에 말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카리스마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 형님. 제가… 몸에…… 흉터가 있어서 남 보여주는 걸 싫어합니다.”
희는 대충 얼른 되는 대로 내뱉었다. 희의 말에 현권의 고운 미간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희는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섭다. 희는 눈까지 질끈 감아버렸다. 희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현권이 스륵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그럼, 뭐. 알아서 치료해. 근데 손 안 닿는 덴 어쩌려고?”
“괘, 괜찮습니다. 두면 나을테니까요.”
희의 말에 현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방문앞으로 갔다. 희는 현권이 나가는가보다 싶어 남몰래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늦췄다.
“치료 끝내고 나와라. 약속대로 먹고 싶은 거 사줄 테니까.”
온통 긴장을 풀고 있었던 탓에 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넵!!!!!!!”
버럭 소리쳤다. 그 우렁찬 목소리에 현권이 다 몸을 움찔했다. 현권이 슥, 뒤를 돌아 희를 쳐다보았다. 희가 자신도 자신의 우렁차다 못해서 장군감인 목소리에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침대에 앉아있었다. 현권은 그런 희를 보곤 피식 웃음을 흘리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목소린 영락없는 사내놈이군.”
희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말을 해놓곤. 설마, 눈치 챘나. 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 그랬다면 그가 당장에 내쫓거나 자신을 생매장 시키지 않았을라나 생각하며 걱정을 고개를 흔들어 떨쳐냈다.
-
“뭐 먹고 싶어?”
시키는 대로 대충 현권이 치료해주지 못한 부분을 치료하고 나오자, 방문 옆 벽에 기대서서 기다리고 있던 현권이 말했다. 희는 괜히 가슴이 따뜻해져왔다. 그래, 이 사람은… 하여튼, 정말 조폭같지 않다니까. 희는 예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짜장면이요.”
희의 마냥 맑고 예쁘기만 한 미소에, 현권은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잠시 멍해졌다. 뒤통수를 후려 맞은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스르륵 눈을 감고 앞으로 풀썩하고 쓰러질 것만 같은 표정의 현권이 이상해, 희가 눈을 끔뻑끔뻑대며 조심스레 입술을 조물조물 움직여 그를 불렀다.
“형…님?”
“아, 응.”
그제야 현권이 정신을 퍼득 차리곤 반응해왔다. 희가 눈을 여전히 끔뻑끔뻑대며 현권을 빤히 쳐다봤다. 우석은 도무지 쳐다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데, 아니, 솔직히 말하면 다른 조폭들은 죄다 눈도 마주치기 어려운데 현권은 이렇게 빤히 쳐다볼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이 사람은 조폭하곤 안 어울려. 현권보다 위치가 낮은 쓰벌과 떡대도 아직 무서워서 제대로 말도 못 붙이는 데에 반해 현권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 수 있다. 말 다했다. 이 정도만으로 확실히 이제 감이 오지 않는가. 그는 정말 정말 조폭같지 않다. 좋다, 이제 질려할 것 같으니 이 남자가 조폭과 전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그만 강조하도록 하겠다.
“고작, 짜장면이냐?”
현권이 그렇게 말하면서 걸음을 떼었다. 그 뒤를 희가 쫄레쫄레 뒤따랐다. 분명 말은 그렇게 해도 중국집으로 향하고 있는 게 빤했다. 그래서 희는 헤헤, 아이처럼 웃으며 콧등을 긁적거렸다. 기분이 무척 좋을 때, 또는 부끄러울 때 하는 희의 버릇이었다. 힐끗, 희에게 시선을 줬다가 희의 소녀같은 행동을 본 현권은 재빨리 시선을 희에게서 떼어냈다. 그러다, 안 되겠다는 양 입술을 떼었다.
“요조.”
“네?”
“숨기는 거 없냐?”
움찔. 역시 그가 눈치를 챈 건가. 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괜히 여기서 더듬거리며 되물음이라도 하면 확신하지 못한 채 묻는 그가, 의심을 더욱 하게 될 거 같아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큼, 하고 목소릴 좀 더 나직하게 내기 위해 노력한 뒤에 입을 열어 대꾸했다.
“없습니다.”
“흠.”
희의 조금도 꿇려하지 않는 대답에 현권이 고뇌하듯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곤 갑자기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쳐다보더니 불쑥 어느 건물로 들어섰다. 멀뚱멀뚱 현권 뒤만 졸졸 따라 걷던 희도 퍼득 정신을 차리고 힐끗 그가 방금 올려다보았던 곳을 올려다봤다.
“엑!”
그리고 눈에 보이는 간판에 희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재빨리 현권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는 현권을 세울 요령으로 희가 다급하게 목소릴 냈다.
“혀, 형님. 저는 그냥…”
“시끄럽다.”
