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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어찌 할거나...
글 : 문주란
부모님의 크신 은혜 하늘 같이 높으건만,
청춘 남녀 많은 중에 효자 효부 없는 세상.
시집가는 새악시는 시부모님 싫어하고,
장가드는 아들네는 살림나기 바쁘도다.
제 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의 훈계하면 듣기 싫어 성을 내고,
시끄러운 아이 소리 듣기 좋아 즐겨하며
부모님이 두말하면 잔소리라 빈정된다.
자식들의 오줌똥은 맨손으로 주무르나
부모님의 가래침은 더럽다고 밥 못 먹고,
고급 과자 들고 와서 아이 손에 쥐어주나
부모위해 고기 한 근 사올 줄은 모르도다.
개가 앓아 누우면은 가축병원 달려가나
늙은 부모 병이 나면 짐스럽게 여기도다.
열 자식을 키운 부모 하나 같이 키웠건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한결같이 귀찮다네.
자식위해 쓰는 돈은 계산 없이 쓰지만은
부모위해 쓰는 돈은 계산하기 바쁘도다.
자식들을 데리고는 호화호식 자주하나
늙은 부모 위해서는 외출할 줄 모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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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 8월을 보내며...”
글 :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8월이 가는 한 달의 맺음 날이다.
여름의 끝 날이라는 생각도 든다.
6,7,8월은 여름이라는 관념으로는...
그 무더운 더위, 그토록 많은 비의 내림,
8월의 한 달은 참 길었다.
내내 밝아오지 않는 생의 시간들처럼 ...
어둠이 내리고 아픔이 머물기도, 절망이 오고 희망이 멀어지기도,
고독이 밀려오고 슬픔이 찾아오기도 했다.
8월은 그렇게 머물다 우리 곁을 떠난다.
살아가는 인생의 한 단면처럼...
8월은 다시 돌아오고, 생의 시련도 다시 맞이해야 하더라도
오늘 8월을 보낸다.
우리는 때때로
그렇게 과거의 것들을, 지나가는 것들을 보내야 한다.
기쁨과 고마움도, 고통과 비탄도 함께 ...
우리가 보내고 흘러가게 하는 것들이 어둠, 시련이라면 좋다.
상처, 미움이면 좋다. 힘듦, 어려움이면 좋다.
슬픔, 고통이라면 더 좋다.
그 모든 부정의 것들이라면 더욱 좋다.
그렇게 보낼 수 있는 것들이라면...
보내고 흘러가게 해야 하는 것들이 과거 속에 묻혀 있고,
우리들 삶의 발전, 성장에 걸림이라면
우리는 과거의 것들을 보내야 한다.
우리는 지난날의 시간들도 보내야 한다.
아무 것, 어느 것도 남기지 않은 채 …….
무엇도, 무슨 사연도 저장해두지 않고 ...
때때로 우리는 많은 것들 앞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언제 어느 날들에 만나고 겪었던 것들에서 놓아 보내지 않고,
흘러가게 하지 않으며, 용서하지 않은 채
고통과 아픔의 눈물을 꼭꼭 간직한다.
비탄과 찬탈의 기억을 내내 저장해둔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에서 다시 보내는 8월의 맺음 날,
나는 나에게 속하고 내가 지녀온 많은 것들을 보내야 함을 생각한다.
그토록 내가 가지고 쌓여온 이날까지 지녀온 비우고 버리며 떠나보내야 할
그 모든 부정의 유형, 무형한 것들,
그 모든 존재의 어둠, 고통, 아픔,
그 모든 살고 지녀온 힘듦, 어려움들도 ...
이제는 지금은 보내야 한다. 흘러가게 해야 한다.
‘굿 바이(Good-bye)!’라고 말해야 한다.
‘어제여, 안녕!’ 을 말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고, 새 삶은 새 마음을 지녀야 하며,
새 영은 새 육신으로 가져야 하고, 새 빛은 새 생활로 옮겨가야 한다.’
