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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조 숙 녀 조 폭 되 기 ◈
Graceful lady become gangster
Written by.땡깡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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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너 홀쭉이가 하는 일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홀쭉이놈이 관리하는 애들이 영 아니라서 이번에 아래로 내려버리고 다른 놈들로 바꿀 건데 거기에 너도 끼게 됐다.”
“엇? 정말입니까, 형님?!”
현권이 무표정하게 전하는 내용에 희가 활짝 웃었다. 더 위험해지는 일이니까 그렇게 좋은 일도 아니건만 좋아하는 희에 의해 현권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그러나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점.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조직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단 의미로 복수를 할 수 있는 때에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에 의욕이 넘치는 희는 느끼지 못했지만.
“단,”
“넵!”
이미 첫마디에 신난 희는 어떤 말이라도 용기내서 이겨낼 수 있다는 듯 양 주먹을 불끈 쥐고 투지에 불타는 눈동자로 현권을 바라봤다.
“홀쭉이랑 붙어서 이겨야 해.”
“네? 아, 아니. 네?! 아, 그니까… 네?!”
놀라 되물음. 되물음하면 안 되지 싶어서 고개를 저으며 다른 말을 꺼내려 했으나 또 되물음. 안 되지 싶어서 다시 정신 챙기고 입을 열었으나 당황할 대로 당황한 희는 또또 되물음. 총 되물음만 세 번하는 희를 현권은 멀뚱히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굳은 얼굴로 오 분을 못 가, 얘 앞에선.
“네가 실력이 꽤 는 것도 맞고 재능도 있는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하게 감은 안 와서. 우석형님은 너 올리라고 했는데 내가 잘 신임이 안 가서 테스트 좀 해보려 한다. 알겠냐?”
“…네.”
희가 삐죽 나올 것만 같은 입술을 참아내며 뾰로통하게 답했다. 현권의 눈빛이 날카로워서 평소에 편하게 대하는 것처럼 했다간 싹둑 입술을 칼로 베어버릴 것 같았다.
“자, 준비해라.”
깔끔할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진행 아닌 진행에 희도 이젠 익숙해졌다. 더 이상 토 달 것도, 늑장 부릴 것 없이 희도 곧장 말이 떨어지는 즉시 자세를 잡았다. 손엔 현권과 같은 가짜 칼이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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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니까 체력전으로 나가면 질 게 뻔해. 질질 끌지 않고 빠르게 끝내는 편이 좋아. 내 장점은 민첩성이니까 그걸 잘 이용해서 빈틈을 찾아낸 뒤 곧장 망설일 여지없이 찔러 넣으면 돼. 칼을 휘두르는 게 실패하면…
“핫!”
단련하는 것에 집중한 희는 저도 모르게 기합을 넣으며 홱 몸을 틀어서 다리를 뻗었다. 현권의 칭찬처럼 자세가 말끔하게 잘 잡힌 발차기가 정확하게 희가 원했던 방향의 공기를 꿰뚫었다. 휘익- 하는 시원한 바람 가르는 소리에 희는 히죽 웃으며 후, 하고 숨을 짧게 내쉬었다. 이미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조금만 더 하다가…”
희가 아이 같은 얼굴로 해맑게 중얼댈 때였다. 희의 말꼬리를 잘라먹고 목소리의 나직함만으로도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안 자나?”
“아, 안녕하십니까, 형님!”
“새벽 2시엔 안 맞는다.”
“아, 그, 그럼… 안녕히 주, 주무세요?”
피식. 희의 어리버리한 말에 우석이 소리 없는 짧고 무미건조한 웃음을 흘린 뒤 본래의 무심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무표정을 한 채로 뚜벅뚜벅 희에게 조금씩 다가왔다.
“아, 저… 감기는 어떠십니까?”
왠지 어색해 희가 대충 되는 대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우석은 대답없이 희에게 가까이 다가와 설 뿐이었다.
“걱정 되냐?”
“뭘… 아, 네. 걱정됩니다.”
