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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09
S#1. 교회 안 (저녁)
아동 성가대의 합창. 성가대복을 입고 찬양송을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 지휘봉
을 들고 아이들의 합창을 지도하는 교사의 모습. 그 주변엔 교회단상에서 크리
스마스 행사물을 장식하는 일군의 교사들이 보인다. 아이들의 맑은 음성이 교회
안을 매우곤 이내 교사가 연습을 마감한다. 합창 연습을 마친 아이들이 우르르
내려와 긴 의자위에 던져진 책가방을 들고 교회안을 나가기 시작한다. 그 앞에
서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현준. 이때, 한 아이의
괴성. 현준이 달려나간다. 아이가 의자 한켠에서 놀란 듯 서있고 현준이 그 옆
으로 가면 소주병이 현준의 발아래로 굴러온다. 현준이 다가가면 긴 의자에 널
부러져 게심츠레 현준을 바라보는 현우의 모습.
현준 (아이에게) 놀라긴, 임마? .... 아저씨, 잘 생겼지? (아이의 어깨
를 두드리며) 얼른 가방 챙겨 집에 가야지. 얼른.
아이들이 빠져 나간 교회안. 몇몇 교사들만 하던 일을 계속하고 현준이 현우의
뻗은 발 옆에 앉는다.
현준 안 춥냐?
현우 (무심하게) 추워.
현준 들어가자. (미소지으며) 형수가 좋아하겠다.
현준처(E) (냉랭한 음성으로) 오셨어요?
냉정한 눈빛으로 현우를 바라보고 선 현준 처.
현준처 형님, 체면도 생각하셔야죠. 어서 들어오세요.
현준처가 쌀쌀한 모습을 남기며 현관으로 향하고
현우 (몸을 일으키며 냉소한다) 이렇게 반기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
습니다. 형수님.
현준처, 슬쩍 현우를 보곤 현관을 나간다.
현우 어째 교회가 병원보다 더 춥냐. (일어서며 웃는다) 그만 갈랍
니다, 목사님.
쓸쓸히 걸어나가는 현우의 등뒤에 혼자말을 하는 현준.
현준 니 형수가 너오면 낸다고 철마다 괴실주를 담는다. 이녀석아. ]
그리도 마음을 몰라주냐. (한숨)
S#2 교회 앞
십자가를 등지고 교회 마당에 선 현우.
현우 거짓말이나 하고 다니는 새낀 얼루 가나? (십자가 보며) 얼루
갑니까? (담배를 꺼내 문다) 이렇게 갈데가 없나?
마당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방울을 손끝으로 퉁겨보는 현우. 바닥으로
쨍그랑 떨어지는 방울.
S#3 영안실
동석의 사진앞에 준서가 굳은 듯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준서를 노려보는 동석부와 넋이 나간 동석모. 준서, 한참을 동석을 바라보다 넋
이 나간 동석모 앞으로 몸을 돌린 채 고개를 숙인다.
준서 절 죽여도 좋습니다.
동석부, 준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외면하면, 준서가 다그친다.
준서 (슬픈 눈망울로) 죽어도 좋다구요, 동석 아버..
준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준서의 얼굴로 가격해 들어오는 동석부의 주먹.
동석부 (조용히) 아가리 닥쳐.
S#4 영안실 앞
영안실에서 멀찌기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는 등산복 차림의 남준. 하경이 다가
와 같이 쭈그려 앉는다. 흘낏 하경을 본 듯 하더니 계속 담배를 피는 남준.
하경 담배 끊으셨잖아요, 과장님.
남준 .......준서놈은?
하경 오늘, 준서도 장례 치르나 싶네요....
남준 ..... (담배를 비벼 끈다) 아이구, 돈다. 몇 년만이냐, 이 담배가?
하경 .... 아드님 생각 나세요?
남준, 일어선다. 비틀.
하경, 다급히 남준을 부축한다.
남준 독하긴 하네, 이놈의 담배. (하경의 부축한 손을 치우며) 간다.
돌아서는 남준의 등뒤에
하경 저도 그랬을 겁니다. 과장님. 내 자식, 내손으로 수술했을 거예
요. 과장님, 살릴 수 있는 아드님을 과장님이 수술해서 죽은
건 아니잖습니까?
남준, 가만히 서 있다가 지나가는 청년을 불러 세운다.
남준 아저씨 이거 가져요. (담배갑을 내민다)
청년, 엉겁결에 받아쥐곤 인사를 하곤 사라진다.
하경 (들릴 듯 말듯하게 중얼댄다) 그 세월을 아직도 못 벗어나세
요?
남준 (무심한 듯 걸어가다 멈춰 선다 ) 10년도 더 됐구나. 그 때, 말
이다. 내 손끝이 얼마나 떨렸는지... 하얗게 죽어가는 놈 앞에
두고, 손만 떨고 있었어. 그게 무슨 수술이냐? 수술도 아니었
어. 지랄떤거지.
남준, 고개를 돌리곤 이내 주차장쪽으로 멀어져간다.
어둠이 내리는 병원전경 아래서 하염없이 남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선 조그만
하경의 모습 (F.O)
S# 간호사 스테이션 (아침)
스테이션 위쪽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는 반짝이들. 스테이션 바 위에 올라 은주
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붙이고 있다.
순덕 (은주를 바라보며) 야, 꼴통. 간호를 그렇게 열심히 해봐라. 어
디서 쓸데 없는 짓만.... (소리친다) 그만하고 얼른 내려와.
은주 (맞받아 더 큰소리로) 아, 스트레스 좀 풀자구요. 고작 이 짓이
나 하면서 기분 좀 푸는 건데.... (울그락 불그락) 이깟것도 이
핼 못해줘요?
순덕 (주눅둔다)... 알았어, 야. .... 넘어질까봐 그러지.
은주 (하던 일을 계속하며) 선생님. 고기 테잎이나 좀 집어줘요. 반
짝이가 자꾸 떨어지네.
순덕 (날쌔게) 어, 여기. (다정하게) 얘. 오른쪽이 비뚤어졌다.
은주 어디요? 오기? (발을 옮기다 투약기를 툭 건드린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투약기. 놀라는 은주와 순덕.
은주 엄마야.
은주, 바닥으로 넘어진다.
깨어진 투약기를 바라보며 울상으로 널부러져 있는 은주. 눈꼬리가 올라간 채
은주를 노려보는 순덕.
순덕 (소리친다) 이 꼴통아.
