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란 아이 - 찬송과 함께 돌아보는 어린시절

[이석호(Salzburg)]

넬리란 아이

벌써 10월 하고도 4일이 되었다. 이젠 연말씨즌인 것이다.

앞 마당 나무에서 벌써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 쌓이기 시작한다.

백화점과 수퍼마켓마다 핼로윈데이 캔디와 코스튬으로부터 추수감사절 용 주류와 성탄절 쿠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데코레이션에 호도까기 인형까지 온갖 연말 씨즌 상품들을 잔뜩 가져다 놓았다.

핼로윈데이,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 씨즌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성탄절 캐럴이다.

한달 정도 있으면 이곳 저곳에서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등장하면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상당히 무거워 보인다.

가게마다 손님들은 빵, 계란, 우유, 육류, 채소 등 5대 기초 식료품과 겨울용 옷과 신발 등 그저 기본적으로 필요한 생필품이나 챙기는데 바쁘다.

그 외에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곳이 있다면 식용유와 밀가루, 설탕, 그리고 치즈나 버터 같은 유제품 코너 정도... 

일년 사이에 두배로 오른 물가로 인해 연말씨즌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쌀과 밀가루, 우유, 계란, 채소와 바나나, 사과 같은 과일 등만 챙기고 나면 코스코나 쌤스 클럽에 더 이상 볼 일이 없다.

한국가게에 볼일이 있다면 고추장과 된장 정도..

팬데믹과 불경기는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고 그 덕에 화공약품이 많이 들어간 완제식품들을 멀리하게 되어 국민들의 건강에는 매우 좋은 환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ㅎㅎ)

"가을이면 생각나는 그사람..." 하는 노래가 있는데 나 역시 가을 낙엽질 때가 되면 생각나는 소녀가(?.. 오해 마셈) 하나 있다.

나는 이 소녀 덕분에 “가을이라 가을바람”이란 노래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소녀의 이름은 “순희”나 “영자” 같은 한국이름이 아니라 “넬리”라는 러시아 이름이었다.

그 이유는 그 소녀가 한만 국경지방에서 살던 한국사람과 러시아 사람 사이에에서 태어난 혼혈아였기 때문이었다.

육이오 때 한강 다리가 폭파되는 바람에 피난갈 길이 막혀 서울에 갇혔었던 우리 집안은 적과 아군 사이에 끼어서 우왕좌왕,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다들 어디로들 갔는지 모를 정도로 문자 그대로 풍지박산이 되었었다.

그 후 유엔군이 들어오고 서울이 수복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효자동의 게딱지 만한 기와 집에는 나와 누나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서울 사람들은 사실상 100% 실업상태였다.

목구멍에 풀칠하는 일이 급해진 사람들은 막노동이든 길거리 행상이든 아무일이나 닥치는데로 해야만 했다.

때 마침 동대문 옆에 전쟁 통에 부모나 보호자를 잃은 어린 아이들을 수용하는 일종의 전재고아 수용소가 생겨났다.

당시 열 다섯 살의 누나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그 고아 수용소의 유치부 보모로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했고 그 덕에 나는 직원 가족 자격(?)으로 그 곳에 머물면서 숙식을 해결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 바람에 효자동의 집은 상당기간 빈 집으로 남아있어야 했는데 그런 집은 우리집 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전재 고아 수용소란 곳은 어린 나에게는 매우 즐거운 추억을 남겨 준 곳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세상은 난리통이서 어른들에게는 하루 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었겠지만 철 모르는 나이였던 나에게는 졸지에 수십명의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매일 노래도 배우고 춤도추고 하는 등 갖가지 異國的이고(?) 재미있는 일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많은 찬송가와 크리스마스 캐럴 등 외에도 다른 여러가지 노래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나 "보리수", 그리고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같은 꽤 어려운 노래들도 들어있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이만 그곳에 수용되어있는 어린아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북한에서 월남해오던 중 가족을 잃어버리고 혼자 떠 돌다가 미국에서 온 기독교 계통 구호단체나 북한 출신 기독교 선교단체에 의해 구조되어 온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보모들이나 수용되어 있는 아이들이나 대부분 이북사투리를 썼고 자연히 이북사투리가  그 곳의 공용어가 되다시피 했었는데 누나는 내가 그것을 배우는 것을 못마땅해 해서 꾸중을 하기도 했다.

