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바람 앞의 촛불 신세입니다. 공단은 멈춰섰고, 남북대화는 끊겼습니다.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이제는 한반도 긴장 상황을 읽는 잣대로 변한 셈입니다. 폐쇄 위기에 몰린 개성공단을 살릴 방법은 무엇일까요. 개성공단 해법은 곧 한반도 평화 체제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함께 알아봅시다. 기획·편집 김영우 기자
개성공단 |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교류협력의 하나로 북측 지역인 개성시 봉동리 일대에 개발한 공업단지다. 개성공단 조성은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하여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남북교류협력의 새로운 장을 마련한 역사적인 사업이다. 2010년 9월 입주기업 생산액이 10억 달러를 돌파하였고, 2012년 1월에는 북측 근로자가 5만명을 돌파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가운데
개성공단 잠정폐쇄, 상당시간 지속 전망
개성공단이 우리측 체류인원 전원 철수로 잠정폐쇄 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북한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당분간 먼저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북한이 지난 10년간 건재했던 개성공단을 문제삼고 나온 이유가 북미대화 재개를 비롯해 한반도 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국면으로 끌고가기 위한 카드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한 대북 소식통은 지난 5일 “김정은이 개성공단에 조치를 취한 것은 미국과 협상을 위한 카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면서 “북한은 개성공단 문제를 큰 틀에서의 한반도 정세 아래에 있는 하위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과 김정일의 핵개발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 미국과 협상하려던 김정일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자 김정은은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헌법에 이를 명시하는가 하면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취하는 등 핵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노선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핵 카드를 극대화, 미국과의 협상을 추진하려던 전략 하에 개성공단을 걸고 넘어졌다고 이 소식통은 분석했다.
이런 의도는 북한의 공식 입장을 통해서도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5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개성공단의 운명은 남측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면서 공단 정상화를 위해서는 “우리에 대한 적대행위와 군사적 도발을 먼저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의 입장은 우리측의 개성공단 전원철수가 이뤄진 뒤 나온 북한의 사실상 첫 공식 반응이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2일 미국이 “개성공업지구사업을 파국에로 몰아넣은 실질적인 장본인, 진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군이 한미연합 독수리 연습 종료 시점을 전후로 비행훈련을 전면 중단하는 등 군사훈련 수준을 대폭 낮춘 것도 미국과의 추후 협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의 첫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 정부도 개성공단 정상화는 시급하지만 개성공단을 국면전환의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직간접적으로 드러난 이상 파격적인 양보를 해가면 서까지 정상화를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은 ‘잠정중단’ 내지는 ‘잠정폐쇄’란 현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개성공단에 머물던 7명의 잔류인원이 모두 무사히 철수한 만큼 숨을 좀 돌리면서 시간을 갖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면서 “여전히 유효한 우리 측의 대화 제의에 북한이 호응해 와야 하는데 그 부분은 좀 더 큰 그림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제성 기자, <연합뉴스> 2013-05-05, 기사
남북관계 따라 출렁이는 개성공단
개성공단이 멈춰섰습니다. 2003년 첫 삽을 뜬 후 10여년 만입니다. 위기의 원인은 북한입니다. 핵실험을 강행하고, 정전협정을 무력화하고,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5만명을 일방적으로 철수시켰습니다. 북한의 일방통행을 상대하는 우리 정부의 대응도 오락가락했습니다.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가 대화 제의로 돌아서는 등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 모두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남북관계 전체의 악화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남북 관계의 시계추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의 대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이지요.
개성공단 위기를 풀어갈 대화 재개가 절실합니다. 대화는 ‘개성공단’을 넘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등으로 나아가야합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공단의 문을 열었다 닫길 반복해서는 개성공단도, 한반도 평화체제의 미래도 낙관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개성공단 약사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시작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10월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 공단 건설을 협의하면서 물꼬를텄다. 이후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의 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위)가 공단 건설을 위한 토지 개발에 합의하고 이를 공식화했다.
