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얼마안남았다. 푸헐...
오늘은 일이 쫌 일찍끝났다.. 열심히 일한덕분이쥐.. 호곡!!
그래두 피곤하당..
제 34 회..
학원을 마치고 그녀의 오피스텔을 찾아가 보았다. 오피스텔의 수위가 날 못마땅하게 쳐다 보아서 어색했지만 꿋꿋하게 엘레베이터를 기다렸다. 잡상인 아니란 말이여.
405호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없다. 서울에 장이 서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오늘도 장날인가 보다. 날을 잘못 잡았다.
혹시나 그녀가 곧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 오피스텔 건물 앞에서 기다려 보았다. 가지고 있던 담배가 여러 가피 남았었더라면 좀 더 오래 기다렸을텐데, 세 가피 뿐이어서 기다린 시간이 그리 길지가 못했다. 십분마다 한대씩 폈다고 치면 30분 정도 기다렸나 보다. 오늘만 날이냐, 오피스텔이 울산바위처럼 금강산 가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오지 뭐. 자주 뒤를 돌아 보며 오피스텔을 떠났다. 못 보고 오니까 더 보고 싶었다.
며칠을 그녀 생각만 하고 오피스텔에는 가지 못했다. 그녀도 내 옥탑방을 찾아 오지 않았다. 목요일은 그 전날 오피스텔을 찾아 갔었기 때문에 이틀 연속 가기가 쑥스러웠다. 그녀야 내가 왔다 간 것을 모르겠지만 수위 새끼가 날 봤기 때문에 혹시 뭐라 그럴까 두려웠다. 금요일날 못 간 것은 삼일 연속해서 계속 그녀 집을 찾아가야지 마음 먹은 내 자신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불확실함에 대한 자기 방어심리다. 그리고 금요일날 그녀를 봤다면 막막한 토요일날 다시 보기가 민망했다. 애인 사이도 아닌데 날마다 만날수가 있나. 흑흑 그렇지만 이번주 들어서 매일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냥 하숙할 때처럼 매일 그녀를 만났으면 좋겠다.
토요일이다. 아침부터 할 일이 없다. 날씨는 엄청 더울 것 같다. 오랜만에 방청소를 했다. 그녀가 청소해 주고 난 후, 딱 일주일만이다. 방 청소를 하고 다소 깨끗해진 방바닥에 앉았다. 그녀가 준 셔츠를 입고 패션 추리닝을 입었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그래, 절대 뻔뻔한 짓이 아니다. 그녀가 분명 밥 먹으러 오라고 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각오를 다졌다.
'가자. 그녀에게 당당하게 먹을 게 떨어져서 밥 얻어 먹으러 왔다고 말을 하자. '
혹시나 따지는 그녀 성격에 검사를 할까봐. 남아 있던 컵라면이랑, 쌀을 나만이 알수 있는 곳에다 숨겼다. 어디냐구? 옥상위에 널려 있던 폐가구 속이다. 그리고 숟가락 하나랑 밥그릇 하나를 챙겨서 신나게 옥상을 내려 왔다. 오늘도 없으면 어쩌지? 설마 오전부터 어딜 가겠냐.
"아저씨, 어디 가요?"
저번에 수상쩍은 눈초리가 심상찮더니 결국은 묻는구나. 엘레베이터가 내려오기만 기다리는데 수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405호 가는데요."
어린 아이의 눈망울로 아주 선량하게 대답을 했다.
"405호는 왜 가는데요?"
"405호가 거기 있느니까요."
말장난 하는게 아닌데 그랬다. 수위의 눈초리가 무섭다.
"거기 잠깐만 있어 봐요."
수위가 날 수위실 앞에다 잡아 두었다.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는게 그녀에게 날 확인하려나 보다.
오피스텔에도 인터폰이 있구만.
"그녀가 있대요?"
"누구라고 말해 줘요?"
"동엽이라 그러면 알거에요."
수위새끼 나한테는 졸라 퉁명하게 말하면서 수화기에 대고는 엄청 친절하게 대답한다. 내 자취하는 집에도 수위를 하나 쓰자고 주인 아저씨한테 건의해 봐야 겠다.
나 이 건물 옥탑방에 사는 신 동엽이라는 사람이여.
아, 그러세요. 저 이번에 이 건물 수위로 내정된 아무갭니다. 가장 높은 곳에 사시는 동엽씨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그럼 계속 수고하세요. 그 괜찮을 거 같다.
"올라가 봐요. 그 밥그릇은 뭐에요?"
"내 밥그릇인데요."
호주머니에 숟가락도 있는데 그것도 봤다면 물어 보겠지. 물론 내 밥 숟가락이라고 대답을 해 주겠지.
엘레베이터를 내리자 마자 나영씨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여기에요."
