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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두 달에 한번 꼴로 부산에 내려갔다. 그러다가 이제는 1년에 두세 번 내려가는 꼴이 되었다. 한국 최고의 명절인 설을 며칠 앞두고 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서진이랑 일요일에 집으로 내려와라.]
아버지는 그 한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굉장히 난감했다. 그와 함께 부산에 있는 그리운 내 집으로 가야 한다니. 나는 아버지와의 통화 내용을 그에게 전했다.
“내가 부산까지 왜 가야 하는데, 아아 - 귀찮다. 너나 제발 가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고속열차가 생겼다는 말은 들었지만, 지금 운영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아기였을 때 그가 우리 집으로 자주 놀러왔다는 소리를 아버지한테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몇 년 동안 나를 재워주고 먹여준 일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저녁이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부모님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와 내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알아서 해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내 아버지에게 전화해 못 간다는 말을 하라는 뜻이었다. 그는 내 아버지와 10분 동안 통화를 했고, 아버지의 설득 아닌 억지에 하는 수 없이 부산으로 내려가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형, 병원은 어떡하고요? 내일 가서 내일 올 수는 없는 거잖아."
“어떡하긴 뭘 어떡해. 문 닫아야지.”
그렇게 여차 여차 해서, 그와 내가 함께 부산에 내려가게 되었다.
나는 요즘 낮과 밤이 바뀌어 굉장히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근래 며칠 동안은 밤이 되면 그가 모르게 거실에서 채팅을 하고는 했다. 대화방에서 만난 두 사람과 몇 시간 동안 얘기를 하던 중 우연히 그의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나는 그와 함께 부산에 내려간다는 일을 말해주었고 어쩌면 한방에서 자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어차피 나는 바닥에서 자야겠지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모 님이 '형 같이 자요' 라고 말하며 침대에 파고 들으라고 했지만. 그의 말에 나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새벽 4시쯤 잠을 청했고, 새벽 5시에 그가 나를 깨웠다. 1시간 밖에 자지 못한 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그를 쳐다보자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던 그가 입을 열었다.
“6시 15분 차로 부산 내려갈 테니까 준비해.”
나는 겨우 일어나 씻었고 간발의 차이로 무궁화호를 탈수 있었다. 나는 기차 안에서 잠을 청했는데 그가 7시에 다시 나를 깨웠다.
나는 하품을 하면서 그가 건네는 김밥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부산에 도착하는 데에는 정확히 5시간 반이 걸렸는데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허리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아아 그리운 부산의 공기, 부산의 하늘이여. 지하철을 타기 전에, 나는 스티커 사진 찍는 기계를 찾았다.
“너 지금 나더러 이거 찍자고 하는 거 아니지?”
“기념이죠, 기념.”
그가 나를 지구 최대의 또라이 쳐다보듯이 바라보다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을 억지로 떠밀며, 사진 찍는 데에 성공했다. 찍기 싫다고 버벅거리던 그는 더 이상 없었다. 프레임을 보면서 끊임없이 포즈를 취하던 그를 슬쩍 보며 나는 순식간에 두뇌 해전을 했다. 내가 지난날, 그의 집에 얹혀살면서 받아왔던 그 서러움, 그 억울함, 내 인생을 더욱 거지 같이 만들었던 그 뼈에 사무친 원한, 그런 것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영상처럼 사르르 지나가는 거였다.
프레임의 거리와 가까울수록 얼굴이 더 크게 나온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중의 상식이었다. 그의 뒤통수를 살짝 밀면 자연스레 얼굴이 크게 나올 것이고, 나는 얼큰하게 나온 그의 사진을 보고 크게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는 다는 소리가 나오면서, 나는 남겨둔 그 1초에 모든 걸 걸고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내 스스로가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는지 살짝 민다는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어갔다. 그동안 내가 당한 핍박에 대한 원한이 손가락으로 실어졌는지 살짝 민다는 것이 그만 화면에 얼굴을 박게 한 거였다.
