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쎄시봉 시대
쎄시봉 친구들의 음악과 우정 이야기
조영남 작가 | 이나리 지음 | 민음인 | 2011년 06월 02일 출간
책 소개
60~70년대의 음악과 낭만, 쎄시봉이 돌아왔다!
쎄시봉 친구들의 음악과 우정 이야기『쎄시봉 시대』. 1960~70년대 포크 음악의 산실이었던 음악다방 쎄시봉의 문화를 초창기 멤버인 가수 조영남이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냈다. 처음 어떻게 쎄시봉에 발을 들여놓았는가에서 시작해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이장희, 김민기 등의 친구들을 만나 함께 노래하고 술 마시며 40년 우정을 쌓아 가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공저자 이나리는 시대에 대한 자료 조사와 그간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중장년층의 추억 속에 남은 쎄시봉 시대를 복원해내는 한편 그 주역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말미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쎄시봉의 음악사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 음악평론가 임진모의 글도 함께 실었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40년 전의 ‘쎄시봉 열풍’을 다시 몰고 온 건 MBC의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쎄시봉의 추억>편에서였다.
60대 중반 초로인 그들의 음악은 세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당시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수많은 LP레코드ㆍ인기 DJㆍ아마추어의 무대 진출을 이끌어 낸 음악다방들, 통기타 1세대의 탄생 배경,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8군 쇼단 이야기 등 억압된 정치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자유와 낭만이 가득했던 대중음악ㆍ문화사가 펼쳐진다. 중장년층에게는 쎄시봉을 추억하는 시간이, 젊은이들에게는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조영남 작가
저자 조영남은 1944·45년 사이 황해도 출생. 1950년 1·4후퇴 때 가족이 충남 예산 삽다리 이주. 1961년 한양대 주최 전국 고교 콩쿠르에서 성악 부문 1위 차지, 다음 해 한양 음대 전면장학생으로 입학하나 연애 스캔들로 중퇴. 1964년 서울 음대 성악과 입학. 1965년 쎄시봉 무대에 서며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되고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김민기 등과 친교를 맺음. 이후 TBC 이백천, 조용호의 추천으로 드문드문 TV에 얼굴을 내밀다 1967·68년 사이 <쇼쇼쇼>를 통해「딜라일라」로 일약 스타덤에 오름. 1970년 시작된 군복무 중, 서울대 회화과에 다니던 김민기를 만나 서정적 추상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 1973년 제대와 동시에 미국으로 유학 갈 생각으로 그간 제작한 작품 처분 문제를 김민기와 상의 끝에 안국동 한국화랑에서 첫 전시회를 열게 됨. 1974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여의도 집회 때 독창을 맡은 인연으로 미국유학, 성가 가수로 지내다 1975년 트리니티 신학대에 입학, 1980년 졸업. 1982년 귀국, 가수로 복귀하는 한편 집필과 화가로서의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방송인으로도 활약 중임. 2010년 추석 특집으로 방송된 <놀러와-쎄시봉 특집>에 출연, ‘쎄시봉 열풍’을 몰고 오며 새로운 세대와 교감 중. 2011년 현재 <조영남·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명작 스캔들>을 진행하고 있음.
앨범으로 「제비」, 「딜라일라」, 「보리밭」, 「지금」, 「화개장터」, 「모란동백」, 「사랑 없인 못 살아요」, 「불 꺼진창」, 「간절 대박」 등이 있으며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어느 날 사랑이』, 『천하제일 잡놈 조영남의 수다』, 『예수의 샅바를 잡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등 에세이를 비롯, 문학 및 미술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책을 펴냄. 1973년 첫 전시 이후 서울, 뉴욕, 베이징 등 각지에서 개인전을 이어가고 있음.
목차
프롤로그
1장 여는 이야기
이장희의 러브레터 to 김세환,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2장 쎄시봉의 첫날
3장 그곳에서 누굴 만났나
4장 그럼 쎄시봉 식구들 중엔 누가 제일 술이 셌는가
5장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8군 무대
6장 조영남 얼치기 음대생, 스타 되다
7장 이장희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남자 세계의 보스
8장 윤형주 6070엄친아, 하이틴 스타로 부상하다
9장 송창식 70년대를 제패한 영원한 순수음악인
10장 김세환 가수라서 행복한 포크계 꽃미남
11장 김민기 아침이슬 같은 남자 ‘맹갈’
12장 윤여정 쎄시봉에서 그녀를 만나다
13장 김성수 예수 비슷한 사람
쎄시봉의 음악사적 의미
“쎄시봉이 돌아왔다” 레전드의 소환 - 음악평론가 임진모
에필로그
책 속으로
쎄시봉 입부에는 여느 다방과 다르게 매표소가 있었다. 입장권을 사서 문지기한테 제시하고 입장하면 안내 아가씨가 자리를 정해 주고 표를 받아 가면서 차를 한잔 내놓는다. 그 다음부터는 자유다 한밤중 문을 닫을 때까지 죽치고 앉아 있으면 그만이었다.