S#6 복도
경련을 일으킨 듯 바닥에 쓰려져 몸을 떠는 간질환자. 환자를 에워싼 구경꾼들
중 하나가 간질환자를 잡으려 할 때 수연이 구경꾼을 제지하며 손수건을 꺼내
환자의 입에 물린다. 수연, 웅성대며 간질환자를 구경하는라 모여드는 구경꾼들.
그 중 어떤 구경꾼하나가 재밌다는 듯 키득대며 웃는다. 수연, 얼핏 그를 보곤
몸을 돌려 빤히 바라본다.
수연 거울 좀 보세요.
구경꾼 에?
수연 댁이 더 웃기게 생겼어요.
무안한 듯 얼굴을 붉힌 구경꾼을 비웃듯 쳐다보는 사람들. 이내 주춤대며 그 틈
에서 빠져나가는 구경꾼. 수연, 몸을 돌리려는 순간 구경꾼 중 한명의 모습. 찬
식이다. 경련 환자를 빤히 바라보다 우울한 듯 구경꾼들 틈에서 벗어나 힘없이
걸어가는 찬식. 아무말 없이 찬식을 바라보던 수연.
구경꾼2 끝났네.
수연이 몸을 돌리면 간질환자가 어느새 수건을 손에 빼어든 채 상체를 일으킨
다. 자신을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눈을 피하듯 고개를 숙인채... 수연, 다가와 환
자의 입가를 닦아준다.
S#7 과장실
상도가 전화를 걸고 있다. 옆에 남준이 보고 있다.
상도 안받는데요.
남준 (당혹스런 표정) 삐삐 쳐봐.
상도 삐삐야 일치감치 여 놨죠. 과장님.
남준 장현우 그놈 핸드폰 없냐?
상도 예. 없습니다.
남준 (짜증스레) 아, 그놈은 어째 그 흔한 핸드폰도 없어. (상도에
게) 될 때까지 걸어.
상도 과장님, 전 ER 가봐야 돼요.
남준 (짜증스레) 알았어, 임마. 가봐.
상도 (나가려다 획 돌더니) 아, 그러게 왜 사람은 패요? 다 큰사람
을... 자존심이 있지. 맞고 일할 의사가 어딨어요, 과장님은....
남준 고상도. 너 일루 와봐.
상도 (문 밖으로 몸 반쪽을 내밀며) 또 팰려구요, 과장님?
남준 전화번홀 알려 줘야잖아, 임마.
상도 (다시 와서 번호를 적어주며 조언을 한다) 과장님, 폭력, 그거
요.
남준 고만해.
상도 (계속 지껄인다) 그런게 뽀다구 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패지
마세요, 예?
남준 고상도.
상도 (눈치보며) 고만 할까요? 갈께요.
남준 일루 안와?
상도 (울상을 지으며 다가온다) 과장님, 제가 보기보단 몸이 약하거
든요, 아직 다리도 아프고...
남준 (종이를 내밀며) 삐삐 번호도 적어, 임마.
S#8 응급실
군복을 입은 환자 하나가 누워있고 인턴이 환자의 바지를 찢고 다리 부위 상처
를 닦아내고 있다. 그 옆엔 상사 계급장의 부대원이 서 있고... 저만치 스테이션
에서 인찬과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실갱이 중이다.
인찬 요수에 손상이 크단 말이다... 신경을 이어야 된다니까...
정형레지 (달래듯) 일단 뼈다구부터 붙여놓고, 응?
인찬 (짜증스레) CT 좀 봐라. 척수에 피 고인거 안보이냐?
정형레지 (짜증스레) 그래. CT 좀 봐라. 니 눈깔엔 다리뼈 골절되고, 척
추뼈 어긋나고.. 안뵈?
인턴 (둘 사이로 다가와서는) 저... 드레싱 끝났는데요. 어떡할까요?
(양쪽을 번갈아 바라본다)
인찬 (졍형레지를 꼬나보며 인턴에게) 척수조영술 신청하고, 신경외
과로 입원장 작성해라.
인턴 네.
정형레지 (인찬을 노려보며) 정형외과다, 입원장. (인턴을 보며) 너, 다음
달에 정형외과 돌지? 우리과 분위기, NS처럼 나긋나긋하지 않
다. 알거다, 익히 들었을테니까....
인턴, 어찌할바 몰라하고 있다. 인찬, 정형레지 서로 노려보고 있다.
정형레지 (인턴에게) 두 번 오더 안내린다, 우리과. 빨리 움직여.
인찬 (움직이려는 인턴에게) 저 사람 신경에 문제 생기면 니가 복원
시켜야 된다. 그거 알고 행동해라, 응?
정형레지 (짜증스럽지만 애원조로) 아이, 씨. 일단 정형외과로 돌리자,
응? 뼈 붙여놓고 신경에 문제 있으면 니네 쪽으로 돌리면 되
잖아. 야, 니넨 스컬보기도 바쁘잖니. 왜 우리 밥그릇까지 넘보
고 그러냐? 우리가 두개골 깨진 것 갖고 뭐라디?
인찬 지금 임마, 밥타령 할 때냐? 문제는 신경이라고...
정형치프 (어느새 나타나 정형레지에게) 뭐야?
정형레지 아, 선생님. 훈련받다가 탑에서 떨어진 공수부대원인데요. 허리
뼈가 나갔구요. 다리골절이 심합니다.
인찬 신경이 눌렸습니다, 선생님.
정형치프 (인찬에게 노련하게) 아가야. 집이 무너지면 말이야. 기둥부터
먼저 세우지? 전기배선공사부터 하고 그리고 기둥 세우냐, 니
집에선? 보쌓고, 기둥 두들겨 맞춘 다음에, 그담에 배선공사를
하는 거다. (레지에게) 환자, 어딨어? (환자쪽으로 걸어가며 인
턴에게) 넌 정형으로 입원장 신청해라.
인턴 예. (스테이션 안으로 뛰어간다)
인찬 선생님... (정형치프를 따라간다)
정형치프와 정형레지가 커튼을 젖히자, 이미 상도가 환자 앞에 서서 환자 상태
를 살피고 있다.
정형치프 야, 야, 야. 손 떼. 게임 끝났다.
상도 (무시하고 환자보며) 머리가 아파요?
환자 (군인답게) 예, 그렇습니다.
상도 이상하네... (정형치프에게) 내가 뼈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는
데.... 뼈 부러지면 머리도 아프냐?
정형치프 고상도...
상도 (다리 꼬집어 보며)
환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상도 감각도 없네. (다른곳도 꼬집는다) 에? 여기도....
환자 예, 그렇습니다, 감각이 없습니다.