나는 경직된 채로 있었고 얼굴을 든 그의 코에는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뒤질라고.”
나는 그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으로 5분 동안 오지게 터졌고, 사진은커녕, 돈만 낭비한 격이었다. 내 현금 오백 원으로 휴지까지 사야했다. 그의 코피가 멈추고 나서야 우리는 지하철을 탈수 있었다.
그가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여긴 지하철이 일자로 가기만 하면 되네.”
그의 말을 들은 부산 시민들이 우리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구리를 치며 닥치라고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부산역, 중앙동, 남포동, 자갈치, 토성동, 동대신, 서대신, 대치, 괴정, 사하, 당리, 드디어 하단이었다. 나는 투덜거리는 그의 팔을 질질 끌어당기며 오랜만에 가보는 집으로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옮겼다.
“어서 와요, 서진군.”
내 어머니였다. 그는 집에 오기 전 마트에서 사온 선물세트를 어머니에게 건넸고 내 아버지는 그의 손을 반갑게 잡으며 외아들인 나는 본 체도 안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내 방에서 짐을 내리고 곧 바로 주방에서 점심을 먹었다. 수제비로 점심을 해결한 그는 내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낮잠을 청했고 나는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의 잠을 방해하기 위해 끈임 없이 말을 걸었다.
“형, 오늘 어디에서 잘 거예요? 방은 세 개뿐인데 부모님 방이랑, 내방이랑, 또 하나 있는 방엔 물건으로 빽빽 하고. 그럼 내 방에서 자야하는데.”
내가 싱글벙글 웃고 있자 그가 잠이 가득 찬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하고 싶은 말만해라.”
“나랑 같이 자야한다구요. 나 허리 안 좋은 거 알죠? 바닥에선 영 못 자는데.”
그가 신경질 적으로 대꾸했다.
“아, 그럼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자던가.”
그는 더 이상 내게 입을 열지 말라고 명령했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만화책 두 권을 꺼내들고 보다가 잠이 밀려들었다. 바닥에 이불을 펴고 자려다 문득 침대에 껴들어! 라고 말하던 모 님이 떠올랐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침대를 차지하던 그를 안쪽으로 밀어 넣고 그의 옆에 눕는데 성공했다. 그는 잠이 들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나는 그의 옆에서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누르며 눈을 감았다.
“아아 치우자.”
나는 다시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청했다. 꿈을 꾼 것도 같았다. 얼굴이 흐릿해서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와 키스를 하는 그런 꿈이었다. 눈을 떴더니 그가 내 입을 손으로 잡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하는 거예요!”
“너 입 벌리고 자 길래, 내가 그 입 다물게 해줬지. 똥파리라도 들어가면 어떡하냐, 응?”
왜 숨이 막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알겠다. 벽에 걸린 시계를 문득 올려다보았더니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푹신푹신한 기분이 들어서 밑을 보았더니 침대 위였다.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에게 물었다.
“내가 왜 침대에 있어요? 이상하다. 바닥에서 잤는데.”
분명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그런데 바닥에 깔려있어야 할 그 이불은 모조리 개어져 있고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는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면서 대꾸했다.
“내가 침대에 눕혔다 징그러운 자식아. 무거운 새끼, 내가 너 새벽까지 컴퓨터 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런데도 허리 아프다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든? 자려면 곱게 쳐 잘 것이지 신음소리는 왜 내고 지랄이야, 짜증나게.”
“형, 솔직히 말해요. 나한테 이상한 짓 했지?”
그가 살인 사마귀의 시선으로 나를 향해 불꽃을 튀겼다.
“안 그럼 내가 신음은 왜 내요.”
나는 설마,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키스를 했던 꿈 때문이었나. 별자리 운세를 보던 그가 프로그램을 닫고 옆에 놓여있던 유리컵을 잡았다. 나는 내게 던지는 건 줄 알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그는 물을 마시며 나를 비웃었다.
