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9)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믿음으로 구원받고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여라
-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고, 사랑으로 서로 섬겨 성령의 열매인 참자유를 통해 육에서 해방될 것을 권고한다. 조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리스도’, 1305년, 스크로베니경당, 파도바, 이탈리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갈라티아서)은 초대 교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도적 권위와 저자 문제에 관해 논란이 된 적이 없는 서간입니다.
기원전 3세기께 갈리아(오늘날 프랑스) 남부 지방,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골 지역에 살던 켈트족들이 안키라(오늘날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를 중심으로 남으로는 지중해, 내륙으로는 카파도키아, 북으로는 흑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이주해 살았습니다. 훗날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이 지역을 갈리아인들이 사는 곳이라 해서 헬라어로 ‘Γαλατια’(갈라티아)라 불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1차 선교 여행 때 로마의 속주인 갈라티아 남쪽 피시디아·리카오니아·프리기아 등 여러 지역에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13,14-14,25) 그는 또 제2차 선교 여행 때 병에 걸려 갈라티아 지방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갈라티아 북부 지역 곧 카파도키아와 흑해 사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 공동체도 세우게 됩니다.(사도 16,6)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53~58년)을 시작하면서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치며 모든 제자에게 힘을 북돋아 줬습니다.(사도 18,23) 이를 근거로 어떤 이들은 갈라티아서가 49~53년 사이에 쓰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작성(57~58년)하기 몇 개월 전(56~57년께)에 갈라티아서를 썼을 것으로 봅니다. 학자들은 그 근거로 구원론과 의화론 같은 두 서간의 핵심 내용이 믿음·복음·구원·의화 등 비슷한 어투와 용어로 설명되고 있음을 제시합니다.
당시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에서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유랑(떠돌이) 선교사들이 찾아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강요해 마치 코린토 교회처럼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3,2-3; 4,21; 5,4) 아울러 코린토 사람들처럼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도 자유를 남용하면서 도덕적으로 방종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세례받기 이전 행했던 정령(精靈)들을 섬기는 미신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4,3.9)
이에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로 복음에 충실할 것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권고하기 위해 갈라티아서를 씁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Γαλαταε’(프로스 갈라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Galata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갈라티아서는 6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인사말’(1,1-10)과 ‘바오로의 사도직’(1,11-2,10), ‘바오로의 복음’(2,11-21), ‘구원 역사에서 믿음과 율법’(3,1-4,7), ‘종살이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권고’(4,8-5,12), ‘참자유에 대한 가르침’(5,13-6,10), ‘마지막 권고와 축복’(6,11-18)으로 구분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먼저 인사말을 통해 갈라티아 지방의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도직 활동의 원천이며 자기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라고 상기시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이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구원은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지며 유다인이 아닌 이민족들이 할례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합니다. 이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공식 인정한 복음의 진리라고 일깨워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구원 역사에서 드러나는 믿음과 율법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먼저,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됐는데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그리스도에게 전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전해지기 때문에 약속된 구원의 축복과 성령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게 되고,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다만 감시자 노릇만 했다고 합니다.(3,15-25)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역사는 사람들이 세상의 종살이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참자유로 성령을 통해 건너가게 해 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덧붙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마르 12,31; 레위 19,18 참조)고 하신 주님의 계명으로 요약된다면서 육의 욕정과 욕망을 따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남의 짐을 져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온유한 마음으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참자유라고 가르칩니다.
끝으로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됐다며 이 새 창조에서 인간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기에 율법에서 해방된다고 강조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6월 30일, 리길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