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오늘은 1, 2 학년 반장들 군기도 잡을 겸 좌우 정열도하고
전달할 말도 있어서 집합을 시켰다.
기태형이 우리를 교육시킬 때보다 아이들이 좀 더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전시효과도 낼 겸 강목하나를 손에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장들은 성적 관리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반에서 누구누구를 더 편애하거나 미워해서도 안 되고 누구에게 만 더 관심을 가지고
누구에게는 무관심 해도 안 된다.
반장은 반 전체 아이들에게 공평하고 편만하게 관계를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해 주기 바란다.
나는 특히 폭력적이거나 폭행을 가하는 반장은 용서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을 쓰지 않도록 주의해라.
혹시 반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면 일단 반장선에서 일을 처리 하도록...
만약 반장 혼자서 처리하기 힘들면 반장들끼리 힘을 모아서 처리하기를 바라고
반장들끼리도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때 그 때
학생회 간부나 나에게 말해주기 바란다.
여학생들에 대해서는 각별히 장난을 심하게 치는 녀석이 없도록 주의하고 남자답게
행동하도록 반장들이 모범을 보인다.“
“앗”
저 아이는 현진이다. 눈이 마주쳤다.
현진이가 여기에 왜 왔을까?
아마도 걸스카웃트 단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걸스카웃트 모임에 가는 모양이다.
여기는 현진이가 올 곳이 못 되는 데....
“현진아 저쪽으로 돌아서 빨리 걸스카웃트 모임에 가봐”
커다란 눈에 금방 쏟아질 것처럼 눈물이 고여 있다.
조그만 한 빨간 입술을 꼭 다물고 놀란 토끼처럼 나를 쳐다본다.
현진이는 잘 알것도 같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그런 아이다.
우리 아버지와 현진이 아버지께서 친하셔서 우리집에 아저씨가 놀러
오셨을 때 우리 착한 현진이가 이렇구 저렇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많이 들었다.
가끔 현진이를 본적이 있는 데 얼굴은 하얗고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데다가
얼굴이 아기처럼 통통해 가지고는 키도 작고 꼭 애기 같다.
그런 현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구나.
한번은 우리 아버지와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에 가슴이 뜨끔 했었다.
“이보게 자네 매일 착한 현진이 자랑만 하는데 우리 민수도 허우대도
볼 만하고 학교에서 제 할 일은 잘 찾아서 하는 것 같고, 그러니
우리 사돈 합세“
“자네랑 사돈하면 좋지”
“그런데 자네 꽃집아가씨 기억나나?”
“암 기억나지”
“우리가 같이 꽃집에 들어갔을 때 그 아가씨 보고 자네는 반해 버려서
총각시절 그 아가씨 때문에 속 꽤나 끓였지?"
"그랬지“
“그 때 나는 똑 같이 그 아가씨 보고도 아무런 느낌도 없고
별로 예쁘게도 보이질 않았어. 그래서 그 때 생각 했지
‘제 눈에 안경이다’
아무리 내 눈에 좋아 보여도 본인 눈에 안 맞으면 소용이 없는 게 짝인 것 같아.
그래서 우리 오남매는 자기 짝은 자기가 데려오라고 하려고 해.
내가 골라 줘 봤자 그것은 내 안경이고, 자식 안경이 아니거든.
혹시 현진이가 민수가 자기 짝이라고 데려오면 언제든지 대 환영임세“
현진이 아버지는 사고하시는 것이 시골에 사시는 분 같지가 않다.
아버지는 나의 사생활은 전혀 모르신다.
나는 벌써 사귀는 여자가 있다.
같은 학년 채린인데 키도 현진이 보다 한 뼘은 더 크고 가슴도 꽤 나오고
얼굴도 처녀티가 나는 아이이다.
채린이는 걸스카웃트 대장이다.
걸스카우트 옷을 입고 교문 앞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를 할 때 보면 학생이라기보다 선생님 같다.
사복으로 갈아입으면 시집가도 될 것 같은 숙녀 티가 난다.
나는 채린이가 여자로 보이지 현진이는 여자가 아닌 애기로 보인다.
아까 그 하얀 통통한 얼굴에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꼭 꼬마에게
정장을 입혀 놓은 기분이었다.
현진이는 사복을 입으면 더 어려 보인다.
꼭 많은 인형가게 중앙 꼭대기에 전시해 놓은 하얀색 곰 인형같이 생겼다.
너무 깨끗하고 탐스럽지만 만지면 때가 묻을 까봐 아무도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보게 되는
하얀 곰돌이 인형!
내 것이 되지는 않겠지만 누구 것이 되든지 아직은
현진이를 아무도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아이이다.
학교에서 누구도 현진이를 만지지 못하게 잘 관리해야 겠다.
현진이는 내 이름이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반장들 돌려보내야겠다.