상도 (정형치프에게) 야, 내가 몰라서 그러는데 골절오면 감각도 없
어지냐?
정형치프 (표정이 변한다)
상도 (정형치프에게) 그리고 또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뼈다구 다
쳤는데 왜 배뇨 상태가 이러냐? Incontinence(뇨실금) 있네.
봐, 니가... 눈깔이 있으면... 내가 너무 모르나, 뼈다구에 대해
서?
정형치프 (괜시리 한 손으로 양볼을 비빈다) 에이, 알았어. 니네가 알아
서 해. 니네가 하겠다는데야, 뭐. 알아서들 하셔. (인찬에게)
야, 우린 라면이나 먹으러 가자.
정형레지 (화색이 돌며) 아, 진작에 그러시지.
정형치르 (갑자기 레지를 드립다 갈긴다) 야, 임마, 아까 너, 수술실에
왜 안들어 왔어? 어씨스트 할 놈이 있어야지, 새끼가... (상도
에게) 야... 고상도. 우리가 좀 바쁘다. 저 환자 니네가 좀 맡아
라, 응?
상도 됐어, 기둥세우고 보쌓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정형치프 야아... 어떻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냐, 우리가? 우리, 바쁘
거든. 부탁해, 응?.... (레지에게 눈을 부라리며) 얼른 움직여,
임마.
치프, 부랴부랴 나가면 정형레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따른다.
상사 선생님이 승리하셨습니까?
상도 하, 뭐.
상사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거수경례)
상도, 웃으며 경례를 쓸쩍 받고 스테이션 쪽으로 옮기며,
상도 (혼자말로) 꼴갑을 떨어요. 사람 몸통이 건물 같으면야, 부쉈다
가 다시 짓고, 좋지. 인첸는 그럴 수 없다는게 비극아니냐, 이
무식한 놈들아. (인찬에게) CT 찍었어?
인찬 예. 선생님.
상도 CT 보자. 그리고 척수에 부종 생길라. 스테로이드(Steroid 호
르몬 보조제) 넣어라. (절뚝이며 걸어가는데)
인찬 아직도 그러세요? 정형외과 한 번 가보세요.
상도 저 놈들한테 내 뼈다구를 맡기느니 차라리 허 재봉 한테 내
머리통을 주겠다.
S#9 의국 복도 일각
정형레지를 후려 갈기는 정형치프.
정형치프 아, 씨. 쪽팔려. 야, 새끼야. 레지던트 3년차란 놈이 뼈가 문젠
지, 신경이 문젠지도 몰라, 임마? (팬다) 너, 오늘 죽어 봐. 나
이렇게 쪽 팔리곤 못살아. 니가 대신 죽어야 돼.
늘씬하게 얻어터지는 정형레지.
정형치프 아니지. 여기선 보는 눈이 있어서 폭력의 한계를 느낀다, 내가.
의국가자. 본격적으로 하자, 우리. 이왕 하는거...
정형치프, 레지의 옷섶을 잡고 끌고 간다.
정형레지 (불쌍하게 끌려가며) 선생님, 살려주세요. 네?
멀찍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는 재봉
재봉 (흘끗 보고는) 저게 뼈 붙이는 과냐, 뼈 부러뜨리는 과냐? (오
싹 몸을 움치린다) 아우, 정형외가. 소름끼쳐. (엘리베이터를
보며)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안에 순영이 서있다. 순영, 까까머리로 무심히 재봉
을 바라본다.
재봉 (올라서며 씩 웃는다) 순영씨.
순영, 재봉이 올라서자 내린다. 힐끔 재봉을 보는 듯 하더니 고개를 돌리자 엘
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홀로 엘리베이터 안에 선 재봉.
재봉 (중얼댄다) 뭔가가 불안해.
S#10 신경외과 진료실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다가오는 하경.
하경 있어?
간호사 네.
하경, 열려진 문틈을 살짝 본다. 준서가 한 노파의 외래 진찰 중이다.
준서 약은 일주일치만 드릴께요. 그리고 식사 잘하셔야 돼요, 네?
약만 드시면 약도 독이 된다고 말씀드렸죠?
환자 네,선생님. 아고, 고맙습니다. 머리가 깨지는 것 같다가도 선생
님이 만지면 낫대요, 희한해.
준서 (자상하게) 통증은 마음에서 와요, 할머니. 할머니 손이 약손이
다 생각하고 만져보세요. 제 손보다 훨씬 나을 걸요. (챠트를
덮으며) 머리는 괜찮으니까 걱정마시구요.
환자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요.
준서 나가서 약 받아가세요.
환자 (깍듯이 인사를 한다) 네, 선생님. 아구, 고맙습니다요.
준서 예. 조심해 가세요, 할머니. 아프다 싶으면 언제든 오시구요.
환자 아유, 그럼요.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인사를 하고 나간다)
준서 (컴퓨터로 약품을 클릭하며) 간첩질 하냐? 뭘 숨어서 보냐?
하경 (안으로 들어서며 농담조로) 독한 놈.
준서 어디 틀어막혀서 궁상 떨 줄 알았냐, 그럼?
하경 그래, 내 예상이 빗나갔잖냐? 니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현우가 사라져 버렸다, 야.
준서 ...... (씨니컬하게) 그랬어야 되는 거니?
하경 ........(당황한 듯) 짜식이, 삐지냐?
준서 (하경을 빤히 본다) 넌 잘 모른다, 나. 난 너희들만큼의 기세는
없지만 버티기 만큼은 자신있다. 너, 현우, 그것만큼은 나 못따
라 온다. (그리고 하경을 외면하며) 김미성씨.
간호사(E) 김미성씨, 들어오세요.
할 말을 잃은 듯. 준서를 바라보는 하경.
S#11 식당
수연, 라면을 먹고 있다. 이 때, 상희가 수연 앞에 앉는다. 그리고 라면을 먹는
수연을 빤히 바라본다.
수연 (안절부절 못하다가) 선생님, 좀 드실래요?
상희 수연아.
수연 네?
상희 (속삭이듯) 난 니가 싫어.
수연 ......... 알아요, 선생님.
상희 왜 싫게?
수연 ............ 모르겠어요.
상희 니가 착한 척 하는 게 싫어.
수연 ........
상희 실력이 없으니까 그걸로 떼우는 거잖아.
수연 ........
상희 그리고....
수연 .........
상희 권인찬한테 꼬리치는 것도 싫어.
수연 ..... 선생님, 그 선생님은.......
