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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뒷마당은 낙엽의 세상이다. 노란 잎들이 감나무아래 수북하다. 머리 위 옆으로 삐진 한줄기 가느다란 오둠지 끝에 매달린 한 조각 벌레 먹은 가을이 쓸쓸하다. 잎이 떨어진 감나무가 파르르 몸을 떨고 있다.
2년 전 뒤뜰에 감나무를 심겠다고 하자 남편은 뒤늦게 무슨 과일나무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집으로 이사 온 지 30년도 넘었다. 이집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우리 아이들은 9살 7살이었다. 애들도 어리고 나도 시간을 쪼개 주 7일 발바닥이 닳도록 일을 하던 때라 과일 나무 같은 것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다.
요즘 애들이 커서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손자들이 태어나고 그 손자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은퇴를 한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과일나무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나도 웬만큼 무심無心한 사람이다. 그런데 몇년 전 느닷없이 단감나무를 심고 싶었다. 마음먹은 김에 남편을 졸라 감나무를 하나 사왔다.
왜 그 많은 과일 나무 중에 하필 단감나무였을까. 한국 사람에게 단감나무만큼 찰싹 안기는 나무도 없겠지만 아마 내가 단감을 좋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은 두말 않고 땅을 파고 거름을 깔고 정성껏 한 그루의 감나무를 심어주었다. 봄이 되자 감나무는 푸른 잎을 너울거리며 수숫대처럼 쑥쑥 자랐다. 그러나 정작 남편은 감나무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바람 따라 홀로 먼 길을 떠나버렸다.
금년 봄 그가 심어준 감나무가 푸른 잎을 넓죽넓죽 펴더니 노란 감꽃을 휘늘어지게 피웠다. 노란 꽃 밑에 푸른 모자를 쓴 도토리 같은 감들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쏴아 스쳐가는 바람에 몸을 흔들어대는 감들이 어찌나 예쁘고 살가운지 땅속에서 요술쟁이가 요술을 피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수년 째 계속되는 캘리포니아의 가뭄은 남 가주에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불러왔다. 수많은 호수들이 말라 땅이 쩍쩍 벌어지고 수십만 그루의 과일나무가 타 죽었다. 과일농장을 초토화시켜버린 것이다. 가정집이라고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있을까. 우리 집 잔디와 화초 그리고 내 감나무도 절제와 인내가 요구되었다.
시에서는 일주일에 3번, 최소의 물을 주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지금껏 쓴 수량보다 더 많은 물을 쓸 경우 벌금을 물게 된다는 경고장이 찰싹 붙어있었다. 물론 옛날처럼 집 앞의 드라이브 웨이에서 수돗물로 차를 씻는 것은 당연히 금지되었다. 호된 가뭄에 감나무를 심어 그나마 물 부족을 부채질 한 셈이 되고말았다. 그렇다고 감나무를 마르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시의 공문을 무시하고 매일 감나무에 물을 질퍽하게 주었다.
어느 날 아침 무탈하게 허공을 점령해가던 감들이 모두 떨어져버렸다. 감나무 잎을 들치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벌레가 파먹은 흔적도 달팽이가 꼭지를 베어 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감들이 우박처럼 떨어졌을까 가슴이 아렸다. 허탈한 심정으로 일어서다 맨 뒤쪽 가지에 한 개의 감이 그나마 가지를 꽉 붙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 남은 감은 겁먹은 눈빛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감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디. 하나라도 남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싶었다. 그 마저 없었다면 감나무는 외로워 떨 것이고 나는 또 남편한테 얼마나 미안했을 지. 아마 내가 감나무에 물을 너무 많이 줘서 그리 된 것 같았다. 시의 경고를 함부로 무시한 벌일까? 감나무의 감자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설쳐 주렁주렁 열린 감을 다 잃어버렸다. 그나마 하나 남은 감이 나를 위해 땅을 파고 땀을 씻던 남편을 기억하고 단단히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한 개의 감에 온 정성을 쏟았다. 8월말 쯤 그 하나 남은 감마저 툭 떨어져버렸다. 그 한 개의 감은 그동안 자라 시집 갈 처녀처럼 예뻤다. 한 달만 더 견디지. 눈가가 뻐근하도록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떨어진 감을 주워 한참 들여다보다 감나무 밑에 가만히 묻어주었다.
10월이 왔다. 사상 최악의 더위였다는 남가주의 불빛 더위도 꼬리를 내렸다. 온도는 느린 걸음을 걷고 바람은 한결 여유롭게 훨훨 날아갔다. 나는 여전히 감이 떨어져버린 감나무에 물을 준다. 앙상한 감나무지만 아침마다 들여다보니 정겹고 사랑스럽다. 물을 준 뒤 감나무 옆에 앉았다. 이런저런 추억들이 네온불빛처럼 머릿속을 반짝거린다. 작년 이맘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그 전 해는? 아니 그 옛날 옛날에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숨바꼭질 하듯 지나간 시간들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기억은 막혀버린 통로처럼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 2년의 시간이 내게는 지금껏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고통의 늪이었고 삶의 의미를 기쁨을 압수당한 시간이었다.
남편과 살아온 40여년의 세월, 나는 한 번도 그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내 옆에 있고, 다른 방법으로 사는 것을 몰라 내 허락 없이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그에게 주인이었다.
얼마 전부터 감나무 잎이 또르르 말리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나쁜 결과가 올때 나는 늘 남편 탓을 했다. 내 생퉁 맞은 원망에 ‘또 나야’ 하고 웃어버리던 남편. 지금 그가 곁에 있다면 감이 떨어진 것, 감나무 잎이 마른 것, 이 모두를 그에게 떠넘겼을 텐데.
투정부릴 상대가, 원망할 남편이 없다는 것이 세상에 고아가 된 어린 아이처럼 두렵고 캄캄했다. 그가 내 곁에 있을 때 나는 모르는 게 없는 박사였다. 나도 다 아는 것을. 옆에서 조언하는 그에게 늘 짜증을 냈다. 지금은 아침에 눈을 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5피트의 짧은 신장身長 속에 든 단순한 지식으로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다.
울적한 심사에 남은 감나무 잎들을 모두 따버렸다. 그냥 두면 감나무 잎은 더 마를 것이고 더불어 내 인생도 물기가 빠져나갈 것 같았다. 물을 주려고 뒤뜰의 호스를 잡아당기다 물큰 무엇인가를 밟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지막 하나 남았든 감이었다. 그 감이 오렌지 빛 가을을 한입 베어 물고 있었다. 남편은 땅바닥에 떨어진 감이나마 내 손에 쥐어주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땅을 파던, 나 혼자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을 잘 다녀오라며 대문 앞에서 쓸쓸히 손을 흔들던 남편의 모습이 바람 속에 흔들렸다. 나는 쓰린 눈가를 훔치며 잎이 떨어진 감나무가 마르지 않게 충분히 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