당시는 ‘브라더스 포’, ‘에임스 브라더스’ 같은 남성 4중창단이 세계적 인기를 끌던 시절인데 최희준, 유주용, 박형준, 위키리 4명이 프로젝트 그룹 ‘포클로버스’를 결성해 종종 한 무대에 서곤 했다. 학사 가수인 이들은 팝송 가사를 이해하고 실력 또한 출중했기에 쎄시봉이 장안의 명소로 이름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이들 외에도 ‘키보이스’, 기타리스트 신중현, 팝 바이올리니스트 김동석 등 무대가 마땅치 않던 미8군 밴드와 연주자들이 종종 무대를 장식했다. 60년대 중반 쎄시봉의 단골 사회자는 ‘후라이보이’ 곽규석이었다. 작곡가이자 재즈 색소포니스트 길옥윤이 이끄는 ‘길옥윤 악단’이 반주를 맡곤 했다. 이후 그는 가수 패티김, 혜은이를 통해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대중음악 작곡가로 우뚝 서게 된다.
“우리는 요즘도 몇몇 모이면 서로 묻곤 한다. “얘들아! 우리가 그때 휴대폰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끊임없이 모일 수 있었지?” 쎄시봉에서 만난 친구들은 공동운명체로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아 가며 약간은 진보적인 성향으로 커 갈 수 있었다. 나는 요즘 후배 가수들이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는 걸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막 젊음과 청춘을 구가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른데 허망하고 덧없는 인기 순위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할까 하고 의아심을 품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맹세코 우리 땐 그런 게 없었다. 가수나 연예인이라 해서 누구 하나 티내는 사람도 없었고 과장된 겸허나 교만을 부릴 줄도 몰랐다. 적어도 우리의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고영수, 이장희, 조동진, 서유석, 양희은, 김민기는 어쩌다 얼랑뚱땅 연예인이 된 모양, 모두가 어설퍼 보였다.
“젊은 날 너에게 비타민 역할을 한 직접적인 두 사람 이름을 대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오태석과 이백천 두 이름을 댈 것이다. 연극 연출가 오태석은 나에게 ‘인텔렉추얼’, 곧 지성을 촉발시켜 준 결정적 사람이었고, 음악 평론가 이백천은 내게 삶의 효과적 운영과 감성에 관한 제반 요력을 터득시킨 최초의 스승이었다.
이백천이 시작한 쎄시봉의 이벤트 ‘대학생의 밤’은 쎄시봉을 우리나라 통기타 가수 1세대의 발원지로 탈바꿈시킨 기획이다. 피아노 한 대와 소박한 조명을 마련해 대학생 노래마당을 펼쳤다. 전 KBS 악단장 김강섭과 TBC의 편곡자 겸 피아니스트였던 김용선이 교대로 피아노 반주를 맡았고 67년 당시 홍대 미대생이었던 이상벽이 종종 사회자로 나섰다. ‘대학생의 밤’에 대한 호흥이 높자 잇따라 새 프로그램이 탄생해 요일별로 다른 기획이 나왔다. ‘성점 감상실’, ‘(토요)즉흥스테이지’, ‘명사초청 강연’, ‘시인만세’ 등이다. 이 중 성점감상실 인기가 높았는데 이백천과 TBC TV기자였던 정홍택의 합작품으로 쎄시봉 젊은이들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곡에 대한 별점을 매기는 것이었다. 패티김, 윤복희, 최희준 같은 톱스타의 곡도 예외 없이 평가 대상이 됐다. 이백천-정홍택 콤비는 쎄시봉을 무대로 ‘신곡합평회’도 진행했다. 음반 녹음 전 젊은이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백천은 쎄시봉을 어디까지나 ‘대학생 광장’으로 기억한다. ‘시인만세’만 해도 소위 업소에서 쉽게 택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서정주, 박목월, 박재삼 시인 등 문단 거목들이 참석해 자작시를 낭송하고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아마추어 시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명사초청 강연 연사로는 당시 국회의원이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같은 이들이 등장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쎄시봉에도 나름 금기는 있었다. 정홍택은 이렇게 적었다. “술 마시는 것은 절대로 안 되고, 술에 취해 들어오는 것도 안 되고, 주먹 쓰는 사람은 출입 금지였다. 또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질서가 아주 잘 지켜졌다. 질서 속에 젊음이 발산되고 낭만이 표출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집 주인 이흥원 선생의 주관이고, 또 그것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출판사 서평
