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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517 산 자들의 사명(고린도후서5장1-7절)
성경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7절까지 봉독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고린도후서 5장 본문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조금 어렵죠. 하나도 어려운 단어가 없는데 어려워요.
이것은 배경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는데, 이것은 바울이 헬라라고 하는 나라, 헬라 철학이 만연되어있는 그야말로 헬라 본 고장에 갔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느냐 하면, 4장 16절에서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하는 데에서 시작해서 중간에 끊어졌기 때문에 연결이 잘 안 되어 있고,
또 고린도라는 배경이 헬라 철학이 만연되어 있는 곳인데, 그 헬라 철학 사상에는 보이지 않는 영은 선한 것이고, 보이는 바 육체는 악한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은 보이는 악한 육체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악한 육체가 영혼의 감옥처럼 있었는데, 거기서 벗어나서 자유하고 해방되는 것이 이게 죽음이다..
이렇게 죽음의 철학을 그렇게 해 놨는데, 기독교는 그게 아니거든요.
여러분 영혼만 선한 것이고 육체는 악한 겁니까?
육체가 가끔 악의 도구로 쓰임 받죠?
그런데 육체가 악의 도구가 될 때는 항상 영혼이 육체보다 먼저 입니다.
영혼이 먼저 악해져가지고 그 악한 영혼이 아무 악도 없는 육체를 움직이게 해서 악을 행하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만약에 사람을 때렸다면 분명히 손이 가서 때렸는데, 그 손보고 때리라고 한게 누구죠?
안에 있는 영혼 아닙니까?
손이 때리기 전에 영혼이 먼저 악해져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영은 선한 것이고, 보이는 육체나 물질은 악한 것이다.
헬라 철학이 매우 잘못된 철학이예요.
아직도 우리 목회자 목사님들 중에서도 그저 물질이나 육체 세상 이런 것은 다 악한 것이다.. 그리고 영은 선한 것이다 이런 헬라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잘못된 겁니다.
육체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거야.
그냥 그릇이예요. 그릇..
여러분 도끼를 가지고 사람을 패면 그것은 악한 것이지만, 도끼로 장작을 패면 선한 것이죠.
육체라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영혼에 따라서 선한 일에 쓰임 받기도 하고 악한 일에 쓰임 받는 것이지, 육체가 일률적으로 악하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러니까 헬라 철학이 굉장한 철학 같아도 사실은 진리를 모를 때는 헛소리에 불과해요.
맞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지만 우리 속에 있는 영혼이 타락하고 죄성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육체도 결국은 오래 가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에는 조금 죄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고 가끔 감기도 걸리고 아프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골골하면서도 다 오래살기를 바라요.
‘나는 골골하다가 빨리 골로 갔으면 좋겠다.’ 하는데, 아무도 빨리 죽기를 바라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하지만 대개 안 그래요.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무거운 짐진 것을 탄식하면서도 1년만 더 살 수 없을까? 3년만 더 살고 싶다. 그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은 거예요.
육체라는 것은 오래 살아야 되겠다. 120년..
근자에 우리가 금세기 지난 세기에 130세 넘게 살았던 사람 얘기는 못 들었어요. 제가..
오래 살아야 120년 정도 그 정도가 한계이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한편 이런 생각이 들어요.
창세기에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은 주제에 악해졌는데, 선악과를 따먹고 그 주제에 영생할까 싶어서 하나님이 겁난다는 거야.
여러분 죽음이 있으니까 죽음 이후가 어떻게 될까 싶어서 고민도 하고 인생을 철학도 하고 돌아보고 혹시 그 죽음 이후에 진짜 천국이 있을까 지옥이 있을까 조심을 하지, 그냥 이대로만 계속 살면 절대 회개 안 할 겁니다.
이 상태로만 유지되면 회개 안 할 거예요.
예를 들어서 사형수 중에서 회개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회개하고 정말 좋은 사람 되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보고 참 생각이 좁은 목사들이 밥먹고 할짓 없으니까 그러니까 사형제도 없애야 된다..
하나는 알고 하나 반도 모르는 사람이 있어.
사형 제도가 있어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니까 다른 길이 없으니까 예수 믿는 거예요. 할 짓 없으니까..
그 사람들이 무기형으로 되면 어떻게 하든지 거짓으로도 선행을 보여가지고 빠져나와서 완전범죄할려고 회개 안 합니다. 진짜.. 예수 안 믿어요.
꼭 같아요.
하나님도 사형제도를 준 거예요.
날 때부터 우리가 사형선고 받고 그리고 얼마나 집행이 연장되느냐? 집행이 120년 후에냐? 30년 살다가 집행하는 거냐? 뿐이지 사실은 사망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나는 거예요.
죽음이 있기 때문에 그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미래가 걱정되어서 예수 믿지, 만약에 지금 이런 상태로 영원히 살면 안 믿을지 몰라요. 진짜..
진짜 사람이 언제 숙연해지고 겸손해지느냐 하면, 죽는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있다는 거야.
죽음 앞에 가서는 누구든지 한가지는 생각하거든요.
아이고 죽는구나..
그래서 여기 헬라인들이 죽음이라는 것을 엉터리 철학을 해 놓고는 아주 잘한 것처럼 해가지고 ‘죽음은 영혼의 감옥이었던 악한 육체에서 선한 영혼이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뚱딴지 같은 철학을 했고, 그것을 아주 잘한 것처럼 생각했는데, 아니거든요.
사실은 인간을 딱 시한부로 만들었어요. 하나님이..
