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 날의 단상’
수업 시간에 늦어 부리나케 학교에 들어서는데 어느새 피었는지 개나리 덤불이 노란 뭉개구름이 되어 교정을 뒤덮고 있었다. 아, 봄이로구나! 문득 마음 속으로 외쳤다. 신비로운 계절의 순환도 이제는 타성이 되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신기할 것도 없는 나이, 그저 일상에 쫓기어 살다보니 무심히 흐르는 세월 속에 어느덧 봄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책상 위에 쌓인 우편물을 뜯어보니 미국 친구가 보내준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짧은 책자가 있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작가의 이름 중에 가장 낭맘적이고 아름다운 이름 ‘말테의 수기’ ‘도이노의 비가’등 고독, 슬픔, 사랑, 죽음의 시를 쓰고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 중학교 때 열심히 외웠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시인------.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프랑시스 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때로는 가슴 안에 우울도 꽃이 될 수 있다네
때로는 가슴 안에 사랑도 죄가 될 수 있다네.
오늘은 내가 그대에게 보내는
흑장미 한 송이
전생에 뉘 가슴에 맺혔던 피망울인지.”
처절할 정도로 낭만적인 연가를 부른 사인, 그리고 이렇게 자지러질 듯 샛노란 개나리가 필 때면 불현 듯 밀려오는 향수처럼 내 어린 시절의 어느 봄날가 함께 생각나는 이름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살았던 제기동 우리 집 근처에는 복개된 넓은 개천이 있었다. 여름이면 온갖 잡초가 무성해 모기의 온상이었지만 봄이면 이리저리 엉킨 길다란 덤불에서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곤했다. 하루는 집 앞에서 친구들과 공기 놀이를 하고 있는 그쪽에서 아이들이 뛰어오며 소리 질렀다.
“이리 와봐! 사람이 죽어 있어. 빨리!”
우리들이 우르르 몰려 간 그곳에는 정말 개나리 덤불 밑에 검정색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모자를 쓴 채로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진짜 죽은 듯이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곧 엄마들이 불려 나왔고, 우리는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며칠 동안 굶어서 허기가 져서 쓰러져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그를 우리집에 데리고 가서 점심을 주었고 아이들은 다 오리집으로 몰려와 그가 툇마루에 걸터 앉아 밥을 먹는 것을 구경했다. 물론 집주인의 자격으로 내가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가 밥을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씹어 먹었다는 것 외에는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의 무릎 위에 놓여 있던 책 표지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집’이라고 씌어져 있는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릴케가 1903년부터 1908년가지 어느 시인 지망생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그의 사랑에 관한 정의이다.
“우리는 어려운 것에 집착하여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 자신의 고유함을 지닐 수 있습니다. 고독한 것은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다른 모든 행위는 그 준비에 불과합니다. 젊은이들은 모든 일에 초보자이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사랑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배워야 합니다. 모든 존재를 바쳐 외롭고 수줍고 두근대는 가슴으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초기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합일, 조화가 아닙니다. 사랑은 우선 홀로 성숙해지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릴케에 의하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자격이 필요해서 먼저 나 스스로의 성숙한 세계를 이루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안일주의에 빠져 어려운 것을 피하고, 나의 ‘고유함’을 잃은 지 오래고, 남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기는커녕 여전히 옹졸한 마음으로 길을 잃고 헤메며 살아가는 나는 어쩌면 사랑할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는지 모른다.
중년의 어느 봄날, 배고파 기절하면서도 시를 읽는 어리석음이 문득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을 웬일일까. ‘릴케’ 라는 이름이 열정과 낭만을 잃고 한줌의 재가 되어버린 나의 메마른 가슴에 작은 불씨를 지펴 놓은 모양이다.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P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