나는 이아침에 떠나가는 8월을 보내며 새로운 꿈을 꾼다.
그것은 보내는 이의 꿈, 새로운 것들에 대한 꿈,
새 마음, 영, 삶에 대한 꿈이다.
문득 오늘 아침 말씀이 나의 아침 창가에 다가와
내 작은 마음 곁에 앉아있다.
‘깨어 있으라.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고,
그 때와 그 시각은 누구도 알 수 없으나,
그 날 그 시간은 꼭 다가오리니 ...‘
8월이 간다. 8월이 떠나간다.
어둠 버리고 기쁨을 위해, 절망 버리고 희망을 위해,
슬픔 버리고 평화를 위해 한 계절이 떠난다.
인생의 한 날들이 떠난다.
삶의 한 절망들도 떠난다.
나는 오늘 8월의 맺음 날에 보내고 흘러가야 할 것들을,
떠나고 떠나게 해야 할 것들을 보내면서 곧 높아갈 하늘을 본다.
이내 풍요로울 땅을 꿈꾼다.
- 신부님의 '영성의 물가‘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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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일 (나해)
2015. 8. 2
요한 6, 24 ~ 35
♠ 복음 연구
* 24~26절 : "진실로 진실로" 란 말은, 그 장차 말씀하시려는 사실의 중대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무리가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그를 영적 메시야로 바로 안 까닭이 아니다. 그들은 빵을 위하여 따라 다녔던 것이다. 곧, 그들은, 5천명 이상의 무리에게 빵을 먹이신 그 이적에서 그리스도의 증표를 깨달음보다 물질적인 빵에 흥미를 가졌다. 인간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육체적 만족을 위하는 때가 많다. 그것은 인간의 부패성의 결과이다.
* 27절 :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 "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적인 능력을 가리킨다. "인자"는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바, 그가 살과 피를 희생하셔서 속죄하여 주시므로 영적 생명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임하게 된다. "인정하셨기 때문이다"는 뜻은, 예수님을 구주로 세우시고 인정하시고 신임하셨다는 뜻이다. 이런 구주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하느님보다 높다는 참람한 죄악이요, 하느님을 거짓말 하시는 이로 여기는 죄악이다.
* 28~29절 : "그분께서 보내신"은 무슨 내용을 가진 신앙인가? 그것은, (1) 하느님을 신임하는 믿음, 하느님의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불신임하는 것이니 하느님을 모독하는 큰 죄이다. (2)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완전히 계시하시는 살아 계신 신이심을 믿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인간으로 보내신 것은, 인간과 깊은 교제를 가지시기 위한 최고의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3) 하느님 자신을 인간의 눈과 귀로 친히 보며 듣는 것과 같이 믿음.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하느님 자신을 받아 가진 자이니, 그로서는 하늘의 하느님을 보겠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 30절 : 일찍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 곧, 신학적 문제에 접촉하였고, 이제 갈릴리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문제 곧, 구원론에 접촉하여 각각 불신앙을 나타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메시아이신 사실을 보여주시는 "표징"을 행하셨으나, 그들은 그것을 통하여 표징의 내용을 깨닫지 못하였다.
* 31~34절 : 이 어귀가 그 "빵"을 가리켜 그 영성과 그 영원성과 생명성과 및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인 사실을 고조한다. "하늘에서 내려"란 말씀이, 이 부분 예수님의 교훈에 일곱 번 나온다. 그 만큼 이 말씀은 그 빵의 특이한 성격을 보여준다. 곧, (1)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인 만큼 광범위한 세계에 분배된다. (2)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불멸의 생명을 주는 것이다. 만나는 영양을 줄 수 있었으나 하늘의 빵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3) 만나는 보이는 하늘에서 내려왔으나, 생명의 빵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내려온다. (4)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란 말은 계속적으로 내려오는 활동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양식은 사실상 모든 시대를 통하여 끊임없이 내려온다.
