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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三十門의 十行答
(1) 歡喜行
가. 菩薩의 十種力持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持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佛力持와 法力持와 衆生力持와 業力持와 行力持와 願力持와 境界力持와 時力持와 善力持와 智力持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於一切法에 得無上自在力持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힘으로 유지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부처님의 힘으로 유지하며, 법의 힘으로 유지하며, 중생의 힘으로 유지하며, 업(業)의 힘으로 유지하며, 행(行)의 힘으로 유지하느니라.
서원(誓願)의 힘으로 유지하며, 경계의 힘으로 유지하며, 시간의 힘으로 유지하며, 착한 힘으로 유지하며, 지혜의 힘으로 유지함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온갖 법에 위없는 자재한 힘으로 유지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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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문(三十門)의 십행답(十行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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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행(歡喜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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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력지(十種力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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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장구한 세월 동안 해오셨다. 54권째 이세간품을 공부하는 중이고 여기서부터는 십신, 십주가 끝나고 십행에 들어간다.
십주 제목을 다 외우실 것이다. 한번 짚고 넘어가겠다.
발심주(초발심주), 치지주, 수행주, 생귀주, 구족방편주, 정심주, 불퇴주, 동진주, 법왕자주, 관정주다.
십행은 또 무엇인가?
환희행, 요익행, 무위역행, 무굴요행, 이치란행, 선현행, 무착행, 난득행, 선법행, 진실행이다.
십행의 마지막이 진실행이다.
어제 저녁 9시 반쯤에 제자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사오십 분 금강경에 대해 토론을 했다.
“스님, 진짜에 처해 있는 것을 불변이라 하고, 개여에 불이라고, 이렇게 따로따로 해석이 되어 있는데 어떻습니까?”
“그런 것은 아니다. 진여라고 하는 것은 한 단어다. 진여라는 것은 여여라는 말하고 똑같은 말이고, 다른 말로는 진공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말로는 진실이라고 한다.”
이렇게 딱 잡아주었다.
불변 변하지 않는다, 불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도 똑같은 말이다. 문장구조상 강조를 하기 위해서 잡아째서 표현했을 뿐이다.
변이하지 않는다면 끝난다.
‘불변한다’는 말이나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똑같은 말인데, 문장상 구분해놓은 것은 조금 더 뜻을 강조해서 우리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테크닉이라고 보면 된다.
제 십행의 마지막이 진실행인데 이것이 바로 진여행이다. 진여행의 그림자, 냄새가 나는 것은 아까 동진주에서 진(眞)자가 있었다. 제8회향에 가면 진여상회향의 진여가 있다.
동진, 진여, 구래부동명위불, 십지에 가면 부동지, 부동이라는 말이나 같은 뜻이다. 진짜는 움직이지 않는다. 허공은 안 움직인다. 허공 외에는 진짜가 없다. 허공보다 더 진짜는 진공이다. 우리 어른 스님 표현대로 ‘근사하지요?’ 진공(眞空) 근사하다. 진여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여실이라고 한다. 여실, 진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신론 서문에 보면 여실수행자(如實修行者) ‘진실하게 수행하는 사람’ 이렇게 나온다.
‘진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누구냐?’
발심의 세 종류가 있다. 어느 정도 신해행증으로 간다.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 이것은 범부의 발심이다.
해행발심(解行發心)은 상사발심(相似發心)이라고 해서 삼현위의 십주 십행 십회향 보살들의 발심이다.
십지보살의 발심은 진발심, 증발심(證發心)이라고 한다.
오온이 개공한 것을 아는 것이다.
신해행증의 증발심, 십지보살부터는 진짜 수행이라고 해서 그것을 여실수행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십행, 십주 이렇게 되어 있지만 그 그림자를 보면, 이름만 들어도 ‘아, 바라밀행’ 한다.
‘화엄경에서 주장하는 수행이 뭡니까?’
‘보현행원입니다.’
‘보현행원의 바탕은 뭡니까?’
‘십바라밀과 사섭법입니다.’
‘어디에 나옵니까?’
‘십지품 초두에부터 나옵니다.’
십바라밀과 사섭법이 일바라밀, 일바라밀, 일바라밀이 각각 십지의 한 수행처를 깨물고 있다.
환희지에서는 보시바라밀을 주바라밀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여타 아홉 바라밀을 겸수하여 닦으면서 보시섭과 애어섭을 겸행한다.
자비희사 이런 것도 그렇고 보시섭 이행섭 애어섭 동사섭도 그렇다. 그런데 동사같은 것은 환희지에서는 조금 불가능한가 보다. 남하고 같이 어울려서 거지소굴에서도 살고 이런 것 말이다. 그런 것은 조금 경지가 올라간 뒤쪽에서 가능하다.
그러면 일단 환희지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말이나 곱게 하고 남을 기뻐하고 보시나 잘 챙겨주고 이것이 초보자의 단계다.
그다음 선정 삼매 닦는 것은 저 뒤의 이야기다.
그런 것이 겹치는 중에 지금은 세 번째 단계다.
십신은 세주묘엄품 할 때도 뭉쳐서 십신을 대표하는 보살이 누구였는가? 보현보살과 동명 보(普)자 돌림보살이었다.
발심주를 포함하는 십주로 넘어갈 때는 누가 나왔는가?
이명보살이 있었다.
해월광대명(海月光大明菩薩)보살이 초발심주다.
그다음에 치지주로 넘어가면 집금강신 신중신이 나온다.
그렇게 배대를 해놓았다.
세주묘엄품은 그렇게 했다치고, 입법계품에 십신 선지식이 있다, 누구인가? 문수보살이다.
그러면 입법계품에 발심주는 누구겠는가?
덕운 해운 선주승 이렇게 나간다.
지금 우리는 화엄경을 다 보았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입법계품 마지막에 쭈욱 가서 미륵, 문수, 보현, 이 세분이 마지막에 매조지를 한다.
그러니까 입법계품 53선지식도 보살정신으로 해놨기 때문에 보살이 세 단계로 나눠진다.
제일 앞에 초보자 단계, 십신단계에서는 무조건 문수의 근본지를 의지한다.
중간에 힘 풀리고 반환점을 돌아올 때까지 ‘내가 힘이 풀려서 더이상 못가겠다’ 화성유품 같은 거 있잖은가.
‘더이상 가면 죽을 것 같다’ 이때 누가 나타나는가?
관세음보살, 정취보살이 나와서 점진적으로 ‘조금만 더해라. 반까지 왔잖아, 이제 조금만 더 뛰면 돼야’ 그렇게 관세음보살, 정취보살의 격려를 한번 받고 다시 ‘관자재존여정취( 觀自在尊與正趣) 대천안주주지신(大天安住主地神)’ 천신이니까 하늘의 지혜, 땅이니까 자비, 지혜와 자비를 다시 체득해서 십지법문으로 바산바연저로 넘어간다.
바산바연저주야신, 바산바연저(婆珊婆演底)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춘생(春生)이다. 봄이 돋아난다.
십지 초지가 바산바연저다.
십회향 마지막에 마무리 짓는 것이 안주지신, 땅이 모든 걸 다 길러내잖는가.
그렇게 입법계품이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에 선재동자가 만나는 등각 선지식 처음은 마야부인이다. 등각, 부처님을 탄생시키니까 부처님의 어머니가 등장해야 된다. 그래서 마야부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덕이 완전히 마무리 되어야 하니까 덕생동작 유덕동녀가 등각의 마지막으로 등장해서 매조지를 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세 분 남은 분들이 미륵, 문수, 보현이다. 이들을 만나서 점안한다.
미륵한테 마정수기를 받아서 자비심을 다 받고, 다시 문수한테 마정수기를 받고 지혜를 품수 받는다. 마지막에 금강도량에 가서 보현보살에게 마정수기를 받고 드디어 비로자나와 동급이 되어 버렸다.
문수도 필요 없다. 보현도 필요 없다. 바로자나와 동급이 돼버렸다. 선재보살이 드디어 마지막에 선재불이 돼버렸다.
입법계품도 제일 앞에는 십신은 문수보살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이 나온다.
십신을 얘기하다가 이야기가 어긋났다.
저 앞 세주묘엄품에서는 십신은 누구였는가?
보현보살이었다.
입법계품에서는 십신을 문수보살로 잡아놓았다.
왜 그러면 문수, 보현이 중요하냐?
화엄경에서는 삼성원융(三聖圓融)이라고 한다.
우리가 가시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것, 생각하고 말로 논리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문수, 보현을 통해서 설명한다. 이것을 보살법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것은 비로자나에 뭉쳐서 법신이 청정한 허공처럼 볼 수 없는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아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하는 것이다.
법신의 입장에서 보면 비로자나이고, 나타나는 입장에서 보면 문수, 보현이라고 한다.
원리적인 입장에서는 보현, 지혜적인 입장에서는 문수 그렇게 이야기한다.
또 원리를 가지고 실천을 하니까 행이라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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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력지(有十種力持)하니 :열 가지 힘이 유지함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인가? 열 가지 힘이라는 것도 부처님을 상징한다.
소위불력지(所謂佛力持)와 : 이른바 부처님의 힘으로 유지함이며
법력지(法力持)와 :법의 힘으로 유지하며
중생력지(衆生力持)와 :중생의 힘으로 유지하며
업력지(業力持)와 :업의 힘, 업력으로 유지되고
행력지(行力持)와 :행력, 행하는 힘으로 유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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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력지(願力持)와 :원력으로 힘으로 유지하며
경계력지(境界力持)와 :경계의 힘으로 유지하며
시력지(時力持)와 :시간의 힘, 시력으로 유지되고
선력지(善力持)와 : 선력, 착한 힘으로 유지하고
지력지(智力持)가 : 지혜의 힘, 지력으로 유지하는 것이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다.
