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촌리 노인정 송덕비(頌德碑)
세상살이가 분주해지고 각박해지면서 우리에게 이웃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살던 고향동네에는 돌담으로 담장이 있었지만, 이웃집과 담장 넘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었습니다.
산업화와 경제 발전으로 이제는 대부분 담장 넘어로 안부 인사와 의사소통을 하는
이웃간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러한 세태속에서 이웃과 함께하고자 했던 아름답고 귀감이 될 만한 송덕비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겨울 양구군 남면 도촌리에 소재한 노인정을 찾아 따뜻한 생강차를
마을 어르신들께 대접하고자 찾았다가 노인회관 바로 옆에 있는 큰 돌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송덕비라고 새겨진 자연석 옆에는 송덕비의 주인공에 대한 해설이 적혀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도촌리 태생으로 지금으로부터 삼 십여 년 전에 도촌리 노인정을
건립했던 김회순 여사입니다.
다음은 송덕비에 대한 설명 비문입니다.
“김회순 여사는 청양 김씨 진수의 장녀로 도촌리에서 출생하여 이십 이세에 출가
8,15 해방 후 당시 이십 오세로 단신 월남하여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평소 삼강오륜의 윤리와 효친 경로사상이 투철하여 애향에 노인정을 건축 기증하시니
무분별한 외래 풍조가 성행하는 현 사회의 타의 귀감이 되므로 주민 일동은
김여사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송덕비를 제막하나이다.
1989년 12월 19일 주민 일동“
김회순 여사님의 인척분이 도촌리에 거주하고 있다는 마을 어르신들의 귀뜸을 듣고서
찾아가 이분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해방 당시 양구 도촌리 지역은 이북땅이었으며, 22세에 결혼한 이분은 삼년 동안의
결혼 생활 가운데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시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합니다.
그러한 연유로 단신으로 월남 후(한국전쟁 이전) 서울에 정착하게 되었고,
바느질을 비롯하여 온갖 궂은일을 억척스럽게 한 결과 자수성가하게 됩니다.
마을 분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조그마한 체구를 지니신 이분은 자수성가 이후에도
간혹 고향마을에 들리면서도 한복 치마저고리만 입을 정도로 자신에게는 엄격할 만큼 근검절약했었다 합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이분은 노년에 고향마을의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정이 없는 실정을 보고
당시로는 거금인 7백만원을 들여 노인정을 건축했다 합니다.
친척분의 증언에 의하면, 건축 당시 쌀 한 말에 2-3천원 하던 시절이었다 하니
칠 백만원이라는 금액은 무척이나 큰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인정이 완공되자 제반기물과 사물놀이에 필요한 농악기 등도 함께 들여놓았다니
실질적으로 김회순 여사님이 희사한 금액은 무척이나 큰 금액입니다.
이분의 노인정 건축이 더욱 의미있는 것은 당시 도촌리와 창1-2리 세 개 마을 가운데
처음으로 마을 어른들의 쉼터인 노인정을 건립했다는데 있습니다.
피땀 흘려 모은 물질을 고향 마을의 이웃을 위하여 쾌척하신 김 여사님의 미담을 접하며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낫다는”구약성경 잠언의 말씀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