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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본능本能 노랑의 불꽃.
언덕길을 마저 올라 갈참나무 옆을 끼고 돌면 정면으로 성우당惺牛堂 처마의 추녀를 마감하고 있는 막새기와가 보였다. 그리고 막새기와를 받치고 있는 적새와 그 틈새를 이겨서 발라놓은 백토白土가 마치 하회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회탈 중에서도 영락없는 양반탈을 닮았다고 생각을 했다. 그 양반탈이 섬으로 씨를 보고 웃고 있었다. 양반탈의 웃음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들어있었다. 그 수많은 웃는 얼굴 사이에서 유독이도 밝게 빛나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섬으로 씨는 홀린 듯 그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어 허공에 남아있는 잔상殘像을 흐트러뜨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세면도구와 수건을 챙긴 뒤에 일층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연암산 약수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더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차실로 내려와 불교신문과 법보신문을 나란히 펼쳐놓고 읽어보았다. 사람의 얼굴에 있는 주름과 눈빛을 보고 그 사람의 과거를 읽어내듯이 기사의 행간行間을 읽어내면서 기사의 의도意圖와 의향意向을 읽어내는 것은 신문을 읽는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다. 신문을 이리저리 넘기고 있는데 주방에서 걸어 나오던 공양주보살님이 섬으로 씨를 보더니만 주머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어 손에 들고는 다가왔다. “저어~ 처사니임, 아까 전에 보살 두 사람이 공양간으로 와서 기웃거리기에 주방에서 나가보았더니 물 한 잔 얻어먹자고 해서 들어와서 자시라고 했드만 물을 마시고 잠시 공양간에 앉아있다 갔거든요. 그리고 공양간에서 나가면서 이런 사람이 절에 계시냐면서 물어보는데 꼭 처사니임을 말하는 것 같더구만요. 그래서 그렇다고 대꾸를 해주었더니 이것을 좀 전해달라고 하더란 말이요.” 공양주보살님이 내민 손에는 예쁘게 접혀있는 작은 메모지가 들려있었다. 섬으로 씨는 고개를 끄떡하고 공양주보살님이 건네주는 하얀 메모지를 받아들었다. 손에 메모지를 든 채 잠시 망설이다가 펼쳐놓은 신문을 접어서 다탁茶卓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메모지를 펼쳐보았다. ‘성함도 미처 여쭤보지 못했네요. 선생님을 뵙고 가려고 한참 기다렸는데 다른 일정 때문에 고향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먼저 일어납니다. 이번 추석명절을 맞이해서 아버님 산소에 들리려고 한 십여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보름가량 한국에 더 있을 듯한데 전화주시면 차라도 한 잔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 010-3800-92** 홍섬나.’ 메모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눈앞의 하얀 공간에서 작은 회오리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선형으로 몸을 비틀면서 몸피를 키우던 회오리는 옥잠화 향기를 사방으로 흩뿌리면서 분수처럼 푸른 종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은은한 종소리를 듣고 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해이린 꽃 옥잠화 한 송이가 긴 꽃대를 올리고 하얗게 벙그러져 있었다. 섬으로 씨는 메모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가서 방문을 열어놓고 건너편 돌계단과 염궁선원을 살짝 가리고 있는 키 낮은 나무 울타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가만 생각을 해보았더니 ‘염궁문’ 이라는 현판에는 ‘念弓門’ 이라 쓰여 있었고, ‘염궁선원’ 이라는 현판에는 ‘念窮禪院’ 이라고 쓰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念弓門은 경허선사의 친필이고, 念窮禪院은 후에 문을 열었을 테니 생각의 화살은 생각이 다하는 곳까지 날아가야 한다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진일보進一步’를 뜻하는 선방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것일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딱.. 딱.. 딱.. 딱.. 딱따따따르르르르... 울림이 있는 목탁소리를 듣고 섬으로 씨는 공양간으로 내려갔다.
오후에는 일요법회 도반님들과 채소밭으로 울력을 간다고 했다. 울력장소는 서산시 코아루아파트 옆 동문초등학교 뒤쪽에 있는 밭이라고 문자로 공지가 올라왔다. 섬으로 씨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서산시 동문초등학교라고 쳐 넣은 뒤 출발을 했다. 원불교 교당과 브니엘 어린이집 사이에 있는 넓은 밭의 절반은 무성한 들깨로 가득 차있었고, 나머지 절반에는 열 서너 개의 이랑이 있어서 배추나 무가 심어져있었다. 그중 천장암 몫인 네 이랑은 깨끗하게 잡초가 손질된 채 비어있었다. 그래서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준비를 해간 무씨와 배추 모종을 심으려고 했는데, 밭주인 할아버지의 반대로 배추 모종은 심지 못하고 무씨만 심기로 했다. “그게 그게 안 된단 말이여~ 무씨는 심어놓고 물을 주면 살아나지만 오늘 온상에서 꺼내어 사가지고 온 배추 모종은 심어놓고 물을 줘도 살지를 못한단 말이여. 배추 모종을 적어도 한 사날은 해를 쬐고 바람을 맞혀 튼튼하게 만든 다음에 밭에 심어야 살지 지금 바로 심으면 백이면 백 다 말라 죽어버린단 말이여어~” 모종삽으로 두둑위에 가운데손가락 세 마디쯤을 파고 무씨를 뿌린 뒤에 흙을 덮고 물을 주었다. 명절 끝이라 집안일로 분주한 가운데도 거사님까지 앞장을 세우고 무진주보살님이 달려와서 함께 밭일을 거들었고, 울력을 하는 틈틈이 밭주인 할아버지의 농사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동안 듣고 나서야 일이 끝났다. 그리고 여기에서 멀지않은 온석동에 있는 진원사로 사찰순례를 가기로 했다. 진원사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세 분 있었는데, 주지스님의 연락을 미리 받았는지 깔끔한 다과를 준비해놓고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3,40대 젊은 비구니 스님들과의 대화는 신나고 재미있었다. 세 분 비구니스님 모두 운문사 강원 동기스님들이었는데, 섬으로 씨도 운문사에 서너 번 가본 적이 있는데다가 사찰 식물생태조사 팀을 따라 이삼일 머문 적이 있어서 운문사에 대한 추억이 상당부분 남아있기에 비구니 스님들의 강원 시절이야기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기에 족했다. 그중 이목소璃目沼에 대한 이야기도 추억을 건드리는 흥미로운 말감이었다.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거처하는 건물 뒤로 돌아가면 벽에 학인 스님들의 백여 개가 훨씬 넘을 듯한 칫솔이 주욱 걸려있는 것도 장관이지만 새벽이면 그 아래 이목소璃目沼에 날개를 편 하얀 새처럼 나란히 앉아 세수를 하는 학인 스님들의 모습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정감어린 풍경이었던 것이다. 8년 전에 운문사 강원을 졸업했다는 세 분 비구니 스님들은 예전보다 출가가 늦은 시류 때문에 앳된 모습은 아니었으나 풋풋하고 열정이 느껴져서 참으로 보기에도 좋았다. 앞으로 불교를 이끌고 나가고, 많은 불자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안내해줄 젊고 기운찬 스님들이 더 많아야하는데 하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실상 대화내용은 스님들의 감소와 더불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신도들의 절대적 감소와 노령화에 대한 걱정과 한숨이었다. 대화 도중에 한 분 비구니스님이 자리에 살짝 일어나 저녁예불을 올리려고 법당으로 올라가자 우리 일행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문사 강원 4년 과정 내내 몸이 약해 엄청 고생을 했으나 육신의 제약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내어 강원을 수료하고 지금은 당당한 수행자로서 열심히 수행정진을 하고 있는 덕우스님 이야기를 경운스님께 들으면서 “장하시다, 덕우스님!” 하고 우리들도 힘을 모아 성성盛盛한 기운을 한 움큼씩 보태드렸다. 비구니스님들은 일주문에 해당하는 돌계단까지 일행들은 내바람 해주시면서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셨다.