암에 걸려서 의사가 그저 1년 길어야 2년입니다. 이렇게 하는 시한부가 아니라 날 때부터 시한부라니까.. 70년 아니면 80년이죠.
특별히 어떤 사람이 건강관리를 잘하고 유전자가 타고난 좋은 집안에 잘 보존되어서 한 120년 살아도 150년 넘게 산 사람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한때 한 전도사님에게 한시선교회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한시..
왜 한시라는 말을 만들었느냐 하면, 인생은 암에 걸려서 사형선고 받은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누구든지 시한부 인생으로 태어난다.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다. 다 시한부다.
그러니까 되면 되면 놀며 놀며 하지 말고, 마치 시한부처럼 그렇게 일 하면 인생을 살고 나서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 그래서 한시선교회 한시미션이 나온 거예요.
서울에 조병호 목사가 하는 한시선교회가 그 한시라는 말을 제가 써 준 겁니다.
그와 같이 저도 지금은 젊은 날처럼 그렇게 못하지만, 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내가 일을 하면 얼마나 할 수 있으며 내가 사랑을 하면 얼마나 할 수 있으며 내가 충성이나 봉사나 선행이나 좋은 일 하면 몇번이나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또 설교도 내가 앞으로 몇번 더 할 수 있겠는가..
집회도 성경강좌도 내가 몇번 더 할 수 있겠는가..
항상 시한부 삶을 사는 것이니까..
우리가 받아놓은 날짜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서 이 땅에 있는 장막집은 무너지는 집이예요.
육체라고 하는 이 집은 참 견고해요.
제가 60년 넘게 썼는데, 아직 쓸만하잖아요.
60여년 넘게 썼는데 별로 보링도 안 하고, 크게 정비소에 간 적도 없고..
그런데 구석구석에 조금씩 후패하는 거야.
제일 먼저 머리에 색깔이 달라지더라고..
제가 일부러 내가 젊은 것처럼 착각할까 싶어서 물도 안 들이고 가만히 놔두잖아요.
이게 바로메타처럼 땅에서 살 날이 얼마 안 된다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록하는 거죠.
뭐 하면 이마에 주름도 자꾸 늘고 눈 옆에 주름을 만들면서 점점 겉 사람은 낡아지고 후패해지는 거예요.
이것이 무너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후서 5장]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집이라고 은유되었는데, 이것은 영체를 말해요. 영체..
육체와 영체. 그러니까 우리 지금 현재 입고 있는 몸은 이게 참 견고하고 참 잘 설계되었지만 그렇지만 시한부이고, 아무 시간 제한이 없는 영원한 몸이라 하는, 영원히 후패하지도 늙지도 병들지도 아프지도 죽음도 없는 무너지지 않는 그런 집은 신령한 몸 영체라는 겁니다.
그런게 있다는 거죠.
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것도 참 굉장히 중요한 말인데, 왜 자꾸 덧입는다고 하느냐?
벗어버린다고 하면 이게 헬라사상과 비슷하게 착각할 수 있어요.
헬라인들이 자꾸 벗어버리는 것을 소원하고 죽으면 곧 벗어나는 것이다, 해방이다, 육체라는 감옥에서 영혼이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
잘못된 생각을 할까 싶어서 ‘아니야 우리는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덧입기를 바란다.’
신령한 몸으로 덮어 씌워서 덧입기를 바라는 것이지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3절에,
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헬라인들이 자꾸 벗는다고 하는데, 벗는게 아닙니다.
..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육체라는 것이 영체로 덧입어서 확 변해버리는 것이지, 육체와 영혼이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얼마전에 정진경이라고 하는 추기경이라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영으로 부활하는 것이지 육체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했어요.
헬라철학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요. 스콜라 철학이나 헬라철학에 물든 신학을 했어요.
우리도 몸이 다시 사는 것, 만약에 육체가 부활하지 않고 영으로만 부활하는 것 같으면 예수님의 시신이 거기 남아 있어야 돼요.
예수님이 영체로 부활했다면 시신은 무덤안에 있어야 돼요.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했다니까..
영이란 것은 살과 피가 없잖아요.
예수님께서 ‘봐라. 영은 살과 피가 없지만 나는 다 있어.’
그래도 못 믿어 하니까 ‘여기 먹을 것 없느냐?’
생선 한 토막 드렸더니 잡수셨다는 것 아닙니까?
몸이 다시 사는데,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가지고 못자국까지 있는 몸이 신령한 몸으로 바뀐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사도신경에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거죠.
그 추기경이 몰라도 한참 모르는데 아무도 감각이 없어가지고 몰라.
누가 그것가지고 딴지를 걸거나 시비를 걸거나 이단이다 그런 말도 없고 그냥 추기경이 말했다하니까 가만히 있어. 그냥..
귀가 열린 사람중에 에스라 하우스에 왔던 어떤 분이 ‘목사님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는데, 맞습니까?’ 맞기는 뭘 맞아? 틀렸지.
그래서,
6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믿음으로 행한다’ 하는 말이 제가 자주 얘기 했죠. 충성됨으로 행한다.
충성됨으로 행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안 보이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는 것처럼 행하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겼는데, 주인이 보면 하는 척 하고 그저 안 보면 놀며 놀며 하고 그러면 어때요? 충성된 것이 아니죠.
충성된 것은 주인이 보거나 안 보거나 하나님이 보거나 안 보거나 그냥 하나님 면전에 사는 것처럼 행하는 이것이 충성된 것이고 이것이 신실한 것이고 이게 믿음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하는 말이 충성됨으로 행하고, 보면 하는 척 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왜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안 보이느냐?