* 35절 : 우리가 음식 먹기를 계속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일을 계속해야 된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신 동시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믿는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 복음 요약 : '하느님의 빵'이란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해석하십니다. 첫째로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만나를 주셨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를 ‘해방자’, ‘구원자’로 여겼고 모세가 약속한 메시아적 예언자도 모세처럼 만나를 먹도록 해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모세를 통해 만나를 주신 분이 곧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모세를 능가하는 분이심을 시사한 것이다. 둘째로 과거형 ‘주었다’를 현재형 ‘준다’로 설명한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도 탈출기나 만나를 과거 사건으로만 여기지는 않았고 앞으로 오게 될 메시아 시대와 연관시켰던 것이다. 예수의 현재형 언급은 바 그 시대가 지금 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로 예수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주시는 빵은 참된 빵이라는 것이다. 이 ‘하늘의 빵’은 우선 만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빵임을 시사하고 실제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빵으로서 새로운 빵임을 뜻한다. 특히 참된 빵이란 말은 하늘의 빵이 만나의 의미를 참으로 성취하고 신적인 본질 생명으로 충만한 빵이라는 것이다.
♠ 대화 방향 : 성서형제회에서 공동식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람들과 맺으신 계약을 확고하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자들과 함께 식사하신 사건을 현실화시키는 사랑의 일치라고 말합니다. ① 우리는 혹시 우리 끼리만의 잔치를 한 것이 아닌지요? ② 누가 하느님이 지으신 소중한 분이신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야 합니다. 흔히들 어머니는 가장 아픈 자녀를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이를 생각하면서 이것들이 내 삶 안에서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니면 어떤 걸림돌이 되는지를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200주년 성서주해서 ▪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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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일 (나해)
2015. 8. 9
요한 6, 41 ~ 51
♠ 복음 연구
* 41~42절 :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며 인자라는 그분의 주장이 대해 서로 투덜거렸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 베풀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인자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그분이 자기들과 함께 나자렛에서 사신 분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43~44절 : 예수님은 당신이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지 따지는 유다인들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이 세상에 파견하셨다고 대답하셨다. 이어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는 이들만 당신을 믿고 따를 수 있다고 이르렀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움직여 하느님 아버지의 자애로운 인도에 순응해야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다. 예수님은 그들이 당신을 믿고 따르면 부활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 45~47절 : 하느님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가르침을 심어주신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하느님이 말씀하시고 의도하시는 것을 내적으로 체험한다. 그분은 당신의 법을 아들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드러내고 알아듣게 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곧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이들만이 아버지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과거에 하신 말씀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성령을 통해 당신의 모든 백성에게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해 베푸시는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
* 48~51절 :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빵인 당신을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희생 제물로 바치신 당신의 몸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으로 주신다. 이 빵을 먹는 이는 바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고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받는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희생 제물로 바친 당신 몸을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내어 주신다.
♠ 복음 요약 :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신적 세계인 하늘에서 온,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스스로를 밝히신다. 그러나 그분의 부모를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왔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원인은 그들이 예수님의 출생을 알고 있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인간적인 것을 아는 것 외에는 더 볼 수가 없었다. 신앙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은총의 힘없이는 안 된다. 하느님만이 예수님이 당신의 외아들이며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보내진 분임을 가르쳐 주실 수 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우리가 먹어야할 그 빵은 예수님의 살, 즉 예수님의 몸이다. 살이란 구체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세상은 예수님이라는 인간 존재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표현이다. 예수님은 당신 몸을 음식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봉헌할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언급한 것이며 성체성사에 대한 언급이다.
♠ 대화 방향 : ①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음식이 예수님 당신 자신이심을 믿기 때문에 날마다 미사에 참여한다. 미사 때마다 하느님의 생명을 체험하는지 생각해봅시다.