아주 밝은 얼굴이다. 날 보고 저런 표정 지을 줄 알았으면 어제, 그제도 오는 건데 그랬다. 안 덥냐 그런데. 하숙집에서 늘 보던 긴 주름치마를 입고 있다.
"하하, 안녕."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의 오피스텔은 자그마하고 아름다웠다. 티비에서 자주 보던 전형적인 원룸 오피스텔의 모습이다. 꽃 병도 있고, 화분도 있고, 침대도 있네. 자그마한 탁자도 있다. 싱크대도 좋아 보인다.
"참 빨리도 오시네요."
"아, 아침에 일찍 깬 바람에."
"그말이 아니라 여기 가르쳐 준 날로부터 일주일만에 왔다는 말이에요."
"아, 일주일만에... 가까우니까 빨리 찾게 되었어요."
"동엽씨 고등학교 때 국어 못했어요? 그런 국어 실력으로 어떻게 글을 쓴다고
그럴까."
뭐야, 들어서자 마자 날 놀려? 밝은 표정이라 참는다.
"집이 아담하고 좋네요."
"그래도 예전 하숙치던 그 집이 늘 그리워요. 동엽씨 밥 먹으러 온 거죠?"
"어떻게 알았어요? 나영씨는 아침 먹었어요?"
"아직 안 먹었어요. 예전에 하숙 쳤었는데 아무리 집을 줄였지만 동엽씨 밥 퍼줄 밥그릇 없을라고 그걸 들고 왔어요? 하여튼 잘 왔어요."
숟가락도 가져 왔는데 보여줄까 말까.
"제법 늦은 시간인데 아직 아침을 안 드셨군요."
"동엽씨가 올 것 같아서,라고 말하면 믿어 주실래요?"
믿어 줄까, 말까. 말이라도 기분이 좋은 답이다. 그녀가 싱크대 앞으로 갔다. 작은 식탁의 의자에 가 앉아 보았다. 그녀가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다시 오피스텔 내부를 찬찬히 둘러 보았다. 제법 꾸민 흔적이 보인다. 탁자 위에는 보지 못했던 그녀의 가족 사진이 있다. 아버님이 잘 생기셨네. 하숙집 아줌마의 모습도 새롭다. 느끼지 못했었는데 그녀의 언니가 지금 그녀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짧은 머리가 바로 고등학생이란게 표가 나는 남자도 하나 있다. 그녀의 오빤가 보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혼자다. 그녀의 뒤모습을 바라 보며 가여운 생각을 해 본다. 그녀가 중학생 정도의 나이때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좀 신기하다. 사진 속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고 바로 그 소녀가 그녀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바지는 맘에 안들었나 봐요?"
그녀가 뜨거운 콩나물국을 퍼다 주며 말했다. 날씨가 더워도 국은 항상 뜨겁구
나.
"네? 맘에 들던데요. 왜요?"
"셔츠는 그런데로 잘 어울리네요."
"예."
"동엽씨가 오늘도 안 왔더라면 저 며칠 동안 더 못 봤을거에요."
"왜요?"
"오늘 오후에 어딜 가거든요."
"어딜 가는데요?"
"갈때가 있어요."
"언제 오는데요?"
"삼일뒤나 사일 뒤에 올거예요."
"멀리 가요?"
"그렇게 멀진 않아요.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앞으로는 친 오빠처럼 대해야 할 사람이 있거든요."
"에?"
"뭘 그리 놀라세요?"
당연히 놀라지. 남자 얘기가 나왔는데. 시집이라도 가려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겁지 당연히.
"친 오빠처럼이라면, 시집가는 것하고 연관이 있나요?"
"없다고는 말 못하겠죠."
씨, 대답을 애매하게 하냐. 시집 가면 안되는데, 지금 처지로서는 붙잡고 싶어도 명분이 없다.
"오늘 갈 거에요?"
"네, 오후에 출발할까 생각중이에요. 수요일 쯤 전화해 보세요. 그때 아마 나한테 먹을 것이 많지 않을까 싶네요. 아 맞다. 저 전화 설치했어요."
이 여자가 진짜. 혼자서 삼일동안 어딜 간다는 말이냐.
"번호가 몇 번이래요?"
"765-0865(혹시 같은 번호 소지자는 그러려니 하세요. 그냥 대충 만든 번호니까. 실은 내 피시에스도 뭐뭐뭐에 0865인데.)에요. 나중에 다시 메모해서 줄게요."
그것도 내가 못 외울것 같냐. 405호도 외었었는데.
그녀가 밥을 퍼와 나와 마주 앉았다. 다음부터는 밥그릇 안 가져 와도 되겠다. 하숙할 때의 내 밥그릇과 무척 닮은 밥그릇이 내가 들고 갔던 것 보다 좋았다. 밥을 다 먹고 그녀가 설거지 하는 동안 그녀의 침대에 가 앉아 보았다. 느낌이 묘하지만 좋은 쪽이다.