우리 일행들도 저녁을 먹어야하는데 일요일에는 문을 닫은 곳이 대부분이라 마땅한 음식점을 찾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장소를 알아보다가 결국 칼국수를 먹기로 하고 그곳을 찾아 차를 몰았다. 서산 시내의 다른 스님께서도 동참을 해주시고 김화백님도 자리에 합세를 해서 여러 분이 모여앉아 즐겁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 일요법회에 참석을 못해서 울력이나 사찰순례를 함께 하지 못한 예천동보살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산시내로 나온 일행들을 위해 차를 한 잔 대접을 하고 싶다면서 장소를 고르다가 일행들이 차라리 보살님 댁에서 차를 마시면 어떻겠느냐고 강권하다시피 제안을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았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어둠 속을 기꺼이 달려 보살님 댁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여러 좋은 차를 음미하듯이 고루고루 마셨는데, 그 중에서도 작은 자사호紫沙壺에 우려낸 천량차千兩茶 맛이 으뜸이었다. 뒷맛에서 박하 맛이 혀끝에 살짝 감도는 천량차가 청량하면서도 정갈한 맛을 뿜어내자 보이차나 작설차 등 다른 차들은 잠깐 숨을 죽인 채 다소곳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예천동보살님 댁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은 향긋한 천량차가 아닌 보살님만의 오롯한 공간인 기도방이었다. 만약 주지스님을 모시고 가지 않았더라면 누구에게나 함부로 공개를 하지 않았을 듯한 기도방은 티베트 부처님과 만다라, 그리고 울창鬱蒼한 신심信心과 간절한 기원의 묵념默念으로 가득 차있었다. 작고 아담한 기도방은 평소 보살님의 순일하고 단정한 분위기와 너무도 닮아 있어서 아마도 예천동 일대에서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착한 기도방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가슴 훈훈한 이야기와 맑은 향이 감도는 차를 마시면서 분위기에 취해있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게 밤이 깊어갔다. 밤10시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살님의 작별인사를 받으면서 서울을 향해 출발할 준비를 했다. 주차된 장소에서 차를 끌고 나오려고 기어를 파킹에서 드라이브로 바꾸는데 손에 스치는 바지 주머니에 무언가 들어있어서 고개를 갸웃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종이가 접혀있는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에 일어나자 그것이 메모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 기억은 섬으로 씨를 알 수 없는 힘으로 열뜨게 일으켜 세웠다. 그런 뒤 아직은 눈에 익지 않은 어두운 길을 건성으로 달려가다가 도로 가운데 약간 높은 길턱에 차바닥이 닿았는지 차가 움찔하는 느낌이 들면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덜커덕~ 쿠웅~”
“덜커덕~ 쿠웅~” 차실 안쪽 창가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던 섬으로 씨의 맞은편 벽에 세워두었던 상이 갑자기 방바닥으로 넘어지면서 커다란 소리를 냈다. 섬으로 씨는 차실 방바닥에 넘어져있는 짙은 밤색 상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을 들어 제자리에 일으켜 세워놓았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효율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산이 그렇고, 바다가 그렇고, 하늘이 그렇고, 땅이 그렇고, 무지개가 그렇고, 숲이 그렇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데 존재存在와 비존재非存在가 공유하고 있는 이 마음은 어디가 제자리인지, 과연 언제쯤 어느 세월에나 그 자리를 알 수 있을는지 하는 생각을 또 곰곰이 곰곰이 할 수밖에는 없어보였다. 휘허徽虛한 차실 안에서 그랬다.
입술위에 너의 노래를.
길고 긴 추석명절 연휴 끝자락인 오늘 일요법회에 참석을 한 사람이 여섯 명이었는데, 장요리의 여래자보살님과 락화보살님, 그리고 승복보살님까지 모두 합한 숫자였다. 보살님들은 점심공양 후 법당으로 올라가거나 공양간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무도 차실에 들어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섬으로 씨도 오늘은 평소 일요일보다 상당히 이르기는 하지만 바로 서울로 올라갈까 아니면 혼자서라도 해미읍성을 한 바퀴 돌고 오든지 수덕사까지 깨달음의 길을 걸어서 다녀와 볼까 하는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차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날씨는 피부가 느낄 만큼 무더위가 한풀 꺾였으나 습도 때문인지 공기 중에는 눅눅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방바닥에 방석을 깔고 벽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있으려니 조용하고, 차분하고, 한적하고, 느슨하고, 잔별처럼 나른하게 가라앉아서 천장암 미풍에 머리가 적셔지는 듯 스멀스멀 졸음이 밀려왔다. 지난 사흘 동안 연암산 기슭과 도량 안을 거세게 몰려다니던 산골바람도 오후에 들어서는 눈에 띄게 가볍고 부드러워져 있었다. 마당에서 낭만이와 바람이가 일요일 참배객을 보고 멍~멍~ 하고 짖는 소리가 아랫마을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이어졌다 끊겼다하면서 메아리치듯이 밀려왔다. 잠시 후에 섬으로 씨의 고개가 슬며시 앞으로 숙여졌다. 일요일 정오를 전후한 짧은 시간동안 어느 샌가 차실 안이 옅게 흐려져 있어 봄밤 아지랑이를 닮아 어둠한 침묵이 보슬보슬 솟아올랐다.
