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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한 가지(장드보라)
(이사야 11:1-5)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이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1. 하나의 가지로 암시되신 그리스도
1) 가지라고 암시된 것들입니다.
① 이사야 4:2에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개역성경에 ‘싹’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체마흐’인데, 영어성경들은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② 예레미야서 23:5과 33:15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의로운 이 가지를 히브리어로는 역시 ‘체마흐’(jm;x,,)라고 하였는데, ‘네제르’라고 한 이사야 11:1의 가지와 같은 말입니다.
2) 지팡이, 또는 막대기라고 암시된 것들입니다. 이것은 많이 나타납니다.
①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에서를 만나기 전에 기도한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32:10입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집을 떠날 때에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갔었습니다. 그리스도 한 분만 모시고 갔음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② 다음엔 모세의 지팡이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처음 받아 애급에 가서 동족을 구해내라고 명령을 받았을 때에 그는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물으시기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셨지요? 그에게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보잘 것 없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모세는 바로 그 지팡이로 각종 이적을 행했습니다. 드디어 바로를 굴복시켰습니다. 그는 홍해를 가를 때에도 밤새도록 지팡이를 들고 기도했습니다. 아말렉을 물리칠 때에도 그는 지팡이를 잡고 두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평소에는 아주 하찮게 보았던 그 지팡이는 엄청난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3) 나무의 순이라고 암시된 것들입니다.
① 이사야 53:2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 앞에서 자라나는 연한 순과 같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순은 아직 가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어린 가지를 뜻합니다.
② 그런데 스가랴 3:8과 6:12에는 “장차 하나님의 종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순을 히브리어로 체마흐라고 하였는데, 예레미야서에서 의로운 가지라고 했던 그 가지와 같은 단어입니다.
③ 히브리어로는 같은 단어를 가지라고도 번역했다가 순이라고도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혼동이 일어납니다만, 모두가 그리스도를 암시, 또는 상징하는 단어들입니다.
2. 그리스도를 이렇게 ‘하나의 가지’로 표현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첫째로 이는 그리스도의 겸손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하나의 가지이십니다. 그런데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이지만, 본래 미천한 농부였습니다(삼상 16:1; 삼하 7:8). 당시 이새는 룻기에서 보는 대로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양식을 찾아 떠났던 집안에 이방 여인인 룻이 며느리로 들어와서 보아스와 재혼하게 되어 생겨난 가문이었고, 그 가문은 시들고 황폐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싹, 한 가지’가 이새에게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메시야의 외형의 비천함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메시야는 화려하고 강력한 왕국의 제왕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다 무너진 왕국의 잿더미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천한 목수의 집안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겸손하고 비천한 메시야는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생애가 천박하고 미미한 생활이었습니다. 결코 화려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이사야 53:2에서도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한 가지’는 비천하게 오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2) 유일하신 메시야이심을 나타냅니다.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난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나타냅니다.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3) 생명을 주시는 메시야이심을 의미합니다.
① 미미한 존재였던 한 가지에서 마침내 열매가 열렸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심을 보여줍니다. 생명체의 특징은 성장하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는 결실하는 가지입니다. 즉 생명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을 통해서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많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런 진리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요 12:24).
③ 한 가지에서 열매가 맺힌다는 이야기는 이미 구약에서 잘 보여주셨습니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났습니다. 아무나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겉보기처럼 그렇게 화려하고 안일한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자기의 삶을 온전히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④ 그러므로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이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히 2:14-15). 많은 영혼의 열매를 맺으신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암울한 조국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 그분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이 가지는 의로운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의로운 가지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이 세상에는 의인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물론 노아나 에녹도 의인이고, 모세, 사무엘, 다윗이나 엘리야도 모두 의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본래부터 의인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래는 모두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의인으로 인정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본래부터 죄가 전혀 없으신 의인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의인이 없는 세상에 드디어 의인이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피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말은 인간의 생명을 갖지 않으셨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는 이새의 뿌리에서부터 나온 가지였습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는 한 싹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①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이새의 족보를 빌려서 오셨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이새의 족보만 빌리신 것이지, 그의 피가 유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즘 고국에서는 예수님이 마리아의 피를 받아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교계가 시끄럽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죄인이 아닙니까? 천주교에서 하는 것처럼 마리아가 죄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려면 마리아의 부모도 죄가 없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의 친조부모나 외조부모도 역시 죄가 없어야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허무맹랑한 거짓말입니다.
