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 신시도 월영봉(198m), 대각산(187m) 섬산행 (1)
2011. 3.27(일) 전북 군산 옥구읍 소재
산행코스 및 구간별 소요시간 12km, 3시간 50분(중식시간 포함)
동해 출발/01:10-신시도 배수갑문 주차장/07:00-산행시작/07:15-월영재/07:23-월영봉(197m)07:35/07:50-
미니해수욕장/08:16-136봉/08:38-대각산(187m)08:50/09:15-로프설치지대/09:22-122봉/09:29-
마을 입구 등산안내판/09:38-안골저수지/09:50-중식(월영재 아래 지점)/10:00/10:50-월영재/10:54-배수갑문 주차장11:05
<산행지도>
새만금방조제로 인하여 육지와 섬이 연결되어 최근 신시도의 월영봉과 대각산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일반여행사에서도 별도의 새만금방조제 관광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해에서는 먼거리이지만 무박산행으로 실시한다.
새벽 1시 10분경 동해를 출발하여 신시도로 향한다.
가는 도중 3차례의 휴식과 준비해 온 아침식사를 하고 06:40이 되어서 새만금방조제로 들어선다.
비응도와 야미산을 잇는 제4호 방조제를 따라 멀리 야미산이 바라 보인다.
우측으로 야미산을 지나고 멀리 왼쪽의 신시도의 월영봉과 좌측에 대각산이 바라보인다.
신시도는 군산시 옥구면에 있는 섬으로 군산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정도 가야되는데 새만금 방조제의 연결로 차를 타고 바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최장의 33Km 군산 새만금방조제 중간지점에 위치한 신시도는 월영봉(月影峰,198m)과 대각산(大角山,187.2m)이 있고,
면적 4.25㎢로 고군산군도의 섬 중 가장 면적이 넓은 섬이다.
해발은 낮지만 독특한 비경을 뽐내는 고군산군도를 조망하며 암릉으로 이루어진 월영봉과 대각산을 품은 신시도 종주산행과
두바이의 기적을 이뤄 낼 새만금답사, 그리고 청정지역에서 잡은 자연산 회를 맛볼 수 있어 일석삼조다.
07:00 신시도 배수갑문 주차장에 도착한다. 바로 앞에 월영봉이 마주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지라 우리 이외는 다른 산악회는 보이지 않았다.
신시도의 월영봉은 신라시대의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일시나마 살았던 곳으로 더욱 유명한 섬이다.
최치원 선생이 신치단에 단을 쌓고 글을 읽었는데 그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고운 최치원은 명필로도 유명하여 그의 난랑비서문은 신라시대의 화랑도를 해설해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신시도에는 한국유학의 대학자 전간제(1841-1922년) 선생이 한동안 머물면서 흥학계를 조직 한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또한 신시도의 월영봉은 선유팔경 중의 하나로 월영단풍으로 유명하다.
월영단풍이란 가을철 신시도에 있는 월영봉 앞바다를 지날 때면 단풍에 물든 월영봉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이다.
신시도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임씨할머니 전설이 있는데 최고 상봉인 월영봉(月影峰,198m)과 건너편에는 대각산(大角山, 187.2m)이 있다.
간단한 산행전 체조후 산행을 시작한다.
등산지도상의 산행코스는 철계단을 지나 141봉을 거쳐 168봉, 199봉을 지나 월영재로 오르도록 표기되어 있으나
산행코스는 199봉이 암릉의 절벽이라 입산을 금지하고 있어 배수갑문 주차장에서 바로 월영재로 오르도록 되어 있었고
등산로 입구에는 신시도 등산안도가 이를 알려 주고 있었다.
신시도 배수갑문 주차장에서 월영재로 오르는 구간이다.
소요시간은 8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조금 가파른 오름길이다.
07:23 쉼터가 마련된 월영재에 도착한다.
199봉으로 이어지는 등로와 안골저수지로 이어지는 등로 그리고 월영봉으로 이어지는 삼거리인셈이다.
월영재에서 월영봉과 대각산으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월영봉을 향한다.
곧이어 나타나는 것은 주상절리의 바위이다. 한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월영봉에 이르기전 작은 암봉에서 고군산군도와 버로 앞의 122봉과 우측으로 대각산이 바라보이기 시작한다.
고군산군도는 유인도 16개와 무인도 47개 등 63개로 이루어진 섬의 군락이자
자연이 창조해낸 수려한 비경을 빚어내는 선유8경을 자랑하는 천혜의 해상공원으로 관광지로 개발된 선유도에 배를 타고 들어가면
연륙교로 이어진 장자도, 무녀도를 도보나 자전거로 섬지역의 문화와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신라 초기에 섬 주변의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하여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신라시대에는 문창현 심리,
또는 신치로 불리어 오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신시도로 개칭하였다.
