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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원문보기 글쓴이: 세잎 클로버
마지막 손님
- 다케모도 고노스케 -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돕게 되어 있습니다.
농부는 다른 사람이 먹을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상인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팔기 위해 가게를 열어 놓습니다.
아래의 글은 진정한 상인의 정신이 어떤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아주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게이꼬는 오오쓰의 중심가에 있는 과자점 춘추암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 벌써 4년째 이 곳에 근무하고 있다.
종업원이라야 겨우 열다섯 명 정도의 규모인 춘추암에서는
매일 아침 사원 식당에서 조례를 하는데
이 조례 시간에는 <한마디 제안>이라는 순서가 있다.
그날 아침 총무부장은 게이꼬를 지명하여 한마디 제안을 해 보도록 권유했다.
게이꼬는 수줍은 듯이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말문을 열기가 쑥스러웠지만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답례를 하자
게이꼬는 용기를 얻어 또렷한 목소리로 말문을 이어나갔다.
"저는 얼마 전 어느 손님으로부터 한권의 시집을 받았습니다.
이 시집은 알기 쉬운 표현으로 상인의 생활자세를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귀절입니다.
조그만 가게임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 조그만 당신의 가게에
사람 마음의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자."
모두들 진지한 표정으로 게이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게이꼬는 더욱 상기된 모습으로 말을 계속했다.
"저는 단숨에 그 시집을 읽고 나서
우리가 일하는 장사의 세계는 이처럼 멋있는 세계이구나 하고 겨우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멋진 세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왜 이 시인과 같이 멋지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나날이 일에만 쫓겨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과,
팔고 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은 탓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에서는 똑같은 일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따라 멋진 일이기도 하고
비참해지기도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상입니다."
중략....
춘추암은 그다지 큰 가게는 아니다.
오래지는 않았지만 중후한 감이 있고,
모든 비품이 산뜻하게 정돈되어 있다.
손님이 기다리는 장소에 의자가 놓여 있어서 여유를 느끼게 한다
어느 날 게이코는 가장 늦게까지 근무하다
제과점 문을 닫고 막 큰길로 나섰을 때,
지붕 위까지 눈이 쌓인 자동차가
어떤 집을 찾는 듯 옆을 지나쳐가는 중이었다.
게이꼬가 혹시나 하여 고개를 돌아보자
자동차는 가게쪽으로 향해 갔다.
게이꼬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 차가, 가게 앞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문득 '저 차, 과자를 사러 오는건 아닐까' 하고 게이꼬는 생각했다.
그렇게 되자, 게이꼬는 이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게 쪽으로 가고 있었다.
역시 그 차는 <춘추암> 앞에 정차해 있었다.
게이꼬가 자동차의 문에 노크를 하자 안에서 창이 열린다.
게이꼬는 불쑥 물었다.
"과자가 필요하십니까?"
"여기, 춘추암이죠?"
"네, 그렇습니다."
"이미 끝났군요."
"네, 그러나 난 이 가게 사람이니까요...
과자가 필요하시다면, 곧 가게를 열겠습니다만."
"정말입니까....그렇습니까 그거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
"네....금방 열 테니까요. 잠시 차 안에서 기다려 주세요. 밖은 추우니까요..."
"미안합니다."
게이꼬는 다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의 조명이 켜지자 게이꼬는 다시 나와서 손님을 안내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미안합니다. 겨우 문을 닫았을 텐데."
게이꼬는 금방 가스 스토브에 불을 붙였다.
"먼 곳까지 이렇게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지금 난방을 넣었으니까요."
45, 6세쯤 되어 보이는 점잖은 신사는 시로도이다.
게이코는 서둘러 진열장의 하얀 덮개 천을 벗기면서,
"약간 한걸음 늦으셨습니다만 이렇게라도 때를 맞춰서 다행입니다."
선 채로 시로도는 안도하면서 말했다.
“실은, 나의 어머니가 암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는데....
연세가 연세이신지라, 아무래도 병이 심상치 않아서.
아침에도 의사가 ‘앞으로 하루 이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만나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알리세요.
잡숫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잡숫게 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게이꼬의 얼굴색은 점차 변해갔다.
"그래서 '어머님, 뭐 잡숫고 싶은 것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전에 오오쓰의 춘추암의 과자를 먹었더니, 매우 맛있더라.
