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설렁탕, 갈비탕, 육개장, 따로국밥, 내장탕 등 갑판장은 육고기를 왕창 넣고 끓인 탕국을 좋아합니다. 앞서는 쇠고기 위주로 나열했지만 순댓국이나 삼계탕 등 돼지나 조류도 역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즐겨 먹습니다. 지리나 매운탕 등 생선 역시 바다나 민물에 상관없이 좋아합니다만 아무래도 강구막회에 몸을 담고 있다보니 아무 때라도 먹을 수 있는 환경이라선지 예전보단 덜 합니다.
다른 메뉴들에 비해 설렁탕은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많아 찾아먹기가 수월한데 지난 십수년 사이에 유명세를 떨치던 식당들이 차례로 원산지를 속이는 등 불미스런 일들로 회자 되었기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지만 그들은 실수가 아닌 고의로 손님을 기만하였기에 갑판장의 리스트에서 차례로 삭제를 해버린 것 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갑판장의 입맛이 바뀐 것은 아니니 대안을 찾아 나설 수밖에요. 집에서 불을 때서 직접 만들어 먹으면야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불운하게도 마눌이 그 딴 것들(괴깃국)과 그닥 친하질 않습니다. 또 갑판장도 같은 음식을 거푸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라 합니다.
최근에 갑판장이 맛 본 육고기가 든 탕국 증에서 으뜸을 꼽자면 지난 여름휴가 때 나주 노안집에서 맛 본 곰탕입니다. 곰탕만 따진다면야 뭉툭 썰어넣은 고기며 어지러운 지단에 듬뿍 뿌린 참깨까지 투가리에 담아낸 뽐새가 촌스럽기 그지없고 그 맛도 일부러 서울에서 나주까지 원정가서 먹을 만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요래 촌스런 곰탕이 역시나 촌티나는 묵은지스런 배추김치와 만나면 환상적인 맛을 냅니다.
노안집의 할매께 여쭤보니 배추김치는 멸치와 새우를 베이스로 여러가지 생선을 섞은 잡젓으로 담근답니다. 겉보기엔 곰삭은 듯 보이지만 묵은지는 아닙니다. 넉넉하게 넣은 잡젓 탓에 흡사 밤젓(전어속젓)스러운 냄새가 풍기고 과한 숙성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에 이런 맛에 익숙치 않은 타지인들에겐 첫 맛이 '맛 없음'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본 음식과의 어울림을 제대로 경험을 한다면 '이 맛이 바로 남도의 맛'이지 할 겁니다.
타지에서 온 손님들은 잡젓김치의 꼬릿한 겉모습에 놀라 별 기대를 안 하는 눈칩니다. 기껏 작은 조각을 골라내어 맨입으로 맛만 보곤 이내 양미간을 찌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일 뿐입니다,
마늘, 고추, 상추, 깻잎 등을 맨입으로 먹으면 그 맛이 맵고, 아리고, 씁스레해서 진저리를 치겠지만 삼겹살구이와 곁들여 푸짐하게 쌈을 싸 먹으면 그 맛이 기똥차다는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삼겹살을 먹어 본 사람(외국인 포함)이라면 누구든 동감을 할 것 입니다.
나주곰탕과 배추김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으로는 별 맛이지만 함께 어울리면 기대이상의 맛을 냅니다. 갑판장의 마눌과 딸아이도 맨입으로 잡젓김치를 맛 보곤 두 번 다시 눈길도 안 주고 그 옆에 놓인 평범한 깍두기만을 반찬삼아 곰탕을 먹으며 휴가지에서의 소중한 한끼를 요래 날리는구나 하는 표정을 분출했었습니다.
"그러지말고 아빠 말 한 번만 들어 봐. 먹는 것에선 아빠 말 들어서 손해 본 적 없었잖아. 국밥을 뜨고 그 위에 김치 한 조각을 얹어서 같이 먹어 봐." 딸아이가 미심적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아빠 말대로 한 수저 푹 떠서 먹더니만 이래 말을 했습니다. "먹을 만 하네." 그 후로 젓가락을 연신 김치로 날리더군요. 암튼 이 날 갑판장네가 이 집 김치를 여러 보시기 동냈습니다.
동남아 음식 중에 쇠고기양지탕에 말아먹는 쌀국수가 있습니다. 이 음식 역시 까나리액젓스런 피시소스로 향과 맛을 보테면 한층 개운하며 감칠맛이 돌아 아주 맛깔납니다.
서울에도 나주를 표방한 곰탕집들이 있지만 나주의 것에 비해 빈약한 내용물과 그닥 나주스럽지 않은 김치 탓에 갑판장에겐 별 감흥이 없습니다. 하기사 서울은 제반여건이 나주와 다르기에 똑같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겠습니다. 서울에서 이런 곰탕을 맛볼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입니다.
첫댓글 경상도 출신으로 '할마씨'는 할머니를 비하해서 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할매로 수정했습니다.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