여기서 그녀가 잔단 말이지? 쿠쿠. 푹신하다. 나도 한 번 누워 볼까? 눕는 척 하다가 그녀한테 들켰다.
"그거 메트리스 바꿔야 겠어요. 제가 산것이 아니라 여기 있던 거라서 스프링이 많이 느선한 것 같아요. 그런거 같지 않아요?"
내가 언제 침대 생활을 해 봤어야 알지. 아무리 하숙하면서 같이 살았다고 자기 침대에 누워 보는 사람한테 하는 말이 스프링 느선한 것 같지 않나요?
"언제 갈 건데요?"
"내가 간다는 곳이요?"
"네."
"아직 여유 있어요. 쫓아 내지 않을테니까 더 놀다 가세요. 동엽씨 토요일이라 할 일도 없잖아요."
아무리 할 일 없는 것이 맞지만, 그 말은 별로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다.
그녀가 커피를 끓여 주면서 침대 위 내 옆으로 와 앉았다. 괜히 어색했다. 할 수 없이 눈치를 살피며 바닥에 내려 앉았다.
"바닥이 별로 안 깨끗할텐데, 왜 거기 가서 앉아요?"
"커피 흘릴까봐."
"훗. 동엽씨 방 깨끗해요?"
"오늘 청소하고 왔어요"
"다음에 또 청소 해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이런 저런 말들이 오고 갔다. 한동안 그녀는 침대에 앉아서 나를 내려 보며 이야기 했다. 그게 불편했는지 그녀가 침대위로 올라와 앉으라 말을 했지만, 침대라는 단어와 남,녀라는 단어가 합해지면 왠지 이상한게 연상되어서 피했다. 나중엔 그녀가 내려와 앉았다. 바닥이 더러울텐데...
종석이라는 형이 나보다 빨리 잘 나가게 되서 배 졸라 아프다는 얘기도 하고, 현철이랑 그 밖의 하숙생들과 간혹 연락을 한다는 얘기도 듣고, 뭐 일상 얘기지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의 모습이 시간을 가렸기 때문이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시계를 보는 투가 곧 나가 봐야 될 시간인 것 같다. 저 차림으로 나가지는 못할 것이고, 하숙집 처럼 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없어야 씻고, 옷도 갈아 입을 것 같다.
"저 가 볼게요."
"오늘 내 일만 없어도 어디 놀러 갈 수도 있는건데."
"근데 진짜 어디 가는데요?"
"서글픈 일이라서 말하기 싫어요."
서글픈 일? 시집가는 일이 서글픈 일은 아니지. 다행이다.
"잘 다녀 오세요. 그럼 나는 이제 갈랍니다."
"참, 동엽씨. 물어 볼게 있어요."
"뭔데요?"
일어서려다 다시 앉았다.
"저 번에 내가 옷가방에 넣어 준 시 있잖아요."
"네."
"음. 그 시가 자신의 처지를 비난한다고 그랬잖아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네?"
"내가 왜 달이에요? 혹시."
"혹시 뭐요."
"아니에요. 내가 왜 달인데요?"
음, 친오빠처럼 대해야 될 놈을 만난다고 그랬지? 대충 나도 자네를 좋아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려야 하지 않겠냐 싶다.
"모르겠어요. 하여튼 그때 시는 좋아하는 사람에 비해서 초라해 보이는 내 자신에 대한 시 같아서 별로 였어요."
그녀가 내 집에 가는 걸 뚜렷한 시선으로 방해 하고 있다.
"그걸 내가 보냈다는 것은 생각 못해 봤어요?"
"거거 나영씨가 보낸 것 아니에요?"
"일부러 그러는 거에요? 진짜 우둔한 거에요?"
"뭐가요?"
"아니에요."
"저 갑니다. 잘 다녀 오세요."
"잠깐만요 동엽씨."
"왜요."
"전화번호 적어 가야죠."
"외웠어요. 765에 공팔육오."
"음, 한가지만 더 물어 봐도 될까요?"
"물어 보세요."
"동엽씨도 절 좋아하나요? 아니에요. 잘 가세요."
야이, 물어 놓고 대답할 시간도 안주고 쫓아 내면 섭하지. 좋아하기야 예전부터 좋아했지. 요즘엔 좀 헷갈리지만. 아무래도 자넬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근데 동엽씨도? 나 말고도 그녈 좋아하는 놈이 있나 보네. 그놈이 누굴까. 그 친오빠처럼 지내야 된 다는 놈이 나영씨 보고 좋아한다고 말했나? 수요일날 꼭 여기 다시 오리라. 그녀 위해 꽃다발을 한 번 사 볼까? 하여튼 마음 뺏기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야 할텐데. 걱정이 하나 생겼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