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황제기> 30년, AD141년.
三十年 辛巳 四月
帶方張彦侵屯有 菟城太守乙魚擊殺之
樂浪太守龍俊侵西安平 安平太守尙岑擊破之 追擊新安居鄕 奪其妻子兵仗 而皈 賊遁入幽州
左輔禾直薨 尙溫爲左輔 穆度婁爲右輔
고구려사초 태조황제기 30년, 141년 기사는 미스터리하죠.
"4월, 대방의 張彦(장언)이 둔유를 침범하였다.
토성태수 乙魚(을어)가 이를 격살시켰다.
낙랑태수 龍俊(룡준)이 서안평을 침범하자, 안평태수 尙岑(상잠)이 이를 격파시키고, 新安(신안), 居鄕(거향)까지 추격하여, 그 처자와 병장을 빼앗아 돌아왔다. 적들은 유주로 달아나 버렸다."
尙水(상수)-尙仁(상인)-尙溫(상온),尙岑(상잠)-尙天花(상천화),尙蕃(상번)
尙岑(상잠)은 尙溫(상온)의 아들로 알았는데, 아닐수도 있다고 하네요.
대방이 둔유를 때린게 이상하지만, 141년(147년일수도 있음) 쯤이면, 121년 요서, 요동에 있었던 국제 전쟁의 여파로, '둔유현' 정도는 분명히 그 위치를 옮겨서, 재배치(이치)시켰을 가능성이 높죠.
둔유의 위치를 보수적으로 잡으면,
요동반도 동부 쪽인 것 같고,
서안평과 가까이에 있을테죠.
이때 140년대 고구려의 전략은 요동군 - 낙랑군 사이의 허리를 끊어 놓을려고 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신안과 거향의 위치를 파악할려고 검색한 바, 이 기사는 <삼국지> 오환선비전에 나와 있다고 하네요.
順·桓之間, 復犯遼東, 寇新安·居鄕, 又攻西安平, 於道上殺帶方令, 略得樂浪太守妻子. <삼국지> 권30 위서30 오환선비전 제30 고구려
원문 추출하면, 이렇게 되는데
순/환제지간 = 121년~144년,
146년~167년.
특히 居鄕은 삼국지 판본에 따라, '거취'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군현 거취현 때문에 후대 판본에서는 거취로 고쳐졌겠죠.
居鄕은 작은 마을을 의미할지도 모르죠.
또한 '요동속국' 설치 시기도 안제(106년~125년) 시기로 보므로, 121년 국제 전쟁 이후로 '요동속국'이 설치된 것 같고, 이후 140년대에... 대방이 둔유를 공격한 것과 뭔가 맞물리는 뭔가가 있는거죠.
<고구려사초>는 '대방태수'라고 하지 않고, 그냥 '대방'으로 적었기에, 이때 張彦(장언)은 '대방 현령'임을 나타냅니다. <삼국지>에 帶方令(대방령)이라 적힌 기사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죠.
그러므로 141년 <고구려사초> 문장은 신뢰성이 높은 편이죠.
게다가 <본기신편열전>을 확인하니, AD147년 기사로 나옴.
AD49년~AD105년 사이에 아마도 둔유현이 이동한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