“자 잘 알아들었지. 끝나면 곧 바로 해산하고 좀 있으면
중간고사 있으니까 집에 빨리 가서 공부 하도록 한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아침에 걸스카웃이 교통 정리할 때 걸스카웃에게 돌을 던지는
녀석들이 있다고 소문 들었는데 누군지 알아내서 내일 집합시킨다. 알았나?“
“네”
“해산”
“차렷, 경례”
현진이가 모임이 있는 교실에 잘 갔는지 한번 가봐야 겠다.
“김석 너 여기서 뭐해”
“아, 네, 형은 여기 왠일 이세요?”
“아까 꼬마애 봤지? 현진이, 참 너네 동네서 사니까 잘 알겠다.
많이 놀란 것 같아서 모임은 잘 하고 있는지 보러왔다.“
“네”
“너 안 가냐? 같이 가자.
현진이는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꼬맹이가 놀라서 울기라도 하면 어쩌나하고 달려왔더니...
현진이도 이제 제법인데. 가자“
“네”
“기태 형은 잘 지내고 계시지?”
“고등하교 가더니 바쁜가 봐요.
요즘은 저도 형 보기 힘들어요.“
“그래 방학 때나 한 번 찾아 뵈야 겠다.”
그런데 석이 녀석은 왜 3층에서 있었던 지?
32.
오늘은 자전거를 학교까지 타고 가지 말고 중간에 내려서 자전거 점에
맡기고 걸어가야겠다.
걸스카웃트들이 촘촘히 서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현진이도 나와서
서 있을 것 같다.
아직 현진이가 걸스카웃트 옷을 입고 나와 있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1학년들은 아직 교통정리에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저 앞에 현진이가 보인다.
하얀 얼굴에 까만 머리 귀 뒤로 넘기고 하얀 Y셔츠 단추 하나 풀고서
초록색 스카프 칼라 뒤로 등 쪽에 삼각형,
앞쪽에 걸스카우트 심볼로 묶어서
손은 뒤로 하고 고개는 땅으로 하고 다리는 어깨 넓이만큼 벌리고
박아 논 못처럼 꽃꽂이 서 있다.
하얀 얼굴에 초록 스카프!
꼭 탐스런 백합에 백합 잎사귀 같다.
셔츠 칼라 속으로 보이는 속살은 더욱 흰색이다.
옆모습이 더욱 귀엽다.
살짝 숙인 고개 때문에 속눈썹도 잘 보이고 자그마한 코며 붉은 색 입술이
하얀 얼굴에 조금씩 보이는 것이 꼭 입새 뒤에 숨은 잘 익은 산딸기 같기도 하고
입새 속에 달려있는 물개금 같기도 하다.
걸스카우트 대장은 채린 누나다.
민수형이랑 사귀는 것을 간부들이나 알지 아무도 모른다.
채린 누나는 큰 키에 가슴도 나오고 허리는 잘록하다.
교문 앞에서 호루라기 불며 서 있으면 교통경찰 같다.
나는 저련 여자는 부당스럽다.
현진이같이 애기 같은 여자가 여자같이 보인다.
아직 내가 덜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저녁석이’
어떤 녀석이 작은 돌맹이를 현진이에게 던져본다.
얼굴을 한 번 들어 보라는 거겠지?
사실 나도 슬쩍 건드려 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돌을 던지는 것은 너무하잖아.
‘조치를 취해야겠군!’
하얀 Y셔츠에 흙 자욱이 남아있다.
현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털지도 않고 고개를 들지도 않는다.
초등학교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아마도 무엇인가 변화를 주려고 걸스카우트에 들어간 것 같은데
그 단체에 들어간 것 빼 놓고는 하는 모습이 하나도 변한게 없다.
‘좀 눈이라도 흘기고 쳐다 라도 보지’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라고 저렇게 서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 뒤에 민수형이랑 학생회 간부들이 따라오고 있으니까
아마도 현진이에게 돌 던진 녀석은 민수형선에서 해결이 될 것 같다.
민수형네랑 현진네는 친해서 그런지 민수형이 특별히
현진이를 동생처럼 말없이 챙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교실에 들어오니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
윗동네 사는 까불이 녀석이다.
남자 녀석이 눈치도 없고 똥, 오줌 못 가리고 낄 때 안 낄 때 까불대며
나대서 형들한테도 여러 번 야단맞고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도
여러 번 싫은 소리 듣고도 고칠 생각을 안 한다.
워낙 생긴게 그렇게 생긴애인가?
“김석! 석아 물어볼게 있어서 기다렸다”
“뭐?”
“너 혹시 너희 동네 사는 2반애, 걸스카우트 하는 애 이름 좀 가르쳐줘라”
“왜”
“편지쓸라고 그런다”
“뭐라고?”
“아 요즘 왜 애들다 맘에 드는 여자애들에게 편지 쓰잖냐?
나도 그애 맘에 들었다.
편지 한 장 써서 날려 보내려고 그런다“
“그 애는 너 같은 애 제일 싫어해.
