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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姓氏
賈가씨(소주), 簡간씨(가평), 葛갈씨(남양), 甘감씨(회산), 姜강씨(진주), 康강씨(신천), 彊강씨(진주), 强강씨(충주), 剛강씨(충주), 介개씨(여주), 堅견씨(천녕), 甄견씨(황간) 慶경씨(청주), 景경씨(태인), 桂계씨(수안), 高고씨(제주), 曲곡씨(용궁), 孔공씨(곡부), 公공씨(김포), 郭곽씨(현풍-청주), 具구씨(능성), 丘구씨(평해), 邱구씨(은진), 國국씨(담양), 菊국씨(영광), 鞠국씨(담양), 君군씨(남원), 弓궁씨(토산), 權권씨(안동-예천), 斤근씨(청주), 琴금씨(봉화), 奇기씨(행주), 箕기씨(행주), 吉길씨(해평).
金김씨 (김해-경주-광산-김령-구안동-신안동-의성-강릉-선산 -청품-삼척-연안-청도-상산-전주-부안-순천-나주-월성 -언양-울산-영광-청주-서흥-함창-도강-광주-개성-진주 -안산-고령-수원-영산-고성-용궁-금산-예안-풍산-원주 -밀양-충주-공주-영양-강화-경산-양근-수안-해평-낙안 -통천-안성-당악-양주-영천-양산-남양-진천-우봉-희천 -파평-배천-용담-강서-김제-교하-정주-무장-풍천-진도 -문화-영월-해풍-홍주-해주-안악-사천-보령-덕수-창원 -대구-야성-해남-신천-영해-풍기-영암-칠원-설성-안로 -태원-동래-은율-금화-부평-평산-웅천-청송-진잠-창평-정산 -오천-연기-우록-성주-용궁).
羅나씨(나주-금성-군위-안정), 南남씨(영양-의령-고성), 南宮남궁씨(함열), 浪낭씨(양주), 乃내씨(개성), 奈내씨(나주), 盧노씨(광주-해주-신창-곡산-만경-안강-안동-장연-풍천), 魯노씨(함평), 雷뇌씨(교동).
單단씨(연안), 端단씨(연안), 唐당씨(밀양), 大대씨(밀양), 都도씨(성주), 道도씨(고성) 陶도씨(풍양), 獨孤독고씨(남원), 頓돈씨(목천), 敦돈씨(청주), 董동씨(광천), 東方동방씨(진주), 杜두씨(두릉)
路로씨(개성), 柳류씨(문화-고흥-진주)
馬마씨(목천-장흥), 麻마씨(영평), 萬만씨(개성), 梅매씨(충주), 孟맹씨(신창), 明명씨(서촉), 牟모씨(함평-광주), 睦목씨(사천), 墨묵씨(광령), 文문씨(남평), 門문씨(인천), 米미씨(경성), 閔민씨(여흥)
朴박씨(밀양-반남-함양-순천-무안-죽산-고령-충주-영해-월성-상주-진원-울산-강릉-춘천-음성-창원-태안-영암-고성-구산-면천-삼척-은풍-의흥-태인-나주-상산-문의-선산-전주-봉산-비안-운봉-순창-군위-여주-인제-평산-평주-평택-노성-사천-광주-거제).