② 우리는 성체성사로 예수님과 일치하고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간다. 나는 누구의 빵이 되어 그의 그리스도가 될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말씀의 등불 (가톨릭신문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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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나해)
2015. 8. 16
요한 6, 51 ~ 58
♠ 복음 연구
* 51~52절 :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영원이란 말을 우리는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실감나게 이해하지 못한다. 당시에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 서 있던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 53~55절 :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얼마나 간절하게 그들이 알기를 바라셨는지 ‘진실로 진실로’ 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반복하신다. 이렇게 ’진실로 진실로‘ 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시는 구절은 성경의 핵심인 요한복음 6장뿐이다.
* 56~57절 : “ 내 살을 먹고 매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의 핵심이다. 그리고 성체성사의 근원을 이루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 58절 :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결론을 말씀하신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6절은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말씀이고, 58절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시는 말씀이다...
♠ 복음 요약 : 예전에 강론으로 유명한 새 신부님이 계셨다. 어김없이 1년 지나면 다른 곳으로 발령 나는 것을 알기에 퇴근길에 저녁식사도 거른 채 , 그분이 집전하시는 저녁미사에 자주 참석했다. 그분이 언젠가 만났던 개신교 목사에게 대화를 나누면서 물어 본 말이 ‘요한복음 6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이었다. 개신교에서는 성체성사가 없기에 설교에 모든 중점을 둔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이 세우신 성체성사에 모든 중점을 둔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세우셨고, 예수님의 유언이셨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공지영씨의 수도원 기행 2편을 보면, 스위스에서 스위스인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한국 자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자매는 가톨릭신자이며 스위스인 남편은 개신교신자였다. 그의 남편은 성체성사에 대해 거부반응이 있었으며, ‘가톨릭교회는 밀가루빵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고 까지 표현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갑자기 죽고, 부인을 따라 메주고리에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저녁 미사에서 신부님이 그에게도 성체를 영해 주셨다. 그는 가톨릭신자가 아니었는데도 그렇지만 그도 아들을 잃고 부인과 함께 마음이 아픈 상태였기에 그냥 덤덤하게 받아 입에 넣었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네가 마음이 너무 상심하여 너를 위로해 주려고 내가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위로하려고 미사를 집전한 사제에게 나를 영하게 했다.” 수도원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과 식사를 하다가 그분이 ‘성체를 자기 침실에 모시고 자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미사 때 받은 성체를 절반만 영하고 절반은 모르게 가져와서, 침대 머리맡에 모시고 기도할까?’ 그러다가 느낌에 예수님께서 ‘난 네 몸 안에 이미 들어가 있다. 네가 그것을 진실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 안에 모시고 산 예수님을 과연 난 얼마나 소중하게 모시고 살았을까 ? 미사가 끝나면 곧 바로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일상을 살아 온 내게 희망을 주는 말씀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6장 56-58절이라고 생각한다. 공동번역 성서표현이 더욱 강렬하다.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개신교 신자와 대화를 나눌 때 성체성사에 대해 요한복음 6장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②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성체의 기적이 나타난 성당을 순례했던 한 자매가 은총을 느껴 직장미사에 참석하는데 성체를 영하지 못하지 않아서 신부님이 나중에 물어 보았는데 그 자매는 개신교 신자였으며 부모님이 모두 목사님이었다. 그래서 개종을 하고 세례를 받고 성체를 영하고 싶어도 집에서 분란이 일어날 것 같아서 그냥 미사에 참석만 한다는 고백을 생활성서에서 본 적이 있다. 성체를 영할 수 있는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성체성사의 은총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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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일 (나해)
2015. 8. 23
요한 6, 60 ~ 69
☞ 개괄적 이해 : 6장은 빵을 많게 한 표징 다음에 요한 공동체에 직면한 문제를 끌어낸다.(26-59절 참조)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행위를 “표징”이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있다. 표징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지이며 예수님이 생명이요 빛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아들이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함께 나누고 계신다는 확증(5.19-30)하에 “영원한 생명의 빵인 예수”와 결합함으로서 아버지의 생명을 나눈다(6.57 참조) 는 결말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군중, 유대인들, 제자들, 열두 제자들 사이에서 먹고 마신다는 것의 영적인 의미에 대한 반응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을 구약의 만나와 연관 지을 뿐 ‘빵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이 단락은 예수와 공동체의 정체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며, 예수님이 행한 갈릴레아에서의 공적 직무의 결과를 제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영원한 생명의 말씀
♠ 복음 연구
* 60~61절 :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설교 전체를 믿지 못함을 드러낸다. 상식적인 식견과 합리성에 비추어 볼 때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수긍할 수 없었다. (53-58절 참조) 여기서 많은 제자들이 공동체를 떠나게 되는 위기 상황을 엿볼 수 있다.