저도 그 힘이 있다. 법력도 없고 재력도 없고 학력도 없고 딱 저는 한 가지 힘이 있는데 어른스님이 ‘니 범어사에 와서 얻어먹은 것 많다 아이가. 울력이다’ 그래서 저에게는 울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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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보살(若諸菩薩)이 :약제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어일체법(則於一切法)에 : 즉어일체법에
득무상자재력지(得無上自在力持)니라 : 자재한 힘으로 유지함을 얻느니라.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四
離世間品 第三十八之二
나. 菩薩의 十種大欣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大欣慰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諸菩薩이 發如是心호대 盡未來世토록 所有諸佛이 出興于世어든 我當皆得隨逐承事하야 令生歡喜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彼諸如來가 出興于世어든 我當悉以無上供具로 恭敬供養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於諸佛所에 興供養時에 彼諸如來가 必示誨我法하리니 我悉以深心으로 恭敬聽受하고 如說修行하야 於菩薩地에 必得已生現生當生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當於不可說不可說劫에 行菩薩行하야 常與一切諸佛菩薩로 而得共俱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於往昔에 未發無上大菩提心일새 有諸怖畏하니 所謂不活畏와 惡名畏와 死畏와 墮惡道畏와 大衆威德畏라 自一發心으로 悉皆遠離하야 不驚不恐하며 不畏不懼하며 不怯不怖하야 一切衆魔와 及諸外道의 所不能壞라하야 如是思惟호대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當令一切衆生으로 成無上菩提하고 成菩提已하야는 我當於彼佛所에 修菩薩行호대 盡其形壽토록 以大信心으로 興所應供佛諸供養具하야 而爲供養하며 及涅槃後에 各起無量塔하야 供養舍利하며 及受持守護所有遺法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又作是念호대 十方所有一切世界를 我當悉以無上莊嚴으로 而莊嚴之호대 皆令具足種種奇妙하야 平等淸淨하고 復以種種大神通力으로 住持震動하며 光明照耀하야 普使周徧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當斷一切衆生疑惑하며 淨一切衆生欲樂하며 啓一切衆生心意하며 滅一切衆生煩惱하며 閉一切衆生惡道門하며 開一切衆生善趣門하며 破一切衆生黑暗하며 與一切衆生光明하며 令一切衆生으로 離衆魔業하며 使一切衆生으로 至安隱處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諸佛如來가 如優曇華를 難可値遇하야 於無量劫에 莫能一見이니 我當於未來世에 欲見如來인댄 則便得見하며 諸佛如來가 常不捨我하고 恒住我所하야 令我得見하며 爲我說法하야 無有斷絶이어든 旣聞法已에 心意淸淨하야 遠離諂曲하고 質直無僞하야 於念念中에 常見諸佛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於未來에 當得成佛하고 以佛神力으로 於一切世界에 爲一切衆生하야 各別示現成等正覺하야 淸淨無畏大獅子吼하며 以本大願으로 周徧法界하야 擊大法鼓하고 雨大法雨하고 作大法施하야 於無量劫에 常演正法호대 大悲所持로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나니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大欣慰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無上成正覺智慧大欣慰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크게 기뻐 위안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은 마음을 내되,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거든 내가 마땅히 다 따라다니면서 받들어 섬겨서 환희케 하리라.’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에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또 이런 생각을 하되, ‘저 모든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거든 내가 마땅히 가장 훌륭한 공양거리로 공경하며 공양하리라.’ 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또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모든 부처님 계신 데서 공양할 때에 저 모든 여래께서 반드시 나에게 법을 가르치시니, 내가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여 듣고 말씀하신 대로 수행하여 보살의 지위에 반드시 이미 나고 지금 나고 장차 나리라.’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또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마땅히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에 보살행을 행하여 항상 일체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로 더불어 함께하리라.’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또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옛날 위없는 큰 보리심을 내기 전에는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었으니 이른바 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과, 나쁜 이름 들을까 하는 두려움과, 죽을까 하는
두려움과, 나쁜 길에 떨어질까 하는 두려움과, 대중의 위엄에 대한 두려움이라. 한번 보리심을 낸 뒤부터 모두를 멀리 여의어 놀랍지 않고,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고, 저어하지 않고, 겁나지 않고, 공포스럽지 않아 모든 마(魔)와 외도들이 파괴할 수 없도다.’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또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를 이루게 하며, 보리를 이룬 뒤에는 내가 마땅히 저 부처님 계신 데서 보살의 행을 닦고, 그 몸의 수명이 마치도록 큰 신심으로 부처님께 이바지할 모든 공양거리를 마련하여 공양하며, 열반하신 후에는 각각 한량없는 탑을 쌓아 사리를 공양하고, 남겨 놓으신 법을 받들어 지니고 수호하리라.’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또 이런 생각을 하되,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를 내가 마땅히 가장 좋은 장엄거리로 장엄하여 모두 갖가지 기묘함을 갖추어 평등하고 청정하게 하며, 다시 갖가지 큰 신통한 힘으로 지니어 진동케 하고, 광명을 밝게 비추어 모두 두루 하게 하리라.’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또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의 의혹을 끊고, 일체 중생의 욕망을 깨끗하게 하며, 일체 중생의 마음을 열고, 일체 중생의 번뇌를 멸하며, 일체 중생의 나쁜 길의 문을 닫고, 일체 중생의 좋은 길의 문을 열며, 일체 중생의 어두움을 깨뜨리고, 일체 중생에게 광명을 주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마(魔)의 업을 떠나게 하고, 일체 중생을 편안한 곳에 이르게 하리라.’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또 이런 생각을 하되, ‘모든 부처님 여래는 우담바라 꽃과 같아서 만나기 어려우니 한량없는 겁에 한 번 보지도 못하거니와 내가 마땅히 오는 세상에 여래를 친견하고자 하면 곧 친견하게 되고,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나를 항상 버리지 아니하고 나의 처소에 머물러서 나로 하여금 친견하게 하며, 나를 위해 법을 말씀하여 끊이지 않게 하며, 법을 듣고는 마음이 청정하여 아첨을 멀리 여의고 정직하여 거짓이 없으며 생각 생각마다 항상 부처님을 보게 되리라.’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또 이런 생각을 하되, ‘나는 오는 세상에 마땅히 부처님을 이루고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써 모든 세계에서 일체 중생을 위하여 각각 따로따로 정등각 이룸을 나타내 보이고, 청정하고 두려움이 없어 크게 사자후할 것이며, 본래의 큰 원(願)으로 법계에 두루 하여 큰 법의 북을 치며, 큰 법의 비를 내리며, 큰 법을 보시하고, 한량없는 겁에 항상 바른 법을 연설하지마는 큰 자비로 유지되어 몸과 말과 뜻의 업이 고달프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크게 기뻐 위안함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위없는 바른 깨달음의 지혜를 이루어 크게 기뻐 위안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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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대흔위(十種大欣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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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대흔위(有十種大欣慰)하니 :열 가지의 흔쾌하고 기뻐하고 위로되는 것이 있다.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인가.
여기서부터 내용이 조금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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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제보살(所謂諸菩薩)이 : 이른바 모든 보살이
발여시심(發如是心)호대 : 이와 같은 마음을 내되
진미래세(盡未來世)토록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소유제불(所有諸佛)이 :모든 부처님께서
출흥우세(出興于世)어든 : 세상에 출흥하실 때에
아당개득수축승사(我當皆得隨逐承事)하야 : 내가 마땅히 모두 다 얻는다. 따라다니면서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면서
영생환희(令生歡喜)라하야 : 영생환희케 하리라. 모든 부처님을 환희심이 돋게 할 것이다.
여시사유(如是思惟)하고 :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는
심대흔위(心大欣慰)하며 : 마음에 크게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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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 또 생각하되
피제여래(彼諸如來)가 : 저 모든 여래께서
출흥우세(出興于世)어든 : 세상에 나시거든
아당실이무상공구(我當悉以無上供具)로 : 내가 마땅히 모든 최고의 으뜸가는 공양구로써
공경공양(恭敬供養)이라하야 : 공경공양이라 하여
여시사유(如是思惟)하고 : 이와 같이 생각하고
심대흔위(心大欣慰)하며 : 크게 위안을 얻느니라.
읽어도 신심이 나는 대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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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 또 이런 생각을 내되
아어제불소(我於諸佛所)에 : 내가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흥공양시(興供養時)에 : 공양을 올릴 때에
피제여래(彼諸如來)가 : 저 모든 여래께서
필시회아법(必示誨我法)하리니 : 나에게 법을 제시하고 가르쳐주시리니
아실이심심(我悉以深心)으로 : 모두 아주 깊은 마음으로
공경청수(恭敬聽受)하고 : 공경하고 자세히 듣는다.
참회하지 않으면 절대 법문이 안 들린다. 깊은 마음이 되기 전에 직심이 있다. 깊은 마음 이전에 정직한 마음이 우선이다.정직한 마음 이전에는 바로 신심이 있다.
여설수행(如說修行)하야 : 여설수행하여, 이것이 ‘여실(如實)’하고 똑같은 말이다. 설한 바와 같이 수행을 해서
어보살지(於菩薩地)에 : 보살의 지위에
필득이생현생당생(必得已生現生當生)이라하야 : 반드시 얻을 것이다. 즉득이라고 했다가 단어를 살짝 바꿔서 필득이라고 했다가 이렇게 문장을 쓰고 있다.
이생은 과거생, 현생은 지금, 당생은 미래생이다.
이미 나고, 지금 나고, 장차 나리라.
보살의 경지에 내가 그렇게 탄생할 것이다. 옛날에도 났고, 옛날에 하던 보살행이니까 또 지금도 하고, 다음에도 또 할 것이다.
여시사유(如是思惟)하고 : 이와 같이 생각하고
심대흔위(心大欣慰)하며 : 마음에 큰 기쁨을 얻느니라.
치문(緇門)을 배울 때 ‘인과(因果)가 역연(亦然)한데, 인과가 분명한데 하우하희(何憂何喜)리요, 뭐가 걱정이고 뭐가 근심이냐’라고 배운 그 게송이다.
이미 화엄경을 하면서 살아왔고 이미 이 길대로 살아왔으면 근심 걱정할 게 뭐가 있겠느냐.
기무우구(豈無憂懼)요, 그것 근심 걱정할 게 없다.
인과가 역연한데, 우리처럼 조금 못된 일을 한 사람들은 인과가 역연하다니까 상당히 걱정이 된다.
정반대로 진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인과가 역연하니까 태평스럽다.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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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이런 생각을 하되
아당어불가설불가설겁(我當於不可說不可說劫)에 : 내가 마땅히 불가설 불가설 겁에, 한량없고 말할 수 없는 불가설 불가설 겁 동안에
행보살행(行菩薩行)하야 : 보살행을 행하여
상여일체제불보살(常與一切諸佛菩薩)로 :항상 일체의 제불보살로
이득공구(而得共俱)라하야 : 공양거리를 얻으리라.
여실사유(如是思惟)하고 : 이와 같이 사유하고는
심대흔위(心大欣慰)하며 : 마음에 큰 기뻐하고 위로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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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 또다시 생각하되
아어왕석(我於往昔)에 : 내가 옛날 옛적에
미발무상대보리심(未發無上大菩提心)일새 : 미발무상대보리심일 때, 얼마나 우리가 밴댕이 속같이 좁게 살아왔는가? 위없는 보리심을 내기 전에는
유제포외(有諸怖畏)하니 :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었으니. 욕심이 있으면 두려움이 많잖은가?
이 대목은 십지품의 34권에 초구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러분들도 익숙하게 알고 계실 것이다.
십지품의 34권에 나올 뿐만 아니라 불교의 제반적인 문제가 이 문제다. 불교에 속하지 않더라도 인생살이 문제가 여기에 속한다.
소위불활외(所謂不活畏)와 :오래 못 살까 불활외하고 죽을까 싶어 걱정하고
악명외(惡名畏)와 :남한테 나쁜 이름을 들을까 싶어 걱정하고
사외(死畏)와 :잘 살지 못할까 또 죽을까
타악도외(墮惡道畏)와 : 악도에나 떨어지지 않을까, 별걱정을 다 한다.
대중위덕외(大衆威德畏)라 :대중들이 나를 갖다 같이 뜯으면 어떨까, 대중위덕외하며 누구든지 여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별로 없다.