공단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6월에 착공됐다. 공사 시작 1년 만인 2004년 6월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2만8000평의 부지가 조성됐고, 6개월 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된 첫 제품, ‘통일냄비’가 생산됐다. 이 제품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1000세트가 1시간도 안 돼 매진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개성공단은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북한은 공단 조성을 위해 유사시 남한에 대한 기습공격 임무를 맡은 2군단 등 군부대와 주요 기지를 북쪽으로 10㎞ 이동 배치하는 등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발전을 거듭해온 개성공단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2008년 3월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이 업무보고에서 “북핵 해결 없이 개성공단 확대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남북관계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해 11월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남쪽 인원을 최대 880명으로 제한하고 남북 통행 시간대와 통행 허용 인원을 축소하는 등 이른바 ‘12·1 조치’를 시행했다. 북한은 2009년 3월에도 키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훈련 기간에 3차례 육로 통행을 차단했다. 같은해 9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하면서 ‘12·1 조치’는 해제됐지만, 남한은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개성공단 신규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5·24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남북 교류협력 관련 군사적 보장 조치의 전면 철회를 발표하기로 했다.
남북 ‘신경질’에 10살 개성공단이 죽는다
“오늘 북한은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해 공식적으로 제의한 당국 간 실무회담을 거부했습니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해 통행을 차단하고, 근로자들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킴으로써 지난 10년 동안 운영돼 온 개성공단 가동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 북한의 부당한 조치로 개성공단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는바, 정부는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해 잔류 인원 전원을 귀환시키는 불가피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지난 4월26일 발표한 성명➊의 내용은 단호했다. 앞서 두 차례 대화 제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북쪽이 개성공단 잠정폐쇄 조치를 발표한 지 사흘 뒤인 지난 4월11일 내놓은 성명에서 류장관은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하며, 북쪽이 제기하기를 원하는 사안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를 바란다”고 에둘러 말했다. 4월25일엔 통일부 대변인 명의로 내놓은 성명에서 “개성공단 근무자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책임 있는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개최를 공식 제의한다”고 밝혔다.
새겨보면, 첫 번째 대화 제의는 ‘모호’했다. ‘대화의 장’으로 나오란 말은, ‘대화 제의’이기도 했지만 그간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두 번째 대화 제의는 더 구체적이었지만, 대신 ‘조건’이 붙어 있었다. “북한이 이번에 우리 쪽이 제의하는 당국 간 회담마저 거부한다면, 우리로서는 중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는 ‘경고’였다. 정부는 ‘4월26일 오전까지 입장을 회신해달라’며 시한까지 못박았다.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북쪽의 반응은 이날 오후 2시15분께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전달됐다.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 형태로 발표한 ‘회신’에서 북쪽은 사뭇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개성공단을 ‘6·15 통일 시대의 고귀한 전취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종말의 시간을 앞두고 있다’고 표현했다. “(지금까지는) 남쪽 인원들에 대한 강제추방과 개성공업지구 완전 폐쇄와 같은 중대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과 인내력은 한계에 부닥치게 됐다”고도 썼다. (…)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남과 북 양쪽 모두 개성공단 폐쇄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남쪽의 대화 제의에 대한 북쪽의 반응이나, 북의 대화 거부에 대한 남쪽의 반응은 한마디로 서로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 ‘신경질’ 속에, 10년 세월 ‘옥동자’로 키워온 개성공단이 뿌리부터 말라가고 있다. 이미 개성공단에 진출한 123개 기업 대부분이 지난 4월8일 북쪽이 잠정폐쇄 조치를 내린 이후 지금까지 적게는 몇억원에서 많게는 50억원 이상씩 손실이 쌓이고 있다. (…) 그럼에도 대부분의 입주기업 대표자들은 “잠정폐쇄 조치가 해제되고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면 장기적으로 개성공단에서 사업을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의 ‘가격(임금) 경쟁력’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생산 당일 반출입이 가능한데다, 통관·물류 비용도 적다. (…) 그래서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은 “이번 기회에 개성공단을 외풍에 휘둘리지 않은 경제특구화하는 방안을 놓고 남북이 머리를 맞대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 정기섭 ‘에스엔지’ 대표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아예 남과 북 당국을 향해 이렇게 호소했다. “정부는 북 당국이 정치·안보 상황에 따라 언제든 개성공단을 어렵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북 당국의 일방적 조치에 생사를 맡겨야 하는 상황을 끊어야 한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화합과 공영의 마중물➋이다. 