潘반씨(거제), 班반씨(개성), 方방씨(온양), 房방씨(남양), 龐방씨(개성-대원), 邦방씨(광주), 裵배씨(달성-분성-성산-성주-흥해-곤산-곤양), 白백씨(수원), 范범씨(금성), 凡범씨(안주), 邊변씨(원주), 卞변씨(초계), 卜복씨(면천), 奉봉씨(하음), 夫부씨(제주), 彬빈씨(대구! ), 賓빈씨(달성), 氷빙씨(경주)
史사씨(청주), 謝사씨(진주), 舍사씨(광산), 司空사공씨(효령), 森삼씨(삼가), 尙상씨(목천), 徐서씨(달성-이천-대구-남양-부여-연산-장성-절강), 西서씨(진주), 西門서문씨(안음), 石석씨(충주-해주), 昔석씨(월성), 宣선씨(보성), 鮮于선우씨(태원), 薛설씨(경주-순창), 葉섭씨(경주), 成성씨(창녕), 蘇소씨(진주), 邵소씨(평산), 孫손씨(밀양-평해-경주-청주-안동),
宋송씨(진천-여산-은진-용성-양주-문경-덕산-야성-연안-청주- 홍주-남양-김해-신평), 水수씨(운제), 舜순씨(파주), 荀순씨(홍산), 承승씨(연일), 昇승씨(남원), 施시씨(절강-태인),
申신씨(고령-평산-영산-거창-아주), 沈심씨(청송-풍산-삼척)
阿아씨(양주), 安안씨(순흥-광주-탐진-태원-죽산), 夜야씨(원평), 梁양씨(남원), 楊양씨(남원-청주), 魚어씨(함종-충주), 嚴엄씨(영월), 呂여씨(함양-성산), 余여씨(의령), 延연씨(곡산), 燕연씨(정평), 連연씨(전주), 廉염씨(파주), 芮예씨(부계),
吳오씨(해주-평해-군위-전주-낙안-장흥-함평-화순-흥양-울산-동복-보성-고창-나주-연일), 伍오씨(백천), 玉옥씨(의령), 溫온씨(봉성), 邕옹씨(순창), 王왕씨(개성-제남), 姚요씨(수원), 龍용씨(홍천), 禹우씨(단양), 于우씨(목천), 雲운씨(함흥), 元원씨(원주), 袁원씨(비안), 魏위씨(장흥), 韋위씨(강화),
柳유씨(문화-고흥-진주), 兪유씨(기계-창원-무안-강진-고령-안동-천령), 庾유씨(무송), 劉유씨(강릉-배천-거창),
陸육씨(옥천),
尹윤씨(파평-칠원-해남-해평-예천-영천-무송-함안-양주-남원), 殷은씨(행주), 陰음씨(죽산)
李이씨(전주-전의-광주-용인-함평-광산-광평-진안-온양-덕은-양주-김포-화산-부안-양성-진성-가평-안성-우봉-평산-고령-안산-정선-대흥-학성-서림-상산-남평-청송-차성-서산-해남-단성-영해-담양-익산-양산-울산-순천-동성-아산-청해-우계-흥양-진주-봉산-수원-태안-충주-창령-진위-결성-부평-덕산-나주-경산-영천-경주-장수-재령-덕수-한산-연안-신평-성주-청안-하빈-홍주-예안-금구-부여-용궁-임강-여주-영천-합천-고성-원주-청주-인천-회덕-음죽-인제-통진-수안-평창-안악-개성-강진-성산-공주-강화-함안-고부-벽진-장기), 伊이씨(태원), 異이씨(밀양), 印인씨(교동), 林임씨(평택-나주-울진-조양-진천-익산-옥구-경주-선산-옥야 -안의-부안-은진-예천-장흥), 任임씨(풍천-장흥)
慈자씨(요양),
張장씨(인동-안동-흥성-단양-결성-덕수-순천-옥구-부안-전주-울진-나주-목천-구례-예산-진천-청송-진안-지례-흥양), 蔣장씨(아산), 章장씨(거창), 莊장씨(아산),
全전씨(정선-감천-안동-경주-계림-기장-나주-성산-성주-옥산-경산-옥천-완산-용궁-천안), 田전씨(담양), 田전씨(남양), 錢전씨(문경),
鄭정씨(동래-진양-청주-해주-경주-연일-하동-초계-나주-김포-금성-서산-고성-함평-온양-봉화-장기-영덕-야성-광주-전주-청산-곤양-서경), 程정씨(하남), 丁정씨(압해), 諸葛제갈씨(남양),
趙조씨(한양-함안-평양-풍양-배천-임천-태원-김제-양주-횡성-평산-진보-직산-옥천-순창), 曺조씨(창녕),
左좌씨(청주), 宗종씨(니파), 鍾종씨(영암), 周주씨(상주-초계-안의-철원), 朱주씨(신안-능성), 俊준씨(청주), 池지씨(충주), 智지씨(봉산), 陳진씨(여양), 秦진씨(풍기), 晉진씨(남원), 眞진씨(서산)
車차씨(연안), 昌창씨(공주), 倉창씨(아산), 蔡채씨(평강), 千천씨(영양), 天천씨(연안) 肖초씨(제주), 楚초씨(성주).崔최씨
(경주-전주-강릉-통천-우봉-해주-초계-수원-동주-삭령-탐진-수성-화순-양천-용강-충주-양주-낭주-개성-청송-용주-영천-청주-황주-상주-한남-원주-직산-용궁-간성-곡강-흥해-고부-광주-부안-상원-영흥-완산-계림-태인-아산-연풍-강화) 秋추씨(전주).