자일발심(自一發心)으로 : 그런데 내가 일발심으로 한 발심으로, 발보리심함으로부터는, 보리심을 한 번 냈다고 하면 심무가애(心無罫碍) 무가애(無罫碍) 무유공포(無有恐怖)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이라.
실개원리(悉皆遠離)하야 : 실개원리하야
불경불공(不驚不恐)하며 : 놀랍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불외불구(不畏不懼)하며: 두렵지도 않고 저어하지도 않고
불겁불포(不怯不怖)하야 : 겁내지도 않고 겁도 안 나고 간덩이가 부었다. 공포를 느끼지 아니하며
일체중마(一切衆魔)와 : 모든 마구니와
급제외도(及諸外道)의 : 외도들이
소불능괴(所不能壞)라하야 : 나를 깨뜨릴 수가 없다.
어떤 마구니들은 하도 무식해서 항마진언(降魔眞言)을 못 알아들어서 항마진언을 해도 약이 안 듣는다고 한다.
마구니가 지 욕하는 줄도 모르고 막 달겨든다. 마구니도 공부를 해야지 항마진언이나 좀 외워놓지. 항마진언은 어떻게 하는가?
항마진언을 모르는 사람이 여기 있다. 항마진언도 모르면서 항마진언 강의한다고 앉아가지고 죄송하다. 항마진언은 마구니한테나 필요한가보다.
여시사유(如是思惟)호대 :이와 같이 생각하고는
심대흔위(心大欣慰)하며 : 마음에 크게 위안을 얻는다.
*
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 또 생각하되
아당영일체중생(我當令一切衆生)으로 : 내가 마땅히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성무상보리(成無上菩提)하고: 성무상보리하고 오늘 전부다 먼 길 오신 분들이 상당히 많으신데 제일 신나는 구절을 하니까 기분이 좋다.
모든 중생들이 다 성불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위없는 보리를 이루게 하며
성보리이(成菩提已)하야는 : 또 보리를 이루는 데는 무엇을 하느냐?
아당어피불소(我當於彼佛所)에: 부처님 계신 데서 뭘 한다?
수보살행(修菩薩行)호대 : 수보살행하되.
우리도 초두에 이 대목을 한번 짚어봤지 않은가?
이것이 화엄경의 목적이다.
화엄경의 목적이어야 되고 우리 인생의 목적이어야 된다.
‘돈 많이 벌은 뒤에 뭐 하려고?’
‘남 다 도와주려고’
이런식으로 해야지
‘돈 많이 벌은 뒤에 뭐 하려고?’
‘저축하려고’
제 상좌가 있는데 돈을 잘 안 모은다.
모을 돈은 없고 중이 그렇지만.
“니 와 그러노?”하니까
“제 돈을 뭐할라고 은행에 맡겨놓습니까?”한다. 중국 떼놈이다. 중국 사람 비슷하게 생겨서 잘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내꺼를 뭐할라꼬 남한테 맡겨 놓습니까, 써야지요.’ 하더라.
진기형수(盡其形壽)토록: 몸이 마치도록
이대신심(以大信心)으로 :깊은 신심으로
흥소응공불제고양구(興所應供佛諸供養具)하야 : 부처님께 이바지할 공양거리를 마련하여
이위공양(而爲供養)하며 :공양하며. 실천은 안되지만 신심이 난다.
*
급열반후(及涅槃後)에 : 열반후에는
각기무량탑(各起無量塔)하야 :각각 한량없는 탑을 쌓아
공양사리(供養舍利)하며 : 사리를 공양하고
급수지수호소유유법(及受持守護所有遺法)이라하야 : 급수지 수호 소유 유법이라. 남기신 법을 유법을 받들어 지니고 수호하리라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여시사유(如是思惟)하고 : 이와 같이 생각하고는
심대흔위(心大欣慰)하며 : 마음에 큰 위안을 얻느니라.
*
우작시념(又作是念)호대 : 또 생각하되
시방소유일체세계(十方所有一切世界)를 :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를
아당실이무상장엄(我當悉以無上莊嚴)으로 : 내가 모두 다 최고의 장엄거리로,
이장엄지(而莊嚴之)호대 : 온세상을 전부다 내가 꽃을 심든지 곡식을 심든지 해서 장엄한다.
그런 분들도 많다. 여기 오신 분들 중에도 개천 이런 데에 무상으로 10만평 20만평 해서 유채꽃도 심고, 해바라기도 심고 하는 스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
아산만 같은 데 쌀농사 같은 것을 한도 끝도 없이 지어서 이절 저절에 몇 천 포씩 보내버리는 분들도 계시다.
우리는 상상도 못한다.
실제적으로 우리가 경주 황룡원에서 강의할 때 장경호 거사님 그런 분들은 30억을 모아서 ‘이것은 내 사재돈이 아니라 이 돈은 인연 따라서 내한테 와서 모여 있지만 내 것은 아니고 내가 이렇게 죽어가니까 박대통령이 잘 회향하시라’해서 우리 불교 진흥원이 되었다.
거기서 불교 BBS 방송국도 만들고 지금도 장학금도 주고 포교원도 격려하고 그러잖는가.
그분이 이 시대의 급고독장자다.
인도에서 급고독장자가 계셔서 우리가 금강경이라도 얻어들을 수 있고 대반야경 600권도 설해졌고 화엄경도 마찬가지다. 수천 년에 걸려서 우리 선배들이 조각을 해서 그 힘든 악조건에서 공부하라고 던져주었다.
개령구족종종기묘(皆令具足種種奇妙)하야 : 개령구족종종기묘하야
평등청정(平等淸淨)하고 : 평등하고
부이종종대신통력(復以種種大神通力)으로 :다시 종종 대신통력으로, 다시 신통한 힘을 지녀
주지진동(住持震動)하며: 진동케 한다.
저기 앉아계신 스님들이 왜 조는지는 제가 알 수 있다.
제가 한 15년 전 20년 전에 저 스님들에게 화엄경 강의할 때 하루에 9시간씩 8시간씩 강의했다.
아침에 3시간 점심 먹고 3시간, 저녁 먹고 잘 때까지 강의하니까 ‘오늘도 20분만 합시다’ 해놓으면 ‘또 2시간 하겠지’하고 입이 툭 튀어나와서 미리 잘 준비부터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제가 그랬다가는 맞아 죽으니까 그렇게 안 한다.
광명조요(光明照耀)하야: 광명을 밝게 비추어
보사주변(普使周徧)이라하야 : 보사주변이라 하야
여시사유(如是思惟)하고 : 이와 같이 사유하고
심대흔위(心大欣慰)하며 : 심대흔위하며
*
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 또 생각하되
아당단일체중생의혹(我當斷一切衆生疑惑)하며 : 내가 마땅히 끊는다. 일체중생의 의심, 의혹이라고 하는 것이 무명 번뇌다.
근본 번뇌 중에 제일 마지막이다. 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견(見), 찐득찐득한 번뇌인 의를 오둔사라고 한다. 아스팔트처럼 찐득하다.
견은 무엇인가? 신견, 사견, 변집견, 견취, 계금취 5견이 있다. 근본 열 가지 번뇌다.
정일체중생욕락(淨一切衆生欲樂)하며 : 일체중생의 욕락을 깨끗하게 하며
계일체중생심의(啓一切衆生心意)하며 : 일체중생의 마음을 열고
멸일체중생번뇌(滅一切衆生煩惱)하며 : 일체중생의 번뇌를 멸하고, 굳이 분석하자면 이것은 지말번뇌다. 앞에 것은 근본 번뇌였다.
폐일체중생악도문(閉一切衆生惡道門)하며 :일체중생의 악도에 문을 닫아버리고, 악도를 고집멸도라고 할 때 고(苦)를 악도라 한다. 그러니까 중생의 번뇌로 인해서 악도가 생겨진다.
번뇌 쪽으로 보면 ‘중생심으로 하야’ 그런 것들이 전부 다 마음을 제대로 못 열면 업이 된다. 업은 집(執)이라고 한다. 악업, 악도
개일체중생선취문(開一切衆生善趣門)하며 :일체중생의 선취문을 열어서
파일체중생흑암(破一切衆生黑暗)하며 : 일체중생의 흑암을 깨뜨리고
여일체중생광명(與一切衆生光明)하며 : 일체중생에게 광명을 주며 여광명하며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으로 :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이중마업(離衆魔業)하며 : 여러 가지 마의 업을 떠나게 하고
사일체중생(使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지안은처(至安隱處)라하야 : 안은처에 이르게 하리라. 고집멸도가 다 나왔다.
여시사유(如是思惟)하고 : 이와 같이 사유하고는
심대흔위(心大欣慰)하며 : 마음에 꽤 기뻐하고 위안하느니라.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또 보살마하살이
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 또다시 이렇게 생각하되
제불여래(諸佛如來)가 : 모든 여래께서
여우담화(如優曇華)를 : 저 우담바라 꽃과 같아서
난가치우(難可値遇)하야 : 난가치우라.
우담바라 꽃을 영서화(靈瑞花)라고 한다.
인도말로 우담바라 우리 말로는 신령 영(靈)자 상서로울 서(瑞)자 영서화, 3천 년 만에 한 번씩 핀다든가, 부처님이 탄생하실 때 피는 꽃
어무량겁(於無量劫)에 : 무량겁에
막능일견(莫能一見)이니 : 한 번도 보지 못하거니와
아당어미래세(我當於未來世)에 : 내가 마땅히 미래세에
욕견여래(欲見如來)인댄 : 여래를 뵙고자 하면
즉변득견(則便得見)하며 : 곧 보게 되며
제불여래(諸佛如來)가 : 또 모든 부처님께서
상불사아(常不捨我)하고 : 항상 나를 버리지 아니하고
항주아소(恒住我所)하야: 항상 내 처소에 머물러서
영아득견(令我得見)하며 : 저로 하여금 보게 하며
위아설법(爲我說法)하야 : 우리에게 법을 말씀하시어
무유단절(無有斷絶)이어든 : 끊어지지 아니하니
기문법이(旣聞法已)에 :내가 이 법을 듣고는
심의청정(心意淸淨)하야 : 마음이 청정하야
원리첨곡(遠離諂曲)하고: 원리첨곡하고, 아첨하는 사람의 반대가 정직이다. 아첨하는 사람이 아첨할 때는 반드시 특이한 행동을 한다. 물건을 들고 오든지, 말이 평소에 안 하던 고운 말을 하든지 이럴 때는 골치 아프다. 뭔가 있다.
꼭 보이스 피싱 비슷하다.
질직무위(質直無僞)하야 : 질직이라는 말이 바탕이 아주 정직하고 그것이 아첨의 반대말이다. 조작이 없고 무위, 거짓이 없다. 질직해야, 당장 정직해야
어염념중(於念念中)에 : 념념중에
상견제불(常見諸佛)이라하야 : 항상 부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아첨하면 있는 부처님도 떠나버린다.
우리는 얼마나 복이 많은가?
오늘 스님들 강의한다니까 어제 저녁에 GS25가 문 열었다.
어제 기념으로 제가 초코파이 3개를 샀다.
강사스님 한 개, 다른 강사스님 한 개, 제 거까지 해서 3개를 샀다. 왜 초코파이를 샀을까? 정있게 살자고, 초코파이에는 정(情)이라고 써놨길래 그걸 샀다.
