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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일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철휘
제10회 윤석중문학상
대전일보신춘문예출신 홍종의 동화작가 선정
대전일보신춘문예출신인 홍종의<사진>동화작가 올해 발간한 동화집『흥원창 어린 배꾼』으로 제10회 윤석중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홍종의 작가>
홍종의 동화작가는 충남 천안출신으로 96년 대전일보신춘문예 동화부문에 『철조망꽃』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이래 창작동화집『초록말 벼리』,『똥바가지』,『구만이는 알고 있다』,『반달역』등 40여권의 창작동화집을 펴내 계몽아동문학상과 율목문학상, 대전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문학상에는 동시집『내 별 잘 있나요』를 낸 이화주씨도 공동수상했다.
한편, 심사위원장 김병규(동화작가ㆍ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씨는 동화집『흥원창 어린 배꾼』은 ‘철저한 기초 조사를 통해 현장감을 살렸고, 탄탄한 구성과 힘 있는 흐름으로 잘 읽히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홍종의 씨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어린 날, 제 입에서 떠나지 않았던 윤석중 선생님의 동요가 제 동심의 텃밭이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번 심사에는 동시집 90권, 동화집 268권, 평론집 1권 등 모두 359권이 추천되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4일(목) 오후 5시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한국야쿠르트 빌딩 지하 1층 야쿠르트 홀에서 열리며 수상자에게는 (주)한국야쿠르트 후원으로 상패와 창작지원금 1천만원을 받는다.
<윤석중문학상>은『낮에 나온 반달』,『졸업식 노래』,『어린이날 노래』, 『산바람 강바람』,『옹달샘』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고 윤석중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주)한국야쿠르트의 후원으로 제정(2005년)된 권위 있는 상이다. -이철휘(목요언론인클럽 이사)
(제10회 윤석중문학상 수상소감)
수상의 기쁨, 강에게 바칩니다
홍 종 의
직원의 생일을 맞아 점심식사로 자장면을 먹다가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장면 값에 부가가치세까지 붙는 제법 그럴 듯한 중식당에서였습니다. 결국 식사를 포기하게 한 이 수상의 기쁨을 강에게 바칩니다.
동화작가로 등단한지 올해로 19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출간한 40여권의 동화책 중에서 수상작인 ‘흥원창 어린 배꾼’은 저에게 아주 각별합니다. 집안의 반대로 인해 문학의 꿈을 접고 공직에 들어서 올해로 만 27년을 근무했습니다만 이제와 돌이켜 보니 꿈에서 이탈된 삶인 줄만 알았던 공직생활이 제 안에 품고 있었던 창작의 강을 지켜주었던 튼튼한 둑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서 거침없이 흘러야 하는 창작의 강은 시시때때로 마르기도 했고 흐름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역류가 되어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흥원창 어린 배꾼’을 창작하기 직전이 최악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을 보러 갔습니다. 바로 원주에 있는 흥원창,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이었습니다. 비록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흥원창의 강은 본래의 제 몸을 잃어버리고 있었지만 강물은 여전이 흐르고 있었고 안으로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멈춰버린 제 강에게 흐름을 찾아 주었습니다.
“누구든 물길 한 바퀴를 온전히 돌고 나면 어른이 된단다. 물의 흐름은 사람살이 흐름과 같아 그 이치를 깨달으면 어른이 되는 것이지.”
강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선문답 같은 강의 가르침에 저는 정신을 차렸고 기운을 내어 이 작품 ‘흥원창 어린 배꾼’을 완성했습니다.
감사드릴 분들이 참 많습니다. 큰 상을 제정하고 운영해 주시는 새싹회와 한국야쿠르트 그리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동문학의 선배님, 후배님, 동료 작가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어린 날, 제 입에서 떠나지 않았던 윤석중 선생님의 동요가 제 동심의 텃밭이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윤석중 선생님 감사합니다.