“지랄을 떨어라, 지랄을. 세상에 사람이 너뿐이라고 해도 내 너한테 손끝 하나 안 건드릴 자신 있다. 차라리 동물이랑 교배를 하지 미친 새끼."
내가 잠결에 계속 아야, 라고 잠꼬대를 하자 그는 내가 허리가 아파서 그러는 줄 알고 침대에 눕힌 거였다. 그는 이런 식으로 가끔 내게 감동을 주고는 한다. 불편한 정장을 입고 있던 그가 미리 준비해 둔 옷가지를 꺼내 입었다. 저녁 먹으라는 어머니의 부름으로 우리는 거실로 나갔다.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보지도 못한 음식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갈비찜, 갈비탕, 회까지!
“서진군한테는 매번 감사해요. 우리 성현이 보살펴줘서 너무 고마워요.”
내 어머니의 말에 그는 옅은 미소를 짓고 정중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말 놓으세요.”
나는 그의 가증스러움을 보며 식탁을 젓가락으로 두세 번 두드렸다. 내 부모님에게는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보다, 이서진 이란 인간이 더 중요해 보였다. 그와 나는 묵묵히 식사를 했고, 디저트로 과일을 먹으면서 그와 부모님의 대화는 길어졌다.
“성현이 넌 기억 안 나지? 서진이가 어렸을 때 자주 놀러왔었는데.”
“그래요? 전혀 기억에 없는데.”
“네가 서진이를 얼마나 잘 따랐는데.”
전혀 기억에 없는 사실이었다. 어머니가 사진을 몇 장 꺼내 들고 오셨는데 거기에는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나와, 열 넷에서, 열다섯 살로 당돌해 보이는 소년이 자전거 앞에 서있었다. 나는 그 소년이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꼬맹이가 이렇게 험악하냐. 이 칙칙한 얼굴 좀 봐, 그 어둡디 어둡다는 블랙홀도 이보단 밝겠다. 분명히 소꿉놀이 대신 분신사바 같은 거나 하는 그런 녀석이었을 거야.”
혼자서 한다고 한 말이었는데 목소리가 컸는지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화재를 돌렸다.
“나랑 비디오나 빌려 볼래요?”
“그거 좋지.”
그가 가증스러운 얼굴을 들이밀며 순수 살인 사마귀의 표정을 지은 채로 히죽거렸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비디오 가게로 가면서, 그와 나는 과자와 술을 잔뜩 사서 양손에 가득 쥐고 있었다.
“비디오 뭐 볼래요?”
“뻐딩기지 말고 알아서 봐라 앙?”
그렇게 말한 그는 박신양, 전지현 주연의 '4인용 식탁'을 빌렸다. 그리고 나는 극장에서 참 인상 깊게 봤던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을 빌렸다. 그도 나도 더위, 추위를 싫어했다. 우리는 집까지 미친 듯 질주했다. 침대 위에 과자 봉지를 뜯어 펼쳐 놓고, 캔 맥주 4병을 꺼내 마셨다. 나는 반지의 제왕부터 보길 원했으나 4인용 식탁을 먼저 봐야 한다는 그의 의견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한참 비디오를 보고 있던 그가 낙담하며 비디오를 뺐다.
“아, 재밌게 잘보고 있는데 빼기는 왜 빼요.”
“뭐냐 이거. 야한 거 아니었어?”
장화홍련, 여우계단과 마찬가지로 공포물을 성인 비디오로 착각 한 것이다. 나는 어이없게 웃으며 그의 술을 빼앗아 먹었다. 그는 그런 나를 힐끗 쳐다 보다 다른 캔 맥주를 들었다.
“.저,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왜?”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나는 신중하게 말했다.
“왜 요즘은 욕하면서 안 때려요? 공포심 나게, 그냥 평소처럼 해요. 욕도 하고, 밥상도 뒤엎고, 청소도 막 시키고, 심부름도 시키고 그러라고요.”