서산 시내에서 서산IC까지 가는 거리가 꽤 멀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서산 시내를 벗어나자 길가의 가로등이 드문드문 줄어들었는지 주변이 상당히 어두웠다. 어두운 만큼 전조등이 내쏘는 빛줄기는 더 강렬해졌지만 시야가 그만큼 좁아져서 운전을 하는 중에는 더 집중이 필요했다. 앞차의 붉은 후미등이 보이지 않을 때는 하얀 두 줄을 따라가며 달려갔다. 하얀 두 줄은 항상 평행을 이루면서 어딘가를 향해 곧게 때로는 완만하게 휘어있어서 부드러운 율동감과 작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몇 번 구불구불한 길목을 돌아 서산IC를 빠져나가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같은 시간대의 같은 어둠이었으나 운전을 하기에 편안했다. 역시 고속도로가 차를 몰아 고속으로 달리기에는 적합한 도로였다. 주변이 편안해지자 습관적으로 얼핏 연료게이지를 보았더니 두 칸 가량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서산휴게소에라도 들어가서 기름을 넣고 가야겠군. 하면서 오른편에 이정표가 나타나는지 유심히 지켜보면서 달려갔지만 이미 서산휴게소를 지나버린 듯했다. 그러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밤중에 서울로 돌아갈 때 해미IC를 통해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가기 때문에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서산휴게소가 나왔지만 오늘밤에는 서산IC를 통해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온지라 서산휴게소를 벌써 지나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다음 휴게소인 행담도휴게소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고속도로위를 가로질러 걸려있는 전광판의 글자들이 주황빛을 발하면서 문장을 만들었다가 사라지고 또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다가 사라져갔다. 여느 때 일요일 밤처럼 행담대교부터 서평택까지 19Km가량 정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흐흠, 19Km라면 4,50분정도 정체가 예상된다는 말이군. 섬으로 씨는 입술을 가볍게 비틀어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당진을 지나자 저 만큼 달려가던 앞차가 비상깜박이를 켜면서 속도를 줄여갔다. 그 앞으로는 후미등에서 밝은 불빛을 내뿜는 수많은 차량들이 행렬을 이루면서 줄지어있었다. 그런 다음 기듯이, 걷듯이 섰다 멈췄다를 반복하면서 앞을 향했다. 행담도휴게소 진입로를 앞두고 휴게소에 잠시 들려가고 싶어 하는 차량들이 옆 차선보다 더 느린 행진을 보이고 있었다. 섬으로 씨는 애당초 행담도휴게소에 들렸다 기름을 넣어가겠다는 계획을 취소하고 차량의 정체가 해소된 다음 화성휴게소에 들려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행담도휴게소 진입로 차선에 서 있다가 옆 차선으로 빠져나오는 차가 더러 보였다. 차가 서평택 가까이에 이르자 앞선 차량 행렬들이 잠시 주춤주춤 하다가 점차 빠르게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화성휴게소 5Km라는 파란 이정표가 보였다. 잠시 후에는 차의 속도를 줄여가면서 오른편 깜빡이를 넣고 화성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주차장에는 차량들로, 밝은 휴게소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주차장을 두 바퀴나 돈 후에 가까스로 빈자리를 발견하고 차를 주차시켰다. 차에서 내려 주차장을 내리덮고 있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언뜻언뜻 검푸른 틈새도 드러나 있긴 했으나 어느 틈엔가 검은 잿빛 구름들이 길고 두껍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섬으로 씨는 오히려 편안한 어둠속에서 잠시 조용히 앉아있고 싶었다. 불빛 휘황한 휴게소보다 지금은 차라리 주차장에 주차된 차안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다시 차안으로 들어와 좌석 등받이를 뒤로 밀어 젖히고 편하게 앉았다. 지난 나흘 동안의 일들이 차례대로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을 했다. 천장암에 내려오던 날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달려오다 잠깐 들렀던 서산휴게소에서부터 오늘 밤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에 들른 화성휴게소까지의 일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헝클어져있었으나 시작과 끝은 분명해보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씩 뒤돌아보는 어떤 특정한 나이처럼 고속도로의 중간에 띄엄띄엄 떠있는 고속도로 휴게소休憩所들은 마치 바다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외로운 섬 같다고 생각을 했다. 섬으로 씨는 자신의 차안 좌석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는 휴게소休憩所는 긴 여행 중에 들렸다는 가지만 머무르기 위해서 가는 곳이 아닌 섬 같은 곳, 휴식과 즐거움이 있지만 짐을 풀어놓거나 잠을 잘 수는 없는 섬 같은 곳, 만남과 이별은 있지만 재회再會나 귀환歸還이라는 말은 어쩐지 어색할 것 같은 섬 같은 곳, 살아있고 변화하고 반응하고 있지만 세상과 한 꺼풀 격리되어 있는 듯한 섬 같은 곳, 화려한 정장이나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보다는 등산복이나 샌들이 더 어울려 보이는 섬 같은 곳, 기억너머의 과거나 상상의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미래보다는 왠지 현실만 살아 숨 쉬는 듯한 섬 같은 곳, 수많은 우연 사이에서 필연을 찾아내기가 쉽지만은 않을 듯한 출렁이는 섬 같은 곳, 숨겨진 낙원과 가려진 유배지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간직하고 있어서 반갑지만 결코 익숙해지지는 않는 인도양의 섬 같은 곳이라고 생각을 했다. 두 눈을 감고 있던 섬으로 씨의 눈앞에 갑자기 환한 불빛이 밀려왔다가 사라졌다. 옆 자리에 주차되어있던 차가 빠져나가자 다른 차가 빈자리를 채우려고 들어오고 있었다. 차창에 굵은 빗방울이 뚝 뚝 떨어져 내렸다. 전면 차창車窓 위로 소국小菊 꽃봉오리만큼 펼쳐져있는 부서진 빗방울들이 다섯 개도 넘어보이더니만 순식간에 소나기 같은 성깔 사나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금 옆 자리에 주차를 시켰던 검정색 차에서 문을 열고 내리려던 여자 운전자는 깜짝 놀라는 몸짓을 하면서 얼른 차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섬으로 씨도 열어놓았던 양쪽 차창을 올리고 전면 차창을 부옇게 두드리고 있는 가을비를 구경했다. 거칠 것이 없어 허공을 시원스럽게 쓸어내리는 굵고 산뜻한 가을비였다. 어느 순간 물 먹은 세상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그 빈자리를 빗소리만 가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거의 차 한 잔을 마실 동안 줄기차게 뿌려대던 빗방울들이 점차 작고 순해지더니만 차츰 사방에서 소리와 부피를 줄여가면서 풍경 속으로 사라져갔다. 섬으로 씨는 어둠속에서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좌석을 앞으로 당기고 등받이를 세운 뒤에 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그때 옆에 주차해 있던 검정색 차에서도 차문이 딸깍~ 하고 열리더니 누군가가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어둠속에서도 검정색 차의 색깔은 선명하게 잘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어둠은 단지 검정색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가 있었다.
무심코 검정색 차에서 내리던 운전자를 쳐다보던 섬으로 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검정색 차에서 내린 뒤 자동키를 누르고 뒤 돌아서던 여자도 어쩌다 눈을 맞닥뜨린 섬으로 씨를 보더니 어깨를 움찔하면서 까만 단발머리를 출렁거렸다. “어머~ 천장사 선생님 맞지요?” 섬으로 씨도 얼떨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네, 오늘 오전에 천장사에 오셨다 가셨지요? 지금 서울로 올라가시는 중인가봅니다.” 하얀 손을 들어 올려 까만 단발머리를 한 번 추슬러주더니 여자가 말했다. “네, 고향집에서 조금 늦게 출발했거든요. 선생님께서도 이제야 올라가시나 봐요.” 검정색 차 보조석 문을 열고 내린 단발머리 여자의 동생이 아는 체를 하면서 고개를 까딱하고는 인사를 해왔다. 섬으로 씨도 고개를 끄떡하면서 마주 인사를 했다. “갑자기 쏟아지던 비가 거의 그쳤나 봅니다. 가을비가 무슨 여름날 소나기처럼 퍼부어서 꼼짝 못하고 차안에 갇혀있었거든요.” 단발머리 여자도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 “그러게요. 저희도 차를 여기에 주차시키고 나서 막 내리려고하는데 비가 쏟아져서 다시 차안으로 들어가 한동안 비 구경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있지요? 함께 나란히 앉아 비 구경을 하고 있던 동생이 혹시 선생님께서도 여기 주차장 어디엔가 차안에서 비 구경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서 한바탕 웃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들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앉아 정말로 비 구경을 하고 계신 줄은 몰랐거든요.” 섬으로 씨도 하하~ 하고 웃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이런 비를 만나면 누구나 차안에 갇혀서 비 구경을 하고 있는 수밖에 없겠지요. 실은 아까 비가 막 내리려고 할 무렵 다른 차가 빠져나간 옆 자리에 누군가 차를 주차시키고 차에서 내리려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 때문에 얼른 차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거든요. 하지만 누군지는 몰랐지요. 그냥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으니까요. 그저 나처럼 잠시 휴게소休憩所에 쉬러 들어온 운전자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지나가던 차의 눈부신 전조등이 까만 단발머리 여자의 옆모습을 잠깐 스치고 달려갔다. 단발머리 여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커피 한 잔 살 테니까 일단 휴게소로 들어가세요.” 섬으로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제가 살 테니까 그럼 휴게소를 들어가시지요.” 섬으로 씨는 단발머리 여자 뒤편에 그림자처럼 서있는 단발머리 여자의 동생을 향해서 손을 들어보였다. 쏟아진 비로 인해 길바닥 움푹한 곳에는 여기저기 물이 고여 있었다. 빗물이 작은 웅덩이를 이루어 고여 있는 자리는 불빛을 반사해서 하얗게 보였다. 그렇게 하얀 부분은 피하고 검은 부분만을 골라 걸으면서 주차된 차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나갔다. 서로 손을 잡은 채 앞장을 서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바람을 타고 오는 은은한 옥잠화 향기가 입술위에 떠도는 너의 노래처럼 맑게 감돌고 있었다. 섬으로 씨는 어둠속에서 긴 꽃대를 올려 하얗게 피어있는 해이린 꽃 옥잠화를 말갛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그랬다.
