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32]
김병수(金炳洙, 1898-1951)①
김병수는 1898년 전북 김제시 백구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3년 전에 미국 남장로교 산교사 윌리엄 전킨(William M. Junkin)이 군산에 도착해서 선교부를 설치하고 이리(익산)와 김제 등지를 순회하며 전도를 시작했고, 이때 김병수 가족의 문중은 시대가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식들에게 선교사들이 소개하는 신식 학문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김병수의 아버지(김장호)와 당숙 김연식은 선교사들의 권유를 받고 김제 치문초등학교 전신인 신명학당을 1908년에 설립했는데, 이곳에서 김병수는 한글을 배웠고 군산 영명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전킨 선교사가 세운 군산 영명학교를 다녔던 박연세는 김제로 와서 신명학당 학생들에게 한문과 역사를 가르쳤는데 이곳에서 그는 김병수의 스승이 되어 민족의식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김병수는 청년이 되어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고, 재학 중에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李甲成)의 권유로 독립선언서 200여 매를 가지고 1919년 2월 25일 군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다음날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朴淵世)를 만나 서울에서 계획 중인 만세 운동에 대해 전하고 군산에서도 만세 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군산에서는 3월 5일부터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서울 남대문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1년 2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출옥 후에 학업을 계속한 후 1921년에 졸업을 하고 군산으로 내려와서 야소교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했습니다. 인턴을 마치고 1922년 삼산의원을 개원했고, 이리제일교회를 섬기면서 사재를 모아 이리 광희여숙(光熙女塾)을 설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