“…….”
“서진아 네가 드디어 이 형님한테 졸았구나, 거봐 너는 평생 그대로고 나는 나이도 안 먹을 줄 알았어? 응? 내가 그랬지 20년 뒤에 맞장 뜨자고.”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별 반응 없는 그를 놀리기 위해한 말이었지만 난데없이 그가 갑자기 내 뒤통수를 붙잡고 자기가 마시고 있던 술을 내 입에 퍼부으며 크지도, 작지도 않는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로 쏘아대는 거였다.
“마셔라, 마시고 배 터져 죽어라. 내 아무리 성질 죽이고 살면 뭐하냐. 네 놈이 지랄을 용으로 트는데. 내 누누이 말한다만 지랄도 병이다, 염병 그만 까고 눈깔아! 바닥에 고개 안 쳐박냐 이 자식아!”
그는 흥분의 도가니탕으로 들어가 분노의 국물에 온몸이 달궈져 주체할 수 없는 광기로 무시시한 사마귀의 눈을 하며 침대를 주먹으로 내리꽂는 행동을 취했다. 그는 발로 나를 차며 바닥으로 밀어내는데 성공했고, 이불을 덮어쓰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불 꺼!”
그래서 나는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다가 침대위로 기어 올라오면 대가리 초토화 될 줄 알아.”
나는 그가 왜 저렇게 까지 신경질 적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저 조크 삼아 던진 말일뿐인데, 반응이 저렇게 까지 나올 수 있는 것인가. 평소보다 더 신경질 적이고, 더 험악하며, 욕은 또 대포처럼 쏘아 올렸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욕하지 마세요.”
“남이사. 욕을 하던 좆을 까든!”
“…….”
6.
나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방영하는 드라마를 매우 좋아했다. 낭랑 18세, 왕의 여자, 대장금 게다가 레슬링까지. 하지만 그가 있을 때는 무조건 레슬링을 시청해야만 했다. 불행히도 TV는 거실에 한 대 뿐이었다. 수, 목이 되면 천국의 계단을 시청했다. 딱히 재미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 회까지 보았다. 그는 유치하고, 보는 사람 짜증나게 만드는 드라마라며 천국의 계단을 매우 싫어했다.
“오늘이 마지막 회라던데요.”
나는 때마침 가계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집안일 담당으로, 그가 밖에서 돈을 벌어오면 그가 주는 생활비로 살림을 꾸려갔다. 그는 내게 가계부를 쓰게 해서 한 달에 한번 검사를 했다.
“최지우 죽는다, 안 죽는다로 내기 한번 하자.”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천국의 계단, 제목만 들어도 죽음이 떠오르지 않던가. 게다가 친구에게 마지막 회 내용을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다.
“피차 한판 거는 거 어 때요? 난 최지우 죽는다에 걸랍니다.”
“내가 최지우 죽는다로 할 테니까 넌 산다로 걸어. 어린놈의 자식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지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되겠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죽는다라고 예상하는 게 긍정적, 부정적 하고는 무슨 상관일까. 게다가 대한민국의 앞날은 왜 나오는 거지. 그도 최지우의 죽음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어른부터 희망적으로 세상을 보는 게 어떨까요? 아이들은 미래를, 어른들은 현재를 이끌어 가야죠. 드라마 하나로 나라가 무너질 만큼 대한민국은 그렇게 절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난 죽는다에 걸 테니 돈 많은 형이 양보해요.”
결국은 내가 산다에 내기를 걸었다. 그가 얼마나 억지스럽고 고집 센 어른인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짜증을 부리며 그에게 말했다.
“피자가 먹고 싶으면 그냥 먹고 싶다고 하지, 성립도 안 되는 내기는 왜 하자고 그래요. 코흘리개의 돈을 빼앗으면 기분이 좋아지나 보죠? 그건 또 무슨 정신병이에요? 자신이 너무 치사하단 생각은 안 들어요?”
