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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조 숙 녀 조 폭 되 기 ◈
Graceful lady become gangster
Written by.땡깡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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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실제는 아마도 시기한 같은 강호파 놈들 중에 한 놈이 살해했겠지. 나라면…그 새끼, 죽이고 싶을 텐데……. 어떤가, 윤 희?”
희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꽝꽝 얼어버린 입술이 움직일 리 없었다. 눈알조차 굴릴 수 없었다. 차갑게 얼어버려 깜빡이는 것조차 못하게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돌릴 수가 있을까. 지금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 그가 칼을 들고 있는 건 아닐까. 희는 미친듯이 떨려오는 몸을 도무지 진정 시킬 수가 없었다. 다 알고 있다. 그가… 무서워하는 사람 중 가장 일순위인 그가… 모든 걸 알고 있다.
“더불어, 능력을 인정한 게 아니라… 짐승과도 같은 욕정에 사로잡혀 억지로, 자신이 원할 때마다 동생을 취한 더러운 보스란 새끼를… 세상에서 최고로 잔인하게 죽이고 싶을 테고.”
이내 입을 닫고 있던 희의 입에서 어렵사리 목소리가 나왔다. 끄윽 거리는 죽는 소리였다. 폐에 구멍이 뚫려서, 또는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짓눌러서 나는 그런 소리. 그런 소릴 내는 희의 눈에 이젠 눈물이 고여 가기 시작했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여기서 일하기 시작할 때 사실을 말하고 들어오는 놈 별로 없으니까. 단지, 나였더라면 복수를 위해 동생이 들어가 있던 강호파를 들어갈 텐데, 라는 그냥 시시껄렁한 말이었을 뿐이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아서 올라올 여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도 여유롭게 그가 말했다. 희는 두려워 벌벌 몸이 떨리는데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냉랭하기만 하다. 희는 어디 하나 다른 구석 없는 그의 목소리에 용기를 내어 애써 두려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들며 천천히 우석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 표정조차도 평소와 다른 게 없었다.
“허튼 짓 하지 말아라.”
눈빛이 달랐다. 어디 하나 다른 곳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희는 겁먹은 표정으로 이젠 그를 쳐다보고 있는 채로 몸이 굳어버렸다.
“대답해라, 윤 희. 대답할 수 없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라.”
“저, 저는…”
희는 무슨 변명이라도 해보려고, 이 위기를 모면해보려고 입술을 드디어 어렵사리 열었다. 드디어 사람소리를 내기 시작한 희를, 우석은 여전히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봤다. 희는 여태 깜빡이지 않고 열어두고 있던 눈이 아파와 겨우 이제야 눈을 깜빡였다. 너무 오랫동안 깜빡여주지 않은 탓에 그녀의 눈동자는 토끼눈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단지, 저는… 처음에 말했던 이유처럼 살기가 힘들어 조폭에 뛰어들었을 뿐입니다. 저는… 저는… 저따위 혼자 어떻게… 복수따윌 하겠습니까. 고아라는 것은 거짓말이었지만…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단 건 사실이었습니다.”
희가 힘겹게 말을 겨우 끝마쳐서 변명을 했다. 그리고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조차 두려워, 희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희를 우석은 여전히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가, 이내 평소에 무엇도 담기지 않은, 모든 걸 다 관심 없다는 듯 응시하는 눈동자로 돌아와선 편안히 등을 소파에 기대며 입술을 떼었다.
“잘했다.”
“…………….”
그가 자신의 말을 믿어줬다는 것만으로 희는 마음이 놓여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덜덜 떨리는 양 손을 꼭 서로 쥐곤 어디 한 곳도 의지할 것 없는 현재, 어떻게든 버텨보려 노력했다. 당장에라도 실신해버릴 듯 오금이 저렸다.
“여자로 속인 건 잘한 거다.”
이젠 몸이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계속 줄곧 덜덜 떠느라 허리가 다 아파오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아무리 최대한 괜찮은 놈들로 솎아낸다고 솎아내도 원래가 썩어빠진 조폭놈들이다. 그 사이에 있으려면 여자보단 남자가 안전하지.”
스윽. 그 말이 끝이었는지 우석이 꽁초가 되어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는 여전히 부들부들 떠는 채로 잠자코 굳은 자세로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가 했던 말을 천천히 되새김질하다가 희는 방금 던진 그의 말이 칭찬처럼 여겨졌다. 우뚝. 미친듯한 떨림이 멎었다. 희가 천천히 어렵게 시선을 들어올려 일어선 그를 올려다봤다. 그 역시도 희를 보고 있었고, 희는 눈이 마주치자 놀라 얼른 고개를 떨궜다. 탁- 그때, 희의 앞 테이블에 작은 병 같은 게 놓였다.
“현권이 놈한텐 들키지 마라. 그 놈은 네가 거짓말 한 거 알면 죽일 거다.”
섬짓.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 너무도 진실 된 말투라서 희는 온 몸에 털이 곤두섰다. 그는 그 말만을 남겨놓은 채. 아니, 테이블 위에 술 깨는 약을 얹어놓은 채 룸에서 나갔다. 남겨진 희는 멍하니 눈앞에 놓인 약병을 쳐다보다가 달칵, 하는 문 여는 소리에 퍼득 정신을 챙겼다. 이미 술은 다 깬 지 오래였다.