한번 더 그걸 먹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과자 이름은요 하고 물었더니, 잊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과자라면 비싼 것도 아닙니다.
제가 곧 사올 테니까 기다리세요....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공교롭게 이무끼 부근에 눈이 와서,
고속도로가 50킬로의 속도 제한으로 차들이 줄줄이 밀려서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초조한 마음으로 겨우 도착했더니 이미 가게가 닫혀 있었던 거예요.
어머니가 건강한 분이라면....다음 기회도 있겠지만.
오늘 내일을 알 수 없는 환자라서, 이 기회를 놓치면,
생애에 두번 다시 기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자,
견딜수가 없어서....괴롭기도 하고요....
어머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잘 됐어요.
당신 같은 친절한 아가씨를 만나서....다행이었어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게이꼬의 얼굴이 감동으로 굳어져 간다.
"그랬습니까...."
게이꼬의 얼굴은 어떤 결의마저 느끼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게이꼬도 이 이야기를 듣고, 감격해 버려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쨌든 이 세상 마지막으로 우리 가게의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는 손님에게
어떻게 보답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했다.
게이꼬는자신의 경우로 바꿔 미루어 보았다.
내 어머니도 병상에 계신다.
그 어머니가 만약 이 세상의 마지막일지도 모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디의 무엇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사러 달려가겠지....
그러한 경우, 그 가게가 어떻게 응대해 주면 기쁠까....라고.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써 받아서 기쁜 것을,
손님에게 그렇게 해드리리라고 생각했다.
게이꼬는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며 정신을 차려서,
"알았습니다. 그런 사정이라면,
과자를 고르는 것은 저한테 맡겨 주시지 않겠어요."
“그것은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부탁합니다.”
게이코는 시로도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고 바로 과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맡겨 달라고는 했지만, 내심으로는 곤란하기도 했다.
중병인 분이 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
힘 들여 씹는 것과, 떡처럼 목에 걸릴 위험이 있는 것을 우선 제외하고
먹기좋은 과자만 2개씩 세트했다.
그때 문득, 이 과자와 다르다고 하시면 어쩌나 생각했다.
그런 때는 그 댁을 알아 놓고 갖다 드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저.....괜찮으시다면 주소와 성함과 전화번호를,
저기 메모지에 써 주시겠어요..."
"저 말입니까, 아아, 좋습니다."
시로도는 메모지에 주소, 성명, 전화번호를 적었다.
과자 준비가 다 되자 게이꼬는 시로도에게 건네 주며,
"너무 기다리시게 했습니다.
이것.... 제 나름으로 적당히 골라서 싸보았습니다.
아무쪼록 어머님께 드시게 해주세요."
시로도는 지갑을 꺼내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죄송했습니다....그런데 얼맙니까?"
“이 과자는 대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게이코의 목소리는 아주 결연했다.
“어째서죠?”
시로도는 의아해했다.
“이 세상 마지막에 우리 가게의 과자를 잡숫고 싶다는 손님께
모처럼 저희들의 성의니까요.”
"그래도....일단 닫았던 가게를 열어 주고,
게다가 수고를 끼치고 과자까지 무료로 받아 돌아간다면 벌받을 거예요.
어떻든, 과자값은 받아 주세요. 부탁해요."
"손님, 그런 말씀 마시고 그대로 저희의 성의도 받아주시기 않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정 그렇게 이야기하시니....
어머님도 기뻐하실 거예요...아가씨이름이라도 알려주겠어요?"
"게이꼬라고 합니다."
"게이꼬양입니까. 훌흉한 분이군요. 실례입니다만 몇 살이죠?"
"열아홉입니다."
"내 딸보단 한살 위인데 훨씬 똑똑하고 총명하게 보입니다. 훌륭해요."
"그보다, 어머님께서 기다리십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셔서, 잡수시게 해드리셔야죠."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하는 시로도는
말만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어떤 감동을 느꼈다.
"네, 그렇군요....고마워요 게이꼬양. 고맙습니다."
밖에서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앴다.
차에 타려고하는 시로도에게 게이꼬는 당부를 했다.
"이런 밤이니까 아무쪼록 운전 조심하셔서 돌아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어머님 잘..."