* 62~63절 : 수군거리는 제자들의 반응에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요, 생명의 본질이란 것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언젠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려움 없이 내 주장이 진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즉, 사람의 아들이 성부의 영광에 참여하여 심판자의 권능을 취하게 되는 앞으로 다가올 부활과 승천에 대해 암시하신다. 사람의 아들 호칭은 십자가와 긴밀히 연결되어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8.28)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 종국적인 영광을 앞당겨 이 지상에서 그 직권을 행사하심을 이해할 수 있다.(67절)
* 64~66절 : 생명은 신앙을 근거해서 받아들여지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두 부류로 나누어지게 되고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신다. 65절에서 신앙은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주어지는 오로지 예수 체험 안에서 복음의 메시지를 성령의 도움을 통해 믿음을 얻게 되어 신앙을 간직하거나, 그와 다른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였지만 신앙을 저버렸다는 것을 보게 된다. 66절에서 실제적인 신앙의 위기가 나타난다. 그들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부정하거나 (1요한 2.22 참조), 떠나지 않고 남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타락시켜 곤경에 처하게 하는 회당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기 위한 ‘비밀스런 제자들’과 같았다.(12.42 참조) 이들은 열두 제자에게 도전한다.
* 67~69절 : 사도들에게 자신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반대편에 설 것인지 결정하기를 촉구하신다. 베드로는 열 두 제자를 대표하여 예수님을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으로서 엄숙하게 고백한다. 요한의 표현에 있어서 “하느님의 거룩한 분”은 예수님은 “거룩하신 아버지인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사람“(10.36참조)이며, 또 예수님은 ”하느님의 거룩한 분“으로 고백함으로써, 그를 하느님의 천상적인 대행자요, 하느님과 인간의 결합을 이루기 위해 하느님께 봉헌되는 위대한 제물로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문제다. 예수님이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이며, 그것을 먹고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이 말씀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까지도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장면에서 우리의 믿음이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그러자 12제자에게 몸을 돌려 그들도 믿지 못하는지 어떤지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고 물으신다.(67절) 우리도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묻는다면 “네”하고 대답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신다는 양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빵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쉽지 않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63절). 지금 이 세상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먹는 일이 중요하나, 육신의 보존만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그 차원에서 머문다. 한편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신하여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제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말씀을 지니신 바로 그 분이야말로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시라고 고백한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신 베드로의 고백이 예수님의 귓전에서 맴돌고 있음에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12제자 중 한 명이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 대화 방향 : ① 살아오면서 예수님을 떠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까? 혹시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이야기해봅시다.
② 오늘을 살면서 육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보고, 신앙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떤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 참고 문헌 : ▪ 성서못자리 그룹공부 교재 (요한복음) ▪성서주석 (임승필 신부 / 예루살렘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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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나해)
2015. 8. 30
마르코 7, 1~8. 14~15. 21~23
♠ 복음 연구
* 1~8절 : 3-4절에서 마르코는 이방계 신도들에게 유대인들의 잡다한 세정 관습을 설명한다. 바라사이들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계율뿐 아니라 조상들이 구전으로 전한 규율도 지켰다. 이를 일컬어 ‘조상들의 전통’이라 하는데 여기 조상들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구전 계율을 물려받아 전해준 전승자들을 비롯하여 마르코서가 집필되기까지의 선현들을 모두 가리킨다. 알렉산드리아, 바티칸, 베자 사본에서는 ‘주먹으로’라 하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한 움큼 물로’라 의역했다. 6-7절은 이사 29/13을 인용한 것이다. 인용구 전반은 내심(內心)과 외행(外行)이 일치하지 않는 점을 탓하는 내용인데, 이 때문에 인용한 것은 아니다. 후반부는 하느님을 공경한다하나 실상 인습에 얽매여 있는 점을 탓하는 내용으로서 이것이 착안점이다.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이 인습을 따르는 행위일지언정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못 된다는 말씀이다. 8절은 세정에 관한 논쟁과 코르반에 관한 말씀을 연결하면서 마르코가 만들어 끼운 것이다.