“형님이 항상 강조하는 게 있다.”
현권이 자연스럽게 희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방금 우석의 말 때문에 그가 조금 무서운 상태인 희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를 조심히 바라보았다.
“형님 외엔 식구 된 놈 뒷조사 하지 않는 것.”
현권의 말에 희는 잠시 멍청한 얼굴이다가 금세 그의 말뜻을 알아챘다. 그의 말인즉슨, 그는 자신의 비밀에 대해 전혀 모른다. 더불어,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을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우석이, 희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다는 걸 알아챘단 뜻이었다.
“나는 보스는 사실 어찌 되도 상관없어, 우석형님만 무사하면. 단지, 우석형님이 보스를 따르고 소중히 하시니까 나 역시 그럴 뿐이지.”
흠칫. 희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모든 조직원들은 ‘보스’를 따른다고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다? 희는 현권의 얼굴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는 동안, 현권은 웃지 않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네가 우석형님한테 해가 되는 사람이라면…… 넌 내 손에 죽는다.”
진실. 현권의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는 그렇게 말했다. 희는 몸을 움츠렸다. 이쯤되면, 그러니까, 자신이 몸을 움츠리며 겁낼 때쯤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는 항상 무서운 모습을 감추고 다시 본래의 꽃미소를 날리며 온화하게 돌아오곤 했다. 아니, 어쩌면 이 무서운 모습이 그의 본모습인지도 모른다. 꽃미소를 짓는 그게 가면인지도.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희는 그 가면을 현권이 써주길 바랐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번만큼은 그녀가 아무리 겁먹은 표정을 지어도 끝까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말을 이었다.
“난 거짓말 싫어한다. 혹시라도 네가 날 속인 게 있다면, 그리고 그게 우석형님께 해가 되는 것이기까지 한다면……”
현권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 위협적으로 낮아진 그 목소리가, 음산하게 희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찢어 죽인다.”
쿠웅. 쿠웅. 희의 심장이 급박하게 뛰었다.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이 사람은 무척이나 위험한 사람이라는 감지였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희는 지금 현권의 말이 모두 진실인 걸 알았다. 단지, ‘죽인다.’라는 게 진실이 아니다. 말 그대로, 뜻 그대로 ‘찢어 죽인다.’ 찢.어.죽.인.다. 라는 것이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말대로 일 경우, 찢어 죽일 생각임이 분명했다. 희는 겁이 나, 기운이 쭉 빠졌다. 눈물도 안 나올 만큼. 자신은… 그가 말한 찢어 죽일 조건에 충족하는 사람이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얇은 몸을 한 겨울에 발가벗겨 내버린 아이처럼 벌벌 떨기만 하는 희를 지그시 노려보던 현권이 말이 끝났는지 비로소 미소 지었다.
“가자. 가서 자야 내일 일을 하지.”
현권의 부드러운 음성에도 희는 정신을 쉽사리 차리지 못했다. 현권이 그런 희에게 좀 더 활짝 웃어보이곤 먼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자신이 지금 쳐다보고 있으면 그녀가 몸 움직일 것이란 걸 알고 있기에. 그녀가 정신을 챙길 시간을 줘야 하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므로. 협박을 듣고도 멀쩡할 위인으론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던 아이니까. 그리고 현권의 예상대로 희는 현권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던 터라, 그가 나가자마자 가쁜 숨을 내쉬며 겨우 겨우 안정을 취해갔다.
“아아…….”
희는 의미 없는 소리만 내뱉으며 몸을 손으로 비벼가며 애써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작은 병에 시선이 닿았다. 우석이 남기고 간. 뭉클. 여직 나지 않던 눈물이 이제야 돌기 시작했다. 희는 꾹 눌러 눈물을 참아내곤 뚜껑을 따 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술은 이미 오래 전에 다 깼지만, 내일 숙취를 위해선 먹어두는 게 좋을 테니까.
“비야. 사람은 역시… 겉모습으로 판단해선 안 되나보다.”
겨우 몸의 떨림이 멎은 희는 가만히 중얼거리며 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현권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권이 사람 좋게 웃으며 ‘화려한 신고식 때문에 걷다 졸도할까봐.’라는, 묻지도 않았는데 기다린 이유까지 유쾌하게 덧붙이는 현권을 보고서야 겨우 두려워하는 눈을 거둬내고 본래대로 ‘조폭 같지 않은 사람’이란 시선으로 현권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조폭 같지만 조폭 같지 않은 부드러움. 조폭 같지 않지만 조폭 같은 살벌함. 두 사람… 반대였어.’
아까부터 계속 맴도는 이 생각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청 우석.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조폭이란 느낌을 풀풀 풍기는 남자가, 숙취약까지 손수 챙겨주고……. 마 현권.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조폭이란 걸 모를 남자가, 찢어 죽인다는 말을 진실로서 한다는 꽤나 충격적인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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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잠을 자려던 현권이 벌떡 몸을 일으켜 서랍장을 뒤적거렸다.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한밤중에 꽤나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가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던 현권은, 드디어 찾던 것을 손에 넣었는지 활짝 웃으며 달빛에 반짝 빛나는 그것을 꺼내들었다.
“한 번도 쓴 적 없으니 날도 잘 갈려있을 테고.”