북쪽과 평화 공존의 토대를 마련해달라. 북쪽에도 호소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남쪽 당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삼지 마시라. 압박 효과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남과 북의 거친 공방 속에 오는 6월 말로 착공 10돌을 맞는 개성공단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개성공단 폐쇄의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고 서로를 향해 삿대질만 해대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다. 막힌 길을 어서 뚫지 않으면, 공단은 스스로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을 터다. 시간이 많지 않다. (…)
개성공단 파탄땐 천문학적 피해
개성공단을 둘러싼 남북의 대립이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남도 북도 공단 폐쇄를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 공단 폐쇄가 몰고 올 여파가 얼마나 클지 남과 북 공히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먼저 우려되는 것은 우리 기업들의 피해다. 정부는 피해액을 1조원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정부·공기업의 조성 투자금(4000억원), 기업의 설비투자(6000억~1조원), 공단에 묶여 있는 원·부자재와 완제품(5000억원), 기업의 매출손실(1조2000억원), 협력업체 등의 추가 피해(3조원) 등을 모두 합치면 최대 6조원 정도로 불어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북한의 저렴하고 우수한 노동력을 이용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우리 산업을 업그레이드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돕자는 공단 설립의 큰 취지도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공단 폐쇄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한층 높일 수 있다. 북한이 개성-문산-서울로 이어지는 6·25전쟁 당시 남침 경로에 이전처럼 북한군 2군단을 전진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개성공단이 설립된 직후인 2004년 미 2사단의 1개 여단이 이라크로 차출된 뒤 현재는 한국군이 단독으로 방위를 맡고 있다. 북한의 피해도 만만찮다. 당장 현지에 진출한 5만3000여 직원들의 임금(1년 9000만달러)이 끊기게 된다. 이는 남한과 접경지대인 개성에 공장 폐쇄로 당장 생계가 곤란해지는 20만~30만명의 주민이 생겨난다는 의미다. 이들의 존재는 강력한 통제사회인 북한에도 적잖은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북한은 2008년 7월 중단된 금강산 관광 사업 때는 현대아산을 쫓아낸 뒤 직접 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단은 다르다. 한국전력이 개성공단에 전력 공급을 중단하면 현지 생산라인은 고철 덩이로 변한다. 또 북한은 믿을 수 없는 투자처라는 인식을 키워 현재 그들이 추진하고 있는 황금평·위화도, 나진·선봉 등 경제특구에 투자를 검토하던 중국 등 외국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 민족 전체로 보면, 개성공단 폐쇄는 지난 10여년 동안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오던 남북 경협의 전면 중단을 뜻한다. 정부가 취한 5·24 조처 이후 전체 남북 교역에서 차지하는 개성공단의 비율은 2009년 56.0%에서 지난해 99%대로 늘었다. 또 남북을 이어주던 마지막 안전판이던 개성공단의 폐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현실화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다행히 남북은 “개성공단의 운영 중단은 민족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통일부 11일 성명), “(공단이 폐쇄되면) 역사와 민족 앞에 두고두고 저주와 규탄을 받게 될 것”(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27일 대변인 대답)이란 입장 표명을 통해 공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
길윤형 기자, <한겨레> 2013-04-28, 기사
➊성명(聲明) ‘소리 성, 밝을 명’을 씁니다. 어떤 일에 대한 자기의 입장이나 견해 또는 방침 따위를 공개적으로 발표함을 뜻합니다.
➋마중물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하여 위에서 붓는 물을 뜻합니다.
더 깊게 흔들리는 분단체제와 포용정책 2.0
개성공단에서 남쪽 직원들이 거의 모두 철수했다. 개성공단이 완전히 폐쇄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남북한 관계는 이제 국민의 정부 훨씬 이전으로 돌아간 듯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동요하던 분단체제의 재안정화 또는 분단체제 안정기➊�로의 후퇴가 아니다. 오히려 개성공단 철수는 분단체제가 더 깊게 동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분단체제의 동요는 남북 사이의 적대적 상호의존성이 약화됨을 뜻하는데, 그것은 비적대적 상호의존과 상호의존 없는 적대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전자의 가능성, 그러니까 적대를 약화시키고 평화로운 상호의존 관계를 만들어가는 흐름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남북한 교류협력의 강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햇볕정책과 남북 정상회담에서 찾을 수 있다.