‘레전드의 소환’ 쎄시봉 스타들이 돌아왔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포크송’ 그리고 ‘청춘’을 압축한 “쎄시봉”
2010년 추석부터 이어진 쎄시봉 열풍의 주역들 중 맏형 격인 조영남과 이나리가 함께 쓴 쎄시봉 시대의 추억, 음악, 친구들 이야기 『쎄시봉 시대』가 (주)민음인에서 출간되었다.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김민기 등 1960년대 무교동 음악다방 쎄시봉에서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과의 우정과 음악, 낭만과 추억을 이야기한다. 쎄시봉 출신 스타가 직접 쓴 첫 번째 쎄시봉 책이다.
쎄시봉 2탄을 모의하면서 우리는 급격히, 자주 만나게 된다. 형주, 창식이, 세환이를 만나기 전부터 가슴이 뛰었고, 만나면 옛날 시절로 돌아가 즐겁기 그지없었다. 어른들은 나이 들어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너는 하나도 안 늙었어. 학교 다닐 때하고 똑같아.” 하는데,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누구 한 사람 변함이 없다. 창식이는 한결같이 한세상 다 산 도사의 폼으로 보살 같은 미소를 짓고, 형주는 한결같이 치밀한 계획을 짜고, 세환이는 한결같이 형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웃기는 얘기를 이어나갔기 때문이다.-여는 이야기 中
쎄시봉의 초창기 멤버 가수 조영남이 1960~70년대 대중문화의 상징이었던 음악다방 쎄시봉의 문화를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냈다. ‘학사 가수, 청바지 문화, 통기타 부대’ 등 신조어가 출몰하던 그 시절, 이십 대 청춘을 함께하면 새로운 문화의 장을 연 친구들과의 우정, 음악, 낭만이 이 책에 있다. 그곳에 어떻게 발을 들여놓았는가에서 시작해 쎄시봉 친구들을 만나 함께 노래하고 밥 먹고 술 마시며 40년 우정을 쌓아 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다. 공저자 이나리는 조영남, 이장희 등을 인터뷰한 인연으로 10여 년 전부터 쎄시봉 월드에 발 들였다. 그는 시대에 대한 자료 조사와 그간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중장년층의 추억 속에 남은 쎄시봉 시대를 복원하는 한편, 그 주역들을 재조명한다. 책의 각 장은 조영남의 쎄시봉 추억 이야기와,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나리의 쎄시봉 시대 탐방으로 구성된다.
수많은 LP레코드ㆍ인기 DJㆍ아마추어의 무대 진출을 이끌어 낸 이벤트가 가득했던 음악다방들, 통기타 1세대의 탄생 배경,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8군 쇼단 이야기까지, 억압된 정치상황과는 대비적으로 자유와 낭만이 가득했던 그 시절 대중음악사ㆍ문화사가 펼쳐진다. 6070 당시 청춘들의 기억 속에 있고, 현재 청춘들은 모르는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이 자연스레 담겼다.
▶ 청춘과 낭만의 시대, 6070대중문화의 산실
통기타 1세대들의 산실로 평가받는 쎄시봉은 단순한 음악 감상실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놀이터이자 프로와 아마추어의 공연장을 겸했다. ‘대학생의 밤’, ‘신인가수 선발대회’, ‘시인만세’, ‘스타와의 만남’ 등 젊은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마추어가 무대에 나설 기회를 제공했기에 끼 있는 젊은이가 모여들었고, 그 결과 쎄시봉 스타 군단이 탄생한다. 조영남, 송창식과 윤형주의 트윈 폴리오, 김세환, 이장희 등의 포크 레전드가 매주 금요일에 열린 ‘대학생의 밤’으로 탄생한 스타이고, 그 진행을 맡았던 이가 MC 이상벽이다.
