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민 초기에 한 Big-box store 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Big-box store 는 몰에 있는 큰 가게들을 말하지요. COSTCO, Wal-Mart, Superstore, Save-On-Foods, Canadian Tire, Best Buy... 등등 주로 체인 형태의 대형 소매점들. 북미의 직장 대부분이 다 그렇지만 이렇게 유명한 곳일수록 근무 조건이 더 열악하고 페이도 무지하게 짭니다. 파격적인 값에 물건을 팔아야 하니까 다른 경비는 `비인간적으로' 줄이고 줄여서 그렇지요.
그로서리 점들이 특히 악명 높아요. 한국 이민자들은 식품과 스낵을 파는 조그만 가게들을 그로서리라고 많이 부르는데 여기 사람들은 세이브 온 푸즈 같은 큰 식품 할인점들을 오히려 그로서리 (grocery store 를 줄여서) 라고 합니다. 이민자들이 주로 하는 작은 소매점들은 convenience store (편의점) 또는 corner store (동네 가게) 라고 부르고요. 그래서
I don't want to go grocery shopping today.
하면 `오늘 (비가 와서) 장 보러 (몰 식품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러는 동네 주민들이 많을수록 우리 가게에는 좋은 일이지요... 하하.
다시 Big-box store 에서 일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노조가 대부분 있는데도 최악의 job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들 대형 소매점의 직원들은 아줌마(할머니)들과 학생들, 그리고 이민자들이 대종을 이룹니다. 북미의 3대 미니멈 웨이지 그룹이라고 할까... 풀 타임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고 그저 일주일에 15~25시간 정도씩 받는 파트 타임으로 일해 2주일 페이가 500불 안팎에 지나지 않지요. 저도 예외 없이 이 그룹 속에 끼여, 좀 심하게 말해 군대 생활 비슷한 주말 쟙을 몇년 했답니다.
왜 군대 생활이라고 표현하느냐면 일을 그렇게 시키는데다 말을 자유롭게 못하니 일만 계속하니까 더 일을 많이 하게 돼 그렇습니다. 시간당 임금 (hourly wage) 을 받는 일이란 휴식 시간 (break) 외에는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해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강제노동(?)... 할 일이 없으면 청소라도 해야 하지요.
그러므로 일을 잘 찾아서 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빨리 하는 사람이 최고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백인들은 자기들끼리 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민자들은 그런 잡담, 수다에 가담할 만한 영어가 안되거니와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냥 말없이 일만 하게 되어요. job 을 얻은 것만도 감사해서... 이런 얘기 들으니까 서글퍼지지요?
뭐 서글퍼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백인들도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니까요. 그때 저희 부서 수퍼바이서가 젊은 신참이었는데 위로부터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어요. 속된 말로 돈 더 아끼고, 돈 더 벌게 하라고 하도 쪼아대서... supervisor 는 한국으로 말하면 팀장, 대리쯤 되는데 여기 직장에서는 대부분 이 직급이 말단 직원들의 직속 상관이자 거의 유일한 보스입니다. 모든 일이 이 사람 선에서 시작하고 끝날 정도인데 하이어, 파이어도 수퍼바이저의 `전결' 사항이다시피하지요.
이름이 Brad 였던 당시 수퍼바이서는 제가 대화를 오래할 만한 영어가 안되니까 일 얘기만 짤막하게 해와서 잘 몰랐지만 부임한 뒤로 몇달 동안 많이 힘들었나보더라고요. 말 많고 서로 잘 싸우는 백인 풀 타임 직원들과 위 보스로부터 스트레스가 심했고 본인 성격도 여려서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일 열심히 하던(자체 평가... 하하) 저를 불러 제대로 처리를 하지 않은 것들을 지적하더라고요. 제가 짚이는 데(백인)가 있어서 혹시 그 친구가 그러더냐고 하니까 한숨을 쉬면서 그렇다고 해요. 미안하다고, 당신은 (말없이 일 많이 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뒤늦게 인정해주면서 말이지요.
