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사와 바오로 병원 그리고 청량리성당
거칠고 메마르고 높은 빌딩들로 그득한 도시........그래서 사람들은 고향을 꿈꾸고
산을 오르고, 하늘의 구름을 보고 강물을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청량리의 지명 명칭이 '청량사가 있는 터'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고즈넉한 산사가 있다는 것이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시끌벅적한 대도시 서울의 매력은 바로 점점이 흩어져 있는 이러한 장소들로 인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청량사>는 원래 인근 홍릉 자리에 있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로 인한 홍릉 무덤 조성으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된다.
1호선 지하철 2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05번을 타고 서너정거장을 지나서 한신아파트 정류장
에 내려서 걷다보면 고즈넉하고 고운 단청, 묵직한 기와장을 이고 있는 산사가 보인다.
천장산(天藏山) 남쪽 기슭에 자리한 4대 비구니 도량으로 유명한 '돌꽃이 승방'이 바로 이곳이다.
<청량사>는 독립운동가들이 드나든 역사적인 장소이기도했고, 만해 한용웅도 한때 머물렀다.
비탈에 세워진 사찰의 지세로 사찰내의 건물들은 오밀조밀하게 복층 구조로 지어졌다.
갑갑한 마음을 풀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공간--- 도심속 사찰의 모습이다.
<청량사>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두 정거장 정도 청량리역 방향으로 되돌아 나오면
<청량리성당>이 나온다. 동대문 경찰서에서 그리 멀지않은 거리이다.
1944년 <살트로 성바오로 수녀회>가 열악한 서민들의 치료를 위해서 세운 시약소/施藥所
(천주교에서 설치하였던 의료사업기구)가 모태였던 <聖바오로병원>과 인접하여 있던
<청량리성당>은 청량리 588인근 일대 재개발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리고 62년간 값싸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로 서민들의 건강을 보살펴온 <聖바오로병원>은
폐원하게된다. 지금은 카톨릭대학 산하로<은평성모병원>으로 이전하였다.
<聖바오로병원>에는 전국 최초로 에스컬레이터가 있었고, 국내 최초 여성 외과의인 <최승혜>교수가
재직하며 저렴하고 수준 높은 의료를 제공했던 뜻 깊은 곳이다.
내 장인 어른이 60세도 못채우고 숨을 거둔 곳도 이곳이다.
<聖과俗>이 혼재되어 숨가쁘게 살아 숨쉬던 청량리.......청량리 588이 존재했던 그 자리에는
롯데개발과 SKY-2 등 고층아파트와 빌딩들로 가득하다.
당시 서울 장안에는 소위 588, 종삼, 미아리등으로 불리우는 집장촌들이 있었다.
넓은 쇼윈도안에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한 여성들이 남자들을 기다리며 몸을 팔던 곳을 말한다.
근처에는 유흥업소가 즐비했다. 그래서 588은 안 좋은 은어로 쓰이던 숫자였다. 화곡동 --동대문운동장 버스노선
번호가 588이다.
또한 개그소재로 우리에게 쓴웃음을 짓게 하기도 했다. 선동렬 야구 감독시절 락카 번호가 공교롭게 이 숫자가
되어서 청량리 감독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기도 했다.
<俗 중에서도 가장 깊은俗>의 삶을 살며 몸을 판돈을 꼬박꼬박 시골의 식구들에게 보냈다는 사실은
우리를 한 없이 슬프게 한다.
삶의 무게를 몸으로 받아낸 그녀들의 가련함이 또한 우리에게 슬픔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기드 모파상>의 데뷔 작품인 <비곗덩어리>라는 단편이 있다.
창녀와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물흐르듯 그려낸 단편이다.
지금 파리에서는 2024년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파리의 상징은 단연코 <에펠탑>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반대속에 세워진 에펠탑이지만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모파상도 반대의 글을 투고했고
매독으로 죽은이가 모파상이기도 하다..
롯데백화점 자리에는 대왕코너라고하는 큰 건물이 있었다.
땅의 火氣가 강한 때문인가 72년,74년,75년 세차례에 걸처서 큰불이 났다. 더구나 새벽 나이트 클럽에서
종업원들이 돈을 내고 나가라고 문을 막아서는 바람에 더욱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람들의 머리속은 참으로 복잡하고 영리한 것 같으면서도 때론 어리석은 면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공장도 불이 나서 몽땅 타버린 적이 있다.
옆에 있는 프라스틱 공장에서 난 불이 옮겨 붙은 것이다.
불이 난 터는 불같이 일어난다는 속설이 있는가 보다.우리 공장을 사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덤벼들어서
시세보다 상당히 비싸게 불이 난 공장을 팔았다.
<청량리 성당>의 주보성인은 <성 라우렌시오>이다.
청량리성당 미사시간의 특이한 점은 성가대의 합창이 다른 성당보다 우렁차고 장엄하다는 것이다.
글로리아 성가대와 엔젤 성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성가를 음반으로도 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 성호를 음악으로 하는 것을 <청량리성당>에서 처음 경험하였다.
성당 순례기가 아닌 잡소리로 지면을 메웠다. 원래 성당 주변의 동네 한바퀴 도는 것이니 크게 흉될 일은
아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부부가 <명동성당>에서 결혼할 때 주례를 해주신 <조인원 빈첸시오> 신부님이
계셨던 곳이 <청량리성당>이었다. 신랑과신부가 제시간에 안 와도 결혼식을 진행하는 시간 엄수가 대단한
분이다. 그래서 별명이 호랑이 신부였다. 우리는 그분을 묵상하며 그곳을 간 것이다.
<청량사> 동별당(무량수전) 현판 양쪽 문기둥에는 세로로 써서 붙어 있는, 절에서는 특이하게 <한글>로 된
<잠언>이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
고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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