최고점은 대각산(187m)으로 북서쪽에 솟아 있고, 남동쪽에 신치산(142m)이 솟아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연근해에서는 새우·멸치·갈치·고등어 등이 잡히며, 김 양식이 활발하다.
고려시대에 쓰여진 고려도경에는 중국사신이 고군산군도에 도착하니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이 사신을 영접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송산행궁이라는 외국사신을 영접하는 건물이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외국과의 무역과 외교의 중요한 길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군 만호영을 설치하였으나, 왜구가 고군산군도를 우회하여 금강하구를 노략질하자,
그곳에 있던 수군기지를 진포만(현 군산시)으로 옮긴 뒤부터 고군산으로 부르게 됐다.
07:35 월영봉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 표시와 돌탑이 정상임을 말해주고 있다.
월영봉 정상에서 대각산으로의 등로는 돌탑 뒷쪽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돌탑 앞쪽으로 산행리본이 걸려 있어 5분여간 내려가다 보니 접근금지라는 표시가 나타났다.
잘못 길을 들어 선 것이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와 돌탑 뒷쪽으로 나아 가니 대각산으로 이어지는 등로와 산행리본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월영봉에서 대각산 가는 등로의 신시도 초등학교 최기휘의 '바람 열린 너울길'과
박지성의 '두고 온 세상 옷깃" 표시판
(처음에는 신시도초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각산과 대각산 이르기 전의 미니해수욕장 전경
122봉과 대각산 전경(122봉과 월영재를 잇는 방조제)
122봉과 대각산 사이의 안골저수지와 방조제 앞의 섬은 백포섬이다.
또 하나의 표시판이 나타난다.
신시도 초등학교 박예은의 '보이는 저 마음 들' 등
순수하고 어린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방조제 앞의 백포섬(가운데)
심봉섭 부회장이 이야기 하는 석유시추선(?)이란다.
세번째의 표시판
신시도초등학교 김예은의 '마음 안 하늘 향기'
월영봉에서 대각산으로 이어지는 산 허리 공사중
무엇을 만드는지 몰라도 좁은 등로가 넓다란 무엇으로 바뀔지?
08:16 미니해수욕장(일명 몽돌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오랜 세월과 파도로 돌의 모양은 납짝하다.
미니해수욕장에서의 모두의 마음은 어린마음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물장구라도 치면서 시간을 보낼텐데---
미니해수욕장에서 대각산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하나의 노란 산행 리본이 걸려 있어
등로를 알려주고 있었다.
대각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암릉이다.
대각산은 용의 형국으로 산 동쪽에는 무등산 서석대와 입석대를 방불케 하는 바위들이
큰뿔처럼 뾰족뾰족한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대골산 또는 대각산(大角山)으로 불려졌을 거라고 전해지고 있다.
♣ 고군산(古群山)의 유래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전 고려초의 이야기로 부안땅의 하서면 장신포라는 어촌에 곽씨(郭氏)노인이
혼자된 과부며느리와 손자 하나를 데리고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부근에는 자그마한 고을이 셋이 있었다.
어느날 한 도사가 찾아와 그 노인에게 일러주는 말이 뒷산에 있는 장군석으로 깍아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세운 돌사람 코에서 피가 흐르는 날에는 부근 일대가 망망한 바다가 될 것이니
주의하여 살펴보았다가 피가 흐르면 지체없이 멀리 타관으로 피난을 가야 안전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 도사는 사라져 버렸다.
그 노인이 손자를 등에 없고 매일같이 장군석 코에서 피가 흐르는지를 살피고만 있어서
며느리는 어리석고 우습다고 생각되어 어느날 시아버지 하는 모습을 구경해 보려고
남몰래 장군석의 코에 빨간 물감을 칠하였다.
이것을 본 노인은 “바로 그때가 왔다”면서 피난가기를 재촉하였으나
며느리는 자기가 한일이라고 태연히 웃기만하고 떠나기를 거부하였다.
이러자 노인은 손자만 데리고 한없이 떠나갔는데 부근 3개의 고을은 말할 것도 없이
노인이 거주하던 마을도 순식간에 망망대해로 변했으며
때를 같이하여 고군산 바다로부터 솟아올라와 생긴 것이 고군산 군도라는 것이다.
그 노인이 그 땅에 영주하면서 지금의 곽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대각산 직전의 고군산군도가 바라보이는 136봉 정상에서
신시도리의 진데섬(앞의 두개 섬에서 오른쪽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