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9고난주간특별금요기도회 [우리 위해 저주를 받으신 그리스도]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막15:15-38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은 이천년전에 마침내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가장 괴로운 고통을 당하시고, 최후를 맞으시는 시간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주께서 우리의 원래 몫이었던 저주를 거두어 가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와서, 죄 뿐 아니라, 저주도 갖고 있었다.
그 죄를 없애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서 온갖 저주의 공격을 받으셨다.
우리가 주의 고난의 마지막날을 생각하면, 단지 죽음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주님의 수난에는 주님의 고통과 죽음이 함께 있다. 그것이 한덩어리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죽음과 고난 따로 차별해서는 안되고, 하나로 봐야 한다.
어떤 이기적이고,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의 죽음은 영적이고, 주님의 고통은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주님은 아프지 않게 죽으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영적이라고 한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저주, 아픔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위해 아프시기 위해 온 것이다.
속죄는 아픔 없이는 할 수 없다.
하늘보다 더 크신 주님의 목숨을 얻는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냥 목숨을 주신 것이 아니라, 형벌에 대해 그가 고난받으셨다.
주님이 받으신 형벌의 포인트는 고통받는 것이다.
십자가로 처형당하는 자의 입장은 고통에 포인트가 있다.
우리가 죄를 무서워하는 것은 심판이 무섭기 때문이다.
심판의 포인트는 아픔이다.
그냥 단지 모욕감이나 어두운 곳에서 소외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픔이다.
유대인에게 가장 괴로운 것도 십자가형이다.
나무에 올려진 자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다고 했다.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꺼려지는 것이고, 헬라문화에서는 십자가형만큼 수치스러운 것이 없다.
가문 자체가 망하는 것과 다름없다.
성경은 십자가를 간단히 말했지만, 그것은 초대교회에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고통받게 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픈 것인줄 몰랐습니다.
이것은 저주다.
이 땅에는 저주가 있다.
우리 모두 싫어하는 것이지만, 저주는 우리 삶에 너무 가깝게 있었다.
저주 안에 있는 사람은 왠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한다.
이상하게도 하나님께 속할 수가 없다.
저주안에 있는 사람은 악하다. 자기만 생각하고, 남을 미워한다.
인생이 굉장히 험악하지만, 익숙해서 자기는 잘 모른다.
정말 저주 아래서 하나님의 원수로 살았다.
교회도 업신여겼다. 예수 믿어도 완전히 변하지 않으면, 그런 습관이 계속 나온다.
예수 믿다가도, 옛날 생각나면, 하나님도 조롱하고 기만한다.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 속의 저주가 우리에게는 가장 나쁜 것이다.
우리에게 처음부터 있어서, 몰랐던 저주는 우리를 망하게 한다.
우리는 이 저주 때문에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이다.
주님이 속하신 것은 내 목숨을 주었으니, 나와라 간단한 것이 아니다.
형벌을 받아야 한다.
아픈 것이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 버림 받는 것이다.
원래 저주받은 자는 모르겠지만, 예수께서 영원히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께 버림받음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이 고난당하신 이유는 우리를 저주에서 차단하시려는 것이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여전히 우리 몫의 저주를 받아내야 할 지 모른다.
항상 내 인생 잘 풀리지 않고, 부족하고, 궁핍하다.
그런데, 주님은 그 저주를 끝장냈다.
저주의 뿌리를 차단해주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맞는 고난은 몇년 인생 사는 동안으로 끝이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을 이생 이후에 절대 오지 않게 하신다.
완전히 우리와 무관한 것으로 만드셨다.
모든 저주가 우리 앞에서 힘을 잃고, 진정한 소망을 꺾지 못한다.
주님의 보호 하시는 손, 속죄받은 심령, 주께서 시달리시고 감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것은 껍데기 뿐이다.
또한 우리가 저주 아래서 행했던 많은 일들이 주님의 아픔으로 속죄되었다.
최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시고, 제자들로부터 버림받으시고, 자기가 창조한 백성들에게 미움받고,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가 저주 아래 있을 때, 행한 것들을 예수께서 끊어버리셨다.
우리가 행한 저주의 행실들이 주님의 고난을 통해 다 없어졌다.
우리는 응징을 받지 않는다.
예수께서 대신 응징 받으셨다.
그래서, 우리의 저주로 인한 고난은 예수께서 다 담당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몰약을 들지 않으셨다.
몰약은 마취시켜서, 고통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것을 거절하셨다.
행여나 우리를 위한 혜택이 감소될까봐.
우리는 영적인 것, 이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님이 아프심은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의 아픔이 내 속에 있어서, 내 평생 주님의 은혜와 사랑, 그 배려와 친절, 희생이 내 속에서 살아있지 않으면, 내 저주는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다.
형벌은 단지 죽음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매맞고, 소외당하고, 억울함을 당하고, 모욕당하고, 채찍으로 등피부를 벗겨내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 각인들을 위해 아픔을 당하셨다.
그는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를 통해 그의 일을 이루신다.