상희 알어. 그냥 고마운 분이라는 거... 근데, 원래 너 같은 내숭들,
그런 식으로 꼬리친단다. 내 눈에 그렇게 보여.
수연 ...........
상희 (일어서며) 한수연, 장현우 선생 간질학회 발표가 있으시단다.
신경외과에서 콜와서, 과장님한테 내가 너 추천했어. 그 선생
님하고도 관계가 남다른거 같아서... 자료 준비해라.(돌아선다)
수연 (고개 숙인채) 선생님, 의사의 아내가 되려고 제가 여기 있는
건 아닙니다. 전 의사가 되려는 겁니다. (고개를 들며) 제가 어
떻게 해야 선생님이 절 미워하지 않을까요?
상희 (돌아서서 상념에 젖은 듯).... 난, 10년동안 한 남자만 좋아했
어 그리고 죽을때까지 그 남자 옆에 있고 싶어. 나한테 병원은
그런 곳이야. (냉정히 몸을 돌리며) 넌 할 일 없다. 너와 무관
하게, 권선생이 니 주변에서 맴도는 한 넌 나한테 편치 못할거
다. 너와 달리, 난 못됐어, 성격이....
상희가 돌아서 나가고 수연이 가느다란 한숨을 토한다.
S#12 과장실
남준, 전화통에 대고 어색한 표정.
남준 (헛기침) 나 과장이네. 어디있나, 장선생?.... 야, 임마. 그게 한
대 맞고 삐지냐? 때린건 미안하다, 내가. 메시지 받는대로 전
화해. 그리고 임마. 내 앞에서 까불지마. 그러니까 맞지 이놈
아.... 빨리 기어 들어와. (# 버튼을 누른다) 아고, 잘못 눌렀네,
별푠데.... 다시 해야 되나, 이거? (다시 삐삐 번호를 누르곤 소
리친다) 야, 장현우.
현우 (어느새 까운을 입은 채 문을 열고 들어온다) 네, 과장님.
남준 (급히 전화를 끊으며 어벙벙한 표정)
현우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뜩 까운 주머니에서 삐삐가 울리자 삐
삐를 확인하고는 잠깐만요, 삐삐 왔네요. (전화기를 든다)
남준 얌마. (수화기를 가로채 내려놓고는) 너 지금 수술방에 있어야
되잖어. 최하경이 너 대신 들어갔어. 빨리 가서 니가 해.
현우 메시지 확인 좀 하구요.
남준 지각한 주제에 할거 다 할려 그래? 얼른 가.
현우 (밖으로 나가며) 과장님.
남준 왜?
현우 메시지 뭐라고 남기셨는데요?
남준 (당황한 듯) 내가 뭘?
현우 (능청스레) 수술 끝나고 확인하죠, 뭐. (나가려 할 때)
남준 (대뜸) 밤새 헤매고 다녔냐?
현우 (돌아선채) 헤맬래야 헤맬데도 없었습니다. 싫은 짓만 했어요.
교회 갔다가 퍼질러 잠만 잤어요. 교회가고, 잠자는 거.... 무지
싫어하는데....
현우, 나가면 남준, 씁쓸하다.
남준 (바삐 전화를 건다) 어, 상도냐? 야, 삐삐 메시지 그거. 어떻게
지울 수는 없는 거냐?
S#13 수술실
형광판에 걸린 사진을 확인하곤 자리에 앉는 하경. 어시스턴트 인찬이 뇌정위
프레임의 고정상태를 확인한다.
하경 시작하면 되는 거지?
인찬 네, 선생님.
하경 너, ICH 직접 안해봤니?
인찬 두 번 해봤습니다.
하경 그래? 니가 한번 해볼래?
인찬 나중에요, 선생님.
하경 무대에 자꾸 서야 안떨리지. 해봐, 얼른.
인찬에게 자리를 내주는 하경. 인찬이 프레임에 손을 올리며 수술을 시작하려는
순간, 수술실 문이 열리고 현우가 들어선다.
하경, 현우를 본다. 인찬,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서 비껴선다.
현우 애썼다, 최하경. 니 일 봐라.
하경 (현우에게) 뇌출혈 환자야.
현우 알어.
하경 (비켜서며) 이번에 실수하지 마라.
현우, 노려본다.
하경 (잠시 현우를 보다가 눈을 돌린다) 미안하다. 안그러기로 했지.
버릇이 되놔서.... (인찬에게) 권인찬, 다음번엔 너한테 맡긴다.
(옷을 벗으며) 그럼 수고해요, 장 선생.
현우 ........나, 아니야.
하경 ............
현우 (사진을 보며) 그때, 그거 내가 아니라고.... (그리곤 수수러대
앞으로 가서는 인찬에게) 니가 할려 그랬어?
인찬 ........아닙니다, 선생님.
현우 해봐. (물러선다)
하경 (현우를 보며) 너, 아니면?
현우 (살짝 고개를 든다) 몰라. (인찬에게) 자신감있게 해라. 그걸
잃으면 실수가 따르는 법이다.
두개골 구명을 뚫는 기계음. 현우를 향해 서서 움직일 줄 모르는 하경의 모습.
S#14 스테이션
깨진 투약기를 스테이션 바 위에 얹어 놓고 울상을 지은채 서 있는 은주와 콧
구명을 후비고 있는 재봉. 뒤쪽에서 업무를 보는 듯 은주의 등뒤를 왔다갔다가
하며 은주를 야리는 순덕.
순덕 (은주의 등 뒤를 지나치며 등을 슬쩍슬쩍 건드린다) 아이, 앤
왜 이렇게 걸리적 대? (멀찍이 가서 챠트를 뒤적인다)
은주 (눈치만 슬금슬금 보며 재봉에게 속삭인다) 아이씨, 저 아줌마
고질 때문에 돌아버리겠네.
재봉 (환자 챠트에 기록을 하며 은주에게 비아냥 댄다) 언젠간 한
건 할 스타일었어, 언니는.
은주 (짜증스레) 물어주면 되잖아.
재봉 (약품 투입기를 들어보며 챠트로) 얼마짜린 줄 알우?
은주 (멍청히) 얼만데요?
재봉 수술가위 다섯 개 값은 될걸?
은주 (픽 웃는다) 하, 우습군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얼만데?
재봉 가위 한 놈당 백만원정도 하니까... 아, 아.그건 IMF 이전 가격
이니까....현재로서는.... 에, 계산이 안되네.
은주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이 벌어진 채, 넋을 잃고 스테이션을
벗어나 복도를 달려간다) 고상도 선생님.