늘 보이면 우리가 충성된게 없어져버려요.
노예적인 굴종만 있는 거예요.
겁이 나서 벌벌벌 떨면서 조금도 쉬지 못하고 그냥 충성하는 척 계속해야 될 거야.
매일 하나님이 보여봐요.
자유도 없고 화장실 가서도 보이고 계속 보여봐.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는데, 계속 보이면 참 불편하겠죠.
그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우리눈에 안 보이는 것은 믿음으로 행하는가? 하나님이 안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보는 것으로 인식을 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는가 보고자 한다는 거예요.
충성된 사람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는 그 말씀을 믿고 마치 하나님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거예요.
8절입니다.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이게 담대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과 담대함이 없으면 어떻게 몸을 떠나서 예수님께 간다고 하겠어요?
그런데 담력중에 최고의 담력이죠.
죽어서 빨리 예수님께 가는게 더 좋겠다는 것은 대단한 담력이라.
나는 그런 사람 간이 배 밖에 나왔다고 봐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 있는지 몰라.
그런데 철도 없을 때 저도 갓 믿을 때는 ‘아이고 뭐 살면 감사하고 죽으면 천당이다. 젠장.’ 이렇게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해 놓은 것은 없고, 무슨 배짱을 가지고 죽으면 천당이고 그런 말을 했는지..
물론 믿음으로 가기는 가겠죠.
우리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 피값으로 죄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 가기는 가겠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해 놓은게 없는 거야.
사실은 참 겁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나마다 바울은 담대한 믿음을 갖고 있어요. 바울의 육체가 말썽 많고 힘들고, 거기다가 늙었는가봐..
배를 타면 멀미를 하고 그리고 어차피 건강이 원래 안 좋은데다가 늘 무슨 병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세번이나 기도해도 안 나았다는 거야.
항상 예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면서 ‘너 은혜 받은 것만 해도 너무 많이 받았어.’ 그리고 안 고쳐줍니다.
안 고쳐준다고 그 병 때문에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항상 탄식하면서 확 벗어버리고 예수님께 가는게 더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나 내 입장만 생각하면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땅에 조금 더 있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면 내가 어느 것을 선택할지 모르겠다. 바울은 그런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심판이 있습니다.
정죄 받아서 지옥가는 그런 심판이 아니라, 각각 그 몸으로 행한대로 받는 심판이 있는 겁니다. 신자라도..
그러니까 신앙생활 하되 그저 슬슬 눈치나 보고 체면 앞가림이나 하고 이렇게 한 사람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보는 것같이 충성되게 행한 사람과 상급이 다른 거예요.
몸으로 행한 대로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똑같아야지 차별이 있으면 그게 천국이냐?’ 하고 길길이 뛰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열심히 뼈골 빠지게 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순교까지 한 사람과 그저 괜시리 턱걸이처럼 해가지고 그렇게 믿는 사람과 똑같으면 그게 불공평이죠.
다릅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이 또 다르다는 겁니다.
계시록에 가서 보면 ‘네게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일한 대로’라는 거예요.
아무 일도 안 해놓고 그리고 똑같이 받겠다는 것은 아주 못된 심보예요.
그런 사람 같으면 천국문에 들어가지 못할지 몰라요. 못된 심보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 각각 선악간에.. 각각입니다. 단체별 교회별 구역별이 아니고 각인이예요.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아간다는 겁니다.
이런 것 우리가 잘 새겨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람들이 내게 기분 좋게 한다, 기분 나쁘게 한다, 거기 매여서 상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어떤 사람은 정치인들 타락한 것을 보고 살 맛이 없다고..
그러면 죽어야지 살맛이 없으면..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타락할 필요가 뭐 있어요?
그 사람들이 누가 잘못하면 잘못한 것 때문에 내가 낙심할게 아니라, ‘야 저 사람이 놀고 있으면 내가 달려가면 내가 일등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달려가야지..
딴 사람은 농땡이 친다고 그것 기분 나빠하고 낙심하면 안 달아나면 상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누구 꼴 보기 싫어서 교회 가기 싫다’. 그런 소리 하면 안 돼요.
꼴 보기 싫은 사람 있을 수 있죠. 그런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도 다 보고 있어. 참고 계셔요.
하나님이 참으면 우리도 참아야 돼요.
딱 못 봐주겠다 하나님 봐주고 있으면 우리도 봐줘요.
하나님이 받았으면 너희도 받으라 그런 말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우리를 실망시킨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내가 신앙에 손해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그게 지혜라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에 와서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에 들면 그게 교회입니까? 교회가 아니고 천국이예요. 천국..
여기는 천국이 아직 아니고 과정이예요. 과정..
제가 늘 이야기 하죠.
병원에 가서 웬 환자가 이렇게 많냐고 하지 마세요. 병원이니까..
건강한 사람만 있으면 병원 필요없죠.
교회는 죄인들만 모아 놓은 곳이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문제가 있어요.
그리고 입원한 사람도 있고 거의 치료가 다 되어가는 사람도 있고 영 죽을 때까지 치료가 안 되는 사람도 있어요.
죽어야 끝나는 사람이 있다니까..
그러니까 여러 가지 사람이 있지만 그래도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서 있는 겁니다.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된 사람도 있고,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된 사람이 있을 뿐이지 방향이 하나님께로 가는 거예요.
그런 사람도 잘 할 수 있다고 붙들어 주고 해야지,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살 맛이 안 난다고 해가지고 아무 일도 안 하면 참 미련한 일이야.
11절,
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얼마나 미련한 생각이냐 하면, ‘진짜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나 같은 것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성경에 보니까 이 사람아 자네 머리카락까지 세고 있네..