‘뭘 살까요?’ 하니까 ‘아무거나 과일사세요’ 하더라.
여기 1층에 수퍼마켓 장사 안되어 나가시고 아무 소리도 안했는데 제가 요새 문수선원에 와서 공부 좀 하고 앉아 있다.그러니까 24시간 문을 열어놓는다.
언제든지 내려가서 제가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다.
가만히 있는데 슈퍼마켓이 하나 생겨지고, 화엄경의 공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님들 가실 때 출출하시면 음료수라도 사가시기 바란다. 이웃끼리 돕고 살아야지.
여시사유(如是思惟)하고 : 이와 같이 생각하고는
심대흔위(心大欣慰)하며 : 마음이 크게 기쁨을 얻다.
*
또 마지막에 10번째
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부작시념하되
아어미래(我於未來)에 : 내가 오는 세상에
당득성불(當得成佛)하고 : 마땅히 부처를 이루고
이불신력(以佛神力)으로 : 이 불신력으로, 이런 대목 때문에 울며 불며 우리가 여기까지 왔잖은가.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써
어일체세계(於一切世界)에 : 모든 세계에서
위일체중생(爲一切衆生)하야 : 위일체중생하야, 우리 어른스님도 늘 말씀하시지만 오직 화엄경 하는 사람의 화두는 일체 중생이어야 된다. 위일체중생이다. 일체중생을 위하여
각별시현성등정각(各別示現成等正覺)하야: 따로따로 정각을 이루고
청정무외대사자후(淸淨無畏大獅子吼)하며 : 청정하고 두려움 없이 크게 사자후를 하며
이본대원(以本大願)으로 : 본래의 큰 원으로
주변법계(周徧法界)하야: 법계에 두루하여
격대법고(擊大法鼓)하고 : 대법고를 치고 마지막이 되니까 엄청 많이 해놨다.
우대법우(雨大法雨)하고 : 큰 법비를 내리고
작대법시(作大法施)하야 : 큰 보시를 하고
어무량겁(於無量劫)에 : 한량없는 겁동안에
당연정법(常演正法)호대 : 바른 법을 연설하지만
대비소지(大悲所持)로 : 대비소지로, 큰 자비로, 자비심이 바로 삼매다. 무자비한 사람은 삼매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까 어쨌든지 어질어지려고 노력해야 된다. 대비소지로
신어의업(身語意業)이: 몸과 말, 뜻과 업이
무유피염(無有疲厭)이라하야: 무유피염이다.
자비가 있으면 생각도 말도 뭐도 고달프지 아니하리라
여시사유(如是思惟)하고 :이와같이 생각하고는
심대흔위(心大欣慰)하나니 : 마음에 큰 위안을 얻나니라.
*
불자(佛子)야 :불자야
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십종대흔위(十種大欣慰)니 : 열 가지의 마음에 크게 기뻐 위안함이니
약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무상성정각지혜대흔위(則得無上成正覺智慧大欣慰)니라 : 즉득 그 자리에서 무상성 정각지에 대흔위라. 큰 바른 깨달음의 지혜를 크게 이루어 위안함을 얻느니라.
아까 이본대원에 줄을 한번 그어놓겠다.
부처님의 본래 원력은 무엇인가?
십지품에 이르기를 여수이멸번뇌화(汝雖已滅煩惱火)라, 그대 이미 번뇌의 불꽃이 꺼졌느냐. 세간(世間)은 혹염유치연(惑焰猶熾然)이라, 이세간 못한, 세간을 떠나지 못한 세간의 중생들은 혹염에 번뇌의 불꽃에 이치연이니라. 아직도 치연이라 허덕이고 있다. 실사수인(悉使修因)에 취해탈(趣解脫)이라, 마땅히 부처님의 본래의 원력을 생각해서 그들로 하여금 바라밀행을 닦게 해서 해탈로 나아가게 하라.
이것이 십지품에 나오는 이 대목하고 바로 겸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지금 방금 제가 했던 게 기억이 잘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전에 가져가셨던 도표 ‘비 오는 날 삶이 우울하고 쓸쓸할 때 보는 도표’ 있잖은가.
그 도표에 약찬게 6회차 설법에 제가 ‘여수이멸번뇌하라’ 하는 내용을 써놨다. 그들로 하여금 바라밀행을 닦게 해서 해탈로 나아가게 하라는 대목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본래 원력은 일체중생의 성불이다, 이 대목을 하면서 오늘 강의를 마치겠다.
먼길 조심해서 잘 가시기 바란다.
(죽비소리)
하강례
만선동귀중도송, 중도를 살다
전국적으로 비가 흔했던 7월이다. 7월 어느 날 아침 거창에 사시는 무성스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야곰야곰 증도가> 제6권에 나온 문장에 대해서 질문해 주셨다. 문장을 읽다 보니 생략한 주어가 다른 주어라서 충분히 잘못된 문장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었다. 또 중간에 쉼표를 한 개 찍었다면 그런대로 이해해 주실 수 있는 문장이었다.
덕분에 스님께서 계속해서 읽고 계시다는 큰스님의 증도가 법문 <깨달음의 노래>에 대한 소감을 들을 수가 있었다.
“모든 것은 중도지요. 중도를 이렇게 잘 표현한 법문이 없습니다.” 하셨다.
*
아침마다 큰스님께서 읽어주시는 ‘8시 통근길’ 유튜브 화엄경이 두 번째로 42권 십정품3을 끝냈다. 7월 21일과 22일 양일에 걸쳐 42권에 ‘부언’하신 만선동귀집의 중도송 게송을 설법해 주셨다. 큰스님의 법문을 전문(全文)으로 녹취했다.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904-975) 만선동귀중도송(萬善同歸中道頌)
-無比스님, 2024년 7월 21일, 22일 유튜브 염화실TV-
반갑습니다. 아름다운 법석에 동참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화엄학인 여러분들 각각등보체(各各等保體), 화엄법석을 빛내주신 모든 화엄학인 여러분들 각각등보체, 화엄법석에 동참하신 화엄학인 여러분들 각각등보체.
대방광불화엄경 42권 십정품3을 공부하는 중인데, 십정품 내용은 어제 말씀드린 대로 끝났고, 제4십정품 열 번째 선정은 다음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아홉 번째 선정하고 연관되는, 제가 좋아하는 영명 연수선사 중도송, 만선동귀중도송을 가지고 공부하겠습니다.
이 글을 ‘어디쯤에 넣을까’ 내가 늘 강설을 쓰면서 생각하다가 ‘여기가 딱 적합한 자리다’ 생각이 들어서 42권 말미에 넣었습니다.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선사는 평생 동안 불교를 공부하여 종경록(宗鏡錄)과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등으로 정리하였는데 특히 만선동귀집의 결론으로 42개의 게송을 남겼다.
그것은 곧 만선동귀중도송(萬善同歸中道頌)이다. 어떻게 불교를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앞의 화엄경 경문과 그 뜻이 매우 일치하는 점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하여 참고하게 한다.’
그렇게 부언을 해놓았습니다.
1, 보리무발이발(菩提無發而發)
보리심은 발함이 없이 발하라.
맨 처음에 우리가 불심을 내서, 또는 보리심을 내서 화엄경 공부도 하고, 예불도 하고, 기도도 하고, 참선도 하고, 절에도 다니고, 참배도 하고, 수련대회도 참석하고, 교양대학에도 가서 불교의 상식도 공부합니다.
불교적인 일들을 하는 것은 전부 불심을 내어서 하는 것입니다
맨 처음 출발은 불심이예요. 그것을 보리심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냈지만 ‘발함이 없이 발하라’ 그랬습니다.
‘내가 불심을 내서 오늘 무슨 일을 했다’ ‘절을 108배를 했다’ ‘3천배를 했다’ 그렇게 할 게 아니라는 거죠.
그것이 무슨 표시가 있습니까?
아무런 표시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이 당장에 싹 달라진 것도 아니고요.어느 정도는 변했겠지만요. 이걸 가지고 백방으로 자기 경우와 연관시켜 봐도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보리무발이발, 보리심은 발함이 없이 발한다.
우리가 다 불심을 내서, 불심을 발해서 이런 일을 하고, 이렇게 공부하고, 아침 8시가 되면 기다렸다가 너도나도 이 큰 법당에 들어옵니다. 그야말로 법당 아닌 법당에 그저 너도나도 쫓아 들어와서 서로서로 격려하고 찬탄하고 공부한 거 정리하고, 자기표현도 하면서 공부를 합니다.
하지만 무슨 흔적이 있습니까?
보리심은 발함이 없이 발하는 거예요. 그래서 불도를 구하지 않습니까?
2, 불도무구이구(佛道無求而求)
불도(佛道)는 구함이 없이 구하라.
2번은 불도무구이구라. 불도는 구함이 없이 구한다.
열심히 구합니다.
저는 60여 년 이상 불도를 구한다고 이렇게 살아왔는데 무슨 흔적이 있습니까?
뭐가 표시가 있습니까? 아무 표시 없어요. 표시 있으면 그게 불도가 아니죠.
그래요. 불도는 구함이 없이 구하라,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고 그게 정상적인 모습이고, 그걸 달리 표현하면 아주 ‘중도적인 수행이다, 중도적인 발심이고 중도적인 구함이다’ 그렇습니다.
불도는 구함이 없이 구한다.
3, 묘용무행이행(妙用無行而行)
아름다운 작용은 행함이 없이 행하라.
아름다운 작용은 행함이 없이 행한다.
우리가 거기서 뭔가 발심을 하고, 불도를 좀 구하고, 신심이 나고 해서 사경도 하고, 보시도 하고, 대중공양도 다니고, 좋은 일이라고 하는 좋은 일은 다 합니다.
그게 묘행이죠. 아름다운 행이죠.
우리는 보살행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봉사행 많이 합니다.
그래도 행함이 없이 행하는 도리, 내가 좀 뭐 한다고 생색을 내고, 공덕을 바라고 무슨 대가를 바라고, 우리 화엄행자들은 그렇지 않죠? 철없는 불자들이 그래쌌지요.
묘행무행이행이라. 이런 내용을 보고 그냥 껌뻑 넘어가서 제가 평생을 이 글을 그렇게 많이 소개했습니다. 사경집도 만들었고요.
4, 진지무작이작(眞智無作而作)
참다운 지혜는 지음이 없이 지으라.
아주 참다운 지혜, 우리가 아주 깊고 깊은 지혜를 발휘해서 뭔가를 합니다.
뭔가 하는 게 뭡니까?
지혜에 의한, 참다운 지혜에 의한 작용이니까, 그 모든 작용이 정말 도에 계합하고, 정각에 계합하고, 깨달음에 계합하고, 불법의 모든 행위에 계합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 무작이작입니다. 지음이 없이 짓습니다.
참다운 지혜에 의해서 짓는 것은 지음이 없이 짓는다.
5, 흥비오기동체(興悲悟其同體)
불쌍한 생각을 일으키되 자신과 동체임을 깨달으라.