활짝 웃는 그의 순수 그 자체의 미소와 달빛에 반짝 거린다는 묘사만 본다면 그가 지금 집어든 게 무슨 보석 박힌 장신구쯤으로 생각 되겠지만, 아쉽게도… 그리고 소름끼치게도 그가 꺼내든 것은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손잡이의 작은 접이식 나이프였다. 아주 날이 잘 갈아진. 어찌됐든, 현권은 잘 갈려있을 날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릴 기세로 굴며 희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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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문 두드리는 걸 결벽증처럼 중요시하는 현권답게 똑똑, 우아하게 두 번 방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선 아무 반응도 없었고, 안으로 들어선 현권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이런…….”
선물을 받고 좋아할 희를 기대했는데, 술을 진탕 마시느라고 들어오자마자 옷만 대충 갈아입고 뻗어버린 희. 현권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침대로 다가갔다. 어쩔 수 없지, 라고 중얼거리며 현권은 선물로 주려고 가져온 나이프를 주머니에 넣었다. 내일 주리다, 생각하며 현권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자고 있는 희에게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다, 살짝 손등에 닿은 볼의 촉감. 부드럽다 못해서 황홀할 지경인 살결의 느낌에 현권은 머리꼭지부터 발톱 끝까지 찌릿하고 일어나는 강한 전율에 휘청, 다리에 힘이 풀려 침대가에 걸터앉았다.
“여자가 고픈가.”
현권이 당황해 바보처럼 중얼거렸다. 눈은 동그랗게 뜨고, 차마 희쪽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벽만, 허공만 의미 없게 응시하며.
“하긴, 여자 안 만난지 오래 되긴 했지만…”
현권의 얄팍하고 붉은 입술이 옅게 떨리기 시작했다. 현권이 상기 된 얼굴로, 온 몸에 확확 오르는 열을 식힐 도리가 없어 애꿎은 앞머리를 쓸어 올려 엉망으로 만들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사내놈한테 욕정을 느끼는 건 뭐야…….”
현권이 그러는 사이에 목까지 뒤집어씌운 이불이 답답했는지 뒤척거리던 희의 손이 현권의 침대에 아무렇게나 얹어진 손에 닿았다. 따뜻한 온기에 흠칫 놀라며 현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안 되겠다 싶어 현권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나오자마자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찌하지 못해 현권은 겨우 벽을 짚고 섰다. 그러더니 불현듯 얼굴을 확 구기곤 힐끗 문을 노려봤다.
“어디서 형님을 유혹질이야.”
자느라 뒤척거리다 손이 닿은 걸 유혹이란다. 자신의 말이 얼마나 황당한 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현권은 머리를 확 흔들어 정신을 추스른 뒤에야 희의 방문앞에서 벗어났다.
11.
“왜 준 거지?”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던 희는 스탠드 위에 아무렇게나 얹어놓은 장갑에 시선이 박히고 무의식중에 중얼거리며 장갑을 집어 들고 잠시 잊었던 고민을 다시 했다. 가을이라 그렇게 날씨가 추운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춥다고 치더라도 손가락이 없는 장갑을 낀들 따뜻할까. 도무지 이 손가락 없는 장갑은 어떤 용도로 쓰라는 건지 몰라 희는 미간을 찡그렸다.
“쓰벌! 안 오냐!”
그러는데, 벌컥 문을 열고 쓰벌이 들어와 소리를 빽 질렀다. 희가 움찔하고 그의 우렁찬 음성에 놀랐다가 곧 이젠 익숙해져 무섭지도 않게 된 쓰벌인 것을 깨닫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돌아와 대꾸하며 장갑을 스탠드에 내려놓았다.
“나갑니다!”
희는 쓰벌이 좋아하는 대로 크게, 우렁차게 대답하고 그를 따라 걸음을 떼는데, 퍼득 그가 손에, 우석이 준 것과 비슷한 장갑을 끼고 있는 게 보여서 걸음을 멈추었다.
“장갑은 왜 꼈습니까, 형님?”
희가 궁금증 가득가득한 눈으로, 초롱초롱 빛내가며 질문해오자 방을 먼저 빠져나가려던 쓰벌이 멀뚱멀뚱 희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좀 알려주세요~ 얼른요~’하는 너무도 궁금해 하는, 그래서 귀엽기까지 한 얼굴을 하고 묻는 희의 얼굴을 보자 괜시리 뭔가 부끄러워진 쓰벌이 버럭댔다.
“쓰벌! 그것도 모르냐? 손뼈 안 나가게, 또는, 때리느라 마찰 생기면 상처 생기니까 그거 방지하려고 끼는 거잖냐. 쓰벌!”
“아!”
희는 드디어 용도를 깨달았다는 기쁨에 소리를 내지르며 활짝 웃음 지었다.
“요조야. 넌 여직 그것도 모르고 싸움을 했냐?”
쓰벌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며 홱 먼저 몸을 돌려 걸어가 버리자, 희가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어가 얼른 장갑을 들고 뛰어나오며 그의 뒤를 따랐다. 일을 하러 가면서 장갑을 손에 끼던 희는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뭐에? 우석의 섬세함에. 아무리 여자라지만, 손이 꽤나 많이 작은 편인 희이기에 사이즈를 잘 맞춰 사오지 않으면 헐렁해 제대로 쓰지 못했을 텐데, 그는 어떻게 그녀의 손에 꼭 맞는 장갑으로 사온 것이었다. 아마도 손에 이래저래 상처 난 것을 살펴보면서 얼추 눈대중으로 손의 크기도 가늠했던 모양이다. 새삼 희는 그의 따뜻함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서 희는 그의 이 따뜻함을 홀로 알고 있으면 안 되겠거니 싶어서 누구한테는 털어놓고 싶어서 앞에 걸어가는 쓰벌을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형님. 큰형님은 정말 좋으신 분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쓰벌.”