S#15 의국
상도가 앉아서 투약기를 보고 있다. 옆에는 슬픔을 머금은 은주와 흥미로운 눈
빛의 재봉이 상도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상도 (별 일 아닌 듯) 부속 하나 갈아끼우면 돼, 기계실 가서....
재봉 무슨 부속하나로 돼, 이게?
은주 (소리친다) 아, 치프가 된다잖아.
재봉 (벙찐) 얼라리?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까지 날뛰네, 인제?
상도 (재봉을 쥐어 박으며) 사모님한테... 꼴뚜기가 뭐냐, 응?
(다시 쥐어 박으며) 치프한테 망둥이는 뭐고, 응? (은주보고
웃으며) 언니, 이따 봐.
상도, 다리 절룩이며 나가면 은주, 좋아라 상도의 팔짱을 끼며 따라 나간다.
재봉 여기가 병원이냐, 사랑의 스튜디오지.
S#16 수술실 입구
수연이 수술실 앞에서 서성인다. 마스크를 벗으며 나오는 현우와 인찬. 수연, 인
찬의 눈치를 본다. 인찬, 못 본척 지나치면....
수연 (현우에게) 선생님.
현우 넌, 우리과 애들보다 더 자주 보는거 같다.
수연 당분간 더 자주 뵐텐데요. 이거요.(쪽지를 준다)
현우 이젠 연애편지까지 주냐?
수연 아니예요, 선생님. 간질학회 땜에... 논문 뽑아본건데...
현우 (웃으며) 근데 연애편지처럼 딱지를 접었냐? 놀랬다, 야.
(쪽지를 펼쳐본다) 됐네.
수연 더 추가할 건 없을까요, 선생님?
현우 나, 지금 정신없다. 검토해보고 알려줄게.
수연 네
현우가 가면 수연이 뒤따른다.
현우 왜 따라와?
수연 예? 저도 글루 가야돼요.
현우 어디 가는데?
수연 의국에요.
현우 같은 길목이긴 한데 자꾸 쫓아오는거 같냐?
수연 (정색을 하며) 선생님. 저요, 누굴 좋아한다고 해서 막 쫓아다
니고 그런 성격 아니예요.
현우 ...... 너, 나, 좋아하냐?
수연 .......(멍청히)
현우 (픽 웃으며) 이거 참. 너, 권인찬 거잖아. 내가 애들하고 싸울
일 있냐? (엄하게) 딴 맘 품지마. 알았어?
수연 ........ (고개를 숙인다) 제가 왜 권생생님 겁니까? .... 왜 모두들
날 의사로 봐주지 않고 주인 찾는 강아지 취급을 합니까?
새침해 져서 현우를 앞질러 걸어가는 수연.
S#17 스텝의국
하경, 컴퓨터를 켠 채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현우가 들어온다. 현우, 자신의 책
상으로 가서 한쪽 발을 올린채 잠을 청하려는 듯 눈을 감는다.
하경 ........(가만히) 현우야.
현우 왜?
하경 .......... 너, 아니며?
현우 .... 내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
하경 입숭를 깨물면서 살았다. 내가 그것 땜에 몇 년을.... 날 이해시
켜 줘야 되는거 아니니?
현우 ...... 몇 년을 되도않는 니 증오속에 살았다, 난. 그 이유도 모
르고... 지금은 나에 대한 니 믿음이란게 고장 그 정도였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울뿐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현우.
S#18 간호사 스테이션
은주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복도쪽으로 목을 길게 뽑고 앉았다. 멀찍이서 다리를
절며 걸어오는 상도.
은주 (상도에게) 선생님?
상도 (투약기를 기계 위에 놓으며) 갈아끼워, 언니.
은주 공짜루?
상도 내가 누구냐? 대 신경외과 치프가 그런 빽도 없겠니?
은주 (상도의 목덜미를 덥썩 휘감으며 대뜸 이마에 뽀뽀를 한다) 귀
여워 죽겠어. (약품용기를 들고 가며 윙크) 고마워요, 선생님.
상도, 멍하니 은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다가 입이 벌어져라 웃는다.
순덕 ............(상도 보며) 고선생, 침떨어져.
상도, 여전히 넋을 잃고 옷소매로 침을 닦는다.
S#19 엘리베이터 안
사진 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 안에 선 재봉 문이 열리면 순영이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섰다 여전히 민대머리로...
재봉 (깜짝 놀라며) 순영씨.
순영, 아무말 없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오른다. 문이 닫히려 할 때 순영이 열림
버튼을 누른채 재봉을 빤히 바라본다. 재봉, 얼떨떨한 표정으로 순영을 바라본
다. 같이 탄 환자들도 순영을 바라본다. 재봉이 계속 서 있자 순영, 열리 버튼을
누르고 재봉만 바라본다. 순영을 보던 환자들이 어느덧 재봉을 바라본다. 재봉,
군중들의 따가운 시선을 두리번대고 보다가 순영을 바라보면 순영, 눈도 깜박이
지 않고 멍청히 재봉을 보고 있다.
재봉 내리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영. 재봉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문이 닫혀지는 엘리베이
터. 멍청히 문만 바라보던 재봉.
재봉 저게 누굴 말려 죽이럴려구 작정을 했나?
S#20 응급실 필름판
하경에게 환자의 병력을 노티파이 하는 인찬.
인찬 육개월 전에 심장판막수술을 했고 세달전에 뇌출혈로 션트를
했는데 감염이 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뇌출혈이구요. 심장
판막수술 때문에 항응혈제를 복용하는 상태라 지혈에도 문제
가 있습니다.
하경 만신창이가 됐네. 심장약을 끊을수도 없고... 수술도 걱정이고
수술 후도 문제다. 이건 뭐, 계속 머리에 피뽑으면서 살겠다,
야.
인찬 (씁쓸하게) 머리에 계속 구멍 뚫어가면서요.
하경 그러게 말이다. 환자 보자.
인찬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 서면 유치원 정도의 여아 종미가 눈을 굴리며 누워
있고 젊은 종미모가 서 있다. 부스스한 모양새가 한눈에도 형편이 좋아뵈지 않
는다. 하경을 바라보는 종미모와 종미. 하경, 종미의 동공을 확인한다.
종미 (웃으며) 눈부셔.
하경 (웃으며) 눈부셔? 그럼 다 나았네.
종미모 (반갑게) 정말요, 선생님? 그럼 수술 안해도 돼요?
하경 수술은 한번 더 하셔야 되겠네요.
종미모 이번에 한번만 더하면 인제 괜찮아지는거죠, 선생님?