그러니까 편지 같은 것 쓸 생각은 하지도 말고 가서 볼일 봐라“
“야 너 말고도 그 애 이름 가르쳐줄 사람 엄청 많다. 치사하게...”
“야 까불이 그 애랑 민수형이랑 친척인거 알지?
잘못 걸렸다간 학교 생활 쉽지 않을거다.
그애는 그냥 놔두고 다른 사람 찾아 봐. 알았어?“
“진짜 민수형 친척이야?”
“그렇다니까? 민수형 찾아가서 물어보던가?”
“아니다. 됐다. 왜 하필 미수형이야”
왜 진짜 하필이면 까불이 같은 녀석이 현진이 이름을 물어보는 거야.
‘현진아 미얀하다’ 오늘도 남의 핑계를 대서 너를 지킬 수 밖에 없다.
아직은....‘
민수형이 친동생처럼 너를 생각하니까
그냥 친척이라고 거짓말 좀 했다.
내 속에서는 그 애는 내 여자 친구니까 다른 여자 알아보라고 말하고 싶었는 데
그럴 수가 없으니 이해해라.
오늘은 민수형이 1, 2학년 반장들 소집을 하셨다.
형은 참 멋있다.
본받고 싶은 형 중에 하나이다.
흥분하지 않고도 할 이야기 심도 있게 다 전달하고 폭력을 쓰지
않고도 남자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마도 내공 같은 것 같다.
그만한 지적인 능력과 외적인 힘이 조화를 이루어서 내공을 만든다.
말로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스스로 모범을 보이기 때문에 더 존경을 받는 것 같다.
나도 공부도 열심히하고 체력도 잘 단련을 해야
형처럼 내공이 쌓일 것 같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좋은 형들을 보면서 내공을 잘 쌓아가야겠다.
민수형이 하는 말은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과 약간 느낌이 다르다.
선생님들께서 지시하시는 사항들은 이야기를 들어면서도 약간의 반항심을
불러 일으킨다.
선생님이라는 권위로 학생들을 억압하려는 어떤 보이지 않는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다.
특별히 학생부 선생님들은 ‘처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학생들을 다스린다.
보통 과목별 선생님들은 ‘점수’라는 무기로 학생들을 다스린다.
학생중에 가끔은 ‘처벌’도 ‘성적’도 초월(?)한
선생님 손에서 약간 벗어난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은 ‘처벌’과 ‘성적’의
무개에 짓눌려서 생활한다.
특별히 담임 선생님은 ‘학생 생활 기록 카드’라는 평가물을 가지고 반 아이들을
늘 주시하고 계시기 때문에 어쩐지 선생님께는 가식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진정으로 믿음과 사랑의 무게로 학생들을 다스리는
학생들을 다스리는 선생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형은 좀 다르다.
형은 후배인 우리들을 무척이나 아끼신다.
그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남자답게 자라도록 도와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모습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형은 외부 압력이 아닌 내면의 힘으로 우리를
다스리기 때문에 별 반항 없이 형에게 배우고 싶은 심정이 생긴다.
좋은 선배를 갖는 것은 그래서 좋은 것 같다.
인생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그 나이에 맞는 인간다움을 가장
따끈따끈한 느낌으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좋은 안내자이다.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은 우리 나이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친형들은 자신의 인생 헤쳐가기도 바빠서
그리고 너무나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아야기하기가 숙스럽고
힘든 면이 많이 있다.
잡자기 훈시를 계속하던 민수형이 뒤쪽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신다.
‘왜 그러시지’
“현진아...”
현진이! 현진이가 여기 왠일이지?
길을 잘 못 찾았나? 아니면 무슨 볼 일이라도 있나?
학교가 다 끝나고 이 시간에 남자들이 생활하는 건물에는 왠일로 온 걸까?
잠깐 돌아보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 보인다.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달려가서 무슨 일이냐고 괜찮냐고 묻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걸스카웃트 모임에 가는 길인 모양인데 제대로 찾아 갔으려나?
빨리 이 모임이 끝났으면 좋겠다.
잘 찾아 갔는지 한 번 가봐야 할 텐데...
민수형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오늘은 빨리 끝을 내고 후속으로 단합대회도
없이 빨리 집에 가라고 하신다.
‘형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빨리 3층에 가봐야지’
‘여자들이 생활하는 건물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일이 없는 데 좀 설래이기도 하고
학생들도 없는 데 좀 쑥스럽기도 하다.
3층! 저기서 소리가 나는 데 저쪽에 있나보다.
제법 현진이도 잘 따라하고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자기 할 일 잘하고 있다.
조금만 더 있다 가야지....
“김 석”
‘깜짝이야’
“형”
민수형이다.
'형이 왠일이지?’
꼬맹이 괜찮은가 보려왔다.
형도 현진이가 걱정이 돼서 오셨구나
형은 사귀는 누나가 있으니까 그래도 안심이다.
