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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롬1:16, 갈1:4절
제 목 : 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구원이란
일 시 : 2024. 3. 3.
롬 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갈 1: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에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특별히 마12장에서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을 때 예수께서 고쳐 주셔서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비난했습니다.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아프리카의 고 죠수아 목사님의 사역을 보시면 수많은 불치병자들을 고치고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인 박혁 전도사님 외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과 동일한 초자연적인 삶을 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그분들의 사역을 보면서 이단이다 마귀다 라고 비난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과 동일한 일을 하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을 이단시하거나 악한 마귀라고 욕을 하고 몹시 싫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과 구원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설교자들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병을 고치시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또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고 질병과 고통을 주십니다 라고 말함으로 마치 질병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많은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죄에서부터 구원이라는 제한된 구원관을 가지고 질병과 가난과 고통 속에서 불행하게 살면서 빨리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고통과 질병과 괴로움이 없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를 갈망합니다. 이처럼 잘못된 구원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전한 구원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완전한 구원을 누려보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시고 부활하신 목적은 오직 영적인 것이고, 미래에 주어지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만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거기서도 영광스럽게 되겠지만 예수님은 현재의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갈 1: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서 들어가는 지옥의 형벌과 죄로부터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모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기 위해서도 오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고 할 때, 그 구원은 날마다 우리의 짐들을 져 주시는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죄짓도록 유혹하는 원수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마귀가 가진 사람들이 가진 것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권세와 능력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3: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목적은 마귀하는 모든 악한 일들, 즉 사람들에게 질병과 가난과 온갖 불행과 고통을 주는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체가 온전하게 되는 완전한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전5:23-24/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미래적인 것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로부터의 구원이며, 영과 혼과 육이 완전하게 되는 완전한 구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그것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구원이 무엇인지 거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원이란 소조라고 하는데 구조하다, 구원하다, 보호하다, 보존하다, 고치다, 완전하게 만들다 라는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으며, 신약성경에 백 번 이상 나옵니다.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먼저 구원하다(소조)라는 단어는 죄 사함을 가리키는 의미로 38번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소조)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했으며, 고전1: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소조=죄에서) 기뻐하셨도다/라고 했으며, 히7: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소조=죄에서)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방금 읽어 드린 말씀에 나오는 구원(소조)이란 단어는 모두가 죄로부터 구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구원하다(소조)라는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2. 두 번째로 구원하다(조소)라는 단어는 질병에서 해방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막5:22-23/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소조) 살게 하소서 하거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구원받다 라는 단어는 육체적인 질병에서 고침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더 말씀드리면, 야이로의 딸은 실제로 죽었지만 예수님이 그 소녀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습니다(막5:35-43). 그러므로 이 경우에 구원받다 라는 단어는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또한 눅8:36/귀신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소조)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라고 했습니다. 흔히 귀신 들린 거라사인이라 불리는 이 사람은 누구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묶었던 쇠사슬을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치유를 받기 위해서는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귀신의 억압에서 해당되는 것도 구원하다(소조)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행14:9/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소조)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라고 했으며, 행14:8-10/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발을 쓰지 못하는 불구자를 보고 그 사람에게 구원받을(소조=치유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절름발이라는 불치병을 고쳤는데 그것을 구원받았다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약5: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소조)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구원이란 단어는 병을 고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마9: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서 혈루증을 고침받았습니다. 여기서도 구원하다는 단어는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에 적용되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같은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막5:28/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고 했습니다. 생각함이러라는 레고 라고 하는데 ~라고 부르다, 발표하다, 말하다, 보이다, 이야기하다, 표현하다 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혼자서 입으로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구원하다는 단어는 육체적인 질병에서 온전케 되다. 온전해지다 라고 단어로 17번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막6:56/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市場)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소조=온전하게 되다)/고 했으며,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눅8:50/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소조=온전게 되리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면 구원, 즉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3. 세 번째로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되는 것도 구원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되었습니다.