나는 내 머리카락이 몇개인지 몰라. 하도 빠지니까 세어놔도 숫자가 잘 안 맞아요.
우리는 모르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헤아리고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성경강좌에 와서 은혜를 받았는지 진리를 받았는지 뭘 받았는지 모르지만 가서 딱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노목사를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종이다.’ 그렇게 하더라는 거예요.
그런 메일이 나에게 와요.
저 사람 헛것을 봤는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기분이 별로 나쁘지도 않더라고..
그러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한번도 안 해봤는데 어떤 사람이 기도하니까 한두 사람도 아니고 몇사람이 그랬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내가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종이다.’ 그렇게 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별로 실감이 안 나요.
나도 진짜 정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나같이 해 놓은 것도 없고 도시가 겁이 나서 맨날 농촌에 빌빌 돌다가 그런 나같은 것을 하나님 기억하실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누가 그런 말을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보기는 보고 계신가 보다..
여러분 그런 믿음도 중요한 거야.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꼭 그것을 못 믿는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예수 믿은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자전거로 20리길을 자전거를 밟아가지고 자갈밭길을 가요.
그것도 오르막 내리막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경상남도 산청군 특리라는 곳에 가는 거예요.
아스팔트가 되었어도 힘드는 길이예요. 길이 너무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서..
그래서 갔는데, 우리 예배처소로 얻은 집이 민병용이라고 하는 우리 동기인데, 그 집은 부자집이야. 특리에서 제일 잘 사는 집 같이 보이거든요.
집이 하여튼 엄청난 대궐같은 그런 집인데, 대궐같은 집에 민병용이는 외동아들이었는데, 하여튼 우리 온 반에 가죽볼 턱이 쳐진 애는 그애 하나 뿐이었어요. 잘 먹어가지고..
우리는 삐쩍 말라가지고 코가 허연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고 반질반질하고 꾀죄죄하게 못생기고 했는데, 그런데 그 애는 옷도 내가 볼 때 맞춘거야. 초등학생때부터..
머리도, 우리는 집에서 가위를 가지고 사방공사 한것처럼 층계층계로 가위로 깎으니까..
그런데 그 애 머리는 멋드러지게 완전히 영화배우 같은 거야.
그런 집 아들이예요.
그런데 그 집 아들이 도시에 가고 나니까 그 어머니가 혼자 그 큰 대궐같은 집에 혼자 사는 거예요.
혼자 살다보니까 우울증에다가 귀신도 들어가고 딴것도 들어가고 해가지고 하여튼 좀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그 집에 가서 민병용이와 동기라고 하고 전도할려고 하니까 자기도 어릴 때 교회 나가봤다고 하면서, 외로우니까 우리를 반기는 눈치인데,
그 아랫채에서 우리가 가정교회처럼 하는데, 그런데 갈 때마다 동민들 전도도 전도이지만 그 집 안주인을 전도해야 될 것 아녜요?
그래서 전도한다고 하는데 항상 부딪치는게 뭐냐 하면, 다 받아들이는데 뭘 못 받아들이느냐?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했다는 것 그것은 납득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자기를 사랑했다는 것은 못 믿는다는 거야.
‘그 크신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어떻게 기억하며 어떻게 나를 사랑하겠는가..’
끝내 해결이 안 되었어요.
여러분은 혹시 그런 생각 없어요?
세상을 사랑한 것 인류를 사랑하는 것 말고, 나를 사랑하신 것을 믿어지냐고? 개인적으로..
거기다가 인생을 살아가다 이런 저런 불행이 계속 터지고 연속으로 터지고 설상가상으로 터지고 이렇게 불행이 터질 때 그래도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나?
회의가 안 갈까요?
그래서 제가 그 요한복음에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얘기를 하는 거죠.
거기 보세요.
그 집에 불행이 부모님도 다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렇죠?
오라버니는 나병 환자야. 막내 마리아는 아마도 창녀 같거든..
세상적으로 내 놓을게 뭐 있어요?
누가 복 받은 가정이고 누가 은혜받은 가정이라고 하겠어요?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하나도 해결 해주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그 가정을 사랑한 것은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런 저런 어려움도 겪어보고 그럴 때 까딱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 믿을 수 없다. 이렇게 흔들릴 수 있죠.
그럴 때 그런 사례가 만약에 하나님이 사랑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을 좀 있다가 봐요. 얼마나 얻어터지고 고생했는지..
나는 사도바울이 받은 고난에 비하면 100분지 1도 안 될 거거든요.
예레미야를 하나님이 사랑해요.
그러나 그의 일생은 맨날 그냥 얻어터지는 거야. 굶기를 밥먹듯이 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게 사랑하면 뭐든지 잘되게 해주고 만사형통하게 그렇게만 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 두시고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했다는 거예요.
거기에 제가 감격한 거예요.
여러분 그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집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회의가 있었다는 거죠.
여러분 목사라도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것이 맞나? 나는 버림받은 종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왜 안 들겠어요? 듭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하나님이 버린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도 자기가 알려졌기를 바라고 너희 양심에도 최소한도 사도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바르게 인식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좀 제대로 양심에 알려졌기를 바란다. 그런 애타는 얘기를 하는 거죠.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이 말이 좀 어렵습니다만,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정신나간 사람이나 미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미쳤다 좋다 미쳤다 그래.. 미쳤다 할지라도 우리가 딴것 때문에 미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돈에 미친 것도 아니고 무슨 색욕에 미친 것도 아니고 무슨 노름에 도박이나 무슨 그런 데에 미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미쳤더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미친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미친 것이 아니고, 참으로 우리가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게 바로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두군데 집회를 가고 있잖아요. 광양과 부산에..