현진이도 걱정이 되겠지만 아마도 채린이 누나 보러 왔는 지도 모르겠다.
현진이는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부티가 난다고 해야하나,
귀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많은 남학생들이 괜히 관심이 많다.
신경쓰이게스리...
평범한 나의 삶에 현진이 같이 특별한 사람이 나의 친구가 된다면 나의 삶도 조금은
아니 많이 특별해 질 수 있을 것만 같다.
33.
1학년 1학기도 거의 다 지나가는 것 같다.
중가나고사 지나고 모의고사, 모의고사 지나고 기말고사, 기말고사만 치르면 보기도 힘든
성적표를 받고 그 다음에 방학이다.
인생은 아마도 시험의 연속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시험은 없지만 큰 태풍이 우리나라를 강타해서 전국적으로 계속 장마철인데다가
아침부터 장대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이런 날은 학교가는 것이 큰 시험이다.
바람까지 불어서 우산을 써도 별 소용이 없고 자전거도 탈 수가 없어서
걸어서 학교까지 가야만 한다.
교복대신에 갈아입을 체육복 비닐에 싸고,
양말이며 수건이며 여유분 준비하고 학교로 출발한다.
가방은 방수지만 가방 틈 사이로 들어온 빗물 때문에 책은 조금씩 젖어 있고
비 맞고 온 아이들이 교실 나무 바닥에 물방울을 떨어뜨려서 교실도 추적추적 젖어 있다.
화장실에 가서 가져온 수건으로 머리 닦고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양말도 가라신고 실내화
신으니 기분이 그래도 상쾌하다.
옷은 갈아 입어서 몸은 좀 상쾌하지만 아까 제방뚝에서 본 큰물의
어지러움은 아직도 그대로이고 떠내려가는 물에 쓸려가던 물건들을 본 것도
충격 그대로이다.
이런 큰 장마가 나면 저 밑에 내 바닥에서 만 흐르던 물이 제방 뚝 턱밑까지 물이 차오른다.
시뻘건 황토 흙물에 오만가지 물건들이 물을 따라 떠내려간다.
뽑힌 나무며 꺾인 가지들은 말할 수도 없이 많고, 돼지 새끼,
양은 남비에서 플라스틱 바가지, 빨간 고무다라,
이름모를 옷가지들이랑 무엇인지도 모를 물건들이 줄을 지어 떠내려간다.
평소 시냇물이라면 뛰어들어 모두 건져낼 것들이지만 지금은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있어도
어지럽고 같이 떠내려 갈 것 같아서 바로 옆에 물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저만치 앞질러가는 물줄기만 쳐다 볼 뿐이다.
혹시 발이라도 미끄러져 그쪽으로 갈까봐 물이랑 되도록 멀리 떨어져 걷고 있는 중이다.
‘앗 저것은’
느낌이 좋지 않아서 슬쩍 옆에 있는 물을 보았을 때
소리를 지르고 뒤로 자빠질 뻔하였다.
시골에 살다보면 어지간한 뱀은 자주 보게 된다.
물에서 사는 물뱀도 본적이 있고, 집 더미에서 사는 어지간한 구렁이도 본 일이 있고
색깔이 알록달록한 움푹 파인 양지 바른 구덩이에서 모여 사는 뱀들도 본 일이 있다.
그런데 저렇게 큰 구렁이는 본 일이 없다.
굵기가 꼭 내 몸둥이 만하다.
얼기설기 감겨있는 몸의 길이는 몇 발은 될 것 같다.
죽었나보다.
물뱀은 물 위를 꼭 당에서 기어가듯 고개를 쳐들고 헤엄쳐 다니든 데
얼굴은 보이지가 않고 몸둥이만 둥실둥실 떠내려가고 있다.
산속에서 살던 뱀인가?
어느 큰 기와집 지붕에서 오랫동안 살던 뱀인가?
왜 밖으로 나와서 죽게 되었나?
어떻게 개울까지 나와서 저렇게 큰 덩치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둥실둥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내려 가는 것일까?
처음에는 징그럽고 무섭더니
죽었다고 생각하니 좀 측은하고 불쌍하다.
저 앞쪽에 떠내려가는 돼지 새끼보다 이 구렁이가 더 안스러워 보인다.
나이도 많은 것 같은데....
명이 다 돼서 스스로 개울로 나와서 자기 몸을 물에 던져 버렸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막대기만 보아도 꼭 뱀같이 보인다.
오늘 밤에는 뱀꿈을 꿀 것 같다.
이 장마비에도 결속하는 애 하나 없이 교실에 아이들이 꽉들어찼다.
사람의 온기에다 젖은 냄새 축축한 습도까지 그다지
상쾌한 기분은 아니지만 이런 날도 하루로 세상에서 또 그렇게 지나간다.
구질구질한 장마철도 지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
이 계절은 그래도 방학이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어서 보내기가 좀 수월하다.