卓탁씨(광산), 彈탄씨(해주), 太태씨(남원-영순-협계).
彭팽씨(용강), 平평씨(충주), 片편씨(절강), 表표씨(신창), 馮풍씨(임구), 皮피씨(괴산-단양-홍천), 弼필씨(대흥)
河하씨(진양), 夏하씨(달성), 韓한씨(청주-곡산), 咸함씨(강릉), 許허씨(양천-김해-태인-하양), 玄현씨(연주), 邢형씨(진주), 扈호씨(전주), 洪홍씨(남양-풍산-부계-풍산-홍주), 化화씨(진양), 黃황씨(창원-평해-장수-상주-우주), 皇甫황보씨(영천)
김씨는 우리나라 인구 중에서 가장 많은 성씨로서 김씨는 크게 나누어 가락국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수로왕계(김해 김씨)와 신라 왕실의 박, 석, 김 3성 중의 하나인 김알지계로 나눌 수 있다.
김씨의 본관은 "씨족통보"에 623본으로 나타나있으며 이중 김알지계의 김씨는 600여개의 본관이 있다.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약 280여개의 본관이 있었다.
또 다른 김해 김씨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장이 조선에 귀화하여 만든 김해(사성) 김씨가 있다.
김씨는 우리나라 성씨중 인구가 가장 많으며 1985년에 8,785,554명이 있었다.
[김알지계 김씨의 유래]
가평 감천 강남 강동 강릉 강서 강원 강주 강진 강화 개성 거창 결성 경기 경남 경북 경산(京山) 경산(慶山) 경상 경주 계림 고령 고부 고산 고성 고양 곡성 곤양 공주 광명 광산 광성 광양 광주 광천 광해 괴산 교하 구례 금릉 금산 금정 금평 금화 김녕 김성 김제 김천 김해(가락) 김해(우록) 김해(법흥) 김화 나주 낙안 남양 남원 남평 남포 남해 능주 달성 담양 당산 당악(해남) 당악(唐岳) 대구 대영 대전 덕산 덕수 도강 도광 동래 동양 등주??무송 무안 무장 무주 문경 문산 문화 밀양 백천 별성 보령 보성 봉산 봉화 부안 부여 부평 북실 분성 사창 사천 삼척 상산 상승 상주 서산 서울 서흥 선산 선성 설성 성남 성산 성선 성은 성의 성주 성천 수성 수안 수원 수주 순창 순천 순흥 승산 승평 신성 신안 신천 신평 안로 안동(구) 안동(신) 안산 안성 안악 안양 안흥 야성 양근 양금 양산 양주 양평 언양 여주 연기 연산 연성 연안 연주 연풍 염포 영광 영덕 영동 영산(永山) 영산(靈山) 영상 영암 영양 영월 영일 영주 영천 영해 예산 예안 예천 오천 옥산 옥천 온양 온전 완산 용광 용궁 용담 용산 용성 용인 우록 우봉 울산 웅천 원양 원주 월성 유성 ! 볼 은율 은진 의령 의성 의주 의흥 이양 이천 인동 인천 일성 임진 인파 장성 장수 장연 장학 장흠 적성 전남 전북 전의 전주 정산 정선 전읍 정주 제주 죽산 중화 진도 진산 진성 진영 진위 진잠 진장 진주 진천 진해 창녕 창원 창평 천안 칠성 철원 청덕 청도 청산 청송 청양 청주 청평 청풍 초계 춘양 춘천 충남 충주 칠원 태원 토산 통천 파주 파평 평강 평산 평양 평창 평택 평해 풍기 풍덕 풍산 풍천 하음 한남 한산 한성 함안 함양 함영 함창 함평 함흥 합천 해남 해동 해주 해평 해풍 현풍 홍주 홍천 홍해 화성 화순 황산 황주 흥덕 희천
현재 우리나라 이씨의 본관은 237본인데, 그전의 '증보문헌비고'에서는 451본으로, '조선씨족통보'에서는 546본으로 나타났던 일이 있다. 이를 견주어 보면 오늘날 이씨의 본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든 셈이다.