내가 자비심을 일으켜서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합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나에게 하는 것이다, 동체임을 깨닫는다, 동체(同體) 나하고 한 몸이니까 ‘누구보고 자비심을 일으켰다, 자비행을 했다, 봉사를 했다, 무슨 보살행을 했다’ 그런 생각이 날 까닭이 없습니다. 나보고 했는데요 뭐.
오기동체라, 동체임을 깨닫는다.
흥비오기동체, 자비, 불쌍한 생각을 일으키되 동체임을 깨닫는다.
비(悲)가 우선합니다. 우리는 흔히 자비(慈悲) 자비(慈悲)하지만 그것을 낱낱이 나눠서 이야기할 때는 비자가 먼저입니다.
6, 행자심입무연(行慈深入無緣)
사랑을 행하되 인연이 없는 곳까지 깊이 들어가라.
행자(行慈) 사랑하는 마음, 사랑을 행하되, 인연이 없는 곳까지 깊이 들어가라.
행자심입무연이라,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고, 내 가족에게 잘하고, 내 자녀들에게 잘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나하고 친한 사람들에게 잘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한 일인데 무연대자가 중요한 거예요.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이 무슨 자기 권속이라고 자기 가족이라고 자기 피붙이라고 사랑합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공히 사랑을 베푸는 것이 불보살들의 자비입니다. 그게 무연대자예요.
그러니까 인연 없는 사람에게까지도 깊이 들어간다, 행자, 자비를 행하되 인연 없는 이에게까지 깊이 들어간다. 행자심입무연이라.
어찌 이런 좋은 글이 있는지요.
우리는 정말 다행 중에 큰 다행입니다.
이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불법과 인연을 맺고, 불법을 만나서 또 이런 좋은 글을 한 구절 만났다고 하는 것, 얼마나 큰 복입니까.
행자심입무연, 내가 이것을 실천하느냐 못하냐는 차치하고라도 ‘아 이렇게 하는 거로구나, 보살들의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보살들의 자비심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마음에 감동하는 것, 그러다가 감동이 깊어지면 두 눈에서 눈물 두 줄기가 쭉 흘러내립니다.
행자심입무연이라.
7, 무소사이행단(無所捨而行檀)
베푸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라.
단(檀)자는 단바라밀, 보시라는 뜻이거든요.
무소사이행단이라. 버리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한다, 주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한다, 베푸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라, 그렇죠.
우리는 뭐든지 줘놓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내가 그때 많이 줬는데,얼마를 줬는데’ 그 생각이 늘 남아 있습니다. 깡그리 잊어져야 되는데 중생들은 잘 안 잊어지지요.
인위적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꾸 반복해서 보시를 하고 남에게 베풀고 그러다 보면 일상사가 돼서 잊어버립니다. 잘 잊어져요.
처음 보시를 하면 안 잊어져요. 그런데 보시를 여러 번 하다 보면 일상사가 돼 버렸으니까 으레 생활화 되었는데, 한두 번 보시한 것을 가지고 기억하고 생색내고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그래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반복해서 하다 보면 생활화 돼서, 그냥 그것도 쉽게 잊어질 수 있습니다.
무소사이행단이라. 버리는 바 없이, 주는 바 없이 단바라밀을 행한다, 보시를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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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부터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육바라밀이 다 들어 있습니다.
중도(中道)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육바라밀을 실천할 때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중도원리에 맞는 육바라밀인가? 불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은 어떻게 해야 중도의 이치에 맞는 것인가?
이런 것들을 쭉 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 꽃을 올린다, 공양을 올린다, 우리 일상에 늘 하는 일인데 그것을 중도의 이치에 맞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여기서 답을 하고 있어요.
성철스님은 스스로를 중도광이라고 했습니다. 워낙 중도 소리를 많이 했으니까요.
내가 이 영명 연수선사의 중도이론을 보고는 ‘성철스님 중도이론은 불완전 중도이론이다. 완전하지 못한 중도이론이다’ 감히 그런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이것이 보통 일상생활에 딱 적용이 돼야 하거든요.
적용이 돼야 하는데, 성철스님은 전혀 일상생활하고 관계없는 중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법문을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중도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그럼 구체적으로 보시는 어떻게 하는 게 중도냐? 지계는 어떻게 하는 게 중도냐? 불사는 어떻게 하는 게 중도냐?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은 어떻게 올리는 것이 중도냐?’ 이런 예를 구체적으로 들어서 중도의 이치에 맞게 설명을 못했어요. 그래서 내가 이걸 보고는 ‘영명 연수선사의 중도이론은 완전한 중도이론이고, 그 외는 불완전한 중도이론이다.’ 감히 그런 말을 했습니다
글쎄요, 지금도 거기에 대한 저의 소신은 변함이 없습니다.
8, 무소지이구계(無所持而具戒)
가지는 바 없이 계행을 갖추라.
여덟 번째는 지계입니다. 가지는 바 없이 계행을 갖춰라.
그렇지 못해서 계깨나 지킨다고 ‘한계 지킨다’는 사람들이 생색을 많이 내지요. 남보고 잔소리 많이 하죠.
자기가 계를 지킨다 해서, 계를 못 지킨 사람을 비난하고 잔소리하고, 그런 사람들이 대중처소에 살아 보면 많습니다. 철이 없어서 그렇죠. 철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조금만 철든 사람은 자기 계행지킨다고 해서 그렇게 남한테 계의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대중생활하면서 계의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래요.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고, 자기의 뭔가를 표현하려는 사람들이나 그렇지, 그런 것들도 여기서 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여섯 자로 무소지이구계라. 가진 바 없이 계행을 갖춰라.
계행을 아무리 많이 가진다 하더라도, 삼귀계 5계 10계 48계 온갖 계율이라는 계율,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 다 지킨다 하더라도 가지는 바 없이 계행을 갖춰라.
영명 연수선사가 우리의 일상생활 전부에 이끌다가 중도를 표현했으니까, 내가 탄복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탄복, 탄복합니다.
9, 수진요무소기(修進了無所起)
정진을 닦되 일으키는 바 없음을 깨달으라.
보시, 지계 다음에 정진이 있네요. 인욕은 그다음에 나옵니다.
정진을 닦되 일으키는 바 없음을 깨달아라.
아무리 열심히 용맹정진, 가행정진, 목탁 소리가 24시간 끊어지지 않게 열심히 정진한다 하더라도, 하는 바 없음을, 일으키는 바 없음을 깨달아라.
해도 한 바가 본래 없어요. 한 바가 없는데 뭘 그렇게 하느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입니다. 그쯤 알아야죠.
10, 습인달무소상(習忍達無所傷)
인욕을 익히되 상처받는 바가 없음을 알라.
상처가 났을 때 우리가 ‘참는다’고 하잖아요. 마음의 상처가 됐든지 몸의 상처가 됐든지 조금이라도 상한 게 있으면 그걸 참아야 되고, 그때 또 참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긴 뭐라고? 인욕을 익히되 상처받는 바가 없음을 알라.
아무 상처받는 바도 없고, 상처받아서 참지만 그런 일이 본래 없다.
그냥 무심히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그렇게 흘러가는 것, 모든 나의 마음의 상처라든가 참아야 할 일을, 그렇게 아는 것입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가족관계가 그런 일이 제일 많죠. 자주 만나는 사람들,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왜 저 사람은 나의 속을 긁어놓는가’ 의도적으로 긁어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긁어놓는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아무도 긁어놓는 사람 없어요.
뭐 하려고 남 마음을 긁겠습니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거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습인달무소상하라, 인욕을 하되 구름에 달 가듯이, 상처받는 바가 없음을 깨달아라, 참 근사합니다. 구절구절이 감동, 감동, 감동투성이입니다.
11, 반야오경무생(般若悟境無生)
지혜는 경계가 생멸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반야는 지혜지요. 지혜는 경계가 생멸이 없음을 깨닫는다.
내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전부 생멸하고 변화합니다. 그렇게 무성하게 생멸 변화하더라도 생멸 변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생멸 변화가 아무리 무성하게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더라도 그것이 본래 없음을 깨닫는 것이 반야다, 그것이 지혜다.
12, 선정지심무주(禪定知心無住)
선정에 드는 것은 마음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마음이 머묾이 없는 것을 아는 것이 선정입니다.
우리는 선정에 들어서 어떻게 하더라도 마음을 멈춰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아닙니까. 절대적으로 그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머물지 않는다, 무소주예요. 그러면서 그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이생기심.
그 구절하고 연관시켜서 생각하면 쉬워요.
선정은 마음에 머무는 바 없음을 아는 것이다, 그거 아는 게 선정이에요.
변화무상한 것, 1초에도 여러 번 바뀌고, 하루는 말할 것도 없고, 1분은 말할 것도 없고, 한시간은 여러 수백 번 마음이 흘러가고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입니다.
‘변덕이 심하다’ 는 말이 있죠. 변덕이 심한 것이 제대로 된 사람이에요.
자꾸 변해야 됩니다. 자꾸 변하도록 돼 있어요.
변하도록 돼 있는데, 그걸 그렇게 이해 못 하고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안 변하는가? 다 변하도록 돼 있어요. 다 변합니다. 잘도 변해요.
선정 이거 잘 알아야 돼요.
선정에 드는 것은 마음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이 한 구절이 금강경에서 육조스님께서 깨달으신 그 주옥같은 구절입니다.
이 지구상에다가 금은보화를 잔뜩 쌓아놓고 그것으로써 보시하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이고, 천 배 만 배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 라고 부처님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응무소주이생기심입니다.
그 말씀을 육조스님이 떡 듣고는 그만 마음이 환하게 밝아져서,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자기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기의 가치관이라고, 일반적인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 털어버리고 환히, 그야말로 달이 구름이 가린 것을 벗어나고, 해가 구름을 확 벗어나서 저 태양이 환하게 밝아진 것과 같이, 마음이 그렇게 됐지 않습니까?
육조스님의 그 마음 상태를 우리가 제대로 짐작은 못 하지만, 그런대로 그 나름대로 우리는 또 우리 깜냥대로라도 생각하고 계산해 보면 그런 상태입니다.
요즘 장마철이죠. 구름에 꽉 절여서 해를 못 보다가 오늘 아침에 해가 조금 보이네요.
그러다가 남은 저 구름마저도 확 벗어나 온통 우주가 밝은 태양으로 환하게 비치는 광경, 육조스님의 정신세계가 그렇게 됐다, 우리도 지금 이렇게 불편 없이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마음이 구름에 찌들려 있습니까.
온갖 구름, 시시비비, 희노애락, 좋다 나쁘다 그리고 섭섭한 것, 나에게 잘한 것 잘못한 것, 잘했다고 생각하고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그건 전부 생각이지 그 실체는 잘한 것도 아니고 잘못도 없어요. 그런데 내가 그냥 그렇게 생각할 뿐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가 제대로 알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수행은 자꾸 이런 것을 반복해서 감동하고 쓰고 또 쓰는 것입니다.
어제 사경책 가져와서 숙제 검사 맡아가신 분, 이 중도송 사경집으로 한번 또 만들어 보십시오. 사경집을 잘 만들대요. 그 신도님은 젊고 건강하시고 신심도 엄청나고 앞으로 불법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얼마든지 펼 수 있는 재목이더라고요.