그 광양이나 부산에 집회를 가서 자칫하게 되면 그런 집회 다니는 사람은 사례금이나 벌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처럼 그렇게 비칠 수가 있어요.
그러면 말씀이 안 들어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마음의 문이 열리느냐?
내가 여기 여러분에게 이 집회에 집회 강사 왔다고 사례금 주는 것 그것 바라고 온 것 아니지 않느냐? 내가 내 차비해서 올 수 있지 않느냐?
여러분이 밥은 사 주는데 내가 먹지만, 내가 일 하러 왔지 대접받으러 온 것이 아니니까..
시장에 파는 그저 일반 노동자들이 먹는 음식도 충분하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많이 먹지도 못하고..
그것을 한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 몇번 진짜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마음의 문이 열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소신껏 이야기 할 수 있고, ‘언제든지 제 이야기가 기분 나쁘거나 부담 되거나 하면 이야기만 하라. 나도 안 하면 십분 편하겠다. 그냥..’
그러니까 참 자유하지 않습니까? 저도 떳떳하고..
그래서 바울이 내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만약에 정신이 온전하다면 정말 여러분을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냐? 그런 말을 하는 거죠.
14절이 핵심입니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죽을만 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은 것 아니냐?
그러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었으니까 죽은 거야.
대신 갚았으면 갚은 거죠. 대신 죽었으면 죽은 거야.
죽은 사람은 욕심도 없어야 돼요. 자기 야망이나 이런게 있으면 안 돼.
죽은 사람이 무슨 야망이 있어요?
죽은 사람이 무슨 꿈이나 이런 자기 욕심의 꿈을 꿔가지고 이런 것 있으면 순수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욕심이라는게 3대 욕심이 있다고 했죠?
뭐가 되겠다, 뭘 하겠다, 뭘 가지겠다..
가진 것 자칫하면 이것도 사람을 순수하지 못하게 하는 건데 욕심 때문에 뭘 가지겠다.
아무리 가져도 그 욕심이 안 차는 것 같아요. 사람이..
뭘 하겠다. 뭐가 되겠다. 몇 가지 욕심을 다 내려놓고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여러분 대신 죽은 분이 있기 때문에 대신 산 사람이 있는 거죠? 그렇죠?
예수님이 대신 죽었으니까 우리가 죽은 것인데,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았다는 거예요. 대신..
그분이 희생됨으로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니까,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이 죄성이라는게 근본은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살아버리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도모하는 것 모든 목적이나 계획이나 꿈이나 소원이나 비전이나 모든 것을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 이름 자기 명성을 날리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면 목회자도 도둑놈이야.
하나님의 영광도 아니고 성도들을 진리길로 생명길로 걷게 하는 것도 아니고,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자기 목회 성공을 위해서 자기 왕국을 만들고 1천번제 3천번제 5천번에, 심지어 최근에 10만번제가 개발 되었어요.
그래서 돈을 끌어모아가지고 대형 빌딩을 지어가지고 사람을 끌어모아가지고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는 그런 것은 목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거예요.
성경도 이용하고 예수님도 이용하고 하나님도 이용해서 자기 욕망을 채울려고 하는 것이다. 목사라도 잘못된 거예요.
총회장을 해도 잘못된 거예요.
어떤 총회장 후보자라는 목사가 교회 예산을 다 떨어 부어가지고 선거 비용에 쓰고 그리고도 투표권이 있는 모든 목사를 수요일저녁마다 불러가지고 설교를 시켜가지고 사례금을 듬뿍 주고 한다는 거야.
‘이런 교회 계속 나가야 되는지 모르겠다.’ 하면서 제게 그런 메일이 왔어요.
내가 일부러 답도 안 하고 있었더니 얼마전에 다시 편지가 왔는데, 천 8백여명 정도 모이는 그 교회에서 나와서 10명 모이는 교회로 옮겼다는 거야.
아직 답장을 안 했는데, 내가 속으로 잘했다고..
온 교회가 그 사람 총회장 나가는 것 그것 되게 해줄려고 진액을 다 빼어서 되겠습니까?
뭐가 되겠다. 그런 욕망이 있는 거예요.
순수하지 않다는 거야.
그래서, 거기 줄을 그으세요.
..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이 죄라는게 죄성은 항상 있습니다.
‘네가 너를 위해서 살아라..’
이리 보세요.
양계업을 하는 분들은 사료를 계속 먹이고 돌보고 질병을 예방하고 그렇게 알뜰 살뜰하게 하는 것은 달걀을 얻고자 함이예요. 그렇죠?
양계하는 사람은..
그런데 그 닭이 꼬꼬댁 하고 알을 낳고는 돌아서서 깨어 먹어버려봐.
야 맛있다 그러면서..
그러면 그런 닭은 통닭집으로 가야 돼요. 그렇지 않습니까?
소가 우유를 짜가지고 지가 다 마셔봐..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살아버리면 그 자체가 죄라는 거예요. 범사에..
꼭 우리가 무슨 살인을 하거나 누구를 구타를 하거나 폭력을 하거나 이런 것만 죄가 아니라, 그것도 죄이지만 모든 일을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살아버리는 것. 선한 일도 열심히 일하고 땀흘려 농사짓고 한다할지라도 그 목적이 전부 다 자기를 위한 것으로 끝나면 그 자체가 죄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어차피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은 이래도 먹고 저래도 먹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면 남은 모든 여력은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써야 돼요. 그게 정상적인 삶이예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쓰거든요.