세상이 아프고 거칠수록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지켜내야 되는 것이 동심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동심을 지켜내기는 늘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이 수상의 영광을 아픈 동심과 나누겠습니다. 이제는 멈추지 않고 강물을 따라, 동심을 따라 열심히 흐르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수상작가 약력)
홍종의
1962년 충남 천안(목천)에서 태어나 1996년 대전일보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으로 등단. 1998년 제17회 계몽사아동문학상 수상으로 본격적으로 동화작가로 활동.
지은 책으로는 동화집『초록말 벼리』,『별사이다 한 병』,『하늘음표』,『똥바가지』,『까만콩에 염소 똥 섞기』,『파워 블로거 지덕심』,『흥원창 어린 배꾼』 외 40여권이 있으며 그림동화책 『털실 한 뭉치』,『공짜표 셋 주세요』 청소년소설 『달려라, 돌콩!』 어른을 위한 동화집 『엄마의 마당』이 있음.
율목문학상, 대전일보문학상, 아르코창작기금을 받았음.
현재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음.
수상작
흥원창 어린 배꾼(요약)
방문이 벌컥 열렸다. 이렇게 이른 새벽, 사정없이 방문을 열어젖힐 사람은 가물이 아니면 장무 형 밖에 없었다.
<홍종의 작가>
“아이, 왜 또오…….”
엎어져 자던 거비가 짜증을 내며 몸을 뒤집어 반듯이 누웠다. 물비린내를 품은 축축한 안개가 기다렸다는 듯 방 안으로 뭉텅뭉텅 쏟아져 들어왔다.
“해가 똥구멍을 치받는데 여태 잠이 오냐?”
역시 가물이었다. 가물이가 소리를 빽 질렀다.
뭔 해가 똥구멍을 치받는다고……. 보나마나 이 시간이면 개치나루터 쪽에서 산더미처럼 밀려온 안개가 섬강 줄기를 냉큼냉큼 삼키며 휘 돌아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흥원창 전체가 짙고 두툼한 안개 자락에 휩싸여 해는 오전 새참이 지나서야 삐죽 얼굴을 내밀 터이다.
거비의 지독한 아침 잠 버릇도 따지고 보면 이런 안개 탓이다. 아니면 밤마다 물가에서 놀자고 보채는 달이 때문이던지.
“달이야, 일어 나. 고기 좀 잡으러 가자.”
거비의 말에 달이는 콧구멍만 한번 벌렁 열었다 닫았다. 거비는 부엌바닥에 떨어진 솔가지를 주워 달이의 콧등을 살살 간질였다. 달이가 입을 삐죽거리더니 눈가를 찡그렸다. 그래도 거비는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크앙!”
달이가 눈도 뜨지 않은 채 이빨을 하얗게 드러냈다. 이어 앞발을 들어 사납게 솔가지를 낚아챘다. 그러더니 도로 푹 쓰러졌다.
“이달이!”
거비는 ‘달이’라는 이름 앞에 ‘이’라는 성을 붙여 크게 외쳤다. 달이가 가끔 거친 야생성을 보일 때 그에 맞서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또한 같은 성을 붙여 달이가 거비의 동생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주기 위한 뜻이기도 하다. 신통하게도 그렇게 부르면 달이는 진짜 거비의 동생처럼 얌전해 졌다.
주막집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가물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평상 위에는 떼꾼들이 먹다 남은 술상이 어지럽혀 있었다.
‘으이구, 이러니까 칠칠맞다고 만날 혼이 나지.’
거비는 술상을 치우기 위해 평상으로 다가갔다. 주막집에 손님이 몰려들면 시키지 않아도 거비가 자발적으로 거들던 일들이었다. 걸레로 대충 평상을 닦고 술상을 들어 부엌에 옮기려던 참이었다. 어디선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울지 마소. 힘들어도 꿋꿋이 버텨야 하오.”
남자의 속닥거림은 매우 은밀하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흑흑흑!”
흑흑 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리와 마님의 시신은 지난 달, 볕 좋은 곳에 제가 잘 모셨지요. 좋은 세상이 오면 아가씨께 가르쳐 드릴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시우.”
“흑흑흑!”