하경 ...... 먼저 수술 받은 곳에선 아무 말 못들으셨어요?
종미모 심장수술하고 나서 약 주잖아요, 왜. 근데 피가 굳으면 심장에
문제가 되니까 피 마르지 않는 약을 넣었대요. 그것 때문에 머
리에 출혈를 막기가 힘들다 그러대요? 근데, 뭐 수술 잘됐다고
퇴원하라 그러대요? 근데 애가 그때처럼 두통도 심하고 그래
서... 일부러 큰 병원으로 왔죠, 뭐. 어쨌든 피를 뽑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왜요? 치료 안돼나요?
하경 .............
종미모 왜요, 선생님?
인찬 (끼어든다) 다른 검사도 해봐야 됩니다.
종미모 (하경에게) 무는 뇌종양 같은건 아니죠?
하경 아닙니다, 종야. 그냥, 출혈입니다.
종미모 그럼 죽거나 그런거 아니잖아요.
하경 그럼요.
종미 나, 죽어?
종미모 안 죽어. 피만 그치면 괜찮대.
하경, 돌아서서 나간다.
S#21 중환자실
걱정스러운 듯 서 있는 간호사.
준서 (환자의 동공을 살피며) bp는?
간호사 000
준서 CT 아직 안왔나?
이때, 헐레벌떡 CT를 가지고 오는 재봉.
준서 (사진을 보곤) 너졌다. 수술준비해라.
재봉 예, 선생님.(이동침상을 가져오기 위해 뛰어간다)
준서 (간호사에게) 아미카 (AMICAR 출혈방지제)
간호사가 주사기를 주자, 카테타로 주사기를 들이대는 준서. 이때 어느새 등 뒤
에서 주사기를 낚아채는 현우. 준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현우를 바라본다.
현우 뭐야?
간호사 SAH(지주막하 출혈)입니다. 선생님. 코마상태구요.
현우 (주사기를 들어보이며) 아미카야?
간호사 네.
현우, 카테타안으로 주사약을 넣는다. 재봉이 밀고 들어오는 이동침상. 현우와
재봉, 간호사들이 환자를 들어옮긴다. 남준이 입구로 들어온다.
남준 뭐야, 터졌어?
현우 네, 수술해야겠습니다.
침상을 밀며 바삐 움직이는 현우 일행
남준 하선생 담당이잖아, 하선생은? (흘깃 멍청이 서있는 준서를 본
다)
현우 (거리낌없이) 제가 합니다, 수술.
침상을 밀고 나가는 일행들.
입구에서 준서를 잠시 보고 섰다 나가는 남준.
남준 (조용히) 시간을 좀 가져라. 준서야.
현관에서 사라지는 남준. 외로이 침대 앞에 서 있는 준서.
S#22 스텝의국 필름판 앞
하경과 인찬이 필름을 보면서...
인찬 자꾸 묻는데요? 이번에 완치되냐구요?
하경 안되겠지?
인찬 저야, 뭐 압니까? 근데.... 감염이 심해서...
하경 완치 안돼. 죽지야 않겠지만 계속 이럴텐데...
인찬 항응혈제도 계속 써야 되는데 출혈을 계속되고...
하경 괴롭겠다, 그 엄마... 죽을 때까지.. 괴롭겠다.
인찬 그래도 수술은 해야죠.
하경 ..... 어드미션 받아라.
S#23 병동 입원실
이용관의 입원실.
남자 이 친구야, 나야 나. 기억을 못하면 안된다니까...
용관처 아유, 아저씨. 아무것도 기억 못하고 아무것도 몰라요, 이사람.
남자 안된다니까... 기억을 해야 돼. 억지로라두.... 아주머니, 내가 돈
을 빌려주고 차용증을 안 받았어요, 급하게 융통 좀 하는 통
에...계약서 다음 날 쓰자 그랬다니까... 이사람, 돈 관계는 확실
하니까 믿고 줬지, 난.... 근데, 하필이면 계약서 쓰기 직전에
이렇게 된거야. 아, 미치고 팔짝 뛰겠네. 돈도 한 두푼이 아니
니까 그렇지.
용관처 아저씨,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난 모르는데....
남자 (용관을 흔든다) 아, 이사람아. 증말 몰라? 증말 아파서 이러는
거야?
태동(E) (호통을 친다) 뭐하는 짓이야?
남자와 용관처가 태동을 바라본다.
태동 (훈계조다) 거, 사람을 척 보면 몰라? 눈빛을 한 번 봐요. 정신
이 온전한가? 환자를 함부로 흔들어 대고 말야. 뇌수술 한 환
자를 흔들면 그 머리가 더 왔다갔다 하지. 얼른 나가요. 사람
이 말야.
그사이, 용관처가 용관에게 귀를 들이대고 고개를 끄덕인다.
손가락으로 태동을 가리키는 용관.
태동 (남자에게) 봐, 나가라고 손을 이렇게 뻗치는거 보여, 안보여?
용관처 (남자에게) 아저씨, 이 의사분이 돈 갚아 드리면 된다네요.
태동, 벙찐 표정. 남자, 화색이 돈다.
태동 (용관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며) 이용관, 너 정신차렸니?
용관, 고개를 끄덕이곤 태동의 볼을 귀여운 듯 가볍게 두드린다.
태동 (울상) 독사같은 놈.
S#24 응급실
울고 있는 종미. 인찬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인찬 안돼. 울면 안돼. 종미야, 울면 피 더 나와.
종미 엄마.
인찬 엄마, 어디갔어?
종미 (고개를 가로 저으며) 엄마.
인찬 어디갔지? 아빠 부르러 갔나부다.
종미 아빠 없어요. 엄마.....
인찬 ..... 엄마랑 둘이 살아?
종미 (끄덕) 엄마.
멀찍이서 종미모가 뛰어온다.
종미모 왜 울어? (야단을 친다) 기집애가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울
지마.
종미 (울음을 그친다)
종미모 (인찬에게) 죄송해요, 선생님. 일 나가는 집에 전화좀 하고 오
느라구요.
인찬 직장나가세요?
종미모 직장은 뭐.
종미 파출부.
종미모 .....(앳되게 웃으며) 형편이 좀 어려워요, 선생님.
인찬 ...... 네. (어렵게)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셔야 되는데....
종미모 네, 그럴께요.
종미 안비싼 수술 해주세요, 선생님.
종미를 바라보는 인찬.
S#25 중환실
현우의 수술 환자를 이동침대로 옮기는 재봉. 준서가 다가온다.
