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조직문화에서는 ‘근면성실’과 ‘무난함’이 ‘뛰어난 머리’나 ‘독창성’보다 더 우위의 가치로 대접받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미국사회는 우리의 그것과는 좀 많이 달랐다. 미국 땅에서 거의 십년 가까이 살았지만, 나는 미국사람들이 ‘diligent'란 말을 큰 칭찬으로 사용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diligent'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diligent’ 보다는 오히려 ‘smart’란 말을 더 큰 칭찬으로 여겼다.10시간을 성실히 일하는 것 보다 뛰어난 머리로 5시간에 동일한 성과를 내고 남는 5시간으로는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더 유능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는 뜻이다. ‘탄력근무제’ ‘성과급제’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사실도 바로 이 같은 사고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좀 더 살펴보니 ‘smart’보다 더 큰 칭찬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bright’ 혹은‘brilliant’였다. 보통 우리는 ‘bright’를 사전적 의미로 ‘밝은’ ‘환한’ 등으로 알고 있지만, 사람을 칭찬하는 경우에는 ‘똑똑한’ ‘앞날이 밝은’등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또 ‘brilliant’를 사람이나 아이디어에 쓸 경우에는 ‘특출나게 똑똑한(extremely clever)’, ‘눈부시게 뛰어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똑똑하다는 것을 넘어서 ‘탁월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회의 등을 할 때는 그 아이디어가 ‘반짝반짝’한 사람을 지칭하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도 바로 이러한 미국사회의 분위기를 잘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사회는 성실한 것보다 뛰어난 것을 선호하고, 단순히 맡겨진 일을 잘 하는 사람보다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조직에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을 더 선호하고 있었다. 마이크로 소프트, 애플, 구글, 그리고 페이스북 등은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고 때론 게을러 보였던 ‘이단아’에 의해서 ‘눈부시게’ 태어난 ‘탁월한’ 창조물이었던 것이다.
「회의(會議); 여럿이 모여 의논함. 또는 그런 모임.」
회의(會議)의 사전적 의미가 이러한데도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회의가 지금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금 내가 ‘회의’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러한 경직된 회의문화에서부터 이미 우리사회는 ‘bright’하고 ‘brilliant’한 천재의 출현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군 생활 할 때도 정치권에서 일할 때도 그리고 회사에 들어와서도, 내가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은 ‘튀지 말라’는 것이었다. ‘열개의 공(功)보다 한명의 적, 한 번의 실수로 찍히지 않는 것이 조직 생활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도 수없이 들어왔다. 이러한 조직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반짝반짝’하고 ‘탁월한’ 아이디어가 만들어 질수 있을까? 조직의 문화가 이러하니 역사에 한 획을 그을 ‘1등 천재’는 만들지 못하고, 늘 고만고만한 실력의 ‘2등 우등생’만 수없이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70년 80년대 곧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무섭게 치고 올라왔던 일본이 그 마지막 지점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이유도 바로 ‘천재’를 만들지 못하는 일본사회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간 근면성실과 똑똑함을 갖춘 2등 우등생으로 지금의 2등 국가를 이뤄왔다면, 이젠 반짝반짝하고 눈부신 1등 천재들로 탁월한 1등 국가의 목표를 달성해야 될 때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오랜 조직 문화를 모두 바꿀 수는 없겠지만, 먼저 내일 아침 회의에서부터 우리 후배들이 자유롭고 맘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내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