안단테칸타빌레.
섬으로 씨는 두 손에 플라스틱 컵에 종이를 한 겹 더 둘러 뜨거움을 방지해주는 일회용 커피 잔을 들고 휴게소 복도 끝에 있는 나무탁자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붐비는 가게나 식당 앞에 비해 그곳은 그런대로 한적했고 밤에 어울리는 적당한 어둠이 깔려있었다. 까만 단발머리 여자와 여자의 동생은 나란히 앉아 무언가 말을 주고받고 있다가 그쪽을 향해 걸어오는 섬으로 씨를 보고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일회용 커피 잔을 단발머리 여자와 여자의 동생 앞에 한 개씩 탁자위에 내려놓고 맞은 편 자리에 자신의 일회용 커피 잔을 놓은 뒤 섬으로 씨도 풀썩 앉았다. 두 여자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듯이 고개를 까딱하며 커피 잔을 손으로 감쌌다. 섬으로 씨도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보았다. 둥근 커피 잔 몸피에 한 겹 더 둘러있는 종이 때문에 뜨겁지는 않았으나 따스한 온기 같은 것이 커피 잔에서 손으로 스며들었다. 이런 종류의 온기는 겨울철에 즐겨 먹었던 호떡이나 찐빵과는 다른 감각의 따스함이었다. 점심공양을 할 때 보살님들이 떠 주는 스텐 국그릇의 따스함이나 모임이 끝나고 작별을 할 때 여자들과 하는 악수의 느낌에 더 가까운 부드러운 감촉 같은 것이었다. 섬으로 씨가 플라스틱 커피 잔 뚜껑을 손가락으로 두어 번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바람이 불어 선선하기는 한데 뭔가 눅눅한 기운이 공기 중에 남아있는 것 같아 어쩌면 비가 한 번쯤 더 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작고 납작한 빨대로 커피를 한 모금 빨아마시던 단발머리 여자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그러게요. 비가 한 차례 더 와주고 주변의 습기가 빠져나가야 공기가 찰랑찰랑해질 모양이지요. 오늘 밤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했지요?” 섬으로 씨도 납작한 빨대를 빨아 커피를 입안으로 들이켰다. 쌉싸름하지만 불로 볶아낸 열매의 고소한 맛이 혀끝을 타고 입안 전체로 퍼져나갔다. 섬으로 씨가 커피를 처음 마셔본 것은 국민학교 4학년 때쯤이었는데, 그때는 커피보다 훨씬 많은 설탕을 넣어 저어놓은 커피향이 나는 설탕물 같은 것이라는 기억밖에는 없었다. “네, 저는 집이 잠실입니다. 여기 화성휴게소부터는 대략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겠네요.” 단발머리 여자는 손으로 감싸고 있던 커피 잔을 놓고 어딘가를 가리키듯 손을 들어보였다. “어머 그러세요. 작은 오빠 네가 잠실에 살고 있어서 이번에도 잠실에서 며칠간을 보냈었거든요. 저희는 엄마가 살고 있는 집은 삼청동이라 그곳으로 가거든요. 선생님보다는 한 30분가량은 더 걸릴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듣고 섬으로 씨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아, 집이 삼청동이시군요. 삼청동 같으면 부촌인데요. 그쪽에 삼청동, 계동, 안국동, 가회동 있어서 옛날부터 부촌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는 단발머리 여자가 하하~ 하고 웃었다. “옛날은 모르겠지만 요금은 아닌 것 같은데요. 요즘 부촌은 한남동이나 강남 아닌가요?” 섬으로 씨도 빙그레 웃었다. “그야 그렇긴 한데 그래도 새내기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면 가풍 있는 묵은 부자들이 살아온 곳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곳이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주변 동네 명칭이 팔판동八判洞 등이 있는 것을 보면 전통이 있는 동네가 맞는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여자가 섬으로 씨를 쳐다보면서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그쪽 동네를 그렇게 잘 알고 계시죠?” 섬으로 씨가 뭔가 겸연쩍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잘 알긴요, 그게 아니고요. 제가 대학을 다닐 적에 그 부근에서 하숙을 하면서 살았던 적이 있어서요.” “삼청동에서요?” “아니요, 소격동에서요.” “소격동이요? 저도 동생이랑 어렸을 적에 삼청동 우리 집에서 줄곧 살았는데 소격동이 어디에 있지요?” “네, 그 주변 분들도 소격동을 잘 모르시더라고요. 옛날 경기고등학교 자리인 지금 서울시립 정독도서관 있는 곳이 삼청동 바로 아래의 화동이거든요. 그리고 소격동, 그 아래가 덕성여고와 풍문여고가 있는 안국동으로 순서가 되거든요.” “아, 그런가요? 제가 삼청동에서 살아서 근방에 있는 재동초등학교와 풍문여고를 다녔답니다. 동생이랑은 초등학교부터 여고까지는 같은 학교를 다녔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저도 하숙집에서 나오다보면 덕성여고와 풍문여고를 차례대로 지나가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아침마다 두 학교 여학생들을 보면서 지나다녔지요. 그때만 해도 서울 여학생들은 참 예쁘다고 생각을 하면서 날마다 즐거운 아침이었답니다.” 단발머리 여자와 여자의 동생이 동시에 쿡쿡~ 하면서 웃었다. “서울 여학생들이 고향 여학생들보다 예뻤어요? 그러니까 고향을 떠나서 돌연 마음이 변해버린 거네요. 그런데 그때가 언제쯤 되었나요?” 섬으로 씨가 잠시 무언가를 꼽아보는 듯이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이번에는 단발머리 여자의 동생 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응~ 그때가 아마 1981, 82년도쯤이었던 것 같네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단발머리 여자의 눈망울이 호기심을 풀풀~ 발하면서 말했다. “1981년, 82년이었다고요? 정말요? 그때라면 제가 풍문여고를 다니고 있었을 때였는데요.” 섬으로 씨가 단발머리 여자의 놀라는 듯한 눈빛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말했다. “그러셨군요. 이따금 하숙집 하숙생들과 어울려서 축구를 하러 가면 풍문여고는 운동장에 못 들어가게 하고 덕성여고는 들어가게 해주어서 짜장면 사기 축구시합을 가끔씩 했거든요. 그래서 덕성여고는 구경을 해보았지만 풍문여고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지 뭡니까. 그런데 축구시합 중에 화장실을 쓸 수가 없어서 용무는 하숙집까지 다니면서 보아야했지만요.” 그 말을 들은 단발머리 여자와 여자의 동생이 까르르~ 하고 웃었다. “어머나, 축구시합을 하다가 하숙집까지 뛰어다니려면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그런데 저도 학교에 가려면 덕성여고 앞길로 지나다녔지만 덕성여고에는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서 들어가 보지를 못했답니다. 정독도서관에서 덕성여고를 따라 내려오는 길이 봄에는 참 예뻤거든요. 가을에도 은행잎이 노랗게 단풍이 들면 참 운치韻致가 있는 길이었지요.” 섬으로 씨도 불쑥 기억이 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아름다운 동네였지요. 