방학에 걸스카웃과 보이스카웃이 함께 만리포로 캠핑을 간다고 준비중이다.
선생님 5섯분과 걸스카웃 12명 보이스카웃 10명이 텐트를 치고 2박 3일 동안
캠핑을 한다고 한다.
준비물을 보니 텐트, 수영복, 바나, 코펠, 고채연료, 속옷, 겉옷, 세면도구, 등등
우리 집에는 없는 것도 있다.
이번 캠핑은 포기해야겠다.
그리고 어디 나가서 자는 것도 처음이고 특히 놀러가는 것은 일생처음인데
좀 두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걸스카우트 대장인 채린 언니에게 찾아갔다.
‘언니 저는 집에 이런 준비물도 없고요, 아무래도 못갈 것 같아요’
‘이런 준비물은 한조에 하나씩만 있으면 되니까 현진이는 언니조하고
그냥 속옷이랑 치약, 칫솔 그러고 입을 옷만 챙겨와.
그럼 나머지는 언니가 다 챙겨줄 테니까 알았지? 같이 가자.
언니 말에 나는 꼼짝도 못한다.
나같이 어리버리한 맴버를 지극정성으로 챙겨주시고 성심성의껏 지도해주셔서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걸스타웃트에서 잘 지내도록 배려해주신 하늘같은 선배님이시다.
같은 선배라도 은지 언니는 나를 괜히 미워하고 무시하고,
질투하고 좋지 않은 눈으로 쳐다본다.
은지 선배는 정이 가지를 않는다.
내가 부족하고 어리버리해서 그렇겠지만 그래도 선배님이신데 후배를 챙겨주면 더 좋겠다.
채린 선배처럼 자신의 수고로 후배들의 부족을 채우려는 선배는 정말 존경스럽다.
더 잘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더 좋은 말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표정으로 후배를 대하려고 노력하고
후배들의 단점이나 약점보다 장점을 찾아서 키워주려고 칭찬을 많이 한다.
참 좋은 선배님이시다.
선생님들께는 지식을 배우지만 언니들로부터는 지혜를 배운다.
채린 선배는 옷 다리는 것 걷는 것 서 있는 모습까지 하나하나 잘 관찰 했다가
지시해준다.
그래도 싫지가 않다.
더 많이 듣고 좋은 자세 바른 태도를 배우고 싶어진다.
이것이 진정 내면에서 나오는 가르침의 진수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중에 나도 커서 선생님이나 될까?
34.
드디어 캠핑가는 계절이 다가 왔다.
책가방에 옷을 넣어 갈 수도 없고, 배낭이랑 침랑이라는 것은 하나씩 사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 우리 집에서 아무도 여행을 떠나 본 일이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연로하셔서 엄마, 아버지는 어디가서 하루도 주무시고 오시는 법이 없다.
엄마는 외할아버지 생신때 딱 한번 집을 나가서 주무시고 오신다.
5남매중에 걸을 잘 걷는 나는 꼭 엄마의 동생이 된다.
큰 남동생은 큰 아들이라고 데리고 가고 막내는 아직 할머니가
보시기에 힘드니까 업고 가신다.
현아랑 현성이는 늘 할머니, 할아버지와 집에 있고 가끔은 현규도 집에 있다.
나와 막내는 거의 빠지지 않고 외할아버지 댁에 간다.
학교에 갔다오면 다 준비하고 계신 엄마를 따라서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서
다시 다른 버스를 갈아타고 간다.
외가 집에 도착하면 어둑어둑해진다.
벌써 식사가 끝나있고 남은 음식으로 엄마랑 우리가 식사를 한다.
그리고 나는 자고 엄마는 엄마의 엄마랑 밤새 이야기를 하고 아침 밥을 먹고
불이 나게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한다.
엄마를 낳아준 부모님은 여기 계시지만 엄마가 모셔야 할 부모님은 다른 곳에 계시다.
그래서 빨리 가야만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도착해야 덜 미얀하다.
그래서 서두른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잡지 않으신다.
그곳에서 잘사는 것이 도리어 도와주는 것이다.
딸은 ‘출가외인’인 것이다.
피곤한 몸으로 막내들쳐 업고 할머니, 할아버지 갔다드릴 떡이랑 반찬좀 싸서 들고
내 손 잡고 다시 그 집을 나선다.
엄마가 태어나서 컸던 집, 그 동네에는 아직도 친구들도 있지만 지금은 볼 친구 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다음을 기약하고 빨리 차 시간에 맞추어 걸어가야 한다.
민들레씨처럼 태어난 곳에서 얼마만큼 살다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뿌리를 내리고 내 세상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보다.
이것이 우리 집에서 여행의 전부이다.
기저귀 가방과 책가방, 이것이 우리집에 있는 가방의 전부이다.
책가방이 아닌 다른 가방에 책이 아닌 다른 것을 집어 넣어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기분이 이상하다.