그 말을 하고나서 이 남자가 갑자기 흐느끼는 겁니다. 참 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I'm done.
끝났다는 거지요. 이 회사 곧 그만둔다는...
오래 돌아왔지요? 오늘의 영어 한마디는 이 DONE 입니다. 캐나다 이민 이야기를 겸해 이 시리즈를 이어 가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얘기를 dramatize 하다보니 도입부가 길다 못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형의 글이 되어버렸네요.
done 또한 한국 회화 교재에는 별로 나오지 않지만 여기 사람들은 대단히 자주 쓰는 단어의 하나입니다. do 의 과거분사로만 알고 있기 쉬운데 형용사, 부사로서 관계가 끝났다거나, 하던 일을 마쳤다거나, 수명이 다했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직장을 그만둘 때, 애인과 헤어질 때, 협상이 끝났을 때...
성격 좋지 않고 게으른 현재 남편과 사는 게 지긋지긋해서 마음 속으로는 이미 정리가 됐을 때
I'm done with him.
합니다. 애인에게 헤어져야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때 역시
I'm done with you.
with 다음에 끝난 대상을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인데 연결된 대화 중에는 그 부분을 생략하고 말해도 이해가 되지요.
I'm done.
또는 그냥
Done!
어떤 협상이나 흥정이 끝났을 때 이렇게 말하며 기분좋게 서로 악수하는 것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숙제나 밥을 다 먹고 하는 말도 이거지요. 오늘부터 아이들에게 이 표현을 써보시기 바랍니다. 숙제 안하고 노는 아이에게
Are you done with your homework?
라고 할 수 있고, 밥 먹고 나서 아이가 식탁에 그대로 앉아 있을 때 그릇을 치우기 전에
Are you done?
이라고 묻고요. 아직 끝내지 않았을 때는
I'm not done yet.
하면 되겠지요. 손님 일행이 물건 사면서 몇 가지를 골라 카운터에 우선 놓고 `아직 살게 더 있다'며 다시 아일로 돌아갈 때
We are not done.
합니다. done 은 이렇게 분사형 형용사로서 finished 의 뜻을 주로 갖는데, beef stake 주문하면서 잘 익혀달라는 뜻으로 well done 이라고 할 때의 done 도 같은 용법이지요. `끝까지 구워진' 뭐 이런 뜻...
`다 끝난 일,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의 done 이 들어간 유명한 격언이 있지요.
What's done is done.
끝난 건 끝난 것, 미련을 두지 말고 새로 출발하라는 얘기입니다. `Let bygones be bygones.' 이나 `It's water under the bridge.' 도 같은 말이지요.
Make sure you get things done before you go home.
하면 집에 가기 전에 반드시 일 끝내라는 윗사람의 `엄명'이고요. 또 애인, 남편, 직장과 헤어질 때처럼 뭐에 지쳐 더이상 그것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포기 (give up) 했다는 뜻으로
I'm done chasing you.
같은 말을 하기도 하는데... 젊은이들 좋아하는 팝송 가사인가요? `너 쫓아다니는 것 이제 관두겠다'... 또 어떤 작가가 자신에 대한 악평에 맞서 싸우는 데 진절머리가 나서 이제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할 때도
I'm done fighting against bad reviews.
라고 말하는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끝난' 상태와 비슷하지만 상태가 아주 나빠 더이상 쓸 수 없게 된 totally worn out, exhausted 의 의미도 있는 게 done 이지요. 이 경우에는 관용적으로 done for 라고 써서 for 를 붙여요. 자동차에 문제가 있어 정비소에 갔을 때 미캐닉이 점검을 해보고
Your transmission is done for.
하면 돈 많이 써야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변속기 수명이 다되어서 갈아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럼 남편, 부인들과 done 하지 말도록 주말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면서
Have a good one.