“형님도 처음 조직원 될 때 큰형님이 선물 사주셨습니까?”
“어.”
“뭐 사주셨습니까?”
“마누라 장례비용 대줬다. 쓰벌.”
“네? 장례비용이요?”
“그래. 쓰벌. 귀찮으니까 입 좀 닫아라.”
“무슨 장례비용이요?”
“아, 정말 아새끼. 말 안 들어. 쓰벌!”
“말씀해주십시오. 뭔데요?”
희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쓰벌을 재촉했다. 쓰벌은 연신 귀찮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쉬며 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로서 희가 며칠 사이에 쓰벌을 무섭지 않아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즉, 그는 생긴 것과 말투와는 다르게 의외로 고순한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로 하여금 무섭지 않은 사람 중 하나가 된 것이었다.
“내가 여기 처음 조폭으로 들어올 때 내 아내가 디질라이 아팠거든. 쓰벌……. 병원비만으로도 살기 버거워서 확 같이 목숨 줄 끊어버릴까 했는데, 그 년이 살고 싶다는 거야. 자기는 악착같이 살고 싶대는 거야. 쓰벌년. 이딴 더러운 세상 뭐가 좋다고 그래도, 끝까지 살고 싶다 그러대. 쓰벌. 그럼 어쩌겠어. 병신 같은 나는 병원비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일해야지. 죽어라 일해도 돈 안 벌리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포기하고 이쪽 길로 왔지. 쓰벌. 워낙에 막 살던 인생이라, 싸움질이야, 질리도록 해본 몸이니 할 수 있겠거니 싶어서.”
“…………….”
그냥 궁금증에 한 질문인 데에 비해서 꽤나 진부한 이야기가 이어져, 희는 묵묵히 쓰벌의 말을 들었다.
“쓰벌. 확실히 좋게 버는 것보단 더럽게 버는 게 잘 벌리긴 하드라고. 근데도, 그 살고 싶다고, 악착같이 살고 싶다고 하던 년이 나보다 먼저 죽드라. 쓰벌. 웃기지? 근데 또… 장례비는 왜 그렇게 드는지……. 빌어처먹을. 뭐 해준 게 없어서 가는 길이라도 돈지랄해주고 싶은데, 지랄할 돈이 없드라. 그래서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 대충 하려는데, 형님이 새 식구 된 선물로 그 지랄 나대신 해주시드라.”
“…우십니까, 형님?”
“울긴 왜 울어!”
희가 조심스레 그를 위로해볼 요령으로 목소릴 냈는데, 쓰벌이 벼락같이 화를 내며 돌아보는 탓에 희가 놀라며 목구멍으로 위로의 말을 쏙 집어넣었다. 생긴 게 확실히… 무섭긴 무섭다.
“조폭 중에 그나마 우리 조폭이 가장 조폭 같지 않은 조폭으로 유명한 이유도 그래서다.”
“장례비 대줘서요?”
“이런 병신이!”
희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정말 모른다는 듯 되묻는데, 쓰벌이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며 핀잔을 주곤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물론, 험한 말 섞어서.
“다른 조직 가봐라. 우리처럼 형님이 일일이 아랫것들 신경 쓰는 데, 아무데도 없다. 쓰벌. 그리고 형님이 사람 고르는 기준도 아무리 썩어빠지고 썩어빠진 놈들이 이리로 흘러 들어온다고 해도 게 중에서도 쓸 만하고 인간적인 놈으로 고르기 때문에, 그나마 인간성 갖춘 조직원들로 이루어진 데는 우리 은파다. 물론, 원체 썩은 놈들이라 남들 눈에 어차피 썩은 놈으로 보일 테지만. 쓰벌. 그래서 식구라고 하는 게, 그냥 말로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는 서로를 식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배신 따위는 당연 꿈도 안 꾸고.”
식구. 희는 멍해지는 것 같았다. 이들은 조폭이고, 또 아무리 봐도 못된 인간들임이 분명한데… 그런데 지내는 사이에 어느샌가 정이 들고 그래서 아, 사람은 원래 살 맞대고 오래 지내다보면 금세 친해지고 그러는 존재니까. 라고 대충 얼버무렸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건 단순히 그런 문제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었다. ‘은파’라서 였던 거였다. 이 조직이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정이 들을 수 있었던 거였다. 이들이… 가족처럼 다가왔던 이유는 ‘은파’ 조직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조직 싫어하는 조직들 많다. 같은 조폭인 주제에 지들은 뭐 곱상한 줄 알고 지랄 떤다고. 쓰벌새끼들.”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희는 쓰벌의 말에 퍼득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금 벌어졌던 거리를 다시 뽈뽈뽈 뛰어가 따라잡았다.
“오늘은 혼잡니까?”