경복궁을 따라 삼청공원으로 올라가는 길도 아름다웠고, 그때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오밀조밀한 북촌길이나 넉넉한 가회동 길도 그 나름의 격조格調랄까 정취情趣가 있어서 봄이나 가을에는 괜히 이리저리 많이 걸어 다녀보았거든요.” 섬으로 씨가 커피 잔을 들어 빨대에 입술을 대고 커피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알싸하고 고소한 향취香臭가 입안에 싸아~ 하게 퍼져나갔다. 그때였다. 후둑.. 후둑.. 하는 소리가 몇 번 들려오더니 전등불 사이로 부연 안개 같은 것을 뿌리면서 거센 빗방울이 뿌려지기 시작을 했다. 자연스러운 침묵을 뒤덮는 빗소리가 한결 생각과 생각 사이의 운율韻律을 돋워주는 것 같았다. 물끄러미 비오는 밤 휴게소의 풍경을 바라보던 까만 단발머리 여지가 말했다. “역시 비가 내리네요.” 그러자 섬으로 씨도 밤 풍경에 대한 정중한 예의처럼 응답을 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그렇군요.. 섬으로 씨는 평생 동안 대화를 하면서 그렇군요. 라는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해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횟수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그리고 거사님., 거사님.. 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느껴졌다. 섬으로 씨는 밤을, 밤의 풍경을, 밤의 비 내리는 풍경을 멀리 바라보던 눈길을 돌려 탁자 맞은편에 앉아있는 까만 단발머리 여자를 쳐다보았다. 까만 단발머리 여자는 그 자리에 이미 없었다. 그리고 단발머리 여자의 동생도 그 자리에는 없었다. 빈자리에는 까만 어둠이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사님.. 거사님.. 섬으로 씨는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듯이 깜빡여보다가 눈을 떠보았다. 차실 문 앞에 서서 섬으로 씨를 부르던 공양주보살님이 말을 전해주었다. “저어 거사님, 주무시고 계셨던게라우. 주지스님이 방으로 좀 올라오시라고 하던데유우.”
우주宇宙를 품고 싶은 우주宇住 스님.
날씨가 흐려지더니 다시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추석명절 긴 연휴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비인 듯했다. 투욱.. 투욱.. 떨어지는 처마의 빗물을 한참 쳐다보시던 주지스님께서 참석인원도 단출하고 비도오고 하니 오늘 오후에는 서산 시내 한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우주宇住 스님의 서각을 철수하고 가까운 옥천암이나 관음사에 들려 차담을 하든지 기도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일요법회 보살님들과 섬으로 씨는 먼저 관음사로 향했다. 관음사 큰 법당에는 법당 한가운데 돌 뚜껑으로 덮어놓은 샘이 있어서 부처님께 올리는 청정수淸淨水는 항상 그 물을 떠서 올리고는 했다. 그런데 아직 그 법당 안 샘을 보지 못한 보살님들이 있어서 관음사로 가기를 원해서였다. 쇄석이 깔려있는 관음사 도량은 축축한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마침 관음사 주지스님은 출타 중이었는지 일행들의 법당을 향하는 쇄석 밟는 소리가 빈 도량을 나직하게 울려댔다. 법당 안에는 보살님 한 분이 참선을 하고 있었다. 법당 안에 들어가 부처님께 참배를 한 뒤 너덧 명의 일행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참선參禪을 하고 송경誦經을 하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잠시 후에 섬으로 씨는 스마트폰에 찍혀있는 갤러리 주소를 확인하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법당을 나섰다. 그리고 관음사에서 몇 Km 떨어지지 않은 서산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갤러리를 향해서 차를 몰아 달려갔다. 호수공원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 6층 갤러리에 들어섰으나 절집 식구들이 아무도 보이지가 않았다. 벌써 전시된 서각을 철수하여 십여 분 전에 모두 돌아갔다고 갤러리 측 사람이 말을 전해주었다. 섬으로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갤러리 입구에 세워놓았던 우산을 집어 들어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1층 누름단추를 눌렀다. 동그란 1층 누름단추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그때 계단 옆에 세워놓은 기다란 서각 한 점이 섬으로 씨의 눈에 얼핏 띄었다. 섬으로 씨는 첫 번째 계단 위에 놓인 서각 앞으로 다가가 주의 깊게 그림과 글자를 쳐다보았다. 검정 도료를 입힌 두툼한 판지에 하얀 음각으로 새겨놓은 서각은 분명 우주宇住 스님의 작품이었다. 대나무 가지가 댓잎을 손가락처럼 벌리고 휘청하게 늘어져있는 아래로 정자 지붕에는 까치가 한 마리가 눈을 굴리며 앉아있고, 지붕 아래에는 스님 한 분이 참선參禪 중인지 방선放禪 중인지 조는 듯한 모습으로 말갛게 앉아있었다. 섬으로 씨는 정자안의 수행자는 머리를 삭발하신 스님이라기보다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거나 머리를 긴 채 깊은 수행력을 간직하고 있는 아라한의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섬으로 씨도 자신의 서재에 우주스님의 작품으로는 상당히 큰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연말에 주지스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인데 무성한 나무 아래 아라한처럼 보이는 일곱 명의 수행자들이 갖가지 표정과 몸짓을 하고 서거나 앉아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오른편 하단의 가장 조그맣게 그려져 있는 수행자는 비스듬히 앉아서 한손으로 청룡을 희롱하며 놀고 있는 것으로 봐서 분명 아라한을 그려놓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지난 동안거冬安居와 이번 하안거夏安居를 천장사에서 보내신 우주스님은 맺힌데 없이 펼쳐있는 정신세계와 철저한 보시를 원칙으로 하는 자비심으로 한 철 한 철 쌓아가는 수행의 이력履歷을 예술적 감각을 통한 그림이나 서각으로 나타내고는 했다. 그래서 산철이면 주로 선방 뒤켠 창고에 들어앉아 서각을 많이 하셨는데, 이번 서산 시내 갤러리에 전시를 했던 작품들도 그런 결과물들이었다. 선방에서 대중들과 함께 지낼 때는 언제나 공심公心에 투철하시고 대중화합과 정진과 보시에 늘 앞장을 서는 우주스님께서도 열 가지, 백 가지 해맑음 중에 허물이라면 딱 한 가지 가끔 곡차를 즐겨하신다는 것이 유일한 흠결이었다. 정진이나 기도시간이 아닌 그림이나 서각 작업을 할 때면 곡차를 한 잔씩 즐겨하셨는데 물론 그것마저도 몇 분 신도님들 사이에 분분한 의견들을 불러일으켜왔었다. 오랫동안 존경하고 따르는 우주스님을 찾아뵙기 위해 멀리 부산에서 일부러 올라오신 신도님들은 예술적 감각을 살리는 스님의 취향이라고 보는 반면에 천장암 신도님들은 스님의 자비심과 수행력에 누가 되는 유일한 흠결이라고 지적을 하고 나섰던 것이다.