이 237본의 이씨는 대체로 한국계(韓國系)와 중국계(中國系)와 기타계(其他系)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계 : 한국계는 신라 6성의 하나인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것으로, 가평이씨(加平李氏), 금구이씨(金溝李氏), 덕은이씨(德恩李氏), 아산이씨(牙山李氏), 영천이씨(永川李氏), 우계이씨(羽溪李氏), 원주이씨(原州李氏), 재령이씨(載寧李氏), 진위이씨(振威李氏), 진주이씨(晋州李氏), 평창이씨(平昌李氏), 합천이씨(陜川李氏) 등이 이에 속한다.
중국계 : 고성이씨(固城李氏), 상산이씨(商山李氏), 안성이씨(安城李氏), 연안이씨(延安李氏), 원주이씨(原州李氏), 정선이씨(旌善李氏), 청해이씨(靑海李氏), 태안이씨(泰安李氏), 태원이씨(太原李氏), 평산이씨(平山李氏) 등이 이에 속한다.
기타계 : 기타계로는 안남국(安南國: 현재의 베트남)의 왕 이천조(李天祚)의 아들로 나라가 망할 것을 예견하고 우리나라로 망명, 옹진반도 화산(花山)에 정착하여 산 화산이씨(花山李氏)와 김알지 후손인 경주김씨(慶州金氏)에서 분적한 광산이씨(光山李氏)와 김해허씨(金海許氏)에서 분적한 인천이씨(仁川李氏) 등이 있다.
이씨 중에서 역사가 제일 오랜 것은 경주 이씨이고, 중국에서 귀화한 대표적인 이씨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며, 월남에서 귀화한 화산이씨(花山李氏)도 있다. 이씨 중에는 현재 24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전주이씨가 인구로 보아 가장 으뜸이다.
경주이씨는 신라 육성(六姓)(李, 崔, 鄭, 孫, 裵, 薛)의 하나로 우리나라 이씨 중에서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씨족이다.
<경주이씨대동보> 총론편을 보면 경주이씨의 유래가 나온다. 전설적이지만 신라 6성의 시조 6명은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곧 육인천강설(六人天降說)이다. 경주이씨의 시조 알평(謁平)은 처음에 하늘로부터 박바위[瓢岩]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곳은 육촌 중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인데, 나중에 급량부(及梁部)로 명칭이 바뀌었다. 기원전 69년(前漢 宣帝 地節 元) 3월 초하루, 이 6촌장이 알천(閼川)의 바위 위에 모여 양산(陽山) 아래를 바라보니, 번개 빛 기운이 서린 속에 흰말이 무릎 꿇고 절하는 모양이 보여, 찾아가 보니 검붉은 알이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고 슬피 울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래서 6촌장이 그 알을 깨 보니 한 사내아이가 나타났다. 모두들 이상히 여겨 그 아이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불렀다. 이 혁거세가 13세가 되자, 기원전 57년(前漢 宣帝 五鳳 元)에 이를 왕으로 삼고 나라 이름을 '신라'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라를 건국한 공로로 알평은 아찬(阿餐)의 벼슬에 오르고 기원전 32년(新羅儒理王 8)에 이씨(李氏)를 사성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알평이 경주이씨 시조가 되는데, 과거의 <경주이씨족보>에는 알평의 먼 후손 이거명(李居明)(蘇判公)을 중시조 1세로 삼아 계대수를 따져 왔다. 그래서 이알평부터 이거명까지는 몇 대가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근 2백 년 전 조선 말기 무렵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합천이씨(陜川李氏) 족보에서 이알평 부터 이거명까지의 대수와 이름이 나타나 36대의 명단을 찾아냈다고 한다.
(1)알평- (2)유- (3)타- (4)중가- (5)석- (6)문상- (7)방- (8)수장- (9)수- (10)기정- (11)미선- (12)성립-(13)서- (14)계환- (15)걸- (16)선장- (17)기담- (18)인흥- (19)확- (20)선정- (21)체- (22)태휘- (23)우영- (24)준- (25)소- (26)경지- (27)욱- (28)원장- (29)한로- (30)계탕-(31)도- (32)사언- (33)기- (34)희두- (35)계- (36)거명- (34)진두- (35)백전- (36)공- (36)한(翰)
위에서 보면 시조 이알평 부터 36세손 이거명까지 의 계통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이거명을 중시조 1세로 따져온 것이다.