희가 딱 보기에도 낡은 대문에 작은 집을 보곤 어림짐작해 물었고, 그녀의 짐작이 맞았는지 쓰벌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들보다 더 앞서 걸어가던 조폭들이 먼저 대문을 부술 기세로 열고 들어가고, 그 뒤를 희와 쓰벌이 따랐다. 이젠 일에 익숙해져버린 자신이 조금은 증오스러웠지만… 비를 생각하면 견뎌낼 만했다. 희는 집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그 귀엽고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그녀답지 않은 가면을 뒤집어썼다. 싸늘하고 냉정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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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잘 되고 있습니까?]
"응, 네가 준 정보덕분에… 훨씬 쉬울 수 있었어, 고마워."
[고마울 거 없어요. 비에 대한 거니까.]
희는 자신의 동생과 같은 조직에서 일했던, 아니, 일하고 있는 그리고 동생을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한준이 괜히 친근감 가고 그러는 데, 한준은 단지 비에 대한 복수를 위해 손을 잡은 동업자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희를 생각지 않는지 목소리는 감정없이 딱딱하기만 했다. 그것에 희 역시도 조금은 서운했는지 힘차던 목소리에서 슬쩍 힘이 빠지고, 무미건조한 어투로 변해갔다.
"너는 어때? 나는 얻은 건 없어. 단지, 내가 조직원 중 하나라는 인식을 심어줬을 뿐이지. 생각보단 계획 진행 속도가 빨라서… 좋은 것 같아."
희가 다시 기분 좋은 목소리로 돌아왔다. 한달. 그래, 예상과는 다르게 이들한테 인정 받고, 자신 또한 어느정도 조폭답게 변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 고작 한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예상보단 굉장히 빠른 속도다. 성과가 나름 마음에 드는지 칭찬해달라는 투로 말하는 희의 목소릴 잠자코 들어주던 한준이, 여전히 딱딱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대꾸해왔다.
[윤 희씨보단… 성과가 좀 더 좋은 편이죠. 본래부터 여기에 발 담그고 있었던 처지니까… 정보 수집에만 힘 들이면 되니까요.]
"아, 그래……. 그럼 앞으로도 수고해줘. 조만간 이 쪽에서 또 성과가 괜찮으면 연락할게."
[몸 조심하세요, 그럼 이만.]
뚝. 미련없다는 듯이 끊긴 수화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희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나이도 같은데, 반말을 해도 괜찮을 텐데. 한준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곱씹으며 희는 또 한 번 한숨을 폭 내쉬며 수화기를 내려놓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왔다. 핸드폰은 오래전에 처분했다. 핸드폰을 남겨두면 자신이 본래 생활로 돌아가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만 같아서. 무엇보다 같이 일을 도모한 비의 남자친구인 한준과 연락하는 걸 핸드폰으로 해오다, 혹시라도 핸드폰을 누군가 보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니까. 희는 주위를 한 번 휘 둘러보곤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린 뒤에야 걸음을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조직의 아지트인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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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이게… 말이죠?"
"응."
희는 선물이라며 해맑은 얼굴로 자신에게 불쑥 내미는 것을 받아들고 기쁜 얼굴로 확인하다가… 차츰 그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물건이 무언지를 깨닫곤 더듬거리며 겨우 대꾸를 했는데 현권은 그게 감동 받아서 그런다고 자진판단을, 그것도 판단 오류를 범하곤 뿌듯해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잘 쓸게요."
희가 힘겹게 감사인사를 건넨 걸 전혀 모르는 현권은 그 힘겹게 내뱉어지는 말투 역시도 너무 감격해서 목이 메여와 그런다고 판단을 내리곤 흐뭇한 표정으로 희의 어깨를 두어번 토닥여줬다.
"사용법은 누구한테 배웁니까?"
어느새 진정을 한 희가 예의 그 이상의 침착한 어조로 가만히 물었다. 희의 적극적인 배움을 바라는 태도에 감탄을 '아!'하고 내뱉으며 현권이 살짝 웃는 얼굴로 손가락을 펴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것에 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 되묻기를 했다.
"형님이요?"
"응. 내가 직접 가르쳐줄게."
현권의 말에 희가 사슴같은 눈을 끔뻑끔뻑거리며 있다가 아, 하고 낮은 탄성을 내뱉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 되었다. 그는 원래가 칼을 잘 다루는 사람이니까. 안쪽 주머니에 항상 은색 나이프를 가지고 다니는 것만 해도 대충 어림짐작 가능하지. 그런데, 그것보단…
"괜찮습니다. 쓰벌형님이나, 떡대형님한테 배우면 됩니다. 아니면, 홀쭉이 형님도 괜찮구요."
희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워놓고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상냥한 목소리임에도 현권은 왠지 기분이 확 나빠져서 얼굴을 구겼다.
"걔네 칼 잘 못 다뤄."
아이처럼 투덜거리는 투로 말하는 현권. 그리고 그런 현권을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볍게 한 번 굴리며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한껏 보여주는 희. 그런 희의 모습에 자신이 다섯 먹은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현권은 얼굴을 얼굴에 붉은꽃을 그리며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조금 숙여 긴 앞머리로 얼굴을 가렸다. 그의 표정을 살필 수 없게 된 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폈다.
"형님 앞머리를 잘랐으면 좋겠습니다. 그 앞머리가 형님 잘생긴 얼굴 다 가립니다."