그래 내가 또 숙제를 내드립니다.
선정지심무주(禪定知心無住), 이 한 구절만 해도 얼마나 훌륭한 내용입니까?
금강형 사구게가 여기 들어 있지 않습니까.
‘불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응무소주이생기심( 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고 하는 소위 금강경 두 번째 사구게, 그 구절하고 이 선정지심무주하고 딱 연관되는 말입니다.
13, 감무신이구상(鑒無身而具相)
이 몸이 본래 없음을 관찰하되 온갖 상호를 갖춘다.
내가 이 대목에는 꼭 관세음보살을 이야기하는데 여기 강설에도 써놨네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한다, 오온이 다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간다 하는 반야심경 있지 않습니까?
오온이 개공한데 왜 관세음보살님은 그렇게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온갖 금은보화를 가지고 몸에다가 치렁치렁 감고, 치장을 그렇게 하고, 또 옷은 얼마나 명품입니까?
관세음보살님께서 입고 계신 옷은 세상에 없는 명품 천이에요. 천의무봉 하늘의 옷이지 그게 어디 인간의 옷입니까? 그렇게 멋진, 돈으로 살 수 없고, 어느 양복집에서도 맞출 수 없는 훌륭한 옷, 그렇게 값비싼 옷을 입고 계시면서 당신은 뭐라고? 조견오온개공이라, 이 몸이 텅 비어서 공하다, 한마디로 ‘몸이 없다’ 몸이 없음을 관찰한다.
감무신, 그러면서 상을 갖추고 싶은 대로 마음껏 갖춘다, 치장도 하고 화장도 하고 온갖 금은보화를 몸에다 치렁치렁 감고 다닌다. 그게 뭐라고? 구상, 상을 갖춘다.
타고난 상가지고는 성이 안 차, 그렇게 아름답게 타고 났으면서도 성에 안 차서 거기다가 온갖 치장을 다 하고, 화장을 하고, 금은보화를 걸치고, 비싼 옷을 입고, 그게 구상입니다.
이런 구절을 깊이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내가 감동 안 하고 배깁니까?
요즘에 저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죄송한 것이 나는 몸이 여러 가지로 많이 불편해서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환자복을 입고 맞이해요.
힘들더라도 옷을 제대로 갖춰 있고 사람들을 맞이해야 옳은데 그게 힘이 들어서 그만, 내 편할 대로 맞이하는 게 늘 죄송스럽고 ‘죄송스럽다’고 말을 합니다만, 상을 갖출 때는 갖춰야죠.
감무신이(鑒無身而) 조견오온 개공하더라도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을 식은 죽 먹듯이 우리가 읊조리더라도, 그래도 옷을 입고 모양을 갖출 때는 갖춰야 하는 것 구상(具相), 이 열세 번째 구절 감무신이구상(鑒無身而具相)이 명구입니다.
하나하나가 명구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아미타불 후신이라고 하는 영명 연수선사는, 일상에서 수행을 열심히 해서 아미타불 후신이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이런 글을 남겼으니 정말 아미타불 후신이라고 할 수가 있죠.
그게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있음과 없음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정견의 삶이다, 제가 그렇게 결론을 썼습니다.
중도정견(中道正見)의 삶이다.
14, 증무설이담전(證無說而談詮)
설할 것이 없음을 깨달아 알고 법을 설하라.
그렇죠. 아무리 이렇게 감동을 하고 사람을 놀라게 하고, 눈물이 나고 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만나더라도, 본래 설할 것이 없는 도리까지 증득해야 돼요.
설할 것이 없는 도리를 깨달아야 돼요.
그러면서 열심히 또 설법을 해야 됩니다. 법을 설해야 돼요. 담전이라는 말은 그렇게 알고 법을 설하라. 부처님의 말씀을 설하라. 증무설이담전이라.
15, 건립수월도량(建立水月道場)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은 도량을 건립하라.
제가 아주 잘 쓰는 말이지요.
수월도량임을 알고 건립하라.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은 도량이지만 열심히 건립하라. 열심히 건립하면서도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은 사찰이다, 포교당이다, 건물이다 그렇게 알라. 건립수월도량이라.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은 건물을 왜 건립합니까?
그래 놓으니까 옛날에 선사들이 예를 들어서 조그마한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땅에 딱 꽂고는 범찰(梵刹)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불국사와 같은 도량을 내가 여기다 건립했다, 라고 하는 선구가 있잖습니까.
조그만한 나뭇가지 하나를 딱 꺾어가지고 딱 세워 놓고는 ‘여기에 아주 아주 기가 막힌 청정한 사찰을, 수행처를 건립했다’ 하니까 찬사가 쏟아졌잖습니까.
해인사를 짓고 통도사를 짓는 실제적인 도량을 건립한 것보다도 더 많은 찬사를 받은 것, 그렇습니다.
16, 장엄성공세계(莊嚴性空世界)
본성이 공적한 세계를 잘 장엄하라.
본래 근본이 공한 세계인데 장엄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알고 장엄하는 거예요. 어떻게 장엄한다? 세상이 전부 정직하고, 보살들이고, 살기 좋은 곳으로, 정말 마음놓고 살아도 되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 그게 장엄하는 것입니다.
강설에 이렇게 썼네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 본성이 텅 비어 공한 것이다. 어떤 고정된 실체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는 모든 환경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겠는가. 잘 가꾸고 다듬고 아껴가면서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 한다. 이것이 성품이 공한 세계를 장엄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가 실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말세에 사는 것이 소득이 많아요.
만약에 영명 연수선사보다 먼저 태어났더라면 이런 글을 못 만났을 것 아닙니까.
후세에 태어났으니까 이런 글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꼭 옛날에 태어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에요. 말세에 태어나도 좋은 점이 너무 많습니다. 원효스님, 의상스님 같은 분들도 우리가 늦게 태어났으니까 만나게 됐고요.
부디 이것을 쓰기를 백 번 이상 쓰고, 읽기를 만 번 이상 읽고, 이것을 사경책으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법공양 하면 공덕이 무량할 것입니다.
법공양 사경책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에게 법공양 올리십시오.
저보다 더 잘 만드는 솜씨들이 있으니까.
정말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더 부연설명할 게 많은데 그거는 각자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이런 근사한 아름다운 화엄법석에 동참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분들 각각등보체, 화엄법석에 동참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신 모든 화엄학인 여러분들 각각등보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해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17, 나열환화공구(羅列幻化供具)
환영과 같은 공양구를 부처님 앞에 나열하라.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만선동귀중도송, 제가 법성게 못지않게 좋아하는 만선동귀중도송, 또 제가 좋아하는 것은 신심명, 증도가, 왕복서, 아주 짤막짤막하고도 그야말로 촌철살인과 같은 글을 좋아해요.
제가 초발심자경문도 항상 좋아하고 늘 옆에 두고 살고요. 초발심자경문 같은 경우는 경허스님께서도 그렇게 평생을 옆에 두고 독송하면서 사셨다고 합니다.
치문경훈도 참 글이 좋거든요. 치문경훈, 말이 난 김에 그런 몇몇 가지를 소개하게 되네요.
초발심자경문부터 치문경훈, 치문 안에 있는 몇 가지 글들, 왕복서, 신심명, 증도가, 법성게, 또 이 만선동귀중도송 그렇게 주옥같은 가르침들은 천하의 어떤 가르침과도 비교가 안되는 진리의 말씀을 표현한, 그야말로 다이아몬드 중에서도 다이아몬드라고 할 수 있는 불교의 뛰어난 내용들입니다.
교양대학이라든지 법회라든지 불교는 부처님부터 설법이 많았잖습니까.
그래서 팔만대장경이 있고 절마다 법회가 있고 매일매일 법회가 있기도 하고 이런저런 거리만 있으면 무조건 법회, 법회입니다. 지장재일법회 관음재일법회 약사재일법회, 그런 법회가 참 많은데 어떻게 그 법회를 운영하는 것이 서로에게 소득이 있겠는가? 가장 유익한 법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저는 늘 그런 것을 생각합니다.
또 법회하는 스님들과도 그런 데에 대해서 자주 논의도 해보는데, 금강경을 기준으로 삼으면 제일 좋겠더라고요.
금강경의 육조 혜능대사는 나뭇꾼이었죠, 노총각, 노행자. 나무를 팔러 여관에 나무를 져주러 왔다가 금강경 한 구절을 딱 듣고는 그만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내가 늘 말하듯이 나무지게에 다이아몬드를 한 짐 지고 돌아가는 격이었다, 그야말로 혁범성성(革凡成聖) 점철성금(點鐵成金)하는 소득을 얻게 되었다, 그래요.
우리도 무슨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언제 육조스님이 대승불교 소승불교 체계 밟고 경전성립사를 공부하고, 언제 그럴 겨를이 있었습니까? 그런 겨를도 없었을뿐더러 그런 일도 없었습니다.
가만 보니까,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런 거 안 했더라고요.
그저 좋은 말씀 한마디 딱 던지고 거기서 그냥 눈을 뜨게 되고, 깨우침을 얻게 되고, 그런 일들이 서로에게 제일 소득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저도 출가동기가 자경문에 있는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요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다’ 무슨 인연이 있었던지 그 게송 한마디 듣고는, 나중에 알고 보니 지관스님 동생이었어요, 우리 또래 그 스님에게, 기껏해야 열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그 무렵인데, 그 말 한마디 듣고는 그만 ‘아, 이게 내가 갈 길이구나’ 각오를 딱 하고 불과 며칠 안 돼서, 아무에게도 이야기 안 하고 그야말로 출가를 단행해서 오늘까지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이렇게 있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무슨 긴 이야기가 아닙니다. 짧은 몇 마디 말에 육조스님이 그랬듯이, 제가 또 그랬듯이, 한두 마디 짧은 말에 그만 감동을 받고 정신이 싹 달라져서 ‘아, 이게 내 길이다’ 이런 각오를 하게 됩니다.
이 만선동귀중도송을 제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하는데, 영명 연수선사 글이 참 많아요. 엄청난 저술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그야말로 알맹이 중에 알맹이, 다이몬드 중에 다이아몬드가 만선동귀중도송이다, 저는 그렇게 봐서, 이것을 화엄경 반열에 올려놨습니다.
그야말로 화엄경 반열에 만선동귀중도송을 올려놨거든요. 이게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저는 참 잘했다고 보고, 여기 아홉 번째 선정의 내용하고 상당히 유사한 내용이 있어서 ‘이 기회에 이것을 소개해야 되겠다’ 마음을 먹고 만선동귀중도송을 화엄경 반열에 떡 올려놨습니다.
그래요. 이거 참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지, 너무 지나친 나만의 생각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맞이하게 되고 또 중언부언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오늘은 열일곱 번째 나열환화공구, 나열한다, 펼쳐놓는다, 산더미처럼 올린다, 평소에도 부처님 앞에는 갖가지 공양구를 올립니다.
초파일쯤 되면 감당을 못할 정도로 올리지요.
엄청나게 공양구를 올립니다.
