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는 웅장한 해안 절벽이 울릉도를 감싸듯 둘러싸고 있고, 다른 쪽에는 푸르게 영롱한 바다가 반짝인다. 자연을 가르는듯한 색다른 기분. 울릉도 일주도로에서 느낄 수 있다.
사진=월간 아웃도어
울릉도에서 단연 최고의 장소는 울릉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해안길이다.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는 울릉도 일주도로를 달리면 때로는 암석의 뚫린 틈을 통과하고, 다양한 바위들을 마주칠 때마다 각각의 사연을 찾아보고, 깎아내린 듯한 해안절벽을 올려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차 안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호강도 누릴 수 있고, 망망대해를 달리는 아득함마저 느껴진다. 아는 만큼 즐겁다고, 아무리 일정이 길어도 늘 짧게만 느껴지는 여행의 시작은 울릉도 일주도로를 먼저 돌아보고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울릉도의 다양한 모습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미리 찾아낼 수 있다.
사진=월간 아웃도어울릉도 일주도로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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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63년 울릉도 일주도로 건설을 결정했다. 실제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76년이며, 2001년에서야 39.8km 길이의 1차 울릉도 일주도로를 개통했다. 하지만 울릉읍 저동리 내수전과 북면 천부리 섬목을 잇는 동쪽 4.7km 남짓한 구간은 울릉도에서도 절벽이 가장 험하고 해안과 맞닿아 있는데다 지반이 약한 곳이라 도로를 내기가 쉽지 않았고, 미개통 구간으로 남았다. 때문에 북면에서 도동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면을 거쳐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1시간 30분이 소요됐다. 당시 남겨진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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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묵혀둔 숙제였던 이 구간을 연결해서 완전한 일주도로를 만들기 위해 2011년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2019년 3월, 사업이 시작된 지 55년 만에 완전한 일주도로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마침내 울릉도 일주도로 44.5km의 전 구간이 개통됐고, 북면에서 도동항까지 15분 만에 닿을 수 있게 됐다. 울릉도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교통이 편리해졌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었다.
올해 3월에는 2015년부터 확장공사를 진행한 일주도로 터널 5곳 중 하나인 남양터널의 공사가 마무리됐다. 공사 전 1, 2차로가 섞인 형태로 도로 폭이 좁아 차량 통행이 어려웠던 문제를 2차선으로 확장하며 해소했고, 낙석, 산사태 등 자연재해를 대비할 수 있는 모습도 갖췄다. 앞으로도 일주도로는 더 안전하고 편리한 모습을 갖춰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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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월간 아웃도어바다 위 다양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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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절벽을 끼고 푸른빛 바다를 천천히 따라가면 보통 일주도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울릉도 초행이라면 내비게이션에 간단히 목적지와 경유지를 입력하고 출발하기를 추천한다. 일주도로를 한 바퀴를 돌면 1시간 30분 남짓 소요된다고 나오지만, 중간중간 천천히 경치를 음미하려면 시간은 그보다 넉넉히 잡아두는 게 좋다.
입도항이라 울릉도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인 도동항과 저동항. 그중 저동항을 일주도로 출발지로 정했다. 일반적으로는 시계방향으로 도는 코스로 향하지만, 조금이라도 시원한 광경을 가까이 마주하려 반시계방향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저동항부터 관음도-천부항-현포항-학포해안-남양항-사동항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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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저동항이 있는 저동리의 상징인 촛대바위를 만난다. 촛대를 세워놓은 형상처럼 보여서 촛대바위라고 이름 붙었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이 바위로 변해버렸다는 전설도 담겨있어 효녀바위라고도 불린다고. 방파제에 힘겹게 붙어있는 듯 이질적인 광경이다. 푸른 바다에 넋을 빼앗겨 바라보고 있다가 유유히 바다 위에 떠 있는 관음도도 마주친다. 새들의 섬이라 불리는 관음도 옆을 지나는 구간이라 그런가, 울릉도 터줏대감인 괭이갈매기들이 더 분주하게 움직인다.
조금 더 지나면 울릉도 3대 비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삼선암이 나온다. 옛날에 세 선녀가 가끔 울릉도에 내려와 목욕을 즐겼는데, 한 날은 옥황상제가 걱정되는 마음에 세 선녀가 울릉도로 내려올 때 믿음직한 장수와 용 한 마리를 함께 보냈다고 한다. 목욕을 즐기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데 막내 선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막내 선녀를 찾았는데, 함께 온 장수와 눈이 맞아 정을 나누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옥황상제는 분노하며 세 선녀를 이 자리에서 바위로 만들어버렸다. 나란히 있는 두 바위는 두 언니고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바위가 막내 선녀라고 전해진다. 이곳은 물결이 유난히 센 곳이라고 하는데, 바위에 부딪히는 높은 파도는 옥황상제의 매질일까. 슬픈 사연을 알고 나니 세 바위가 외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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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부터 바다 위의 웅장하게 솟아오른 송곳봉이 시선을 뺏는다. 송곳봉은 해발 430m의 암벽으로, 마그마의 통로인 화도가 굳어서 만들어졌다. 상대적으로 점성이 높은 조면암질 용암은 쉽게 흐르지 못하기 때문에 지표에 봉긋하게 올라와 용암돔을 만들었고, 오랜 세월 동안 침식되어 현재와 같이 경사가 가파르고 뾰족한 형태를 갖게 됐다. 송곳봉 뒤편에는 8개의 구멍이 있는데, 옥황상제가 착한 사람을 하늘로 낚아 올리기 위해 뚫어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사진=월간 아웃도어탐험 같은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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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가로질러 바다로 쏟아지는 듯한 암석의 틈으로 차들이 유유히 빠져나온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슬아슬하고도 멋진 광경에 감탄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이런 터널들은 한 번에 차가 한 대씩만 지나갈 수 있다. 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렇게 1차선으로 좁아지는 구간이 간혹 있어서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지 신호를 잘 지키고, 반대쪽에서 오는 차를 다시 한번 살피며 주행하자. 도로의 폭도 넓지 않기 때문에 서행은 기본이다.
병풍처럼 일주도로의 배경으로 자리한 해안절벽. 같은 듯 조금씩 다른 광경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러다 낯선 암석을 마주한다. 울릉도의 생성 역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버섯바위다. 이 바위는 뜨거운 용암이 수중에서 분출할 때 생성된 미세한 화산쇄설물 입자가 퇴적된 용회암이다. 마치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쌓인 지층이 그림을 그려둔 것처럼 아름다운데, 이렇게 버섯을 닮은 외형은 지층이 차별침식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버섯바위 맞은편에는 약 700m 길이의 몽돌해안이 있다. 다른 지역의 몽돌해안보다 자갈이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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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가 코스요리라면, 울릉도 일주도로는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 전에 설렘을 한껏 끌어올리기 위한 애피타이저 같다. 지질명소와 비경들을 한 번에 만끽할 수 있는 훌륭하고 다양한 풍미까지 갖췄다. 마지막 목적지인 남양해변과 사동항을 향해 달리며 내가 선택할 메인요리를 머릿속으로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