현권이 희의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희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안다는 양. 희는 그의 말에도 무어라 말해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지만, 발만 동동 구를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의 뒤만 졸졸 따를 뿐이었다. 겉부터 번지르르하더니, 내부는 더더욱 휘양찬란하게 잘도 꾸며놓은 중식집. 이런 곳은 확인하나마나 비쌀텐데. 희는 괜히 안절부절.
“앉아.”
방을 안내받자마자, 자리에 편안히 앉은 현권이 빙긋 웃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희는 그의 상냥한 말에 조금 용기를 얻곤 방금 그가 잘라버리며 말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던 말을 다시 꺼내었다.
“저는 그냥 주문 시키면 후다닥 오는 짜장면이 된다는 소리였습니다. 여긴…”
“입.”
현권이 얼굴을 굳히며 한마디 내뱉으면.
“……………….”
희는 풀이 죽어선 입을 닫았다. 희는 주춤주춤 결국, 현권과 마주본 자리에 털썩 몸을 앉혔다. 현권은 능숙하게 주문을 했다. 희에게 무엇을 먹을 거냐곤 묻지 않았다. 그것에 희 역시도 매너 없다거나, 또는 서운하다거나 하는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희는 이런 곳은 태어나서 한 번도 와본 적 없고, 그는 익숙했다. 그가 사는 것이며 희는 얻어먹는 입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님. 너무 많이 시키신 거 아닙니까?”
그는 형님이고, 희는 그의 ‘쫄따구’나 다름없으니까. 희가 언뜻 듣기에도 여러 음식을 시켰다는 것을 느끼곤 현권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희의 물음에 현권이, 자신이 그만 두라고 했던 말을 다시 꺼낸다고 매섭게 ‘입’이라고 경고를 주던 것과는 다르게 그 특유의 꽃미소를 지으며 나긋한 음성으로 상냥하게 대답해주었다.
“나, 돼지새끼거든.”
하여튼 입에 벴어. 희는 괜히 입술이 삐죽 나올 것 같았다. 비한테도 툭하면 했던 잔소리를, 그한테 불쑥 하고 싶어져서. 하지만, 할 수 없으니까. 현권은 자신의 말에 웃기는커녕 삐친 듯한 표정으로, 왠지 기운 없는 얼굴을 하고 앉아있는 희를 보곤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잠시 생각.
“나, 돼지거든.”
그리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새끼’라는 상스러운 말을 빼고 했던 말을 반복. 그러자, 희가 퍼득 자신을 보지 않고 식탁만 내려보던 눈을 들어올려 쳐다봤다. 그러다, 금세 히죽. 해맑게 미소지었다. 그녀만이 지닌 귀여운 미소에, 현권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욕 싫어해?”
현권의 물음에 희는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차, 그는 형님이지.
“네.”
물론, 그건 자신이 여자일 때, 그리고 조폭이 아닐 때나 허용되던 행동이라는 걸 깨닫곤 얼른 목소리로 대답. 현권도 그것에, 그녀를 혼내려던 말을 쑥 집어넣었다. 그는 빙그르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그녀를 불렀다.
“요조야.”
“네, 형님.”
어딘가 들뜬 목소리. 희는 느끼지 못했지만, 현권은 느꼈다. 게다가, 아까 전 보았던…… 그 행동. 소녀같던. 콧등을 살며시 긁적거리는. 그 행동에 현권은 아까 전에도 느꼈던 그 감정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느꼈다. 뒷목이 근질근질하면서 괜히 가슴속이 사근사근해지는. 현권은 침을 한 번 삼켰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제야 혼을 쏙 빼놓는 것만 같던 의문의 느낌이 사라졌다. 그래서 하려던 말을 다시금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제부터 너한테 욕을 가르칠 건데.”
“네? …네.”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음을 하려던 희가, 되물음을 하지 말라했던 그의 말이 떠올라 재빨리 그냥 대답하는 형식을 바꿔버린 뒤에 차근차근 그의 말을 속으로 곱씹어서 이해했다. 욕을 가르친다고? 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뻑대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방문을 열고 종업원이 들어와 테이블 위에 요리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에게 박혀있던 시선이 음식들에게로 옮겨갔다.
“우, 우와.”
화려하다. 눈이 부실만큼 화려하다. 그의 꽃미소만큼 화려했다. 이건 무슨…… 음식인지 예술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희는 휘양찬란한 눈앞에 음식들에, 입을 뻐끔댔다. 하다못해 짜장면마저도 빛이 나보였다. 이게 바로 비싼 음식점의 힘이란 건가. 놀라 탄성을 내뱉는 희를, 현권은 가만히 쳐다보다가 손에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그걸 본 희가 얌전히 무릎 위에 얹어놓은 두 손을 꾹 쥐었다. 나도 얼른 먹고 싶어. 라는 의미. 희의 표정만 보아도 먹고 싶어 안달 났어요, 라는 게 드러남에도 현권은 모른 체하곤 희가 기다리는 그 말을 꺼내주지 않았다. ‘먹어.’라는.