배낭에 속옷이랑 겉옷이랑 세면도구랑 준비물에 쓰여 있는 것들을 집어 넣고 있다.
시간표를 보고 책을 집어넣는 것과 많이 다르다.
시간표를 보고 책을 가방에 집어넣을 때 숙제를 제대로 안한 과목의 책을
집어넣을 때 느낌은 매를 맞는 기분이고 무서운 선생님의 과목의 책을 집어 넣을 때는
두려움이 몰려오고 내가 좋아하는 과목의 책을 집어넣을 때는 얼굴에 웃음이 머문다.
그런데 배낭에 준비물을 집어넣을 때는 벌써 하얀 백사장에 파란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시원하고 약간의 바람에 기분이 들뜨는 느낌이 든다.
여행이 이런 것인가?
준비물 밑에 레크레이션 시간에 부를 수 있도록 가요도 준비하라고 했는데
나는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다.
가요에 관심도 없고 라디오 텔레비전도 내 맘대로 틀어서 듣거나 볼 수 없기 때문에
가요를 제대로 들어 본 적도 거의 없다.
이 준비물은 못 가져 갈 것 같다.
학교 운동장에 커다란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버스에 타야한다.
내가 좀 늦게 도착한 것 같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진아 여기다”
역시 채린언니다.
다행히 언니 옆에 내 자리이다.
배낭은 벗어서 좌석 위에 짐 놓는데 올리고 언니 옆에 앉았다.
선생님들은 부부동반인가 보다.
못 보던 아주머니 3분도 보이시고 처녀 선생님 한분 총각 선생님 한 분 다 계신다.
버스가 출발한다. 다른 사람들은 배낭외에 다른 작은 가방들을 준비해서
먹을 것을 넣어 왔나?
출발하자마다 이것저것 먹는 소리가 나고 서로 나누어 먹는 소리도 들린다.
준비물에 ‘먹을 것’은 없었는데....
1시간 30분 정도 가면 된단다.
아직 바닷가에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
우리 읍내에서 한 시간만 가면 대천 해수욕장이 있고,
서해안이 있다고 말은 많이 들었는데 가본적은 없다.
우리 마을에 대천에 가서 여름이면 일을 하고 돌아오는 아저씨 아줌마도 있고
가끔 뱃일이며 뻘에서 하는 일들을 하시러 서해안에 많이들 다니시는 모양이다.
늘 궁금했었는데 기대가 된다.
우리가 가는 해수욕장은 대천이 아니고 만리포라고 한다.
모래사장이 만리나 펄쳐 져 있어서 만리포란다.
조금 옆에는 천리포, 백리 포, 십리포가 있다는 데 확인은 못해 봤다.
만리포는 넓은 바다 가와 넓은 모래사장도 특이하지만
모래사장 옆에 소나무 밭이 더 인상적이다.
이 나무들은 소금물을 먹고 사나?
하여튼 소나무 밭에 텐트를 12개는 친 것 같다
선생님들은 각자 하나씩 치시고 여학생 4개 남학생 3개 텐트를 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이럴 때는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 조차 모르겠다.
처음 보는 바다며 보래며 넓은 소나무 밭이며 어지럽다.
처음 보는 것은 뭐든지 좀 어지럽다.
신기하다.
한참을 넋을 놓고 쳐다봐도 또 신기하다.
“현진아 이리와서 이것 좀 잡고 있어”
“네”
“가방 좀 내려놓고“
“아, 네”
나만 가방을 짊어지고 넋을 놓고 서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채린 언니가 부르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텐트줄을 잡고 있다.
어느새 벌써 이렇게 텐트를 세웠지?
“자 이제 밥하자”
“버너랑 코펠 저쪽 물 나오는 쪽으로 가지고 가서 평평한 곳에 설치하자”
“오늘 점심 메뉴는 빨리 먹고 놀게 간단하게 하자”
집에서 큰 아궁이에 불은 많이 때 봤지만
이런 작은 그릇에 작은 불을 피워서 무엇을 해 먹겠단 말인가?
신기하다. 새파란 불꽃이 금방 남비에 들은 찌개를 끓인다.
이 남비 이름이 ‘코펠’이구나.
이 불 피는 기구이름은 ‘버너’ 이고 이름도 특이하다.
수저며 밥 그릇, 아무것도 안 가져 왔는데 어떻게 밥을 먹을까?
“현진아 이리와. 여기 밥그릇 있고 여기다 찌개 떠서 밑반찬이랑 빨리 먹자”
너무 작은 손잡이 달린 밥그릇이다.
우리집에는 이 그릇의 서너배는 더 큰 밥 사발에 밥을 담아서 먹는 데....
수저도 특이하다.
코펠에는 별것이 다 들어 있구나.
모두 자그마하다.
특이하다.
자 빨리 설겉이하고 수영하러 가자.
조별로 따로따로 행동하는 것 같다.
선생님들은 선생님들 데로 시간을 즐기신다.
‘앗’
채린 언니는 다 벗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나온다.