그는 우리를 거룩하게 사용하사, 정말 승리의 하늘나라에 입성하게 하신다.
그는 우리의 저주에 대한 심판을 다 받으셨다.
이 세상에서 오는 저주에 대해서, 진짜 절망하지 않기 바란다.
오늘만 견디면 된다. 영원한 환난은 없다.
예수 십자가의 아픔에 대해서 경솔히 여기지 말라.
주님의 아픔이 우리 머리속에서 사라진 순간, 원수가 파고 들게 될 것이다.
종교인은 예수 믿기는 한다. 심지어 목사, 장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주를 벗어야 할 더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주님은 죽는 시늉을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 같은 성정으로, 우리 같은 연약한 육체로 다 겪으셨다.
이 사실이 우리 속에서 떠나지 않기 바란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선동했다.
빌라도는 틀림없이 예수를 석방시켜달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선동을 당하니까, 자기 하나님을 못박자고 한다.
대제사장은 지금으로치면 가장 큰 목사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 하나님을 못박자고 한다.
빌라도는 기가 막혔다. 그리고, 자기 손을 씻었다.
그들은 그 죄를 자기와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를 채찍질 하고, 군인들이 조롱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군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다.
그들은 로마가 일부러 잔인함을 보이게 한 자들이다.
말도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최고의 아픔을 당하셨다.
이미 주님은 너무 피곤하셔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갈 수도 없었다.
전날부터 계속 시달리셨다.
그 주간 계속 가르치셨고,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흐르도록 기도하시고, 배반당하시는 스트레스도 받으셨다.
그리고, 전대제사장에게 끌려가고, 대제사장에게 끌려가고, 헤롯에게, 빌라도에게 끌려갔다.
너무 시달리셨다.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들고 갈 힘이 없었다. 군인들이 구레네 시몬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지워 가게 했다.
나중에 구레네 시몬은 훌륭한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십자가에 달린 자도, 거기 백성들도 주님을 조롱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고, 십자가 밑에 예수를 섬기던 여인들이 있었다.
거기는 사회적으로 부유한 여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 부를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주를 위해 썼다.
그들은 그 마지막 장소까지 함께 있었다.
주님은 거기서 요한에게 육신의 모친 마리아를 네 어머니라 하셨고, 요한은 죽을 때까지 마리아를 모셨다.
거기서 주님은 여섯시간을 달리시고,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고, 숨이 끊어지셨다.
거기에 엄청난 신학 붙이지 말라. 외로움으로 소리치신 것이다.
그리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다.
그렇게 예수의 인생은 끝이났다.
그래도, 그를 섬겼던 여인들은 그를 떠나지 않고, 그 시체를 돌보기 위해 향품을 준비했다.
산헤드린 공회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에게 시체를 요구했다.
그리고, 자기가 준비한 새무덤에 두었다.
원래 십자가형은 로마가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라, 시체도 내어주지 않는다.
대제사장은 유월절 전에 빨리 치우길 바랬다. 그러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유월절 명절을 망치든 말든 용감하게 예수의 시체를 요구했다.
그는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님은 비록 이렇게 끝나셨지만, 그는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위험을 무릎쓰고, 사랑을 다했다.
금요일 해가 질 무렵 주님은 무덤에 들어가셨다. 그 무덤은 부자가 준비한 무덤이었고, 좋은 향품을 썼다.
금요일 밤, 오늘 이 시간 주님은 무덤에 들어가셨다.
거기에 안식일 다음날 새벽까지 거기에 계신다.
우리는 그 주님을 생각하고, 이 시간만이라도 교만하지 말고, 무엇을 아는 체 하지 말자.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우리의 운명은 바뀌었다.
세상은 여전히 저주의 옷을 입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저주가 없고, 형벌이 없고, 오늘 주님의 성령으로 인치시고, 보호하셔서, 영원한 나라에 갈 때까지 인도하신다.
주님의 인도를 잘 따르는 성도가 되자.
오늘부터 주일까지 경견한 마음으로 시시 때때로 감사하되, 자기 사욕을 위해 구하기 보다, 회개하자.
주께서 제거하신 저주가 다시 움트지 않아야 한다.
주님의 긍휼로 나를 받아주소서.
나와 내 가정에 죄와 저주가 없게 하소서.
주의 은혜를 무시하고, 안답시고, 다른 것에 신경쓰고, 주님의 은혜를 소홀히 한 것 용서하소서.
사랑하지 않은 것 용서하소서.
나는 죄인의 행실만 있었고, 죄인의 성품만 있었습니다.
사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우리는 남은 삶을 주께 능히 영광돌리고, 후회가 없기를 바란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슬픔의 사람이었다.
그는 간고를 많이 겪었다.
사53:2-6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내 슬픔을 다 가져가셨다.
그가 영원히 영광받으시도록, 영광돌리자.
기독교 시스템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 말자. 거기서 예수 우려먹는 사람 많다.
시스템도 주님이 주셨지만, 내 주님 사랑하고, 충실히 따르는 자들 되자.