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177호 수직적, 수평적 감사를 알라 (딤전1:12~17)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감사를 잘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감사를 입에 달고 삽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사가 씨 뿌리는 대로 나는 법일진대, 감사의 씨를 매일 뿌리니 온 천지에 감사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감사는 수직적 감사와 수평적 감사로 나눌 수 있는데요, 먼저 수직적인 감사란 곧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하는 이유요? 너무 많지요. 먼저는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이요, 우리를 지은 자, 곧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며,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시100:3~4).
어디 그뿐입니까?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2:13). 하나님은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대속하게 하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시니 그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 아니겠습니까? 물에 빠졌을 때 건져줘도 평생 감사해야 하겠거늘 영멸의 길에서 건지신 그분에게 어찌 감사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은 우리에게 있는 것, 우리가 누리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양이나 바람, 공기, 사계절, 풍성한 곡식, 기업, 자녀들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입고 있는 옷, 자동차, 집…. 당신 노력으로 샀다고요? No! 하나님이 일거리를 주시고, 건강을 주셔서 가능한 겁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고전4:7).
더욱이 부족하기만 한 우리를 써주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저는 목사가 될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그런 저를 당신의 거룩한 종으로 부르시고 능력을 주사 일하게 하셨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대로 나의 나 된 것은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만입이 있어도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둘째는 수평적인 감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가까이는 내 부모, 형제요, 그다음은 이웃이요, 회사 동료와 상사, 학교의 스승, 교회에서 목사님께, 성도에게 서로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잘 안 됩니다. ‘뭐 맨날 보는데 굳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감사해보세요. 그러면 상대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환경이 달라집니다. 아내에게 감사해보세요. “아이들 잘 키워줘서 고마워.”, “적은 월급으로 알뜰하게 살아줘서 고마워.” 해보세요. 남편에게 “우리 가족 먹여 살리느라 애쓰는 것 고마워요.” 해보세요. 자녀에게도 “잘 자라줘서 고맙다. 건강해서 고맙다.” 해보세요. 사막 같던 가정에 웃음꽃이 필 것입니다.
부모님께도 “이렇게 잘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을 전해보세요. 또 “성도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보세요. 더 열심히 봉사하고 주의 종을 섬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6장에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고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저는 주일이면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안내위원들, 안내 권사들에게 ‘고맙다’ 인사합니다. 심지어 88체육관 경비 아저씨에게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기도원 집회가 열리면 식당 봉사자는 물론 기도원 직원들에게도 ‘고맙다’ 인사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더욱 열심히 봉사합니다. 가마를 타는 사람이 가마꾼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가마가 뒤집어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말세는 감사하지 않는다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딤후3:2). 왜 감사하지 않느냐? 감사란 느낄 감, 감동할 감(感), 사례 사(謝)로, 내 마음으로 느끼고 감동할 때 상대에게 사례하게 되는데, 그 첫 감동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첫사랑을 잊어서 그런 겁니다. 예전에는 감사했지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뼈저리게 느껴 감사했고, 부모님의 사랑에 그저 감사했고, 내 이웃에게도 감사했었습니다. 그러다 만성이 되어버린 겁니다.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 잘해주다가 하나만 잘못해줘도 불평하고 화내고 그렇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울타리 헐 때는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해야죠.
여러분, 감사는 인생의 성장촉진제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셔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명만이 찾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사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고 하셨습니다. 아홉은 고침을 받고도 감사를 잊은 채 제 길로 갔지만, 이방인 한 사람만이 감사하여 사례했더니 감동하신 예수님이 그를 육신의 병에서 구원하신 것뿐 아니라 영적인 구원까지 더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감사할 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지요. 사도 바울이 감사할 때 빌립보 옥문을 여셨고요. 요한복음 6장에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그 많은 무리를 먹일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이 그것을 들고 먼저 축사(祝謝)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기도를 드렸더니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도 나사로를 살리실 때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1)라고 예수님이 시인하셨지 않습니까. 제가 눈 덮인 산야, 물 없는 사막을 걸으면서도 감사했더니 하나님은 저를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하시고, 저를 통해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케 하셨습니다. 그럼요, 감사는 항암제요, 방부제요, 성장촉진제입니다. 감사하면 잘 되고, 걸리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는 말씀은 감사에 조건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떨어졌지만 감사하고,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칠 배가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질 위기에서도 감사한 것처럼 ‘불구하고’ 감사해야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더욱 큰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아들 압살롬을 피해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라고 감사했고, 바울 역시 그가 주리고 헐벗고 매 맞으며 세상 만물의 찌꺼기처럼 취급받으면서도 늘 감사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감사에도 때가 있습니다. 깨달았을 때, 느꼈을 때 바로 감사해야 합니다. 미루다 보면 때를 놓칩니다. 미루다 보면 부모님이 떠나십디다. 미루다가 서로 원수가 됩디다. 아낄 게 따로 있지요. 감사는 아끼면 썩습니다. 도토리를 그대로 계속 놔두면 결국 도토리가 썩어서 못쓰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바로 심읍시다. 바로 감사합시다.
사과씨를 심으면 사과가 납니다. 감사를 심으면 감사의 열매가, 불평과 원망을 심으면 그 열매가 납니다. 그러니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할렐루야!
감사는 신뢰를 구축하는 첫 단추다
흐르는 물 한 컵을 떠줘도 그 은헤를 잊지 마라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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