쎄시봉에서 끼와 재능을 인정받은 젊은이들의 중심엔 조영남이 있었다. 65년 하반기부터 드나들었으니 이상벽과 함께 초창기 멤버일뿐더러 이후 등장한 이들과의 끈도 묘하다. 당시의 이장희는 조영남의 고교 동창의 조카이다. 연대에 입학한 이장희는 같은 학교 의대생인 윤형주를 만나는데, 그는 조영남의 고교 시절 교회 친구이다. 윤형주가 후에 경의대 의대로 적을 옮긴 뒤 만난 이가 김세환이다. 홍대 미대생 이상벽과 어울리다 얼떨결에 홍대생으로 착각당한 송창식, 조영남의 서울대 후배 김민기. 이들은 쎄시봉에서 만나 두세 살 차 나이는 우습게 여기며 단단한 우정을 쌓아 간다. 듀엣을 하고 곡을 주고받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공동 리사이틀을 펼치고 때론 티격태격 하며 40년 이상을 질기게 이어간다. 촌스럽지만 낭만이 있고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가운데 움트는 무언가가 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 쎄시봉 열풍 그리고 2세대를 건너뛴 교감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음악에 실린 이 영롱하고 쿨하지 않은 노랫말에 젊은 세대는 비웃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꿈틀거렸다.”-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책 말미에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가 쎄시봉 시대의 음악적 가치와 현재 열풍의 의미를 해석한다. 한편 책 속 인물 사진 일부는 쎄시봉 친구들 중 한 사람이자 저자 조영남이 쎄시봉 막내로 꼽는 유명 사진가 김중만의 작품이다.
임진모는 현재의 쎄시봉 열풍을 ‘레전드의 소환’에 비유한다. 비틀스, 아바, 존 레논, 퀸이 새천년에 새롭게 부활해 새로운 세대와 교감했듯 우리의 레전드가 잇달아 소환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60대 중반 초로인 이들의 음악이 그들 존재를 알 턱이 없는 새파란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준 것이다.
지난 추석 한 MBC 예능 프로에서 마련한 ‘쎄시봉 콘서트’가 이례적 반향을 일으킨 후 이 쇼크가 시작되었다. 쎄시봉 콘서트가 나이든 세대에 어필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 그들이 반가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사정이 다르다. 쎄시봉 열풍은 젊은 세대 기준으로 가장 멀리 거슬러간 트렌드로 평가받는다. 보통은 길어 야 한 세대 전으로 복고가 이뤄지는데 반해 1.5~2세대 전으로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지금 20대들이 “처음엔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음악이려니 하고 시큰둥했는데 우연히 TV로 보니 느낌이 묘했다. 들어보지 못한 음악인데도 가슴에 와 닿았다. 너무나 순수했다.” “쎄시봉 아저씨들 음악에 감동받는 내 자신에 내가 놀랐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소비를 겨냥한 요즘 음악에 물들어 있는 중에도, 우연히 쎄시봉 콘서트를 보고 비록 흘러간 것이라도 그것이 순수하고 진솔하며 마음속 깊은 것을 건드리는 어떤 무게와 격이 있음을 안 것이다.
쎄시봉 세대의 음악, 포크로 규정되는 그 시절 음악은 대부분 가수 자신의 사고와 심정을 표현하는 ‘자기 음악’이었다.
설령 남이 써 준 곡, 노랫말이라 할지라도 그 시절 가수는 자기의 얘기와 고백으로 그것을 전이시켜 결국은 그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딜라일라는 조영남의 당시 연정을 말하는 것 같았고,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열애에 빠진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은 것이었다. 신세대의 가사는 노래하는 가수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것들이 비일비재하다.
-본문 말미 쎄시봉의 음악사적 의미(임진모)
북로그 리뷰
쎄시봉 시대 ap**lgoun | 2011-07-25 | 추천: 0 |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보게 된 쎄시봉 정말 감동 눈시울을 적시면서 보았는데 그 시절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고 하여 궁금했으며 꼭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쎄시봉 멤버들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우정과 음악 이야기를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쎄시봉, 프랑스어로 멋지다라는 뜻이라고... 가수 조영남님과 쎄시봉친구들과의 음악과 우정이야기 <쎄시봉시대>의 이야기
가난했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우정을 쌓고 순수하고 낭만이 있었던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지금 들어도 멋진 주옥 같은 명곡들...
