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이 삶의 참모습입니다
-광주보훈병원 정년퇴임 인사말
광주보훈병원 순환기내과 김완
존경하고 사랑하는 광주보훈병원 직원 여러분!!
정년퇴임 인사말을 하려고 단상에 서니 가슴 부풀었던 제 젊은 날들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갑니다. 1989.5.1.일 자로 발령을 받고 근무하기 시작하였으니 횟수로 30년이 되었습니다.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온 때가 32세의 청년이었습니다.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풋풋했던 청춘이 초로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쁜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시간은 참으로 힘이 세지요?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 不可輕)’이란 말처럼 특별하게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아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저 자신이 매우 조심스러워집니다.
광주보훈병원에서 근무한 30년 동안 제 스스로를 되돌아봅니다. 열악한 여건에서 선배들도 없이 수련을 담당했고 수련 받았던 초기 선생님들과 각과 과장님들의 노고에 깊은 애정과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변치 않은 우정으로 저를 격려하고 용기를 준 이 지역 의료 관련 여러 선생님들과 국가유공자, 그 가족과 보훈 유관단체에 종사하는 분들, 특히 광주보훈병원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근무했던 수많은 전, 현직 직원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저에게 때로는 자긍심과 기쁨을 때로는 고통과 아픔을 안겨준 병원에 내원한 수많은 환자분들께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환자를 통하여 제가 성장하고 배우고 발전해왔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환자가 경전이다』 는 제 졸시의 제목처럼 환자와 더불어 애환을 함께 해온 30년이었습니다. 전공의, 학생들과 함께 환자를 둘러보는 병동 회진시간과 의국 집담회 시간은 늘 저에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라’, ‘의문을 품어라’, ‘합리적으로 접근하라’, ‘창의적으로 생각하라’ ‘어떤 의사가 가장 훌륭한 의사인가?’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곤 하였습니다. 후배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습니다만 임상과 학문 연구에서는 “Kill your father!”라는 한마디를 명심하기 바랍니다. 가르치는 선배의사보다 더 뛰어난 후배 의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갑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삶의 연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깨우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좌절과 고통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졌지만, 아직도 미완성의 인격체이며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수년 전부터 저는 떠날 때를 생각하며, 해마다 봄이 되면 병원 내에 피는 매화를 기다려 왔습니다.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는 팔지 않는(梅一生寒不賣香) 매화의 고고함을 생각해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은 도외시한 채 권리와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지요. 병원의 중심은 결국 환자이어야 합니다. 병원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열심히 땀 흘려 일하지만 갈수록 힘겨운 우리 사회의 모든 이웃에게 위로와 치유, 희망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자꾸 제 자신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건넜을 때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끝마치지 못한다.
“세상에 완성이란 없습니다.
실패가 있는 미완(未完)이 삶의 참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삶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미완성(未完成)’이라는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족한 저와 함께 근무하면서, 직원 여러분들께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쓸쓸할 수 있는 이 퇴임식이 제가 존경하는 선배인 박봉주 부장님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인생은 60세가 들어야 철이 든다는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철없는 시절, 병원일로 학회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제 가족들에게도 한없이 미안합니다. 가장 행복한 시절이 60-75세 사이 라고 하니, 이제부터라도 철 좀 들어 일도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계신 김재휴 병원장님, 광주보훈병원 직원과 가족, 저희 병원에 내원하고 입원해 있는 환자들, 그리고 저희 병원을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보는 국가유공자와 가족들, 모든분들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9.02.19.
광주보훈병원 순환기내과 김완 두손
첫댓글 감동스럽습니다 형님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은 도외시한 채 권리와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지요. 병원의 중심은 결국 환자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