구원의 의미는 죄 사함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질병을 고침받는 것과 또한 귀신으로부터의 해방되는 것과 함께 재정적으로 부요하게 되는 것도 포함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교회들은 구원을 죄 사함으로만 생각하고 적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불완전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단어 속에는 죄 사함은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에 그것을 절대 축소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강조되어야 하고 강조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값을 치르려고 죽으셨지만 동시에 우리를 질병과 의기소침과 가난으로부터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또한 고후8:9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모든 가난으로부터의 구원(속량)하시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고후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가난을 통하여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고, 즉 우리가 풍성하게 공급을 받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현재의 삶과 장래의 삶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즉 죄 사함과 질병에서의 치유받고 귀신으로부터의 해방과 물질적으로도 부유하게 되는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얼마나 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4.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 즉 구원이라는 종합선물세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우리의 죄를 위해서만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만 죽으셨다면, 치유는 그분이 원하실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서도 값을 치르셨지만 그와 함께 우리의 몸의 치유를 위해서도 완전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좋은 예가 시103:1-3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시103:1-3/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했습니다.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시103:2절에서 우리에게 그분의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베드로전서 2:24절 역시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은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고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병을 없애 버리셨음을 말씀합니다. 시편 103:3절과 벧전2:24절은 둘 다 죄 사함과 병을 고치시는 구원의 은총을 한 구절 안에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사역 안에는 죄 사함과 함께 병을 고치신 일을 따로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잘못된 신학과 교리를 가진 사람들만 죄 사함과 질병을 치유하는 것을 분리시키고 나누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이루신 구원의 복에서 어떤 것도 빼거나 제외시키지 않는 완전한 구원의 선물 즉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구원의 복을 주셨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주석을 읽다 보면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대해서 말하면서 병을 고치시고, 귀신 들림에서 해방되고,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맙시다. 다만 죄 사함에만 초점을 맞춥시다. 죄에서부터 해방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니 나머지는 부가적인 혜택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만 아니라 우리의 몸의 연약함과 질병을 치유하시기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과 우리의 몸을 치유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루시고 성취하신 구원의 완전하고 온전한 축복에 속합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를 짓도록 이끌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 더 이상 질병을 주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씀의 토대 위에 세워지게 되면 드디어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죄에도 굴복하거나 항복하지 않듯이 어떤 연약함과 질병에게도 더 이상 굴복하지 않겠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바른 구원관을 가진다면, 우리의 몸에 치유의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더 높은 차원의 완전한 치유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치유사역에 전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질병을 가리켜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병약함을 받아들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너를 아프게 하신 장본인이 하나님이야 라는 잘못된 소리를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약4: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대적하다 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병과 연약함과 질병을 주시는 장본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마귀와 마귀가 가지고 오는 온갖 연약함과 질병에 맞서서 적극적으로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가 병들기를 원하신다는 말을 믿고 받아들이도록 만든다면 우리는 질병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이 결코 병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질병에 맞서 싸우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역(복음전도사역)을 가로막고 방해하며 고통을 주는 연약함과 각종질병을 주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 증거를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고넬료을 찾아가서 그와 그의 집안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행10: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을 고치신 일을 선한 일을 행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다른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치유사역을 하면 그 사람을 마귀에게 속한 자로 여기고 이단시합니다. 그런 생각은 행10:38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자가 바로 마귀의 생각이며 이단자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셨을 때, 성경은 그 일이 선한 일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일이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함께 하심으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을 고치고 해방시키셨습니다. 치유사역은 결코 마귀에게 속한 일은 아닙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선한 일, 즉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러 돌아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에게 눌려 있었다는 사실에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병이나 연함이나 질병을 주시는 장본인이 아닙니다. 그 모든 일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받으시고 두루 다니시면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마귀라고 정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사53장에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예언하였습니다. 사53:3-5/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은 육체적인 치유가 아니라 감정의 치유와 영적인 치유에 관한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마8:16-18절을 통해서 사53:4-5절을 정확하게 번역했습니다. 마8:16-17/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했습니다. 제자 마태에 따르면 사53:4-5절은 우리의 감정과 영적인 치유가 아니라 육체적인 연약함과 질병을 고치시고 담당하셨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고치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피 흘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려고 계획하신 구원의 일부분으로서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유에 대하여는 설교하지 맙시다. 죄 사함에만 초점을 맞춥시다 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버리면서 예수님이 하신 것 중 일부는 중요하지만 다른 부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모든 것, 곧 그분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사역(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고, 물질적으로 부요케 하시고, 온갖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신)은 모두가 동일하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온전한 구원에서 중요한 부분을 무시하고 등한시하고 불신하는 것은 그분을 기쁘시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또한 복음의 메세지를 미래에만 적용되고, 현재의 삶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 질병과 가난과 온갖 문제에 매몰되어서 무능하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구속사역은 우리의 모든 문제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는 것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고통과 질병과 가난이라는 문제로부터 자유케 하시는 완전한 구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질병과 가난에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마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세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야 완전한 구원의 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에서 행하신 삼대 사역, 즉 가르치고 선포하시고 병을 고치신 초자연적인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롬1:16,갈1:4절을 읽어보고 구원의 현재성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바리새인들이 치유사역을 하시는 예수님을 뭐라고 비난했습니까?
2.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영적,미래적인 구원뿐만 아니라 어떤 특징을 가집니까?
3. 구원하다(소조)라는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무엇에서의 구원입니까?
4. 구원하다(소조)는 단어가 사용된 또 다른 예들은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이 죄 사함과 질병의 치유를 동시에 말씀하는 성경구절은?
6. 각종 질병과 가난과 고통을 주는 마귀를 적극적으로 대적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멘
1.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곧 마귀다라고 비난했습니다
2.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미래적인것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직면한 모든문제 날마다 우리짐을 져주시고 우리로하여금 죄 짓도록 유혹하는 원수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마귀가 가진 모든권세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것 곧 온갖 질병과 가난과 불행과 고통등 모든권세를 박탈해서 멸하는것이고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완전하게 되는 완전한 구원입니다
3.죄로부터 구원입니다
4.질병에서 고침받는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이루신 구원의 복에서 어떤것도 빼거나 제외시키지않는 완전한 구원의 선물 즉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구원의 복을 주셨습니다
5.시103:1~3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네 모든 병을 고치시고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6.하나님께서 병과 연약함과 질병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