②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태어나셨지만, 어느 남자의 정액을 받아서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부정모혈
49. 감사할 줄 아는 백성 (1) - (장드보라)
(시편 136:21-26)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 먼저 내 마음에 진심의 감사가 들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쥐가 한 마리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무서워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왜 이렇게 쥐로 만들어주셨습니까? 나는 고양이가 무서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너를 고양이로 만들어주면 되겠느냐?” “예. 하나님. 나를 고양이가 되게 해주세요.” 그러자 그는 고양이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개가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고양이가 되기는 했는데, 개가 무서워서 못 살겠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개로 변화되었습니다. 아마 들개가 되어 돌아다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가끔 들려오는 호랑이의 포효 소리에 얼마나 두려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호랑이가 너무 무서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호랑이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수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호랑이를 잡겠다고 자기를 찾아다니며, 산 속에 숨어 있으니, 도무지 무서워서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포수들이 무서워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너는 쥐가 되어야 하겠다. 너는 호랑이가 되어서도 쥐와 같은 겁쟁이 마음을 버리지 못하였구나.”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이 쥐를 보면 한 번도 하나님께 감사했던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 당시에는 감사하다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감사가 며칠을 가지 못합니다. 그가 처음에 고양이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까? 고양이로 있다가 개가 되었어도, 개가 되었다가 호랑이가 되었어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잠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금방 불평하는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2)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봅시다. 홍해를 건넌 후에 그들은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너무도 신기해서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이 ‘만나’입니다. 만나는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낸 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맛은 어떠했습니까? 출애굽기 16:31에 설명하기를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음식을 그들은 광야 40년 동안 날마다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1:5에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3)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들은 이 복된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더욱 힘들고 어렵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쥐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쥐의 공포심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까? 광야 백성들처럼 불평불만이 많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이 못된 마음은 고쳐질 수 없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마음은 평생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좋은 환경이라는 옷을 입혀 놓으니까 잠깐 그 못된 마음이 가려져서 훌륭한 인격자인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결정적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아 자기를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 7:3-4)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먼저 자기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눈 속에 들보가 들어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찬양합니다. 이 위대한 창조 그 한 가운데에 내가 있습니다. 그분이 나를 만드셨고,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제껏 엄청난 복을 부어 주시면서 길러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랑과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인 줄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겠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3.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1) 추수감사의 마음입니다.
① 추수란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 장사도 농사입니다. 회사에 다니는 것도 농사입니다. 더 좋은 일을 하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말에 ‘자식 농사’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자녀를 기르는 일은 벼농사, 밭농사 등과는 비교도 안 되는 중요한 농사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한 해 동안 나의 농사는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① 추수감사절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우리 조상들이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라고 하였는데, 반석이 그리스도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만나도 역시 그리스도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48-51)라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됨으로 주님의 농사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논에서 자라는 벼도 한여름의 뙤약볕과 사나운 비바람을 잘 견뎌서 드디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도 이런 고난을 잘 견디고 이겨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그 큰 은혜 안에서 거룩하고 복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농사를 하시지만, 또한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주시고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주셔서 그 마음에 우리가 농사를 짓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씨를 주님의 마음에 뿌려야 합니다.
3)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① 눈에 보이는 세상의 농사에 대해 감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에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드디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감사하면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지금 나에게 원치 않는 일도 생기기도 하고,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게 되기도 하지만, 그 배후에 전능하신 주님의 손길이 역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 오히려 감사가 충만해지지 않습니까?
범사에 감사함은 우리 믿음을 주님께 보여드리는 것이고, 또한 우리의 마음이 그만큼 더 커져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그릇이 되었음을 보여드리는 것
50. 감사할 줄 아는 백성 (2) - (장드보라)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의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1) 부모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효도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모든 도덕이나 윤리가 효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효도할 줄 모르면 예의도 도덕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십계명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가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① 십계명은 위의 넷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다음의 여섯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 첫째가 바로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불효한 자는 어떻게 됩니까? 출애급기 21:15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하였고, 이어서 17절에서도 “자기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잠언서에서는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20:20)라고 하였고,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30:17)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이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시겠다는 분명한 선언인 것입니다.