희의 말에 현권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두근, 두근, 두근. 격렬하게 반응해오는 심장의 고동에 현권이 얼굴을 괴기스레 일그러트리며 홱 고개를 들어올려 희를 째려봤다. 갑작스럽게 그가 눈에 불을 키고 자신을 노려보자 지레 겁을 먹은 희가 몸을 뒤로 쑥 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죄, 죄송합니다. 형님!"
뭘 잘못한 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희는 다른 조폭들과 이미 동화상태. 일단은 형님들이 화난 것 같다 싶으면 사과하고 보는 버릇을 어느샌가 덩달아 하고 있었다. 현권이 희의 사과에, 어정쩡하게 표정을 풀며 길게 짜증스런 한숨을 내뱉었다.
"요조야."
"네, 네. 형님."
"기집애같이 굴지 마라."
"아, 알겠습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아, 짜증나네. 이게 아닌데……. 잘못하긴 뭘 잘못해? 그냥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래."
풀이 죽어 사과를 하는 희를 보자, 쿡 하고 심장부근이 미안함으로 찔리는 느낌을 받은 현권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대더니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리곤 쯧, 하고 한 번 혀를 찬 뒤에 희를 쳐다보며 어느새 진정된 표정으로 잠자코 명령했다.
"칼 쓰는 법은 내가 가르쳐준다. 다른 놈한테 배울 생각일랑 말고, 매일 아침 7시에 창고로 나와라."
단호하게 말하는 현권인지라, 희는 더 이상 무어라 토를 달지 않고 얼른 '네.'하고 대답하는 수밖엔 없었다. 그러면서 현권의 애매모한 표정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표정이 이상했다. 뭔가 되게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같고,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랄까. 되게 복잡하게 여러 감정이 뒤섞인, 뒤죽박죽인 표정이랄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이라 한참을 빤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희는 현권이 '뭐해? 나가봐.'라는 말에 정신을 퍼득 챙기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그의 방을 빠져나왔다. 달칵. 문을 닫고 걸음을 떼는데…
"비!"
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작게 소리쳤다. 방금 표정. 현권이 짓고 있던 애매모호한 표정! 그건…… 비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수줍어하며 고백할 때, 슬픈 표정으로 그 사람도 조폭이라는 말을 할 때의 표정과 흡사했다. 사랑에 빠진, 하지만, 무언가 걸려 갈등하는 표정! 그래, 그 표정이 분명했다. 희가 홱 몸을 틀어서 닫힌 문을 현권의 방문을 쳐다봤다.
"설마……."
희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심장은 자신이 생각한 가설에 두근두근대고, 얼굴을 자꾸만 빨개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희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재빨리 벗어났다.
12.
“실전처럼 한다.”
“네, 형님.”
현권의 말에 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긴장한 얼굴로 오른손을 앞으로, 하체를 조금 낮추고. 정확하게 싸움을 시작하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진지하게 가르침에 임하는 희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현권이 살짝, 남들은 모를 정도로, 본인만 알 정도로 입꼬리를 올려 옅게 웃었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너, 자세 굉장히 좋다. 배운 적 있냐?”
“네?”
바로 시작할 줄 알았던 희는 생각지 못한 현권의 물음에 어리벙벙한 표정이 되어선 어정쩡하게 자세를 풀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현권은 희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깊숙이 그녀의 목 주위로 쑤셨다. 민첩성 하나만큼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희는 당연하게도 반사 신경만으로 가뿐히 그것을 피했다.
“가, 갑자기 공격해 오시는 게 어딨습니까?!”
놀라서 콩닥콩닥 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버럭 소리쳤다. 놀란 마음에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형님이란 사실 따위는 하늘 위로 둥둥 날아가 버렸다. 희가 피할 수 있을 거란 예상은 대충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완벽히 피할 줄은 몰랐기에 현권은 꽤나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거… 막 살았다더니 그냥 막 산 게 아닌 모양인데.’
현권은 미간을 모으고 희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궁금증과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아래위로 자신을 쓰윽 훑는 현권의 시선에 희가 눈을 찡그리며 몸을 살짝쿵 움츠렸다.
“뭘 그렇게 살, 살펴보십니까?”
희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으려 했으나 말끝이 스리슬쩍 떨리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단지 그가 몸을 훑었다는 사실만으로 몸을 움츠리는 이유는 두 가지. 한 가지는 여자인 게 들키기라도 할까 하는 것과 나머지 다른 하나는 어제 깨달은 사실때문. 혹시나 하고 떠올렸던 그것 때문.
“키 작고 마른, 왜소하기 짝이 없는 체구로 너, 대체 얼마나 막 산 거냐? 대체 얼마나 싸움을 해대면 동작이 딱딱 배운 듯이 깔끔하고 반사 신경이 그렇게도 뛰어날 수 있는 거냐?”
“그건……”
현권의 물음에 희가 뭐라고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태권도를, 유도를, 합기도를… 운동이라는 운동은 죄다 다녔다고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헌데, 살기 힘들어서 막 살았다는 놈이 운동 배우려고 돈을 쓴다? 뭔가 앞뒤가 안 맞아. 희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어두워졌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 고민한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그저 희가 질문만으로 이렇게 어두운 표정을 짓는 거란 생각에. 그리고 그건 현권의 눈에 굉장히 짜증스럽게 다가왔다.
“…많이 힘들었냐?”
