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지방인 충북의 단양,영춘,청풍,제천 네 고을을 경치가 좋아 ‘내사군(內四郡)’이라 불린다.
‘택리지’에는 내사군 중에서도 단양이 제일이라며 ‘단양은 인간이 사는 속세가 아나라 신선이 사는 선경(仙境)’ 이라고 극찬을 한다.
이 일대의 산악지대는 월악산국립공원의 도락산을 비롯한 암릉미가 빼어난 산들이 많다.
한마음의 발자국을 비켜간 산줄기가 수리봉(守理峰·1,019m)에서 신선봉(985m)을 거쳐 석화봉(石花峰834m)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이 능선 곳곳에는 기암괴석과 잘 가꿔진 듯한 분재가 즐비하다.
수십 길 벼랑 아래로는 멋들어진 암반을 타고 옥수(玉水)가 흘러내리는 골짜기들이 있다.
특히 설악의 용아릉을 닮았대서 ‘수리봉 용아릉’이라 일컬어지는 수리봉~신선봉 능선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수리봉에서 북쪽으로 가지를 친 멋진 암봉은 황정산(黃庭山·959m)이고,좌로 방향을 틀어 빗재(636m)를 지나면 도락산(道樂山·964m)으로 이어진다.
수리봉(守理峰)은 도리(理)를 지킨다(守)는 뜻일 테지만 수리과에 속하는 육식성 새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봉우리란 게 더 정설같다.
이를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기재하는 과정에서 지어진 이름이 아닐까?
석화봉(石花峰·834m)은 암봉으로 이뤄진 725m봉이 갓 피어난 꽃송이처럼 보여 생긴 산 이름이다.
특히 정상 부근의 낙타바위와 째진바위, 궁둥이바위, 백곰바위 등 온갖 기암들이 즐비하다.
B팀에게는 나옹화상이 개창했다는 천년고찰 원통암(圓通庵)과 제2단양팔경으로 자리매김한 칠성암(七星巖)을 선택하였다.
황정산의 드날머리에 위치한 칠성암은 30척 대석위에 70척 높이의 깍아 세운 듯한 바위 7개가 수직균열을 이루어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 형상을 하고 있다.
옛날부터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원통암은 지금 한창 불사가 진행중이다.




네비엔 윗점 들머리"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산1-6번지"를 입력하였지만 잠깐새 우리 차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다시 차를 돌려 목적지에 A팀을 내려주곤 다시 날머리인 "단양 대흥사"(충북 단양군 대강면 황정리 산30번지)에서 주차 대기할 것이다.

잘 정비된 윗점 들머리에...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드니 깎아지른 바위 암봉인 수리봉이 올려다 보인다.
수리가 봉우리에서 먹잇감을 노렸다가 사냥하기에 딱 알맞은 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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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려다 보는 수리봉.

슬랩구간이 펼쳐진다.

앞서간 일행들을 조금 당겨본다.

하얀 암반부를 그대로 노출한 수리봉 정상부의 모습.

돌아서면 그자리가 바로 조망처가 된다. 앞으로 황장산과 그 뒤로 백두대간과 대미산이 바라 보인다.

골짜기 너머 황장산의 모습.

안전로프가 쳐진 슬랩지대.

멀리 도드라진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공덕산과 하늘기둥으로 뾰족한 천주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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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새에서 뒤틀리며 자란 적송.

능선에 올라선 이정표

비박처 같기도 하고,기도처 같기도 하고...

수리봉 정상엔 정상 표지석 두 개가 서 있다.

오래간 만에 만난 마산형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래전에 저쪽 작은 정상석 앞에서 인증샷을 하였었다.

수리봉의 이정표.

수리봉~신선봉 구간의 일명 '수리봉 용아릉'이 펼쳐진다. 더 멀리 우측으로 보이는 쌍봉은 남봉과 황정산이고,왼쪽으론 도락산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오늘 처음 참여한 회원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상당한 사진 마니아로 보인다.

수리봉 용아릉 너머로 황정산과 도락산.

우리가 진행할 석화봉 능선 우측으로 올산과 멀리 소백산의 마루금이 드러난다.

칼날 능선은 용(龍)의 잇빨(아 牙)을 닮았다는 용아릉이다.