여기서 전주 이 씨 와의 문제는 바로 34세 희두(禧斗)의 동생 진두(辰斗)와 그의 둘째 손자인 한(翰)이 관계되는 것이다. 여기서 34세 진두씨의 약력에 나와 있는 "공도 문장가로서 경문왕 때 임오년에 형 시중공과 같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시랑평 장사내사상병부령에까지 이르렀다. <세장보(世藏譜)>를 참고하건대 이분의 손자 한(翰)이 完山 李씨의 시조가 되었다더라." 기록에 의하여 이진두의 둘째 손자 한이 바로 전주이씨의 시조 사공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주이씨 에서 갈라져 나간 합천이씨(陜川李氏)의 <상서공파세보(尙書公派世譜)>에는 (34세)진두(辰斗)-(35)백전(白全)-(36) 공(恭)-(37) 한(翰)으로 세계를 꾸며 놓고 이한(李翰)의 약력에 "대사공 은상서 어사중승 상상주국으로서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 배위는 군윤 김은의의 딸이다. 전주이씨의 시조다"라고 적어 놓았다. 여기서도 한(翰)이 전주이씨의 시조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나, 경주이씨 족보와 다른 점은 공(恭)과 한(翰)을 형제가 아닌 부자 사이로 바꾸어 놓은 것이 이상하다.
경주 이 씨 에서 갈라져 나간 성으로 경주이씨 족보에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은 원주이씨(原州李氏), 재령이씨(載寧李氏), 아산이씨(牙山李氏), 우계이씨(羽溪李氏) 등. 이 성들은 분적된 기록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주이씨가 경주 이씨에게서 갈라져 나갔다는 기록은 위에서와 같이 매우 애매하고, 또 그 기록이 한(翰)씨의 약력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 조부의 약력에 기재되어 있는 점이 더욱 이상하다.
이상으로 볼 때, 전주이씨가 중국에서 왔다거나 경주 이씨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하지만, 기록들이 애매모호하다. 중국에서 왔다는 기록은 아마 옛날 사대사상에서 연유한 야사적 기록이라 세직(世稷: 世直)의 세(世)자가 당나라 태종 리세민(李世民)과 같은 항렬자로 본 것이다. 또 경주 이씨에게서 왔다는 기록은 경주이씨의 역사가 가장 오래니까 혹시 갈라져 온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경주이씨는 현재 이알평 시조로부터 오늘날 75세 희(熙)자 항렬까지 2천여년의 역사를 가졌고, 경주이씨의 중시조 이거명과 전주이씨의 이한은 동항렬(同行列)이므로 이분이 우리의 시조라면 연대는 비슷하리라 본다. 그러나 기록이 분명치 않으니 전주이씨 시조 신라 사공(司空) 한(翰)의 조상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문제는 단언할 근거가 없어 정확하게 규명될 후일을 기약해 봐야 한다.
그러나 전주 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대흥이씨(大興李氏) 영해이씨(寧海李氏) 등도 있다.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시조로부터 22세, 즉 한의 21대손이다. 그러나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穆祖) 안사(安社) 이전의 사적(事蹟)은 전혀 기록에 전해지지 않는다.
안사는 원래 전주 사람이었는데, 그 곳 지주(知州:지금의 지사(知事))와 사이가 나빠 강원도 삼척(三陟)으로 옮겨갔다가 얼마 뒤 지주(知州)가 다시 그 곳으로 부임해 오자 가족을 데리고 간도(間島)지방으로 가서 원(元)나라의 다루가치[達魯花赤:地方官]가 되었다.
그의 아들 익조(翼祖) 행리(行里 : 성계의 증조부), 또 그 아들 탁조(度祖) 춘(椿 : 성계의 조부)도 때때로 두만강 지방의 천호(千戶)로서 원나라에 벼슬했고, 춘의 아들 환조(桓祖) 자춘(子春)도 원나라의 총관부(摠管府)가 있던 쌍성(雙城 : 영흥(永興))의 천호를 지냈다.
