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진짜 빠르다. 엊그제 즈음 에포크 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해가 돌아왔다. 이번에 내가 들어간 에포크는 밴드다. 작년에는 에포크 때문에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신중하게 선택했다.
들어간 이유는 정말 복합적이다. 하지만 최대한 솔직한 이유는, 한 달 전에 사놓고 교실 한구석에 처박아둔 값이 꽤 나가는 베이스를 어떻게라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거기에 겸사겸사 피아노가 지루해지기도 했고, 독주에 적합한 피아노보다는 합주를 할 수 있는 악기를 하나 다루고 싶었다.
나는 지금껏 쳐온 악기라고는 피아노밖에 없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막상 들어가본 밴드는 내 기대보다 훨씬 재밌었다. 나는 지금껏 베이스나 그와 비슷한 기타 종류를 한 번도 친 적이 없었다. 그냥 정보도 지식도 실력도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인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이번 에포크 때 하기로 한 곡들은 전부 템포가 빠르고 하드한 것들이었다! 검색해보니 갤럭시 익스프레스라는 밴드 자체가 펑크 록, 개러지 록, 로큰롤, 사이키델릭 등을 기반으로 한 곡을 만든다고 한다. 사실 나도 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흔히 말하는 ‘센 음악’이라는 것은 알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런 선곡 탓에 첫날부터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버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튕겨보는 현은 너무 힘이 셌고, 내 의지대로 튕겨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기본 템포가 빠른데 디테일까지 촘촘히 있어서 정말 막막했다. 하필이면 네 곡 중에서 고른 두 곡도 하드한 곡이었다. 결국 같은 밴드 에포크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하루에 7시간을 연습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뿌듯하다. 근데 장난 아니고 진짜 개힘들었다. 아침 먹기 전에 일찍 내려가서 30분 손 풀고, 점심 먹고 나서 30분 연습하고, 저녁 먹고 나서 30분 연습하고, 수업 시간에 3시간 30분 연습하고, 기숙사 올라가서 2시간 연습했다. 거기다 틈날 때마다, 심심할 때마다 항상 쳤다.
그런데 확실히 그런 피는 안 났지만 물집은 잡힌 노력이 효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템포 따라가기만 해도 벅차서 겨우겨우 코드 근음만 치며 합주를 했는데, 어느 순간 되니 쨉쨉이로 원 템포를 따라가면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겁내던 잠깐의 솔로 파트도 뭉뚱그리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노력이 빛을 발했을 때, 그 때의 짜릿함은 정말 중독적이다. 서너 시간을 개인 연습만 하다가 합을 맞출 때의 느낌도 역시 짜릿하다. 마치 안 맞는 줄 알아 고전하던 퍼즐의 어귀가 들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본 공연 직전에 김휘동이랑 같이 조졌다조졌다 우리 조졌어 하면서 엄청나게 긴장했는데, 다 함께 미친 듯이 뛰는 사람들을 보니 절로 긴장이 풀려서 나 역시 즐길 수 있었다. 뛰면서 치면 다 빗나갈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기우였는지 연습이 효과가 있었는지 다 제대로 맞았다! 진짜진짜 뿌듯하고 기분 좋고 재밌고 아무튼 그랬다.
이번 밴드 에포크에 들어온 사람들이 다들 원체 실력이 좋기도 하고, 창원쌤 새한쌤 그리고 우리 베이스 도연쌤(!)께서 잘 이끌어주셔서 이렇게 본 공연을 즐겁게 마친 것 같다. 이번 해 에포크는 스트레스도 없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에포크였다. 다음 해에도 또 밴드에 들어가고 싶을 만큼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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