“네?”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가!’라는 고뇌에 빠져 정신을 반쯤 놓고 있던 희는 불쑥 들어오는 현권의 또 다른 질문에 놀라 되물음을 하며 바닥으로 향하고 있던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현권은 짜증으로 뒤범벅 된 얼굴을 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되, 되물음 안 하려고 하는데… 제가 생각에 빠지면 정신을 반쯤 놓는 버릇이 있어서…….”
희가 얼버무리듯 변명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허리를 90도로 숙여서 인사 하는 것도 물론 잊지 않고. 마음에 안 들어. 현권은 더욱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희가 사과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한테 하고 있는 사과인데도. 현권은 불쑥 올라온 짜증의 이유를 잘 헤아리지 못한 듯했지만.
“감히 형님을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해?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본인이 짜증난 것을 엉뚱한 데로 분출하는 걸 보면.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형님!”
다시 한 번 희가 허리를 크게 굽혀 잘못했음을 알렸다. 찌릿. 현권은 자꾸만 가슴 쪽에서 뭘 알아달라는 의미처럼 자꾸만 짧게 전해져 오는 전율에, 정전기에 손이 데여 놀라 떼는 것만 같은 느낌에 인상을 더 험악하게 찌푸렸다.
“집중 똑바로 해라. 다시 시작한다.”
“네, 형님!”
현권이 차가운 어투로 말하고 손에 들고 있는 그의 은색 나이프를 다시 고쳐 잡았다. 그에 맞춰 희도 자세를 갖췄다.
“칼을 다루는 놈들이라고 다 같진 않아. 각기 칼을 쓸 때 어쩔 수 없이 드러내는 버릇이나 또는 일관적인 패턴이 있기 마련이야.”
“네.”
“그리고 내가 그 다양한 버릇과 패턴을 해보일 테니까 네가 그걸 파악해내고 날 제압하면 돼.”
“제압은… 어떻게 하면 제압입니까?”
“칼을 못 휘두르게만 만들면 돼.”
“아……. 저… 근데…”
“시작한다.”
“아, 저! 질문! 으앗!”
현권의 말을 들으며 알아들었단 의미로 고개를 끄덕끄덕 대던 희가 퍼득 든 의문에 질문을 좀 하려고 하는데 현권은 뻔히 희의 말을 들었으면서도 마치 귀머거리라도 되는 양 모르는 체하며 칼을 냅다 휘둘렀다. 빨랐다. 아니, 느린 듯도 했다. 아니, 그보다 뭔가… 굉장히 다가서기도 힘들 정도로 정신없이 휘두르는 것 같았다. 아니, 아닌가. 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현권이 휘두르는 칼을 피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제압을 하라고!”
움찔. 피하던 희는 버럭 내지르는 현권의 목소리에 놀라버린 탓에 몸을 잠시 주춤거렸고 놓치지 않고 현권의 칼은 희의 여린 살에 빨간 금을 그었다. 따끔, 하는 통증에 희가 또 몸을 주춤거렸다. 그 바람에 찍. 이번엔 반대쪽 볼에 빨간 금이 주욱 그어졌다. 아까보다 조금 더 크게.
“다쳤다고 주춤거리면 죽는 거다. 눈앞에 칼이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 다쳐서 우왕좌왕하는 건 ‘나 죽여주세요.’하는 것과 같아.”
냉랭한 목소리와 어둠 속 살쾡이의 눈처럼 희번득거리는 그의 다갈색 눈동자에 희가 잔뜩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그걸 본 현권은 다시 휘두르려던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차츰 사납기 이를 데 없던 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덕분에 몸을 잔뜩 움츠려서 줄이고 상처 받기 싫어 어딘가로 숨을 듯 굴던 희가 조금 몸을 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상대의 버릇이나 패턴을 파악하면 너는 딱히 칼을 휘두를 필요도 없이 이길 수 있어. 플러스로 너도 칼을 들고, 상대도 칼을 들었을 때도 네가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어.”
“아!”
현권의 말에 한숨 돌리던 희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려 현권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언제 겁먹었냐는 듯 해맑게 웃는 희의 얼굴에, 현권은 사르륵 온 몸이 녹아내리는 기상천외한 느낌을 받았다.
“그게 제 질문이었습니다, 형님! 왜 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고 해놓곤 저는 칼을 쥐지도 못하게 하시고 제압을 하라는 지 그걸 묻고 싶었습니다.”
“…볼 안 따갑냐?”
헤헤거리고 궁금했던 사실을 알게 돼 아이처럼 기뻐하는 희의 얼굴을 이상야릇한 기분으로 바라보던 현권은 그녀의 양 쪽 볼에 쓰라릴 정도로 죽, 주욱 그어진 상처에 눈길이 닿았다. 본인이 해놓고도 마음이 아파, 현권은 삼키는 침이 썼다.
“따갑지만 방금 형님이 휘두른 칼의 패턴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뭐?”
희의 자신감에 찬 답변에 미안해서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숙인 채로 긴 앞머리로 얼굴을 가리던 현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희를 쳐다봤다. 설마, 하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는데 현권의 설마를, 희는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을 실현 시켜서 현권이 ‘하?’하고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제주도-추석연휴-중간고사
바쁜 일정이 모두 겹친 바람에 연재가 늦어지고 있네요.ㅠㅠ!
폭연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루 올릴 수 있는 게시물 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 때문에.
