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 조경(鳥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세상에 라파(羅婆)8)라는 새 한 마리가 있었는데, 매에게 사로잡혀 허공으로 날아 오르면서 공중에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는 자각하지 못하여 갑자기 이런 변을 당했구나. 나는 공연히 부모의 경계(境界)를 버리고 벗어나 다른 영역[他處]을 노닐다 이런 곤경에 처한 것이다. 오늘 이렇게 남에게 곤란을 겪으면서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하리?'
매가 라파에게 말했다.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네 자신의 경계가 어디에 있느냐?'
라파가 대답했다.
'밭 언덕 밑에 내 경계가 있어 족히 모든 어려움을 면할 수 있다. 그곳이 내 집이요, 부모의 경계다.'
매는 라파에게 교만한 생각이 일어나 말했다.
'밭 언덕 밑으로 돌아가도록 너를 놓아주면, 내게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에 라파는 매 발톱에서 벗어나 밭 언덕 큰 흙덩이 밑으로 돌아가 편안히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흙덩이 위에서 매와 싸우려고 하자, 매는 크게 화를 내었다.
'요 조그만 새가 감히 나와 싸우려 드느냐?'
그리고는 잔뜩 성을 내어 세차게 날아 곧장 곤두박질 쳤다. 그러자 라파는 흙덩이 밑으로 들어갔고, 매는 날던 힘에 몰려 가슴을 단단한 흙덩이에 부딪치고는 몸이 부서져 곧 죽고 말았다.
그 때 라파가 흙덩이 밑에 납작 엎드려 우러러 보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매가 잔뜩 힘을 쓰며 내려올 때
라파는 제 경계 의지하였네.
사납게 일어나는 분노의 힘을 따라
그 몸 부서지는 화를 입었네.
나는 샅샅이 꿰뚫어 알아
스스로 내 경계 의지하나니
원수를 항복 받은 그 마음 기쁘고
스스로 돌아보니 그 능력 기쁘네.
비록 너에게 사납고 어리석은
백천 마리 큰 코끼리의 힘이 있어도
그것은 마침내 내 지혜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저 서슬 시퍼런 매를 꺾어버린
뛰어나고 훌륭한 내 지혜를 보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저 새와 매의 경우처럼 어리석어 가까이 해야할 부모의 경계를 스스로 버리고 다른 영역[他處]에서 노닐면 그런 재앙을 만나게 되느니라. 너희 비구들도 또한 그와 같이 자신의 경계와 노닐 영역을 잘 지키고 다른 경계[他境界]에서 벗어나기를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이니라. 비구들아, 다른 영역[他處]과 다른 경계[他境界]란 이른바 다섯 가지 탐욕의 경계이니, 눈으로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기억할 만한 오묘한 빛깔[色]을 보면 욕심으로 물들어 집착하게 되고, 귀로 소리를 인식하고, 코로는 냄새를 인식하며, 혀로는 맛을 인식하고, 몸으로는 감촉을 인식하여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우며 기억할 만한 묘한 감촉을 인식하면 욕심으로 물들어 집착하게 되는데, 이것을 비구의 다른 영역과 다른 경계라고 한다.
비구들아, 자기 영역[自處]과 부모의 경계[父母境界]란 곧 4념처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念處), 느낌·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자기가 다닐 영역과 부모의 경계에서 스스로 노닐고, 다른 영역과 다른 경계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을 마땅히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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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팔리어로는 lapa라고 함. 메추라기[?]의 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