첫댓글 힘들게 겪으시면서 얻은 가치있는 경험을 영어표현에 연관해서 설명해 주시니 생생하고 안 잊어버릴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안 잊어버리실 것 같다는 말씀이 제일 좋네요. 1시간 동안 사전 찾아가며 편지를 쓰셨다는 얘기 앞 페이지에서 읽고 오래 전에 미국에서 지낼 때 우리 집사람이 아이들 선생님으로부터 매일 전해오는 편지(가정통신문?)를 읽고 아이들에게 시킬 것, 답장할 것 하느라 머리를 싸매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 기억되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서론이 길어도 괜찮겠습니다. 짧막한 결론보다는 과정과 함께 이해하는 것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으네요. 그러나 저러나 그 수퍼바이저는 어떻게 됐나요?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말이 안 통했던 Blueberry님 앞에서 눈물을 쏟았을까 싶네요.
그때 바로 병가를 얻었었어요. 닥터의 진단(스트레스)을 받아 3개월간 유급 medical leave... 그리고 그만둔 것으로 들었어요. 그가 간 뒤에 후임이 왔는데 나이스한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정이 들지 않았고 저도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해 패밀리 레스토런으로 주말 쟙을 옮겼지요. 저는 실력도 그렇지만 이런 스트레스(특히 사람들로부터 비롯되는)가 싫어 한국에서 떠나왔고, 캐나다에서도 소위 전문직 오피스 쟙을 아예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 변함이 없고요. 한평생... 먹고 사는 것 버는 거야 별로 어렵지 않잖아요. 그렇게 욕심 없이 자유롭게 살면 되는 거지요 뭐...
생생한 영어 한자락 이었어여...정말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가슴깊이 남는 강의였습니당....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뭐 끝냈을 때마다 "Done" 하면서 반복 연습하시다보면 정말 잊어버리지 않겠지요? 쑥스러워하지 않기, 의식적으로 말을 하려고 하기가 영어 발전의 첫걸음입니다. See you next time.
^^* 글 감사합니다.
타인의 살아 있는 소중한 경험담으로 저는 쉽게 영어 공부하네요. 잘 기억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사는 주만 다를 뿐 우리는 같은 일을 하는 동업자지요? 늘 정감이 가는 얘기 전해주실 때마다 혼자서 미소지으며 읽고 있습니다. 거기는 곧 추워지겠어요... 잘 기억하시겠다는 말씀이 너무 예쁘게 들렸습니다. I really appreciate it.
ㅎㅎ 그런가요? 동업자! 절 잘 아시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제가 실은~~ 글을 쪼매 잘 쓰는데요~ 요즘은 쉬고 있어요.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늦은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컴 앞에서 멍 때리고 한두어시간 그냥 앉아 있는데 아마도 이곳 카페에서 한시간은 보내지 싶어요. 이제는 영어 이 게시판에서 30분은 있으렵니다. 제가 일하는데 영어가 필수거든요.ㅎㅎ어찌나 용감하게 영어 못하면서 일 하고 있는지~ 부끄럽기 그지 없지요. 정신 못차리구요. 앞으로도 많은 경험담과 살아있는 표현 부탁 드립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도입부가 길어도 괜찮아요^^ 살아있는 경험이니까.. 계속 좋은 글 부탁해요
반갑습니다. 재미있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이런저런 얘기 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서로 공부한다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alk to you later.
done, 끝났다, 끝냈다 하는 의미인 것 같군요.
회화에서 그 과거분사의 의미와 활용을 두고
많이 고민하게 되는데.....
설명 감사합니다.
언제 시제에 대해서 좀 써주시면 좋겠어요.^^*
회화를 익히는 초창기에는
그 시제를 어떻게 적용(활용)해야할지
머리가 좀 복잡해질 수 있거든요.
잘 알겠습니다. 시제야말로 한국 영어 학도 들에게 최대의 `적'이지요.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하려고 합니다. 세계 일주와 캐나다 정착 계획 반가웠고요... See you soon in the next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