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부쟁이
임병식
산책길에서 발에 차인 쑥부쟁이를 내려다보다가 얼마 전에 부모님 산소에 설치한 상석(床石)을 떠올렸다. 상석 설치가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새겨놓은 어떤 자손의 이름이 눈에 많이 밟혔었다. 부모님 돌아가신 지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니 고인이 된 자손들이 몇 명 있는데 눈에 밟힌 한 사람의 이름이 새삼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것은 경자(敬子) 누나. 갑자기 아픈 곳도 없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여 결혼도 하지 못하고 후손도 남기지 못했다. 나와는 네 살 터울의 손위 누나였다.
내가 발에 밟힌 쑥부쟁이를 보고 누나를 떠올린 건 살아온 삶이 영락없는 쑥부쟁이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쑥부쟁이는 어디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다. 좋은 터전을 탐하지도 않고 씨가 날려서 뿌려진 곳에 잘도 자란다. 발에 밟혀도 금방 일어나고 땅바닥이 갈라져도 좀체 시들지 않는다.
쑥부쟁이를 닮은 누나는 그러나 외양으로 보기에 강건한 체구와 달리 허약했던가. 마음이 여리거나 가슴속에 깊은 병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꽃다운 스물세 살 나이에 쓰러져서 눈을 감고 말았다. 그 이전에는 감기 한번 걸린 것을 보지 못했고, 부지런함이 유난하여 집안일을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집 안 청소며 식사 준비는 물론, 일손이 달리면 지게까지 지고 나서 논밭 일을 거들었다. 그런 틈틈이 통학 거리가 멀어 새벽밥을 먹어야 하는 동생을 위해 밥을 지어주고 옷가지를 챙겨주었다. 그런저런 일을 생각하면 얼마나 바지런하고 정성스럽게 보살펴주었는지를 은공을 갚을 길이 없다.
누나는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였다. 공부에 흥미를 못 느껴 국민학교를 서너 해 다니다가 말았다. 대신에 호미를 들고 밭일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부지런하고 욕심이 많아 논에서 우렁이나 강에서 다슬기를 잡아도 나보다는 항상 배 이상을 잡았다.
누나를 떠올리며 늘 쑥부쟁이 같다고 생각했다. 생활력이 강하여 무엇이나 척척 해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쑥부쟁이는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줄기가 밟혀도 잠시 혼절할 뿐, 다시 고개를 털고 일어나 빳빳하게 꽃대를 세운다. 쑥부쟁이가 누나를 닮았는지 누나가 쑥부쟁이를 닮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 쑥부쟁이를 보면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왠지 낯선 식물 같지가 않고 이웃에 살던 수더분한 누나나 이모 고모 같은 생각이 든다.
전에 이웃에 살던 누나 이모 고모들이 그렇듯이 쑥부쟁이 한테도 이웃사촌이 많다. 구절초, 개망초, 씀바귀, 고들빼기, 벌개미취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생태가 비슷하기도 하고 연한 순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는 거로 보아 같은 계통의 식물로 생각된다.
쑥부쟁이는 잎에 톱니가 있고, 뒷면은 며느리밑씻개처럼 거친 솜털이 돋아있어 훑으면 씀벅거린다. 그것을 보면 밟으면 밟히기는 하나, 건드리면 가만있지는 않겠다는 자존심이 느껴진다. 함부로 대했다가는 줄기에서 나오는 쓰디쓴 유액처럼 본때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상석에 적혀있는 후손을 보니 모두 32명인데, 아직 결혼하지 않는 자손을 제외하고는 누나만이 외톨이다. 그것이 가슴을 찔렀다. 그리된 연유는 무엇일까. 무엇이든지 세상에는 완벽한 것은 없고, 무언가 흠집을 남긴다는데 누나는 페르시안 돗자리처럼 그렇게 흠결을 남겨놓은 그런 흔적이었을까.
비록 살아생전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간 누나지만 살다간 뜻과 의미는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백 년 천 년을 살 것처럼 바쁘게 살면서 짧은 생을 통해서 인생을 덧없이 보내며 허비하지 말라는 본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나의 눈에는 그렇게 허망하게 떠난 누나가 ‘내가 안 좋은 업보는 모두 가져가니 잘들 살아라’라고 하는 것만 같아 길거리서 만난 쑥부쟁이에서 누나의 환영이 비쳐 새삼 발걸음을 멈칫하며 잠시 머물렀다. (2024)
첫댓글 누나, 누님이라는 낱말은 제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지요 미처 인생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요절하신 누님에 대한 선생님의 아픈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아 한 떨기 쑥부쟁이로 끈질기게 피어나는군요 제게도 누님이 있을 뻔했는데 제가 나기도 전 어린 나이에 죽었다고 하지요
쑥부쟁이는 하찮은 식물인데 생명은 강하지만 근성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쓴맛을 풍기고 훓으면 뒷면의 가시가 따끔하기도 하지요.
어느날 부터 나는 이 쑤부쟁이에서 누나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살아온 생애가 너무나 안타깝고 끈질긴 무언가를 늘 보았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