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신명기계 역사서 -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
우리가 읽는 성경의 목차를 다시금 살펴봅니다. 성경의 첫 다섯 권인 오경이 위치하고, 그 뒤를 이어서 오경과는 장르가 다른 역사서가 등장합니다. 역사서는 약속의 땅에 진입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여호수아기, 또 약속의 땅에서 살아갔던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판관기,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과 같이 임금을 갖게 되고, 왕정(王政)의 시작을 알려주는 사무엘기, 다윗 가문의 임금들이 통치했던 시대와 바빌론에 의한 멸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열왕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여호수아기부터 열왕기 하권은 약속의 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입니다. 이 네 권의 책을 우리는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부릅니다. 역사서는 역사서인데 신명기라는 이름이 붙는 것을 보면, 신명기와 연관성이 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참고로 판관기 다음에 위치한 룻기는 신명기계 역사서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신명기의 중심 신학이 기억나시지요? 바로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가르침입니다. 또한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면 축복을 받고, 거스르면 심판과 벌을 받습니다. 얼핏 보면 협박조의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협박이 아닌 축복의 보증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여정 속에서 하느님 말씀을 충실하게 따르겠노라고 고백하면서, 손바닥 뒤집듯이 하느님을 배신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이기에 모세는 그들이 걱정이 되었고, 부디 축복받는 길을 선택하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언으로 남깁니다. 그러므로 모세 이후의 이야기는 바로 모세의 마지막 유언이 담고 있는 축복의 선택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러한 신명기의 주제는 신명기에서 끝나지 않고, 뒤이어 등장하는 역사서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약속의 땅에 진입 → 정착 → 왕정 →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신명기 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주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이끌어주십니다. 반면에 하느님이 아닌 이방신을 섬기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이방 민족의 침입을 받아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흥망성쇠의 기준은 바로 하느님의 계명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라는 명칭은 이렇듯이 신명기의 신학적 사상을 주된 관점으로 하여 하나의 역사서를 구성하는 책들을 지칭합니다. 신명기는 오경의 결론이 되면서 동시에 역사서의 서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지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가 중점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웅들의 승리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들이 신명기에 제시되어 있는 ‘모세의 율법(토라)’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내려진 축복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와 반대로 좌절과 절망의 이야기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게 된 심판이라는 해석을 보여줍니다.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왕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율법에 대한 순종의 의무가 이스라엘 안에서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성경의 작품들이 바로 ‘신명기계 역사서’입니다.
오경은 약속의 땅 밖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면, 역사서는 약속의 땅 안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역사서가 현대적 의미에서의 역사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역사에 대한 자세한 기술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들을 역사에 관한 신학적 이론에 맞게 제시한 책이 성경의 역사서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역사’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 체험의 장소였습니다.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사건을 우리는 계시 사건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계시가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장소가 바로 역사입니다.
우리들에게 삶의 자리가 있지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리,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역사입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삶의 자리가 바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라는 사실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곳에서 하느님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반복되는 매일이고,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우리 삶의 자리가 바로 하느님과 내가 만나는 장소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가르침에 충실해보자는 작은 결심을 세워보면 참 좋겠습니다.
[2019년 9월 1일 연중 제22주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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