준서 수술은 잘 됐냐?
재봉 네, 선생님.
준서 혈압은?
재봉 현재 상태론 괜찮은데요?
재봉이 환자와 연결된 관들을 정리하는 동안 준서는 생각에 젖은 듯 우두커니
환자만 바라본다. 이때 소리없이 준서 옆에 서는 하경. 그새, 재봉을 정리를 마
치고 스테이션으로 가고.....
하경 수술 있었니?
준서 그래, 근데 난 못들어갔다.
하경 왜?
준서 현우가 알아서 잘 처리했다. (다른 환자를 보려는듯 움직인다)
하경 ...... (준선의 뒤를 따르며) 준서야.
준서 (환자의 카덱스를 보며) 난 괜찮아, 아무 말 마라. (기록한다)
하경 ...... 뭐 좀 물어보자.
준서 (여전히 챠트만 보며) 뭐?
하경 ...... (어렵게) 나 미국가기 전에 했던 마지막 수술 말이다. ICH
환자.
준서 ......(카덱스에 눈을 고정시킨대 동작을 멈춘다. 흔들리는 눈빛)
하경 (말없이 준서를 한참동안 똑바로 바라본다) 너지?
준서 ..........그래. (하경을 바라본다)
하경 ......(허탈한 눈빛으로 준서를 바라본다) 아무렇지도 않니, 너?
나한테?
준서 마지못해 고백을 하게 되는 구나. (돌아선다) 하경아, 난 니네
둘 중 하나가 좀 더 일찍 이 사실을 밝혔어야 했던 거 같다.
왜냐하면... 너무나 해묵은 그때 그 일이 이제 내겐 무심하게
들린다. 죄책감을 잊었어.
준서, 힘없이 돌아서서 중환실 밖으로 나간다. 슬픈 눈빛으로 준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하경.
S#26 신경외과 진료실 (저녁)
인찬이 사진들을 보며 약품지시 파일을 컴퓨터에 입력시키고 있다. 상희가 빼꼼
히 얼굴을 들이민다.
상희 권선생님.
인찬 박선생님, 웬일이세요?
상희 하루에 한번은 마주쳐야 내 얼굴 안잊어먹죠.
인찬 ........
상희 ...... 권선생님.
인찬 네?
상희 (눈을 내리깐다) 나, 재수없죠?
인찬 ......(힘없이 웃는다) 재수 없는건 나죠. 잘난것도 없는 놈이 되
게 튕기죠?
상희 .... 선생님, 잘났어요.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죠.
인찬 ..... 박선생님. 마음이란게 뜻대로 안됩니다. 섭섭하죠?
상희 ...... (미소지의며) 버틸때까지 버텨 봐야죠, 뭐.
인찬, 상희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는다. 이때, 문 앞에 다가서는 허름한 옷차림의
중년남자.
수연부 저 여기 신경과 한 수연이라고....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인찬과 상희.
S#27 신경과 진료실
담당의의 지시를 받는 수연.
담당의 NS로 트랜스퍼한 에필랩시 환자 건이 꽤 될거야. 그 자료는
따로 뽑고, 우리과 약물치료 환자 케이스, 따로 모으고....
수연 네, 선생님.
이때, 상희 들어온다.
상희 한 수연, 누가 찾는다.
수연 네?
상희 이번에도 남자다, 얘.
담당의 (웃으며) 이번에도 남자면 지난번에도 남자고... 지지난번에도
남자고 그런거야?
상희 한 수연, 연애박사거든요. (수연에게) 신경외과 진료실로 왔더
라. 신경과랑 같은 관 줄 알았나부다.
수연,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틈으로 얼굴을 내미는 중년남자. 수연부다.
수연부 (반갑게) 수연아.
수연, 얼굴이 굳는다.
S#28 약품 대기소 벤치
웅성대는 대기소 중간의자에 수연과 수연부가 앉아있다.
수연 .............
수연부 ... 많이 컸구나, 예뻐졌다.....
수연 ..... (일어서며) 음료수라도 드시겠어요?
수연부 아니다, 아니다.... 그럴 것 없다.
수연 (앉는다)
수연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담배를 꺼낸다. 그리곤 계속 주머니를
뒤적인다) 불을 엇다 뒀지? 있었는데.....
수연 여긴 금연구역이예요.
수연부 (당황스레) 아이고, 그렇지. (담배를 주섬주섬 넣는다)
수연 ....... 뭐 진찰 받으셨어요?
수연부 ... 아, 나 말고...... 아는 사람..... 맹장이 터졌다고 그래서.....
수연 .... 불편한 덴 없으시구요?
수연부 나야 건강체질이니까....... (다시 담배갑을 꺼내 만지작댄다)
......잘 살지?
수연 네.
수연부 .... 뭐냐, 그.. 의대갔단 말은 내 들었다. 입학식때 한번 갈려구
그랬는데......(헛기침을 한다) 혼자서 잘 컸구나.
수연 ..... 일은 잘 되시구요?
수연부 성남에서 조그만 가게 한다. 뭐 요즘이야 다들 그렇겠지만, 장
사도 시원찮고... 허허허...
수연과 수연부 사이의 어색한 침묵. 다시 담배갑을 만지작댄다.
수연 ..... 나가서 태우시던가요.
수연부 ...... 아, 그러면 되겠구나, 나, 참.
수연이 일어서고 수연부도 덩달아 일어선다.
수연 그럼, 일보고 가세요.
수연부 어? 그래. 바쁘지, 참.
수연 (가려던 걸음을 돌리며) 아버지.
수연부 (기대감에) 응?
수연 다신..... 저 찾지 마세요.
냉정하게 돌아서 걸어가는 수연. 수연의 등뒤로 담배갑만 만지작대는 수연부.
S#29 비상구 계단
긴 계단을 울리는 울음소리. 수연이 계단옆에 쪼그려 앉아 소리내어 울어댄다.
끊임없이 흐느끼는 수연의 울음소리.
S#30 비상계단 문앞
흐느끼는 수연의 울음소리르 들으며 굳은 듯 서있는 인찬. 상희가 인찬의 뒤로
다가와 선다.
상희 (차갑게) 젊은 여자랑 바람나서 나간 어버지 때문에.... 어머니
가 자살을 했답니다.
인찬 (상희를 바라본다)
상희 어느새.... 한 수연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게, 내 취미가 됐네
요. 궁금한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인찬 박 선생님...
상희 (고개를 돌리며) 선생님, 일대 일로는 나 찾지 않을 테고.... 한
수연 때문에라도 선생님이 날 찾는다면... 그것도 환영합니다.