자춘은 공민왕의 북강(北疆) 회수 운동에 내응하여 쌍성(雙城) 함락에 결정적인 공(功)을 세워 이 지방의 만호(萬戶) 겸 병마사(兵馬使)로 임명되었다.
성계는 영흥(永興) 태생으로, 22세 때 처음으로 고려에 벼슬했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북면의 병마사가 되어 원나라 군사와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워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이르러 이때부터 고려 말 중앙정권의 중추에 등장하였다.
이씨는 2000년 현재, 총 240개의 본관과 2,113,007구 6,794,637명(전체 인구의 15%)이 있는데, 본관은 다음과 같다.
가리 가평 간성 강동 강릉 강양 강진 강화 개성 거창 결성 경기 경남 경북 경산 경성 경주(월성) 경준 경진 계령 계룡 계양 고구 고령 고부 고성 고양 고창 고흥 곡산 공산 공주 광산 광양 광주 광평 (선산) 괴산 교하 군위 금구 금산 금성 기장 (차성) 김천 김포 김해 나주 남양 남원 남평 농서 농성 단성 단양 담양 당진 대전 대흥 덕산 덕수 덕순 덕원 덕은 덕찬 덕흥 동래 동령 동성 (사천) 동평 마산 문신 문안 문화 밀양 백성 백천 벽산 벽진 보성 보은 봉산 부안 부여 부평 사천 삼척 상산 상주 서림 서산 서천 선산 선성 성산(광평) 성산 성주 성준 수안 수원 순천 순흥 승평 신령 신평 신풍 아산 안동 안산 안성 안악 안양 안평 양동 양산(梁山) 양산(陽山) 양성 양주 양평 여강 여주 여흥 연극 연산 연안 연일 연천 영광 영양 영월 영일 영주 영준 영천(寧川) 영천(永川) 영춘 영해 예산 예안 예천 오현 옥천 온양 완산 여산 용궁 용인 용천 우견 우계 우봉 울산 원산 원주 은진 음죽 의령 의성 이천 익계 익산 익흥 인제 인주 인천 임강 임천 장기 장성 장수 장천 장흥 재령 전원 전은 전의 전주 정선 정주 제주 증평 진보(진성) 진안 진위 진주 진해 ! 太(기장) 창녕 창원 천안 철성 청도 청송 청안 청양 청주 청평 청해 초산(정읍) 춘천 충남 충주 칠성 태안 태원 토산 통진 평산 평양 평창 평택 평해 풍천 하동 하빈 하산 하음 학성 한산 한성 한양 함경 함안 함양 함평 함풍 함흥 합천 해남 해령 해주 행주 헌양 홍성 홍주 홍천 화산 화평 황주 회덕 회양 흥양
강남 강릉 강원 강진 경주 고령 고성 고흥 공주 광산 광주 구산 군위 김해 나주 난포 남양 남원 남주 남평 노성 단양 달성 담양 대천 덕원 덕진 면천 영성 무안 문의 문주 문화 미산 밀양 반남 보성 봉산 부산 부안 비안 사천 삼척 삼화 상산 상성 상영 상주 선산 설성 성신 성주 수원 순창 순천 순흥 안동 안성 압해 야성 언양 여수 여주 연안 영암 영양 영월 영천 영해 영흥 예천 ?운봉 울산 월성 은풍 음성 의령 의성 의형 의흥 이산 인제 인천 일성 임실 장성 장흥 전주 정선 정승 정주 제주 주계 죽산 증평 진안 진주 진주 진흥 창녕 창원 천안 청송 청주 초계 춘천 충주 태안 태인 평산 평양 평주 평택 하명 한산 한양 함인 함양 함열 함흥 해남 해명 해주 현천 현풍 총 127개의 본관과 3,435,640명이 있다.(1985년)
[유래]
신라가 생기기 전에 여섯개의 마을(6부)에 촌장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1. 이(李)씨의 조상인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의 알평(謁平).
2. 최(崔)씨의 조상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 - 삼국유사에는
정씨의 조상으로 되어있으며 진주소(蘇)씨도 소벌도리를 시조로 하고 있다.
3. 손(孫)씨의 조상인 무산 대수촌(茂山 大樹村)의 구례마(俱禮馬).
4. 정(鄭)씨의 조상인 취산 진지촌( 山 珍支村)의 지백호(智伯虎).(삼국유사에는 최씨의
조상으로 되어있다)
5. 배(裵)씨의 조상인 금산 가리촌(金山 加利村)의 지타(只他).
