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최제우의 <동학사상 기념관>은 언제쯤 어디에 어느 때에 들어설까?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해 동학을 주제로 서예대전이 열렸다. 송하진 전 지사는 수운 선생이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하느님에게 들었던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내 마음이 네 마음이고 네 마음이 내 마음이다“를 썼고, 효봉 여태명 선생은 <안심 치덕가>를 썼고, 김지하 시인의 <녹두꽃>과 안도현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쓰여진 전시회를 보고 나서 느낀 감회는 쓸쓸하면서도 서늘했다.
‘사람이 곧 한울님이며 만물이 곧 한울님이다. 인내천 (人乃天).
사람을 한울님처럼 섬기라.(사인여천事人如天)
수운 선생의 동학사상을 아는 이 별로 없고, 동학농민혁명만 회자 되는 이 시대, 그래서 수운이 동학을 창시한 경주에서도 ‘동학東學’을 처음으로 언급한 남원이나 전라도 충청도에서도 동학사상을 별로 논하지 않는 이 시대,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날의 역사가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운이 서른일곱 살이 되던 경신년 즉 1860년 4월 5일(양력 5월 25일)이었다. 수운은 장조카 최맹윤(崔孟胤)의 생일에 참석했다가 한기가 몹시 나서 집에 돌아왔다.
그 당시의 상황이 『대선생주문집』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1860년(경신년) 4월 5일은 큰조카 맹윤(孟胤)의 생일이었다. 의관을 보내어 오라고 청하므로 선생은 그 정의를 거절할 수 없어 억지로 잔치에 참석하였다. 얼마 안 있자 몸이 섬뜩해지고 떨리는 기운이 있어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바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이 휘둘러지며 마치 미친 듯 취한 듯이 엎어지며 자빠지며 마루에 오르자 기운이 솟구쳤다. 무슨 병인지 집증(執症)이 어려운데 공중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수운 최제우는 그날, 상제의 음성을 듣고 상제로부터 세상의 병을 고치는 영부(靈符)와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조화(造化)를 얻었다. 즉, 이 세상을 구하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수운은 그때 황홀한 경지 속에서 한울님의 말씀을 들었다.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치라” 말한 한울님은 이어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즉 내 마음(한울님의 마음)이 곧 네 마음(수운의 마음)이니라. 사람이 어찌 이를 알리오. 천지는 알고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 곧 나이니라. 너는 무궁무궁한 도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닦고 닦아서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온 세상을 빛나게 하리라. 나도 거의 한 해가 되도록 닦으며 헤아려 보니 역시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 이치가 없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주문(呪文)을 지으니 하나는 강령의 법을 지었고, 하나는 불망의 글을 지었다. 도 닦는 차례와 방법은 오직 스물한 자에 있을 뿐이다. 너에게 무궁무진한 도를 내릴 것이니, 이를 닦고 다듬어서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라. 너로 하여금 장생케 하여 이 세상을 빛내게 하리라.”
1854년부터 새로운 세상의 길을 얻고자 수행에 들어갔던 수운이 서른일곱 살이 되던 1860년 4월 5일(양력 5월 25일) 오전에 한울님을 만나는 종교 체험을 하게 되었다. 1859년 10월에 용담으로 돌아온 지 7개월 만이요, 입춘일 맹세 이후 2개월 반 만이었다. 이 종교 체험을 통해 수운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의미의 세계를 열게 되었다. 수운은 한울님의 말을 듣고 성신이 맑아짐을 느꼈고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체험과 빛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체험이 「안심가」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사월이라 초닷새에 꿈일런가, 잠일런가, 천지가 아득해서 정신 수습 못할러라.” 꿈과 같기도 하고 생시 같기도 해서 ‘여몽여각(如夢如覺)’의 상태라고 하였는데, 이돈화는 『천도교창건사』에서 그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고 다만 무한한 허공에 찬란하고 휘황한 빛이 가득 차서 뛰고 동하고 번쩍거리되 우주의 한끝과 한끝이 서로 맞닿은 듯하며 하늘과 땅의 뿌리가 서로 얽히어 온 천지만물이 그 밑층으로부터 나왔다 꺼지고 꺼졌다 다시 나오는 듯한지라 대종사 이것이 영부(靈符)임을 알았다.” 이것이 첫 번째 수운이 경험했던 것이고, 수운은 다시 두 번째 경험을 하게 된다.
“무궁(無窮)을 외우고 무궁을 노래하니 천지 일월성신 초목금수(草木禽獸) 인물이 한 가지로 그 노래에 화답하여 억천만 리 공간(空間)이 눈앞에 있어, 먼 데도 없고, 가까운 데도 없으며, 지나간 시간도 없고, 오는 시간도 없어 백천억 무량수의 시간과 공간이 한마음 속에서 배회함을 보았다.”