후자의 경향도 나타난다. 분단체제가 안정적이던 시기에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한 위협을 자기 체제 안정의 자원으로 동원했고 그렇기 때문에 진짜 위기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지만, 분단체제가 흔들리면서 높은 수준의 적대가 지속되는 것도 가능해진다. 5·24조치와 연평도 포격 같은 이명박 정부 시기의 사건들 그리고 3차 북핵 실험 이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이런 흐름이다. 한-미 ‘독수리 연습’이 실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B-52 전폭기에 이어 B-2 전략폭격기가 남한 상공을 비행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했다.
이런 과정은 분단체제의 동요 속에서 평화와 긴장(또는 위기) 사이의 진폭이 커졌을 뿐 아니라 대북정책의 프레임 자체도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긴장 국면에서 이루어진 개성공단 철수 조처는 바로 그런 변동 상황을 예시한다. 이제는 햇볕정책에 내포된 이른바 기능주의 모델, 즉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회피하며 남북한 교류협력과 경제적 상호의존을 강화하는 것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가장 유효한 길이라는 모델이 유효성을 잃게 된 것이다. 이 말은 그런 시도가 이전에도 가능성과 적합성을 갖지 않았다거나 이제는 추진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햇볕정책의 추진과 분단체제 극복 사이의 내적 연계가 이제는 보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낙청 명예교수는 햇볕정책을 포용정책 1.0이라 명명하면서 그것을 포용정책 2.0으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 핵심 내용은 남북 교류와 협상에서 시민 참여의 대폭적인 확장과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 수립 같은 것이다. 이런 포용정책 2.0은 애초에는 포용정책 1.0의 성공 그리고 2012년 총·대선에서의 야권승리를 전제로 제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포용정책 2.0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실현할 정치적 토대가 미비하고 포용정책 1.0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인 개성공단마저 유실되고 있는 지금 더욱 절실한 것이 되고 있다. 분단체제의 동요가 더욱 심해지고 위기가 고조될수록 평화에 의한 비핵화를 정면에서 추구하는 정책이 요청되는데, 그것이 6자회담 또는 북-미 회담에만 일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과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이라는 제도적 보증을 향한 실천 사이의 선순환➋�적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평화를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다. 거기엔 확실히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통찰이 들어있다. 아파치 헬기를 ‘사서’ 평화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면, 필요한 것은 대화와 포용 그리고 화해를 향한 대담한 정치적 결단이다. 그리고 현 정부에 의해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아니 그것이 가능할 때조차도 시민 참여의 길을 더욱 열심히 모색할 때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04-30, 칼럼
개성공단에서 남쪽 직원들이 거의 모두 철수했다. 개성공단이 완전히 폐쇄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남북한 관계는 이제 국민의 정부 훨씬 이전으로 돌아간 듯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동요하던 분단체제의 재안정화 또는 분단체제 안정기➊�로의 후퇴가 아니다. 오히려 개성공단 철수는 분단체제가 더 깊게 동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분단체제의 동요는 남북 사이의 적대적 상호의존성이 약화됨을 뜻하는데, 그것은 비적대적 상호의존과 상호의존 없는 적대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전자의 가능성, 그러니까 적대를 약화시키고 평화로운 상호의존 관계를 만들어가는 흐름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남북한 교류협력의 강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햇볕정책과 남북 정상회담에서 찾을 수 있다.
후자의 경향도 나타난다. 분단체제가 안정적이던 시기에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한 위협을 자기 체제 안정의 자원으로 동원했고 그렇기 때문에 진짜 위기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지만, 분단체제가 흔들리면서 높은 수준의 적대가 지속되는 것도 가능해진다. 5·24조치와 연평도 포격 같은 이명박 정부 시기의 사건들 그리고 3차 북핵 실험 이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이런 흐름이다. 한-미 ‘독수리 연습’이 실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B-52 전폭기에 이어 B-2 전략폭격기가 남한 상공을 비행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했다.