6. 설(薛)씨의 조상인 명활산 고야촌(明活山 高耶村)의 호진(虎珍).
기원 전 69년 이들 여섯 촌장들이 아들을 데리고 알천의 언덕 위에 모여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을 추대할 것을 의논하고 있었다. 이 때 남쪽을 보니 양산 아래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 오색영롱한 빛이 비치고 흰말 한 마리가 땅에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서 보았더니 박같이 생긴알이 있어서 알을 깨어보니 그 곳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아이를 혁연히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혁거세(赫居世)라고 하고 박에서 나왔다며 성을 박이라고 해서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이라는 우물에 용이 나타났는데, 왼쪽갈비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나왔다. 얼굴과 입술이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아서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이아이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이름을 알영(閼英)이라고 했다.
기원전 57년 이 두 아이가 13세가 되자 박혁거세는 왕이되고 알영을 왕비로 삼았으며 나라이름을 서라벌(신라)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신라 왕실의 56왕은 박(朴), 석(昔), 김(金)의 3성에 의하여 교체 반복되었는데, 그 중에서 박씨 왕은 시조왕 박혁거세를 비롯하여 모두 10명이다.
박씨는 여러 본관 중 단 1본도 외래 귀화족이 없다고 하며, 모든 박씨는 신라의 시조왕 박혁거세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다. 박씨끼리는 되도록 혼인을 피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씨의 세계는 박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신라 5대)과 일성왕(신라 7대)에서 갈라졌는데, 파사왕계는 뒤에 영해, 면천, 강릉 등으로 분관했고, 비안, 우봉(牛峰), 이산(尼山), 해주(海州) 등도 파사왕의 후손이라 한다. 한편 일성왕계는 그의 25대손인 경명왕(신라 54대)과 경애왕(신라 55대) 대에서 다시 갈라졌는데, 경명왕계는 아들 9형제에서 각기
- 첫째 아들 박언침의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 : 밀양, 반남, 진원 박씨 등
- 둘째 아들 박언성의 고양대군파(高陽大君派) : 고령 박씨
- 셋째 아들 박언신의 속함대군파(速咸大君派) : 함양, 삼척 박씨 등
- 넷째 아들 박언립의 죽성대군파(竹城大君派) : 죽산, 음성, 고성 박씨
- 다섯째 아들 박언창의 사벌대군파(沙伐大君派) : 상주, 충주 박씨
- 여섯째 아들 박언화의 완산대군파(完山大君派) : 전주, 무안 박씨
- 일곱째 아들 박언지의 강남대군파(江南大君派) : 순천, 춘천 박씨 등
- 여덟째 아들 박언의의 월성대군파(月城大君派) : 경주 박씨의 8대군파와
- 아홉째 아들 박교순(朴交舜)의 국상공파(國相公派) : 울산 박씨로 분파되었다.
한편 경애왕계는 계림대군파(鷄林大君派)를 이루었다.
박씨는 다른 씨족과는 달리 역대 세계가 비교적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밀성대군파의 밀양 박씨가 주류를 이루어 박씨 인구의 70∼80%를 차지하고 있는데, 밀양, 반남, 고령, 함양, 죽산, 순천, 무안, 충주박씨를‘8박’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이 8본이 역사상 많은 인물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김씨, 이씨와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한국의 3대성의 하나이다.
박씨는 옛문헌에 314본관이 있었지만 현재는 127개의 본관이 있으며 이중 46개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의 대한 유래는 알 수가 없다. 1960년 국세조사에 36만 7271가구에 인구 2,112,076명으로 성별 순위는 258성 중 제3위였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인구는 3,435,640명으로 전국 가구 구성비 8.5 % 순위는 275성 중 역시 김씨, 이씨, 다음으로 제3위였다.
최씨[(崔氏)는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다.
역사상 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전통 있는 명문거족으로, 많은 선조들이 찬란한 업적들을 이룩해 놓았다.
