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8.
사무실로 출근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나를 고용한 협회에서 명절선물이라며 곶감 한 상자와 마스크를 주고 간다.
명절선물에 대해선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곶감선물과 함께 마스크도
설날선물이 되었다니 묘한 생각이 든다.
32년 넘는 은행생활에서 행원시절 몇 년을 제외하곤 대리(代理)라는 책임자로
임용된 후 지점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지시(指示)를 하는 일에 익숙했다가 이젠
업무지시를 받는 입장이 되었고, 선물도 주는 입장에서 받는 처지가 되었으니
돌고 도는 게 세상의 원리인 모양이다.
사업을 하는 아들이 예전 대학생 때 잠시 일했던 아르바이트 가게 사장을
운전기사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처신을 더
신중하게 하라는 잔소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내가 바로 그 입장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후면 설날이다.
코로나가 세상질서를 무너뜨려 한동안 명절을 잊고 살았는데 곶감 한 상자가
느닷없이 명절기분이 들게 하며 아기들 줄 세뱃돈을 궁리하게 만든다.
이번엔 얼마를 줘야 할까,
큰 놈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막내도 2학년으로 올라가니 만 원짜리 한 장이면
너무 짠 게 아닐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번 명절에도 친인척간 집합하지 말라했으니 수십만 원씩
나가던 세뱃돈도 많이 절감되기에 이번엔 오만 원씩 줘야겠다.
도서상품권이나 문화상품권으로 줄까, 아니면 늘 주던 대로 현금이 좋을까.
만 원짜리 지폐라면 신권(新券)으로 주는 게 좋은데 오만 원짜리 지폐도 신권으로
줘야 하나.
보나마다 명절 3일 전인 오늘부터 신권을 교환해준다고 은행마다 안내문이
붙었을 거고 일인당 교환 액수는 많아야 20만 원이겠지.
먼 옛날 현직 시절,
명절만 되면 은행 각 영업점에선 신권을 확보하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
대형점포라도 시재금 보유한도가 3억 원 정도고, 명절신권은 3~4천만 원 정도를
배정받았는데 VIP 대비 비상용 일부를 제외하고 이 규모로는 고객에게 원하는 만큼
충분히 교환을 해줄 수가
없었다.
신권과 이미 사용 중인 사용권은 구매가치가 똑같다.
그래도 세뱃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은 신권을 선호한다.
사람들이 한해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설날의 의미를 한 번도 쓰지 않은 빳빳한 새 돈에서
찾기 때문이다.
은행에 들리니 신권으로 교환하려는 고객들이 긴 줄을 섰다.
오만 원짜리 신권(新券) 그게 뭐라고~~
전직으로 아는 현직 직원에게 부탁을 하기도 구차(苟且)하기에 교환을 포기하고,
신권에 대해 현직 때 겪었던 에피소드를 반추(反芻)한다.
2021. 2. 8.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