그게 뭐라고? 환화와 같은 공구다, 환영과 같은 공양거리다.
올리는 것이 전부 환영과 같은 공양거리라는 사실을 깊이 알고 올려라.
환화와 같은 공양거리, 그야말로 헛것이고 가짜고 그림자와 같고 허망한 것인데 그런 줄 알고도 산처럼 올려라, 나열해라, 꽉 올려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올리고, 올리되 그렇게 알아라.
18, 공양영향여래(供養影響如來)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은 여래에게 공양하라.
환화와 같은 공구를 여래에게 공양 올리는데 어떤 여래냐? 영향여래다.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은 여래다, 그것 또한 가짜 여래다 하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해서 가짜 여래입니다.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여래에게 공양 올려라.
여래가 영향여래인 줄 알되, 열심히 공양 올려라.
이걸 굳이 표현을 하자니 ‘중도적인 안목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중도적인 안목이다.
그래요, 우리가 늘 부처님께 공양 올리지 않습니까.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데 그 부처님은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은 부처님이에요. 그러면서 공양을 우리가 정성껏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해 올립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서 부처님께 공양 올릴 때 그 쌀 한 되를 모시고 갈 때 절대 땅에 한 번도 놓지 않고 머리에 이고 갑니다. 힘이 들더라도 한 번도 땅에다 놓지 않고 그대로 부처님께까지, 그게 몇 리가 됐든지 부처님께까지 그렇게 들고 가서 공양 올리는 예가 있지 않습니까.꼭 그와 같은 형식은 아니더라도 지금도 마음은 똑같습니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그 마음은 한결같아요.
환화와 같은 공양구를 나열해서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은 여래에게 공양 올린다.
19, 참회죄성본공(懺悔罪性本空)
죄의 성품이 본래로 공하다는 사실을 알고 참회하라.
부처님 앞에 와서 뭘 하죠? 참회를 합니다.
물론 복 달라고 복을 비는 경우도 있지만 참회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참회, 천 배 만 배 백만 배까지 절을 하면서 참회를 하는데 무슨 죄가 꼭 있어서 참회를 한다? 그거 아니에요.
죄의 성품은 본래 공한 줄 알고 참회한다.
참회를 하되 죄의 성품은 본래 공하다고 하는 것을 투철히 깨닫고 한다.
‘말에 그런 모순이 어딨냐?’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걸 깨달을 때까지, 그저 참회죄성본공한다. 죄의 성품이 본래 공한 것임을 알고 참회한다. 얼마나 근사한 표현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수든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죄를 많이 짓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실체가 있나요? 실체가 없습니다.
죄의 성품이 본래 공한 거예요.
그런 줄 알고도 열심히 참회하는 것입니다.
20, 권청법신상주(勸請法身常住)
법신이 오래오래 상주하기를 권청하라.
법신은 상주하고 있습니다. 본래 법신이 상주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법신이 오래 물기를
권청합니다. 법신이 오래 머물기를 권청한다. 법신이 오래오래 상주하기를 권청하라.
전부 이치는 똑같습니다.
하나로 꿰뚫습니다.
중도적인 안목으로 모든 것을 하되, 그렇게 알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21, 회향요무소득(迴向了無所得)
선근을 회향하되 얻을 바가 없음을 깨달으라.
선근을 닦아서, 선근회향이 참 좋은 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불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선근회향이다’ 그렇게 표현해도 조금도 틀릴 바가 없습니다. 한 80점짜리는 돼요. 선근회향이 불교다. 80점보다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소득, 얻을 바 없음을 깨달아라.
그렇게 선근회향을 해도 거기에 아무것도 얻을 바가 없다.
이 한 구절만 가지고도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싶네요.
그러나 회향해야죠. 선행을 많이 해야 됩니다.
제악막작중선봉행(諸惡莫作衆善奉行) 중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했잖습니까.
22, 수희복등진여(隨喜福等眞如)
본래로 복덕이 진여와 동등함을 따라서 기뻐하라.
누가 복 짓는 것, 그거 우리가 따라서 기뻐해야죠.
정말 따라서 기뻐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말세중생들은 성품이 본능대로 살기 때문에, 무슨 좋은 일을 말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고 자랑할 수도 없어요.
‘누가 좋은 일했다, 훌륭한 일했다’ 하면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없어요, 거의 없답니다. 열에 여덟은 좋아하지 않고, 한두 사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도 상당한 숫자로 봐야 됩니다.
내가 그동안 화엄경 강설을 쓰고 그것을 많이 공양 올렸습니다.
그때는 환희심이 나서 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내 신심나는 대로 여러 곳에 공양을 올렸었죠.
근데 이제 여러 해가 지나서 전번에도 말씀드린 바가 있는데 “스님 나머지 책들, <여천무비전집>이라고 해서 책을 정리해서 내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자꾸 옆에서 권해서 내기로 해서 지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돌려야 되는데 ‘무턱대고 돌릴 일이 아니다, 돌리면 그 책을 받고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그래요.
좋아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내가 보내고자 하는 곳에는 좋아할 사람이 별로 있지 않다, 제가 경험도 많이 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수희복등진여라.복이 진여와 같음을 따라서 기뻐한다.
수희(隨喜), 따라서 기뻐하는 것, 남이 좋은 일하고, 일 잘하는 것을 수희찬탄한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저 마음속 깊이까지 따라서 기뻐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23, 찬탄피아허현(讚歎彼我虛玄)
너와 내가 텅 비고 현묘하다는 것을 찬탄하라.
찬탄하다 누구를? 피아허현, 상대나 내가 텅 비어서 현묘하다.
텅 비었음을 찬탄한다.너와 내가 텅 비고 현묘하다고 하는 것을 찬탄한다.
알고 보면 너도 없고, 나도 없어요. 그냥 없는 게 아니죠.
그야말로 진공묘유입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 그것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24, 발원능소평등(發願能所平等)
주관과 객관이 평등하기를 발원하라.
주관과 객관, 능과 소가 평등하기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평등해야죠. 다같이 평등하기를 발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이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평등하지 않겠습니까.
25, 예배영현법회(禮拜影現法會)
그림자와 같이 나타난 법회에 예배하라.
영현법회에 예배한다, 우리가 지금 150여 명이 이렇게 동참해서 화엄법회를 열고 있는데, 내가 계산해 보니까 처음에 유튜브 화엄경 법문을 한 것이 2021년부터 했던가요.
지금까지 두 번째 돌아가고 있는데, 이 모든 법회에 정말 환희심을 갖고 동참을 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회야말로 영현법회입니다.
사실 대면법회도 영현법회예요.
그런데 이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 하니까 영현법회,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법회라고 하는 것이 더 실감이 납니다. 우리 법회야말로 진짜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법회입니다.
그러나 그림자 같은 법회인 줄 알고 거기에 아주 성심성의를 다해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미리 내가 여기 유튜브 방송을 열려고 보면 벌써 5분 전, 6분 전에 와서 기다리는 분들이 있어요. 기다리는 분들 이름이 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합니다. 영현법회인 줄 몰라서 하겠어요? 다 알고 합니다.
그런 줄 알고 예배하고 동참하고 열심히 법회 참석하고 예배영현법회라.
우리 불법은 부처님이 처음에 성도하시고 법회를 열었듯이, 부처님은 그 법회를 열려고 250km나 되는 그 먼 길을 일주일을 걸려서 그 험한 길, 바라나시까지 걸어와서 오비구를 모아놓고 법회를 열었지 않습니까.
거기서부터 법회가 시작해서 오늘 이 순간 27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오늘 이 순간까지, 그 법회가 불어나고 불어나서 이렇게 또 유튜브 방송법회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래요, 불교는 법회입니다.
법회를 통해서 모든 것이 해결돼요.
거기서 불교가 어떤 것인지 주고받고 알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또 많이 들어야 돼요. 딴 사람 법회도 많이 들어서 평가도 하고, 바른지 그른지 그런 것들도 감정하고, 도반들이 서로 모여서 평가도 하고, 토론도 하고 그래야 돼요.
사정없이 토론하고 평가하고, 그래야 됩니다.
26, 행도족섭허공(行道足躡虛空)
길을 가되 그 발은 허공을 밟는다.
길을 가되 그 발은 허공을 밟는다. 행도라고 하는 것은 탑을 돈다든지, 불상을 돈다든지, 아니면 법당을 돈다든지, 도량을 돈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명상을 하든지, 경을 외우든지, 염불을 한다든지, 화두를 들든지 하면서 가만히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량을 돌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잠을 쫓아야 하니까, 졸음을 쫓아야 하니까 그래요. 졸음 쫓는 공부가 행도(行道) 도량을 돌고 탑을 돌고 불상을 돌고 걷고, 틱낫한스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천천히 걸어다니는 모습 많이 보셨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옛날부터 있는 수행법인데 행도족섭허공이라, 행도(行道) 도를 행한다가 아니라, 길을 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발은 허공을 밟는다, 가는 것 없이 가라 그런 뜻이죠.
행선(行禪)이라는 말이 있지않습니까. 다니면서 하는 참선.
27, 분향묘달무생(焚香妙達無生)
향을 사르며 생멸이 없는 이치를 깨닫는다.
향을 사르며 생멸이 없는 이치를 깨닫는다.
우리는 향을 많이 사르죠. 부처님 앞에 향을 많이 사릅니다.
향이 피어오르면 계속 생멸이 거기서 일어납니다. 생하고 멸하는 생멸의 이치를 깨닫는 거예요. 생멸의 그 현상을 보는데 거기서 생멸이 없는 도리를 통달한다.
향을 사르며 생멸이 없는 이치를 깨닫는다.
묘달(妙達) 아주 미묘하게 통달한다. 좋은 표현입니다.
하나하나가 자세히 뜯어보고 곱씹고, 곱씹고 읽고, 또 읽고 써보고, 읽고 써봄으써 무상심심한 도리를 알게 됩니다.
그냥 이렇게 주마간산격으로 듣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제발 좀 곱씹고 곱씹고 천착하고 천착하고 읊조리고 읊조리고 그렇게 해보십시오.
28, 송경심통실상(誦經深通實相)
경전을 독송하는 것은 일체 법의 실상을 깊이 통달하는 것이다.
경을 독송하되 일체법의 실상을 깊이 통달하는 것이다.
경을 읽는 것은 심통실상이에요.
실상을 깊이 통달하는 이치입니다
모든 존재의 실상, 생명의 실상이 됐든지, 우주의 실상이 됐든지, 인생의 실상, 세간의 실상, 세상의 실상, 모든 실상을 깊이 통달하는 것이 경전을 공부하는 데 다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만선동귀중도송을 이렇게 읊조리는 것도 역시 실상을 통달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송경심통실상이다.
29, 산화현제무착(散華顯諸無着)
부처님 앞에 꽃을 올리는 것은 집착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산화(散華) 이것은 꽃을 흩다, 라고 되어 있는데 부처님께 꽃을 올리는 일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많이 있지만,특히 남방 불교에서 꽃을 많이 흩어요. 부처님 앞에 또는 스님들이 걸어가는 데 그냥 흩기가 좀 그러면 꽃을 꽂던지 똑같은 의미입니다.