최씨 특유의 기개, 신념, 절조 등으로 '최 고집' 혹은 '최씨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난다 ' 등의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최씨의 원조는 신라의 전신인 사로의 6촌중에 돌산 고허 촌 사량부 촌장 소벌도리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 전 57년경 유민들이 여러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봄, 6부를 개정하고
알천 양산촌장 알평에게는 이씨[李氏]. 돌산 고허촌장 소벌도리에게는 최씨[崔氏], 무산 대수촌장 구례마에게는 손씨[孫氏],
취산 진지촌장 지백호에게는 정씨[鄭氏], 금산 가리촌장 기타 에게는 배씨[裵氏],
명활산 고야촌장 호진에게는 설씨[薛氏]의 성을 내려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위의 6부의 촌장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실제 시조는 소벌도리의 24세손이며, 신라말기의 대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을 주축으로 하여 선대 및 후대에서 분파되었다고 보면 정확하다. 문헌에 의하면 최씨는 387본까지 기록하고 있는데, 거의가 지명이고 실제 시조가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43본이다.
[경주최씨 상계세보]의 기록으로는 소벌도리의 24세손 최치원의 윗대에서 분파된 본관으로 개성, 삭녕, 동주(철원), 전주(군옥파)가 있고, 최치원의 후대에서는 함양, 청주, 영흥, 충주, 용강, 수원, 부안, 강릉, 강화, 탐진, 전주(순작,균)가 분파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최씨가 소벌도리의 후손으로 경주최씨를 원조로 하는 소벌도리와 최치원을 잇는 후예임은 틀림없다.
이렇게 신라시대에 웅기한 최씨는 신라에서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 등 세사람이 똑같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그명성을 날렸으며, 특히 문창후, 최치원 같은 대문장가는 동양의 역사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명현으로 동양최고의 지성[至聖]이고 한문학의 대가로 추앙받고 있으며, 고려 때 와서는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고려사>를 보면 서기 1196년~1258년까지 60여년간 군벌정치로 한때 최씨왕국을 방불케 했다.
명장 최영[최영]은 수많은 국내외의 혼란이 있을 때마다 평정하여 시련을 극복하고 나라에 공헌했으며, 두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충절은 우리민족의 얼이요, 최씨의 특성이다.
경주시 교동에 있는 '최부자집'은 12대 만석과 10대 진사로 유명하며, 문공부가 1969년에 "신라의 집"으로 선정하고 길이 보존하기로 했다. 마지막 만석군 최준[최준]은 조선 청백리 정무공 최진립[崔震立]의 11세손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100억원(현재기준)을 보내어, 해방후 임시정부가 환국하자 백범 김구선생이 제일먼저 만나보고 싶은 분이 최준이라고 하였으며, 당시 조선총독들이 문교부장을 요청했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최준은 특히 육영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였는데, 그 예로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학을 설립하였으며, 보성전문(현 고려대학교) 도서관 건립 등이 있다. 조선때 명종, 선조, 인조 임금은 선현[先賢] 문창후, 최치원은 우리 동방의 이학시조[理學始祖]이니 "그의 자손은 귀천을 불문하고 군역[軍役]에 동원하지 마라" 고 전교하였다.
이렇게 대대로 나라에 공헌하고 근대사회 발전에 앞장서온 최씨들의 발자취로 하여금 명문 최씨 가문은 더욱 빛이 나고 있다.
최씨는 2000년도 조사에서 676,773가구, 2,169,704명(전체 인구의4.7%)으로 나타났다. 여러 성씨 중 인구별로는 제 4위였다.
정씨(鄭氏)의 본관은 경주(慶州)·동래(東萊)·영일(迎日)·하동(河東)·진양(晉陽) 등 약 40여 본이 있다. 정씨의 대부분은 신라 6부촌장의 한 사람인 취산 진지촌(珍支村;本彼部)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다.
서산정씨(瑞山鄭氏)나 낭야정씨처럼 중국에서 귀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백호를 도시조(都始祖)로 하는데, 후손 동충(東沖)이 신라 유리왕(儒理王) 때 정씨로 사성(賜姓)되었다.
정씨 중에는 동래정씨(약 44만)가 가장 인구가 많고, 경주(약 30만), 진양정씨(약 24만), 연일(약 22만)가 그 뒤를 잇는다. 진주 정씨는 진양정씨와 같은 본관으로 본다.
2000년 경제기획원에서 실시한 인구 조사에 의하면 626,265 가구, 2,010,117명(전체 인구의 4.4%)으로 총 274개 성 가운데 제5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