노랑색이다. 너무 예쁘다.
그런데 창피하지 않은가?
채린 언니 뿐 아니라 다른 언니들도 채린이 언니같지는 않지만 저마다 수영복을 입고 나온다.
나는 수영복이 없다.
천만다행이다.
반바지랑 반 팔 웃도리 입고, 저 멀리 모래사장이며 바닷물 속에서 놀고 있는
다른 수영복 입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중이다.
나처럼 그냥 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반은된다.
남자들은 무슨 저렇게 다라 붙는 팬티를 입고 나오는지 민망해서 여기에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우리 마을 개울처럼 움푹 파인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
사람눈에 잘 띄지 않고 혼자서 있을 수 있는 곳...
아무래도 찾기가 힘들 것 같다.
넓은 백사장이 끝도 없이 다 보인다.
그냥 나는 백사장에서 조개껍질이나 주워야겠다.
너무 예쁜 것이 많이 있다.
언니들이랑 오빠들은 벌써 물속에서 들어가서 놀고 있다.
나는 그저 그 모습만 바라봐도 재미있다.
정말 신기한 곳이다.
예쁜 조개껍질이 여기저기서 나를 부른다.
자꾸 주우면서 너무 멀리온 것 같다.
담을 그릇이 없어서 윗도리 앞자락에 모아서 가져오고 있다.
어떤 언니 오빠들은 물장난을 치는척하면서 끌어안기도 하고 좀 보기 민망하다.
나는 텐트에 가서 조개껍질이나 분류해야지.
그런데 저 오빠는 왜 계속 나를 쳐다보시는지 모르겠다.
저녁도 잘해서 먹었고 이제 밤바다를 처음 볼 차례다.
점점 해가 지고 있다.
커다란 빨간 쇳덩어리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다.
거기에 모두 뜨거워서 하늘도 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너무 멋있다.
해가 바다로 완전히 빠지고는 너무 빨리 어두움이 몰려온다.
하얀 파도가 백사장에 와서 부딪치고 물소리가 어지간히 요란스럽다.
낮에는 안 들리던 파도소리가 밤이 되니까 이렇게 크게 들리다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군데군데 모여서 카세트를 틀어 놓고 놀기도 하고 밤에 물에서 물놀이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군인 아저씨들이 돌아다니면서 물에 들어간 사람들은 나오라고 부르신다.
우리도 빙 둘러 앉았다.
나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
게임을 하자고 하는 데 나는 아무래도 한 번도 안 해봐서 걸릴 것이 뻔하고
그럼 노래를 시킬 것 같으니까 준비물 부족으로 빨리 스스로 알아서 처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언니 나는 텐트에 가 있을 게요”
어휴 세상은 힘든 곳이다.
35.
피곤하다.
새로운 세상을 오늘은 너무 많이 보았다.
바다, 모래, 수평선, 갈매기, 수영복 입은 사람들, 조개껍질들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빨리 잠을 자야겠다.
언니 오빠들은 언제 들어올지 알수가 없다.
한참을 자다가 잠깐 깼는데 밖에서 채린언니 목소리 랑 낮에 계속 나를 쳐다보던
오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수혁, 너 어디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현진이를 건드리려고 하냐?
현진이 민수 친척인건 알지?
그리고 건드릴 사람이 따로 있지. 너 점말 인간이하다.“
“미얀하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인간이하인거.
현지이 하루종이 지켜봤는데 정말.... 미안하다.
채린아. 미안한데 비밀은 지켜줘라.
다시는 다른 생각 안 할게.
특히 민수에게는 말하지 말아줘.
친구사이에 우정도 그렇고 좀 비참해진다.“
“그러게 그런 생각을 왜 해.
빨리 여기서 가자.“
낮에 나를 쳐다보던 오빠가 나를 때리려고 했나?
내가 뭐를 잘못했다고 나를 때리려고 했지?
또 다시 잠에 들어서 한 참을 자다 깼는데도 텐트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 텐트에는 채린이 언니랑 2학년 다른 언니랑 나랑 있는데 둘 다 어디 간 걸까?
모래사장에서 잠을 자나?
아니면 밤에 따로 할 일이 있는건가?
모르겠다.
푹 자고 아침에 햇살이 나를 깨워서 일어나보니 언니 둘이 정신없이 자고 있다.
특별히 정해 놓은 기상시간도 없다.
2학년 언니 목에는 무슨 빨간색 자욱이 있는데 그 오빠에게 맞았나?
불을 붙일 줄도 모르고 재료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고 아침을 준비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역시 이곳에서는 오직 조개껍질 줍는 것이 나의 일인 듯하다.
어제 밤에 선생님들은 약주를 하셨는지 좀 술에 취한 거한 목소리도
들리던데 아참에는 텐트 모두 조용하다.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주워 모은 조개껍질로 멋있는 목걸이 하나 만들어서 석이에게 주면 좋겠는 데
아마도 만들기야 잘 하겠지만 줄 수는 없겠지?