여러분 모든 것을 내가 나를 위해서 산다 하면서 삶의 필요한 모든 것을 나 혼자 해봐요.
인생이 엉망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옷이나 신발이나 이것을 전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가 내 손으로 베를 짜고 재단해가지고 재봉틀 가지고 옷을 만들어 해 입고, 신발도 내 손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고, 머리도 내가 깎고 해봐요.
인생이 엉망이 될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고, 또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내가 사고 이렇게 하니까 우리가 폼이 나는 거죠.
저야 뭐 좀 솜씨가 있습니다. 뭘 해도..
저는 괜찮은데, 군에 가서 옷에 구멍이 났는데 그것을 기울줄 모르고 어떻게 할 줄 모르니까, 안에서 뭉쳐서 묶어요. 그래서 뒤집어 입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참 일을 많이 했죠.
어려서부터 노동에 시달려서 도망을 가고 싶을 정도로 일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제가 돌아보면 내가 일 한 것은 내가 세금 낸 것보다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일 한 것이 내가 세금 낸 것보다 더 많이 누리는 것 맞죠?
그러니까 발전했죠.
전부 다 내가 한만큼 내가 먹었으면 발전 안 하죠.
잉여가치가 쌓여가지고 발전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누구든지 사실은 어차피 내가 남의 일 잘하면 내게 필요한 것이 생기고, 내가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이렇게 사는 거거든요. 어차피..
그런데 사람의 사고틀이 잘못되어가지고 모든 것을 욕심으로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살아버린다고 하면 그게 바로 죄성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어차피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잖아요.
어차피 남을 위해서 사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다 어차피 하나님 위해서 살아야 되고, 어차피 이웃을 위해서 살아야 정상이예요.
바울이 그리스도교의 아주 핵심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여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그 뭘 보고 아느냐?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었거든요.
나 때문에 죽었으니까, 그분은 나를 대신해서 죽어도 주는데, 우리가 그분을 위해서 사는 것 그것 못하겠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제는 내 안에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내 삶의 목적과 방향과 이런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죽든지 살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전부 다 나를 위해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녀를 기르는 것도 자녀를 위해서 자녀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자녀를 길러야 돼요.
아이를 낳는 것도 ‘아이고 귀찮다.’ 이렇게 할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아이를 낳아야 돼요. 미래를 위해서..
여러분 에덴동산에서 뱀이 다가와서 ‘하와야.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다가 내가 그것 참 좋아하는데 그것을 따서 내게 제사 지내라.’ 해 봐요.
그러면 하와가 ‘너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네가 따다 네가 먹어라. 내가 미쳤나’ 하고 안 했을 거예요.
뱀은 그렇게 멍청한 소리 안 합니다.
네가 따서 네가 먹고 네눈이 밝아져서 네가 하나님처럼 되라는 거예요.
‘네가 네 자신을 위해서 도모하라.’ 이러니까 속는 거죠.
이게 바로 이기주의예요. 이기주의..
여러분 이기주의가 죄라는 거예요. 에고이스트(egoist)죠. 에고이스트..
그것을 깨고 나와야 돼요.
에고이스트 안에 자기가 자기 안에 자꾸 거미줄을 치고 자기 생각속에 갇혀버리면 자기 속에 자꾸 좁아지는 거예요.
자기 속에서 자기 하나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감옥이 에고이스트예요.
그것을 깨고 나와야 돼요.
16절,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크게 오판 한 거죠.
..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러니까 사람을 외모로 육체적으로 그런 세상적 판단으로 봐서는 안 돼요.
세상적 판단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은 저주받은 자예요.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받은 사람이니까.. 그런 식으로 봤어.
어떤 사람도 육체대로 봐서는 안 된다는 거죠.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살든지 죽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분만을 위해서 살게 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예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정말 새로운 피조물이 된 거예요.
..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런데 보통 보면 14절부터 16절까지 정확하게 읽어보고 17절을 요절로 알아야 될텐데, 14절부터 16절은 하나도 모르면서 17절만 가지고 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자꾸 요절을 하면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런 설교 내가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생각할 때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었어요. 예수님께서..
그러면 죽은 거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게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피조물이죠.
이전 것은 지나갔어요. 이전 것은 뭐죠?
누구를 위해서 사는 거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범사에 자기를 위해서 하던 것이 이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똑같이 직장에도 가고 똑같이 밥도 먹고 똑같이 옷도 입는데 그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거예요.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이야.
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한 거예요.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화목하게 하사’ 하는 것은 ‘화합하게 하사’라고 해도 좋아요.
‘카달라소’라는 말은 화합, 화목이라고 ‘리카온슬레이션(reconciliation)’이라고 번역하고 있어요.
대화가 단절 되었다가 다시 대화가 되었다.
여러분 사람도 살다가 누군가가 좀 삐치고 토라지고 그런 사람 있죠?
그래서 서로 불편해요.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보고 ‘아 이래봐야 나만 손해 보겠다.’ 해가지고 삐졌다가 ‘나 밥 안 먹을래.’ 안 먹으면 자기만 손해지..
먹지 말라고 해봐..
그래서 화목되면 다시 대화가 되고, 그런 관계가 깨어졌다가 다시 화합되는, 우리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져 있잖아요.
죄를 짓고는 지가 죄를 짓고 지가 성내는 거야. 똥낀 놈이 성낸다고..
그래가지고 듣고는 하나님께 돌아와서 다시 하나님과 대화가 시작되고, 대화를 해보면 하나님이 잘못된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 인간이 잘못된게 현저하게 드러나는 거예요.