이런 과정은 분단체제의 동요 속에서 평화와 긴장(또는 위기) 사이의 진폭이 커졌을 뿐 아니라 대북정책의 프레임 자체도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긴장 국면에서 이루어진 개성공단 철수 조처는 바로 그런 변동 상황을 예시한다. 이제는 햇볕정책에 내포된 이른바 기능주의 모델, 즉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회피하며 남북한 교류협력과 경제적 상호의존을 강화하는 것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가장 유효한 길이라는 모델이 유효성을 잃게 된 것이다. 이 말은 그런 시도가 이전에도 가능성과 적합성을 갖지 않았다거나 이제는 추진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햇볕정책의 추진과 분단체제 극복 사이의 내적 연계가 이제는 보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낙청 명예교수는 햇볕정책을 포용정책 1.0이라 명명하면서 그것을 포용정책 2.0으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 핵심 내용은 남북 교류와 협상에서 시민 참여의 대폭적인 확장과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 수립 같은 것이다. 이런 포용정책 2.0은 애초에는 포용정책 1.0의 성공 그리고 2012년 총·대선에서의 야권승리를 전제로 제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포용정책 2.0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실현할 정치적 토대가 미비하고 포용정책 1.0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인 개성공단마저 유실되고 있는 지금 더욱 절실한 것이 되고 있다. 분단체제의 동요가 더욱 심해지고 위기가 고조될수록 평화에 의한 비핵화를 정면에서 추구하는 정책이 요청되는데, 그것이 6자회담 또는 북-미 회담에만 일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과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이라는 제도적 보증을 향한 실천 사이의 선순환➋�적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평화를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다. 거기엔 확실히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통찰이 들어있다. 아파치 헬기를 ‘사서’ 평화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면, 필요한 것은 대화와 포용 그리고 화해를 향한 대담한 정치적 결단이다. 그리고 현 정부에 의해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아니 그것이 가능할 때조차도 시민 참여의 길을 더욱 열심히 모색할 때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04-30, 칼럼
(…) “최전방 포병부대들은 일제히 대비태세를 갖추고 목표물을 겨누었다. 북한군이 무력으로 대응하면 즉각 개성지역의 인민군막사들을 포격하기로 결정돼 있었다. 당시 만약 북한이 무력으로 대응했다면 유엔사는 개성을 탈환하고, 연백평야 깊숙이 진출할 예정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에프(F)4와 에프111, 한국공군의 에프5 전폭기가 일제히 출격하여 한반도 남쪽 하늘을 선회했다. 괌에서 출발한 비(B)52 중폭격기들은 동해 상공을 북상하여 원산 앞바다까지 갔다가 유엔군 경비병들이 공동경비구역에 투입되는 순간 기수를 90도로 꺾어 서쪽으로 향했다. 여차하면 평양으로 날아갈 태세였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일어난 ‘북한군 도끼만행 사건’ 뒤 펼쳐진 상황이다. 그 37년 뒤인 2013년에도 미국은 전략 폭격기 비52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켰다. 에프4, 에프5 대신 이번엔 에프14, 에프15들이 출격했다. 그들도 여차하면 평양을 때릴 태세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1976년 8월21일, 공동경비구역 내 문제의 미루나무를 잘라내기 위해 미군은 대규모 무력을 그 일대에 배치했다. 그때 중무장한 병력을 태운 유엔사 헬리콥터 한 대가 실수로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북한군이 헬기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남쪽의 최전방 포들이 일제히 그쪽을 겨냥했다. 다행히 헬기는 꼬리날개 부분만 파손되고 추락하진 않았다.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저서 <분단의 히스테리>(사진)에서 “끔찍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만일 그때 헬기가 추락하고 미군 병사 다수가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면, 미국은 긴장한 채 그 장면을 주시하던 세계를 향해 뭔가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대재앙이 일어났을 것이다. 위기상황 때마다 결국 아무 일 없을 것이라 장담까진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초긴장 상태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우발적 사태 가능성 때문이다.