모두들 늦이막이 일어나서 아침이라고 해먹고, 왜 오늘은 수영복은 입지 않고
티셔츠에 반바지 입고 조용히 놀고 있다.
점심 조금 넘어서 선생님이 부르신다.
막 잡아 올린 꽃게를 큰 가마솥에 넣고 된장 좀 풀고 파, 마늘 양념하고
푹 끓여서 한 마리씩 그릇에 담아 파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오늘 점심을 먹는단다.
막 잡아 올린 살아있는 꽃게는 정말 무섭다.
그 꽃게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고 펄펄 끓인다.
청회색이던 꽃게가 빨간색으로 바뀌면서 무섭던 집게발도 얌전하게 내려지고
배 쪽은 흰색 등 쪽은 빨간색으로 먹음직스러운 색깔로 언제 바뀌었는지 벌써 바뀌었다.
한 사람 앞에 한 마리씩 꽃게가 주어지고 밥도 한공기씩 주어졌다.
먼저 꽃게를 뜯어 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는다.
꽃게 살은 정말 맛있다.
특히 바로 잡아서 끓은 꽃게는 살이 단맛이 난다.
국물은 시원하고 시원한 바다를 보면서 시원한 국물을 달콤한 꽃게살과 함께 먹는
재미는 정말 좋다.
오빠들은 꽃게 발을 가지고 서로 찌르려고 장난도치고
언니들은 얌전히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오늘 밤만 지나면 집에 가는 구나.
모닥불 피워 놓고 빙둘러 앉아서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오늘 밤도 일찍 들어가서 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늘 밤에는 다 모이지는 않나 보다.
몇 명 언니 오빠들은 벌서 보이지를 않는다.
텐트에는 아무도 없던데 자기들끼리 볼 일이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 말씀에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고 하셨는데....
오늘 밤은 그래도 좀더 텐트가 익숙하다.
모래도 있고 좀 어수선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늑하기도 하고 낮에 달궈진
온기 때문에 따뜻하기도 하다.
선생님들은 저녁 잡수시고 어디론지 가버리셨고,
언니 오빠들은 비닐봉지 가득 무엇을 사오던데 아무래도 음료수 같지는 않았다.
선생님들이 보면 안 된다면서 비밀스럽게 감추어 오던데 그것도 무엇인지 좀 궁금하다.
우리 학년 아이들도 빠지지 않고 언니 오빠들이랑 밖에 있던데 그 애들은 잠도 없는 모양이다.
내가 아직 어린가?
초저녁 9시만 되면 졸음이 밀려와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매일 집에서 9-10시면 잠을 자던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채린 언니는 무슨 고민이 있어 보이던데 괜찮으려나?
이곳에 와서 사람들의 표정이 두 가지로 나뉘었다.
울한 표정으로 와서 밝아진 사람,
밝은 표정으로 와서 어두워진 사람.....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그들의 표정을 바꿨는지 모르겠다.
캠핑이 뭔가 했더니 이런 것이구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
그리고 낮선 곳에서 잠을 자는 것,
그리고 내가 알던 사람들의 다른 모습을 모는 것,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닌 다른 동네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는 것,
그리고 내가 매일 지내던 일상생활을 그리워하고 그곳의 삶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
이것이 캠핑인것 같다.
캠핑은 일년에 한 두 번이면 좋을 것 같다.
매일 캠핑을 하면 얼마나 힘이들까?
오늘 밤은 내가 주운 조개껍질을 잘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가방을 안고 자야겠다.
석이가 꿈에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만들어준 조개껍질 목걸이를 한 석이?!
좀 웃기려나?
남자가 목걸이를 해서.
그래도 석이는 멋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다.
석이도 같이 왔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만약 석이가 와서 물에 들어가자고 하면 물에도 들어가고 밤에 같이 놀자고 하면 같이
놀았을 텐데...
네가 없으니 모든 것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2.
[ 장편 ]
못생긴 여자 7
황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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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0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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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물뱀 무서워요, 저도 옛날에 어릴 때 한 번 본적이 있는데 놀라서 기절하는 줄 았았어요. 진짜 물 위로 스르르르 가더라구요. ㅠ0ㅠ 우오오오 무섭당. ^^
제 글에 공감을 가지신 분이 있다는 게 이렇게 기뿔줄 몰랐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제 머리속에서 저를 괴롭혀요.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구요.
순수한 마음이 주인공들한테서 느껴지네요. 나도 중학생때 저런적이.. ..없었네여.^^,// 잘 읽었습니다. 바이바이^^님
요즘 사람들이 보면 바보 같다고는 안할지 모르겠어요. 이 이야기는 나의 사실적인 이야기거든요. 석이는 진짜 저의 친구입니다.
정말요?^^ 전 제 삶을 다시 쓴다면 현자님 처럼 쓰기 힘들것 같은데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