사업가라면 이익을 많이 남기고 회사를 잘 운영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사원들의 복지후생까지 챙겨준다면 훌륭한 사업가라고 할 수 있고, 군인이라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과 국토방위에 진력을 다한다면 훌륭한 군인이라고 할 수 있고, 선생님이라면 후학을 위한 불철주야不撤晝夜 학업정진과 사표師表로서 모범이 되는 언행으로 훈향을 남긴다면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수행자이신 스님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청정한 삶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깨달음을 얻은 선지식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따져보기로 하겠다. ‘중생은 번뇌만 있고, 부처는 보리만 있다’ 고 했다. 다시 말한다면 중생심은 무엇을 하거나 생각을 해도 번뇌가 근본이고 번뇌가 치성할 뿐인데 부처는 보리가 근본이고 보리가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생심의 근본인 번뇌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탐·진·치貪瞋痴라는 삼독三毒이 가득 차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중생심과 부처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의 완전한 소멸만이 중생심을 여의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수행자이신 스님들께서 탐·진·치 삼독三毒을 멸했는지 혹은 멸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근본인 중생들이 수행자들인 스님의 탐진치貪瞋痴를 식별하는 데는 쉽지 않은 경계가 놓여있을 수 있다. 스님들이 에쿠스나 그랜저를 타고 고급음식점이나 호텔 연회장을 드나드는 일은 탐貪인가, 스님들이 자신의 행위를 지적하는 사람을 맞받아서 목청껏 자신만을 변호하는 일은 진瞋인가, 시대에 맞지도 그리고 시류에 적합하지도 않은 십일조 법문만을 노老 보살님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 것은 치痴인가, 하는 문제들은 역시 스님의 탈 것이 에쿠스인가 아반떼인가 만을 가지고 자를 들이대는 것만큼 이해하기도 판단하기도 쉽지가 않아 보인다. 발심 수행자들인 스님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한층 높은 수행력을 지닌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나 방거사龐居士, 부설거사浮雪居士라면야 그리 어렵지 않을 일도 중생의 안목과 시각으로는 스님들의 청정행淸淨行과 탐진치貪瞋痴가 확연하게 구별이 되고 드러나 보이지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율律과 계戒를 철저하게 지키는 전통적이고도 객관적인 수행이 청정과 탐진치를 구별할 수 있는 시력에 큰 힘을 보태주기도 한다. 비구스님의 250계나 비구니스님의 348계도 모두 기본 오계五戒로부터 비롯함이니 석가모니부처님 재세시在世時부터 내려오는 오계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얼마나 진심과 진정으로 지켜가고 있는지를 보아야한다. 오계五戒인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婬,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는 수행자들의 청정행을 위한 수행과 정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본다. 살아있는 생명을 사랑하라, 자비심을 베풀어 아낌없이 나누고 살라, 갈애와 탐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맑고 곧게 간직하라, 선하고 부드러운 말로 이웃과 화합하라, 독하고 혼탁한 약물을 멀리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다스려라, 등의 다섯 가지 가르침의 말씀은 ‘하지 말라’가 아닌 무엇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존경과 공양을 받을만한 정진력과 수행력을 갖추고 있는 수행자로서의 스님인지 아직 탐진치貪瞋痴에 미혹되어있는 스님인지는 얼마만큼 철저한 계행을 실천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수도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재가신도인 선남선녀善男善女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인생이라는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삶과 세파에 시달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만큼 오계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불자로서 자긍심自矜心과 자존심自尊心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어서이다.
섬으로 씨는 우주宇住 스님의 서각 한 점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우산을 받쳐 든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향해 걸어갔다. 차 뒤 트렁크를 열고 서각을 넣으려고 했으나 키가 큰 서각이 미처 들어가지 않아서 자동차 뒤편 문을 열고 좌석 아래로 서각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자동키를 누르려고 손을 올리다가 손에 묻어있는 검정색 도료를 보았다. 아마 서각에 빗방울이 떨어져 검정색 도료가 묻어나온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섬으로 씨는 차에 타기 전에 무심코 손바닥을 바지 주머니 옆에 문질렀더니 새로 입은 바지에 검정색 도료가 묻어버렸다. 그래서 새로 입은 바지가 아까워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바지에 묻은 검정색 도료를 닦아내려고 문질렀더니 이번에는 하얀 손수건에도 검정색 도료가 또 묻어나버렸다. 검정색 도료가 묻어있는 하얀 손수건을 빨고 있을 수는 없어서 손수건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차에 올라 관음사로 향했다. 관음사에는 서산 시내 6층 갤러리에서 서각을 철수해온 주지스님과 신도님들이 모두 법당에 모여 있었다. 관음사 주지스님은 계시지 않고 호젓한 빗소리와 부연 잿빛 여백만 가득한 도량 안 법당에도 기다란 공간들과 작은 시간들이 둥글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 또한 둥글게 모여앉아 기도도 하고 법담도 나누면서 추적.. 추적.. 거리는 가을 빗소리를 들었다. 머지않아 오후5시가 되었다. 마땅한 저녁공양 할 곳을 찾다가 서산의 토속음식인 게국지를 맛보기로 했다. 서산 토속음식으로 유명하다는 음식점은 관음사에서 불과 5분여 거리에 있었지만 뒷골목의 안쪽에 숨어있어서 한두 번쯤은 꼭 물어봐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마 서산시가 아니라 서산군이었을 때부터 영업을 해왔을 듯한 낡은 음식점이었다. 음식점으로 출발하기 전에 벌써 음식점에 가본 적이 있는 서산 분들이 음식은 괜찮은데 조금 지저분해서. 라고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는 얼마나 지저분하다는 말일까. 하고 몇몇 분은 또 궁금해 했었다. 사실 섬으로 씨가 어렸던 6,70년대에는 음식점이 거의 그런 분위기였었다. 실내 인테리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방을 터서 그나마 넓은 공간인 홀을 만들어 식탁과 의자를 들여놓고, 그 나머지 방에서는 다리 짧은 낡은 식탁위로 커다란 쟁반에 뚝배기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담아 내오는 방식이었다. 가을비가 내리는 한적한 일요일 저녁의 한가한 식당에서는 음식 맛보다는 토속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알초롬한 정취가 더 우러나올 듯한 분위기였다. 오늘 밤에는 그랬다.
파스텔 톤의 하늘빛 현관, 그리고 에메랄드빛 자전거가 놓인 풍경風景.
