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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에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그래서 벌과 나비들이 꽃을 찾아 날아듭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서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꽃 속에는 향기가 있어서 찾아옵니다. “프루스트 효과”라는 것이 있다. 프랑스의 작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맛과 향기를 통하여 과거를 기억하게 되는데, 바로 이 장면을 통해, 심리학자들이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향기는 감정에 관계된 대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향기를 통해 과거를 기억할 수 있고, 또 향기로 대뇌에 자극을 하면 이성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사업가들의 마케팅에도 적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향기마케팅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면 마트에 감자와 당근이 팔리지 않을 때, 마트는 카레 향을 풍겼습니다. 그랬더니, 카레에 들어가는 감자, 당근, 피망, 버섯이 20%이상 많이 팔렸습니다. 또, 이러한 마케팅은 교보문고에서도 사용했습니다. 교보문고는 “페이지 향”을 개발함으로, 교보문고에서 책장을 넘길 때 이 향을 맡게 하여서 일상생활에서 비슷한 향을 맡으면 교보문고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여러분, 공항에 가면, 그 공항만의 특유한 향기가 나는 것을 아십니까? 인천국제공항은 “포레스트 오브 산청향”, 또 김해국제공항은 “플라워 오브 산청향”을, 제주국제공항은 “애기 감귤향”을 통하여 공항을 각인시킵니다. 이것을 보면, 세상은 향기를 통해, 자신을 기억하고, 또 판매하는 소재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나고 있습니까? 지난 1978년에 발표된 사월과 오월의 “장미”라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 싱 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 당신의 모습이 장미꽃 같아 /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을 부를 때 / 장미라고 할래요 /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 잠 못 이룬 나를 재우고 가네요 당신의 모습이 장미꽃 같아 /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을 부를 때 / 장미라고 할래요”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멀리 레바논에 가서 백향목을 운반하여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백향목은, 나무가 나무만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향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콘스탄티노풀에 “성 소피아”라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외부는 물론 돌로 지었지만, 내부는 향을 섞은 회산물을 발라서 건축했기에, 그곳에 들어가면 늘 향기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향기는 인간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상쾌하게 합니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선명하게 하고, 화평하게 하고 즐겁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갈 때 그 가정이 깨끗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회에 들어갈 때 그 사회가 깨끗해집니다. 그 나라가 깨끗해집니다. 성도된 우리의 삶 속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4절을 보시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의 승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라고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어렵고 힘든 형편을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대단한 믿음과 확신이 아닙니까? 이것은, 바울의 고백이 지나친 고백이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는 바울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겼다!”라며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요 16: 33을 보시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성공만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분명 환난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뒤흔드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실패도 있고, 사람들의 참소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성도된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인 우리가 승리하신 예수님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인드 컨트롤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불안을 해소하려는 심리 요법도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이며, 진리의 선포입니다. 인생을 광풍 만난 돛단배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된 우리는 진정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폭풍이 삼킬 듯 몰아쳐도 끄떡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광풍은 잠잠케 되며, 우리 앞에 승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8: 37에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곤경에 처했을 때, 뭐라고 합니까?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의 주체가 누구라고 합니까? 하나님입니다. 자신의 삶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심리적으로 편치 않은 상태이며 영적으로도 침체기에 속해 있으면서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바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백은, 자신이 하나님과 빈틈없이 완전히 밀착된 관계임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그의 온 힘과 정성과 마음이 예수님께 맞춰졌기에,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생활을 합니다. 여러분, 모든 성도는 신앙이 성숙되길 원합니다. 과연 성숙이란 무엇입니까? 진정한 “신앙의 성숙”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얼마나 의존하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작음을 인정하고, 순간순간마다 예수님께 “예수님, 제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심으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5 - 16절을 보시면,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전파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복음”을 “향기”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복음 속으로 들어와 향기에 온전히 흡수된바가 되면 우리 자체가 향품이 되어서 향기를 발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전 생각과 생활을 온전히 지배하시게 되면 우리의 삶 자체가 향기가 되어서 향기를 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 가운데서 나고 죄 가운데서 자라서 더러워지고 흠 많은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고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능히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것에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이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인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로서, 성도인 우리의 존재를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못 박은 겁니다. 곧,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 어디를 가든 그 존재의 이유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겁니다. 장미는 그 모습이 아름다울뿐더러 향기 또한 그윽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미를 더 사랑합니다. 백합 역시 그렇습니다. 모습이 아름다울뿐더러 향기가 많습니다. 아름다운 꽃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방안에 장미꽃 한 송이만 있으면 온 방 안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처럼,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등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이어 본문 16절에 보면, 향기가 어떤 이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어떤 이에게는 생명으로 쫓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 합니다. 사망과 생명, 이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관심사입니다. 사람들은 사망을 원치 않습니다. 사망을 거부하고 생명을 소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본능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사망을 원치 않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왜 생겨났습니까?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닙니까? 또, 과학이 제공한 인간의 유전자 지도인 게놈 프로젝트를 왜 만들었습니까? 생명의 신비를 풀기 위함이 아닙니까? 하지만, 큰 무덤을 마련한다고 해서, 또 유전자를 다 밝혔다고 해서 사망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자구책으로는 사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보다 다른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돈, 명예, 학식, 외모, 다른 종교 등을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는 사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행 4: 12을 보시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의 삶을 통해, 성도로서의 사명인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 각처에 전파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7절을 보시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 명료합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 명료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의지가 담긴 말을 섞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혼잡하게 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의 이단들이나 사이비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럴 듯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자신들의 의지, 자신들의 좋은 이미지를 듣는 이들에게 각인함으로, 그들이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가 아니라, 팔아서 먹고 사는 자들입니다. 본문에서의 “우리”는 “바울과 모든 성도”입니다. 이들은, 신본주의자요,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그 향기를 뿌리는 자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에 자기들의 의지나 생각을 가미하여 주장하는 자와 같이 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익을 위해 장사하는 하나님이 없는 인본주의자가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을 새번역으로 보시면,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또 우리말 성경역에서는, “우리는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탁하게 하지 않고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답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탁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혼잡하게”는, “팔아먹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팔아먹는 것입니다. 곧,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사도 바울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명료하게,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증거하며,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의 상황이 참으로 암담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라고 고백한 것과 같이, 우리도 삶 속에서 하나님께 고백하며 사는 겁니다. 이같은,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우리 주변에 퍼지게 됨으로,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항상 이기게 하시고, 나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삶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