낭만이 있는 아름다운 그 시대가 그립습니다.
이장희님이 쎄시봉친구들에게 쓴 편지 방송에서 읽을 때 우정어린 편지에 눈시울이 뜨거웠었는데
책에 올려진 그 때 들었던 편지 다시 보아도 좋았으며. 역시 진심이 느껴졌으며 이런 친구가 있다면... 아, 정말 부러웠습니다.
세대를 초월하는 쎄시봉
시간이 흘러도 아름답고 멋진 노래는 많은 사람이 여전히 듣고 싶은 명곡으로 남으리라 생각되며 이 책을 읽으며 잃어버렸던 낭만을 다시 되새겨 보는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내 청춘의 시절로! li**7joy | 2011-07-19 | 추천: 0 |
나는 통기타 1세대보다 10년에서 15년 정도 늦은 시대 사람이다. 나 어렸을 때 한국 가요계는 남진, 나훈아 같은 가수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에게 인기였다. 대학생으로 나는 괜히 그런 것들을 경시하고 팝송은 열심히 따라 불렀다. 그 때는 조영남 같은 가수들이 팝송의 번안곡들을 불러 관심을 끌었던 시기다. 나는 교회에 착실히 출석하는 청년으로 대중음악을 경시하였고, 무교동에 있는 ‘쎄시봉’을 지나쳐 종로와 명동에 있는 고전음악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포크송이라는 통기타 노래들은 거부감 없이 따라 불렀다. 당시 트윈폴리오의 송창식과 윤형주가 부른 '하얀 손수건‘과 '웨딩 케익’은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면 누구나 흥얼거렸다.
이 책은 바로 그 시대에 대중음악의 주인공들인 쎄시봉 사람들의 인생과 꿈과 사랑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쎄시봉”(C'est Si Bon)이 “멋지다(so good)"라는 뜻으로 프랑스 샹송 가스의 히트곡 제목에서 따 온 것임을 처음 알았다. 이 책의 저자 조영남은 참 말을 잘한다. 글도 이야기하듯 거침없이 그러면서도 감칠 맛나게 썼다. 그는 확실히 다방면으로(연애도 포함) 재주가 뛰어나다. 그의 글이 신변잡기식이라면, 공동 저자 이나리 씨의 ‘쎄시봉 시대 탐방’의 글들은 당시를 통시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아무튼 재미있는 책이다. 앞부분에 실린 이장희의 러브레터는 쎄시봉의 인물들을 친근하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진정한 자유인 이장희, 기획력이 탁월한 똑똑한 엄친아 윤형주, 진정한 음악인 송창식, 밝고 행복한 꽃미남 김세환을 만났다. 김세환이 형들에게 ‘야자’로 한 말이 대박이다! “창식아 인마! 넌 낮밤 좀 제대로 바꾸고 살아” “형주야 인마! 너 후배들한테 고만 좀 설교해” “영남이 인마! 여자 관계 좀 정리해” 단 한방에 그들을 훅 날려 버린 멘트였다. 항상 미소년 같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 실제로는 제일 웃기는 소리를 잘했다니, 정말 재미있다. 나는 늘 진지한 아침 이슬같은 남자 김민기를 읽으면서 금지곡 중 하나였던 ‘친구’와 ‘아침 이슬’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쎄시봉 시대>는 나를 청춘의 시절로 데리고 간 타임머신이다. 이제는 인생을 조금 알기 시작한 나이가 되어, 청춘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 CD 열 장에 만원하는 흘러간 팝송을 사서 카오디오에 꽂았다. 조용남이 불렀던 “딜라일라(Delilah)“를 따라 부른다. 뒷좌석에 타고 있는 대학생 아들이 웃는다. 어느새 나와 옆 좌석의 아내는 흥얼거리고 있었다. ”… 라일락 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 “마시자 한 잔의 추억 …” “한번쯤 돌아서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
쎄시봉 사람들이 다시 방송을 타고 있다. 나 같은 중년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들은 인생을 재미있게 잘 살았다고 말한다. 나의 인생을 돌아본다. 나의 지나온 삶에도 현재의 삶에도 고단함, 아픔과 함께 꿈, 사랑, 재미, 행복이 있다. 오늘도 내 입에는 송창식의 노래가 착 달라붙는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
쎄시봉 시대를 읽고 my**3 | 2011-07-18 | 추천: 0 |
『쎄시봉 시대』를 읽고
내 자신의 나이가 벌써 오십대 중반을 훨씬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쎄시봉 세대보다는 약간 밑이지만 쎄시봉 멤버들과 거의 호흡을 같이 하며 생활했던 일부분의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특히 내 자신은 완전히 농촌의 시골에서 중학교 때까지 생활하다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결국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래서 3년 동안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나름대로 서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다녔다. 