우석의 물음에 어벙하게 눈을 끔뻑대며 되물으려던 희는 퍼득 떠오른 ‘홀쭉이와 붙는 것.’이 떠올라 풀죽은 얼굴로 냉큼 대답하며 이내 투덜대기 시작했다.
“형님. 형님이 그러셨죠? 저 넣으라고. 들었습니다. 형님은 저 넣으라고 했는데, 현권형님이 저 테스트 해보겠다고……. 그러고 보면 현권형님 참 야속하십니다. 저를 왜 그렇게 신뢰하지 못한답니까? 저 완전 많이 늘었는데. 그리고 시켜만 주시면 칼빵을 맞든, 어디 한 군데가 부러져 불구가 되든 몸 바쳐 할 자신 있는데 말입니다. 왜 제가 한 단계 올라가려고만 하면 이것저것으로 물고 늘어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투덜투덜. 구시렁구시렁. 신세한탄도 아니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희를 우석은 말없이 가만히 응시했다. 조용히 끊지 않고 그녀의 꽤나 긴 고자질을 들어주던 우석은 그녀가 말이 다 끝난 듯 입술을 삐죽 내밀며 강아지 귀가 달렸다면 추욱 아래로 처져 있을 듯한 얼굴을 한 희의 머리에 살짝 손을 얹었다.
“내 눈은 정확하다.”
생각지 못한 우석의 터치에,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온기를 가진 손에 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긴다.”
그리고 자신의 흑수정 같은 새까만 눈동자에 담기는 올곧은 그의 눈동자. 때 묻은 듯 탁해서 검은색이 회색처럼 보일 듯한, 하지만 그게 왠지 모르게 사람 마음을 아릿하게 하는 눈동자. 그 눈동자가 건네는 말에 희는 심장이 쿵쿵쿵 뛰는 것 같았다.
“자라.”
시니컬할 정도로 미련 없이 돌아서서 가버리는 우석을 희는 멍하니 바라봤다. 참 깊은 눈동자였다. 세상 그 누가 응원해주는 것보다 더 힘날 정도로 믿음 가는. 이래서 조직원들이 다들 그를 무서워하면서도 아끼고 따르는 것일까. 희는 느릿하게 손을 들어 올려 아직도 우석의 온기가 남아져 있는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그의 투박하고 큰 손이 닿았던 면적이 너무 커서 한 손으론 전부 댈 수가 없어서 반대쪽 손도 들어 올려 머리를 감쌌다.
“따뜻하다.”
희가 멍청한 얼굴을 하고 중얼거리다 뜨뜻한 온기를 받은 양 손을 내려서 자신의 양 볼을 감싸쥐었다.
“더 따뜻하다.”
이내 고개를 빠르게 휘저으며 희가 짝짝짝 자신의 볼을 쳤다. 바보처럼 중얼거리며.
“뜨겁다…….”
20.
“이제… 다 한 거예요?”
“…………….”
현권은 대꾸하지 않은 채 뭔가 꿍한 표정이다가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희에 의해 한숨을 내쉬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정도 걸릴 줄 알았더니 단 5일만에 칼 다루는 법을 순식간에 익혀버렸다. 착잡할 정도로 실력 있다. 아직 믿기 어렵다고 우기면서 위험한 일을 못하도록 막고 싶어도 막을 여지없을 정도로.
“그럼 이제 홀쭉이형님이랑 붙는 것만 남은 겁니까?”
희가 신난 어조로 물어오는 말에 현권이 건성으로 고개를 한 번 까닥여 보였다.
“오늘 당장하는 겁니까?”
희가 알고 있는 사실이면서도 신이 나서 촐랑대며 물었다. 꼬리가 달려있다면 빠질 지경으로 흔들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
현권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하며 털썩 낡은 테이블 의자에 걸터앉았다. 쪼르르 현권의 곁으로 다가온 희가 땀으로 범벅된 현권의 얼굴을 자신의 소매로 쓱쓱 닦아주었다. 희의 아무 의미 없는, 그저 자신을 가르쳐준 현권에 대한 고마움에서 우러난 행동에 현권은 움찔하며 몸을 세웠다. 희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현권에겐 자극이고 유혹이었다.
