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14)-맥주 세 병 안주 하나
-감정을 이입하라 -
권대근
수필가, 문학평론가
감정 이입에 관해 이외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복잡미묘해서 그것을 글로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다른 사물에 감정을 이입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그대라고 생각하고 적절한 시간성이나 공간성을 부여해서 그대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라.” 원래 글이란 것은 인간 감정의 발로다. 감정이 먼저냐 언어가 먼저냐 하는 것은 여기서 따질 문제가 아니다. 문예문은 글 속에 감정을 싣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서정성은 문예문의 필수조건이다.
감정이입이란 화자의 감정을 다른 생명체나 무생물체에 이입하는 것을 말한다. 즉, 화자의 감정을 다른 생명체나 무생물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화자의 감정 개입없이 표현 대상의 특징을 마치 사람의 모습처럼 표현하는 수사법으로서의 의인법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예를 들어 '새가 슬피 울고 있다'라고 만약 화자가 지금 울고 싶은데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면 감정이입이 맞지만 화자는 지금 전혀 울고 싶지 않은데 새를 이렇게 표현했다면 의인법일 따름이다. 이처럼 감정이입에서 중요한 것은 화자의 감정과 대상체에 표현된 감정의 일치이다.
한 예로 잘 알려진 왕방연의 시조 '저 물도 내 맘 같아 울어 밤길 예놋다'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물이 흘러가는 것을 '운다'고 표현했다. 물이 실제로 울 리 없지만 시인은 지금 자신이 울고 싶은 감정을 물이 흘러가는 것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감정이입이다.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라는 구절이 있다. 시인이 산맥이 바다를 연모한다고 한 것은 시인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는 표현이다. 이때는 감정이입이 아닌 의인법이다. 이외수는 그의 저서 <글쓰기 공중부양>에서 글에 감정을 이입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우물/ 흐린 날 서랍 속의 달팽이,
고독/ 선잠결 객지에서 듣는 기적소리,
환희/ 봄날 햇살 속에서 어지럽게 펄럭거리는 만국기,
참담/ 저물 녘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막다른 골목,
평온/ 정오의 담벼락 밑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분노/ 불타고 있는 광장의 깃발,
비애/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 번도 울리지 않는 휴대폰
외로움/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키 큰 전봇대
불쾌/ 요강 뚜껑으로 물을 받아 마신 기분
불쾌/ 저녁 굶은 시어머니
이외수는 “단어 하나의 선택이 떠나간 그대 사랑을 되돌릴 수도 있다. 글은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영혼을 바꾸기도 한다. 만약 그대가 사랑에 성공하고 싶다면 그대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먼저 진단하라. 그리고 그대의 진실을 대변해 줄 단어부터 채집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진실은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능력에 따라서는 영혼까지 송두리째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그대 주변에 방치되어 있는 단어들을 무작위로 적어보라.” 말한다. “초겨울, 창문, 바람소리, 골목, 외등, 새벽, 눈시울이라는 단어를 채집했다고 가정하자.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대의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초겨울 바람소리
행여 그대가 아닐까
바깥을 내다 보았습니다
골목 저 멀리 외등 하나
눈시울이 젖은 채로
새벽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외수는 위와 적은 글을 적어 놓고, “위의 짤막한 글에 어려운 단어가 있는가”하고 묻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비법을 말한다. “눈에 뜨이는 몇 개의 생어만을 채집해도 이렇듯 효과적으로 그대의 입장과 마음을 전달할 수가 있다. 여기서는 골목 저 멀리 눈시울이 젖은 채로 새벽을 지키고 있는 그대 자신이다. 그는 단어채집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단어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절로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특질을 파악하게 되고 그것들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맞다. 비유는 예술적 방법이다. 문학이 비유가 도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의 사유와 인식방법이 비유적이기 때문이다. 문예문은 예술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있다. 그 예술적 조건들의 목적은 ‘예술적 사실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예술적 사실성이란 현실적 사실성과는 다르다. 이 예술적 사실성에 도달하기 위한 모든 에술적 수단이 곧 예술창작 방법이 될 것이다. 비유는 예술이 그 예술적 사실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수단인 것이다.
출처 : 이외수의 <글쓰기 공중부양>, p.48~5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