기밀해제된 미국 외교문서들을 토대로 쓴 <분단의 히스테리>는 우리가 그 아찔한 ‘평화’ 위에 떠 있는 가랑잎배 같은 존재임을 다시 일깨운다. 홍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조지 오웰의 <1984>를 또 읽었단다.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세개의 초국가로 삼분된 그 소설 속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전면전이 아니라 변방을 묵사발 내는 국지전이다. 누구도 결정적인 승리를 기약할 수 없고 바라지도 않는다. 전쟁 상태의 적대감과 공포가 유지될 뿐이다. 빅브러더는 이를 활용해 사람들을 철저히 통제한다. 그리하여 “전쟁은 평화, 증오는 사랑”의 세뇌와 역사기록 조작이 일상화된다. 초국가와 변방의 엘리트들이 공모한 이런 체제 유지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책은 70년대 초부터 진행돼 온, 위기와 일시적 안정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히스테리컬한 한반도 분단체제의 <1984>적 ‘내재화’의 제1차 순환과정을 미·중을 중심으로 한 ‘전지구적 차원’, 남북관계라는 ‘한반도적 차원’, 그리고 남북 내부에 초점을 맞춘‘분단국가 내부적 차원’을 교차시키면서 살핀다. ‘분단구조 해체없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이 책 주제다.
한승동 기자, <한겨레> 2013-05-05, 칼럼
➊안정기(安定期) ‘편안 안, 정할 정, 기약할 기’를 씁니다.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기간을 뜻합니다.
➋선순환(善循環) ‘착할 선, 돌다 순, 고리 환’을 씁니다. 순환이 잘됨, 또는 좋은 현상이 끊임없이 되풀이됨을 뜻합니다.
경제협력만으론 군사적 긴장완화 이끌 수 없다
“‘경제-안보 교환’ 시대에서 ‘안보-안보 교환’ 시대로.” 개성공단 회생의 해법을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의 담론을 빌려 정리한 말이다. 조 책임연구위원은 저서 <뉴한반도 비전-비핵 평화와 통일의 길>(백산서당, 2012) 등에서 남북관계의 중심축이 이미 ‘경제로 평화를 사는’ 경제-안보 교환 시기에서, 남북한과 미국 등이 안보 문제에서 서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안보-안보 교환 시대로 옮아왔다고 강조해왔다.
조 책임연구위원의 ‘안보-안보 교환론’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서해평화지대론 등 남북간 경협을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담론을 구축해왔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평화경제론’이 생명력을 다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평화경제론’은 남북한의 경제협력이 군사적 긴장완화를 이끌고, 마침내 남북한 공동번영에 이른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경제협력만으로 군사적 긴장완화를 이끌 수는 없다는 것이 ‘안보-안보 교환론’의 요지다. 오히려 군사적 긴장완화가 선행돼야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도 원활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 책임연구위원이 ‘경제-안보 교환론’이라고 평가한 ‘평화경제론’도 두 민주정부 시절에는 그 자체로서 완결적인 것이었다. 6·15 공동선언 제2항, 즉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중심으로 통일을 지향’해나가기로 한 대목이 일종의 ‘안보-안보 교환론’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연합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 등 안보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 물론 목적지인 남북연합 속 군사적 긴장완화는 먼 미래의 일이었던 반면,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은 현재진행형으로 추진해왔다. 더욱이 두 민주정부는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어려운 군사안보 문제보다는 쉬운 경제 문제를 주로 활용했다. 평화경제론이 안보 문제보다 경제 문제에 치중했다는 비판은 일정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평화경제론이 이렇게 약화된 데에는 이명박 정부의 ‘악역’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6·15 공동선언 부정, 금강산 관광 중단, 5·24 조처를 통한 개성공단 이외의 경협 중단 등 남북관계의 숨통을 차츰 조여가면서 개성공단은 ‘외로운 섬’으로 남게 됐다. (…) 조성렬 책임연구위원의 ‘안보-안보 교환론’은, 이런 남북관계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안보 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의 큰 틀을 다시 짜야 할 때임을 강조한 담론으로 읽힌다. 북한이 우려하는 ‘체제보장 문제’와 남한과 미국이 관건적 사안이라고 보는 ‘비핵화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정면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 ‘안보-안보 교환’이 다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북한이 지닌 ‘핵능력’에 대한 협상 당사자들의 재평가가 합의점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핵에 대한 주관적 ‘평가액’ 차이가 워낙 커서 합의점 도달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 이에 대해 홍민 동국대 ‘한국사회과학연구(SSK) 분단-탈분단 행위자 네트워크 연구팀’ 연구교수는 26일 열린 에스에스케이연구팀 통합 심포지엄에서 “북한은 핵을 단순한 무기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핵은 “수난 받는 민족을 상상하고 호명하는 일종의 정치적 제의(祭儀)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의 통치에서 핵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 연구위원도 이렇게 한반도 내에서 핵에 대한 가치 평가가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임을 강조하면서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잠재적 핵보유국가인 일본의 핵능력도 통제하는 장치”, 즉 ‘동북아비핵지대 구상’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 결국 현재 개성공단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안보 교환’을 무력화시키고, ‘안보-안보 교환’도 진전시키지 못한 데 대한 필연적인 결과다. 개성공단의 해법은 따라서 개성공단 자체가 아니라, 새 지도에 해당하는 새로운 ‘안보-안보 교환 지점’을 찾아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한겨레> 2013-04-30. 기사
개성공단을 살릴 수 있는 묘책은?