정면으로 황정산과 전위봉인 남봉이 쌍봉을 이루고 있다.
‘황정(黃庭)’이란 옥황상제가 근무하는 광한루 앞마당이라는 뜻으로 하늘의 정원같이 아름다운 산이라 붙여진 이름.

용아릉 좌측 깎아지른 단애 너머로 대간의 힘찬 산줄기가 뻗어있고,그 사이로 뾰족한 봉우리(▽)가 월악산.

당겨본 월악산 영봉의 모습.

암릉길은 계속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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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봉~신선봉 구간은 불과 450여 미터.

우측 황장산과 좌측 공덕산 사이의 먼 능선에 삐쭉 고개를 내민 산은 운달산인 듯하고...

황장산 우측 멀리 대간의 대미산과 뾰족한 월악영봉.

반대쪽 소백산의 연화봉 천문대를 당겨 잡아본다.

신선봉에선 조망은 꽝이지만 밥자리로선 딱이라 ...

신선봉 정상 푯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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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봉과 황정산 갈림길이다. 'Y'로인 이 갈림길의 좌측으론 황정산이고,우측으론 우리가 진핼할 석화봉 방향.

황정산 석화봉의 갈림길 이정표.

예사롭지 않은 바위들이...

위용을 뽐내는...

너머론 갈라진 황정산의 남봉이 가까이 보인다.

갈라진 남봉과 황정산.

석화봉 이정목 너머로 황정산이 보인다.

황정산휴양림 방향의 이정표는 두 군데로 표시되어 있다. 능선으로 바로 내려가는 이 지점과 중고개에서 계곡으로 내려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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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여만에 중고개에 닿는다. 우측 넓고 좋은 길이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

황정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선 곳은 직바위골. 우측으로 휴양림을 알리는 중고개의 이정표.

석화봉의 이름 유래가 된 석화바위인 듯.

바위 아래의 표지판엔 석화바위라 표기된 듯하지만 낡아 지워져 있을 뿐이고...

꽃봉우리(花)로 보였던 바위들이...

꽃닢처럼 보인다고...

능선 등로엔 '출금'을 알리는 면피용 현수막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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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궁둥이 바위.

우로 우회하며 다시 한 번.

다시 바위 전망대에선 일행들.

재혁씨가 암봉에 올라섰다.

우측으로 나란히 내리닿는 올산이...

암봉.

앞서간 일행들이 손을 흔든다.

조금 당겨 보았다.

기암에 올라 주위를 살피는 '청노루'님.

돌아보니 암봉 스카이라인에 드러나는 한 사람.

당겨본 그림.

멀리 소백산 마루금을 조금 당겨서...

1,2연화봉과 소백산 천문대.

좌측으로 덕절산과 그 뒤로 자세가 낮은 건 남한강.

우측 올산에서 좌로 흘러내리다 볼록 솟은 719봉은 S.C(세미 클라이밍)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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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으론 황정산이...

돌아본 산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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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궁둥이에 올라 선 재혁씨. 백곰바위의 백곰은 "망측해라. 왜 궁둥이를 들이대노?"라며 고개를 돌리고...

대흥사골 포장도로 밑으로 대흥사는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부속건물이 보인다.

대흥사골 너머로 올산의 719봉.

2차선 아스팔트 도로에 내려선다.

돌아본 날머리의 모습은 아무런 표식이 없고...

'출입금지알림'이란...

면피용 안내 현수막이 붙어 있다.

100여 미터를 내려오면 간이화장실이 있고...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대흥사에 도착한다. 대흥사는 군데군데 '수행중 출입금지'란 푯말이 붙어있다.

그래서 카메라만 들이대고 갓지어진 대흥사의 당우들을 담아본다.

.대강면 황정리 대흥사는 202칸의 큰절이었다고 한다.
일본군과 의병이 교전하는 과정에서 대흥사가 불타고 말았다.
승려가 100여명, 부처님의 불제자가 500나한이 모셔진 대불당으로 현재의 부지도 6,000여평이 넘고 사지(寺址) 근처에 기와조각과 주초석, 석축이 눈에 띄이는 곳이다.
이 절의 현존하는 암자로 원통암과 청련암이 있다.