그가 쌍심지를 켜고 냉담하게 말했다.
“너 요즘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 적인 거 알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그거 아냐고.”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피자를 주문했다. 그러는 동안 꽤 많은 정적이 흘렀다. 그의 말대로 요 며칠사이 나는 많이 변해있었다. 예민했고 모든 일이 짜증스러웠다. 원래부터 내가 예의바른 청년이라던가, 심지가 고왔던 건 아니지만 그의 말만큼은 내게 절대적이었다. 형제가 없어 외롭게 자랐던 만큼, 나는 진심으로 그를 형으로 생각하고 따랐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에게 내가 이성애자인 것 마냥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갈등하고 괴로워했던 만큼 신경질적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그는 말없이 나를 주시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정신과 의사가 선입견을 가진다면 그건 의사로서의 자격이 없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고정관념을 전혀 가지지 않는 다는 건 그것 또한 모순이겠지. 의사로 지내오면서 많은 환자를 보아왔고 그 중엔 게이나, 레즈도 몇몇 있었다. 네가 게이든 아니던 그런 건 상관없어.”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사실 그는 내가 게이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몇 번씩 했다고 한다. 나는 간혹 그에게 남자가 고백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했었다. 그 때마다 그는 거절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내가 대중목욕탕을 피하는 것도, 여자에게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도 의심을 불러일으켰다고 그는 말했다. 결정적인 것은 인터넷 창에 저장되어 있는 G. M의 주소였다.
그래서 나는 집을 나왔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많은 생각을 했고 또 많은 후회를 가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잘된 건지도 모른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 짧은 며칠 동안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친한 형의 충고대로 그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차인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게이임을 커밍아웃 한 것뿐이고 도망칠 이유는 더욱이 없었다. 나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그가 있는,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갔다. 그는 처음으로 나를 때렸고,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맞았다.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온 것을 축하한다. 집 떠나면 고생인 거 이제 잘 알았을 거라 믿는다. 많이 괴로웠지.”
많이 괴로웠지.
그것은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절실한 한마디였다. 나는 그가 원한다면 자취방이라도 구해서 나갈 작정이었지만 그는 내가 계속 이곳에 있기를 원했다. - 물론 일 잘하는 식모로서. ― 정신과 의사라서 그런지, 그의 말은 언제나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그는 나를 평소처럼 대했지만 나는 좀처럼 그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를 신경질 적으로 대했다.
“놀지만 말고 병원에 나와서 일이나 도와.”
다운이는 얼마 전 과외를 그만 두었다.
“2학년 올라가면 그 때 과외 할 생각이니까 너도 공부나 해둬.”
학창시절부터 나는 수학을 싫어하는 만큼 못했다. 그래서 녀석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치다가도 내가 몰라서 말문이 막혔던 적도 많았다. 어쨌든 녀석과의 과외는 3월 달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를 따라 병원에 출퇴근을 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8시가 되면 병원에 가서 청소하고, 어항의 물을 갈아주고, 물고기에게 밥 주고, 시간마다 차를 끓이고, 그러다 간호사누나와, 준석형의 잔심부름을 하고 이상한 서류 같은걸 정리했다. 그렇게 부려먹으면서도 일당은 적었다. 나는 그것에 앙심을 품고 그의 흰 가운에 콧물을 풀었다. 그가 나를 의식하지 않듯 나도 그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할 것이고, 내게 있어 그가 친형이었듯, 그에게도 내가 친동생처럼 느껴질 만큼 그가 나를 편하게 느끼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첫댓글 주인공의 형을 향한 마음의 움직임이 감칠맛네게 표현되어 읽으면서도 내내 므훗한 기분으로... 그런데 형의 본심은 뭘까나?....
재밋게읽엇습니당
재밌게 읽었어요~
아...3편이 있었네요..2편에서 끝난 줄 알고 서운했었는데 잘 읽었습니다. 글 올려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앞으로도 좋은 글 올려주시길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