저녁공양을 하는 동안 주인 할머니께서 직접 맛난 서산 김을 가져다가 먹기 좋도록 네모나게 잘라 식탁에 올려놓기도 하고 다음에 오실 땐 더 잘해드려야겠다고 주지스님께 말을 건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절에 다니는 신도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주인 할머니께서는 삽상한 가을 비오는 일요일 저녁의 한산하고 추적이는 시간이 스님을 접대하기에는 뭔가 서운한 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달걀찜도 더 시키고 밥도 더 시켜서 짭짤하고 시원한 게국지에 잘 먹어주었다. 식사를 하던 도중에 일행 중 한 분이 식탁에 놓여있었으나 존재감 없이 뚝배기 옆에 숨겨지듯 있는 작은 접시에 담겨있는 것을 보고는 이게 막된장인 것 같은데 뭐하고 함께 먹으라고 놓아두었냐는 질문에 주인 할머니는 막된장이 아니고 삭혀놓은 멸치젓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는 섬으로 씨도 얼른 젓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더니 오랜만에 먹어보는 멸치젓갈이 맞았다. 그래서 다짜고짜 멸치젓을 한 숟갈 떠서 밥그릇안의 하얀 밥에 마구 비빈 뒤 한 입 가득 떠먹어보았더니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었다. 음식이란 무엇보다 간이 잘 맞아야하는데 어렸을 적부터 오랫동안 짜고 얼큰하게 먹어왔던 식습관을 버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건강에 좋다고 하는 심심한 음식으로 식단이 바뀐 뒤로는 건강과 맞바꿀 만한 간이 맞는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좀처럼 나질 않았다. 입안에 자자藉藉하게 잘 삭힌 멸치젓갈의 풍미風味에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는 감상이 샘솟듯 하기는 하나 그래도 이 알싸하고 쫀득한 맛을 즐기다가 뜨거운 고혈압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지속가능하고 조절 양호한 상태의 냉정한 혈압을 유지하면서 튼실하게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불교의 교학과 선수행도 즐기고, 숨 쉬는 생활과 관계속의 우여곡절迂餘曲折을 세심하게 관찰도 하고, 유쾌한 상상도 함부로 저지르고, 세상을 향한 애련愛戀의 정도 듬뿍 느껴가며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설득조의 논리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설근舌根으로인한 미경味境을 탐함으로써 오온五蘊이 비어있음에 대해 눈을 감고, 생각을 끊고, 스스로를 닫고, 법을 멈추고, 모르는 체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여기저기 방안을 차지하고 있던 식탁의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갔고, 음식점을 나오면서 보니까 홀 안도 텅 비어있었다. 일행들과 더불어 밖으로 나와 작은 골목길을 돌아서 조금 큰 골목길 옆의 주차장으로 갔다. 비는 그쳐있었으나 짙은 물감을 거침없이 뿌려놓은 듯한 흐린 하늘아래 적묵寂默한 가을날 일요일의 해거름녘이 더 쓸쓸해보였다. 주차장에서 차를 몰아 나오는데 일방통행로만큼 좁은 골목길 맞은편에서 작고 하얀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잠깐 동안이지만 서로 상황을 살피는 듯 마주 쳐다보다가 하얀 차가 빠져나가기 용이하도록 뒤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이미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가 두 대나 뒤에서 멈춰있었다. 이런 경우라면 하얀 차가 뒤로 빠져준다면 더 용이하다 싶은데 하얀 차는 꼼짝하지 않고 오히려 슬슬 앞으로 다가왔다. 차창으로 건너다보이는 하얀 차에 앉아 있는 운전자가 여자였다. 여자운전자라면 차를 뒤로 빼는데 익숙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섬으로 씨의 입장에서는 앞으로도 뒤로도 차를 움직일 수 없는 약간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차들이 어찌어찌 움직이고 옆으로 차를 틀어서 하얀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좁은 공간을 가까스로 만들어냈다. 하얀 차는 서슴없이 배려의 틈새를 지나 빠져나가면서 비상 깜빡이를 켜거나 손을 한 번 들어줌으로써 표시할 수 있는 감정의 교감交感을 생략하고는 저만큼 달려가 버렸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섬으로 씨는 예의나 매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생활습관에 관한 메마른 감정과 서투른 감성을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예의나 매너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감정이나 감성이 충분하고 익숙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언제라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잠깐 동안의 우울한 생각을 빨리 털어내기에는 참으로 알맞은 선선한 가을밤이 주변을 서서히 감싸고 있었다. 양복을 헤어스타일과 잘 어울리게 입고 있는 김화백님의 안내로 일행들과 함께 호수공원 주변에 있다는 모양 좋은 카페로 금세 자리를 옮겼다.
파스텔 톤의 하늘빛 출입문이 어둠을 흩뿌리고 다니는 가을바람만큼이나 단정하고 시원해보였다. 그리고 맑은 날에는 카페 앞 나무 데크에 올려놓는다는 에메랄드빛 자전거도 잠시 자리를 옮겨 카페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수많은 전등으로 천장을 꾸며놓은 까닭인지 실내는 덥고 눅눅했다. 일행들은 여덟 명이 앉을 수 있는 길고 넓은 탁자에 둘러앉았다. 섬으로 씨는 바깥의 시원한 바람이 좋아서 잠시 주변을 기웃거리며 걷다 들어왔더니 자신의 몫으로 카페라테를 시켜놓았다. 라테위에 그려놓은 나뭇잎 모양의 하얀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작은 티스푼을 들어 한 숟갈 떠먹어보았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이 엉켜있는 듯한 라테가 평소 천장암 차실에서 마셔보는 차와는 다른 풍취風趣와 향운香雲을 풍겨왔다. 역시 차를 마실 때 느껴보는 고아古雅한 격조는 애련哀戀의 상징인 왕소군王昭君에 비견할만한 것이라면 카페라테는 베로나의 연인 줄리엣을 생각나게 하는 정취情趣가 있었다. 조금 있다가 카페에서 직접 구워낸다는 수제쿠키가 곁들어 나왔다. 라테를 떠서 먹고 쿠키를 집어먹으면서 쿠키와 비스킷이 어떻게 다른 건가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수제비와 칼국수나 전과 부침개의 차이는 따로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오랫동안 먹어왔던 습관으로 눈치껏 알고 있지만 사실 쿠키나 비스킷, 크래커는 가끔 먹으면서도 그게 그거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차이를 모른다고 해서 생활이 불편하지도 않고 맛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터이니 보는 대로 보고 있는 대로 먹을 뿐이었다. 모두 둘러앉아 차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일요법회에서 어느 신도님이 질문했던 내용이 새삼스럽게 화제로 떠올랐다. “저어, 아함경에 ‘업보業報는 있으나 작자作者는 없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 안에 괴리乖離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하면 작자作者가 없는데 윤회輪廻를 하는 주체는 무엇입니까?”
맞습니다. ‘업보業報는 있으나 작자作者는 없다’는 말이 ‘잡아함경’ 중 ‘제1의義 공경空經’을 설명하면서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는 행위의 주체, 즉 작자가 행위를 일으킨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의 주체를 자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러한 행위의 주체적 존재를 부정합니다. 이를 테면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 보이는 것이고, 그렇게 보는 것을 눈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인지하는 자아, 행위를 하는 자아는 실체實體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의해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상無常한 것이라는 뜻이지요. 따라서 행위의 실체는 없고, 오직 행위를 통해 상호영향을 받는 관계, 즉 업보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는 연기설緣起說이라는 상호인과율에 의해 자아와 세계,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을 이원화된 실체로 보지 않고, 행위를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관계로 이해하고 있답니다. 부처님의 무아설無我說은 자아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는 것’은 불변하는 실체實體로서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나 행위를 통해 변화해가는 업業으로서의 자아는 있다는 것이지요. ‘행위를 하는 자아가 아니라 보고 들음으로써 생성된 느낌뿐’ 이라는 것이지요. 보는 행위(業)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지각(報)은 분명히 있지만 보는 자로서의 자아(作者)는 없다. 이것이 불교의 무아無我이며 공空입니다. 연기설에 기초한 무아설과 공사상은 바로 불교의 업설業說인 것입니다.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 라는 말은 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업을 지으면 그 과보로써 무상한 자아와 무상한 세계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함으로 저것이 생한다 (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 (此滅故彼滅). 고 하며 이것을 연기법Pratitya-samut-pada, 또는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회를 하는 주체는 분명해지겠는데요. 윤회를 하는 주체란 실체로서 존재하는 자아가 아닌 무상한 자아와 무상한 세계를 나타나게 하는 행위와 그 결과로써 나타나는 지각이라는 업보業報가 바로 무상한 윤회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겠지요. 암만!