다시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거비는 귀를 바짝 봉창에 댔다. 방 안에 있는 사람 중에 만약 우는 사람이 가물이라면 곧 남자가 말하는 아가씨가 된다. 남자가 말하는 나리는 가물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가물이는 주막집 아주머니가 일을 시키기 위해 횡성 산골짜기에서 데려왔다는 일가붙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에이, 그럴 리 없어. 가물이가 아닐 거야.’
거비가 알고 있는 가물이는 절대 남자가 말하는 아가씨가 될 수 없었다. 말하는 본새가 사내 아이 뺨치고 행동거지가 심란하도록 산만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그때였다. 갑자기 우악스런 남자의 손이 거비의 뒷덜미를 움켰다. 거비는 숨이 컥 막혔다. 엿듣는 것을 눈치 채고 남자가 방을 빠져 나와 거비를 잡은 것이다. 거비는 남자의 손아귀에 잡혀 번쩍 들어 올려졌다. 남자는 몇 번 주막집에서 본 적이 있는 인상이 고약한 떼꾼이었다. 봉창이 열리면서 가물이의 얼굴이 삐죽 보였다.
“이놈의 자식을…….”
남자는 성난 멧돼지처럼 식식거리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방 서방, 그 애는 괜찮으니까 놔 줘요. 얼른요.”
가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지만 남자가 듣지 않았다. 거비는 숨이 막혀 눈알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거비는 매일매일 강둑에 올라가 아버지의 배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는 눈물이 다 말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저러다 애를 잡지. 얼마나 몸이 달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들 거비 걱정을 했다. 그래서 막둥 아저씨가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거비도 배에 탈 준비해라.”
아침 일찍 거비의 집을 찾아 온 막둥 아저씨가 말했다. 거비는 잘못 들었나 하고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벼 팠다. 그렇지 않아도 거비는 몰래 배를 탈 결심으로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보던 참이었다. 스무날이 넘도록 아버지의 배가 돌아오지 않자 흥원창이 들썩 거렸다. 뱃길을 지키고 있던 도적들에게 당했다는 무서운 소문까지 나돌았다.
“아저씨, 비가 오려나 봐요.”
거비가 걱정이 되어 염소 수염 배꾼에게 말했다. 염소 수염 배꾼이 얼굴을 찡그렸다. 몹시 힘이 들어 보였다.
“비는 무슨 비, 재수없는 얘기 하지 말고 노나 저어 봐라. 나는 잠깐 다리 좀 풀어야 되겠다.”
염소 수염 배꾼이 노를 거비에게 맡기고 일어섰다.
“진짜 비가 온 다니까요?”
거비가 노를 저으며 말했다.
“어허! 이놈이……. 너는 눈이 없냐?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무슨 비가 온다고.”
염소 수염 배꾼이 거비의 말을 싹 무시했다.
“뜨꾹! 뜨꾹!”
틀림없다. 달이가 코를 문지르다가 이렇게 딸꾹질을 하면 틀림없이 비가 온다. 날씨가 화창해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비가 오려면 나타나는 수달들의 버릇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달이의 특이한 버릇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딸꾹질까지 해 댈 정도면 적어도 한나절 가까이 비가 온다는 뜻이었다.
밤새도록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쌀가마니들은 준비한 송판으로 지붕을 만들고 이엉을 덮어 마무리를 했다. 사람들의 몸은 비에 홀딱 젖었지만 쌀가마니들은 멀쩡했다. 다행히 배를 댄 강기슭은 비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 줄 만큼 아늑한 곳이었다. 비는 천둥 번개까지 몰고 와 뜬 눈으로 밤을 새우게 했다. 쏟아지던 비가 날이 밝음과 동시에 그쳤다.
“자, 고생들 많았수. 거비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막둥 아저씨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비안개가 걷히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황토 빛 강은 순한 물길을 감추고 대신 사나운 물돌이를 내 보였다.
“아무래도 물길이 잠잠해 지려면 오전 한 나절은 기다려야 될 것 같수. 고생들 했으니 눈 좀 붙입시다.”
막둥 아저씨가 먼저 선실로 들어가 누웠다. 거비도 쌀가마니에 몸을 기댔다. 까무룩 잠이 찾아 들었다.