2) 더 나아가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고, 내 나라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① 우리는 나라의 법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만약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형벌을 받게 되지 않습니까? 물론 법을 어기고도 발각되지 않아서 형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② 우리는 자기의 나라를 가리켜 조국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조자를 썼으니까 할아버지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또는 모국이라고도 합니다. ‘어머니의 나라’라는 뜻도 되고 ‘어머니 같은 나라’라는 뜻도 됩니다. 내 나라는 나의 어머니요, 아버지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는 내 나라가 나를 지켜주지 않습니까?
우리의 조국을 세우고 발전시켜준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 비교해 보면 너무도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누가 대한민국을 세웠습니까? 북한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이 역사의 과정에 많은 분들이 있지만, 특별히 두 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건국하신 이승만 대통령이고, 둘째는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우뚝 세워놓으신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3) 우리는 누구에게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누가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자기 목숨을 주셨습니까? 누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도와주고 계십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자기의 육신적 처지나 형편과 상관없이 항상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성도들은 오히려 역경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더욱 감사하는 생활을 합니다. 다니엘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요셉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이 애급에 종으로 팔려가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깨끗하게 살았던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께 불평이나 원망을 했던 사람이 아니었음이 너무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불평이 생기면 우선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조국을 헐뜯고 저주하는 악한 자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사상을 가진 자들이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들입니다.
① 무신론자들은 근본적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므로, 따라서 자기밖에 모르는 자들입니다. 참보다는 거짓을 더 좋아합니다. 진리의 지식이 없으므로 분별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의 말을 쉽게 믿고 따라가지만, 바른 말에는 아예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감사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② 이들은 조국으로부터 온갖 특혜와 복을 다 받고 살면서도 조국에 감사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조국을 이렇게 세워주신 분,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해 주신 분에 대하여는 전혀 무지합니다. 더 나아가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들에게 감사 대신에 온갖 악한 말을 만들어 유포하며 헐뜯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그들 자신이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③ 일반적으로 공산 치하에서 사는 사람들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항상 받아먹고만 살았기 때문입니다. 얻어먹고 사는 사람은 남에게 나누어줄 줄을 알지 못합니다. 생산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1) 우리나라는 옛날 단군 임금님으로부터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
① 가을에 추수를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렸습니다.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삼한의 농경의례 등의 추수감사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우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농사를 잘 짓게 해 주신 것에 대해 온 백성이 함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2) 최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부터 우리나라를 칭찬하는 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3. 감사가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1)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그러므로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사람이라야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복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감사는 힘 있는 사람이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복을 못 받은 사람, 무기력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시간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2)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마음에 깊이 느끼면서 우리 삶을 감사로 충만케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나라에 사는지를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번 집회에 박다니엘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한 분 오셨습니다. 그는 은혜를 받고 사명감이 뜨거워져서 의사 일은 제쳐놓고 이렇게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여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에 감사하는 민족을 찾으십니다. 미국이 하나님께 감사를 잘 했는데, 요즘에는 하나님을 떠나는 자들이 많아서 감사할 일이 생기기보다 오히려 불행한 재앙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감사하면 온갖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온갖 불행한 일들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멘!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으로써 하나님께 감사한것이 더욱 많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은 오직 감사하는것임을 잘 알고 감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51. 세계 제일의 선진국 - (장드보라)
(신명기 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 복을 주시며 제일 먼저 주신 말씀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라, 땅을 정복해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고 가장 완전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타락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하나님이 애초에 계획하셨던 행복한 삶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선민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놀라운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신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 엄청난 약속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길로 가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이 말씀이 실패로 끝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1. 선진국을 주실 약속
1) 아브라함에게 주신 원초적 약속 - “너는 복이 될지라.”
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 그에게 하신 약속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라는 말씀이고,
② 이어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라고 하셨습니다.
③ 이런 복의 약속은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쳤을 때에도 다시 나타났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7-18).
2) 모세에게 주신 약속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보배로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하리라.