그렇다면 귀신이 정말로 있습니까? 혹은 극락이 진짜로 있습니까? 하는 질문도 어느 정도 밝은 대답을 할 수 있겠군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인 무아설無我說을 근거로 말한다면 영원하고도 불멸하는 실체로서의 자아란 없는 것이므로 그것들은 모두 보고 듣고 판단하는 행위와 지각으로써 만들어지는 무상한 것들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그래서 귀신이나 극락도 마땅히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 되어버리는 까닭에 인연因緣이나 복덕福德이 다하면 이슬처럼 스러지고 말뿐이겠습니다. 그래서 깊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행하면서 오온五蘊이 비었음을 비추어보고 온갖 괴로움을 여위는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일체一切가 무상無常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苦이고, 괴로운 것은 무아無我이다. 라는 삼법인과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를 투철하고 확연하게 알아 정견正見으로 바르게 보고, 정정正定으로 바르게 집중을 해서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파스텔 톤의 하늘빛 현관, 나무 데크 위의 에메랄드빛 자전거 등등 분위기가 매우 좋더니만 왜 갑자기 이렇게 교리적이고 딱딱한 설명을 늘어놓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 알고 보면 섬으로 씨도 이런 이야기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나 그런 이야기가 대화 중 어쩌다가 나왔기 때문에 혹시 평소 이러한 내용에 관해 궁금했던 분들이 있다면 이 기회에 알고가자는 것일 뿐이라고 봐야겠다. 주지스님과 일요법회 가족들이 파스텔 톤의 하늘빛 현관 안쪽으로 팔인 용의 긴 탁자에 모여앉아 시간이 가면 절로 밤이 깊어지는 것이니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한동안 이야기 삼매에 빠져있었다. 즐겁고, 재미있고, 소중한 시간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기서나 저기서나 역시 시냇물 흐르듯 졸졸~ 잘 흘러가는 모양이다. 하여튼 그랬다.
혹여或如 안다면 더 재미가 있을까.
시인과 소설가는 자신이 읽는 것을 이해하는 독자들의 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글을 쓰게 된다. 소통되고 이해되어야만 시나 소설은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적 소통 기제機制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적 능력’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텍스트를 문학으로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문학적 능력’을 필요로 한다. 독자는 교육제도와 연구를 통해 ‘문학적 능력’, 곧 문학의 문법을 알게 된다. 문학의 문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문학작품에 대한 과학적 태도를 의미하며 그것은 구조시학構造詩學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구조시학은 해석이나 비평과는 달리 작품의 의미를 규정하려 하지 않고 각각의 작품이 태어날 수 있게 한 일반법칙을 알아내고자 한다. 시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문학적 담화의 특수한 구조와 기능을 설명하고 문학의 여러 가능태들의 목록을 제시하는 보편이론의 수립이다. 이러한 구조시학은 해석과 비평 쪽에 편중되어 있던 문학연구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문학 일반의 연역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세우려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쉬클로프스키에 의하면, 우리가 예술작품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은 사물들을 예술로 인지하도록 해주는 특별한 예술기법들의 도움을 통해 만들어지는 산물이다. 마찬가지로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특이한 수단을 통해 조직되어있는 체계이다. 소설을 예술이게 하는 것은 내용적인 측면보다 그 서술의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내용을 다룬다 하더라도 서술적인 방법론에 의하여 예술이 되고 소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사주의 쇠퇴와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형식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문학을 ‘체계體系’로 보는 입장이다. 그들은 형식을 외형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내용과 불가분의 관계, 곧 ‘달성된 내용’이 형식이라는 입장에서 문학 텍스트의 체계에 주목하였다. 다시 말해 그들의 ‘형식’은 어떤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존재로서 그 자체가 내용적으로 간주되는 체계적 개념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조構造’ 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 구조주의構造主義이다. 이는 문학작품을 윤리적이나 사회적, 정치적 기록으로 보지 않고 작품은 하나의 전일체全一體라는 인식으로 작품을 존립하게 하는 고유한 내면적 양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문학은 언어현상이다’ 라는 명제에서 출발한 이 입장은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놀랄 만한 유사점을 가지고 발달하게 되었다. 구조 기호학적 문학연구가 예술의 내용, 의미, 사회적, 윤리적 가치의 문제, 예술의 현실과의 관계를 무시한다는 주장은 오해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호와 기호체계라는 바로 그 개념은 불가분 의미의 문제와 관련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서사학은 내용과 형식의 문제를 둘러싸고 오랜 세월 반복되어온 전통시학의 해묵은 시비를 실질적으로 종식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구조주의 서사학에서 소설을 보는 입장을 정리하자면, 첫째로, 하나의 텍스트는 표현차원인 담론과 내용차원인 스토리로 짜여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 속 인물간의 문제라든지 사건의 인과관계 등의 내적 구조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하나의 소설 속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겹쳐지면서 새로운 구조를 짜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이 소설 구조가 액자 구조, 중층 구조, 중첩 구조 등으로 짜여지게 됨에 따라 어떤 주제를 한 가지 시각이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둘째, 하나의 텍스트는 사회적 생산물로서 그를 생산하는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문화사적 약호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소설의 구조는 그 자체로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와도 연관시켜 살펴보아야하며 그를 위해서는 소설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할 것은 형식주의자들에게 있어 방법은 종속적이고 이차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방법은 연구될 대상의 특성에 적응해야한다. 방법은 그 자체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 대상의 특성에 맞춰 그 특성들을 우리의 것으로 했을 때 훌륭한 것이므로 연구대상과 연구대상의 특수한 구성이 무엇보다도 문제이다. 소설의 구조시학적 연구 방법론 고찰을 위하여 이를 ‘이야기’와 ‘담론’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에서 이야기라 함은 소설에서 화자話者를 제거한 나머지, 순수한 줄거리와 관련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담론이라 함은 독자에게 소설 내용을 이야기하고 소설에 개입하는 화자話者의 존재가 전제되는 문제이다. 소설의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소설을 쓰는 작자作者가 있고, 소설 안에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가상의 화자話者가 있고, 서사적 사건 안에서 일어나는 초점의 주체인 주인물主人物과 부인물副人物이 있고, 인물들을 통해서 표현되는 행위와 직접대화가 있어서 그 이야기들이 암묵적 관객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명시적 혹은 암묵적 독자들에 의해 읽히게 된다. 그래서 ‘섬으로 씨의 나흘간’의 주인물主人物인 섬으로 씨는 사실 소설 속의 이야기나 담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서사문학인 소설에서 작중인물은 행위의 주체자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