“저 아이의 애비는 어떤 사람이우.”
방 서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비는 귀를 바짝 곤두세웠다. 막둥 아저씨를 따라 선실로 내려간 방 서방이 아버지에 대해 묻는 것 같았다.
“원래는 거룻배 한 척 가지고 착실하게 고기잡이도 하고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수.”
방 서방의 물음에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이 배에서 막둥 아저씨 밖에 없었다. 나머지 배꾼들은 다 외지에서 흘러 온 뜨내기였다. 역시 막둥 아저씨가 대답을 했다.
“몇 년 전, 큰 홍수에 마누라를 잃었다우. 참 보기드믄 미인에 성품이 가루분처럼 고왔수.”
막둥 아저씨의 말이 참말이었다. 어머니의 눈은 별처럼 반짝 거렸고 코는 깐 마늘쪽처럼 매끈했다. 그리고 입술은 잘 익은 앵두처럼 항상 발그레하여 맑디맑았고. 목소리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거비는 한 번도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거친 소리를 듣지 못했다.
“마누라가 저 애를 살리고 큰물에 휩쓸려 갔다우. 아직도 저 아이의 어머니 시신을 찾지 못했수.”
이제는 다 컸으니 알 것은 알아야 한다며 주막집 아주머니가 거비에게 작정을 하고 알려 준 일이었다. 이상하게 거비는 그때의 생각이 코딱지만큼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거룻배를 부셔버리더니 논, 밭 다 팔아 큰 배를 하나 장만 하더이다. 그러더니 도무지 땅에 발을 딛을 생각도 안하고 여태껏 강물 위에서만 사는 것이우. 자기 딴에는 죽은 마누라의 시신을 찾겠다는 뜻일거유.”
“그래도 한양 뱃길을 가지 않았수. 이제 정신을 차렸나 보우.”
방 서방이 말했다.
“가고 싶어 간 것이 아니우. 장무란 놈이 뱃길 한 번 뛴다고 배를 빌려 달라고 하도 졸라대니까 허깨비로 따라간 것이지. 여태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장무 놈이 장난질을 친 것 같수.”
막둥 아저씨가 거기에서 말을 그쳤다. 방 서방이 다시 선실을 빠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선주 양반! 이리 좀 와 보슈. 선주 양반!”
방 서방이 다급하게 막둥 아저씨를 불렀다. 깊은 잠에 빠졌는지 막둥 아저씨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거비가 얼른 배 머리로 갔다.
“저, 저 배. 거비 아버지 배 아니냐?”
방 서방이 물었다. 거비는 술에 취한 듯 비틀 거리며 다가오는 배를 보았다. 분명히 아버지의 배였다. 거비는 가슴이 너무 뛰어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왜 무슨 일 있수?”
그 사이 잠에서 깬 막둥 아저씨가 선실에서 나왔다.
“아니, 저 배는?”
막둥 아저씨가 놀랐다. 막둥 아저씨는 얼른 배 머리로 올라갔다. 거비도 올라가고 싶었지만 발을 딛고 설 자리가 없었다. 거비는 방 서방과 막둥 아저씨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 그렇게 하자 아버지의 배가 똑바로 보였다.
그런데 진짜 배 주인인 아버지가 어디에도 없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거비는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들어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아저씨, 우리 아버지는요?”
거비가 배 머리에서 내려와 곰보 배꾼에게 매달리며 물었다. 멧돼지처럼 생긴 장정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였다.
“그, 글쎄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무슨 일로 아버지가 관가에 잡혀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무사히 한양까지는 간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곰보 배꾼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한참동안 장무 형과 이야기를 나누던 막둥 아저씨가 배로 건너왔다. 이어서 방 서방과 배꾼들도.
“아저씨!”
거비가 울먹이며 막둥 아저씨의 팔에 동동 매달렸다.
“괜찮을 거다. 무슨 오해가 생겨 관가에 잡혀 있는 것 같으니 곧 풀려 날 거다. 무슨 일인지 내일 모레면 알아 볼 수 있을 테고.”