3) 이사야를 통하여 주신 약속
① (60:2-4)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아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2. 선진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선진국, 우리말로는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는 나라입니다. 영어로는 developed country, 곧 다른 나라들보다 더 발달한 나라입니다. 이제껏 소위 G-7 국가라고 하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캐나다, 일본 등을 가리켰고, 이들을 선진국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부러워하던 이 나라들에 어둠이 찾아왔고, 급격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선진국, 곧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 세계 모든 나라 위에 뛰어난 나라”(신 28:1)를 일으키십니다.
1) 선진국이란 다른 나라들보다 무엇이 발달해야 합니까?
①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라야 합니다.
선진국은 경제 인프라도 잘 발달되어 있어야 합니다.
② 과학기술이 발달해야 합니다. 세상의 과학은 그 발전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일본의 기술이 발달하여 세계 시장을 선도했는데, 더 빠르게 발달하는 한국에게 추월당하고 말았습니다.
③ 교육이 발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수준, 곧 민도가 올라갑니다. 문맹률이 낮아야 합니다.
④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⑤ 문화강국이어야 합니다. 문화는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강하고 중요합니다.
⑥ 도덕성이 높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아 세계 어느 나라나 도덕이 타락하면 정치가 혼탁해지고, 경제에도 큰 위기가 오고, 온갖 자연재해를 비롯한 여러 재앙이 쏟아졌습니다. 개인의 일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끗하게 살아야 건강하고 장수합니다.
3. 선진 한국의 미래
1) 남북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비밀
① 성경은 그렇지 않아도 작은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 있다가 멸망했음을 보여줍니다. 근래의 역사에서는 베트남의 분단, 독일의 분단, 몽골의 분단 등을 봅니다. 그래도 베트남과 독일은 통일했는데, 한국은 1945년 분단 이후 75년이 지났어도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했는데, 독일의 경우처럼 일본이 분단되지 않고 엉뚱하게도 한국이 분단되어 소련과 미국에게 점령되었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고 한국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탄식하고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며,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고 하시니, 차라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우리나라와 민족의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② 만일 8.15로 해방이 되고 분단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분명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소련의 속국 내지 연방국이 되었고,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같은 선진국이 가능했을까요? 공산주의는 온갖 터무니없는 거짓말 위에 세워진 공상체제입니다. 그래서 사상누각입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성경이 증명합니다. 공산주의는 폐쇄적이고 인간의 기본자유를 극도로 제약하여 갈수록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며 창의적 발전을 저해하며, 독재자 1인의 철권통치를 초래하여 결국 멸망합니다. 통치자를 우상화하고 신격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든 종교를 박멸합니다.
③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끝내 통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2의 선민국인 대한민국은 반드시 통일을 이루고 성경에 계시된 모든 예언을 반드시 이루게 될 것입니다.
2) 땅 끝까지의 복음 전파와 대한민국의 사명
① 이스라엘의 족장이라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복을 받을까? 구약의 이스라엘은 그 방법을 몰랐다.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이 오히려 이방인을 배척하기만 했고 심지어 이방 풍속과 우상을 가져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형식적이 되고 우상숭배에 쉽게 물들었다. 결국 북왕국이 먼저 망하고 이어서 남왕국도 망하고 말았다.
② 드디어 메시야 예수님이 오셔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복음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승천하시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다.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교회를 세우고 드디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는 첫 거름을 떼기 시작하였다. “예루살렘 ⇒ 온 유대 ⇒ 사마리아 ⇒ 로마”까지의 선교 모습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었다.
3) 온 세계에 건설되는 하나님의 나라
①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하셨고,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많이 가르치셨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천국 비유’였다. 성도의 궁극적 목적은 천국이요 영생이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은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5-16)라고 하였다.
② 천국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은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곧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천국에 가려고 노력했다면, 신약에서는 ‘천국의 도래’를 말한다.
③ 성도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이 땅에서 천국을 건설하기에 충성하는 사람이다. 천국은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육신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천국을 건설하셨지만,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불행한 실패자로 보인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셔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기에 이사야가 대답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8-10)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의를 행하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자가 누구인가?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한 사람이 아니면 온 세계에 나아가 천국을 건설할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주님은 이 마지막 때에 한국 백성을 부르신다. 당신을 새 시대의 새 일꾼으로 부르신다. 우리도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자. 아멘!
온 세계에 건설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충성된 성도로써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곳에 기꺼이 나아가며 말씀에 순종하는자로 세워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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