눈물을 글썽인 채 시로도는 또력한 목소리로,
"고마워요, 게이꼬양.. 오늘 밤 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하고 시동을 걸었다.
서서히 차가 움직였다.
백밀러로 바라보니 게이꼬는 몇번이나 인사를 하며 전송하고 있었다.
게이꼬는 마음으로부터 그 할머니의 안녕을 빌었다.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고,
멀리서부터 와주신 이런 어른은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 분인가.
사람의 마음이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온 게이꼬는
부디 그분이 무사히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의 작은 소망에 응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다시 가게로 들어온 게이꼬는 가스를 끄고 하얀 천을 씌우고
자신의 가방 속에서 돈이 들어 있는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는 <코트 적립금>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 속에서 천 7백엔을 꺼내서 그날 매상에 추가시킨 게이꼬는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혼자 밤길을 걷는 게이꼬의 걸음은 꽤 분주했지만
그 표정만은 여느때보다 한결 밝았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조금 전의 마지막 손님 생각으로 가득차 있고
그래서 얼굴엔 밝은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맨먼저 어머니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교통 사고를 당해 벌써 몇달째 누워 있는 중이다.
중략 ...
그날 스탠드를 밝히고 책상 앞에 앉은 게이꼬의 일기장에는
한편의 시가 적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손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한 사람의 손님의 생활을 위해
나의 이익을 저버린다.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 상인들의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었으나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벌써 10시.... 그 손님은 지금쯤 나고야에 도착했을까?
불현듯 그 손님이 떠오르고
꼬리를 물고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이어진다.
과자를 보고 기뻐하는 노부인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이과자가 아니라고 고개를 젖는다.
그 말에 난감해하는 그 사람.
또 다른 영상은, 과자가 목에 걸려 고생하는 그 부인과
어쩔 줄을 모르는 그 사람.
목에 걸린 과자를 토해내게 하려고 진땀을 빼는 모습,
등등이 게이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밤,
이것저것 온갖 생각이 자꾸 떠올라 게이꼬는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다음날, 어제 저녁의 일이 걱정되어
게이꼬는 여느때보다도 일찍 가게로 나갔다.
어딘가로 다이얼을 돌리는 게이꼬의 표정이 조금은 초조한 빛을 띠고 있다.
"여보세요. 시로도씨인가요?"
"아, 게이꼬양이군요. 내가 어제 가게에 갔던 시로도입니다."
"어제는 멀리까지 와주셔서 고마왔습니다.
그런데 어제밤 어머님은 어떠셨는지요?"
"네. 나야말로 고마왔습니다.
어제밤은 그때부터 곧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역시 차가 밀려 집에 도착했더니 10시 반이더군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기다리다 지쳤던지 10시에 숨을 거두신 뒤였어요....
모처럼 게이꼬양이....어머니를 위해 골라주신 과자.....
어머니에게 맛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어쩐지 나도 돌아가는 길에 공연히 신경이 쓰여서
늦어질 것 같다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지요.
그리고 게이꼬양 이야기도 했습니다."
게이꼬의 얼굴은 긴장해 있었으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울음을 삼키느라 잠시 말을 끊고 있는데
수화기 저편에서 게이꼬양! 게이꼬양! 하며 가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미안합니다."
시로도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통한 것일까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답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숨을 거두시기 전에 갑자기 당신의 가게를
'그 가게, 좋은....가게로군'하고 말씀하시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고마와요, 정말로.
당신의 착한 마음, 평생 잊지 못....."
시로도 역시 목소리가 젖어드는가 싶더니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게이꼬는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무언가 목구멍을 틀어 막은 것처럼 말을 할 수가 없다.
가까스로 게이꼬는 입을 열었다.
"장례식은 언제인가요?"
"네, 내일 오후 1시 저희 집에서 거행할 겁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게이꼬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
하늘을 바라보아도 뿌옇게 어른거릴 뿐이었다.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나며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하고
소박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사람을 생각하면
가엾고 불쌍해서였다.
게이코는 지배인에게 내일 유급휴가를 신청하고
공장에 장례식에 가져갈 과자를 특별히 주문했다.
그날 오후,
공장으로부터 별도 주문한 과자가 다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게이꼬는 과자를 포장해서 가방속에 넣은 뒤
<코트값 적립>이라고 씌어진 봉투에서 5천엔을 꺼냈다.