개성공단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한 대북포용정책에서 출발했습니다. 개성공단이 위기에 처하면서 두 민주정부의 ‘평화경제론’도 이제는 생명을 다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리는 까닭입니다.
대북포용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은 아닙니다. 남북 관계와 한반도 주변 상황이 예전과는 다르게 변한 만큼 그에 맞는 새로운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지요.
글쓴이는 새로운 대북정책의 해법으로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주장을 점검합니다. 남측의 경제적 지원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사는 ‘경제-안보’ 교환시대에서 이제는 군사적 긴장을 줄여야 경제적 협력도 가능한 ‘안보-안보’ 교환시대로 옮겨 왔다는 것이 조성렬 책임위원의 주장입니다.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북한의 ‘안보’와 한반도 비핵화를 바라는 한국과 미국의 ‘안보’가 서로 절충점을 찾을 때 개성공단 해법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란 전망입니다.
“최근의 북한은 기존의 북한이 아닌 듯하다”
‘북한은 통일을 여전히 중심 화두로 삼고 있는가?’
올해 남북 간 ‘전쟁 위기’와 최근 ‘개성공단 위기’ 국면에서 북한의 성명 등을 꼼꼼히 살펴본 정현곤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고 답한다. 오랫동안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에 몸담아온 정 위원장이 보기에 최근의 북한은 ‘기존의 북한’이 아닌 듯하다. 이제까지의 북한이 통일담론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면, 최근에는 ‘분단으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가 언뜻언뜻 엿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얘기하면서도, 미국에 대해 핵 군축을 주장하는 부분이 그렇다. 핵 군축은 핵을 줄이는 것이지 핵을 완전히 없애는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 여기에서는 ‘통일’보다는 개별 국가의 ‘생존’ 논리가 강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정 위원장은 요즘 북한이 ‘조건부 비핵화’와 ‘핵 군축’을 모두 얘기하는 것은 북한이 ‘통일담론 유지’와 ‘독립국가 담론으로의 전환’의 갈림길에 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이런 ‘느낌’이 정확하다면, 박근혜 정부가 남북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통일담론’ 전체가 효용성을 잃을 가능성도 높음을 뜻한다. 무엇보다 남한에서는 이미 상당 부분 통일무용론이 진행되고 있다.
갤럽의 연도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2월 조사에서 남한 주민 20%가 ‘통일보다는 현재대로가 낫다’고 답했다. 2001년에 8%에 달했던 통일무용론이 2011년 12월 24%에 이르는 등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홍민 동국대 한국사회과학연구(SSK) 연구교수는 특히 젊은층의 통일무관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홍 교수는 26일 에스에스케이연구팀 통합 심포지엄에서 “현재 남한 젊은이들의 경우 광포하고 잔인한 신자유주의적 삶에 포위되어 살아야 한다”며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통일보다 정규직이 소원이 된 나라”라고 지적했다. (…)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한겨레> 2013-04-30,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