수운은 4월 5일의 신비한 체험을 두고 새로운 길(道)을 ‘받았다’ ‘얻었다’ ‘닦아냈다’고 표현했다. ‘받았다’는 것은 한울님이 주는 것을 받았다는 뜻이고, ‘얻었다’와 ‘닦아냈다’는 것은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와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낸 것을 말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이돈화(李敦化)는 “인류의 기타 천지만유는 하나의 연쇄 위에 세워 있는 신(神)의 자기표현(自己表現)이다”라고 말하며 무극대도의 본질적 특성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체득한 것이라고 보았다.
세계 최초로 노비를 해방한 수운
깨달음을 얻은 최제우는 두 사람의 여노비를 해방시켰다. 한 여자는 수양딸로 삼았고, 한 여자는 며느리로 삼았다. 1860년의 일이었으니 미국의 노예해방보다 몇 년 앞선 세계 최초의 노예해방이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난 것은 1861년이었다. 미합중국의 북부와 남부가 벌인 내전(內戰) 남북전쟁은 1865년까지 4년간이나 이어졌다. 남북전쟁은 길고도 소모적이면서도 비극적이었다. 피아간의 싸움이 격렬하던 9월 17일의 앤티텀 전투에서 북부군은 남부군에게 크게 이겼다. 그때 북부군이 추격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남부군은 궤멸했을지도 모른다.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면서 북부군은 남북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이 그때라고 여긴 링컨은 9월 22일 소집된 각의에서 역사적인 노예해방선언을 했다. 몇몇 각료들이 반대했다. 하지만 링컨은 한마디로 말했다.
“노예해방은 신의 엄숙한 명령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 미국의 대통령인 나, 에이브러햄 링컨은 (…) 반란 주로 지정된 주에서 노예로 있는 모든 사람은 1863년 1월 1일을 기해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임을 선포한다. (…) 이 선언은 진실로 정의를 위한 행위이며 군사상의 필요에 의한 합헌적 행위이다. 이 선언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인류의 신중한 판단이 있기를 기원하노라.”
링컨의 예상대로 노예해방선언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는데, 남부의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주인집을 도망쳐 나와 의용병으로 북군에 가담했다. 결국 북부군이 남북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했고, 1865년 1월 마침내 의회는 노예제도를 전면 금지하는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켰다. 법률상으로 노예제도는 미국에서 공식적인 종말을 고했다. 치열한 격전 끝에 패한 남부가 다시 연방(聯邦)으로 복귀하는 데 10여 년이 걸렸다. 하지만 미국에서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였다.(...)
최제우가 동학을 펼치던 당시, 1862년 음력으로 8월 24일 최제우가 바라본 그 당시 세상의 봄 풍경은 어떠했을까?
“꽃잎이 봄바람에 휘날림이여, 붉은 꽃이라서 붉은가.
가지마다 팔락거림이여, 푸른 나무라서 푸른가.
뒤섞여 어지러이 뿌림이여, 백설이라서 흰가.
넓고도 넓어 아득함이여, 푸른 강이라서 맑다 하는가.
둥실둥실 노를 저음이여, 물결은 잔잔하고 모래사장은 십 리가 되는구나.
길을 거닐면서 한담을 나눔이여, 밝은 달 동쪽에 솟아올랐고, 바람은 북쪽에서 불어오고 있구나.
태산이 높고 높음이여, 공부자(孔夫子)가 오를 때는 언제였을까.
맑은 바람 솔솔 불어옴이여, 오류 선생이 잘못을 깨달음이라.
맑은 강의 넓고 넓음이여, 소동파와 나그네가 풍류를 즐길만 하구나.
연못이 깊으니, 이는 주렴계가 즐기던 곳이라.
푸른 대나무의 푸르고 푸름이여, 군자의 속되지 않음을 보여주도다.
푸른 소나무의 푸르고 푸름이여, 귀를 씻은 처사의 벗이 되리라.
명월의 밝고 밝음이여, 이태백이 품으려던 달이로다.
귀는 소리를 듣고 눈은 색깔을 본다 하니, 이 모두가 고금의 한가로운 이야기로다.”
「처사가(處士歌)」라는 이 글은 한 편의 아름다운 시다. 그래서 그런지 이 글은 「포덕문」 「논학문」 「수덕문」 「불연기연」 등 네 글을 하나로 묶어 해월이 펴낸 책인 『동경대전(東經大全)』에는 실려 있지 않다
신정일의 <동학의 땅 경북을 걷다> 책에 실린 글인데, 수운과 해월이 꿈꾸었던 세상은 언제 오려는지 기약이 없고, 자꾸 세월만 뜬구름처럼 흐르고 있으니,
2024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