금강산 유점사 점심식사 시간에 노승이 나타나
"충청도 단양 대흥사에서 왔는데 화로 절이 전부 불타고 오백라한상만이 남았다. 나한상을 옮겨야 하겠으니 맞을 준비를 하라" 하며 사라졌다.
주지스님이 종을 쳐서 맞을 준비를 하자 남쪽 하늘에서 나한 수백명이 구름을 타고 내려왔고,금강산 8만 9암자에서 사람을 모았으나 497명밖에 안됐다.
이후 8일만에 단양 대흥사에 도착해 보니 202칸 기와집은 폐허되고,나한전도 파괴되었다.
흙속에 있는 500나한을 손질하여 세우고 497명에게 한 분씩 등에 지게 하니 3구가 남아 힘이 센 3명에게 두분의 나한상을 지게하고 주지스님의 구명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치니 천지가 진동했다.
10일만에 유점사에 도착하여 라한전에 모시고 예불을 마쳤다.
이튿날 라한전에 가보니 3구가 보이지 않고 497구 밖에 없었다.
그 때 공중에서 "대중들이여 들으라. 500나한 중 어느 한 분도 득도를 못한 분이 있겠는가! 그러하다면 어떠한 분은 한사람씩편안하게 등에 업혀 오는데 나는 두 분씩 한 사람 등에 업혀오니 도중에서 불편함이 말이 아니었느니라. 이것은 대중들의 무성의로 이 같은 꼴이 된 셈이요. 그래서 나는 이러한 불편스러운 일을 더 이상 참지
못하여 유점사를 떠났소. 그러니 더 이상 찾지 말고 그대로 두시오"한다.
"황공하옵니다.황공하옵니다."를 외치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사죄하였으나 세분의 나한은 영영 금강산 유정사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체보자 : 단양군 단성면 상방리에서 출생하신 하동규(?∼1965)대선사는 법명이 동산이다.
1946년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 종정과 3대 종정을 역임하시고 부산 범어사에서 대선사로 계셨다.

카메라를 당겨 잡으니 현판이 세개가 달려 있다.

.'선불장'을 중앙으로

우측으로 '금오성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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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으로 '미륵대흥선사'

간이 화장실이 있는 아스팔트 도로 옆 넓은 공터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도로 건너 대흥사계곡으로 내려가서...

알몸으로 알탕을 하게된다.

청정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옥수(玉水)란 이런 데를 두고 하는 말일 것.

맑은 몸과 맑은 정신에 몇 잔의 막걸리를 들이킨다.
귀갓길에 몇 잔의 술을 더 마시고 몽롱히 눈을 감고 있는데,울린 전화신호음.
부고다.
친구가 떠났단다.
아프단 소식을 들은 지 불과 몇 달.
문병 한 번 하지 못했다.
아프고 병든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란 책을 읽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다루고 있다.
또 인간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지를...
죽음을 삶의 일부라며 부엉이바위에서 故 노전대통령은 뛰어 내렸다.
"내 마지막 순간"
나는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안다.
이 세상이
내 눈 앞에서 사라질 그날이
삶을 조용하게 마침을 고하면서
마지막 커튼을 내 눈앞에 드리우겠지.
그러나 별들은
여전히 반짝이고
새벽은 어제처럼 밝아올 것이고
시간은 파도처럼 출렁이면서
기쁨과 슬픔을 옮길 것이다.
내 마지막 순간
찰나의 벽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개의치 않던 보물이
당신들의 세계 속에 있음을 보리라.
하찮은 인생이란 없으며
낮고 비천한 자리도 없음이다.
아주 헛되이 집착한 것들과
그래서 얻은 것들을 그냥 내버려두라.
그 대신 이제껏 스스로 걷어 차 버린
보물을 소유하게 되리니.
<타고르>
첫댓글 다시금 그 산 그 절 보이는 근원간의 모든 하늘 땅 들을 열공하고 갑니다.
험 산 먼 거리 마다않고 따라나선 '산그림'과 '류열'님은 "밥도 안먹고 달리기만 한다"며 촐촐 굶고 왔다고 하대요.
"밥통이 있어야 밥을 먹죠"라며 들은 채 만 채 하였다죠? 마지막 괴물바위를 보러 가겠다며 재 입산을 하였다는데, 그 열정을 다 우짜요?
그건 돈으로 살 수도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