* 14~15절 : 코르반 서약문에 관한 말씀과 금기 식품에 관한 단절어를 연결하면서 마르코는 14절을 만들어 삽입하였다. 레위 11장과 신명 14/3-21을 보면 정결한 식품과 불결한 식품을 가려 놓는다. 예수시대 유대교에서는 금기 식품을 한결 더 강화했다. 불결하다 해서 먹지 말도록 규정한 식품은 돼지, 쥐, 뱀, 토끼, 낙타, 개. 목을 졸라 죽인 짐승, 피, 낙지, 오징어, 문어 따위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런 금기 식품을 폐기하신다. 자연의 음식물이 아니라, 인간의 결단이 사람됨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명언이다. 구약성서에 있는 규범조차 철폐하는 폭탄선언이다.
* 21~23절 : 20-23절은 초대교회의 또 한 가지의 해설을 옮겨 실은 것이다. 마음에서 온갖 죄악이 생겨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죄악의 종류를 밝혀 열두 가지 악업(惡業)을 나열하는데 앞의 여섯 가지 악업은 복수로 뒤의 여섯 가지 악업은 단수로 되어 있다. 네 복음서에서 이 대목 외에 죄악 목록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사실로 미루어 예수님이 이를 열거하시지는 않았다. 반대로 해외 유대교에서는 흔히 죄악을 나열했고, 그 영향을 받아 바오로, 또는 바오로 학파에서 죄악을 열거했다.
♠ 복음 요약 : 천주교는 전례의 종교이라고 한다. 그 절차가 대단히 화려하다. 아마도 이러한 훌륭한 절차는 구약시대로부터 이어져 왔을 것이다. 믿음의 선조들은 아마도 하느님을 직접 체험했으리라 여깁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 당시 율법학자들도 그 전통을 훌륭하게 지켜나갔으리라 여깁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그들을 나무라셨을까요? 단지 주님을 배척하기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이러한 것들의 전통이 무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오늘은 과연 가난하고 나약한 사람들이 과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엄숙히 하는 미사전례에 쉽게 동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의 미사며 여러 가지 단체 활동을 하면서 하느님말씀을 선포하고 예언을 말하면서 주님께 기도하며 찬양하는 예식을 갖게 됩니다. 이들을 잘하기 위한다는 핑계로 혹시나 옆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없었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 대화 방향 : ① 코이노니아 나눔을 할 때에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 마음은 무엇 때문에 생겨난다고 생각됩니까?
② 코이노니아 나눔을 할 때에 가장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합니까?
♠ 참고 문헌 : ▪ 성서주해서집 (마르코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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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봉사자 월례회의 스케치 >
따가운 햇살의 수도원에서 여름 피정을 준비하다...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기록원 : 권 토마 (순)
성서형제회의 2015년도 수도원에서 월례보고서를 쓰면서 인터넷에서 교황님의 남미순방소식을 접한다.