신기한 일은 그 수용된 아이들 중에 눈이 파랗거나 머리털 색갈이 옅은 아이들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고 그 아이들은 이름들도 이상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이 아이들은 일제 때 간도지방이나 함경도나 평안도 같은 국경지방에 살던 부모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는데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과 한국인들 간의 혼혈아 들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 “네리”라고 불리는 나 보다 한두살 많은 소녀가 하나 있었다.

머리털 색갈이 아주 검지 않고 노란색이었던 이 소녀는 보모가 노래를 시키면 항상 같은 노래를 했는데 나는 그것을 따라서 부르다가 결국 이 노래를 외워서 부를 수가 있게 되었다.

이 노래가 바로 “가을이라 가을바람”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 소녀의 이름이라고 알았던 “네리”는 사실은 “넬리”라는 러시아 이름의 일본식 발음이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 선교단체나 미군 대민 사업부서에서 그 수용소를 자주 방문했었는데 그 고아원에 수용되어있었던 아이들 중 백인 혼혈아가 있으면 미국으로 데려갔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쩌다 미군부대 위문을 가면 얼마 전까지 수용소에 같이 있었다가 없어진 아이가 그곳에서 작은 군복 차림으로 놀고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은 미국으로 입양이 되거나 아니면 주한 미군 장교나 선교사에게 입양되어 미국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 넬리라는 소녀도 지금 쯤 희수의 나이가 되어 미국 어디선가 손주들과 놀고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넬리가 아직도 이 노래를 기억하여 부르고 있을까 생각하며 영상음악으로 올려본다.

노래를 올리고 나서

올해 달력이 이제 석장 밖에 안 남았다.

오늘 집사람과 같이 쇼핑 나갔다가 2023년도 달력을 사왔다.

세월이 정말 살 같이 지나간다.

그러면서 마치 비행기 여행에서 이제 비행기가 목적한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승무원들이 상영하던 영화를 끄고 승객들 앞에 놓인 컵 등을 치우면서 부지런히 기내를 정리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찬송가를 몇 자리 올린다.

찬송가 "세월이 흘러가는데 - Shining Shore"의 후렴은 지금 나의 마음에 와 닿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노래가 반드시 나와 똑같이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지긴 하지만.

나는 이제 요단강 다리 입구에 다가온 것이다.

내 앞에 섰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기 차례가 되어 요단강을 건너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도 있고 내 친족도 있다.

“저 요단강 가 섰는데, 내 친구 건너 가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정리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마음대로 되어지지를 않아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 해도 해야 할 일이기에 일찍 할 수록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하늘이여, 나를 도우소서. (So, God help me.)

내 손과 혀가 굳어도 내 몸의 피가 식어도 나 영영 잊지 못할 곳은 은혜의 보좌 (Mercy-Seat) 시은소 - 찬송가 이세상 풍파 심하고

세상 사는 동안에 평안하게 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가게 합소서 - 찬송가 예수 사랑 하심은

[이석호(Salzburg)]

새찬송가 493장(통545) 하늘 가는 밝은 길이
https://www.youtube.com/watch?v=FNu72M7jgAo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윤길순 (TX)]

1. 세월이 흘러 가는데 이 나그네된 나는

괴로운 세월 가는 것 막을 길 아주 없네



(후렴) 저 요단강가 섰는데 내 친구 건너가네

저 건너편에 빛난 곳 내 눈에 환하도다



2. 저 뵈는 하늘 집에서 날 오라 하실 때에

등 예비하라 하신 말 나 항상 순종하네



3. 어두운 그날 닥쳐도 찬송을 쉬지마세

금거문고를 타면서 나주를 찬양하리



4.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줄 끊음일세

주께서 오라 하시면 내 본향 찾아가리

[윤길순 (TX)]

[이석호(Salzburg)]

등대지기 - 이선희
https://www.youtube.com/watch?v=nzHclAui8x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