“욕 한 번 할 때마다 먹고 싶은 거 한 입씩.”
띵. 네? 희는 속으로만 되물음을, 아니, 눈빛으로만 그에게 되물음을 하며 입을 뻐끔뻐끔. 그런 희를 알아차린 현권이 빙긋 신사적인 미소를 만면에 띠워놓고 분명하게.
“모른다면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따라할 것.”
“네, 형님…….”
희는 황당하고 어이없어, ‘뭐 그런 게 있어요.’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는 형님이니까 그 말을 속으로만 중얼대준 뒤 한숨처럼 대답했다. 그 덕에 기어들어가듯 작아진 목소리톤. 현권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희를 힐끗 쏘아보며 입에 튀김을 하나 넣고 오물거렸다.
“대답 다시.”
그리고 무뚝뚝한 어조로 명령하면.
“네, 형님!”
희가 애써 기운 빠진 표정을 지우곤 충성하는 얼굴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밖에 있는 종업원들이, 방에 있는 다른 손님들이 움찔하고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댈만큼. 그렇게 되면 현권은 본래의 친절한 현권씨로, 조폭같지 않은 조폭, 그것도 형님으로 돌아와 얼굴 가득 꽃피우기. 그걸 본 희는 황당했던 거고 뭐고 다 사르륵 가라앉고 덩달아 입가에 작은 미소 하나.
요조는 타카페에선 이미 60편까지 연재된 소설이기 때문에
앞으로 60편까지는 연재가 쭉쭉쭉쭉 이어질 예정이에요~
계속 3편씩 들고 올게요!ㅋㅋㅋㅋㅋㅋㅋ
아, 막 무어라 여러분이랑 말을 하고 싶은데...
아직은...ㅋㅋㅋㅋㅋ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서로 좀...어..어색어색하군요!
좀 더 친해지면 작가는 수다쟁이가 될 거여요.ㅋㅋㅋㅋㅋㅋㅋㅋ
첫댓글 벌써 다음편이 궁금해 지네요... ... 욕... 이라.. 엄청난 욕을 배울듯... 히힙
z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히힙. 이거 느낌 괜찮은디요?ㅋㅋㅋㅋㅋㅋ히힙. 자주 써먹어야겟어요ㅋㅋ재미있는 거 배워갑니닼ㅋ!! 무튼 희가 배울 욕은 오늘 밝혀집니다아♥♥//qweeny님 愛♥
악!!!! 현권이가 희때렸네요.... ㅠㅜ 그래도 멋있어서 차마 나쁘다고 말을 못하겠습니다.... ㅎㅎㅎㅎ
ㅋㅋㅋㅋㅋㅋㅋ아. 그러고보니 이번편에 현권이가 희 때리는 게 들어있는 편이었군욬ㅋㅋㅋㅋㅋ잊고 있었네요! 이거, 꽤 쓴 지 되긴 됐나봅니다! 어서어서 연재해서 현재 다른 카페에 연재하고 있는 만큼 나아가야겟네요! 아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들 그 소리하세요. 멋있어서 나쁘다고 못하겟다곸ㅋㅋ//따뜻한쪼꼬렛님 愛♡
즐감해요
넵!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리말도 정말 감사해요!! 아, 꼬리말 남겨주셔서 업뎃 쪽지 슝슝. 날려드렸습니다.^^//장유리님 愛♥
ㅎㅎ 완전 재밌어요ㅎㅎ 희 완전 귀여워요ㅎ
헤헤헤헤헿. 네, 완전까지 붙여주시면서 재미있다고 말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ㅠㅠㅠ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닿ㅎㅎ!! 네, 희가............ㅋㅋㅋㅋㅋㅋㅋㅋ뭔가 조숙하고 그런 느낌으로 그리고 싶었는데 귀여워지더라구요. 제 한계인가봅니다.ㅋㅋㅋㅋㅋㅋ주인공들을 좀....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귀엽게 그려내고 마는 그런 한계가 있습니다, 제겐.ㅠㅠㅠㅠㅋㅋㅋㅋ//hanyun님 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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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 소설에 특징을 잘 끄집어 내셨습니다. 네, 바로 그거에요. 등장인물들이 죄다 귀엽습니다. 하아. 사실 저는 참 나름대로 귀여운 인물, 무뚝뚝한 인물, 어른스러운 인물 막 그렇게 만드는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항상 쓰고나면 귀여운 녀석들로 변해있더라고요, 이런.ㅋㅋㅋㅋㅋ순수!ㅋㅋㅋㅋㅋ변하지 않아요, 그 부분은♥ 쉽게 변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녀의 순수함은ㅋㅋㅋㅋ!! 그럼 순수한 상태에서 제법 형님다워지는 그녀를 지켜봐주세용!ㅎㅎㅎ//불량식품님 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