종로 2가에 있었던 신신, 화신 백화점을 포함하여, 대표적인 무랑무즈 등을 포함한 춤추고 술을 마시는 곳, 남산의 케이비에스 방송국과 정동의 엠비씨 방송국에도 여러 번 구경을 갔었다. 그리고 당시에 많이 좋아했고, 많이 따라 노래했던 가수들이 우리가 좋아했던 쎄시봉 가수들의 면모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이 당시 활동했던 가수들의 이름을 듣거나, 노래를 듣거나, 관련된 이야기들을 더욱 더 관심과 함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나이를 들어가다 보니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가끔 명절 때에 이루어지는 공연은 물론이고, 가끔 매스컴에 비치는 모습들은 너무 좋다. 특히 저자인 조영남은 매일매일 아내가 제일 좋아하면서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구수한 입담과 함께 많은 정보를 자연스럽게 전하는 것을 듣고 있기도 하다. 듣고 있노라면 가끔 자신의 화려한 연애사와 더불어 6070시대의 내노라 하는 음악가 등 연예계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활동들과 여러 기담 들을 들을 수 있다.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다양한 경험으로 녹아난 이야기들이 흥미를 돋우고 있다. 공동 저자인 이나리 기자는 평론가의 역할을 자임하여 쎄시봉 시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며 여러 일화 등을 전하고 있다.
국내 유명 음악인들의 우정과 추억을 그린 에세이라서 그런지 매우 신선하다. 쎄시봉 공연장의 공연 못지않게 나름대로의 더 '그때 그 시절' 청춘의 객기와 예술가의 열정과 낭만들을 느껴보는 시간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쎄시봉(=c'est si bon)의 원뜻은 ‘기분이 좋다. 멋지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가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멋지게 만들어 주는 것을 보면 역시 인생을 즐기면서 돈도 벌면서 멋지게 사는 쎄시봉 시대의 멋진 우리 예술인들의 삶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도 하면서 교훈도 얻는 그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지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당시의 가수들이 불렀던 노래들을 들으면 그렇게 편하고 좋았던 시간들과 함께 하면서 남은 인생 후반부의 시간들도 더욱 더 멋지게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다짐도 해보았다. 좋은 노래와 함께 우정 어린 모습의 연륜들이 더욱 더 돋보이는 것 같아 매우 좋았다.
부모님 시대의 음악~ ga**1400 | 2011-07-07 | 추천: 0 |
쎄시봉시대는 부모님세대라고 하기 보다는 더 나아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더 맞는것 같다.
부모님께서 태어나실 때 이분들은 대학에 입학 하셨으니 말이다^^
나에겐 쎄시봉이란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쎄시봉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모야? 소시지 이름이야?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우연히 놀러와, 무릎팍도사 등등 각종 프로그램에 조영남 아저씨를 비롯해 많은 쎄시봉 가수들이 대거 나오시면서 그때부터 쎄시봉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쎄시봉시대의 노래를 듣고나서 노래가 너무 훌륭하고 멋있었기에 그 이후로 노래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난 개인적으로 이장희씨를 좋아한다.
무릎팍도사에서의 이장희씨는 정말 멋졌고, 존경스러웠다.
어쩜 그리 멋진 삶을 사시는지. 그런데도 전혀 늙어보이시지 않으셨고, 나보다도 젊어보이셨다.
그래서 나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나도 꼭 이장희씨처럼 멋진 삶을 살리라!
쎄시봉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조영남 씨가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쎄시봉의 대표 가수! 조영남.
이 분의 파란만장한 과거사는 뭇 흥미롭다.
그래서 이 책을 정말 순식간에 읽게 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쎄시봉의 홍일점 윤여정씨의 얘기도 정말 재미있었다.
윤여정씨와 조영남씨와의 이야기들..
슬프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졌고, 안타까웠다.
이 책은 뭐랄까 순식간에 사람을 빠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읽고 나서 엄마에게 책을 권했고, 지금 현재 엄마는 이 책을 ~ing 하는 중이다.