막둥 아저씨가 거비를 달랬다.
“아무래도 저 놈들이 수상하우. 저 놈들이 진짜 삯을 받겠다고 배를 팔아 버릴 것 같수. 나는 여기서 저 배로 옮겨 타고 흥원창으로 돌아가 알아 봐야 되겠수.”
방 서방이 아버지의 배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그럼 거비도 함께 데려 가시우. 지금부터야 물길이 넓어 한양까지는 나머지 배꾼들만으로도 충분할 거유.”
막둥 아저씨가 순순히 응해 주었다.
“저는 안 갈래요. 아버지를 만나러 갈래요.”
거비가 뒷걸음질을 치며 버텼다. 아버지를 못 보고 이대로 돌아갈 수 없어서였다.
흥원창으로 가는 물길은 이제 거슬러 가는 뱃길이다. 온전히 노를 저어서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방 서방이 바람의 방향을 잡아 돛을 펼쳤다 접었다 했다. 배가 순하게 물길을 거슬러 올랐다. 가끔 방 서방이 노를 저으면 거비도 따라서 노 젓기를 도왔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자욱한 비안개가 강에 깔리더니 어둠도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 갔다. 방 서방의 외침 소리에 장정들이 선실에서 몰려 나왔다.
“으여차! 어기여차!”
“으여차! 어기여차!”
장정들이 장단을 맞춰 노를 저었다. 배가 쑥쑥 앞으로 나갔다. 방 서방이 돛을 내리고 돛대를 뉘어 뱃길 갈무리를 했다. 멀리 불빛이 흔들렸다. 주막집 처마 밑에 밝혀둔 불빛이다. 방 서방도 불빛을 본 것 같았다.
“거비가 참 고생이 많았다.”
방 서방이 나란히 서서 거비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자, 뗏목을 조심해야지. 우로! 우로!”
어둠 속에서도 방 서방은 선착장으로 가는 뱃길을 정확히 짚어 냈다. 배가 방 서방의 지시에 따라 매끄럽게 선착장에 몸을 붙였다. 방 서방은 밧줄을 풀어 배를 단단하게 묶었다. 드디어 뱃길이 끝났다. 장정들이 배에서 풀쩍풀쩍 뛰어 내렸다.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 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살그머니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벌컥 열지 않으니 가물이가 아닐지 몰랐다. 지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두운데 여기서 뭐해. 바보같이.”
가물이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거비는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오늘 밤 떠나야 해.”
안개처럼 축축한 목소리였다. 가물이가 거비의 손을 꼭 잡았다. 가물이의 눈물이 거비의 손등에 똑 떨어졌다. 눈물 떨어진 자리가 송곳으로 찌른 듯 아팠다.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돼?”
거비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너만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돼. 네가 여기에 있으면 언젠가 내가 강물처럼 흘러오면 되잖아. 그렇지?”
가물이가 대답을 했다. 거비는 가물이가 쓰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이 말끔하게 치워졌다. 아직 다른 사람이 든 흔적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가물이가 방을 쓸 때 슬쩍 들여다 볼 것을 그랬다. 아무리 가물이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기억에 없어 찾지를 못하겠다. 코를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아도 가물이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지지배 쓰던 방에 들어가 문 닫고 뭐 햐?”
눈치 없이 주막집 아주머니가 불렀다. 거비는 급히 방문을 열고 나오다 문틀에 머리를 꽝 부딪쳤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아팠다.거비는 부딪친 문틀을 쥐어박으려다 손을 멈췄다. 문틀 나뭇결에 머리카락 몇 개가 끼어 있었다. 돼지털같이 뻣뻣한 거비의 머리카락은 분명히 아니었다.
거비가 문틀에서 머리카락을 떼어 냈다. 햇빛에 비춰보니 속이 보이는 말간 노란 빛이다. 머리카락 길이도 가물이가 묶었던 댕기까지의 길이다. 틀림없이 가물이의 머리카락이었다. 거비는 세 가닥 남짓한 머리카락을 검지에 돌돌 말았다.
