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다.
너와집 쪽마루에서 하염없이 팽나무 가지에 걸린 그믐달을 바라보며 연초를 태우던
변 서방이 곰방대를 두드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칠남매가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마지막 밤, 마누라 옆에 누웠다.
마누라도 그때까지 자지 않고 울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삼년은 금방 가네.”
산비탈에 콩 심고 조 심어 아홉식구 입에 풀칠하다 맏이와 둘째가
열네살, 열두살이 되자 보잘 것없는 밭뙈기 농사는 식구들에게 맡기고
변 서방은 삼년 동안 구리 광산에 광부 일을 하러 멀리 함경도 무산으로 갔다.
삼년이란 세월은 후딱 지나가지 않았다.
고래심줄처럼 질겼다.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몰살할 때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광부 일은 고되고 목숨도 운에 달려 머슴살이 새경보다는 한배 반이 많았다.
죽을 고생을 했지만,
목숨도 건지고 세월도 채워 삼년치 새경을 삼베주머니에 싸서 전대로 말아 허리춤에 차고
마누라 줄 박가분에다가 아이들 선물을 한보따리 단봇짐에 지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삼복더위가 푹푹 쪄도 날 더운 줄 몰랐다.
날이 저물면 주막에서 자고 날이 새면 걸었다.
이레째, 머루 고개를 넘다가 고갯마루 약수터에서 단봇짐을 내려놓고 벌컥벌컥 타는 목을 축이고 층층나무 그늘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서는 서둘러 고개를 내려갔다.
“어~엇!”
변 서방은 얼어붙었다!
하늘이 노래졌다. 전대는 찼는데 돈주머니는 없어졌다.
단봇짐을 벗어 내팽개치고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전력 질주했다.
약수터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당나귀 한마리를 매어두고 말잡이 사동과 노인이 그늘에 앉아 있었다.
변 서방은 두손을 땅에 짚고 꿇어앉아
“나나나나나으리 돈주머니 하나 모모못보셨…?”
혀가 꼬여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누런 삼베주머니에.”
노인네가 돈주머니를 건넸다.
변 서방은 돈주머니를 움켜쥔 채 머리를 땅에 박고 엉엉 대성통곡을 하며
“나으리, 고맙습니다. 나으리~.”
노인네가 변 서방의 등을 두드리며
“일어나시오. 주워서 주인한테 돌려준 것뿐인데.”
정신을 차린 변 서방이 노인네를 바라보니 옥색 세모시 바지저고리에 유건을 쓴 모습이
귀하고 부티나는 분이라 돈을 꺼내 사례할 순 없어 말했다.
“어르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사시는 어르신인지요? 가을걷이 바쁠 때 소인이 한두달 도와드리겠습니다.”
노인이 빙긋이 미소 지으며
“그럴 필요 없소.” 고개를 저었다.
변 서방은 다시 그 노인에게 큰절을 올리고 고개를 내려가다
풀숲에 처박아놓은 선물 단봇짐을 지고 걸음을 재촉했다.
고개를 다 내려가자 마을 어귀에 폭포소리 요란한 용소가 시커먼 물을 빙그르르 돌리고
그 너머 개울엔 새카만 아동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냇가엔 주막이 자리 잡고 있어 변 서방은 하도 놀란 하루라서 그날 밤은
일찌감치 그 곳에서 자기로 했다. 바로 그때였다.
“사람 살려~.”
한 아이가 주막 안으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평상에서 술 마시던 장돌뱅이들이 뛰쳐나가고 변 서방도 따라나갔다.
용소에 아이 하나가 빠져 용소 소용돌이 따라 천천히 돌며 잠겼다 떠오르고
또다시 잠기며 힘이 빠졌다.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어른들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뛰어드는 사람이 없었다.
변 서방은 헤엄을 칠 줄 몰랐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하러 들어가면 둘 다 죽는다느니,
용소는 하도 깊어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도 닿지 않는다느니,
목숨을 끊은 처녀 귀신이 물속으로 잡아당긴다는 소문이 예부터 내려와 어른들도 겁냈다.
그때 “저 아이를 구해내면 삼백냥을 주겠소!”
크게 고함친 사람은 변 서방이다.
“참말이요?”
젊은이 하나가 나서자 “빨리빨리” 라며 변 서방이 방방 뛰었다.
젊은이가 풍덩 뛰어들어 물에 빠진 아이와 잠겼다 나오기를 반복할 때
변 서방이 빼온 주막집 장대 끄트머리가 젊은이 손에 닿았다.
물가로 끌어낸 아이는 축 늘어졌다.
젊은이가 가슴을 계속 짓누르자 울컥 물을 토하며 아이가 눈을 떴다.
젊은이가 변 서방 팔을 잡고 주막으로 갔다.
변 서방은 말없이 전대를 풀어 그 젊은이에게 건넸다.
삼년 동안 목숨 걸고 구리 광산에서 일한 새경 삼백냥을 고스란히 건네주고 나자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는 듯 몽롱했다.
그때 흘려버렸던 돈을 주워 변 서방에게 건네줬던 노인네가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주막으로 들어오더니 변 서방 두손을 잡고
“의인이요!! 내 손자를 살려주시다니! 이 은혜를…....” 한다.
변 서방이 깜짝 놀랐다.
남향받이 산자락 양지 바른 집터에 석공들이 기단을 다지고 목수들이 달라붙고
노인이 대들보에 상량문을 쓰고 기와장이들도 손놀림이 재빨라
시월상달에 열두칸 기와집이 솟아올랐다.
“깨갱깽깽.”
사물놀이패가 새 집을 돌고 돼지를 잡고 술독을 걸렀다.
변 서방네 아홉식구가 이사를 왔다.
그 노인이 마련해준 기와집으로.
그리고 문전옥답 서른마지기 땅문서도 받았다.
첫댓글
天道無親, 常與善人 천도무친, 상여선인 입니다
하늘의 뜻은 편애하는 일 없이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에 선다'는 뜻으로
천도무친(天道無親)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입니다
하늘의 참된 도는 늘 한결 같이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인을 베푼다고 한다.
(하늘은 착한 사람의 편에 선 다.)
변서방의 착함을 아시고 하나님이 성경 말씀대로 300냥 보다 100배로 갚아 주는 은혜를 내리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나고 돈났지 돈나고 사람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귀한것이 없지요
오늘도 내일도 착하게 살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