흐어..ㅠㅠㅠㅠㅠ정말정말 죄송해하고 있다는 점만 알..알아주세요♥
첫댓글 재미있게 잘 봤어요>< ㅎㅎㅎ 현권이가 희에게 요로코리한 감정을... 엄훠... 흐흐흐
항상!! 꼭!! 빠뜨리지 않고 꼬리말 달아주시는 따뜻한쪼꼬렛니뮤ㅠㅠㅠ!! 홍보때부터 줄곧 봐주시는 따뜻한쪼꼬렛님♥ 싸랑해용.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재 이야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후에 나올 예정인 건데 따뜻한쪼꼬렛님껜 특별히 알려드릴게요! 우석이는 초콜릿을 정말 좋아합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 네, 현권이는 이미 야시꾸리한 감정을 그녀에게 갖고 있어요. 그런 거예요.//따뜻한쪼꼬렛님 愛♥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ㅎㅎㅎㅎ진짜까지 붙여주시면서까지 재미있다고 해주시니!! 어찌할 도리를 모르겠어요!!ㅎㅎㅎㅎㅎ ahalu님ㅠㅠ반가워요. 정말정말요! 아하루. 이렇게 읽는 게 맞나요?ㅎㅎㅎㅎ닉네임 읽고 뭔가 발음이 참 맑다는 느낌이 드네요! 닉네임에 특별한 뜻이 있나요?ㅎㅎㅎ!! 희는..................ㅠㅠㅠ글쎄요!! 밝혀지면 어찌될 지~ 희와 함께 조마조마하며 지켜봐주시옵소서!!ㅋㅋㅋㅋㅋㅋㅋ!!//ahalu님 愛♡
ㅎㅎ 완전 재밋게 잘봣네요ㅎㅎ 거짓말.... 둘이 좋아하는 감정 느끼는거 같던데...ㅎ
담편 기대할께요ㅎㅎ
이싸람들잌ㅋㅋㅋㅋㅋㅋㅋㅋ다들 왜 이렇게 말을 예쁘게 잘 쓰세요!! 진짜도 그렇고, 완전도 그렇고ㅠㅠㅠㅠ~ 고작 두글자만으로 이렇게 사랑스러운 문장이 만들어진다니 감탄중입니닼ㅋㅋㅋㅋㅋ!! 거짓말~ㅋㅋㅋㅋㅋㅋㅋ뭔가 말투가 얼레리꼴레리....그 느낌이라 귀엽네용♡ㅋㅋㅋㅋㅋㅋㅋ 과연~ 두 사람은 좋아하는 감정을 서로 느끼고 있을까요오옼ㅋㅋㅋㅋ후이익후이익. 지켜봐주세요~ㅎㅎㅎㅎ//hanyun님 愛♥
오늘 첨으로 재미있게 봤어요 ㅎ 현권이가 희에게 감정이 있는거 같네요 ㅎ 담편 기대요^^
안녕안녕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우리 앞으로 계속 만나는 거죠? 그렇죠?!ㅎㅎㅎㅎㅎ저, 계속 정아님 기다려도 되는 거겠죠!! 저 목...안 빠지겠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도 함께. 완결까지 함께. 함께 해주쎄여~ㅎㅎㅎㅎㅎ넵! 다들 느끼셨겠지만 현권이가 희에게 감정이 있습니다! 네, 있어요. 부정하지 않겠어요.ㅋㅋㅋㅋㅋ다음편 기대하신다고 하셨는데ㅠㅠㅠ이렇게나 늦게 왔네요! 죄송해요!ㅠㅠㅠㅠ흐엉ㄹ//정아님 愛♡
ㅎㅎㅎ 희가 어떻게될지 점점 기대되네요 ㅎㅎㅎ
점점점 기대와 함께 조마조마해주셔욬ㅋㅋㅋㅋㅋ아, 아니에요. 아직은 조마조마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후에 밝혀질 거예요. 더더더더더 후에. 그러니 지금은 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잘 적응해갈지! 혹은 적응하지 못해서 겪는 고통은 뭘지! 지켜봐주세요~ 보링이님~ 이제 보링이님 닉네임도 눈에 익기 시작했어요ㅠㅠ!! 항상 이렇게 꼬리말 남겨주셔서 진짜 힘돼요, 정말요!//보링이님 愛♥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ㅎㅎㅎㅎ불량식품님 오랜만입니다ㅠㅠ!!! 보고 싶었어요~♥ 저도 방학입니다.ㅎㅎㅎㅎ!! 자주 들어올 수 있으시다니!! 오오!! 너무 좋아요! 정말로요! ㅠㅠ아, 저 다른 건 모르겠고...항상 느끼는 바지만 메인에 제 소설이 뜨거나 혹은 딱 저 혼자 쓰는 게시판, 혹은 소수의 사람이 쓰는 게시판에서 연재하고 싶네요. 이렇게 찾아와주실 때, 시간이 좀 흐른 뒤면 찾기 힘들잖아요, 소설.ㅠㅠ그렇죠? 근데도 이렇게 찾아와주시는 점. 정말 너무 감사하고ㅠㅠ제가 좀 더 인지도 있는 작가고 그렇다면 좀 더 소설 읽기 편하셨을 텐데 싶으셔서 죄송스럽기도 하고ㅠㅠ 그렇네요~//불량식품님 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