“홀쭉이형님 불러오겠습니다!”
헤벌쭉 웃으며 희가 외치곤 홱 몸을 돌아 세웠다. 총알같이 피용-하고 튀어나갈 태세를 취하는 희를 본 현권이 무의식적으로 희의 손목을 붙들어 잡아끌었다.
“혀, 형님.”
희가 눈을 왕방울만 하게 만들곤 현권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퍼득 놀라며 버둥댔다. 그러나 현권은 무슨 생각인지 과감하게도 그녀를 자신의 무릎에 앉혀놓은 채로 꽉 붙들어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희가 애써 침착한 척 굴며 물었다. 아무리 남장을 했다한 들 여자고 한창일 나이에 잘생긴 남자가 약간에 야릇한 포즈로 꼭 붙든 채로 놔주지 않는데 아무 감흥이 없으면 그게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였다. 당연한 본능으로 희는 허리가 괜히 곧게 펴지고 고개가 빳빳해졌다.
“한 번만 하자.”
“네? 뭐를… 말씀이십니까?”
침을 꿀꺽 삼키며 끓어오르는 것을 억누르며 겨우 내던진 현권의 한마디. 그리고 연애도 제대로 한 번 해본 적 없는 희는 현권이 말하는 말에 대해 짐작조차도 못했다. 반면에 현권은 수위가 높은 것부터 해서 뽀뽀 같은 유치한 것마저도 좋으니까, 뭐든 좋으니까 한 번 하자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고통스러운 고뇌 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높은 걸로 가고 싶으나 뽀뽀정도로도 희가 놀랄 게 뻔했다. 순수한 눈동자를 굴려가며 뭐를, 이라고 묻는 순수함 때문은 두 번째 문제고 일단은 남자 대 남자라는 점에서.
“이거 말이다.”
“으앗.”
끝내 현권이 선택한 것은 뽀뽀조차도 아닌 포옹이었다. 놔주기 싫다는 듯, 안긴 희는 숨이 막힐 정도로 꽉 끌어안고 현권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숨이 막혀 와서, 그리고 코가 현권의 넓은 가슴에 콱 박힌 게 너무 아파서 버둥버둥 대는 희를 현권은 꽤나 오래 안고 있은 후에야 놓아주었다.
“가르치는 대로 빨리 빨리 따라와 줘서 예뻐서.”
품에서 희를 떼어놓은 현권은 희가 혹여나 의심을 하고 그를 멀리하지 않도록 재빨리 입막음을 했다. 반면에 현권이 자신을 왜 갑자기 끌어안았든 간엔 궁금하지 않고 단지, 숨이 무척이나 막혔고 코가 무척이나 아팠던 희는 눈물을 찔끔대며 찡한 코를 매만졌다.
“아오, 아파. 호쭈이혀님 모셔 오게씁닝다.”
코를 꾹꾹 눌러가며 얘기해서 콧소리 작렬하면서 희가 성큼성큼 창고를 쪼르르 빠져나갔다. 남겨진 현권은 겨우 만들어진 기회에 용기가 안 나 고작 포옹한 자신이 바보 쪼다같아서 뾰로통한 얼굴로 작게 씨부렁거리다가 희의 콧소리 때문에 발음도 똑바로 되지 않은 말을 듣곤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많은 형님답게.
-
“실전처럼. 알겠냐?”
현권이 던지는 물음에 홀쭉과 희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평소 같으면 지적을 했을 부분이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현권도 그들의 긴장한 마음을 읽어내곤 그냥 넘어가주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하게 여겨져 고개를 갸웃.
“시작해라.”
명령을 내린 뒤에야 자신이 느낀 이상함이 뭔지를 눈치 챈 현권은 홱 시선을 홀쭉에게로 돌렸다. 희야, 긴장을 하는 게 이해가 가지만 홀쭉은 왜 긴장을 한 거지. 현권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양 미간을 찌푸렸다. 우석형님도 그렇고, 왜 다들 희를 대단히 여기는 건지.
“오메!”