그 때 회개가 일어나는 거죠.
..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전에 제가 이 부분을 설교할 때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런 제목으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자기들이 하나님과 등지고 하나님과 원수지간 되어가지고 불목(不睦)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을 못해요.
워낙 오래된 일이라. 자기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득한 할아버지때부터 하나님을 등진채 태어났기 때문에 그게 정상으로 알고 있는 거예요.
이봐요.
10대조 할아버지가 섬에 살다보니까 거기에서 아이를 낳아버렸어. 그러면 섬 사람이죠.
거기에서 태어나는 모든 후손이 자동으로 섬사람인 것처럼..
우리가 모두 다 하나님을 떠난 채 자식을 계속 낳다보니까 자기가 자기 의지로 떠난것이 아닌데도 이미 떠난 상태로 태어나는 거예요.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게 정말 굉장한 언어죠.
여러분 보세요.
중학교 3학년이나 2학년짜리 이런게 여러분을 죽이겠다고 딱 이를 갈고 칼을 갈고 있어봐요. 섬뜩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나님과 등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칼을 갈고 있다니까..
하나님께서 벼르고 있어.
‘내가 70년 내지 80년 시간을 줄거야. 끝까지 안 돌아왔다면 봐.’ 얼마나 무서운 일이예요?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지금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니까..
그리고 원수된 지금은 등지고 돌아오면, 대개 왜 못 돌아오느냐? 죄가 있거든요.
그게 자꾸 걸려서 못 돌아오는 거야.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 문제를 다 해결해 놨어.
그러니까 오라고.. 이게 복음이예요. 복음..
죄 있어도 괜찮아. 우리의 죄값 다 지불했으니까 돌아오기만 하면, 돌아오는 것이 고마워서 죄를 묻지도 않고 다 처리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런 얘기가 복음이예요. 복음..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처럼, 마치 죄를 한 번도 안 범한 사람처럼 하나님께 설 수 있게 할려고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6장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여러분 사도바울의 자의식, 자기 자신에 대한 아이덴티티(identity)가 뭐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하나님과 일하는 자로서,
..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은혜받을 수 있는 기회를 헛되게 보내지 말라.
아무 때나 은혜가 있고 아무 때나 그저 구원받고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어떤 기간이 지나가면 안하고 안하고 안받고 안받고 하면 안받는게 아니라 못받는 때가 금방 와요.
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은혜 베풀 때’ 라는 게 있어요. 때..
하나님의 카이로스라는 때가 있어요.
그 정한 때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하고 아무리 두드려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거죠.
..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이예요. 지금..
내일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지나간 날은 어쩔 수 없어요. 오늘. 보라 지금..
노래 중에 ‘지금 오라’ 그런 노래도 있죠. 지금 오라..
‘이 다음에’ 그것은 위험해요.
사탄이 제일 우리에게 늘 하는 얘기가 ‘이 다음에 해 이 사람아.. 이 다음에..’
‘얼마든지 새털같이 많은 날에.. 꼭 오늘 할 필요 없다..’
마귀가 쓰는 말이 ‘다음에 해도 된다.. 굳이 오늘 갈려고 하느냐?’
자꾸 이 다음에 이 다음에 가라..
그러면 안하고 안하고 하다가 미루고 미루고 하다가 못할 때가 온다는 거야.
3절에,
3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때로는 영광스럽고 때로는 천하에 욕먹어 가면서,
.. 악한 이름과,
여러분 바울이 받은 악한 이름이 뭐예요?
천하에 퍼진 염병이다, 나사렛 이단의 괴수다..
별의 별 악한 이름 다 들었어요.
저도 제법 타이틀이 있습니다.
제가 음식을 가려먹자 했더니, ‘노우호 율법주의자..’ 별의 별 악한 이름 뒤집어쓰죠. 바울이 받은 것에 비하면 내 것은 타이틀도 아니죠.
얼마나 바울이 전한 복음이 빨리 퍼졌든지 염병이라고..
염병의 특징은 전염이 잘 되는 거예요.
‘천하에 퍼진 염병이다. 나사렛 이단의 괴수다..’
예수님은 ‘보라 먹기를 탐하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이런 악한 이름을 들었어요.
..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여러분 가보지도 않은 천국을 있는 것처럼 말하니까 누가 보면 꼭 속이는 것 같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여러분 사도바울이 당시에는 무명한 자죠.
열두 사도에 들지도 못했고.. 70인 제자에도 안 들었어요. 무명한 자예요.
그러나 사실을 보면 유명한 자라는 거예요.
오늘 사도바울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 되었습니까?
그 때는 몰랐죠.
..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바울은 몇번 죽음에 넘겨졌는데 또 살아나. 항상 죽음에 던져졌는데,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해가지고 또 살아있다는 거야.
..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여러분 참 자유한 사람이죠.
그런 것 가지고 연연하거나 그렇지 않았다는 거야.
이런 것 다 비결을 배웠어. 빈궁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일체의 모든 비결을 알았도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가난해도 괜찮고.. 모든 비결을 배웠다.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그러니까 바울 자신이 먼저 마음을 넓힙니다.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우리가 자꾸 살다보면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면 마음이 넓어져야 돼요.
그리고 좀 둥글둥글하게 원만해야 돼요.
안이숙 여사가 쓴 책 중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책이 있어요.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럴 수가 있다는 거예요.
마음이 넓어진 거죠.
편협하게 되지 않도록 좀 마음을 넓혀야 돼요.