남미 두번째 순방지인 볼리비아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현지시간) 유럽의 해양식민시대 당시 가톨릭 교회가 미 원주민에게 저지른 죄를 용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서 열린 두번째 대중운동 세계총회에 참석해 볼리비아 원주민과 운동가를 향해 "식민시대에 로마가톨릭교회가 저지른 죄, 그리고 소위 '아메리카 정복'의 이름으로 원주민에게 행해진 모든 죄에 대한 겸허한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또 이날 자본주의가 이윤만을 좇으며 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한 이들을 옥죄고 있다며 세계경제질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현 세계경제질서는 빈자들에게 노동권(labor)과 주거(lodging), 토지(land) 등 삶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3가지 'L'에 대한 희생과 긴축정책을 강요한다"며 "이는 신식민주의"라고 비판했다. "사회적 배제와 자연파괴를 고려하지 않고 이윤만 우선하는 지금의 체제는 농부, 노동자, 공동체와 사람은 물론 지구도 견뎌낼 수 없다"며 "우리는 변화, 무엇보다
진정한 구조적 변화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기사>
의술은 전쟁을 통해서 발전하고 자본주의는 가난한자들의 고통을 통해서 성장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마도 2014년 광화문에서의 124위시복식이 전환기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7월의 모임은 늘 그래왔지만, 여름피정을 준비하는 모임이었다.
미리 이런 일정을 받았지만, 다른 해와 달리 준비기간이 적은 8월초순으로 그 일정이 당겨졌기에 우리의 마음만은 바쁜 그런 모임이 되었다. 그안에서 우리는 과거와 달리, 우리 모임의 어떤 전환기를 만들려는 노력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달라지는 모습보다는 우리들 봉사자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기를 바라는 맘이었다. 지금 에쿠아도르 창설신부님이 의지가 그날 바쁜중에서도 참석하신 박 수녀님이 수도원 안성 이전소식으로 확실히 말해준다...
묵주기도와 짧은 코이노니아와 전국회계가 준비해온 ‘사랑의 도시락’을 함께 나누며..
. 지역별 월례보고로 오후 전국회의를 시작한다. 간단히 ‘FB 큰모임’ 잔치를 평가하며, 다음달 연수회일정을 조율한다. 전체적인 세부조율이 있었고, 회의 끝무렵에 참여한 박 수녀님의 연수회 참여 부분과 수도원 안성 이전소식을 들려주신다. 참석한 봉사자들은 수녀님께 수련회를 통해서 봉사자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요청했고, 짧은 연수기간에 봉사자들에게 크게 부담이 안되는 범위에서 프로그램을 짜보겠다고 흔쾌히 허락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사인 경북 청송땅문제에 대해서도 원칙을 말씀해 주셨다. 수도원과 성서형제회의 공동체와의 관계를 말씀해주셨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평소에 소홀히 여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애기했다. 특히 수도자와 평신도와의 관계를 말입니다. 우리는 40여년이나 오래 전에 창설자신부님의 어떤 카리스마에 의해서 세운 수도회와 평신도단체이지만, 그 신부님이 멀리 남미 에쿠아도르의 선교사업에 몰두하고 한국에 남아있는 수도회의 수녀님에 의해서 주로 그 역할을 해온 성서형제회의 공동체의 한 축인 전주공동체는 교구인준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수원교구공동체 등은 교구인준은 물론이거니와 지도신부조차 지니지 못한 채 창설자신부님의 공동체정신인 성서연구와 아나윔 생활화는 안개정국인듯
보인다...
여름수련회인 2015년 8월 9일 복음인 살아있는 빵은 참석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를 준비하면서 ‘에페소교회에 보내는 바오로편지 글’을 통해 우리가 새로워지리라는 희망을 마련한다.
“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 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에페소서 5,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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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묵상록 >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어라...
<마태오복음 18장 15절-20절>
서울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묵상 : 남 파비올라 (은정)
❊❊❊ 예수님께서는 개인 사이의 사적인 잘못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관련된 공적인 죄에 대한 가르침을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가 평소에 형제,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일원을 뜻하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 가족임을 나타냅니다. 어떤 신자가 죄를 짓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그 형제의 잘못을 공개할 필요는 없고, 단둘이 만나서 충고하라고 하십니다.
☞ 저도 생각을 해보면 다른 형제, 자매가 잘못한 부분을 그 본인에게는 잘 이야기하지 못하고,
다른 제3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뒷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황님께서 내신 책 제목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 가 떠오릅니다.