싸움이 시작한 지 이제 막. 그런데 감탄. 신경전이고 뭐고 없이 곧장 부딪치는 둘 때문이었다. 떡대의 구수한 감탄에 현권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희와 홀쭉의 맞짱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제야 현권은 머리끝부터 발톱 끝까지 닿는 찌릿한 충격을 느꼈다. 빠르고 정확하고 지능적인.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부드러운 몸짓. 평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냉철하고 덜 다듬어진 듯 사납게 빛나는 눈동자.
“왜… 여태 보지 못했지.”
현권은 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싸움이란 것에 소질이 있는 게 분명했다. 또는 운동신경이 특출나거나. 그런데도 왜 여태 자신은 보지 못했을까. 왜 다들 그렇게 희를 높이 사는 지 이제야 현권은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컥.”
비명을 참아내는 격한 숨 토해내는 소리가 창고를 크게 울렸다.
“어?”
현권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클로즈업되는 장면은, 무너지듯 털썩 힘없이 배를 감싸 쥐고 내려앉는 한 사람. 자신이 이겨놓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리버리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는 또 다른 한 사람.
“제가…제가… 이겼습니다?”
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 제가 이겼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끝을 자꾸만 올려가며 외치는 희를 홀쭉이 아픈지 미간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로 불만스레 힐끗 쏘아봤다. 그것에 확실히 자신의 승리를 직시한 희가 양 팔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제가 이겼습니다!”
희가 소리치며 팔짝 뛰었다.
“그래. 네가 이겼다, 마. 아, 거 새끼 참 자랑질이네.”
떡대가 뚜벅뚜벅 다가가 희의 머리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 쥐어박으며 핀잔을 줘도,
“넌 천직이다, 천직이야. 쓰벌.”
“우와. 그렇게 보이십니까? 우와! 기분 완전 좋습니다!”
“좋긴 뭘 좋아, 이 놈아! 조폭이 천직인 게 좋냐?! 쓰벌!”
쓰벌이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혼내 켜도 그들의 얼굴이 슬쩍 미소를 건 게, 대단하다고 눈짓을 보내주는 게 기분 좋아서 희는 팔짝팔짝 뛰어대는 걸 멈추지 않았다.
“뭘 좋다고 웃어? 이게 좋아할 일이냐, 더 어렵고 위험한 일 맡는 건데.”
그러는 사이에 어느샌가 다가온 현권이 팔짝대는 희의 머리를 꾹 눌러서 진정 시키곤 불퉁스러운 말투로 톡 쏘아붙였다. 그러나 되려 희가 눈을 끔뻑대며 조폭스러운 말대꾸를 해왔다.
“원래 조폭이라는 게 위험한 일 아닙니까? 그러니 위험할 수록 높은 자리니까 좋은 거 아닙니까, 조폭에겐.”
어느새 ‘조폭’이라는 일에 대해 너무도 제대로 알고 있는 희였다. 희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는 듯했지만. 오히려 틀린 구석 하나 없는 그녀의 말에 할 말 없어진 쪽은 현권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약속하신 대로 물 관리하는 일 맡고, 강호파랑의 거래건은 제가 맡는 거죠?”
까먹었으면 좋았을 것을. 현권은 쯧, 혀를 차면서 자신이 칼 다루는 법을 모두 익히면 해주겠다고 했던, 홀쭉이를 이기면 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늘어놓는 희를 살짝 흘기며 마지못해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21.
아파서 며칠 겔겔 댄 사이에 생각보다 더 많이 쌓인 일거리들을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려오기 시작한 우석이 슬슬 짜증스럽게 일거리들을 한 쪽 구석으로 미뤄버리려 하던 찰라, 똑똑똑-! 다소 다급하고 경박스러운 노크소리가 들려와 마치 해방 됐다는 듯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가 지우며 우석이 밖에서 대답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묵직한 목소릴 끄집어 내주었다.
“들어와.”