두툼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얇아지는 봉투,
게이꼬는 금전 출납기를 두드려 5천엔을 입금시켰다.
그날 오후, 금전출납기에 입금된 5천엔에 대해
지배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게이꼬의 별도 주문한 몫이라는 걸 알게 되고,
고객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랬었군 ! 그래서 내일 유급 휴가를 받았으면 하고 원했었군..."
지난해 명절에도 게이꼬는,
병으로 누워있는 어떤 부인의 집을 찾아
유일한 가족인 아들과 함께 놀아주기도 했었다.
그 얘기도 손님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가게 안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 자신도 가난하게 살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착한 마음씨.
"그보다도 게이꼬에게
손님 장례식에 참가하는 비용까지 부담시켜도 괜찮을까요?"
"그 비용을 어떻게든지 회사에서 부담하도록 할 수 없을까요?
그 불우한 게이꼬에게 회사가 신세를 져서는 안되겠지요.
만일 회사에서 부담할 수 없다면 우리들이 돈을 모으겠습니다만...."
"아니, 잠깐만.
그야 나도 회사에서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그애의 행위를 회사 명의로 하게 한다면
모처럼의 그애 기분이 어떻게 될까 걱정되는군...."
"그래요, 바로 그 점이에요.
그애가 말하는 '인간 행위의 아름다움' 이라는 그애 나름의 깊은 세계에
누군가가 끼어드는 셈이 되지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강요당해서 하는 행위가 아닌만큼
이상한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애의 월급을 알고 있는 만큼 더 괴로워지는군....
어쨌든 이 문제는 나에게 맡겨줘요.
기회를 봐서 처리를 할 테니까."
게이꼬가 장례식에 입고 갈 옷을 이것저것 궁리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게이꼬,
넌 이번 겨울에 코트를 산다고 돈을 적립하고 있더니 어떻게 되는거니?
빨리 사지 않으면 겨울이 끝나고 말 텐데."
게이꼬는 옷을 손에 들고 망설이고 있었으나 밝은 목소리로,
"응, 올 겨울은 참겠어요. 내년 겨울에...." 하고 대답했다.
"해마다 너는 내년으로 미루고만 있구나....
내년 같으면 에미가 일을 해서 좋은 것 사주겠다....."
어머니를 향해 밝고 스스럼없는 표정으로 대하는 게이꼬이다.
"어머니도 참...... 그런 건 어머니가 걱정 안해도 돼요."
낡은 옷장을 열어 다시 이것저것 옷을 만져 보면서
게이꼬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일 나고야의 장례식에 가려 해도 입을 것이 없다.
게이꼬는 역시 한참 멋을 부릴 나이의 아가씨이다.
호화롭게 치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초라한 모습만은 보이고 싶지 않은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벌뿐인 코트는 동생에게 주어 버렸고
올해 바게세일 때 살 생각으로 적립한 돈은
제물이나 여비로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옷이 아니라고 억지로 자신에게 타일렀지만....
그중 하나를 골라 대보며 거울에 비춰보는
게이꼬의 표정이 왠지 착잡해 보인다.
다음날 코트 대신 털실로 짠 큰 쇼올을 두르고
게이꼬는 역으로 향했다.
교오또에 나가 신간선으로 가면 나고야까지 1시간 안팎이면 충분하지만
단 몇푼이라도 차삯이 싼 재래 철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중략....
나고야에 내린 게이꼬는 표지판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처음 걸어 보는 그 거리는 낯설기만 했고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안내소가 눈에 띄자 곧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소의 늙은 직원은
그야말고 친절하게 지도를 꺼내 가리키면서 알려 주었다.
게이꼬로서는 낯선 곳에서의 한마디가 그토록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안내원에게는 실제로 득이될 일이 아닌데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것이다.
안내원이 적어 준 대로 약도를 보며 나고야 시내를 헤매는 동안
하늘에서는 춤을 추듯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시로도가의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장례식은 광명사에서 한다는 종이 메모가 붙어 있었다.
게이꼬가 다시 광명사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장례 준비가 끝나 있었다.
"실례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던 게이꼬는 여고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과 마주쳤다.
"네, 누구신가요?"
"저어, 오오쓰의 춘추암에서 왔습니다만."