너무 재미있고, 또 흥미로웠던 책
쎄시봉 시대.
지금 이 책은 만나게 되서 정말 좋다^^
[서평] 쎄시봉 시대 - 왕들의 귀환 kh**r16 | 2011-07-06 | 추천: 0 |
C' est Si Bon = It's so good
1. 책 뜯어 먹기
중고등학교 시절 마이마이 카세트 플레이어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티브이보단 라디오 세대인 우리에겐 최고의 프로그램이였으니 내가 알기엔 청소년 열에 여덟은 애청자로 알고 있다. 중고등학교 축전 때 마다 울려 퍼진 웨딩케이크와 하얀 손수건 등의 명곡은 교정을 들뜨게 하였고 감성적인 분위기는 청중을 사로잡았다. 지금 딸아이에게 이 추억을 너스레 떤다면 비아냥과 세대차이를 운운하겠지만 시대의 차이일 뿐 내겐 소중한 추억이다.
사실 동문회에 참석하다 보면 참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사는 이야기, 가족이야기, 자식이야기에서 회사이야기까지. 그런데 이 대화들의 결말은 항상 지난 시절 추억으로 회귀하는 일종의 본능감을 지니고 있다. 30전까지만 하더라도 무교동과 종로 화신 백화점, YMCA 뒷골목 등에는 제법 음악 감상실이 많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 행세를 하고 음악 감상실에 도둑처럼 드나들며 저음의 디제이가 사연과 더불어 들려주는 마법의 음악에서 고상함 취하고 문화적 충격을 씻으려 애를 쓰던 이야기는 동문회의 도돌이표 안줏감으로 아무리 씹어도 단물이 난다.
지금 청소년들에겐 무척 생경하고도 낯선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6, 70년대 장발과 청바지, 그리고 통기타 하나를 들고 나타난 그들, 바로 이장희, 김민기, 양희은,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이다. 얼마 전 티브이를 통한 그들의 입담과 환상적인 무대는 대한민국 7080세대의 심장을 관통하는 왕들의 화려한 귀환이다. 민음인에서 발행한 [쎄시봉 시대]에서 보여준 이들의 40년 우정과 음악과 낭만은 팔랑이는 나뭇잎만 봐도 즐거웠던 우리 교복 세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대는 변한다. 60년대 말 윤복희 씨의 미니스커트는 충격이었다. 군사와 독재 정권에 길들어 봐야 할 것만 보여주고 들어야 할 것만 들려주던 시대에서 이와 같은 충격은 어르신들의 손가락질과 힐난의 대상이기도 했었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지금의 청소년 시대와 우리 시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아마도 우리 세대의 낭만이 '세시봉과 트윈폴리오'였다면 지금 세대의 낭만은 아마도 '빅뱅' 정도 되는 것 같다.
쎄시봉 2탄을 모의하면서 우리는 급격히, 자주 만나게 된다. 형주, 창식이, 세환이를 만나기 전부터 가슴이 뛰었고, 만나면 옛날 시절로 돌아가 즐겁기 그지없었다. 어른들은 나이 들어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너는 하나도 안 늙었어. 학교 다닐 때하고 똑같아.” 하는데,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누구 한 사람 변함이 없다. 창식이는 한결같이 한세상 다 산 도사의 폼으로 보살 같은 미소를 짓고, 형주는 한결같이 치밀한 계획을 짜고, 세환이는 한결같이 형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웃기는 얘기를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p.12
치열한 삶이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일까. [쎄시봉 시대]를 읽고 있으면 삶에 대한 간절함이 엿보인다. 누굴 밟고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40년 지기 우정의 끈끈한 모습은 우리가 본받을 만한 모습이다. 수더분한 조영남, 기이하지만 순수음악인으로 불리는 송창식, 엄친아 윤형주, 포크계의 꽃미남 김세환, 이들의 제각각 모습을 조합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세월이란 놈은 모를 둥글게 깎아가며 그들을 다시 하나의 모습으로 조각해냈다.
2. 끄트머리
[쎄시봉 시대]는 어찌 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음악사이자 추억의 보고(寶庫)이다. 살아 있는 주역에서 살아가는 팬들까지, 서로의 모습에서 지워져 가는 추억을 한치라도 더 체득하고 흠모(欽慕)하는 모습. 이 얼마나 간절하고 아름다운 일이던가. 이제 무뎌져 가는 감성은 추억을 애타게 찾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간절하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