(슬픈표정으로 복도끝으로 사라져간다)
몸을 돌려 계단 문 고리를 잡고 한 발 들여놓으려다 물어서는 인찬.
인찬 (혼자말로) 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네요, 수연씨.
S#31 폐쇄 병동
재봉이 당당하게 들어선다.
재봉 (레지에게) 야, 문 순영이 좀 나오라 그래. 나, 걔땜에 신경 뻗
쳐서 꼴까닥하겠다.
레지 문 순영, 바뻐.
재봉 제 정신도 아닌게 바쁘긴 뭐가 바뻐. (병실쪽으로 소리친다)
문 순영. 나와 봐. 야, 문 순영.
그러자, 순영이 다소곳이 병실에서 나와 재봉 앞에 얌전히 선다.
재봉 (당황한 듯 더듬댄다) .... 저기, 물론 내가 그러면 안된느 거였
죠. 근데.... 나도 인간이잖아. 근데..... 자꾸 와서 진료 방해하고
그러면 히터 돌지. 그래서 그랬지.... 그리고 가발이야... 또 사
주면 되잖아요..... 어쨌든 순영씨, 이제 그만 화해하자. 응?
응, 자기야?
순영 (의아한 듯 재봉을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전기 면도기를 꺼
내 머리를 민다. 뚫어져라 재봉을 바라보며) .........
재봉 (면도기 모터소리가 요란히 들리면 짜증을 낸다) 아, 나도 순
영씨가 귀찮게 안 구니까, 편하긴 해, 뭐. 근데 인간된 도리상,
응? 내가 이렇게 사과를 하는데 계속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굴
면... 좋아. 고만 보자구, 응? 딱 갈라서자고 우리....
순영 (여전히 머리만 민다)
재봉 (면도기를 빼앗으며) 아, 시끄러.
순영 (다소곳이) .... 누구세요?
재봉 ......... ?
순영 너무 이상하다 (레지에게) 난 바쁜데 얜 왜 이래요? (재봉에
게) 누구신지 모르지만 이거 노잣돈이라도 하시구려. (동전을
안기곤 면도기를 빼앗으며 병실 안으로 다소곳이 걸어간다)
멍청히 순영을 바라보던 재봉.
재봉 (심각하게 레지의 팔을 잡으며) 나 땜에 쟤가 충격 받은 거지?
그래서 다시 획까닥한거지, 그지?
레지 니 주제가 그거나 되는 줄 아냐? 요즘 환자들끼리 성탄절 연
극연습을 하는데 자기 배역에 취해서 저래.
재봉 연극? 배역이 뭔데?
레지 비구니래.
재봉 중? 크리스마스에 왜 중이 나와?
레지 그들만의 세상이 있는거지, 뭐.
순영(E) 오, 주여. 죄를 지었나이다. 침묵의 서약을 깨고 뭇남자와 말을
나누었나이다.
재봉 .... 아니네. 수녀네, 수녀.
순영(E)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 보살....(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쟤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왜 자꾸 까먹지, 난?
갑자기 찬송가를 불러대는 순영의 목소리......
S#32 병동
병실 회진을 돌고 있는 준서. 환자들의 상태를 꼼꼼히 다정하게 체크한다.
S#33 복도
준서가 나와 다른 병실로 들어가려 할 때, 하경이 준서의 뒤를 따라간다.
하경 현우한테 사과해라, 너.
준서 ...........
하경 난 됐어. 겁먹었을 거다, 그 때.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었
을 거야. 너 원래 마음이 약하니까... 근데, 현우한테만은 사과
해라. 그 때문에 나 한테 얼마나 시달렸니, 현우. 억울할 거다.
준서야, 그것만 해줘라. 부탁한다.
하경, 가려 할 때....
준서 니가 해, 사과.
하경 .............
준서 너한텐 미안하다. 그 사고 땜에 떠난 거라면... 근데, 현우한텐
니가 미안한거다. 니가 미워했으니까....
준서, 냉정히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허망하게 준서를 바라보는 하경.
S#34 스탭의국
수연, 모아 온 자료집을 책상위에 놓고 현우에게 보고를 한다.
수연 선생님, 아까 제가 뽑은 목록만 골라 왔습니다.
현우, 수연의 얼굴을 계속 바라본다.
현우 눈이 퉁퉁 부었다, 너?
수연 ..... 자료 뽑느라 피곤해서요.
현우 학회 목숨 걸일 있냐? 쉬엄쉬엄 해라.
수연 네, 선생님.
현우 그리고..... 박찬식, 케이스에 넣어라.
수연 네, 선생님. 이미 뽑아놨습니다.
현우 그냥 뽑아 놓는게 아니라 현재 상태까지 정확히 촬영해 둬라.
수연 .....얼굴까지 나오게요?
현우 박 찬식, 병소 인접부위가 꽤 넗었어. 근데 기형부위 약간만
절제한 상탠데도, 경련은 거의 멈추다시피 했잖냐. 너도 봤지?
좋은 사례다.
수연 .........
현우 왜? 걔, 얼굴 팔릴까봐?
수연 네.
현우 잘 꼬셔 봐. 한 선생 말은 잘 듣더라. 난 못 꼬셔.
수연 .........
현우 한 수연.
수연 네?
현우 너, 울었지?
수연 아니요.
현우 눈이 시뻘게. 울었지?
수연 아니요.
현우 허구헌 날 눈물바다냐, 넌?
수연,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현우, 당황한다.
수연 왜 자꾸 그러세요, 선생님. (자료를 챙긴다) 그만 나가보겠습니
다.
현우 한 수연.
수연 네.
수연을 가만히 안아준다. 수연, 주춤.
현우 혼자서 많이 울었을테니까, 인제 나한테 기대서 울어라.
수연 ..........
현우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나도 은혜 좀 갚자. .... 내 아픔, 같이
나눠 준 적이 있었을 거다, 니가....
수연, 눈을 감으려 현우의 품에 안긴채 서글피 운다. 이때, 의국 안으로 들어오
는 하경. 수연의 울음소리에 놀란 듯 현우를 바라보는 하경. 하경과 눈이 마주
치는 현우. 현우, 당황함 없이 수연의 어깨를 다독이고 하경이 어찌할 바 몰라
하다가 의국 문을 닫아주곤 조용히 나간다.
현우 울려면 죽도록 울어라. 그리고 다신 울지마라, 한 수연.
수연의 품에 안긴채 끝없이 우는 수연의 모습 포즈.
제 9 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