"네? 그 춘추암이라는 과자점? 설마! 거짓말!.....
아니 실례했습니다. 장녀인 요오꼬입니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그 여학생은 '춘추암'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안으로 사라졌다.
다시 그 여학생과 함께 나온 사람은 과자점에 왔던 그 시로도씨였다.
"아, 게이꼬양! 그저께는 정말 고마왔습니다."
"어머님의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부처님에게 하다못해 저희들의 마음을 바치고 싶어서
마음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시로도는 그저 감탄하여 게이꼬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게이꼬는 과자를 누군가에게 건네 주고 장례식에만 참석하려고 했는데,
시로도 가족들의 청으로 안으로 올라 가게 되었다.
"어머니도 기뻐하실 겁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안에는 꽤 호화로운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게이꼬는 과자 포장을 풀고 시로도에게 건네 주었다.
그것을 제단에 올리고 게이꼬는 염주를 꺼내어 향불을 올리고 분향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처음뵙는 손님.....
이 세상 마지막에 우리 가게의 과자를 먹고 싶다고 말씀하신 분,
미처 시간을 대지 못해 정말 서운하셨겠지요.
좋아하시는 과자를 떠나시는 길에 갖고 가시라고 인사차 왔습니다.
아무쪼록 편안히 쉬십시오.
모여 있던 시로도의 가족들은
게이꼬의 착한 마음에 차오르는 감동을 억제하며 숙연해졌다.
모처럼 왔으니까 장례식 뒤에 식사를 함께 하자고들 했다.
게이꼬는 자신이 소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소한 마음씀을
이런 식으로 크게 기뻐해 주니 쑥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
어쩐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아 기가 죽었다.
무엇보다 복잡한 그 자리에 오래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굳이 사양하고 절에서 빠져 나왔다.
시로도의 가족들이
고마운 사람에게 차 한잔 대접해서 보내지 못한 걸 알아채고
뒤따라 갔을 때는 이미 게이꼬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눈발이 날리는 나고야 거리를 걸으면서
게이꼬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발을 멈추고 서성거려야만 했다.
고별식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식이 시작되려면 1시간 반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낯선 나고야에서는 없었다.
눈발은 점점 커져 장례식이 거행될 때는
펄펄 날려 몇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산을 쓴 참배객들의 맨 뒤에 서 있는 게이꼬의
머리와 어깨에 수북이 눈이 쌓여가고 있다.
장례식 선두차 안에서 뚫어지게 게이꼬를 바라보는
시로도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 그는 격렬한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으로 가신 것이라 생각하니 별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19세의 게이꼬가 손님의 마음에 성심껏 보답하려고
우산도 쓰지 않고 눈을 맞으며
무심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의 아름다움에 감동되어 울고 말았다.
인간이 인간에게서 받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쁜 감정의 충격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자신 일류 기업의 판매과장 자리를 맡아
많은 부하를 지배하고 지도하며
적잖은 업적을 올려 만족과 자부를 느끼고 있지만....
상인에게 이런 멋진 세계가 현실적을 있으리라고는 미처 몰랐었다....
그러할 때 문득
'상인의 모습에서 앞치마를 두른 부처님의 모습을 본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야말로 게이꼬의 모습이 천사처럼 빛나 보였다.
며칠후, 과자점<춘추암>에는 게이꼬의 미담이 실린
시로도가 과장으로 재직중인 회사의 홍보 신문이 배달되었다.
나고야의 시로도로부터 부쳐온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따뜻함을 받는다는 것이
이토록 감동적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며
게이꼬를 훌륭히 키워온 여러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적혀 있었다.
비로소 게이꼬의 선행이 알려지고 춘추암의 사장은,
상인의 길은 인간의 길이라는 것을
부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노라고 무척 행복해했다.
춘추암에는 격려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게이꼬의 그런 행동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나까가와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의 생각은 모두 틀린 것이었다고 시인하며
시집을 읽고 싶으니 빌려 달라고 했다.
싸늘하지만 맑게 갠 오오쓰의 거리,
비록 코트조차 입지 않았지만 추위를 잊은 듯 걸어가는
게이꼬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아름다운 선행은 이처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여러 사람이 빵을 나누어먹듯이
그 기쁨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파해 뿌듯한 행복감을 심어 줍니다.
행복한 시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