“형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건, 다소 다급하고 경박스럽게 노크를 해대던 건 희였다. 그것도 활짝 웃음 짓고 있는, 얼굴에 꽃밭을 가져다 놓은 것만 같은 희. 보는 사람이 다 기분 좋아지는 함박웃음을 얼굴에 달고 뛰어 들어온 희를 우석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형님! 이겼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제가 정말 이겼습니다! 저는 제가 지면 어쩌나, 또 많이 다칠까봐 겁도 꽤 났는데… 너무 쉽게 이겨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이게 다 형님 덕분인 것 같습니다. 형님이 이긴다고 해주…”
“그만.”
잠자코 들뜬 희가 쫑알쫑알 하는 것을 들어주던 우석은 의자에 등을 편안하게 대면서 짤막하게 명령했다. 그리고 그 나직한 명령에 희가 움찔하면서 말하던 것을 멈췄다. 잠시간 석상처럼 굳어있던 희는 이내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너무 들떴다, 에고. 기분이 좋아서 자신이 얼마나 애 같은 행동을 했는지 깨달은 희가 힐끔힐끔 우석의 표정을 살폈다. 반면에 우석은 100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를 들고 자랑하는 아이처럼 느껴져서 되려 짜증이 났다거나 정신이 사납다는 생각보단 행동에 반해서 덩달아 들뜨는 기분이었다.
“잘했다.”
“헤- 넵!”
우석의 짧아서 어찌 들으면 무성의한 칭찬에 희는 그 누구한테 칭찬을 들어도 이보단 기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올곧은 눈동자 때문에.
“축하해주마.”
“감사합니다!”
우석의 내던진 말 한마디에 희는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우석의 말뜻을 그저 ‘축하한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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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큰형님 전부 내신단다.”
“이야- 무슨 날입니까?”
꽤나 좋은 술집 룸 안에 들어오자마자 현권이 자리에 앉으며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에 웅성웅성, 키득키득 거리며 정신 사납게 굴던 조폭들이 일체 행동을 멈추고 현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중 한 명은 그에게 반문까지 해가며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가장 좋은 자리에 편안히 앉아있는 우석에게 힐끗 선망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부로 요조, 떡대, 쓰벌이 더 위험한 데에 발 들였다고 큰형님께서 열어주시는 파티다.”
“이열~ 정말입니까? 떡대나 쓰벌은 뭐 생긴 것답게 차근차근 올라선다는 느낌이다만… 요조는 의외다, 어?”
“아, 아닙니다.”
희가 부끄러워 코끝을 긁적거리며 볼을 붉혔다. 그 귀여운 버릇에 다시 한 번 침 꼴깍 삼키면서 뒤로 넘어갈 뻔한 현권이었다. 에어컨 빵빵한 룸 안이 괜시리 덥게 느껴져 현권은 숨을 길게 내쉬며 셔츠단추를 두 개정도 풀어헤쳤다. 잔뜩 풀어헤쳐진 앞섶에, 현권은 그저 희 때문에 후끈하고 달아오른 것인데 다른 놈들은 그가 확실히 즐길 준비가 됐다는 걸로 느껴졌는지 저들끼리 잔뜩 상기 된 얼굴로 왁자지껄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곧장 파티 시작이었다.
“형님. 드십쇼!”
빈 현권의 잔에 알아서들 술을 채워주었다. 그제야 현권도 희를 의식하던 것을 잠시 잊고 한껏 신난 얼굴로 파티를 즐겼다. 간만에 술자리라 그도 금세 ‘얼뜨기’ 대열에 끼어들었다. 기분이 째지게 좋은 터라 술만 즐기는 게 아니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대략 얼뜨기같이 진상 같은 짓을 서슴없이 하면서 노는 그 대열에. ‘쨔라짜라짜짜짜!’ 트로트를 틀어놓고 코러스까지 홀로 다 해내는 현권의 철 안 든 망아지 꼴에 희는 키득거리느라 바빴다.
“야, 요조. 얼른 가서 형님 술 안 따라 드리냐?”
“아, 네!”
“오늘 누구 때문에 기껏 형님이 장을 열어주셨는데……. 얼른 가서 한 잔 대접하고 와! 쓰벌!”
