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내가 근무하던 백마 부대가 월남에서 철수해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부대는 부대를 새로 짓게 되었다.
일산에다 야산을 깎고 군데 군데 콘세트 막사를 지어 입주를 했다. 참모장이 부대를 지휘하여 부대를 단장하고 사단장은 얼마 후에 오게 되었던 모양 이었다.
지휘부 막사 앞에 헬기착륙장이 있었는데 사단장이 오는 날 참모장이 병력을 동원하여 한 겨울에 부근 야산에서 떼를 떠다가 푸르게 만들었다. 덕분에 사단장이 공중에서 헬기를 타고 강림할 때 푸른 잔디밭에 볼 수 있었지만 며칠 후부터 잔디는 죽어서 붉게 되어 버렸다.
한 순간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병력과 장비를 동원해서 헛짓을 한 것이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 시절 군대란 그런 곳이었다.
그런 시절에 우리 부대에 재미 있는 선임 하사관이 있었다. 이 인간은 사병들에게 무슨 일을 시킬 때 반드시 항상 “대강 철저히 해.” 라고 했다. 나중에 와서 일을 잘 해 놓으면 “수고 했다. 대강 하지 그랬어?”라고 하고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철저히 하라고 그랬지?”하고 닦달을 했다.
2월 10일, 정운찬 총리가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받던 중,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총리님 혹시 영화 아바타 보셨나요”라는 질문을 하자, “네, 대강 집에서 봤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과연 군대도 대강 갔다오신 분 다운 답변이다.
나는 보수든 진보든 자기가 믿고 주장하는 논리에 따라서 철저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존중 하지만 대강 하는 사람은 경멸한다.
그래서 내가 40대 때,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분위기에 들떠서 운동을 하는 후배 신학생들에게 '평생 할 수 있는 자세로 운동을 하자'고 강조를 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는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어차피 하루 이틀 가다 망할 시스템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든 적든 자기 손으로 돈을 버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주제에 자본주의 문제점만 지적한다면 약자로서의 악다구니에 불과 할 수도 있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따르는 후배들에게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기 전에 자기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훈련을 하자고 강조를 했었다. 그래서 몇몇 후배들은 내 말대로 졸업 후에 리어카 행상을 하기도 하고 노동운동을 하기 위하여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하여 공장이나 회사를 다니기도 했다.
백기완 선생이 한 번은 “나는 한 번도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어……”라고 솔직한 자기 고백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백 선생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리 크게 존경하기는 어려운 이유이다. 그 분이 평생을 곤궁하게 살면서도 일신의 안녕을 돌보지 않고 민주화 통일 등 큰 문제에 매달려 나름대로 가치 있는 투쟁을 해 오신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자기 손으로 자기 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물론 역사 속에 혁명이나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자기 밥은커녕 가족의 생계도 돌보지 못하고 투쟁을 했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기 손으로 가족의 생존의 문제에 급급하면서도 대의를 추구하며 살아온 많은 이들을 알고 있고 감히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운동(Movement)이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염이 될 수 있는 즉 남도 나같이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아는 몇몇 특수 목회, 이를 테면 노숙자, 부랑아들 위한 목회를 하는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들의 신학적 경향 때문이라기 보다 개인적인 기질 때문이라고 보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경우는 바람직한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동은 별난 사람이 별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로 하여금 ‘아!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의 현실 참여를 뜻하는 앙가주망이라는 말이 있다.
1950년대 자유당 시절에 유명한 정치깡패 임화수가 앙가주망을 주장하는 문인단체의 행사장을 습격하면서 ‘뭐? 앵겨 주먹이라고?’ 하면서 회원들에게 주먹을 한 방씩 앵겨주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래서 남의 나라 말을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
문화계에서 ‘전위’를 뜻하는 아방가르드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강의석이 국군의 날 ‘군대 철폐’를 외치며 나체로 뛰는 퍼포먼스를 벌인 일 같은 것이다.
예수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좌판을 둘러엎거나 유대인의 최고명절인 유월절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는 퍼포먼스를 벌여서 기성종교인들을 아연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예술에서 아방가르드는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지만 종교에 있어서 아방가르드는 위험하다. 그래서 유태교의 아방가르드였던 예수는 십자가를 졌던 것이다.
예수 같이 살 것도 아니면서 함부로 아방가르드 행세를 하다가는 산에서 일찍 하산한 도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