그래서 고린도인들이 너무 편협하게 하면 안 된다는 거죠.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항상 우리의 마음을 넓히라.
우리 교회가 성장할려면 마음을 넓혀야 돼요.
나와 다른 사람이 있는게 정상이죠. 달라야 재미가 있지 똑같으면 필요 없는 거야.
다른 것 다양한 거죠. 하나님이 원래 다양하게 만들었으니까..
마음을 넓혀야 됩니다.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과 이해관계 때문에 너무 얽히지 말라는 거예요.
조심해야 돼요.
그런 사람도 어떻게 잘 사귀어서 전도까지 되는 수가 있었는데, 대부분은 이용만 당하고 마는 거예요.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
제가 아는 분 한분은 엊그저께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전도할 마음으로.. 그런데 그 돕는 것을 물질적으로 돈으로 도와줬어요.
글쎄 그렇게 도와가지고 전도해가지고 몇사람이 열매가 맺었는지 모르지만, 대개는 떼먹고 사람도 잃고 돈도 잃고 아주 엉망이 되었는데,
그래서 그 사람들 돕다가 자기가 부도를 맞았어요.
사업하고 믿고 공사해주고 못 받은 것 빌려준 것 못 받은 것 다 하니까 22억이 넘는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그 딸이 하나 있는데, 외동딸이 하나 있는데,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버지 철 좀 들게 하옵소서.’
그렇게 한다는 거야. 맨날 이용당하니까..
부인도 그것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해가지고 갑상선 암에 걸렸어요.
갑상선 암이 울화병이거든요.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속상해가지고 병걸렸는데, 암에 걸려가지고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그래가지고 그 암 수술하고 은혜로 나았어요.
암 수술하고 죽는다 싶으니까 괜히 쓸데없는 것 가지고 안달복달 했구나 해가지고 저 강원도 산골에 가서 땅을 좀 샀는데, 그 땅 값이 올라가지고 22억보다 더 많이, 올릴려고 간게 아니고 자기는 시골에 가서 거기에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갔는데, 전혀 부동산 투기할려고 마음 먹은게 아닌데 땅값이 올랐다는 거야.
그래서 그 떼인 것은 충분히 하나님이 보상하신 것 같다..
글쎄 내가 볼 때 보상같지 않은데..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것 오르면 자꾸 오르면 어떡합니까? 아무도 땅을 못 사고 말텐데..
그러나 어떻든 그래가지고 저를 만나가지고는 원래는 사회복지학을 했는데, 사회복지 암만 해봤자 도와주면 또 배신한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마음에 심는 것이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 보다 낫다.
그래서 지금 목사가 되었어요.
목회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제가 볼 때 물질로만 가지고 엮어진 것은 믿지 않은 사람들 돈 가지고 전도한 것 그렇게 튼튼하지 않다는 거야.
진리를 가지고 그 진리가 감각되는, 처음에 조금 몰라도 너무 그렇게 많이 얽히게 되면 어렵습니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과 함부로 얽혔다가는 반드시 당한다는 거야.
믿는 사람도 어려워요.
믿는 사람들도 나중에 이해관계에 얽히면 믿음도 배신해버리는 이런 사람도 있어요.
특히 같은 교회 안에 성도끼리는 더 조심해야 돼요.
제가 어떤 사람을 전도하다보면 예수 믿는 사람에게 돈을 떼였다는 거야.
그래가지고 ‘남의 돈이나 떼어먹는 그런 사람이 믿는 하나님을 나는 못 믿겠다.’ 그런 사람이 많아요.
여러분 에스라 하우스에 가면 화가가 있죠.
그 사람도 그래서 교회 나가기 싫다는 거야.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기분 나쁘다고 하고 신용이 없다고 하는 거야.
그 다음부터는 말이 안 통해요.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같이 맬 때는 조심해야 돼요.
결혼은 말할 것도 없고 결혼뿐 아니라 사업도 마찬가지예요.
사업 같은 것은 고용은 몰라도 동업을 한다든지, 나는 그렇게 해서 실패한 사람 많이 봤어요.
믿는 사람은 수단 가리고 방법도 가리는데, 딱 이해관계에 얽히면 세상 사람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돈 앞에서는 인정 사정 안 봐줍니다.
그렇게 되니까 믿는 사람만 손해보고 상처입고,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그래가지고 사업이 부도나고 깨어지고 나면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러는가..’
지가 말씀 어기고 그렇게 해 놓고는 ‘하나님이 내게 왜 이러는가..’ 하는 거야.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강제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알아서 조심을 해야 돼요.
절대로 과도한 욕심에 얽히지 않도록..
너희는 거기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얽힐려면 예수님과 얽히는게 좋습니다.
괜히 세상 사람들 명성이 있다 백줄이 있다, 세상 한번 살짝 바뀌면 바로 백줄 다 뺏기고 돈줄 다 끊기고 해서 위험 당할 수 있어요.
제가 그런데에 안 매이다보니까 어떤 사람들과 돈으로 얽히는 것 내가 참 싫어하고 빚지는 것도 싫어하고 겁을 내니까, 크게 발전은 없지만 시험당할 것은 없잖아요.
극히 삼가고 조심해야 돼요.
그래서,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면 족하죠.
..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7장 1절까지 하고 끝내야 장 구분이 되거든요.
‘그런즉’ 하고 결론이 나는데,
[고린도후서 7장]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세상 사람들과 너무 복잡하게 얽히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의 말씀을 따라서 또 좋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배우고 익혀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해하고 땅에 사는 날 동안에 영과 육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믿지 않은 사람들, 정말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신실하지 않은 사람들과 얽히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하신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