논다 싶으면 제일 눈에 띄는 쓰벌이 웬일로 안 보이나 했더니 우석에게 술을 한 잔 대접하고 있느라 그랬나보다. 이제 보니 떡대도 우석에게 한 잔 따라준 뒤에 얼뜨기 대열에 끼는 게 눈에 들어왔다. 희는 주춤주춤대면서 왁자지껄한 사이에도 홀로 묵묵히 술만 들이키면서, 하지만 평소와 달리 조금 기분 좋은 듯한 얼굴로 신나게 노는 조폭 녀석들을 구경하고 있는 우석의 옆으로 갔다.
“형님. 한 잔 받으십시오.”
희가 형식적인 말을 하면서 그의 잔에 술을 반 정도 따랐다. 그런 희를 힐끗 우석이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 눈만 살짝 돌려 가만히 응시하다가 피식 짧게 웃어보였다. 그리곤 희가 채 잘 웃지 않는 그의 미소에 당황하기도 전에 그녀가 따라준 술을 단박에 들이키곤 다시 잔을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따라달라는 듯이 자신의 앞으로 분명히 내밀어진 잔에 희가 멀뚱멀뚱 바보같이 있다가 퍼득 정신을 차리고 얼른 술을 따랐다.
“축하해준다는 의미가… 이거였습니까?”
문득 떠오른 말을 희가 생각하듯 조용히 읊조렸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유독 우석의 곁은 느긋하고 조용하게 공기가 흘러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전엔 이 조용함이 무겁게만 느껴졌었는데 이제 정말 제법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다른 거… 있나?”
“다른 거라니… 아! 아닙니다. 딱히 따로 바라는 건 없습니다.”
희가 건넨 말을, 뭔가 다른 걸 기대했다는 의미로 알아들었는지 슬그머니 묻는, 다시 한 번 ‘섬세하신’ 형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시는 우석의 질문에 희가 빠르게 손사래를 치며 고개까지 절레절레 저어보였다. 희의 좌우로 저어지는 고갯짓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하던 우석이 불쑥 손을 뻗었다. 그의 얼굴을 멀뚱히 응시하고 있던 희는 우석의 팔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당연하게 술을 또 따라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시선을 아래로 내려 술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으에.”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잔은 테이블 위에 얌전히 얹어져 있고 그럼 지금 그가 손을 움직인 이유는 뭐…, 라고 채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볼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하며 재빨리 그의 얼굴로 눈동자를 옮겼다.
“예쁘다.”
“네, 네?”
첫댓글 기다린 보람이있네요~~ 담편도 기대할께요!!
ㅜㅜ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예상은 했지만 연재가 한참 늦어진 결과, 많은 분들이 떠나신 듯한 느낌이에요ㅠㅠㅠㅠㅠㅠ....흑흑흑. 꼬리말 양도 이렇게 줄고. 막 마음 아픈 와중에 대성아쪽님의 따뜻한 꼬리말 하나가 얼마나 힘 되는 지 몰라요ㅠㅠㅠㅎㅎㅎㅎㅎ//대성아쪽님 愛♥
ㅠㅜㅠㅜ 예쁘다네요 우석이 완전 멋잇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우석이의 예쁘다에는 반전이 있습니돠앜ㅋㅋㅋㅋㅋㅋㅋ따뜻한쪼꼬렛님은 우석이를 좋아하시는군요♥ 현권이도 제법 인기가 많아서 이제 이게 습관이 됐네요.ㅋㅋㅋㅋ이 분은 어떤 놈, 이 분은 어떤 놈. 이러공ㅋㅋㅋㅋㅠㅠ많이 늦었는데도 이렇게 반갑게!! 요조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따뜻한쪼꼬렛님 愛♡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역시ㅠㅠ~ 역시ㅠㅠ~라는 단어가 이렇게 행복한 어감이었더랍니깤ㅋㅋㅋㅋㅋ재미있게 읽어주셔서 한없이 기쁩니닼ㅋㅋㅋ네!! 따뜻하고 아늑하고 편안한 성탄절이었습니다!ㅋㅋㅋ역시 집이 최고에요..ㅋㅋㅋㅋ불량식품님은 잘 보내셨는지요!//불량식품님 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