산화하되 현제무착이다.
꽃을 올리는 것은 모든 것에 집착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꽃을 뿌리는 데 그게 어디 가서 붙나요? 다 떨어지죠. 무착이죠.
거기에서 무착의 도리를 드러낸다.
30, 탄지이표거진(彈指以表去塵)
손가락을 퉁기는 것은 먼지 같은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표현한다.
손가락을 튕기는 것은 먼지 같은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표현한다.
먼지 같은 번뇌를 제거한다.
탄지는 이표거진이라. 먼지 같은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손가락 한 번 탁 튕기는 그 소리에 번뇌가 탁 사라지는 것이죠.
31, 시위곡향도문(施爲谷響度門)
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은 바라밀을 베풀라.
시위, 바라밀을 베풀 때 곡향도문이라.
골짜기에 메아리와 같은 바라밀을 베푼다.
육바라밀을 닦는 데 그야말로 메아리 소리 울리듯이 그렇게 육바라밀을 행한다.
32, 수습공화만행(修習空華萬行)
허공의 꽃과 같은 만행(萬行)을 닦으라.
육도만행 우리가 그래요. 만행하면 으레 육도만행입니다.
그게 어떤 만행이라고? 눈병이 났을 때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헛것을 보게 됩니다.
헛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육도만행을 수습하라.
그런 육도만행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수습하라. 닦고 닦고 익히고 익히라.
육바라밀인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그것이 전부 허공꽃과 같은데 허공꽃과 같은 그런 육도만행을 열심히 닦고 닦고 닦아라.
33, 심입연생성해(深入緣生性海)
인연으로 생멸하는 본성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라.
인연으로 생기는 성품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라.
인연으로 생멸하는 본성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라, 성해(性海) 성품의 바다에서, 모든 것이 인연으로 생기죠. 그런 도리에 깊이 들어가라, 그런 도리를 깊이 알아라.
34, 상유여환법문(常遊如幻法門)
환영과 같은 법문에서 항상 노닐라.
항상 노닐라, 어디에? 환영과 같은 법문에 항상 노닐라.
환영과 같은 법문인 줄 알고 거기서 항상 노닙니다.
우리가 그런 격이죠. 우리가 그러고 있습니다. 그래야 돼요.
그렇지만 그야말로 제가 ‘콩나물 법문’ 이야기를 그전에 종종했는데, 콩나물을 키울 때, 물을 뿌리지 않습니까. 물은 다 새나갑니다. 새나가지만 아침 저녁으로 물을 이렇게 주면 콩나물은 언제 그랬는지 싹이 나고 쑥쑥 자라서 우리가 먹을 만치 콩나물이 됩니다.
그래 콩나물 법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영과 같은 법문에 항상 노닐면 아무 소득이 없는 것 같죠.
새나가야 됩니다. 잊어버려야 돼요.
자꾸 잊어버려서 안 된다고, 잊어버린다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한때 잊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근데 알고 보니까 새나가버리는 거예요. 그게 맞는 거예요.
잊어버리는 게 맞는 것입니다.
콩나물이 물이 새나가버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썩어버리죠. 바로 썩어버립니다.
새나가야 돼요. 잊어버려야 됩니다.
들은 것은 잊어버려야 되고 새나가버려야 됩니다.
상유, 그런 줄 알면서 항상 노닐어라. 법문 속에서 항상 노닐어라.
천 번 만 번 탄복하고도 남는 법문입니다.
35, 서단무염진로(誓斷無染塵勞)
본래 오염이 없는 번뇌[塵勞]를 맹세코 끊어라.
맹세코 끊는다. 무염진로 물들지 않는 오염이 없는 번뇌를 명세코 끊는다.
오염이 없는데 뭘 끊을 게 있겠어요. 그렇지만 끊어야 돼요.
그 번뇌, 참 골치 아픈 번뇌를 맹세코 끊어야 됩니다.
36, 원생유심정토(願生惟心淨土)
마음의 정토에 태어나기를 서원하라.
유심정토에 태어나기를 서원하라.
유심정토는 뭡니까? 오직 유아심, 오직 내 마음 정토, 오직 내 마음 정토 아닙니까?
내 마음 빼놓고는 아니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일체가 오직 내 마음이다.
일체가 오직 내 마음 정토다. 내 마음 극락이다.
내 마음 극락인 줄을 잘 알아야 돼요.
잘 알고도 거기에, 내 마음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라.
이런 이치도 ‘유심정토인데 무슨 서방 정토는 뭐냐?’ 하고 이야기거리가 많습니다.
37, 이천실제이지(履踐實際理地)
실제의 진리의 땅[實際理地]을 밟아라.
실제의 진리의 땅을 밟아라.
실제의 진리 땅이라면 우리가 늘 밟고 있습니다.
밟고 있는 줄 알지만 그러나 그것을 또 한 걸음 한 걸음 놓치지 말고 밟아라.
38, 출입무득관문(出入無得觀門)
얻음이 없는 지관(止觀)의 문으로 출입하라.
요즘 명상이 대세죠. 명상은 얻음이 없습니다. 명상 아무리 해봐야 뭘 얻습니까?
그렇지만 그 얻음이 없는 명상에 출입하라, 무득관문에 출입하라.
얻음이 없는 명상, 관문은 명상이라고 바로 번역해도 좋습니다.
얻음이 없는 관문에, 지관의 문에 출입하라.
열심히 출입해야 됩니다.
요즘 대세가 명상이다 보니까,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어요. 요즘 불교신문을 보면 총무원장에서부터 그저 ‘명상 명상’ 줄기차게 명상을 이야기하는데 불과 몇 년 안됐어요.
그렇듯이 또 몇 년 지나면 시들해질 겁니다.
명상법은 부처님 당시부터 늘 있었던 것인데 그렇게 유행을 탈 일은 아니에요.
유행을 탈 일은 아닌데, 반드시 우리 일상생활에 명상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무득명상, 무득관문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출입하라, 그런 뜻입니다.
39, 항복경상마군(降伏鏡像魔軍)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마군을 항복받아라.
항복받아라, 뭘? 마군을 항복받아라.
마군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된다? 거울에 나타난 그림자,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마군임을 알고 항복받아라.
우리가 거울 앞에 섰을 때 내 얼굴이 비치지요?
그냥 내가 조금 한 발만 옮기면 없어집니다.
한 발만 옮기면 없어지는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마군을 항복받아야 된다, 그럼에도 열심히 항복받아라. 항복받는 방법은 따로 이야기가 돼야 되겠지만요.
세존의 일생을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 해서 여덟 가지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데, 정각을 이루신 장면은 ‘정각을 이뤘다’고 표현하지 않고, ‘수하항마(樹下降魔)’라고 보리수나무 밑에서 마군을 항복받은 것으로 표현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각을 이루었다’ 그 순간은 없어요. 팔상성도에도 그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수하항마는 있습니다. 보리수나무 밑에서 마군을 항복받았다,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 참 신기한 표현입니다. 잘 생각해 봐야 돼요.
마군이 없으면 그대로 깨달음인데요 뭐.
전부가 우리 마음에 장애되는, 잘못 생각하는, 오해하고 있는 것, 잘못 생각하고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전부 마군입니다.
그것이 끝나면 그대로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수하항마라고 표현했습니다.
항복경상마군이라, 그 마군도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마군이다.
40, 대작몽중불사(大作夢中佛事)
꿈속의 불사를 크게 일으키라.
내가 멋진 표현이라고, 다 구절구절이 멋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만, 특히 몽중불사, 우리가 불사를 얼마나 합니까? 전부 부처님 일이죠.
유튜브 불사도 불사고, 불상을 만드는 것도 불사고, 등을 다는 것도 불사고, 행사를 하는 것도 불사고, 전부 부처님이 일이니까 불사입니다.
그런데 무슨 불사? 몽중, 꿈속에서 꿈꾸듯이 하는 불사다, 그런 줄 알고 크게 지어라. 대작하라. 크게 지어라, 몽중불사인 줄 알고 그 몽중불사를 크게 지어라.
어째 이런 표현을 했는지 영명 연수선사 같은 아미타불의 후신, 부처님 반열에 오른 조사스님들이 많습니다.
이름이 난 분들은 불과 몇명 안 되지만, 이름없이 왔다가신 불보살의 반열에 오른, 지혜와 자비를 가지신 분들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인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대승불교 경전이 거의 그 부처님 반열에 오른 불보살들이 결집한 것입니다. 부처님 반열에 오른 불보살이 대승경전을 그렇게 많이 저작을 하고 결집을 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남겨 놓은 것입니다.
영영 연수선사도 부처님 반열에 오른 분입니다. 아미타불 후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 반열에 오른 분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말이 나옵니다.
대작몽중불사(大作夢中佛事), 같은 표현을 해도 어찌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대작몽중불사, 우리가 불사에 많이 동참합니다.많이 동참해야죠. 그게 대작입니다.
몽중불사인 줄 알고 대작해야지요.
‘몽중불사를 나는 이렇게 동참하노라’
41, 광도여화함식(廣度如化含識)
환화(幻化)와 같은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라.
환영과 같은 중생들, 환화와 같은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라.
환화와 같은 중생들인데 뭘 제도할 게 있느냐?
그래서 널리 제도하는 것입니다.
42, 동증적멸보리(同證寂滅菩提)
적멸한 보리를 다 같이 증득하라.
마흔두 번째 게송이 동증적멸보리, 적멸한 보리를 다 같이 증득하라.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했다고 하는데, 시성정각 하는데 그게 뭐 손에 잡히는 게
있습니까?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까?
적멸보리입니다. 적멸깨달음입니다.
그런 보리를 다 같이 증득해야 됩니다.
그래서 동증적멸보리, 참 정말 기가 막힌 가르침입니다.
원문만 한번 다시 쭉 읽겠습니다.
*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법문이 있다니, 이렇게 훌륭한 법문이 있다니.
화엄경 반열에 오르고도 남습니다.
화엄경 반열에 오르고도 남는 훌륭한 법문입니다.
여러분들, 이 법문을 듣는 불자님들, 많이 사경하십시오.
지금 댓글로 잘 사경해서 올렸습니다만 노트에다가 끊임없이 사경하십시오.
이걸 한 천 번쯤은 사경해도 절대 결정코 손해보지 않는 일입니다.
대작몽중불사입니다.
대작몽중불사인줄 알고 그렇게 사경합시다.
*
이렇게 자리를 빛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훌륭한 법석에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분들 각각등보체, 이 훌륭한 법석에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분들 각각등보체 ‘중도송을 읽고 계시는 큰스님의 모습에 뭉클해지네요’ 그렇습니다. 제가 아주 너무 감동입니다. 너무 감동이에요.
이런 불법은 나이가 들수록 깊이가 더해져요. 마음속에 깊이깊이 스며드는 심도가 달라집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성불하십시다.
자비(慈悲)로 지으시다
화엄경 몽중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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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만선동귀 중도송' 같이 올려 주셔서 더 더욱 고마운 법회입니다 고맙습니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오늘은 볼 일이 많아서... 나중에 읽어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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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