이 제목을 보고 참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고 그래 한번 해보자 라는 마음도 가져 보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렵더라구오. 계속 훈련해야 하는 저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 또 한 가지의 생각을 하게 되는데 형제, 자매가 모두 한 가족임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나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성서형제회 회원은 나에게 조금 더 가까운 그리고 본받고 싶은 선배님들 같은 생각을 더 하게 되지 내 친 가족같이 내 가족이야 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당을 통해 알게 된 형제, 자매들도 함께 활동했고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지 가족이야 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묵상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파수꾼은 불의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형제들을 자신의 안위를 돌보는 것에 앞서 지켜주어야 한다고요. 또 이웃 사랑의 계명이 세상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엄중한 책임이라고요. 이웃 사랑이 감상적인 느낌이나 기분 내킬 때 베푸는 시혜가 아니고 수고와 용기를 요구하는 실천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묵상 들을 읽으니 마음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워집니다. 저는 또 하나의 큰 숙제를 받은 느낌이고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지 깊이 생각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충고를 듣지 않으면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데려가라고 하시는데 충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라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의 문제에 공동체가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얘기해도 듣지 않는다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 교회에서 쫒아내라고 하십니다. 겉으로 파문이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스스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문당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회개만 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받아들여지고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 제가 다니는 KR2동 성당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레지오 단체의 문제가 생겨서 한 꾸리아의 간부들은 모두 자리를 내려와야 했고, 그 꾸리아의 소속 쁘레시디움들은 다른 꾸리아의 소속으로 되면서 부정적이 회합이 이루어져 벽면마다 불법회합을 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경고문을 볼 때마다 레지오를 했던 저에게는 좀 더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부정을 일으키신 형제, 자매님들을 위해 신부님이 모든 신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다는데 일이 잘 해결되고 다시 새롭게 교회의 문으로 들어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
❊❊❊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란 것은 공동체를 뜻하는데 한마음으로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고 기도하면 내용에 제한 없이 청하면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단, 우리가 바치는 기도가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맞아야 한다는 것과 사랑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 모두의 이익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입니다. 혼자서 바치는 기도도 중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형제애를 가지고 함께 모여서 한마음으로 바치는 공동체의 기도는 더욱 좋은 일입니다. 공동체 구성의 수가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에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함께 기도하시기 때문에 공동체의 기도는 곧 예수님의 기도가 되고, 따라서 아버지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당연히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 성서형제회도 함께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한 주 동안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데 저는 어떤 때는 열심히 하고 어떤 때는 대충하고 또 어떤 때는 신경조차 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복음 연구를 하면서 공동체의 기도가 중요함을 알게 되어 앞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사시간에 신자들이 기도를 할 때에는 딴 생각을 할 때가 많아 그냥 지나가는 시간일 때도 많았는데 집중해서 함께 기도하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만의 청이 아닌 가장 가까운 남편과 함께 저희의 소원과 가족,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더 예쁘게 봐 주실 것입니다.
☞ 요한복음 14장 13절 말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주겠다”
이 말씀을 믿고 간절히 우리 모두 주님의 이름으로 청해야 하겠습니다.
☞ 대화 방향
- 이웃 사랑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나는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 공동체와 일치하여 기도에 잘 참여하고 있나요?
- 신자가 잘못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 같은지 생각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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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5년 6월 1일 ~ 30일 수입 지출 내역
첫댓글 연중18주 대화방향을 보면 제가 원래쓴글은 ♠대화방향
성서형제회에서 공동식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람들과 맺으신 계약을 확고하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자들과 함께 식사하신 사건을 현실화시키는 사랑의 일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혹시 우리끼리만의 잔치를 한 것이 아닌지요! 누가 하느님이 지으신 소중한 분이신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한다. 흔히들 어머니는 가장 아픈 자녀를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한다. 이를 생각하면서 이것들이 내삶안에서는 어떤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니면 어떤 걸림돌이 되는지를 나누워봅시다. 이와 실제로 소식지에 실린글을 비교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