방 서방이 일러 준대로 거비가 도둑맞았던 판관의 말을 끌고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사람들 틈에서 장무 형이 튀어 나와 눈 큰 장정을 낚아 챘다. 거비가 눈 큰 장정을 가리켰다. 판관과 포졸, 사람들의 시선이 눈 큰 장정에게로 쏠렸다. 눈 큰 장정이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저의 아버지는 한 달 전에 한양으로 나라 쌀을 싣고 간 이무산입니다. 원래 백 섬을 싣고 가야 하는데 백 오십 섬을 실었습니다. 오십 섬은 창고에서 누가 훔쳐서 몰래 실은 것입니다. 한양에 가서 팔기로 하고요. 백 섬을 무사히 내려 주고 훔친 오십 섬을 팔다가 관헌에 잡혔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잘못을 저의 아버지가 시킨 것이라고 뒤집어 씌웠습니다. 여기에 그 도둑들이 있습니다. 바로 강 첨지와 장무 형입니다.”
거비는 눈 큰 장정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말했다. 강 첨지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장무 형이 도망을 치려다 포졸들에게 잡혔다. 판관의 수염이 바르르 떨렸다.
“저 애, 말이 사실이냐?”
판관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예, 모두 사실입니다. 잘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눈 큰 장정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잘못을 빌었다.
“알았다. 모든 죄는 관가에 가서 조사하면 나올 것이다. 포졸들은 강 첨지와 장무를 관가로 끌고 가라. 그리고 나머지 놈들을 다 잡아 들여라.”
판관이 분부를 내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막둥 아저씨의 배가 선착장에 도착해 아버지의 배 옆에 나란히 붙었다. 막둥 아저씨의 배 위에는 거룻배가 한 척 실려 있었다. 폭풍우가 지나간 날 아침에 배꾼들이 합수머리에서 건진 거룻배였다. 아버지가 제일 먼저 배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거비는 그 틈에 끼지 못했다. 거비는 사람들의 인사가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거비야!”
아버지가 거비를 불러놓고 쑥스러운 듯 손조차 내밀지 못했다. 거비가 먼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자 아버지도 두 팔을 벌려 크고 넓은 품을 만들었다. 거비가 그 품에 푹 빠졌다. 거비가 흑!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배를 사고 저 배를 팔아 버렸다.”
아버지가 가리킨 이 배는 배꾼들이 합수머리에서 건져 올린 작은 거룻배였다. 그리고 저 배는 아버지가 흥원창 강물 위에서 줄기차게 끼고 살던 큰 배다. 쉽게 말해서 거룻배를 사고 큰 배를 팔았다는 뜻이었다.
“이 거룻배를 네게 주마. 막둥 아저씨에게 들었는데 너도 배꾼이 다 되었다더라. 이제 내 대신 네가 강에서 살아라. 네 어머니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거비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몰래 닦았다.
“그래도 강은 흐르는 구나.”
아버지가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순한 바람이 강물 위에 잔잔한 물결을 지어 놓았다. 어머니의 입가에 맴돌던 웃음을 닮았다. 해가 비스듬해지자 빛줄기가 부드러워졌다. 부드러운 빛줄기가 물결과 어우러지더니 넉넉한 강의 품을 만들었다.
‘아, 어머니!’
거비는 입 속에 어머니라는 말을 가득가득 채웠다. 그렇게 하자 당장이라도 거룻배를 띄워 강 가운데로 가고 싶었다. 그러면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포근할 것 같았다.
“한번 거룻배를 저어 볼 테냐?‘
거비의 마음을 아는 듯 아버지가 물었다. 거비가 머리를 끄덕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달이가 강물 위로 목을 쏙 내밀었다. 거비는 달이를 부르려다 그만 두었다. 달이의 곁에서 강물 위로 목을 쏙 내미는 또 한 마리의 수달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달이와 수달은 물길을 타며 몸 뒤집기 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거비가 그 모습을 넋이 나간 듯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달이, 너는 친구가 생겨 참 좋겠다!” (끝)
첫댓글 거참! 읽을만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