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꽃 /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들고 서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말자 꽃이여
가을 길을 걷고 싶습니다.
향기 이정순
햇살이
다정히 잎을 쓰다듬는 가을
심술쟁이 바람은
가을을 어디로 보내려 합니다.
국화향기
그윽한 어느 카페에서
물 위에 둥둥 떠 갈 길 잃은
낙엽의 슬픔이 젖어듭니다
왠지 마지막
이별인 듯 떠나지 못하고
물 위를 이리저리 헤매며
외로움에 가을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날은 누구라도 좋은
사람 만나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가을 길을 걷고 싶습니다.
가을밤 / 도종환
그리움의 물레로 잣는
그대 생각의 실타래는
구만리장천을 돌아와
이 밤도 머리맡에 쌓인다.
불을 끄고 누워도
꺼지지 않는
가을밤 등잔불 같은
그대 생각
해금을 켜듯 저미는 소리를 내며
오반죽 가슴을 긋고 가는
그대의 활 하나
멈추지 않는 그리움의 활 하나
잠 못 드는 가을밤
길고도 긴데
그리움 하나로 무너지는 가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